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기완을 만났다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조해진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잊힌 세세한 표현들이 아쉽고, 일부 달라진 표현들이 궁금해서 반갑게 펼쳐본 리마스터본, 오래 전 처음처럼 호흡이 차분해진다. 무거운 젖은 담요 아래 호흡이 어려운 기분이 들던 영국의 겨울 하늘을 피해, 먼 동유럽의 어느 도시로 무작정 떠나기로 한 전생 같은 순간이 떠오른다. 


내내 비가 오던 회색 풍경은 함박눈이 내리는 도착지의 하얀 설경으로 바뀌었다. 그때 나는 비교적 신분이 안정적이고 확실해서 불안을 느낄 이유가 없었다. 다만 숨이 잘 안 쉬어지는 서유럽의 겨울에는 해가 가도 적응이 되지 않았을 뿐이다.


13년 전 나와는 아주 많이 다른 독자로 다시 만난 작품의 문장들에서 인물들의 기분이 때론 시각처럼 느껴진다. 그들을 따라 망설임 없이 함께 버스에 타고 어디로든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그렇게 몰입이 쉬운 다정한 작품이다. 섬세하고 완벽한 세계의 탄생이다.


“우리의 삶과 정체성을 증명할 수 있는 단서들이란 어쩌면 생각보다 지나치게 허술하거나 혹은 실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는 줄 수 있겠지만 그 위로는 영원하지도 않고 진실하지도 않다. (...) 우리 삶의 부분적인 단서를 될 수 있을지언정 생애 전체를 관통하지는 못한다.”


인간은 무엇으로 자신을 증명하는가, 따져보면 몇 개인가의 기록이 남는다. 그 기록이 사라지거나 조작되면 우습게도 존재를 증명하기가 어려워진다. 확실하다고 확신한 나에 관한 모든 것들이 그의 이니셜보다 더 강건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나무둥치에 주저앉은 날개가 젖은 새처럼 하늘로 날아갈 수도 땅으로 떨어질 수도 없는 순간순간을 살고 있는 것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알고 있다는 건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전부’라는 의미의 문장을 여러 형태로 만난다. 학문만이 아니라 사람도 그렇다. 오히려 사람이 더 그렇고, 그러니 사람살이가 그렇고, 이렇게 많은 이들이 함께 살아간다는 일이 그렇다. 단순한 것이라곤 없으니 상대에 대해서도 삶에 대해서도 겸손해야 한다.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여겨야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가장 아픈 진실은 그 모든 것이 다만 우리의 선택이었다는 것, 그것이다.”


처음 일독과 달리 이제 이 작품에서 나는 청산하지 못한, 하지 않은 문제들이 만든 굴곡과 흉터를 본다. 청산이란 일회적 성취가 아니라서 거듭해나가며 채워야하는 문제이지만, 감추고 가리고 결국 가해자가 여전히 혹은 더 잘 살게 한 모든 일들은 문제다.


“저항을 학습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난은 그저 익숙하고도 어쩔 수 없는 생의 조건이었을 뿐 (...)”


그런 행위를 일삼은 이들이 지켜내려한 것은 무엇인지, 그래서 보이지 않게 되고 밀려 나고 떠돌게 된 이들은 누구인지, 천천히 가늠해본다. 불확실이 불안을 불러오는 듯해서, 확신과 정답을 찾은 세월 동안 내가 부정한 내용은 무엇이었을지 재고해본다.


첫 출간된 13년 전보다 지금 나는 더 자주 포기하고 싶다. 작은 깜냥은 더 작아졌고, 체면치레하던 인내심은 더 얕아졌다. 스트레스를 견디는 힘도 줄었는지, 견디는 일에 지쳤는지, 자극에 발작 버튼이 눌릴 듯한 아슬아슬한 기분도 더 자주 든다.


정치사회적으로, 기후생태적으로, 개인인 내가 애쓰는 일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마음이 매일 든다. 다정한 친구는 아직 내가 성장 중이라는 신호라고 하지만. 


내용을 안다고 생각한 낯설고도 신비로운 이 작품이 진정제처럼 의미 있는 위로가 되었다.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없다면 믿음이 없다면 인간은 무엇이며, 삶은 무엇이냐고 조용히 속삭인다.


