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소녀들의 숲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미디어창비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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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녀라고 하면 보통은 고려 시대, 원나라에 바쳐지던 공녀만 생각나기 마련일 텐데, 그 끔찍한 일이 조선시대까지 이어졌을 줄은 미처 몰랐다. (세종 때에 폐지되었다고 하니 다행이지만) 그 후에도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일본군에 넘겨진 이들이 숱하니, 이 나라 여자들의 역사라는게 생각할 수록 참 분하고, 그런 일을 벌인 자들은 참으로 더럽기 그지 없다. 하긴 형태가 달라질 뿐 세계 어디에나 여자들의 수난이 없었던 곳이 있을까. 어처구니 없는 것은, 그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자신의 안위를 보장받은 이들이 희생양이 된 여자들에게 누구보다 가혹했다는 점이다. 화냥년. 한번 쯤은 들어봤을 그 이름.​


<사라진 소녀들의 숲>은 외국에서 출판된 책을 한국어로 번역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작가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캐나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제주의 풍광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지는 이 책을 영어로 출판했다. 그럼에도 이 책에는 수백년 전 조선인들의 정서와 그네들의 애환이 어색하지 않게 담겨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책 제일 뒷 장의 ‘옮긴이의 말’을 읽기 전까지 이 책이 영어로 쓰인 책인 줄도 몰랐다. (버젓이 표지에 옮긴이의 이름이 적혀있음에도)


미스터리의 형식을 취하고 있고 실제 읽는 내내 환이의 시선을 따라 소녀들의 실종에 관여한 이가 누구일지 추리하는 재미에 흠뻑 빠지긴 했지만, 이 책에는 미스터리 그 이상의 아픔이 빼곡하다. 아버지를 잃은 딸, 딸을 잃은 부모, 딸을 잃기 싫은 부모, 딸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어둠의 길을 선택한 아비, 아비로 인해 도리어 자신의 삶을 잃은 딸- 누구라할 것도 없이 모든 이가 무엇이든 잃었다. 온통 상실한 사람들, 그야말로 상실의 시대다.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고, 신념을 잃고, 인간성을 잃고.. 아비를 죽인 범인을 찾았고, 환이는 억지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동생 매월이와의 관계도 회복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슬픈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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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드이발소 8 : 핑크빛 베이커리타운 브레드 이발소 8
(주)몬스터스튜디오 지음 / 한솔수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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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 케이크 VS 딸기 케이크라니,
이 조합 못 참죠 !


아이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는 브레드 이발소의 신작이 나왔네요~ 달달한 초콜렛이 잔뜩 나오는, 발렌타인 데이와 화이트 데이의 계절에 잘 어울릴 듯한 책이에요! 아, 하긴 어느새 12월이니- 크리스마스에 맞춘 거겠네요. (찡긋)


셰익스피어의 원작인 로미오와 줄리엣은 모르면서 브레드 이발소 로미오와 줄리엣은 표지만 보고도 내용을 줄줄 잘도 말하는 우리 아이.. 이게 원래는 되~게 유명한 외국 작가의 작품이야, 라고 허공에 대고 말해 봅니다. 이미 책을 들고 사라진 뒤였거든요.


브레드 이발소 TV 시리즈는 아이가 볼 때 옆에서 흘끗 몇 번 쳐다본 게 다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책을 읽는 내내 브레드 사장님과 다른 등장 인물들의 음성 지원이 되는 기분이었어요. 그만큼 캐릭터들의 개성이 확실하단 얘기겠죠? 게다가 삽화인 듯 TV 속 장면인 듯 삽입된 그림들 덕분에 언제 다 읽었는지 모르게 페이지가 넘어가는 것이 이 책의 최고 장점인 것 같아요. 아직 글밥 많은 책을 힘들어하는 조카도 브레드 이발소 만큼은 엄청 집중해서 보는 모습을 목격했답니다^^


(요즘 남녀노소 불문하고 인기인 MBTI 테스트도 살짝 들어가 있어요! 저는.. INTP인데, 우찌 ISTJ로 나오네요? ㅋㅋ)


