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근대사 왜곡은 언제 시작되는가 - 한일 근대사 속살 이야기
박경민 지음 / 밥북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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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주의나 실증주의는 역사를 기술하는 하나의 시선일 뿐이지만, 왜곡이 빈번한 현실은 좀 더 사실과 증거를 기반으로 두는 태도가 탄탄하게 일반화되기를 바라게 한다. 편견과 선입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다른 이익 계산이나 의도를 가진 왜곡은 사회적 낭비이자 고단한 스트레스다.

 

흔히 식민지 침략을 자행한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가 된 이들이 게으르고 무능해서 자초한 일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전쟁을 일으키고 약탈하고 대규모 살상을 자행하는 부지런함과 능력이 자랑할 만한 일인가. 그런 부지런함의 한 축은 곧 낭비와 과소비로 이어져 현재의 기후환경문제 역시 초래했다.

 

근현대사는 멀지 않아서 더욱 해석의 갈래가 많을 수 있는 시대적 배경이기도 하다. 당시 역사적 사건의 책임이 큰 이들이 생존하는 경우나 직계 후손이 분명한 경우, 유럽의 경우처럼, 세계대전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유효기간 없는 처벌을 법으로 명시한 경우가 아닌 아시아 상황은 더욱 그렇다.

 

이 책에서는 조선의 개항과 동학농민운동 중에 벌어진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두 사건을 크게 다룬다. 두 사건 이후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고 청일전쟁이 발발하고, 갑오개혁이 단행되어, 1910년 조선이 완전히 일본의 식민지가 된다는 점에서 역사의 분기가 된다고 본다.

 

그 이전 조선에서 아무런 반대와 저항의 행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근대사에서 누구나 배웠던,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은 이 두 사건의 전후로 숨 가쁘게 연결된다. 상대적으로 공식적이고 상세한 기록으로 남은 사건들에 비해,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사건은 알려진 바가 적다.

 

그 이유는 대개 그 사건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랐던 이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본질을 감추기 위한 왜곡 보도가 이어졌으며, 계획된 범죄가 아닌 우발적 사건이라는 뻔뻔한 일본의 주장을 받아들인 학계에도 책임이 있다.



 

다른 한편, 이런 왜곡을 20여 년간 발굴과 연구를 통해 보다 정확한 사실로 밝혀낸 일본인이 있었다. 덕분에 한국 측의 일방적 주장이 아닌 종합적인 역사 연구 분석이라는 정립이 가능했다.



 

득표를 원하고 지지율을 높이는 것이 최대 관심사인 정치권력은, 아전인수격 해석과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크고, 이는 이미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례가 있음에도 반복되는 구태이다. 문제는 이들이 공교육의 중요한 기초가 되는 교과서 내용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가해국의 시민들이 잘 모르고 오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문화와 도덕에 따라 사회화된다. 특정한 규범을 따르고 경험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관계를 형성한다. , 교육과 문화, 사회와 도덕, 여론과 종교 등은 우리를 조건화한다. 그러니 우리는 그 점을 알고 기억하고 주의해야한다. 다름이 틀린 것이 되고, 폭력이 개입하면 비극은 재발한다.

 

지적인 훈련은 중요하고, 이 책과 같이 바로잡는 기록은 소중하다. 현실의 전쟁을 당장 그만두게 못 하는 것이 아프고 안타깝지만, 그래서 더욱 역사를 통해 과거의 폭력과 시행착오와 잘못에 대해 배우고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역사와 전통과 문화 대신 부동산과 돈을 선택하는 지금, 여기,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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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김은심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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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제목이 씨앗이라서 겨울에 심어 월동을 해야 봄에 꽃이 피는 구근들 생각을 먼저 떠올렸다. 재작년 심은 튤립 구근이 꽃을 안 피워서 의기소침한 상태였고, 수선화는 꽃이 너무 작아서 조금 섭섭했다. 베란다 정원의 한계랄까.

 

봄날의 기지개를 켜기 위해

깊은 잠을 청하고

 

[가을과 겨울 내 세상은 그렇다]

 

연말이 가까워지면 새해에는 머뭇거린 일들을 해치우고 싶은 기분이 강해지지만, 새해가 되면 이상하게 더 차분해진다. 새로운 일, 번거로운 일, 벅찬 일을 만들거나 시작하지 말고, 있는 것과 가진 것을 다독이며 정리하고 싶어진다.

 

시집 속에는 모든 계절의 풍경과 다양한 생명들이 가득하다. 시인은 자신의 내면으로도, 인간 속으로도 숨어들지 않고, 외부의 세상을 늘 바라보는가 보다. 그런 시들이 좋다. 여러 핑계로 다니지 않는 여행을 경험하듯 공기가 새롭다.

