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티 이야기 카르페디엠 9
벤 마이켈슨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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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환희와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내가 일상에서 늘 접하고 있는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 마음에 깊이 새기게 한다. 우리는 보통 일상에서 늘 그렇게 보아온 것에 대해 경이로움을 느끼진 않는다. 그것은 지금 있듯이 나중에도 똑같이 거기에 있을 것이기에 특별한 감정 없이 대하게 된다. 매일 들이키는 공기, 매일 마시는 물, 매일 먹는 음식, 항상 잠자리를 같이 하는 가족, 늘 만나는 친구 등 그들은 내일도 오늘처럼 변함없이 내 곁에 있을 것이기에 큰 환희와 기쁨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그저 무덤덤하게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런 일상적인 것마저도 제대로 향유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은 어떨까? 신체라는 감옥에 갇힌 장애인들은 보통사람이라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마저도 삶의 경이로움으로 받아들이진 않을까? 멀쩡한 사고를 가진 인간이 선천적인 장애로 인해 평생을 불구의 육체에 갇혀 지낸다면 아마도 그에겐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이 경이로움과 환희 그 자체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 피티가 바로 그런 상태이다. 그는 선천성 소아마비로 온몸이 마비되어 자신의 힘으로 일어설 수조차 없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할 만큼 중증 상태이다. 평생을 침대에 누워 생활해야 하고 휠체어도 특별히 개조해야만 이용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에게 있어 세상은 병실이라는 닫힌 공간이다. 따라서 그의 생활공간은 그의 육체와 자원 봉사자나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움직이는 병원이 전부다. 푸른 하늘은 병실 창문을 통해서만 볼 수 있고 일부러 그를 밖으로 안내해주는 도우미 없이는 어디 곳도 나갈 수 없다. 

그래서 그가 만나는 세상은 항상 새롭다. 새벽에 병실을 드나드는 생쥐들이 그에겐 쫓아내야할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친구이며, 병실을 옮기면서 보게 된 눈이 가슴 벅찬 자연의 경이로움이다. 또한 꼬마 친구 트레버의 안내로 처음 가본 쇼핑센터가 그에겐 별천지이며, 호숫가의 낚시터는 짜릿한 전율을 느낄 정도로 신나고 즐거운 놀이공원이다. 이처럼 그는 늘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비록 움직일 수 없는 육체라는 틀에 갇혀 있지만 정신은 자유로이 새로움을 갈망하는 강렬한 빛을 쏟아낸다. 

이것은 그가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삶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그가 쏟아내는 강한 눈빛과 삶에 대한 진지한 자세는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멀쩡한 신체를 지니고도 흐리멍덩한 정신으로 안이하게 살아가는 모든 독자들은 나처럼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르게 될 것이다. 비록 사지육신은 멀쩡하더라도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지 못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불구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사소한 일상에 기쁨을 느끼고, 가진 것에 감사하며, 나눔을 실천하는 삶이 건강한 삶이리라.