책은 두 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두 편 모두 <로미오와 줄리엣>을 모티브로 해서 생김새나 다른 외적 조건으로 상대를 배척하는 것보다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이 훨씬 보기 좋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다만 첫번째 에피소드는 훨씬 다이내믹한 재미가 있지만 자칫 담긴 메시지는 놓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두번째 에피소드가 첫 편이 가진 메시지를 보다 명확하게 전달해주며 마무리 되어서 좋았어요. (역시, 아이들 책은 교훈이 좀 있어줘야 할 것 같잖아요 ㅋㅋ)




ps. 저 식빵 사장님, 돈 좀 밝히는 분이었군요? 생긴 건 참 맘씨 좋게 생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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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인생수업 - 지금,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이동섭 지음 / 아트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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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초등학생조차 알고 있는, 너무나 유명한 그 이름. 생전에 바랐던 대로 고흐는 그림을 통해 사람을 매료시키고, 위로하고, 작품 속으로 빨아들인다. 일상에서 고흐의 작품을 만나는 일도 어렵지 않다. 설사 고흐의 이름을 모른다 하더라도 고흐의 그림을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을 만나기는 무척 어려울 것이다. 그런 만큼 고흐와 관련된 책도 참 많이 나와있다. 고흐의 작품 모음집. 고흐의 편지 모음집. 고흐의 작품 세계. 고흐의 일생. 고흐, 고흐….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고흐의 작품들을 좋아한다.고흐의 그림은 어쩐지 살아있다. 나같은 까막눈조차도 그의 그림에서는 열렬히 타오르는 열정을 느낀다. 비록 원화를 본 적은 없지만, 인쇄물로 나온 그림이라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살짝 숨이 가빠지곤 한다. (그림에 영혼 조각이라도 박아 넣었나? 볼드모트야?) 남의 그림을 모작하는 것은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지만, 고흐의 그림은 몇 점 따라 그려본 적도 있고, 엉망으로 그린 풍경화를 고흐 풍의 그림이라며 제멋대로 말해보기도 했다. 고흐의 작품집을 살 것인가, 산다면 어느 출판사의 것을 살 것인가를 두고는 몇달 째 고민 중이다. 그러니 <반 고흐 인생수업>이라는 제목에 끌릴 수 밖에.


이 책은 빈센트 반 고흐의 삶과 그의 그림들을 통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살아내면 좋을 지에 대한 작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풀어냈는데, 솔직히 고백하건데, 몇몇 문장들은 나를 제법 불편하게 만들었다. 2004년에 1쇄를 찍었다고는 하지만 고작 10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대체 나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긴 한 건가 싶게 생각하는 바가 나와 너무 달랐다. 50쪽에 실린 빈센트와 케이에 대한 이야기는 심지어 세번을 다시 읽었다. 이걸 제정신으로 적은 게 맞아? 독자를 화나게 하는게 목적인가?


그래, 그게 목적이었다. 엉망진창인 고흐의 이런 면, 저런 삶을 보여준다. 은근슬쩍 옹호하기도 한다. 나를 열받게 한다. 그리고 그 타이밍에, 하필 그 순간에, 고흐가 자신의 비극-다소 자처한 면이 없지 않은-을 어떻게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승화시켰는지 이야기하며, 거기에 더해 고흐의 그림 한 점을 보란듯이 내민다. 부글부글 끓으려던 마음이 멈칫, 하더니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깨갱.


어찌 보면 내가 참 싫어하는 자기계발서 같기도 한데, 작가 본인이 고흐를 좋아하는 마음이 책 전체를 통해 풍겨나니 신기하게 거부감 없이 읽힌다. 매 장마다 실려있는 고흐의 다양한 그림들도 한 몫 한다. 책 초반에 울컥 하고 올라오던 감정도 어느 틈에 잠잠해졌다. 난 여전히 이래라 저래라 하는 책을 싫어하니까, 그래 결심했어! 나도 고흐처럼 살겠어! 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고흐의 삶을 좀더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이 흡족하다. 책 초반에 스스로 썼듯, 책은 읽는 이의 목적에 따라 효용이 달라지는 것이니까(p22), 이 책의 효용이 내게 그런 것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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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버스로 세계여행 - 꿈꾸는 방랑자와 초록색 차가 함께한 677일
넥서스BOOKS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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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의 나이에도 두려움이 있었다. 어쩌면 50년을 산 만큼 인간의 어두운 면을 잘 알아서일 지도 모르겠다. 사업체를 운영했다니 더더욱 그랬을 것이고. 그러나 놀라울 정도로 선할 수 있는 것이 또한 인간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마음을 열자 마을버스로 국한되었던 여행 동무가 전 세계인으로 확장되었다.


“비로소 나의 여행 영토가 넓어졌다.”

- p118, 본문 중에서


“스스로도 머쓱할 만큼 뜨거운 환영, 뜻밖의 격려. 그리고 기묘한 협력이 시작되었다”

- 요삼 작가, 에뜨랑제 7권 중에서


여행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무려 20년 동안 놓지 않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꿈 뒤로 남겨질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한 책임을 다하는 태도가 몹시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계획하고 준비했음에도 끊임없이 어그러지는 일정과 각종 사건들은 더 인상적이었고, 그 속에서 택씨와 그 일행을 도우시는 신의 섭리가 계속해서 드러났다. 평탄한 여행길이었다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때로 목숨이 위태로웠고, 때로 건강을 해치기도 했다. 책에 언급된 바는 거의 없지만 고단한 여행길에 일행끼리의 갈등도 제법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을 믿고 의지하며, 사람을 향해 베푼 것들이 도로 큰 도움이 되어 돌아오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모습에 또 다른 사람들이 용기를 얻었다.