“태생적으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성되는 그 감정이 거짓 없는 진심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포기되어야 하는 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터널 103 소설Y
유이제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터널이 등장하니 읽기도 전에 무섭습니다. 어두운 터널이란 공간이 주는 공포감과 두려운 존재가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 세상을 구하기 위해 열어야 하는 문이 있다면 두려움에 지지 않고 열게 될까요? 문을 연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책을 펼치면 멈추지 못하고 다 읽게 될 듯한 작품입니다. 대상작이라 기대가 더 큽니다.



 

......................................

 

가제본을 읽으면서 상상 속 세계는 벌써 디즈니나 넷플릭스의 드라마화된 장면들을 본 듯 빠져듭니다. 터널이란 제한적 공간이 주는 밀폐감과 닮은 인간 세계의 면면들에 익숙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어째서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누군가의 욕망은 이토록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다른 많은 이들의 삶을 결정지어버리기도 하는 걸까요. 인간은 어째서 명백하게 눈에 보이는 심각한 잘못들을 못 본 척하고도 살아지는 걸까요.

 

정체 모를 괴물은 전쟁 무기를 양산할 목적에 인체 실험을 하던 결과이고, 통제도 관리도 할 수 없는 짓을 저지르기만 하지, 끝까지 수습하지 않아 벌어진 상황은 역사 속에서 거듭 확인하는 현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터널이 꽤 안전한 피난처인가 했던 짐작과 달리, 터널 속에서 생존해야했던 이유도, 터널 밖에서 죽어야했던 이들도, 작은 섬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이들의 삶도 원인과 책임이 드러날수록 어이없고 분노할 일입니다.

 

영어덜트 소설이라 주인공도 주요 인물들도 영어덜트들입니다. 그래서 어른들의 모습이 더 뚜렷하게 대비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삶의 구조를 망가뜨리고 결과에 무책임하고 여전히 이기적인 모습들이 현실을 자꾸 소환해서 괴롭습니다.

 

나이가 들어보니 나이만한 어른이 된다는 것이 쉽지 않은 거라는 걸 절감하지만, 그렇다고 거침없이 추악하고 악랄하게 살아야 할 이유란 없는 것이지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주인공 아이들이 마주하고 헤쳐 나가는 시간이 고단하고도 유일한 희망입니다.

 

잔혹한 비극들에도 불구하고, 생명은 이어지고, 예상하지 않은 생명도 태어나고 서로 만나게 됩니다. 각자의 서사가 더 길고 구체적이면 좋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숨 가쁜 전투 끝에 결말에 다다른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쉽습니다.

 

고정관념은 물론,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가하던 가스라이팅이 고집스런 신념이 되고 정체성이 된 이들은 변화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 장면이 문제를 직면하고도 외면하는 현실의 우리와 어긋남이 없이 닮았습니다.

 

에필로그까지 읽고서야 어째서 터널 ‘103’인지를 알게 됩니다. 아이들이 생존한 결말 이후의 시간이 무척 궁금합니다.

 

다형은 터널에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 터널에 이름이 있다는 것은 지구에 이름이 있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터널 밖으로 나와서야 터널이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게 아니겠다는 자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투 파라다이스 1
한야 야나기하라 지음, 권진아 옮김 / 시공사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파라다이스란 단어는 슬프다. 그것을 지향으로(, to) 삼는 몸짓도 언어도 모두 슬프다. 어쩐지 허약해서 상상 속에서마저 튼튼하기보다는 보드랍고 연약한 간절한 기도 같다. 그럼에도 지향을 가진 이들만이 선명해 보인다. ‘우리도’ ‘더 나은 무엇도관심 없고 알려하지 않는 삶은 쏟은 물에 떨어진 수채화 물감처럼 원래 색을 놓치며 흐려져 가기만 할 뿐이니까.

 

에세이가 더 좋았다 소설만 읽게 되는 그런 시기들을 반복하며 책을 읽고 산다. 올 해는 - 벌써 2월이 거의 다 가버렸지만 - 소설에 끌리고 소설에 몰입이 낯설 정도로 잘 된다. 현실에서 가능한 멀리 도망가고 싶고, 잠시라도 완전히 잊고 싶은 욕망이 이끄는 태도일 수도 있겠지만.