 

많은 존재들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겨울의 풍경들을 골라 더 오래 읽었다. 지금은 겨울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겨울이다. 그리고 새해가 되었다. 2024년으로 바뀐 모든 것을 확인하는데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행복은 보인다

환한 표정으로 좋은 몸짓으로

세상 모든 생명체가 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행복]

 

12월 중순부터 어떻게 살았는지 멍할 정도로 분주했다. 가장 설레던 12월이 가장 바쁜 12월이 되는 동안, 나는 늙고 운이 좋아 가족과 친지와 친구가 늘었다. 남은 휴가를 다 모아서 하던 일은 쉬고 다른 일을 해치웠다.

 

의무를 다하고 나면 마냥 쉬고 싶었지만, 방학과 졸업과 생일과 기념일과 명절과 축제로 이어지는 연말이라 외출과 여행을 생략할 수는 없었다. 관광지와 축제와 콘서트가 아니라 다닐 만 했다. 눈이 많이 와서 즐겁고 기쁘기도 했다.



 

집과 동네를 떠난 밤은 같고도 달라보여서 겨울밤을 연말에 몰아서 자주 올려다보았다. 노안으로 흐려진 눈으로도 별이 총총했다. 늘어난 별빛은 모두 인공위성이려나. 겨울의 달은 작고 밝아서 젊은이 같다.

 

그리 그리 마음을 저 초승달님께

마음으로 등 기대는구나

등 기대는구나

이 밤도 잠 못 드는구나

 

[]



 

아버지 본가에 들러 이젠 끝이 보이지 않는 내 나무를 만나고 왔다. 아버지는 왜 목련을 심으셨을까. 궁금한데 굳이 알고 싶지 않아서 나는 묻지 않았다. 돌아가시면 영원히 모를 텐데, 지금이라도 여쭤봐야하나.

 

내 나무가 있어서 좋다. 목련 꽃이 하얗게 피는 계절이면, 태어나 처음 쉬는 숨처럼 꽃을 보며 후후 긴 숨을 쉬었다. 죽어서 다시 태어나면 참나무가 되고 싶지만, 옆에 목련나무가 있어도 좋겠단 생각.



 

새해다. 생각의 씨앗이 싹 트는 모습대로 행동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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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이사 중!
곽수진 지음 / 미디어창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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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좋아하지만, 한파 소식이 들리면, 문 밖의 삶에 마음이 쓰여 마음이 부스럭거립니다. 이번 겨울 초입의 한파도 대단했지요. 핫팩과 한 세트인 물그릇과 따뜻한 물을 가지고 나가서, 물이 다 식어 얼어붙기 전에 부디 마실 수 있기를 바라며 어두운 동네를 걸어 다녔습니다. 모두가 추위를 피할 집이 있으면 좋겠다는 매번 서러운 생각을 했습니다.



 

책 속 고양이는 배가 고프지도 춥지도 않아 보여서 좋습니다. 스토리는 잔잔하게 흐르며, 한편으로는 지리적 환경과 서식 동물에 대해 배우고 생각한 계기를 만들어 주면서도, 동시에 짧은 글 속에 담담한 위트가 가득하고 그림은 부드럽고 아름답고 섬세하고 디테일이 풍성해서, 모든 페이지마다 한참을 샅샅이 보게 합니다.



 

살짝 웃는 게 아니라 어느 장면에서는 푸학~하고 크게 웃게 되기도 해서 즐겁고 감사했습니다. 이사를 위해, 마음에 드는 집을 찾기 위해, 어디든 가보는 고양이의 실행력이 부럽습니다. 스포일링이 될까봐 사진을 찍지 않았으니 꼭 책으로 재밌게 만나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고양이는 새로운 집을 찾아 이사에 성공했을까요. 뜻밖의 반전 같은 사랑스러운 마무리입니다. 집에 빈 상자들도 옷가지도 있는데, 집을 찾는 고양이에게 당분간이라도 포근한 집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커집니다. 지금은 할 수 없으니 아이들과 표지를 스티커로 일단 꾸며봅니다. 리무버블이라 여러 번 각자의 생각대로 바꿔 붙일 수 있어서 좋습니다.



