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파편화되어 살아가는 현대 도시인들의 삶은 몇 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째, 효율성이 중요한 가치가 되어 기능적으로 불필요하고 비생산적으로 여겨지는 질병, 노화, 고통, 죽음과 같은 현상들을 배제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둘째, 가족 간의 유대감과 부양에 대한 책임감이 약화되면서 이제 늙거나 병들어 쇠약해지면 병원, 요양원 등의 의료기관으로 옮겨지고 죽음도 그곳에서 맞게 된다. 셋째, 이렇게 죽음은 개인적인 사건으로 축소되고 사회공동체 차원에서 죽음의 의미를 숙고하고 공유하는 노력도 찾아볼 수 없게 된다. -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5235 - P64
엘리아스가 말하는 현대인의‘고독한 죽음’이란 죽어가는 이가 느끼는 외로움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이 고독은 그의 죽음이 타인에게 아무런 의미도 되지 못하는 허무함과 안타까움을 의미한다. 현대인이 체험하는 타인의 죽음이란 자신의 삶과 상관없이 세상에서 늘 일어나고 있는 하나의 무의미한 사건이 되어버렸다. 이는 과거와 달리 공동체적 죽음의 경험을 갖지 못한 현대인의 특징으로 죽음의‘범속화Banalisierung’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5235 - P66
‘범속凡俗’이란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이 아닌 평범하고 속된 것을 뜻한다. 그런 어원에서 볼 때 죽음의 범속화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타인의 죽음이 내게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하고 그 내용이 텅 비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우리의 무관심이 만든 범속화된 죽음 안에는 진부함, 무의미함, 무관심성, 세속성 등 허무함의 특징들만 남게 된다. -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5235 - P66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죽음의 공포를 다루는 방식은 개인 차원에서는 철저히 망각하는 것이고 사회적으로는 일상으로부터 배제하는 억압의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5235 - P67
과거에는 심장박동이나 호흡 중 하나만 멈추어도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이런 상태가 되면 뇌로 산소와 혈액이 공급되지 못해 뇌 기능의 정지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연적인 상황에서 뇌 기능의 정지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 -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5235 - P78
하지만 의학기술의 발전은 뇌 손상으로 호흡이 멈추더라도 기계호흡장치를 통해 산소를 불어넣어 심장이 계속 뛰도록 만들수 있게 되었다. 뇌 기능은 정지했는데도 심장은 뛰고 있는 상태, 즉 살아 있는 것도 죽어 있는 것도 아닌 상태가 탄생했다. 바로‘뇌사’가 등장한 것이다. 기계호흡장치, 인공영양, 승압제 등의 여러 연명의료들은 뇌사 외에도 식물인간과 같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걸쳐 있는 다양한 의학적 상태를 만들어 내고 있다. -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5235 - P79
의학적으로 인간의 죽음은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하나는 의식과 자의식 능력의 완전한 소멸이고, 다른 하나는 중추신경계에서 조절하는 신체기능의 상실이다. -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5235 - P79
뇌사와 식물인간 상태는 모두 자의식을 상실한 상태지만, 뇌사는 신경중추의 조절 기능까지 상실되어 죽음과 동일한 상태로 인정되는 반면 지속식물인간 상태는 신경중추의 기능이 일부 남아 있어서 죽음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5235 - P80
연명의료 결정법에서는 임종 과정을‘회생의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아니하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에 임박한 의학적 상태’라고 정의한다. -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5235 - P80
집착에 빠진 의학은 환자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상태에 다다를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는다.‘최종적이며 불가역적’이란 말은 의학이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소진해 버리고 완전히 무력해지는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한다. 이 상태에 도달하게 되면 환자의 삶의 질과 존엄은 산산이 파괴당하게 된다. -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5235 - P82
마치 종교에서 신의 계율처럼 상황에 관계없이 일관되게 적용되고 고수하는 원칙을‘도그마dogma’라고 부른다. -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5235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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