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뭐 별거냐, 지금 살아 있는 거! 이게 행복이지.
윤이랑 영미랑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모든 날들이 행복이지! 정말 행복사진이네. 껄껄!" - P74

"네, 마음 사진관에서 행복사진 찍을 때만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죠. 푸른 꽃은 사람들 마음에 든 멍을 찍을 때 나타나요. 원래 하얀 목화솜처럼 고운 마음이 상처로 이리 맞고 저리 맞아 검푸른 멍이 든대요. 그런데 행복사진을 찍으면 행복한 기억이 마음 아픈 상처의 기억을 덮어 아름다운 푸른색으로 변하면서 멍이 빠진대요. 하늘이 파란 건 사람들 마음의 멍을 희석시켜 주느라 꽃잎이 많이 올라가서가 아닐까 싶어요. 꽃잎은 매번 머무는 게 아니라 제가 사진 찍는 대상을 향해 간절한 마음으로 행복을 빌면 행복사진을 찍는 순간에만 나타나요."
"아... 그래서 하늘이 유난히 쨍하게 아름다운 날에는 이상하게 마음이 시리고 눈물이 나는 것이었군요. 정말 놀랍네요." - P80

"제가 이런 말씀 드려도될지 모르겠지만...."
"해도 될지 모르겠다면 하지 마. 네 안에서도 확신이 안드는데 그런 말을 미리 까는 건 네 죄책감을 덜고자 하는널 위한 워딩이지." - P85

차별과 정서적 학대에 익숙한 사람은 동일한 상황에서자신을 지킬 용기가 나지 않는다. 박동욱 모친의 차별과 폭언은 수현이 집에서 엄마에게 받던 대접과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차별 받는 대상이 오빠에서 남편으로 바뀌었을뿐, 선을 본 지 3개월 만에 집안의 뜻으로 결혼한 박동욱은사람이 착해 보여서 좋았다. 착한 사람은 자신을 아프게 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착한 사람‘과 ‘우유부단한 사람‘은 의도치 않아도 다른 대상들을 충분히 아프게 할 수있다는 걸 결혼 3년 차가 되어서야 알았다. - P95

"말이 된다니까. 그러니까 메리골드지, 마침내 오고야말 행복이 있는 마을, 메리골드! 메리골드에선 말 안 되는일이 없어."
"믿어봐,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의 실상이라 했으니까." - P113

"응. 근데 지금 보니까 이서야, 불꽃은 원래 어두울 때터지잖아. 마음이 마냥 어두운 날들도 사실은 저렇게 크고 아름다운 불꽃을 터뜨리려고 준비 중이었던 거야."
"아름답다. 역시 지수현 멋져. 그런데 찬란하고 근사한순간이지만 정말 순간이잖아. 불꽃놀이는 끝나도 우리 삶은 계속되니까."
"그렇지. 지금이 순간임을 알기에 더 아름다운 게 아닐까. 매일이 불꽃놀이 같다면 어떨까?"
"일상이 매 순간 불꽃놀이면... 음... 불꽃에 데어 죽을걸? 혹은 심장 터져 죽거나, 아니면 불꽃같은 아름다움도.화려함도 결국 질리겠지."
"그렇겠지? 나는 지금까지 매일을 불꽃놀이 준비하듯산 것 같아. 맹렬하게 타고 싶었나 봐."
"우리 수현이・・・ 너무 고생 많았다. 잘했어. 너 지금까지잘해왔고, 충분히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너무 잘할 거야.
가장 어두울 때가 가장 빛나는 순간일 수도 있다는 말이 있잖아. 지금 어둡고 힘들다면 삶의 축제를 준비 중일 수도있으니 현재를 즐기라고 했어. 어제를 살지도 내일을 살지도 말고 오늘만 살자고 생각하니까 그 뒤로 정말 자주 웃게됐어. 웃기지 않은 일도 웃고 나니까 글쎄 재미있어지는 거있지? 자주 웃으니까 삶이 축제 같더라."
"삶의 축제, 페스티벌이라." - P144

