불행을 걱정해 주는 것보다 행운을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사람이 더 진정한 친구라는 글을본 적이 있다. 무슨 소린가 싶던 그 말이 단번에 이해됐다.
친구에게 닥친 불행을 함께 슬퍼해 주는 건 행운을 내 일인양 기뻐해 주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다. - P8

"암튼 자기 인생인데 자기 맘대로 못 사는 게 바보지, 뭐."
"맞아. 인간에게는 자기 인생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어. 그리고 주어진 삶을 살아 내야 하는 의무도 있고. 그런의미에서 자살한 닐이 그 권리와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게 안타까워." - P125

학교에도 한쪽 부모가 외국 사람인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은이곳에서 태어나 줄곧 살았는데도 종종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선생님들도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특별히 배려해야할 대상인 것처럼 말하곤 했다. 바우에겐 그 또한 차별 같았다. - P131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꽃과 나무들 앞에서 바우는 그동안 애지중지하며 식물을 가꾸었던 일이 허탈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여기 있는 것들은 영원히 시들거나 죽지 않는, 이별도 소멸도 없는 존재들이었다.
매장 안의 조화와 식물들은 아무리 만져도 자신만의촉감이나 향기를 남기지 않았다.
"꽃은 지니까 예쁜 것이고 벌 나비가 날아들어야 진짠거지, 천년만년 피어 있고 벌 나비도 못 받는 게 암만 예쁘면 뮌 소용이야." - P133

"뭘 먼저 할지는 내가 결정해요. 내 인생이니까. 인간은누구나 자기 인생을 선택할 권리와 의무가 있는 거라고요!"

아들 일인데도 남들과 똑같은 생각과 시선으로만보려는 아빠는 자식을 자살하게 만든 닐의 아빠와 다를 바없었다. 자기 뜻대로 결혼하지 않으면 자식을 사형시켜도된다는 허미아 아빠보다 나을 것도 없었다. 16세기에도 20세기에도 부모들은 사랑한다는 명분으로 자식들을 마음대로 하려 들었다. 그리고 21세기인 지금 아빠도 그랬다. 믿었던 만큼 배신감도 컸다. - P144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의 불행을 위로하며 자기 행복을 확인한다. 미르는 누군가를 진정으로 위로하려면 먼저자신의 상처를 드러내야 함을 깨달았다.  - P162

어쩔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면 그 일에 될 수 있는 대로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게 현명하다. - P190

어른들은 아이들을좀 더 존중하고 믿을 필요가 있다. 자기에게 닥친 일인데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결정이나 판단에서 소외되고 제외되는 것, 진짜 기분 나쁘다. - P195

소희는 나뭇가지 그림자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난 길을 연상하고 있었지만 미르에게는 자기 앞에 놓인 수많은 길로 보였다. 진짜길은 찾기 어렵게 숨겨 놓은.......
저 많은 길에서 어떻게 내 길을 찾지? 
예고 입시에 떨어졌을 때 엄마가 말했다.
"그 학교에 못 갔다고 해서 인생을 실패한 건 아니야. 그리고 실패나 실수가 나쁜 것만도 아니고, 앞으로도 네 길을찾아가는 과정에서 무수히 겪을 수 있는 일이야. 엄마는 앞으로도 네가 실패나 실수에서 배워 가면서 스스로 길을 찾길 바라."
그때는 실패와 실수라는 단어에 꽂혀 그게 악담이지, 위로냐며 엄마에게 화풀이를 했다.
미르는 꿈이 확고한 소희나 바우가 부러웠다. 재이의 꿈이 아직 확실치 않은 건 하고 싶은 게 많아서이지 자기처럼방황하거나 망설이기 때문이 아니다. 나만 왜 이럴까? 뭐가문제인 거지?
나무둥치를 떠나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길들이 대신 대답하는 것 같았다. 남들과 같을 필요는 없다고. 하지만 주저하며 머물러 있기만 해서는 어떤 길도 찾을 수 없다고. 인생이란 자기 앞에 펼쳐진 길들 중 자신의 길을 찾아 한 발 한 발나아가는 과정이라고. 그게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이자 선물이라고………….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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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갑자기 생긴 게 아니라 원래부터 있었다고요! 엄마를 뺏긴 건 우혁이가 아니라 내가 먼저라고요!‘ - P65