이 책에는 여행지와 관련된 정보는 별로 없다. 가성비 좋은 숙소도, 현지인만 아는 숨은 맛집도 없다. 그대신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들이 나온다. 대개의 여행 책자는 여행지 이야기가 중심이다. 하지만 이 책의 중심은 사람, 오직 사람이다.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 여행은 시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은 여행기가 아니라, 인간기(人間記)이다. 한 사람이 모두의 도움으로 꿈을 이뤄가는 도전 기록이고, 그 이야기로 또다른 도전을 독려하는 권면가(勸勉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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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활동이 좋다면 이런 직업! 이런 직업 어때? 4
캐런 브라운 지음, 로베르토 블레파리 그림, 엄혜숙 옮김 / 한솔수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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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소식을 접하는 순간 이 책은 우리 집에 와야 한다, 고 생각 했다. 내 아들이 어떤 놈인가. 훌륭한 집순이로서 코로나 격리 기간 내내 마당에조차 나가지 않고도 행복했던 나와는 달리 반나절도 가만히 못 있고 온갖 짜증과 우울감을 드러내는 아웃도어 파다. 힘들어 죽네 어쩌네 하면서도 막상 산에다 떨궈놓으면 내가 자연인이다 하며 어느 틈에 저 산을 뛰어오르고 있다. 어쩌다 이런 애가 나한테서 태어났나 싶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이렇다 보니 가만히 책상 앞에 앉아 하는 일은 진작 곤란하지 않을까 하던 참이긴 했는데, 이놈이 커서 뭐가 되려나 생각해도 막상 떠오르는 게 없다. 다들 안 그래요? 나만 그래?


그래서 (출판사에서) 준비했습니다. 짜잔~!


이 책은 야외 활동을 좋아하는 어린이들에게 무려 45가지의 직업을 소개해 주는데, 선명한 색채의 삽화와 함께 직업의 특징, 하루 일과, 그 직업이 가지는 장점과 단점 등을 가감 없이 알려준다. 어떤 직업이 있나 알아가는 재미도 있고, 그 직업을 갖기 위해 필요한 것들도 제법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캠핑장 관리자! 이런 직업군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 이 직업의 장점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의 즐거움, 단점은 진상 고객을 만났을 때의 분노다. 큭큭. 식물학자와 캠핑장 관리자가 다 되어보는 것도 좋겠다. 돈도 벌고 채집과 연구도 하고, 비수기에는 훌쩍 떠나기도 좋고. 그러려면 먼저 돈을 벌어야 하나? 헛, 어른의 고민이란. 어쨌든 캠핑장 관리자는 고객 관리를 위해 컴퓨터를 배워야 한다. 컴퓨터를 배우려면 영어를 알아야 한다. 그럼 영어 공부를 해야지. 이리 와라, 공부하기 싫다는 꼬맹이 놈!


그나저나 같은 아웃도어 파라도 성향과 성격에 따라 어울리는 직업이 천차만별일 텐데, 이렇게나 직업군이 다양하다면 대체 어떡하라는 거지? 그럴 땐 책 제일 뒤쪽에서 한 장 앞으로 가면 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직접 해보면 됩니다) 무엇을 잘 하는지, 내 성격은 어느 쪽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고 그에 따른 결과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도록 정리해두었다. 어디 보자- 계획을 세우는 것(만)을 좋아하는 나는 건설 관리자, 삼림 감독관, 수색 구조 조정관이 좋겠구나. 하지만 난 집순이라서 그런 직업을 갖지 않았다. 나는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일을 하고, 지금도 가만히 앉아서 이러고 있다. (어쩌라는 거지)






어차피 아직 열 살, 게다가 요즘은 평생 직업 시대도 아니다. 그러기엔 너무 오래 산다. 지금은 아웃도어 파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훌륭한 집돌이가 될지도 모른다. 그럴 땐 이 시리즈의 다른 책을 찾아봐도 좋겠다. 나도 이 책을 보자마자 다른 책도 있을 거라며 열심히 검색해 봤는데, 현재까지 총 3권의 책이 더 있었다. (동물이 좋다면, 스포츠가 좋다면, 우주가 좋다면) 앞으로 채소가 좋다면, 사람이 좋다면, 엉뚱한 짓이 좋다면 등등도 나왔으면 좋겠다. 소올직히, 애랑 상관없이 시리즈를 전부 모으고 싶다는 게 본심이다.


아 참, 책을 다 읽은 아이에게 마음에 드는 직업이 있냐고 물었더니 “아니, 난 경찰할 건데?” 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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