피티 이야기는 이런 건강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피티는 누구보다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이다. 그의 영혼은 티 없이 맑고 순수하다. 그의 밝은 영혼이 그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어두운 마음에 빛을 던져준다. 피티를 둘러싼 보조자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요양소의 보조원이나 자원봉사자들은 신체의 감옥에 갇힌 피티에게 대신 그의 신체가 되어준다. 특히 이 책의 2부에 등장하는 어린 트레버는 큰 연령의 터울을 뛰어넘어 피티와 영혼을 나누는 친구가 된다.  그런 궂은일을 자청해서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찌 감동적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 책은 장애인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 전환을 촉구하는 계몽서가 아니다. 오히려 정신적 장애를 앓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주는 구원의 메시지이다. 스스로 세상이 자신을  버렸다고 느끼는 슬픈 영혼들은 이 책을 통해 위로를 받을 지어다. 당신에게 당신의 사소한 일상이 얼마나 기쁨에 가득 찬 환희의 세계인지를 똑똑히 보여줄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네가 지닌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행복을 주는 요소인지를 느끼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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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둥글 지구촌 문화 이야기 함께 사는 세상 2
크리스티네 슐츠-라이스 지음, 이옥용 옮김, 안나 침머만 그림 / 풀빛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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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일곱 살 되던 해 퍼즐 맞추기 세계 지도를 선물했었다. 가로 세로 1M 정도 되는 넓은 판에 나라별로 쪼개진 조각들이 하나 둘 제자리를 잡아갈 때 아이는 ‘우리나라가 이렇게 작은 거야’하며 불평 섞인 푸념을 털어놓곤 했었다. 그럼 나는 ‘그렇단다. 이 지구에서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땅은 요만큼 밖에 안 되는 거야. 이 세상엔 우리 말고도 우리와 다른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단다. 그들과 만날 기회를 갖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될 게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아들은 나와 함께 중국과 필리핀을 다녀왔다. 좀더 많은 나라를 여행하고 싶어도 재정적인 여건이 허락지 않아 2년에 한 나라씩 여행을 다닐 계획을 세우고 실천했다. 또다시 2년이 되는 내년 초 과연 여행을 갈만한 형편이 될는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아무리 여행을 다닌들 이 지구촌 모든 나라를 어찌 다 다닐 수 있겠는가? 또 한 나라를 선택해 며칠 씩 여행을 한들 어찌 짧은 여행으로 그 나라를 속속들이 알 수가 있겠는가? 직접적인 체험이란 그렇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를 보완하는 방법은 독서다. 여행이라는 직접적인 체험만큼 생생하진 않겠지만 책을 통한 간접적인 체험은 여행이 갖는 시간적 한계와 공간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좋은 보조수단이다. 또한 아이에게 여행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의지와 여행 다니는 목적을 확고하게 심어줄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준다.

이런 이유로 지구촌 문화 이야기는 내게 소중한 책이다. 난 이제껏 이렇게 폭넓고 다양하게 지구촌 곳곳을 보여주는 책을 보지 못했다. 막연하고 어설픈 어린이용 문화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 모든 나라가 각각 짤막한 몇 편의 글로 집약되어 한 권의 얇은 책 안에 알라딘의 마술 램프처럼 쏙 들어가 버린 느낌이다. 뚜껑을 여는 순간 거인 지니가 나타나 마치 동화 구연 선생님처럼 또박또박 재미있는 세상 이야기를 해줄 것 같다. 그래서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 책은 세계문화백과사전이다. 지구촌 모든 지역의 문화를 아우르고 있다. 아시아에서 시작한 여행이 아메리카를 거쳐 아프리카, 유럽, 오세아니아까지 이른다.

그러나 이 책은 광범위한 서술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세밀하고 적확(的確)하다. 그것은 각 나라가 지닌 문화의 핵심적 요소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는 말이다. 내용이 폭넓은 만큼 깊이의 한계가 있을 법도 한데 문화적 핵심을 짚어내고 그것의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는 오히려 세밀한 느낌을 받는다. 또한 지구촌 곳곳의 독특한 문화적 용어들을 우리의 언어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내는 작자의 능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어른인 내가 각 나라의 특이한 문화적 용어들을 암기하며 읽어야할 필요를 느낄 만큼 이 책은 어른들의 세계 문화 교양서로도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식의 백과사전식 지식의 나열이 자칫 독자들의 흥미를 반감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책은 백과사전적 지식의 나열이 줄 수 있는 딱딱한 느낌을 벗어나고자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즉 친근감이 있다는 얘기다. 내용을 아이들에게 세계의 친구들이 이야기하듯 진행시킨다. 각 나라마다 그 나라를 대표하는 이름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나의 친구인양 약간 구어체를 섞어 문어체의 중간쯤 되는 어투로 차근차근히 자신들의 문화를 설명해나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따라서 다소 딱딱할 만한 잡다한 문화 이야기가 자신들의 생활을 이야기하듯 매끄럽게 진행된다. 