‘앞으로 나아가는 길엔 언제나 진통이 따릅니다. 때론그 진통이 아프고 괴로워 도망가고 싶습니다. 왜 내게만 이런 일이 생기나 싶죠. 하지만 내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겠지요. 당신도 고통스럽고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고통 속에 머물지 않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고통을 지나오며 마음이 조금 어른이 된 거 같아요. 성장통이라해야겠지요. 나의 성장통은 당신이었습니다.‘
마음의 말은 하늘의 불꽃이 되어 터진다. 나의 성장통이었던 당신, 당신의 몸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늘 당신의 사랑을 갈구했고 당신의 무례를 견디어 냈으며 당신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살아왔다. 그런 삶이 익숙해져 타인의 무례에 대처하는 법을 잊었으며 나를 사랑하는 법도 잊었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니 남을 사랑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사랑을 갈구하던 어린아이가 아니라 어른이다. 어른이 되어도 이리 한참 아플 줄 몰랐지만 어찌됐든어른이다. 진짜 어른은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을 탓만 하지않고 자신을 보호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닐까. 성장통을 딛고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도 같다. - P147

"여름에 가을을 그리지 말고 가을에 겨울을 그리지 말아요. 마지막 부탁입니다. 부디 오늘을 사세요. 지금 이 순간 행복하세요.
먼 미래의 거창한 행복을 좇느라 오늘의 사소한 기쁨을 놓치지 말고 오늘을 살아요. 나 자신을 위해서 삶은 여행입니다. 여행 온 듯 매일을 살길 바라요." - P150

운명은 그것을 우리가 운명이라 부를 때에만 운명이 된다. 스쳐 지나간다면 운명이 아닌 흘러가는 사소한 일일 뿐이다. 스스로 우연을 운명으로 만들기로 선택할 때에만 우연은 운명이 된다. 범준이 우연히 클릭한 프로그램을 흘려보낼 수도 있었지만 지원을 하는 용기를 냄으로 인해 운명이 되었다. 청년 교류 프로그램에 합격하고서도 이 도시에 오지 않을 수 있었지만 낯선 도시로 건너오는 용기를 냄으로써 운명이 되었다. 운명이라는 길은 자신의 선택과 용기로 만들어진다. - P202

"20대에만 인생의 진로가 결정되는 건 아니야. 서른 이후에 안정되게 사는 사람은 기대보다 적어. 그리고 생각보다 삶이 길어. 서른 이후도 마흔 이후도, 쉰, 예순, 일흔, 여든, 아흔 이후에도 삶은 지속되잖아."
"하긴... 뉴스 보면 어르신들이 새로운 일에 많이 도전하시긴 하더라구요."
"그렇지. 어찌 보면 정해진 길이라는 건・・・ 우리가 스스로 제한하는 것일지도 몰라."
"그렇죠. 근데 형, 꿈을 꿀 자유가 있다잖아요. 그렇게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도 하는데, 꿈꿀 자유가있다면 꿈꾸지 않을 자유도 있는 거 아닌가요?"
"있지."
"근데 또 꿈꾸지 않을 자유라면서 저처럼 이렇게 살다가아무것도 되지 못하면요?"
"아무것이 되지 않아도 괜찮아. 지금까지 살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한걸. 아무것이 된다든가 평범하다든가 특별하다든가, 그런 기준들도 어차피 사람이 정한 거 아닌가? 내삶에 대한 기준은 내가 정하면 되는 거야. 그리고 아무것이되지 않아도 괜찮은 시절이 청춘 아닌가. 방황하고 헤맬 특권을 낭비해도 될 거 같아. 사실 나는 그런 청춘을 보내지는 못했지만 말이야." - P208

"그리고 범준아. 정해진 길이라는 건 애당초 없어.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아직도 길을 잃는걸. 그냥 묵묵히 할일을 하며 걷다 보면 결과물이라는 게 생기고 사람들은 그걸 길이라 부르는 거 같아. 아직 나도 확실하진 않지만, 그저 우리가 할 일을 멈추지 않고 걷는 게 아닐까? 여기 사진다 됐다. 뒤집어 둘 테니까 너 혼자 보고, 나는 옥상에 널어둔 필름 정리 좀 하고 올게. 오늘은 사진관에 손님이 더 안올 것 같으니까 편하게 있어." - P209

