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데이터를 자본이라고 보는 관점은 데이터를 혁신을 위한 자원의 일부로 여긴다. 데이터는 소비자들의 소비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생겨난 흔적이며, 따라서 데이터 공급은 지금처럼 무상free으로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상으로 더 많은 데이터 공급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은 기업의 혁신과도 연결되어 있다. 저렴한 데이터가 공급되어야 GAFA 기업이 혁신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리고 그 혁신의 혜택은 궁극적으로 소비자들에게 돌아간다. 플랫폼 기업이 더 똑똑해지면 소비자들은 더 좋은 서비스를 더 저렴하게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7899 - P82

설령, 당신이 네이버쇼핑이나 블로그에 단 한 번도 글을 써본 적이 없더라도, 당신은 이미 데이터를 생산하고 있는 ‘데이터 노동자’다. 당신이 구글과 네이버에 입력했던 검색어들이나, 흥미로운 기사를 클릭했던 흔적들은 또 다른 형태의 데이터들이기 때문이다. 플랫폼 기업은 사람들의 검색내역을 모아 대중의 관심사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트렌드 분석이나 미래예측에 활용한다. 이른바, 빅데이터Big Data 분석이다. 당신이 만든 빅데이터는 사소해 보이지만 매우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7899 - P82

그러나 플랫폼 기업에 데이터를 제공하는 행위는 아직 노동행위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구글맵에 리뷰를 남기는 일, 배달의 민족에 별점을 매기는 일,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작성하는 일 등은 내가 즐기기 위해서 자율적으로 하는 취미활동일 뿐이지 직업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데이터 노동은 분명 새로운 생산양식의 특성을 갖추고 있지만,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낡은 제도로는 데이터 노동을 노동으로 포섭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7899 - P83

네이버와 구글 등의 데이터 수요자는 매우 거대한 수요독점monopsony 기업인 반면, 데이터 공급자들은 노동자로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8 -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7899 - P84

데이터 노동조합data union’을 만들 수도 있다.9 데이터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통해 좀 더 높은 임금을 기업에 요구할 수도 있다. 또한 데이터 노동조합은 소수의 플랫폼 기업이 데이터를 독점하는 것도 막는다. 개인들은 어떤 회사에 데이터를 제공할지에 대한 협상력이 없지만, 데이터 노동조합은 카카오와 네이버 중 어디에 조합원의 데이터를 공급할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7899 - P85

그런데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이 등장하면서 데이터의 가치는 완전히 달라졌다. 머신러닝은 대량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스스로 학습하는 알고리즘이다. 데이터를 입력하면 기계 스스로가 데이터를 학습하고 판단 능력을 정교화한다. -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7899 - P86

이것이 바로 오늘날 네트워크 기업들이 데이터 확보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11 GAFA 기업들은 데이터 우위를 바탕으로 자사의 인공지능을 효과적으로 훈련시키고, 결과적으로는 경쟁에서 우위에 선다. 독점력이 클수록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더 많은 양의 데이터는 또다시 독점을 강화하는 선순환 고리로 작동한다.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데이터’라는 무기를 통해 승자에게 유리한 승자독식의 세계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7899 - P88

이처럼 네트워크에 연결된 대중을 미국의 사회운동가 제러미 하이먼즈Jeremy Heimans는 ‘뉴파워’라고 일컫는다.15 연결 그 자체에서 만들어지는 권력을 뜻한다.
뉴파워는 플랫폼 위에서 탄생했다. 고대 그리스에는 ‘아고라’라는 플랫폼이 있어서 광장 민주주의가 가능했다면, 오늘날에 모든 대중은 ‘인터넷’이라는 플랫폼에 연결되어 있다. -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7899 - P92

따라서 뉴파워는 항상 선善한 방향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연결 그 자체는 가짜뉴스에 취약하며,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자극적인 뉴스에 민감하다. 특정 인플루언서가 자신의 유명세를 바탕으로 저품질의 상품을 판매하여 이득을 챙기거나, 고의로 대중을 선동하는 사건이 종종 일어나는데, 이들은 모두 뉴파워를 특정 개인의 이해관계에 사용했기 때문이다. -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7899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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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소모되는 전기에너지는 엄청난 수준이다. 비트코인 거래 한 번을 위해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이산화탄소는 300㎏이며, 이는 비자카드를 한 번 긁는 것보다 75만 배 많은 양이다.20 -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7899 - P57