하지만 다소 지루한 감이 없지는 않다. 그것은 작자의 지나친 욕심이 한 몫 한 것 같다. 짧은 지면에 이 세상을 모든 것을 담으려 하니 내용상 각 장마다 이야기를 연계해서 진행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한계이다. 각 대륙별로 사람 사는 이야기를 모두 담으려면 동화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되는 스토리 구성을 기대하기는 애초에 무리란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창작 동화집에서나 가능한 부분일 것이다. 차라리 이 책은 빈약한 상상력의 소유자인 내게  아이에게 세상 이야기를 들려줄 갖가지 재료를 제공해준다는 측면에서 더욱 소중하다. 넓은 밥상에 갖가지 반찬을 차려주어 내 젓가락으로 하나씩 집어 아이에게 먹여주기만 하면 될 듯하다. 각 나라에 대한 짧은 이야기에 부족하지만 나의 지식과 상상력을 덧붙여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을 해나가는 방법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내용상 학교나 가정에서 교과 학습의 보조 자료처럼 활용할만한 책이란 생각이 든다.  세계 지리나 세계 문화가 잘 설명되어 있는 만큼 초등교육에서 사회 교과의 보조 참고서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학교 선생님이나 학부모들이 큼지막한 지구본을 돌려가며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이 책의 각 편들을 아이와 함께 이야기하며 공부하는 방법을 활용해 보라 감히 제안해 본다. 요즘처럼 해외여행이 보편화되어 있는 때 아이들의 직접적인 해외여행 경험과 이 책을 연계해서 수업을 진행해 나간다면 정말 재미있고 흥미로운 교육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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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기러기
폴 갤리코 지음, 김은영 옮김, 허달용 그림 / 풀빛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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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교감을 느낄 수 있는 책은 그 무엇보다 내 영혼을 강하게 자극한다. 그것은 독자인 나를 이야기 밖 방관자로 머물지 못하게 강력한 빨판으로 흡수하여 소설 속 주인공에 동화시켜버린다. 주인공의 두근거리는 심장은 내 심장의 울림이 되고 그의 슬픈 일상사는 나의 눈물 자국으로 번진다. 그래서 답답한 세상사가 암울한 기운을 내뿜어 내 폐부를 아무리 짓눌러도 아름다운 영혼이 교차하는 책을 읽다보면 어떤 악한 기운도 순식간에 씻은 듯이 사라져버린다. 그것은 내 영혼의 치료제요, 내 정신의 청량제이다. 새해 들어 나에게 전달된 이 책이 바로 그런 강력한 에너지를 내 영혼에 뿜어주었다. 내 영혼 깊숙이 숨어있던 순수한 기운을 자극하여 외부로 분출시켜 주어 난 무엇보다 행복감에 젖어 이 책을 읽었다.  
 

이야기는 두 편으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두 이야기에 흐르는 외로운 영혼들의 교감은 두 이야기 속에서 동일하게 흘러넘친다. 전편 <흰 기러기>에서는 주인공 필립과 흰 기러기의 교감이 애절하면서도 아름답다. 이 둘은 주류에 편입되지 못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곱사등이에 왼팔마저 기형적으로 가늘게 굽어있는 필립은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간다. 아무리 넉넉하고 이해심이 많아도 추한 외모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하지 못한 그는 한적한 늪지대를 사들여 새들과 함께 생활한다. 흰 기러기 역시 저 멀리 북미에서 철따라 날아오르다 폭풍을 만나 동료들로부터 떨어져 외딴 곳으로 오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사냥꾼의 총에 맞아 부상까지 입은 흰 기러기는 어린 프리다에게 발견되어 필립에게 오게 된다. 이제 흰 기러기는 어린 프리다와 필립을 연결해주는 인연의 끈 역할을 한다. 철따라 떠나간 흰 기러기가 다시 회귀할 때쯤 필립은 프리다에게 전갈을 보내고, 그럼 프리다는 다시 헤어짐의 계절이 다가올 때까지 매일 필립의 거주지인 낡은 등대에서 함께 생활한다. 외로운 세 영혼이 서로 사랑을 나누며 외로움을 달래는 것이다. 어느 새 그들 마음엔 사랑의 감정이 깊이 스며든다.   

 

후편 <작은 기적>에선 고아 페피노와 그의 당나귀 비올레타의 사랑이 따뜻하면서도 포근하다. 전쟁으로 천애고아가 된 페피노에겐 유일한 유산으로 당나귀 한 마리가 남겨졌다. 당나귀 비올레타는 가족이나 진배없다. 비올레타는 부모처럼 성실한 노동으로 어린 페피노에게 돈을 벌어주며, 페피노는 엄마처럼  먹이와 물을 주고 벌레도 잡아주며 잠자리도 편안하도록 돌봐준다. 그런데 비올레타에게 수의사도 고치기 힘든 심각한 병이 찾아온다. 페피노는 연일 야위어가는 비올레타를 위해 교회 안 성 프란시스 납골묘에서 기도를 올리고 싶지만 무시당한다. 페피노는 우여곡절 끝에 교황을 찾는다. 비올레타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그의 간절한 마음이 ‘작은 기적’을 낳았는지 페피노는 교황의 친서를 얻어 성 프란시스 납골묘에 들어가 기도할 수 있는 허락을 받는다.