초침과 분침과 시침이 성실히 제 갈 길을 가듯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삶이라는 이 여행을 포기하지 않고 가는 것 아닐까. 물도 보고, 하늘도 보고, 나무도 보고, 바람도 만지고, 운이 좋으면 무지개를 만나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낯선 이들과도 어울려 보며 전혀 무용할 수 없는 것들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 아름다운 순간을 간직하고 싶어서 우리는사진을 찍는다. 슬픈 순간이 아닌 행복한 순간을 찍는 이유는 행복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순간의 행복을 영원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에 우리는 사진을 찍고, 안개 끼고 폭풍우가 몰려오는 날에는 어제처럼 선명한 행복의 사진을 꺼내보며 살아갈 힘을 낸다.
"오늘 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가 기적이구나."
기적을 바랐던 까닭은 기적 안에서 살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 P219

"상미 님, 무엇보다도 나부터 사랑해 주어야만 그 힘으로 타인을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자기 자신을 제외하면모두 타인이고, 가족도 사실은 가장 가까운 타인이잖아요." - P257

"나를 사랑하자, 나를 사랑하자, 나를 사랑하자..? 뭐야이게?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잘 읽어봐! 뒷장도 있어! 나는 이제부터 나를 더 사랑할 거니까 당신도 당신을 사랑해!"
"그동안 참 애썼어. 고생 많았어. 수고 많았어. 잘했어.
잘 견뎠어."
"그리고 이제부터 나도 안 참아! 할 말은 하고 살 거야.
당신도 나를 함부로 대하지 말아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관계가 가족이면, 가족한테 제일 잘해야 하는 거야. 알지?"
"내가 언제 당신한테 함부로 대했다 그래. 말을 왜 그렇게 하냐."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 그리고 당신, 젊어서는어머님 병환으로 고생하고 결혼해서는 애들 키운다고 하고싶은 거 못 했잖아. 이제 조금씩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자. 우리가 그렇게 사는 모습을 보여야 애들도 자기 살고 싶은대로 인생을 대차게 살지. 보고 배운다잖아!" - P275

"‘아름답다‘의 어원에 대한 가설이 여러 가지인데, 그중에서 ‘아름답다‘가 ‘나답다‘로 해석될 수 있다는 설도 있어. 즉 ‘아름답다‘는 ‘나답다‘ 인 거지."
"아... 그러니까 가장 나다울 때 가장 아름답다는 거네요?" - P294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래요."
"빈도?"
"네. 강한 즐거움이나 기쁨은 자주 오지 않을 뿐더러 기대할수록 실망도 크니까, 매일의 작고 소소한 기쁨이나 즐거움을 늘리면 행복한 일상을 살 수 있대요."
"좋은 말이네. 그러고 보면 즐겁고, 기쁘고, 살짝 설레고, 웃음이 나고, 왠지 기분이 좋고. 그런 감정들도 행복의표정일 거야."
범준이 웃는 모습을 보며 어쩌면 행복은 표정이 많은 얼굴이라 구운 고구마를 먹을 수 있는 적당한 허기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됐건 나의 행복은 지금 여기에 있다. 내가 옮기는 발걸음 끝에, 그 끝에 꽃이 피건, 빗물이 튀건, 자갈밭이건 상관치 않는다. 걸음을 멈추지만 않는다면 원하는 길을모두 만날 수 있을 테니까. 그 길이 어떤 길이건 나답게 걸어간다면 아름답게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스스로 걷는 길을 아름답게 받아들인다면 아름다운 인생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지 않을까.
"별이 빛나는 건 어둠이 있기 때문이겠지." -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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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꽃잎이 해인의 손으로 톡, 하고 떨어지고 나서야해인은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가 가장 원하던 삶을 이뤄줄수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해인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카메라 필름을 빼낸 자리에 푸른 꽃잎이 날아와 담긴다. 꽃잎 같은 사람이 마침내 꽃잎이 되었다. 서서히 어둠이 걷히며 날이 밝아온다. 슬픔으로 퍼렇게 멍든 해인의 마음처럼 새벽도 푸르다.
"푸른 새벽은 사랑하는 이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시작하는 것이었구나. 그래서 아침이.. 아침이구나."
1층으로 내려온 해인이 남은 차 한 모금을 마시며 생각에 빠져든다. 간절히 바라는 일은 언젠가 상상하지 못하는방식으로 이루어진다던데. 얼마나 더 간절히 바라야만 하는 걸까. 해인은 가슴이 아프지만 지은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 P12