 

언급한대로 서글프고 처연한 기분마저 드는 단어들을 제목으로 삼은 작품을 가만히 펼쳐들고 곧 얼굴이 빨려 들어가듯 그 세계로 낙하하였다. 낯설려면 얼마든지 낯설 수 있는 배경의 세계가 오래 전 한번 본 홈드라마처럼 적당히 따끈한 온도로 주위를 감싸는 공기처럼 편안하다.

 

그렇게 생각조차 작품의 풍경에 휘어 감긴 듯 읽어 나가다보니, 여러 작은 감정들이 일기 시작한다. 주로 주저함과 동반하는 감정이다. 나는 타인의 어떤 고통을 편히 구경하고 있을 뿐인 것인지, 작품이 애써 구축한 공감대에 진입해서 그 길 위를 걷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 세운 잣대는 늘 의심스럽고, 소비에는 태어나서부터 길들여졌으니, 이번에도 대답은 그렇다, 일 지도 모른다. 독자라는 멀어서 안전한 이곳에서, 전시된 고통을 구경하고 있다는, 무고할 수 없는 일종의 우월적 자격.

 

1893, 2003, 2093, 이렇게 백년의 시간적 배경 속에서, 2024년 현재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은, 어쩌면 악화되고 오용되는, 성정체성, 혐오, 차별, 국가, 규제 그리고 팬데믹이라는 사회역사적 조어들과 현실들을 먼 길에 짊어질 배낭들처럼 챙겨 매고 걷는 기분이다.




 

그의 첫 발걸음을, 새로운 인생을 향하여 - 낙원을 항하여.”

 

누구든 함께 걷는 이들의 발걸음이, 좀 더 용기와 희생을 기꺼이 감수할 필요한 있을 때, 재빠른 후퇴와 계산을 통해, 응원과 후원과 도움에 멈추지 않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바람. 오래된 불평등과 편견이 판 자체를 갈아 치우는, 불의한 구조를 속속들이 알아보고 타협하지 않는 그런 길들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이기심이 산불 일 듯 솟아오른다. 내가 하지 못한 것을 타인에게 투영하고 기대하는 전형적인 꼰대의 사유법일까.

 

이렇게 섬세한 작품을 만나보면, 너무 쉽고 게으른 폭력적인 지적질이나 조롱과 비난과 (온갖 방식의) 공격이 더 저질스럽고 추해 보인다. 아마 나는 휴식이 조금은 필요하면서도 끈질기게 성찰하고 지향하는 바를 다채롭게 거듭 만들어가는 이런 문학적 경험이 더 필요한 시기인가 보다. 그래서 소설에 이토록 정신을 모두 빼앗기나 보다.

 

생각이 좀 다르다고 바로 전멸시킨 적으로 취급하고 후려치고 때려붓는 언행의 공격을 주저하지 않는 현실이 갈수록 참기 더 어려워진다. 그러니 존재존엄을 오래 고민하는 깊은 이야기는 귀하고 중하다. 19세기와 20세기 미국 역사에 대한 지식이 과문한 채로도, 파라다이스보다 디스토피아를 더 자주 마주하는 구성임에도 이 작품은 고집스럽게 더 나은지향을 잃지 않는다.

 

세대를 거듭해서 언급되는, 일견 현실을 당장 바꿀 힘은 없어 보이는 “To Paradise(낙원을 향하여)”란 표현은, 그래서 바꿀 힘을 담지한 주문처럼 간결하고 강력하다. 바라고 상상해야 그리고 만들 수 있다. 전제가 없다면 결과는 100% 없을 뿐이다.




 

이 작품의 시간 역행 구성이 역사의 퇴보라고 느껴져서 실망하거나 좌절을 느끼지는 않았다. 표시된 숫자가 같다고 모두가 동시대를 사는 것은 아니다. 비동시성은 개인 내에서도 관계 속에서도 사회에도 일상적인 사건들이자, 어쩌면 실재하는 진실이다. 안다고 생각한 진보의 선형 말고, 어지러운 낙서 같지만 단단하게 응집된 바람이 여전히 굳건한 그런 삶이 촘촘하니 힘이 세다.

