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내게 말을 걸면
신호철 지음 / 지식과감성#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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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반기지 않는다, 는 말을 너무 자주해서 그게 미안한 나이가 되었다. 그래도 목련이 피어나는 짧은 계절엔 설렌다. 잎이 없는 꽃을 올린 가지들의 서늘한 체온이 좋다. 올 해엔 병에 걸린 듯 졸고 자느라고, 실사 목련보다 목련 사진을 더 많이 보았다. 봄을 찬미하는 시를 읽고 더 찾아 읽는다. 그러다보면 나도 봄을 찬미하는 법을 배우게 될지 모르니.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지만, 어느새 4월이었고, 비가 자주 왔다. 어제도 오늘도 비가 왔다. 4월엔 내가 좋아하는 라일락이 피니까, 봄비가 주는 느낌이 좋으면서도 꽃이 아깝다. 산책길 라일락은 비에 젖어서도 어찌나 향기롭던지. 몹시 설레며 덕분에 행복했다. 비와 꽃향기가 슬픈 꿈같아서 친구의 안부를 물었다.

 

3월에도 4월에도 여름을 미리 만난 듯한 날이 있었고, 손발이 차가워지는 일교차도 맛보았다. 아직은 남아 있는 계절이라지만, 절기는 의미를 많이 잃었다. 도둑맞은 계절이라기엔, 인간 스스로 저지른 짓들이 너무 많다. 자신을 지성적인 존재라고 여기면서도 생각 없이 하는 수많은 것들. 알람보다 10, 20분 일찍 일어나 여명을 보는 하루는 종종 남은 시간의 가늠자 같다.

 

내가 살아온 삶의 흔적이 여기저기의 통증과 흉터라면 여전히 운이 좋은 편이다. 시 속에 등장한 맹인을 나는 한동안, 아니 아주 오래 보지 못했다. 다들 어디서 살아가고 있는 걸까. 420일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에도, 장애인들은 구속당했다. 누구누구는 이동할 권리가 없다고 말하는 사회, K-국격.

 

가을에 지는 잎들을 보면 속이 후련하다. 마치 할 일 다 하고 쉬러 가는 모습이랄까. 무거운건 마지막 하나까지 다 벗어버리고 개운하게 가볍게 존재하기만 하면 평온의 시간. 봄에 지는 꽃도 마찬가지겠지만, 낙화는 늘 조금 서럽다. 개화한 모습 그대로 떨어져 밟히는 장면이 덧없다. 봄비가 오고 난 다음의 축축함은 더 그렇다. 말릴 방법은 전혀 없지만. 누구의 삶처럼 꽃도 그렇게.

 

기억하지 못하는 건 누구에게나 있다. 잘못 기록되었거나 잘못 출력되는 기억들도 누구에게나 있다. 섬망과 치매와 파킨슨이라는 명명을 가진 것들만 어딘가에 갇힌 기억은 아닌 것 같다. 그건 약이라도 있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억나지 않는 빈 공간이 숭숭 많아서, 걷다 한참을 앉아 망연해했다. 그래도 잊지 말아야할 것들, 기억할 것들은 많아서, 4월엔 더 많아서.

 

시집 한 권으로 모든 계절을 만나고, 비슷한 삶도 만나고. 이제 산책을 나갈 시간이다. 흐린 일요일 오후의 산책은 대개 고적해서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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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깊고 아름다운데 - 동화 여주 잔혹사
조이스 박 지음 / 제이포럼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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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도시생활자들이 떠올린 숲은 어디일까. 그 숲은 가로등과 긴 의자가 촘촘하게 배치된 곳이 더 많을 것이고, 깊은 야생은 아닐 것이다. 그런 숲도 야생동물도 거의 없는 한국에서는 대부분이 경험하지 못한 숲, 그건 인류가 거의 없애버린 자연이기도 하고, 이 책에서 언급하듯 제거하거나 거부해온 사회화되지 않은 다른 측면의 인간 본성일 수도 있다.

 

여성은 내면의 숲으로 떠났다가 돌아오는 여정을 떠나기 때문이다. 여성에게는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여정이 성장을 위한 통과의례다.”

 

서양가부장문명은 자연과 여성을 동시에 대상화하고 위계의 아래에 배치시켰다. 자연은 속절없이 제거되어왔고, 여성은 생존을 위한 순응과 저항을 동시에 이어왔다. 내용은 많이 알고 있으나, 세세한 표현들과 메시지는 잘 모르는 동화들을 새로 쓴 책이 아니라 해석, 분석, 비평한 내용이다.

 

백설공주의 어머니 왕비와 계모 왕비, 백설공주는 모두 대상화된 여성들의 원형이다.”

 

대상화되는 자리는 여신의 제단이 아니다.”

 

겁쟁이에다 사회화가 강하게 된 나는 움찔 놀라며 만나게 되는 거침없는 표현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고 그 시선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내가 경험한 세계와의 괴리가 그만큼의 거리감으로 느껴질 뿐이다. 물론 내가 운이 좋았을 뿐, 역사적으로 여성이 어떤 폭력에 시달려왔는지를 몰라볼 정도로 협소하지는 않다. 사례와 이야기만으로도 두렵고 아플 뿐이다.