세 사람은 서로에게 미안해 창밖만 바라본다. 우리는 왜 이리 미안해야만 하는 걸까. 가난은 사랑하는 이를 매일 미안하게 만든다.  - P18

봉수 나랑 살아줘서 고마워. 근데 우리 다음 생에는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이름으로 만나지 말자.
"그래,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이름으로 만나지 말자. 우리두 번은 하지 말자, 이런 삶."
봉수는 웃으며 대답했다. 슬픔은 원래 속으로 삼키는 것아닌가. 그래서 늘 속에선 피 맛이 났다. 뱉을 일 없는 슬픔의 맛은 빨갛다. - P32

자동차에 기름은 다 채우지 않은 채로 여행을 떠난다.
핸들을 잡은 봉수의 두 손에 힘이 들어간다. 세 사람은 길을 떠난다. 드디어, 오랫동안 생각해 온 그날인 것이다. 불운과 불운이 만나 행운이라 자신들에게 거짓말하던 달콤한꿈에서 나와야 할 때,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 가기로 했다.
태어난 건 선택할 수 없었지만 죽는 건 선택하고 싶었다.
그래도 최대한 미루고 버티고 기왕이면 잘 살아보려 했는데. ‘잘‘을 빼고도 ‘살아본다‘는 것 자체가 왜 이리 어려운지. 세 사람이 출발하자마자 비가 내린다. 방금까지 쨍쨍하던 하늘에서 장대비가 내린다. - P33

지우고 싶은 마음이 있으신가요.
마음의 얼룩을 행복한 기억으로 바꾸어 찍어드려요.
보고 싶은 마음을 사진으로 찍어 보여줄 수도보고 싶은 순간을 사진으로 찍어 보여줄 수도 있어요.
당신이 행복할 수 있다면당신의 슬픔이 안녕할 수 있다면얼룩진 마음을 행복한 마음으로 바꾸어 드립니다.
어서 오세요, 행복한 마음을 찍어드리는 마음 사진관입니다.
-사진관 주인 백 - P42

"오메 비가 다시 오네, 장마인가. 저리 비가 시원하게와야 무지개도 뜨고 해도 나제. 비가 오고 폭풍이 불고 바람이 불어야, 또 마른 날이 오제. 시원하게 내리는 비 핑계삼아 시원하게 울어재낄 수도 있고 말이여. 오늘 밤은, 저비에 많은 게 씻길 거여. 암, 그럴 겨."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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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발을 들인 곳에서 어떻게든 높이 올라가 보려고시행착오를 반복하는 모습이 소중한 거야. 난 아루가 어떻게든 더 나서려고 애쓰고, 인상에 남을 만한 말을 하고 싶어 필사적으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 울컥한다고 거기다 요즘은시적인 감성에 빠져 있어서 더 좋아." - P23

"...그 얘기, 뒤에 이어지는 내용이 있는 거 알아?"
"초라하게 울고 있는 까마귀에게 신은 이렇게 말하지. 너는 그토록 아름다운 검은 깃털을 가졌는데 어째서 가꾸지 않았느냐. 누구도 너처럼 반짝이는 검은빛을 가진 이가 없거늘."
"자신이 가진 걸 갈고닦자, 난 이게 그 이야기의 또 다른교훈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당신도 스스로를 갈고닦는 게어때? 다른 사람의 깃털로 치장하지 말고."
"자신의 좋은 점, 어느 정도는 알잖아? 그 부분을 갈고닦아 봐. 스스로 잡초라고 했지만, 수많은 사람 속에서 선택받았으니까 지금 그 화려한 세계에 존재할 수 있는 거잖아. 그렇게 자기 비하할 여유가 있으면 이길 방법부터 찾아보라고.
예를 들면, 이것처럼." - P56