왜 블록체인 시스템은 블록을 연결하는 작업을 비생산적이고 낭비적인 ‘숫자 끼워 맞추기’로 만들었을까? 이에는 합리적 이유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블록체인은 블록연결 작업을 통해 장부조작 여부를 발견한다. 숫자 끼워 맞추기 작업을 통해 가짜 거래기록을 밝혀내고, 진짜 거래 기록만 남게 된다. -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7899 - P57

일시적으로는 참True과 거짓False이 병존할 수 있지만, 블록체인에서는 결국 다수가 믿고 있는 기록이 ‘참’이 된다. 이것이 블록 간의 연결 작업을 단순한 숫자 끼워 맞추기로 만들어 둔 이유다. 다수가 작업하고 있는 블록의 행렬이 무엇인지를 가려내는 과정인 것이다. 즉, 블록체인은 ‘계산 효율성’을 포기한 대신, ‘신뢰’를 택했다.22 -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7899 - P59

그러나 비트코인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기술적으로 완벽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신뢰’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24 기술적으로는 복잡하더라도 신뢰를 강제하는 기술에 사람들이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블록체인은 일종의 ‘신뢰기계the Trust Machine’다.25 블록체인 시스템에서는 거짓말을 하면 항상 손해를 보게 되어 있다. 이는 미래가 예측 가능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블록체인은 신뢰를 만들어내는 도구이며, 불확실성을 확실성으로 대체하는 기계다. -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7899 - P60

블록체인은 단순 반복적인 거래가 많이 일어나는 곳에서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거래구조가 복잡하면 블록체인이 주석을 달고 추적을 하는 과정이 매우 번거로워지기 때문이다.26 따라서 농업, 물류, 수송 등 단순 반복적이지만 거래량이 많은 ‘공급망supply chain’ 관리 분야에서 유용하게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수정이 불가능하다는 블록체인의 특징은 농산물 원산지 관리, 식품의 안전성 증명, 공중보건 영역에서 중요한 가치를 가질 것이다. -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7899 - P61

블록체인은 ‘사회적 확장성’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진화해 나갈 것이다. 중개기관을 대체할 수 있다는 뚜렷한 장점 때문이다. 스마트 계약28, 하이퍼레저 패브릭29 등은 블록체인이 그 활용성을 점차 넓혀가고 있음을 보여준다.30 언젠가 블록체인은 애플리케이션을 넘어 오늘날의 윈도우 OS와 같이 모든 컴퓨터에 깔려 있는 기본 인프라 기술이 될지도 모른다. 블록체인이 플랫폼이 되는 ‘서비스로서의 블록체인BaaS: Blockchain-as-a-Service’이다.31 -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7899 - P62

알바의 일종인 비정규직 프리랜서 노동이 확산하는 현상을 ‘긱 이코노미gig-economy’라고 일컫는다. 앞으로는 정규직 없이도 생계를 유지하는 데에 문제가 없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7899 - P62

무형의 서비스인 컴퓨팅 파워도 공유된다. 온라인 쇼핑회사인 아마존은 컴퓨팅 파워를 공유하는 대표적 기업이다. 아마존은 블랙프라이데이, 크리스마스와 같이 쇼핑 수요가 몰리는 시즌에 대비하여 대용량의 서버를 구축해 두었다. 사람들의 수요가 몰리더라도 원활히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쇼핑 수요가 낮은 평상시에는 서버를 100퍼센트 가동하지 않고 IT 업체들에 대여하고 있다. 이 아마존웹서비스AWS는 아마존에서 가장 큰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부문이다. -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7899 - P63

