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미뜨리 표도로비치는 28세의 젊은 사내이며, 보통 키에 수려한 용모를 갖추고 있었으나 나이에 비해 상당히 늙어 보였다. 근육질의 사내로서 비록 그의 얼굴에는 뭔가 병적인 것이 엿보였지만 뛰어난 체력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은 여위었고 두 뺨은 움푹 꺼졌으며 안색에는 환자의 황달기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상당히 크고 검은 두 눈은 퉁방울처럼 튀어나와 있었고 대단한 고집을 가진 듯하지만 어딘지 초점이 흐려 있었다. 흥분하여 씩씩거리면서 말할 때조차 그의 시선은 자신의 심리 상태를 거역하고 있는 듯 무언가 당시 상황과는 전혀 맞지 않는 엉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란 무척 어렵습니다〉라고, 그와 이야기를 해본 사람들은 그를 평하곤 했다. 어딘가 모르게 생각에 골몰하고 있는 듯한 우울한 눈빛을 하고 있다가도, 재미있고 장난기 어린 생각에 빠져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갑자기 호탕하게 터뜨리는 그의 웃음소리에 사람들이 놀라는 일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의 얼굴에 서려 있는 약간의 병적인 기운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최근 우리 고장에서는 그가 몰입해 있던 너무나 불안정하고 〈방탕한〉 생활에 대해 모두가 잘 알고 있었고 소문이 자자했으며, 또한 골치 아픈 돈 문제 때문에 그가 아버지와 반목하는 매우 흥분된 상태에 놓여 있다는 사실도 익히 알려져 있었다. 읍내에는 이 일과 관련된 우스갯소리들이 나돌았다. 우리 고장의 뛰어난 재판관인 세묜 이바노비치 까찰니꼬프가 어느 모임에서 〈즉흥적이며 비정상적인 이성〉을 가진 인물이라고 주도면밀하게 평했듯이, 사실 그는 천성적으로 쉽게 발끈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단정하게 단추를 채운 프록코트 차림에 검은 장갑을 끼고 실크 모자를 손에 든 나무랄 데 없는 멋쟁이 복장을 하고서 들어왔다. 갓 퇴역한 군인들이 그렇듯 그는 콧수염만 남겨 둔 채 턱수염은 깎고 있었다.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상) |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이대우 저

리디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791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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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덩컨은 킬러를 마주 보고 앉았다.
창문 없는 먹구름색 방은 어색할 만큼 조용했다. 두 사람은 마치 음악은 시작되었는데 어떻게 춤을 시작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댄서 같았다. 스콧은 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교도소에서 지급되는 오렌지색 죄수복 차림의 킬러는 그냥 스콧을 말없이 응시할 뿐이었다. 스콧이 두 손을 모아 금속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수갑만 아니었으면 킬러 역시 그와 같은 포즈를 취했을 것이다. 파일에 의하면, 그의 이름은 몬티 스캔런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본명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알라딘 eBook <단 한 번의 시선>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중에서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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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once was lost, but now am found.’ Amazing Grace - P1

Billy Summers sits in the hotel lobby, waiting for his ride. It’s Friday noon. Although he’s reading a digest-sized comic book called Archie’s Pals ’n’ Gals, he’s thinking about Émile Zola, and Zola’s third novel, his breakthrough, Thérèse Raquin. He’s thinking it’s very much a young man’s book. He’s thinking that Zola was just beginning to mine what would turn out to be a deep and fabulous vein of ore. He’s thinking that Zola was – is – the nightmare version of Charles Dickens. He’s thinking that would make a good thesis for an essay. Not that he’s ever written one.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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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의 꿈을 꾸지 않는다. 허나 꿈을 꿀 때면, 땀에 흠뻑 젖고는 놀라서 깬다. 이럴 때는 곧장 다시금 잠을 청하지 않고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밤의 무방비한 마력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곤 한다. 어렸을 때나 젊었을 때는 길몽도 흉몽도 꾸지 않았으나, 나이가 들어서는 지난 퇴적층으로부터 굳게 다져진 공포가 계속해서 나를 휘감았다. 그 꿈은 내가 겪어봤을 법한 것보다 훨씬 비극적인, 더 잘 짜여진 구성을 하고 있기에 더욱 공포스럽다. 비명을 지르며 깨어난 그 꿈속의 일이 실제로 나에게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알라딘 eBook <도어> (서보 머그더 지음, 김보국 옮김) 중에서 - P6

에메렌츠를 죽인 것은 나였다. 그녀를 죽이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구원하고자 했다는 말도, 여기서는 그 사실 관계를 바꿀 수 없다.

-알라딘 eBook <도어> (서보 머그더 지음, 김보국 옮김) 중에서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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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가 1819년에 쓴 이 시집은 하피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수피 신비가 콰자 샴스웃딘 무함마드 하피스 에 시라지에게 영감을 받았다. 이 독일인 천재는 부실한 번역으로 고국에서 출간된 14세기 페르시아의 위대한 시인을 만나자 자신이 이책을 알게 된 것은 신의 뜻이라고 믿게 되었다. 괴테가 스스로를 하피스와 얼마나 동일시했던지 그의 목소리는 완전히달라져 400년 전 신의 영광과 포도주를 노래한 시인의 목소리와 어우러졌다. 하피스는 술 취한 성인이자 신비가이자 쾌락주의자였다. 그는 기도, 시, 알코올에 자신을 바쳤다. - P132