 

이처럼 두 편의 이야기 속엔 숭고한 사랑의 정신이 철철 넘치고 있다. 그 사랑이 가진 자의 여유로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못 가진 자의 나눔에서 오는 것이기에 더욱 심금을 울린다. 누구보다 세상에서 소외된 필립이 흰 기러기를 보살피는 것이나 천애 고아 페피노가 비올레타의 병을 고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은 메말라가는 우리 사회의 인간관계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런 진실한 사랑이 작은 기적을 낳는다. 사랑은 확신을 심어주고 확신은 무한한 에너지를 분출시키며 그 에너지는 기적을 낳는다. 그렇기에 이런 책을 읽는 독자는 그 무한한 에너지에 동화되어 행복감에 젖어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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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 - 내가 처음 만난 예술가 1 내가 처음 만난 예술가 1
실비 지라르데 지음 / 길벗어린이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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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덕수궁 미술관에서 있었던 밀레와 바르비종파전을 관람했었다. 미술에 대해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순전히 아이의 그림에 대한 눈높이를 위한 관람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이는 흘깃흘깃 겉치레로 지나쳐 버린다. 어찌나 관람객이 많은지 진득이 서서 볼 여유조차 없었다. 인파에 밀려 계속 정해진 관람 노선을 따라가다 보니 도대체 무엇을 보았는지 전혀 기억에 남지도 않는다. 그저 교과서에서 보았던 ‘이삭줍기’, ‘만종’ 정도가 다시 뇌리에 새겨졌다고나 할까?

아이를 키우면서 예민한 아이들의 호기심과 감수성을 사장시키지 않고 고양시켜주는 것은 역시 미술이라 생각해서 부모들이 이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정작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막막한 부분이 또한 이 부분이기도 하다. 실제 미술 학원이나 동네 가까이의 미술 놀이방 등에 보내보아도 그림 그리는 기교나 가르치지 아이들의 예리한 관찰력을 키워준다거나 예민한 감수성을 신장시켜주는 교육을 하는 곳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자신도 처음엔 가정에서 운영하는 미술 학원에 아이를 보냈다가 몇 개월 만에 그만 둔 적이 있다. 차라리 미술 관련 전시회나 도서를 통해 접근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도 내심 있었지만 의욕만 앞서고 행동에 게으른 보통의 엄마와 마찬가지로 현재는 전혀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다만 몇 가지 도서를 구입해주는 것이 고작이다.

이전에 골라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명화집’ 이후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도서가 바로 이 책이다. 역시 아이들은 단순히 명화를 소개하거나 그림을 보여주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자신이 직접 무엇인가 수행할 수 있도록 배려된 책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말이다. 이 도서는 다른 도서와 달리 퍼즐 맞추기를 응용한 측면이 있다. 아이들이 부모와 제일 먼저 해보는 놀이이고 아주 재미있어 하는 놀이 중에 하나가 바로 퍼즐 놀이이다. 이 책은 바로 이점을 노려 샤갈의 생애와 작품들을 퍼즐 맞추기 식으로 접근한다. 아이들은 퍼즐로 제공된 그림과 설명을 짜맞추다 보면 저절로 샤갈에 대한 지식을 얻을 것 같다.

이 책의 또 하나의 장점은 샤갈의 작품을 이전 작품들처럼 설명식으로만 접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림 속 소재들을 따로 따로 찾아보는 숨은 그림 찾기의 묘미가 담겨 있다. 이것은 그림을 구석구석 집중적으로 관찰할 수 있도록 배려한 측면이다. 아무리 명화라고 해도 아이들은 그림을 요모조모 뜯어보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흘겨보고 무심히 지나치는 게 보통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그림의 소재를 찾아보도록 유도하는 것은 그림의 세세한 부분을 놓치지 않도록 할 것이다. 또한 그림 속 소재들이 어떻게 배치되어 이용되고 있는지 암묵적인 암시를 줄 것이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이 책은 초등 저학년들이 그림에 가까이 다가가는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싶다. 괜한 욕심으로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모는 것보다 아이 스스로 그림을 좋아할 수 있도록 이런 도서를 제공해 주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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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읽어주는 여자 명진 읽어주는 시리즈 1
한젬마 지음 / 명진출판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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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나에게 속삭인다. 아니 그림이 속삭인다기보다는 한젬나가 나에게 그림을 읽어준다. 그림에 가까이 선 그녀가 다가오라 자꾸 손짓한다. 나는 그림에 완전 문외한인데... 그림이라면 풍경화 정도에 눈길이 가고 인물화의 세밀한 사실묘사에 그저 감탄한 정도일 뿐인데... 그래! 그녀의 부름에 응해보자. 이참에 나의 무식함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무엇보다 초보자의 눈높이에서 그림을 설명해 준다고 하니 바로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책이리라.