 

누구도 한 번도 피해가지 못한 삶의 아이러니와 돌발과 예상 못함을 모두 살아가며, 때로는 오지 않은 현실 대신 현실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자유는 환영 같은 희망일 뿐"이라는 암시와 환상 속에서 스스로를 위무하며, 그들은 여전히 낙원을 향해 가고 있고, 우리도 아마 그러해야 할 것이다.

 

주인공들 각자의 파라다이스는 무엇이고 독자들의 것은 무엇인지를 상세히 물어보면, 우리의 현실도 상상도 예상 외로 거대한 스펙트럼의 여기저기에 분포해있다고 새삼 놀라게 될 지도 모른다. 산책을 나가기엔 많이 늦었는데, 나는 주문 같은 짧은 문장들에 사로잡혀 자꾸만 창밖과 현관 쪽을 흘끔거리게 된다.

 

저들의 생각은 틀렸어. 아직 너무 늦지 않았어, 늦지 않았어, 결국 늦지 않았어. 그리고 나는 걷기 시작할 거야. (...) 네가 가 있길 바라는 그곳을 향해서. 난 멈추지 않을 테고, 쉴 필요도 없을 거야. 거기, 네가 있는 곳에 다다를 때까지, 낙원을 향하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통주에 깃든 지리의 향기
신희수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통주 지도를 보니, 마셔본 것도 몇 개 안 되고, 이름조차 모르는 전통주들이 더 많다. 애주가라고 하기에는 많이 마시지도 않고 찾아 마시는 수고로움도 하지 않지만, 맛있는 술 한 잔을 무척 반기고 즐기는 것도 사실이니, 호감이 있다는 정도가 맞겠다.



 

주종 불문 한 잔을 천천히 마시는 편이고, 작년에 주중 금주를 결심한지라, 맛있는 술이 좋다. 희석식 소주는 거의 마시지 않는데, 맛이 나쁘기 때문이다. 술이 품은 향이 중요하니 소독약을 삼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소독약 삼켜본 적 없음). 취할 때까지 마시지도 않으니 싼값에 다량을 삼킬 이유도 없다.

 

하여간 이런 어정쩡한 애호를 가지고, 각 지역을 닮은 생산물인 전통주와 그에 잘 어울리는 지역 특색을 지닌 음식을 짝 지어 소개하는 책을 재밌게 읽었다. 한국의 술 문화는 대개 음식을 가득 차려두고 술도 잔뜩 마시는 축제같은 분위기라서 모임 자체가 몹시 부담스러운데, 이 책은 전통주를 다뤄서인지 상대적으로 무척 차분한 술자리가 상상된다.

 

한 때 하루 종일 운전하며 여행하기를 즐겼기 때문에, 지역별로 만난 특산물과 식사와 술이 생각나서 즐거웠다. 예를 들면 공주의 왕율주는 모르지만, 부여에서 아침 9시 산책길임에도 밤 막걸리를 능숙하게 권하던 분이 유쾌하게 떠오른다. 미처 대답하기 전에 병을 열고 잔에 따라주셔서 친구들과 한잔씩 얻어 마시고 아침부터 취해서 숙소로 돌아오는 평생 처음의 경험을 덕분에 했다.

 

여행을 좋아했지만, 지리에 대한 식견이 부족해서 지형과 식생에 관해 깊이 있게 보고 느끼지는 못했다. 인간의 삶에 지리적 환경과 날씨, 기후, 섭생이 얼마나 근본적이고 중요한지를 알게 된 건 나이가 한참 들고서다. 지리 과목을 배울 때 지도 작법이나 축적계산이 아닌, 다른 내용이 있었다면 좀 더 일찍 지구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을까.

 

지리는 세상을 정확하게 볼 수 있게 도와주는 안경이다.”

 

전통주에는 지리 이야기와 더불어 그 지리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분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이 함께 담겼다. 역사도 문화도 들린다. 전통주들마다 전하는 다른 향과 맛과 이야기를 책을 따라 만나 가다보면 이 땅에서 우리가 함께 살아온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음식이든 술이든 즐기는 것은 좋지만, 좀 더 차분하게 애정을 가지고 감사함을 느끼며 대하는 문화가 새롭게 생기면 좋겠다. 먹는 일이 인류의 생존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도 깊이 이해되면 좋겠다.

 

품질 좋은 여주의 쌀과 물을 재료로 만든 증류주 화요에는 쌀의 고소한 단맛이 풍부하게 농축되어 고급스러운 맛이 우러나게 된 것이다.”

