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동안 때로는 눈부시게 명랑한 순우리말이, 시리고 아릿한 순우리말이 우리의 마음에 환한 불을 밝히려고 할 것이다. 저자는 우리들의 오롯한 세계가 열리기 시작하기를 바란다. 다정하게 안녕을 묻는 말들이 여기, 읽는 사람을 가만가만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사랑해 왔던 단어들이, 우리가 앞으로 사랑하게 될 단어들이 사람들의 세계를 활짝 열어 주려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겠다. 아무도 모르게 나만의 단어를 응얼거려본다. 오늘도 기쁨과 슬픔의 빛이 하나둘 켜지며 사람의 세계를 환하게 밝혀줄 것이다.
비록 온갖 감각에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살아가야 했지만, 그렇다고 삶이 늘 고달픈 것만은 아니었다. 아무에게나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작고 소중한 것들이 저자에게만큼은 눈에 잘 띄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발견하고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 순간을 남몰래 맞이하는 즐거움은 예민한 자에만 주어지는 선물 같은 것이었다.
타인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데에도 저자는 꽤 재능이 있은 것 같다. 상대가 말하지 않아도 그들의 감정과 의도, 기대 같은 것들이 저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그런 걸 알아차린다는 건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또 일상의 순간들을 좋은 일은 좋은 일대로, 슬픈 일은 슬픈 일은 일대로, 사소한 것은 사소한 대로, 중대한 것은 중대한 대로, 저자에게 오래도록 머물렀다. 수많은 순간들은 저마다 다른 질감과 무게, 밀도를 가졌지만 저자는 모든 순간에 마음을 펑펑 쏟아내고 기진해졌다.
이곳저곳에 온 마음을 들이던 저자는, 자라면서 느끼는 슬픔과 기쁨을 솔직하게 말하기도, 이해받기도 어렵다는 사실을 점차 깨달았다. 예민해서 그렇다는, 위로와 타박의 모호한 경계를 오가는 수식어가 저자에게 늘 꼬리표처럼 매달려 다녔고, ‘몽니’를 부린다는 오해도 곧잘 따라붙었다.
저자의 마음을 덮어 싼 막은 갓 생겨난 여린 피막 같은 것이어서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금세 찢어져 속살이 드러났고, 쓰러졌다. 저자는 둥근 세상의 일원이 되고 싶었다. 동글동글한 마음의 모양새를 닮아 가고 싶었다. 감각의 높낮이는 삽질해 평평하고 민틋하게 깎고, 보이는 것들은 윤곽만 남겨 보자고, 어느 날 저자는 그렇게 결심했다.
저자는 시계 분침이 돌아가는 소리에 전처럼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됐고, 자동차 경적에도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았다. 시간을 쓰지 않으면 애쓴 감각들 위에 먼지처럼 내려앉았다. 있던 것이 없던 것이 되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너는 예민하니까’라는 슬로건을 자신 안으로 향하게 걸어두고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에 자신을 기꺼이 맞추려고 했다. 저자는 예민하니까 자기 마음이 지나친 것이 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자신이 느끼는 걸 반으로 줄여야 남들과 비슷해질걸, 이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타인은 그렇게 저자보다 우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