빚에는 돈으로 갚을 것과 마음으로 갚아야 할 게 따로 있다. - P68

엄마와 있으면 더 다정한 말투, 관심, 특별한 애정 같은 것들을 끊임없이 바라게 됐고,
그 기대에 비해 엄마가 주는 것들은 언제나 성에 차지 않았다. 그 때문에 엄마와 함께 있으면 계속해서 감정을 소모하게 되고, 그만큼 상처받았다. 아저씨한테는 바라는 게 없어서 편한 건지도 몰랐다. - P114

소희는 엄마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 말 한마디로 다 알 것 같았다. 엄마에게 우리 애들은 우혁과 우진뿐이다. 어쩔 수 없이 소희를 데려오기는 했지만 ‘우리 애‘
는 아닌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소희는 지금까지 엄마의사랑을 갈구, 아니 구걸했다. 가슴에 박힌 말의 파편이 소희의 마음을 조각냈다. 창끝처럼 뾰족하고 날카로워진 그 조각들이 입을 열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와 엄마에게로 날아갈것 같았다.
소희는 더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기로 했다. - P164

 ‘나를 이렇게 만든 건 엄마야. 엄마의 아이들 밖으로 밀어낸 건 엄마라고. 그러니까 엄마가 바라지 않는 행동을 해도내 잘못이 아니야‘ - P188

"준석이 군대 가기 전에 휴대폰을 잃어버려서 정지시켜놓고 갔었어. 제대하고 나와서 휴대폰을 새로 하려고 대리점에 갔는데 약정이 안 끝났다는 거야. 약정 기간이 2년이었거든. 산 지 2년이 넘었는데 무슨 소리냐고 따졌지. 그랬더니 정지시켜 놓았던 기간은 약정에 포함되는 게 아니라고하더라."
뜬금없는 고모 말에 소희는 어리둥절했다.
"사람 사는 일도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아무리 가족이라고해도 떨어져 산 세월이 있는데 그렇게 금방 그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겠니. 휴대폰 약정 기간처럼 너하고 네 엄마, 그리고 네 동생들도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채워야 하는 시간이필요한 거 같아."
"그때그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다 해. 엄마한테 못 할 말이 뭐가 있어. 그동안은 일찍 철든 게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했는데 이제 보니 아니었어. 애들이 부모 속 썩이고, 반항하고, 형제들하고 싸우는 시간도 다 약정 시간에 있는 거야. 너희 때는 그게 당연한 거야."
약정 시간이라는 말이 새롭게 다가왔다. 나는 잘못하는게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일찍 철들어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시간들을 되찾으려는 거다. 그런 말을 어른이 해 주니까 응달진 마음에 볕이 드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하고 싶은 거, 갖고 싶은 거 있으면참지 말고 네 엄마한테 말해, 응석도 부리고, 떼도 쓰고, 지금까지 못했던 거다 하라고. 그리고 동생들이 못되게 굴면누나답게 화도 내고 야단도 쳐. 눈치 보지 말고 너 하고 싶은대로 해!" - P237

"너 때문이라고 자책하지 마. 엄마의 불행이나 고통을 외면하라는 게 아니라 그걸 네 것으로 만들어선 안 된다는 말이야 엄마는 엄마고 너는 너야. 우리는 모두 각자 인생을 사는 거야, 이건 닥터가 내게 해 준 말이야. 대신 넌 너나 네가사랑하는 사람들이 부당한 일을 당할 때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돼. 네 마음이 건강해야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올바른판단을 하고 당당하게 표현하거나 행동할 수 있어." - P302