이런 심정으로 이 책은 나와 인연을 맺었다. 나의 기대감은 애초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충족되었다. 그녀는 단순히 그림을 읽어주는 게 아니었다. 그림을 느끼도록 해 주었다. 그림의 기교적 측면을 세세히 설명하기보다 그림에서 느껴지는 작가의 삶과 그 삶에 동참하는 감상자의 태도를 일러주었다. 그녀의 정감있는 속삭임을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이미 어느 화랑의 전시된 그림 앞에 있는 착각에 빠졌고 그림의 세계에 나도 기꺼이 함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그림이 내 삶의 가까이에서 기쁨을 더욱 고양시키고, 슬픔을 누그러뜨리고 , 삶의 깊이를 더해주고, 외로움을 달래줄 친구가 되고, 인생의 동반자가 될 수 있음을 알려 주었다. 이것은 그녀가 그림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온 인생을 들려줌으로써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그녀는 유언처럼 말한다. "나의 모든 흔적들을 읽지 말고 버려라." 하지만 누군가 자신을 바라본다는 것이 싫다는 그녀가 이토록 당당하게 자신의 내면을 펼쳐 보일 수 있는 것은 역시 그림의 힘이 아닌가 싶다. 자신의 인생이 단단히 얽힌 대듭처럼 그림으로 확고하게 뭉쳐 있기에 결코 그녀는 그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또한 그림이 혼자만의 향유물이 아닌 타인과 공유해야할 영역이기에 대중과의 교감은 필연이었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독자로선 머리 숙여 감사할 따름이다. 자신만의 흔적에 그치지 않고 내 앞에 자신의 발자취를 열정적으로 진솔하게 보여주었다는 고마움. 그 열정이 그림에 문외한인 나를 한걸일망정 그림 곁으로 끌어당겨 주었다는 고마움.

이제는 이전과 다른 눈으로 그림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림을 제대로 볼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림에 다가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 전에 김창열 화가의 물방울 전시회를 간적이 있었다. 오래 전의 일이라 가물가물하지만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감동이 있다. 티 없이 맑은 어린 아이의 눈망울 같기도 하고, 슬픈 여인의 한 없이 쏟아지는 눈물 같기도하고,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니 내 마음이 촉촉히 젖어드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감히 전시장에 계셨던 그 분과 대화를 나눌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제는 다를 것이다. 전시회에서 그가 누구든 자신의 작품에 관심을 가져준다면 화가에게 반가운 일이라는 그녀의 말을 듣고 나도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비록 그림은 잘 모르지만 내가 보고 느낀 만큼을 주고 내가 느끼지 못한 부분을 되받는다면 전시장에 가는 것이 이전보다 훨씬 즐거운 일이 되리란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엔 몇 가지 영상이 떠돈다. 제각기 다른 방향에서 보면 다른 모습으로 다가선다는 피카소의 그림 '눈물흘리는 여인', 가을바람에 하늘거리는 갈대 사이로 언뜻 보이는 연인들의 속삭임 '김성호님의 가을의 복병'. 사각으로 분할된 각기 다른 크기의 면 위에 힘차고 간결하게 처리된 사각 색상들의 집합 '몬드리안의 컴포지션' 등 .

예전엔 TV 화면처럼 그냥 흘려보냈을 영상들이 이처럼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은 한젬마의 속삭임이 곁들어 있기 때문이리라. 그녀의 언어로 재구성된 그림은 그냥 나의 시선만으로 입력된 영상보다 훨씬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가까운 시일 내에 그림을 볼 일이 있는 분들은 꼭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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