정치는 데이터를 처리하는 시스템과 같다.1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그 데이터를 처리하여 공공의 해결책을 내놓는 것이 정치다. 데이터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자는 권력을 획득한다. 대중들의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적합한 정책을 제시하는 사람은 더 많은 대중의 지지를 받는다. 정치 경쟁을 정보 처리의 관점에서 보면, 누가 데이터를 더욱 빠르게 수집하고 정확하게 처리하는지를 둘러싼 싸움이다. -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7899 - P66

민주주의는 참여와 토론을 통해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고, 틀릴 확률을 획기적으로 낮춘 시스템이다. 컴퓨터공학에서 "보는 눈이 많으면 프로그램의 오류를 쉽게 찾아낼 수 있다."라는 ‘리누스의 법칙Linus’ Law’을 정치체제로 구현한 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7899 - P67

시스템이 투명해지고,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해지면서 민주주의라는 참여형 데이터 처리 방식은 느린 속도라는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7899 - P68

공공서비스는 이제 더 이상 정부만의 영역이 아니다. 우리가 자주 이용하는 지하철 9호선, 인천대교, 신분당선은 민간기업에 의해 건설된 대표적 인프라다. 정부가 민간과 협력하는 민관협력 파트너십(PPP, Public-Private Partnership)이라는 방법으로 건설된 것이다. -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7899 - P69

경제 권력은 자본파업의 가능성을 통해 힘을 휘두른다. 노동자의 본래 역할이 상품을 생산하는 것이라면, 자본은 노동자가 일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고, 노동자들을 조직화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즉, 투자하여 공장을 짓고 이윤을 내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자본가들이 공장을 짓지 않는다면, 이를 ‘자본파업’이라 한다. 기업가들이 기존 생산설비를 해외로 이전하는 것도 일종의 자본파업이다.
기업들이 해외로 공장을 이전시키는 오프쇼어링offshoring은 자본파업의 전형이다. -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7899 - P72

자본파업은 일자리만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다. 자본파업이 발생하면 양극화가 더욱 심해진다. 전통적 제조업의 일자리는 해외로 나가버리는 대신, 그 기업이 빠져나간 빈자리에는 바이오, 게임 등과 같은 신新산업 분야의 일자리가 생겨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고학력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만들고, 저학력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없애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즉, 자본파업은 현 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자리 감소와 소득 양극화라는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가져온다. -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7899 - P74

사람들은 한번 적응한 제도를 바꾸는 것에 피로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움직이던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는 관성을 지니고 있듯이, 법과 제도도 사람들에게 적응되면 현상을 유지하려는 관성을 지닌다. 이를 제도의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e’이라고 한다. -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7899 - P74

경제 권력에 유리한 제도가 형성되는 현상은 국제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세계 각국도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러 나라가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ISD 등은 친기업적 제도가 국제적으로 형성된 예다. 자본의 논리로 국제적 법정을 만들어 민주국가를 심판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5 -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7899 - P75

기업이 우리의 일상을 관찰하는 오늘날 자본주의 모습을 ‘감시자본주의surveillance capitalism’라고도 일컫는다. 감시자본주의란 우리의 일상 행동에서 데이터를 추출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의 자본주의다. 구글과 카카오가 우리의 검색기록을 활용하여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감시자본주의의 전형이다. 우리는 인터넷 공간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항상 흔적을 남긴다. 감시자본주의의 기업들은 이러한 흔적(행동잉여, behavioral surplus)들을 수집하여 데이터를 얻고, 이 데이터를 분석하여 타깃 광고, 가격차별, 맞춤형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 -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7899 - P78

이처럼 개인정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 사이에 괴리가 존재하는 현상을 ‘프라이버시 역설privacy paradox’이라고 한다. 프라이버시의 역설이 존재하기 때문에 네트워크 기업들은 우리의 개인정보를 손쉽게 얻고 있는 것이다. -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7899 - P79

그러나 우리가 자발적으로 콘텐츠와 데이터를 업로드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네트워크 기업의 부를 창출하는 행위가 된다. 사용자들이 많고, 더 많은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그 네트워크의 가치가 커지기 때문이다. 즉, 온라인 세계에서 나의 소비행위는 순수한 취미나 단순한 소비가 아니다. 이는 소비행위인 동시에 네트워크라는 참여농장에서 일하는 생산행위이기도 하다. - <플랫폼 경제와 공짜 점심>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07899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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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부장은 내 첫 책(마지막 책이기도 한)을 낸 만화 출판사 영업부장이었다.