소희는 다이어리에 새해 첫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고모네 집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던 날, 능소화 덩굴이줄기만 남아 벽에 달라붙어 있는 걸 보았다. 담장을 뒤덮었던 여름날의 푸르고 붉었던 찬란함에 비하면 초라하기그지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산다는 일의 진정한 의미는여름날의 무성함과 찬란함이 아니라 겨울날의 초라함과힘겨움에 담겨 있는 건지도 모른다.
달밭마을의 느티나무처럼 밧줄에 가지를 의지한 채 눈바람을 맞는 일이, 그것을 견디는 일이 인생일 것이다. 내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에도 삶은 그럴 테지. 그걸 알기에나는 앞으로 이 일기장에 담기는 행복하고 즐거운 일은 물론 힘들고 괴롭고 아픈 일까지도 모두 다 사랑할 것이다.
그럴 것이다. -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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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말나리. 소희를 닮은 꽃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꽃 - P10

소희는 부지런히 집안일을 해 놓고 공부를 하다 미용실로 불려 나가곤 했다. 그런데도 걸핏하면 작은아빠와 고모에게 군식구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던 작은엄마가 소희가 가는 걸 아쉬워하다니. 사람들은 더는 주지 않아도 될 때야 비로소 너그러워지는 모양이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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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빨리 해야지. 파출소도 좁고, 오늘 책임량 채우려면 아직 스무명이나 남았는데.」 소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 앞으로 나서더니, 「여러분은 이미 알고 있다시피 상부의 지시로 실시하고 있는 장발 단속에 걸렸으므로 지금부터 차례로 삭발을 실시한다. 차후로는 또다시 장발을하여 미풍양속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명심하기 바란다.」.마치 연설하듯목소리를 가다듬어 말하고는 젊은이들을 휘둘러보았다.
「아저씨들 부수입 오르겠다.」김선진 앞의 젊은이가 이발기를 든 경찰 옆의 의자에 털퍽 앉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경찰이 이발기를 들며 물었다.
「이거 말이유. 값 나가잖수?」그 젊은이는 의자 밑에 수북하게 쌓인 머리카락을 발로 가리켰다. 그걸 고물상에 팔면 돈이 되지 않느냐는 배짱 좋은 야유였다.
「이새끼 이거 영 맹탕이네. 대통령이면 대통령이지 명색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래도 되는 거냐? 머리를 발끝까지 기르고 다니든 빡빡밀고 다니든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야. 근데 대통령이 그런 것까지 간섭하고 억압하고 나서? 이건 멋대로 유신헌법 만들어 독재를 하면서 생긴 횡포야. 그런데 저항 안 하게 생겼어?」 - P8

「지난 1년 동안 나라가 돼온 꼴을 좀 봐. 이건 도무지 나라라고 할 수가 없잖아? 대통령을 뽑는 데도 국회의원을 뽑는 데도 국민의 존재가완전히 무시되고 있으니 이 나라가 도대체 어떻게 되겠어?」「더 말하면 뭘 해. 대통령후보로 혼자 출마해 체육관에 대의원들 몰아넣고 체육관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것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가관인데국회의원 뽑는 것을 보라구. 대통령이 73명이나 임명해 버리니 야당은제아무리 발버둥쳐 봤자 허수아비 꼴이고, 국민의 뜻은 완전히 묵살되고 마는 거지. 이런 꼴에 비하면 그래도 이승만 독재는 아주 민주주의였던 거야.」「그뿐이면 말도 안 해. 국회를 그 꼴 만들어놓고도 부족해서 국정감사를 폐지하는 법까지 만들었으니 이게 도대체 뭘 하자는 수작이야. 국정감사가 있어도 부정부패가 갈수록 심해졌는데, 그나마 국정감사 없애면공무원들이 얼마나 맘놓고 해먹으며 난장판을 치겠어. 도대체 나라를이 꼴로 몰아가는 박통 의도는 뭐야?」「그야 뻔하잖아? 만년독재를 하자면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세력이있어야 하는데, 그 사람이 믿는 게 누구야? 군대 아니야? 그리고 국가예산 중에서 가장 비중이 큰 게 국방예산이잖아. 막대한 예산을 국정감사받을 필요 없이 군인들이 마음대로 쓸 수 있게 특혜를 베풀어주는 대신박 통은 군부의 충성스런 지지를 손아귀에 넣는 거야. 그 다음이 공무원장악이고. 그러니 세금 내는 국민들만 불쌍한 거지 뭐야? - P14

