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4세기 로마의 가장 큰 문제는 훈족의 침입이었다. 4세기에는 전 세계적으로 민족 이동이 있었는데, 특히 동아시아 유목민족인 훈족은 만리장성을 통해 서쪽으로 이동하며 고트족Goths을 압박해왔고 이에 서고트족의 족장은 발렌스에게 서신으로 트라키아Thracia로 이주해줄 것을 청원한다. (205/3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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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효과 Spotlight effect

착각은 인간의 본능이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조명 효과spotlight effect라고 하는데, 우리는 항상 스스로가 다른 사람보다도 잘하고 다른 사람이 이러한 나에 대해 실제 이상으로 관심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이는 분명 고대에도 다르지 않았다. 로마의 황제들도 나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오로지 디오클레티아누스만 처음으로 자신을 현실적으로 봤다. 황제가 처한 현실을 냉철히 보고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183-184/3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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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us, New Republic

형식적으로 로마는 여전히 공화국이었고 왕도 황제도 아닌 아우구스투스만이 존재했다. 그러나 사실상 로마는 이제 황제가 통치하는 제국이었다. 이때부터 로마에는 다이너스티dynasty, 즉 왕조가 생기기 시작한다.(149/3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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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격변: 술라, 1차 삼두정치, 카이사르, 2차 삼두정치, 옥타비아누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로마에서는 또 한 번의 정치적 내란이 생긴다. 카이사르의 양자, 훗날 아우구스투스Augustus로 칭송되는 옥타비아누스Octavianus(재위 BC 27~AD 14)는 안토니우스Marcus Antonius, 그리고 레피두스Marcus Aemilius Lepidus와 2차 삼두정치를 체결한다. 이는 1차 삼두정치와 달리 공인된 형태였다.
특히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는 후계자 자리를 놓고 권력 싸움의 경쟁자가 되었는데, 이후 안토니우스는 이집트로 가서 클레오파트라와 결혼하고, 옥타비아누스가 악티움Actium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기원전 27년 로마의 정권은 옥타비아누스의 차지가 된다. (148/3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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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케로의 명연설

카틸리나여, 그대는 우리의 인내력을 얼마나 시험할 것인가? 우리를 조롱하는 그대의 광기는 얼마나 더 오래 갈 것인가? 그대의 방종한 뻔뻔스러움은 언제 끝날 것인가?
Quo usque tandem abutere, Catilina, patientia nostra? Quam diu etiam furor iste tuus nos eludet? quem ad finem sese effrenata jactabit audacia?
(143-144/3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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