잡지만화 시절 실시된 마지막 공모전. 거기서 우수상을 수상하며 나는 만화가가 됐다. 담당 편집자는 첫 대면에 내 만화가 절대 잘 팔릴 만한 내용이 아니라고 선언하듯 말했다. 그는 예방주사라 했지만, 내겐 군대 고참이 부리는 텃세로 느껴졌다. 오히려 내 만화에 관심을 갖고 잘 팔아보겠다고 한 건 영업을 담당한 김 부장이었다. 말년 병장이 갓 들어온 이등병에게 격의 없이 대하듯 그는 정말 친절했다. 담당 편집자 예상대로 잘 안 팔려 찬밥이 된 내 만화책을 좋아해주고, 어떻게든 팔아보려 노력한 그야말로 나의 유일한 우군이었다. - <망원동 브라더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5344491 - P19

제법 시원하네, 만족하던 찰나 양심이 간질거려 일어선다. 문을 열고 선풍기를 정확히 문과 마루 사이에 놓고 회전 모드로 작동을 시키자, 바람이 김 부장의 러닝셔츠를 흔든다. 선풍기는 일정하게 고개를 돌리며 방으로도 바람을 밀어넣는다. - <망원동 브라더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5344491 - P22

방으로 들어와 눕는다. 아까만큼 시원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밤을 날 수 있을 듯하다. 그때 귓가에 들리는 소름끼치는 윙윙 소리. 아이 씨……발! 선풍기 바람을 타고 모기들이 침공한다. 방의 창에는 방충망이 있지만 마루와 부엌 창엔 방충망이 없다. 그렇다고 문을 닫을 수도 없는 노릇. 왜 나는 에프 킬라가 떨어져도 새로 살 생각을 안 하는가? 식료품 살 돈도 빠듯해 생필품은 늘 뒷전이 되는 것이다. 순간 목덜미가 가렵다. 어느새 모기들이 흡입을 시작한 모양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문을 닫고 바람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문을 열어둔 채 선풍기 바람을 맞는 대신 모기에게 뜯길 것인가.

결국 나는 1. 불을 켜고, 2. 선풍기를 김 부장에게 고정하고, 3. 방문을 닫고, 4. 눈에 불을 켜고 박수 쳐가며 방 안 모기를 다 잡아 죽인 뒤, 5. 불을 끄고 잠을 청했다.

더위에 쪄 죽더라도 모기는 질색이다. 김 부장 취향은 모르지만 그는 바람을 얻었고 모기에겐 노출됐다. 무릇 인생이란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 나는 공평한 내 처사에 스스로에게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뒤이어 밀린 잠이 스멀스멀 올라와 더위도 잊을 즈음, 마루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젠장, 김 부장의 코골이가 시작됐다. 모기가 코의 알람이라도 건드렸나보다. 그렇게 코골이 대마왕 김 부장의 공습으로 인해 나는 좀처럼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역시 삶은 공평하지 않다. - <망원동 브라더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5344491 - P23

자기 개발서를 읽는 건 자기를 주도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냥 읽고 있으면 면죄부가 생기는 느낌. 자본주의 사회의 성경이 바로 이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자기 개발서대로 살진 않는다. 그건 성경 말씀대로 살진 않지만 천국에 간다고 믿으며 성경을 읽는 사람들의 심리와 비슷한 거다. - <망원동 브라더스>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5344491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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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예술은 서로 닮았다.
경제적 쓸모의 관점에서 보자면 여행은 예술만큼이나 쓸모없는 행위이다. 현실감각을 상실한다는 것에서 그 둘은 닮았다. 여행과 예술탐닉은 서로의 동반자이다.
로베르트 무질 Robert Musil 이 말했듯이사람들이 현실감각을 얻으면 꿈을 잃는다. 여행은 현실감각으로비추어보면 미친 짓이다. 현실감각에 의존한다면, 여행은 하지 않는 것이 현실적이다.
현실감각을 얻은 대가로 꿈을 잃어버린 사람은 "더이상 나무 아래서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 사이로 하늘을보지 않으며, 오로지 일을 만들어내기만 한다. 유능해지기 위해서는 굶주리거나 꿈을 꾸어선 안 되고, 스테이크를 먹고 움직여야 한다.
여행의 이미지를 이처럼 선명하게 잘 보여주는 문장이 또 있을까?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나무 아래서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 사이로 하늘을 보는 것", 나는 발가락 사이로 하늘을 보고 싶었다.
이 책은 발가락 사이로 보았던 하늘에 대한 기록이다. 나는여행에서 인류의 보편언어인 예술을 만났고, 그 보편언어를 내가태어나고 자란 한국어라는 모국어로 옮겨놓는 번역자이다. - P31