-좋아 좋아. 빼앗긴 민주주의는 반드시 되찾아야 하는데 말이지.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박이 안 하면 안 된다는 논리가 일반 국민들사이에 꽤나 먹혀들어 가고 있다는 게 좀 곤란한 문제 아니겠어? 4. 19가얻었던 국민적 호응과 비교해서 말야.
-그게 바로 독재자들이 써먹는 전형적인 수법이야 팔십 넘은 나이에이승만도 나 아니면 이 나라는 안 된다고 했거든. 그런데 그때와 지금의상황이 다른 게 바로 경제문제야. 박동이 경제개발을 추진했고, 그 먹에 이만큼 잘살게 됐다. 앞으로 계속 더 잘살게 되려면 박동이 나라를이끌어가야 한다. 아주 그럴듯한 감언이설이고, 판단력이 약하거나 가난한 일부 국민들은 속아넘어 가기 딱 좋은 괴변이야. 그러나, 오늘의경제발전을 이룩한 것은 박 등이 아니라 하루 14시간이 넘는 중노동. 그러면서도 입에 겨우 품질이나 하는 저임금, 건강을 해치는 형편없는 작업환경 등 온갖 악조건 속에서 피땀을 흘리며 일해 온 국민들의 노력과힘이라는 것을 이번 데모에서 동시에 일깨워야 해. 국민 여러분이 경제발전의 주인공이다. 국민 여러분이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다. 이 진실을밝혀 박 정권이 유포해 온 최면에서 국민들을 깨어나게 하는 게 우리들의 또다른 임무야. 국민들이 그 최면에서 깨어나는 건 바로 박 정권이안주하고 있는 성벽을 무너뜨리는 거니까. - P16

윤 사장의 말이 아니었어도 자신은 그동안 한 번쯤 폐를 끼쳐도 괜찮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거의 다 찾아다녀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쓸모없게 된 삶의 실패자를 대하는 데 전과 너무 달랐다.
인간관계라는 것, 우정이라는 것까지도 거래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서로가 이익을 보며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을 때 그토록 돈독했던 우정은 거래가 필요없게 되자 일순간에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세상 인심이 야박하다는 거야 상식일 수도 없는 사실이지만 친구라고 생각해 왔던 사람들의 그 야박함을 뒤늦게 겪으며 거듭 절망하고 좌절할 수밖에없었다. - P32

「그놈의 긴급조치 1호만 생각하면 치가 떨려요. 그건 유신독재가 얼마나 잔인하고 악독한지를 자기들 스스로가 입증하고 있어요. 이 세계어느 나라에도 그따위 법은 없을 거예요.」
서경혜의 태도가 금세 달라졌다. 그녀는 정말 치를 떠는 것처럼 얼굴에 분노의 빛이 서리고 야무진 입매에는 더 힘이 모아져 있었다.
「그래요. 그건 무법천지의 표본이오. 그런 세상에서 살려면 사람이기를 포기해야 한다는 건데, 앞으로 어찌 될지..
유일표는 혀를 찼다.
「세상에 법원의 영장 없이 체포하고, 전시도 아닌데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 처단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예요? 이게 도대체 무슨 나라예요.」서경혜가 말하는 것은 긴급조치 1호의 5항과 6항이었다. 대통령 긴급조치 1호는 전체 7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2. 대한민국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제안 또는 청원하는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3.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4. 전 1. 2. 3호에서 금한 행위를 권유, 선동, 선전하거나 방송, 보도,
출판, 기타 방법으로 이를 타인에게 알리는 일체의 행동을 금한다.
5.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법원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며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이 경우에는15년 이하의 자격 정지를 병과할 수 있다.
6.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위반한 자는 비상군법회의에서심판, 처단한다.
7. 이 조치는 1974년 1월 8일 17시부터 시행한다. - P73