"그냥 지르는 거야. 철저하게, 제대로 화를 내 버려. 사람은슬프면 눈물을 흘리잖아? 그걸 분노로 바꾸는 거지. 눈물이나 분노나 결국 같은 성분으로 만들어졌으니까." - P95

"미치오가 좋아하는 모습... 미치오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려고 했어. 나."
그래, 미치오를 실망시키지 않으려 무의식적으로 그의 취향에 맞춰 왔다.
그가 바라는 대로 집 안에서만 지내며 그가 원하는 생활을 유지해 왔다. 그것이 곧 행복이라 믿었다. 결혼이란 이런것이며 이 또한 결혼의 근사함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무의식속의 나는 잃어버린 ‘나다움‘을 찾고 있던 것이다. 아아, 그렇구나. 내가 돌아가고 싶은 것은 고향이 아니다. 향수병이 아니야. 나는 원래의 나로 돌아가고 싶었던 거다.
어리석었어. 미치오가 바라는 훌륭한아내와 나다움이 공존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조차하지 못했다. - P108

"스스로 더 좋은 길을 모색하고 자신의 힘으로 발견할 수있다면 그건 무척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해. 나 역시 그걸 해내는 사람들을 동경하고.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잖아. 아무리 조급해하고 괴로워해도 그것만으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아.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을 만나는 타이밍이 있고, 그 타이밍이 와야 시작할 수 있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
적어도 나는 그렇거든. 그래서 말인데, 주에루도 꼭 만나야할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한 걸지도 몰라."
"만나야 할 사람?"
"응. 깨달음이나 발견, 자신감을 일깨워 줄 사람. 아무리 초조해 해도 그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시작되지 않을지도." - P123

저 나이대에는 ‘좋아해‘가 참 알기 쉬운 거였는데.
무리 속에 섞여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성장할수록 점점 더 알기 어려워진다. ‘좋아해‘라는 말로 누군가와 이어져 함께한다는 건 사실 무척 어려운 일 아닐까? ‘좋아해‘로 시작해 함께 ‘행복‘을 누리는 것은 더더욱 어렵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부쩍 무거워진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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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왼손에 매달린 은사슬이 살짝 흔들리며 차르르 하는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듣고 천천히 입가를 치켜올리며 하얀 이를 드러낸 수많은 얼굴 중에서, 나는 그날 구해내지 못했던 그를 발견했다.
"거짓말이네에 우리는 안 속아. 그런 식으로 우리를 속이고 꾀어내서 잘게 조각내려는 거지? 이 악마!"
"악마에게 악마라는 소릴 들을 줄은 몰랐지만…………… 그래.
난 분명 악마였지. 그러니까 마지막은 인간으로서 끝나고싶어."
그것이 지금의 나에겐 유일한 진실이었다.
자, 밤이 어스름을 끌고 다가온다. 그러나 망각의 아침은이제 오지 않는다. - P374