 

한파가 지나고 조금 포근한 날씨가 집 밖의 고양이에게도 조금은 도움이 되겠지요. 따뜻한 집 안에서 걱정만 많고 행동은 적은 제게도 조금은 안도감을 줍니다. 인간과 더불어, 인간 가까이, 도시에 사는 수많은 작은 생명들의 평안을 바라는 겨울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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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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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처럼 유려한 불규칙 유영, 이형異形하는 진실을 따라잡는 책 속 이야기를 따라 다니다, 나는 결국 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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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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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 마지막 가족모임을 하루 앞두고 아이가 밤부터 독감 증상을 보이며 앓기 시작했다. 그래서였을까, 1990년대 어느 날, 문학에서 먼먼 자연과학부 학생이 우연히 읽게 된, 모르고도 계속 따라 읽게 된, 단 한 번도 감상 글은 써본 적은 없는 하루키의 책에 대해 기록하려는 욕구가 혼몽한 발작처럼 생긴 것은. 나도 이미 열에 들뜨고 뜨거워지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기록될지 모를 불확실한 글을 시작했다. 그토록 바라던 계획 없는 연휴가 막 시작된 것 같아서 호흡이 길고 편해지는 한편, 스멀스멀 몸집을 불리는 불안이 공황으로 바뀔까 설핏한 상상조차 두렵던 밤이었다. 두꺼운 실물감이 의지가 되는 종이책을 꽉 잡고, 가을에 읽다 멈춰 머물던 문장들을 찾아갔다.



 

20대에는 (그런 나이였기도 했지만) 쓰고 쓸쓸한 맛을 남기던 하루키 문학이 야근과 밤샘을 요구받으며 매해 계약을 마무리하던 30대에는 아플 정도로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해마가 너덜 해지던 40대에는 휘발된 시간이 많아서 모든 기억이 적다. 허정虛靜 집을 나서던 아침과 느린 걸음으로 돌아오던 저녁 귀가로 반복되던 일상이 체력의 대부분을 잡아먹었으나, 그 덕에 살아 남은 것 같기도 했.

 

침대에 누워 이불로 얼굴을 가린 아이가 조용히 눈물을 닦는다. 할머니를 만나 온통 버릇없이 마음껏 사랑받을 기회가 유예되어 그럴 것이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성적부터 품행까지, 자신의 딸을 평가하고 대개는 못마땅해 하던 내 어머니는 2kg을 간신히 채워 인큐베이터에서 나온 내 아이를 받아 안고 백일이 되도록 가능성으로만 존재하던 그 생명을 지키느라 앉아서만 잠들었다.

 

어머니가 내게 가르친 소통 언어의 오랜 주제는 네가 태어나지 않았다면이었다. 바라지 않던 출산이 문제였는지 아이가 태어나서 달라진 삶이 문제였는지, 모든 것 때문에 몹시 아팠던 어머니는 나를 자신의 어머니에게 여러 해 맡겼다. 나는 그 시절이 가르친 것들로 만들어졌다. 지워지지나 가려지지 않는 기억이 되었다. 내 아이처럼 나도 온 힘을 다해 내 할머니를 사랑했다. 깨기 싫은 꿈, 울다 깨는 밤은 할머니를 영원히 잃고 시작되었다.

 

완벽하게 안전했던 시절이었다. 나를 기다려주고 품어 주던 다정하고 따뜻한 유일무이한 존재,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애도는 끝나지 않고 끝내지 못한다. 내 상실은 고단한 병이 되고, 살릴 수 없고 되찾을 수 없는 것을 그리워하는 일은 고질이라서 나는 연신 끙끙 앓으며 견딘다. 외롭고 외롭지만 간신히 간신히.

 

십 대인 아이와 여든의 어머니가 사는 도시의 벽, 그 안의 풍경을 나는 모른다. 조우한 두 사람이 희열에 넘쳐 서둘러 그 안으로 사라질 때마다 나는 혼자 남겨져 좋았다. 찾으러 가지 않았다. 간원하지도 않았다. 내 어머니였던 존재가 낯설어질수록 어린 딸로밖에 판단할 수 없었던, 오해했던, 투사했던, 몰랐던, 서로에게 쓰리고 따가웠던 시절을 잊을 수 있다. 그들이 즐겁고 행복할수록 나는 흐릿하고 몽롱하게 살아도 될 것 같아서 느긋하고 너그러워진다.

 

속으로는 틈만 나면 훌쩍거리는, 크지 못한 아이로 사는 주제에, 거울에 비친 외양만은 멀쩡한 반백半白의 반백半百이다. 아니, 외양만이 아니다. 지각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실증할 수 있는 것만 모아 수학언어로 기술하는 학문을 전공하고 흠모하며 살았는데, 지금은 장자의 호접몽이 어색하지도 괴이하지도 않다. 생멸生滅이 언제나 짝을 이루고 형태만 바꾸는 우주에서 누가 꾸는 꿈과 누가 사는 현실이 무슨 수로 확실確實*일까.