여행짐을 꾸릴 때 ‘현장 독서용 책을 선정하는 일은 하나의 즐거운 고민이었다. 즐거운 고민의 시간이 지나면 나의 여행가방엔 어느새 ‘현장 독서‘를 위한 책이 들어 있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를 들고 파리에 갔고,
페소아의 『불안의 서』는 리스본에서 읽었고,
파묵의 『이스탄불』 은 역시 이스탄불을 접할때 이해하기 쉬웠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읽지 않았다면 그 도시는 그저 서유럽에 대한 콤플렉스를 낳은 도시로만 이해됐을 것이다.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나는 고골의 『외투』 도 읽지 않았을 것이다.
빈에 갈 때는 당연히 엘리아스의 『모차르트』을 들고 갔고,
엘리아스의 『궁정사회』를 읽고 나서 베르사유에 가니 대중관광 안내서에는 없는 베르사유가 보였다.
파리에서 읽으면 보들레르와 오웰의 작품은 다르게 느껴졌다.
그책들을 그 도시의 어느 카페나 공원에서 혹은 비행기를 기다리는 공항에서 읽었다. - P33

목적하는 도시에 가면 그 도시가 품고 있는 인류 보편언어의 전당에 갔다.
마드리드엔 ‘프라도’ muso del prado와 ‘티센 보르네미사미술관‘ Thyssen-Bornemisza Museum이 있어서 좋았고,
아부다비에는 ‘루부르 아부다비‘ Louvre Abu Dhabi가,
파리에는 ‘루브르 Louvre ‘오르세‘ Musée d‘Orsay ‘퐁피두 센터‘ Centre Pompidou와 ‘오랑주리‘ Orangorie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에르미타주‘ Hermitage Museum 와 ‘러시아 미술관’Russian Museum 이,
베네치아에 ‘아카데미아‘ Gallerie dell’ Accademia 가,
피렌체엔 ‘우피치‘ Uffizi가,
모스크바에는 ‘트레티아코프’ The State TretyakovGallery가,
빈에는 ‘미술사박물관‘ Kunsthistorisches Museum Wien과 ‘레오폴트 미술관‘ Leopold Museum이 있어서 좋았다.
어떤 도시는 예술의 성소보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풍경에서 더 많은 것을 깨달았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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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국적을, 내가 속한 인종집단을 그저 ‘우연‘이라 생각하니처음으로 한국 이외의 장소에서 편안함을 만끽할 수 있었다. 우연히 다시 집어든 프란츠 파농Frantz Fanon 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서 다음 구절을 발견했다. "백인만의 세계란 없다. 백인만의 윤리도 없다. 백인만의 지성이라는 것은 더더욱 없다. 세상 어디에나늘 무언가를 모색하는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다. 나는 역사의 포로가 아니다. 나는 그곳에서 내 운명의 의미를 찾고 싶진 않다. 나는항상 다짐한다. 진정한 도약이란 늘 뭔가 새로운 것으로 진부한 존재를 채워나가는 것이라고, 내가 순례하는 세계에서 나는 내 자신을 무한히 창조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나도 존재의 한 부분이다.
내가 그것을 넘어설 수 있다는 한에서."3 내가 유학을 떠났던 그 나이 무렵에 파농이 쓴 이 구절은 중년이 되어 다시 순례를 시작한나에게 한 지침이 되었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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