히요리. 나 말이야, 네가 웃으면 태양이 높이 뜬 것처럼 눈부시다고 생각했어. 유학 가고 싶다는 내 꿈도 비웃지 않고 응원해줬지. 그래서 좋아한다는 말을 꺼낼 수 없었어. 마음을 전할 수없다면, 하다못해 최고의 추억을 만들고 싶었거든.
그런데 어째서 뭐야 이거, 대체 뭐냐고!
"토와다 타이요 군. 유감스럽지만 자네는 여기서 죽어. 몰랐겠지만 나는 사신이야. 자네의 혼을 저승에 보내주러 왔어."
갑자기 내 눈앞에 검은 옷의 젊은 남자가 불쑥 나타났다. 물에빠진 내 눈앞에서 그는 우아하게 물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죽어가는 내게 손을 뻗어주지도 않고 말이다. 발버둥 칠 힘마저잃어버린 나는 천천히 가라앉아가며 입을 열었다.
‘죽고 싶지 않아. 나는 하고 싶은 일이・・・・・・ 히요리도......?
......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입술의 움직임을 읽었는지, 아니면 내 마음속을 읽었는지 몰라도 사신은 살짝 눈썹을 찡그리더니 손가락으로 내 뺨을 어루만졌다.
"다음 생이 있어. 거기서 다시 한번 그녀와 사랑하게 될 거야."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에 그가 꺼낸 건 위로의 말・・・・・・ 이었을까?
뭐야 그게.
최후의 순간, 나는 웃고 말았다. 내가 생각해도 우는지 웃는지모를 어설픈 웃음이었다. 하지만 사신이 하는 말이니만큼 한번쯤 믿어봐도 좋지 않을까? 1년에 한 번만 만날 수 있다는 견우와 직녀처럼, 나도 다음 생에서는 그녀와 평생 한 번 있을까말까 한 사랑을 하게 될 거라고. 그렇게 생각한 순간, 몸이 쑥가벼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는 생각했다.
아아, 이제 괴롭지 않네, 하고 말이다. - P65

자신의 영혼이 무슨 색일지 생각해본 적 있는가? 사람의 영혼이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온갖 기억에 담긴 감정의 집합체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색은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과 소중한추억이다.
나는 죽은 이를 명부로 안내해주는 통행료로 혼의 가장 아름다운부분을 떼어 받는다. 나의 하루는 사신 업무 외에는 다양한 색으로둘러싸인 아틀리에에서 수정처럼 반짝이는 혼의 조각으로 물감을만들고 그림을 그린다. ‘오늘 업무가 끝났으니 느긋하게 그림을그려야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스마트폰에서 마더구스의 노래가 울린다.
"그래, 자네. 안녕한가. 미안하지만 오늘도 갑작스러운 임무라네, 내용은 메일로 보냈으니 신속히 확인하도록."
아아, 최근에는 사신 적성 판정에 합격하는 이가 없어서 사신의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더니… 오늘도 급작스럽게 업무 추가다. 여유부릴 때가 아니었네. 자, 그럼 가볼까 찰스? 이번 영혼의 가장 아름다운 기억은 과연 무슨 색일까.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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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색일지라도 혼의 주인에 따라 조각의 색조가 미묘하게 달랐다. 예를 들면, 장미의 붉음과 산딸기의 붉음, 석양의 붉음과 베텔게우스의 붉음처럼 말이다.

사람의 혼이란, 말하자면 기억의 집합체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온갖 기억이 담긴 보이지 않는 물질을
‘혼‘이라고 부른다. - P15

"뭐, 여전히 잘 그리긴 했지만 역시 자네 그림에는 무언가가 부족해. 물감 재료인 혼의 빛깔에 너무 의존하고 있는 거지. 아름다움과 정교함에 있어서는 확실히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이 그림에 존재하는 건 그것뿐이야."
"자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하지만 이것만큼은 어쩔 수가 없어. 나한테는 흔이 없는걸."
사신이란 존재는 보통 그렇다. 마음의 요람인 혼이 없기에 벌어진 사건이나 학습한 지식 등의 사무적 기억만 남을뿐, 감정적인 기억은 남지 않는다. 하룻밤 푹 자고 나면 자기 전에 느꼈던 감정은 전부 꿈의 저편으로 사라지기 때문인 것도 있고. - P39

"네가 명령했기 때문이야. 카에데에게 죽으라고 했잖아."
"도망친다는 건 죄의식을 느낀다는 뜻인가?"
"다행이야. 요즘 가해자 중에는 피해자가 죽으면 기뻐하는 사람도 있거든." - P93