하피스는 페르시아 문학의 최고봉이 되었다. 괴테도 ‘서동시집’을 쓰면서 도움을 받았지만 그의 영감은 신에게서가 아니라 친구의 아내 마리아네 폰빌레머에게서 왔다. 그녀는 괴테 못지않게 열광적인 하피스의 추종자였다. 두 사람은 책을 함께 썼는데, 성적 묘사로 가득한 편지를 주고받으며 초고를 퇴고했다. 편지에서 괴테는 그녀의 젖꼭지를 깨물고 입에 사정하는 상상을 하며 그녀는 괴테와의 항문 성교를 꿈꾼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만난 것은 한 번뿐이며 그들이 판타지를 실현할 수 있었으리라는 증거는 전혀 없다. 마리아네는 시집속 하템의 연인 줄라이카의 목소리로 동풍에게 바치는 노래를 지었지만, 죽기 전날 밤까지 이 사실을 비밀에 부쳤다. 이구절을 하이젠베르크는 고열로 오들오들 떨며 큰 소리로 낭송했다. 하늘을 길들일 색깔은 어디 있는가? / 잿빛 안개가 내 눈을 멀게 한다. / 더 볼수록 덜 보인다. - P134

1925년 9월 하이젠베르크는 『물리학 시보』 제33호에 「운동학적·역학적 관계에 대한 양자이론적 재해석에 대하여」를발표했다. 양자역학을 최초로 정식화한 논문이었다. - P141

두 달 뒤 루이 드 브로이는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길이 남길 개념들을 발표했다. 이 개념들이 실린 그의 박사 논문 제목은 참으로 소박하게도 양자 이론에 대한 연구였다. 그는어안이 벙벙한 대학 심사위원회 앞에서 논문 심사를 받았는데, 그들을 잠들게 할 만큼 단조로운 어조로 발표를 마친 뒤방에서 나갔다. 그는 학위를 받게 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심사위원들이 그의 발표를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P150

슈뢰딩거는 빈대학교에서 이따금 수업을 가르치며 변변찮은 급여로 먹고살았다. 나머지 시간에는 할일이 전혀 없었다.
그는 쇼펜하우어의 책을 탐독했으며 그를 통해 베단타 철학을 알게 되었다. 광장에서 갈기갈기 찢긴 말의 겁에 질린 눈이 그 말의 죽음을 애도하는 경찰관의 눈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날고기를 물어뜯는 이빨이 언덕 목초지에서 풀을 뜯던 이빨과 같다는 사실을, 여인들이 제 손으로 말의 가슴에서거대한 심장을 끄집어낼 때 얼굴에 튄 피는 그들 자신의 피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개별적 현현은 세계의 모든 현상 이면에 있는 절대적 실재인 브라흐마의 반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P160

슈뢰딩거가 옆에 앉자 헤어비히 양은 손에 들고 있던 책을 펼쳐 다음 구절을 읽었다.
"탄생과 죽음의 환각 속에서 바다 위 파도처럼 한 유령에 이어또 한 유령이 나타난다. 생명의 과정에는 물질적 형태와 정신적 형태의 명멸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으나 그럼에도 불가사의한 현실은 여전하다. 모든 피조물 속에는 숨겨진 미지의 무한한 지성이 잠자고 있으나 이것은 깨어나 감각적 정신의 무상한 그물을 찢고 육신의 번데기를 부숴 시간과 공간을 정복할 운명이다."
슈뢰딩거는 이것이 오랫동안 자신의생각을 사로잡은 것과 같은 개념임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작년 겨울 한 작가가 40년간 일본에서 살며 불교로 개종한에 이 진료소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그가 자신에게 아시아철학을 처음으로 가르쳐주었다고 말했다. - P178

드 브로이는 파동 함수를 존재의 확률 밀도로 번역했다.
이것이야말로 슈뢰딩거의 역학이 보여준 모든 것이었다. 흐릿한 이미지, 희미한 존재, 확산하고 막연한 것. 이 세상 것이 아닌 무언가의 모호한 윤곽. 하지만 이 관점과 하이젠베르크자신의 관점을 한꺼번에 고려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결과는 터무니없고 매혹적이었다. 전자는 주어진 점에 구속되는 입자인 동시에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확산하는 파동이었다. - P206

그가 보어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보는 즉시이것을 지금의 논의와 연결 지었다. 전자가 어디에 있고 어떻게 움직이는가와 같은 기본적인 것을 한꺼번에 알 수 없다면우리는 전자가 두 점 사이에서 어떤 경로를 따를지도 정확히예측할 수 없으며 가능한 여러 경로만을 예측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슈뢰딩거 방정식의 기발한 점이었다.
입자의 무한한 운명, 모든 상태, 모든 궤적을 파동함수라는 하나의 체계로 엮어 모든 것을 겹친 채로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 P219

하이젠베르크가 설명했다.
"우리 시대의 과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객관적이고 초연한 관찰자로서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벌어지는 게임의 행위자로서의 우리가 자연과 맺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과학은 이제 실재를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대면할 수 없습니다. 세계를 분석하고 설명하고 분류하는 방법은 스스로의 한계를 맞닥뜨렸습니다. 이것은 개입이 탐구 대상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에서 비롯합니다. 과학이 세상에 비추는 빛은 우리가 바라보는 실재의 모습을 바꿀 뿐 아니라 그 기본적 구성 요소의 행동까지도 바꿉니다."
과학적 방법과 과학의 대상은 더는 분리될 수 없다. - P225

슈뢰딩거도 양자역학을 혐오하게 되었다. 그는 정교한 사고 실험(게당켄엑스페리멘트)을 고안하여 불가능해 보이는 생물을 탄생시켰다. 그것은 살아 있는 동시에 죽은 고양이였다. 그의 취지는 이런 사고방식이 얼마나 터무니없는가를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코펜하겐 해석의 옹호자들은 슈뢰딩거에게 그의 말이 전적으로 옳다고, 사고 실험의 결론은 터무니없을 뿐 아니라 역설적이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참이라고 말했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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