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루야말로 삶이 우리에게 준 미끼인지도 모른다. 한번 물리면 어디까지라도 따라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미끼…… 그러나 눈부신 미끼, ‘최후의 유혹’인 희망이란 옷을 눈부시게 펄럭이는.
-알라딘 eBook <꽃을 끌고> (강은교 지음) 중에서 - P19
사랑법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 있는 누워 있는 구름, 결코 잠 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알라딘 eBook <꽃을 끌고> (강은교 지음) 중에서 - P21
나타나는 순간 소멸하는 것, 현재인 순간에 과거이며 미래인 것, 꿈인 것, 희망–하나인 순간에 절망이며 다시 두울의–희망인 것, 영원이며 불멸인 것…… 그 외에도 무수한 반어들과 유사어들…… 그리고 추억.
-알라딘 eBook <꽃을 끌고> (강은교 지음) 중에서 - P24
나는 그녀를 보았다. 맨드라미빛 치마를 입고 허공을 걸어가는 그 여자를. 그 여자에게선 정오의 냄새가 났고, 그 냄새는 길 위에 서 있는 나에게도 풍겨 왔다. 나는 그 내음을 맡는다. 발레리나처럼 연립주택 옥상 빨랫줄 곁에서 출렁거리는 그 여자.
순간 그 여자는 무늬가 되었다. 하늘에 맨드라미빛 소리로 매달려 있는 그 여자. 하늘을 배경으로 마치 토시를 신은 발레리나처럼 연립주택 옥상을 걷는 그 여자.
우리는 모두 한때의 발레리나인가. 무대배경은 누추한, 어여쁜 삶의 모든 것.
가장 멀리, 그러므로 가장 가까이 펄럭이는 흩날림. 세상의 무늬가 되어 구름을 묶는 그 여자.
인류의 아기를 낳는 그 여자.
-알라딘 eBook <꽃을 끌고> (강은교 지음) 중에서 - P26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바람직한 상태란 진실로 말하자면 절망의 평면에 서 있을 때이며 가능한 성취란 이런 절망 속에서만 희망되어지는 것이다. 안주한다는 것은 결국 성취를 포기하는 것이며, 사소해지는 것이다. 절망과 성취의 동질성은 이런 차원에서 진실한 것이다. 즉 절망을 포기한다면 어떤 성취도 불가능하다. 성취를 꿈꾸기 위해선 절망해야 한다.
-알라딘 eBook <꽃을 끌고> (강은교 지음) 중에서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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