죽은 카에데의 육체에서 해방된 혼의 대부분은 검정과회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 정도로 탁한 색의 혼은 오랫동안 이 일에 종사한 나조차도 처음 봤기에 지금 생각해도 놀랍기만 하다. 카에데는 죽은 채로 살아 있었다. 무엇을 봐도반응하지 않는 마음은 단단히 얼어붙은 돌멩이 같았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아름답게 느낀 것이 죽기 직전에본 석양의 빛깔이었다. 그녀의 인생에서 그것 말고는 마음을 움직여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견딜 수 없이 감상적인 기분이 되었다.
흔이 없어 삶의 기쁨을 기억할 수 없는 우리와 혼을 가졌으면서도 생의 기쁨을 느끼지 못했던 그녀 중에서 어느쪽이 더 슬픈 생물인 걸까.
·현실에서 도망칠 방법은 그것 말고도 얼마든지 있었어. 인간의 수명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지만 삶의 방식은 스스로 정할 수 있지. 모든 걸 잃어버릴 각오로 그 집에서 뛰쳐나왔다면 카에데도 좀 더 행복한 죽음을 맞을 수있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 아이는 포기해버렸지. 자기 인생도, 이 세상도." - P103

"이봐, 찰스, 어째서 인간은 추한 것들만 열심히 찾아내는걸까? 고개를 조금만 들어도 세상은 이렇게나 아름다운데."
"인간은 다들 근시거든. 먼 곳을 보게 하려면 안경을 씌워줘야만 하지. 뭐, 그중엔 가끔 자네처럼 먼 곳만 보려 하는곤란한 녀석들도 있지만 말이야." - P104

"......이봐, 엘리. 내가 자네를 고용한 이유가 자네의 눈동자에 첫눈에 반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자네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 P136

"오른손으로 기쁨을 붙잡으려 하면 왼손의 보물을 떨어뜨리게 돼."
인생이란 그런 거라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나는 왼손의보물을 잃는 게 두려웠다. 그래서 계속, 언제까지나 지켜내고 싶었다.......
하지만 오른손으로 새로운 기쁨을 움켜쥔 지금은 이게올바른 선택이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왼손은 당분간비워두자. 욕심이 나서 또 오른손을 뻗지 않도록. - P157

아아, 수많은 아침을 맞이하면서도 슬픔의 빛이 바래지않는다는 건 멋진 일이야. 엘리, 부디 마지막 순간에 내 눈앞을 장식하는 혼이 너의 눈동자와 같은 색이었으면 해. - P180

"발상의 전환이라는 거죠. 예를 들어, 출생지나 시대, 재해처럼 자기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에 인생을 지배당한다는 건 굉장히 불쾌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일일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분노나 증오에만 집중하다 보면 만만치 않은 현실과 직면할 때마다 본인만 더욱 힘들어질 뿐입니다.
그렇다면 억지로라도 사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과거와의 타협을 훨씬 쉽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거죠." - P234

"우리는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보통 사람들 보다 모르는 게 몇 배는 많잖아요. 저는 태양을 본 적이 없고, 하늘이 어떤 색인지도 모르고, 별똥별이 어떤 건지도 몰라서 소원도 빌 수 없어요. 그래서 그만큼 눈이 보이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좀 더 많이, 많이, 많~~이 알고 싶어요. 눈이 보이는 사람이 열 가지를 알고 있다면, 저는 백가지를 알고 싶어요. 그렇게 하면 제가 불행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고 보통 사람들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제가 이런 말을 하면 할아버지는 ‘세이라는 참 지기싫어하는구나‘ 하며 웃으시지만요." - P285

하지만 과연 그들의, 아니 나의 선택은 정말로 옳았던 걸까? 나는 그들이 고른 결말을 축복하는 게 아니라 슬퍼해야하지 않았을까? 결국 생의 기쁨을 잃어버린 그들의 공허한최후에 가슴이 아파야 하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세계는...
"우리는 낙심하지 않는다. 우리의 외적 인간은 쇠퇴해가더라도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진다. 왜냐하면 우리가지금 겪는 일시적이고 가벼운 환난이 그지없이 크고 영원한 영광을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순간 무심결에 주먹을 맏아쥐던 내 귓가에 찰스의 거침없는 암송이 들려왔다.
"우리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본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
"라고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 적혀 있지. 인간이란 건 어쩔 수 없이 눈에 보이는 것에 얽매이기 마련이야그런 슬픈 생물이지. 전에도 이야기했잖아. 모든 사람은 근시라고."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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