강제로 한 여자의 일생을 망쳐놓은 것은 범죄다. 분명사회적 범죄다. 그런데 그게 다 돈으로 해결이 된다. 도대체 그자가 지금까지 망쳐온 여자들이 얼마나 될까. 앞으로는 또 얼마나 망쳐놓을까.
그런데도 그자는 돈의 힘으로 죽는 날까지 건재할 것이다. 돈, 돈이란무엇인가……………. 과연 이 세상에 진실이란 있는 것인가...... 내일 아침신문들을 본 민다리의 오빠들은 어찌 될까. 자기네 편이 하나도 없는 세상에 분노하고, 절망하고……………. 그러다가 끝내 체념하고 그자가 조금 낫게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 재벌은 거대한 산이다. 아니, 산맥이다. 돈으로 덮이지 않을 사회악은 없고, 그들은 그 무기로 완전무장되어 있다. 그들은 자본주의가 잉태해 낸 공룡이고 악마들이다.
노동 착취를 일삼으면서 그따위 짓들을 하는 한 그들은 분명 사회의 악마들이다. - P134

천두만은 그런 속임수를 쓰는 서수철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그가 부러울 뿐이었다. 서울생활 15년을 하면서 보니 이놈의 세상은온통 속임수 판이었고, 걸리지 않고 잘 해먹는 놈이 장땡인 세상이었다.
정치하는 놈들은 권력이 있어서 해먹고, 돈 많은 놈들은 돈힘으로 더큰돈을 해먹고, 말단 경찰들은 행상들의 등까지 쳐먹고, 크고 작은 장사들은 세무공무원들과 짜고 해먹고, 해먹지 않는 놈이 없는 세상에서 못해먹는 놈만 병신이었고, 병신만 못해먹었다. 죄를 짓고도 돈만 있으면풀려나는 세상이니 판검사, 변호사 다 면허증 딴 도둑놈들이라는 말이괜히 퍼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무식한 자신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유식한 문자까지 알게 되었을 것인가. - P159

그 말을 듣고 보니 다방 안에는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싶네.... 하는 노래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 귀에 익은 노래는 자신에게 전혀 다른 두 가지 의미로 새겨져 있었다.
하나는 군생활을 할 때 사병들 사이에서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자꾸만 하고 싶네‘로 가사가 바뀌어 군대에 갇혀 있는 젊은이들의 성적 욕구를 표현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가사가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자꾸만 하고 싶네‘로 같으면서도 10월 유신과 함께 박정희의 권력욕을 야유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달라진 거였다.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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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나 간호원들이 독일돈 벌어들이나, 군인이나 근로자들이 월남서미국돈 벌어들이나, 우리가 멀리 외국까지 나갈 것 없이 궁뎅이 운전으로 일본돈 착착 벌어들이나 뭐가 달라 그래.」
「두말하면 잔소리지. 애국자가 뭐 따로 있나. 우리도 앗싸한 애국자지.」 - P11

1972년 8월 3일 실시된 당일로 8.3조치‘로 불리기 시작한 ‘기업 사채 긴급 동결령‘은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하룻밤 사이에 기업체 사장들이 돈벼락을 맞고 사채업자들이 날벼락을 맞은 때문만이 아니었다.
또, 독재정치를 ‘한국적 민주주의‘란 말로 둔갑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것처럼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미명 아래 대통령의 긴급명령권을 턱없이 확대하여 세계에서 유일하게 기업들을 비호하고 나섰기 때문만도아니었다. 그 황당한 ‘한국적 자본주의‘의 행태로 사채업자들보다 더 참혹하게 날벼락을 맞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다. 그 피해자들은 이상하게도 지지리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 P41