 

* 확률 값이 1, 반드시 발생하는 개별 사건.

 

희박하고 서늘한 우연으로 그저 태어난 존재가 되어 잠시 대기에 제 호흡을 섞으며 살아본 이제껏 내 시간이, 간신히 퇴원을 허락받은 2kg 생명의 존속 가능성보다, 그 가능성을 확신하고 지키던 믿음보다 한참 허술하다. 미미한 분별력으로도 알아차린 진실이 차고 건조한 몸에서 뜨거운 눈물을 훅 뽑아낸다. 숨이 턱 막히면 곧 불안은 발작이 된다. 길고 느린 호흡들이 울음을 삼킨다.

 

사람은 한낱 숨결에 지나지 않는 것, 한평생이래야 지나가는 그림자 (...) 인간이란 숨결처럼 덧없는 존재고, 살면서 영위하는 나날도 지나가는 그림자 (...).” 아무리 시시해도 그런 이유로 진짜가 아니라고는 못할 것이다. 우습게도 진짜가 되기 위한 합격선과 표준과 지향은 없다. 제 어머니와 어떤 화해도 못한 채로 늙어간다는 경멸을 지닌 채 어두워진 그림자 같은 이 삶도 진짜다.

 

어머니가 어린 나와 젊은 자신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지금의 나도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를 한 번도 몰랐기 때문에, 우리는 처음부터 친애를 나눌 수 없었던 유형에 속할지 모르기 때문에, 내 어머니의 현실이 언제 무엇이었는지 내가 모르고, 어느 쪽이 진짜인지 마주 보는 순간에도 모르고, 서로의 현실도 꿈도 진짜도 그림자도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인 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의 벽 너머로 서로의 진짜를 간절히 찾아본 적이 없다.

 

내게도 무엇과 무엇이라는 세심한 구분과 상세한 구별이 필요할까. 경계가 두껍고 경험이 협소한 내 진짜와 그림자는 쌍둥이처럼 닮았을 것이고, 그것들이 선택한 현실과 꿈 역시 지루할 정도로 닮았을 것이다. 내가 아는 ’”, 살던 대로 살 수밖에 없는 이번 생에 번외는 사족 같다.

 

그런 시시하며 견고한 내가 다른 곳에 낙하하고 싶은지, 간원하는 다른 것이 있는지, 내가 선택한 세계의 벽을 그만 벗어나고 싶은지 나는 모른다. 그런 적이 있었는지도 오래된 망상처럼 혼란스럽지만, 이제 와서 그렇다 해도 용기와 힘과 진짜 결심이 있는지 모른다. 이미 알아야 할 무엇도 아직 모른다. 계속 모르고 싶은지 알고도 모른 척 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벽은 존재할지도 모른다라는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조심성이 좋다. 벽은 존재하고 나는 확신하고 하나가 아니고 둘도 아니고 무한(의 벽)이 존재한다. 무한은 수가 아니라 과정이라서, 벽은 수없이도 확실하고 수없이 확장하며 수없이 변용하고 오직 견고하다. 벽은 마치가 아니라 확실히 살아있다. 무엇으로 긁어도 다치는 건 이쪽, 인간이다. 아니 ’, 그저 그렇다.

 

두려웠다, 진실은 말 할 수 없고 다만 드러난다to be revealed고 해서. “짐작건대 현실은 하나만이 아니, “몇 개의 선택지 가운데 내가 스스로 골라잡 은 현실은, 본체인지 그림자인지 구분이 되지 않은 지금 이렇게 여기 있는 (...) 내가 익히 알고 있는 (...) 곧 나. 호흡처럼 유려한 불규칙 유영, 이형異形하는 진실을 따라잡는 책 속 이야기를 따라 다니다, 나는 결국 나를 만나 무음으로 실소한다. ‘진짜내가 꾸는 속에서는 박장대소를 했으면 좋겠다.

 

자연스러운 욕망처럼 무언지도 모를 글을 꽤나 길게 썼다. 도착적인 문장들, 이어진 글자들은 노출의 욕망과 이기심에서 흘러나왔다. 온통 내가 이렇다고 나를 알아달라는 요란한 고발. 새삼스럽지만 글쓰기 재능이 없어서 다행이다. 무엇을 강요받았는지 희생했는지 다 알지 못하는 타인인 내 어머니를 제물 삼고 핑계 삼아 수없이 글로 복수를 자행恣行하지 못하는 삶이라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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