 

책 덕분에 앉아서 하는 여행을 마친 기분이 든다. 주로 수입된 술을 많이 마시는 경향이 있는 나에 대해서도 가만 생각해본다. 가장 무난하고 대중적일 듯한 여주 증류주 화요를 한 병 구매해야겠다. 그 향과 맛과 이야기를 만나보고 싶다.

 

화요의 맛이 완성되는 단계는 (...) 옹기에 숙성하여 깊은 맛을 내는 과정이다. (...) 잡스러운 맛은 없어지고 깊고 부드러운 맛만 남아 맛좋은 술이 된다. (...) 사람과 자연이 함께 빚어 낸 조화로운 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거미를 본 적이 있나요?

 

2017년 출간 다시 일독하고 책모임에서 재독하며 공부했습니다. 아픔이 기록이 되고 길이 되어, 신간 소식으로 이어진 듯해 반갑고 감사합니다. 더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기를 늘 바라는 마음으로 발췌 기록이나마 남겨봅니다. 어쨌든 결국 의대정원이 늘어나게 되는 거라면, 사회역학 분야 지원자들도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북토크 1| 김승섭 교수 특별강연

https://youtu.be/zbr1gH-H7So?si=GMtfNaFKSWALprUQ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북토크 2| 김승섭 교수 x 장일호 기자

https://youtu.be/1Qk5kHZdKsg?si=mLdsof4ClyYB_qD8




저는 사회역학Social Epidemiology을 연구하는 학자입니다. 흡연과 벤젠 노출처럼, 차별과 사회적 고립과 고용불안이 인간의 몸을 해칠 수 있다는 연구가설을 탐구합니다. 사회역학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입니다.”

 

허리가 아파도 병가를 쓸 수 없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에게 바로 옆 건물 병원의 의료기술은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는지요.”

 

미세먼지가 천식을 유발하고 석면이 폐를 망가뜨리는 것처럼 우리가 관계 속에서 겪는 차별과 같은 사회적 폭력 역시 병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사회 역학은 그 사회적 관계가 인간의 몸에 질병으로 남긴 상처를 해독하는 학문입니다.”

 

인지하지 못하거나 말하지 못한 차별 경험들은 우리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길까요? 그 시간들은 우리 몸을 어떻게 변화시킬까요?”

 

여성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답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아팠습니다. 심지어 차별을 경험했다고 말한 사람들보다 건강 상태가 더 나빴습니다.”

 

* 차별을 경험하는 것 Experienced discrimination

* 그 경험을 차별이라고 인지하는 것 Perceived discrimination

* 그 인지한 차별을 보고하는 것 Reported discrimination

 

미국사회에서 약자인 흑인, 여성, 아시아인들이 차별을 경험했을 때 (...) 자신의 잘못 때문에 차별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차별을 있는 그대로 인지하는 것보다 심리적으로 불편함이 덜하기 때문이라고 연구는 설명합니다.”

 

사회적 폭력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경험을 말하지 못합니다. (...) 그러나 우리 몸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때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그 상처까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

 

* 원인의 그물망 web of causation

 

그물망처럼 얽힌 여러 원인들로 인해서 사람들이 아프다면, 그 그물망을 만든 거미는 무엇이고 누구일까요? 우리는 그 그물망을 엮어낸 역사와 권력과 정치에 대해 물어야 하고, 좀 더 간결하게 말하자면 질병의 사회적, 정치적 원인을 탐구해야 한다고 (...).”

 

고통은 근본적으로 개인적인 것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나눈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사회구조적 폭력에서 기인했을 때, 공동체는 그 고통의 원인을 해부하고 사회적 고통을 사회적으로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빨갱이낙인으로 인해 오랜 기간 죽음에 대해 말할 수조차 없었던 그 사회적 낙인이, 회계조작에 따른 폭력적인 정리해고가, 풀리지 않는 의문들로 가득 찬 가족의 죽음과 은폐된 진실이 그들의 고통을 이루는 핵심이니까요.”

 

우리 뇌가 물리적 폭력과 사회적 따돌림을 같은 뇌 부위에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 연구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발언이 그들을 물리적으로 폭행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말해줍니다. (...) 모욕과 차별은 사람을 아프게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