그런 그들은 한국 간호원들이 집안 식구들을 위해서 그렇게 혹독한노동을 자처하고 있다는 것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왜 자기 스스로의 인생을 살지 않고 여자 혼자의 힘으로 집안 식구 모두를 위해서 희생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집안이 가난하면 식구들 모두가 그 책임을 지고 고생해야 옳지 왜 한 사람이 고통을 당하며 그 짐을 져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 간호원들이 아름답게 생각하는자기희생을 서독 간호원들은 논리에 맞지 않는 가족들의 무책임이라고받아들였다. 그리고 사회복지제도가 전혀 없는 한국 사회에 대해서 서독 간호원들은 어떻게 그런 나라가 있을 수 있느냐고 믿으려 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 사이에는 말로 이해될 수 없는 높은 벽이 가로막혀 있었다. - P210

다음날 한인곤은 그들이 시키는 대로 옷을 챙겨 입었다. 옷을 한 가지씩 입으며 한인곤은 자꾸 눈물이 나려는 목메임을 느끼고 있었다. 이곳에 끌려와 옷이 벗겨진 이후로 처음 입는 옷이었다. 옷의 기능이 단순히추위를 막는 것이 아니고, 멋을 부리기 위한 것은 더구나 아닌 것을 그는 이번에 절실하게 깨달았다. 옷으로 수치를 가리고 위신을 보호한다는 것은 옷의 기능 중에서 가장 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옷을 벗겨버리는 것, 그것은 또 하나의 잔혹한 고문이었다. - P223

남재구의 판에 박은 듯한 달변에 한인곤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박정회 맹신자들이라는 말이 있었다. 자나깨나 경제건설을 주장하고, 정치행위의 모든 갈등이나 모순도 경제건설이라는 미명으로 합리화시켜버리는 것이 ‘박정희라는 것이고. 그 논리를 무작정 추종하며 때와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 타당성을 역설해대는 자들을 맹신자라고 이름붙였다.
그런데 그 사회적 비아냥거림과 야유를 오히려 자랑스럽게 내세우며출세의 기회를 엿보는 자들이 숱한 게 정치판이기도 했다. 남자구도 영락없이 그런 부류들 중의 하나였다. - P226

「차아암∙∙∙∙∙∙ 저 한강을 건너올 땐 정말 청춘이었고 꿈도 컸었는데……………」
김선태는 중얼거림 끝에 또 긴 한숨을 매달았다. 그의 눈길은 저 멀리아득하게 흘러가고 있는 한강에 가 있었다.
「그야 어디 자네만 그런가. 나도 그랬고, 한강철교 건너온 젊은놈들이야다 청운의 꿈을 품었었지. 그래, 서울은 참 묘한 곳이야. 출세의 도시이기도 하고 절망의 도시이기도 해. 무작정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을발휘하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잔인한 도시이기도 하지. 조선 500년에서지금까지 출세해 보겠다고 서울로 밀려들었다가 꿈을 이루지 못하고 저한강에 눈물을 떨구며 발길을 돌린 젊은이들이 그 얼마나 많겠는가. 그눈물을 다 모아놓으면 또 하나 한강이 될지도 모르지. 오랜만에 남산에서 한강을 내려다보니 감정이 묘해지는군. 이 사람아, 제사 지내나?」
「아, 예에.......」
김선태는 반쯤 남은 술을 털어넣고 얼른 잔을 건넸다.
「사실 인생이란 게 별게 아니긴 한데 고비고비 잘 풀리지 않으면 그것참 팍팍한 모래밭인 거라. 죽고 나면 다 헛것인데 산 목숨 하루하루는심각하고 절실하니까 최선을 다해 노력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숱한 사람들이 인생에 대해 제 나름으로 많은 말들을 했는데 정작 정답은없는게 인생이거든. 사는 것, 그것에 열중할 수밖에 없어.」 - P247

경제발전이란 서울 시내에 중구난방으로 솟아오르는 고층건물들로나타났고, 키높이 경쟁을 하는 것 같은 그 건물들은 ‘빌딩숲‘이라는 외국말과 한국말을 짜맞춰 이상야릇한 새 말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그 말과 똑같은 연유로 탄생한 것이 ‘아파트‘이었다.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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