로맨스라는 기제에 기만당하면, 자신의 욕망 대신 남의 욕망을 욕망하며 살아야 한다는 뼈아픈 현실을 직시했으면 좋겠다.”

 

여러 문학 사례들이 많지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관한 글은 어린 시절이 아닌 성인이 되어 만난 무척 좋아한 작품이라서 특별히 더 흥미롭게 읽었다, 짐작한 내용도 일부 있지만, 가오나시가 치히로의 내면에 있는 거대한 결핍이며, 빨간 모자의 늑대라는 생각은 못했다.

 

첫 장면이 인상적이다. 부모(어른들)의 사정에만 온전히 따른 전학과 이사, 치히로의 결핍. 이름을 잊고 상처 입은 존재들. 남을 도우며 나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식은 낯설지 않다. 전학 간 학교에서보다 더 낯선 존재들과 맺은 관계는 현실의 관계 설정도 돕는다. 치히로는 그 이세계의 에서 성장을 위한 고난을 치른다.

 

서양의 수많은 신화와 동화 속에서 늘 화가 나있는 은 일견 남성성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는데, 저자는 남성 영웅, 왕자, 구원자가 해치우는 (메두사)’가 여성이라고 해석한다. 남성이 길들일 수 없는 여성의 본성을 제거하고 순종적인 사랑받을 만한 성향만 남은 여성을 구출(?)하는 반복되는 가스라이팅. 그런 이야기를 접하고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러나 깊숙하게 거부와 제거 대상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두려움이 스며든다.

 

용을 죽이고, 발가벗고 무기력한 공주를 구하는 일은 지배자가 피지배자에게 건네는 강력한 메시지이지 이데올로기다. (...) “네 속의 연약한 부분만 골라서 사회에 편입시켜 살게 하겠다라는.”

 

이야기와 해석이 과장이거나 망상이라고 생각한다면, 현실 역사에서 마녀사냥의 사례를 찾아 읽어보길 바란다. 마녀의 이미지를 이야기가 어떻게 굳혔는지, 약초에 대한 지식이 있는 치료사 여성들을 어떻게 죽였는지, 2024년에도 남성권력이 거부하는 여성의 낙태권은 어떤 유구한 맥락 속에서 이해되는지를.

 

과거에 치료사 여성은 약초에 대한 지식으로 피임과 출산과 낙태를 도와주었다. 즉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에 대해 주체성을 갖게끔 하는 위험한 지식을 가진 것이다.”

 

인간과 인간사회를 배우기 위해 영장류를 연구하는 이들이 있다. 인간은 동물과 자신을 분리시켰지만, 그 세월은 실은 아주 짧다. 인류의 의식과 역사 속에서 인간과 동물은 넘나드는 존재들, 완전히 다른 존재가 아닌 존재들이었다. 인간이 그은 수많은 경계들, 그 선이 두려움을 상징한다면, 누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찬찬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누가 이익을 얻는 지도.

 

차분하게 통찰을 이어나가자. 읽고 쓰고 대화를 나누자. 생명을 잇고 삶을 주관하는 신화 속 여신들처럼 계속 뜨개질을 하자.무엇이든 뜨고 싶은 걸 떠!” “무엇이든 쓰고 싶은 걸 써!” “지지 말고 서로를 조금 더 구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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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혼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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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에 출간된 이 작품을 2024년에 읽으니, 배명훈 작가와 관련된 내 저장 데이터 공간이 우주 어딘가의 중력장 변화에 영향을 받아 형태를 바꾸는 기분이 든다. 낯선 곳을 방문한 듯 조금은 설레고 조금은 조심스러웠다.

 

작품의 설정은 어떤 의미로는 고전적이다. 제목에서 느낀 궁금증은 전쟁과 사랑이라는 클래식한 두 소재의 공존에,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불리지 않는 부재에, 어둡고 광대한 공간으로 확장되는 막막함에 더 깊어만 갔다.

 

그래, 그건 조난이야. 무언가에 깊숙이 잠겨버리고 만다는 뜻이지. 어둡고 고요하며 거대하고도 막막한 무언가에.”

 

허무감이 밀려왔어. 원래부터 마음속에 지니고 있던 거대한 공허를 비로소 발견한 건지도 몰라. 우주 출신의 태생적 존재론 같은 것 말이야.”

 

주인공 캐릭터는 지구생명체이자 지구문학독자인 내가 알고 있는 독립 개체가 아닌 듯도 하고, 우주 어딘가를 떠도는 의식체인 것도 같고, 작가의 의식 한편과 연결되어 마치 연kite처럼 우주로 날아간 지능체인 것도 같다.

 

이 전쟁은 왜 발발했는지, 누가 누구와 싸우는 건지, 퇴행한 지구에서 21세기에 벌어지는 학살과 파괴의 현장에서, ‘착한 편이라고 자칭한 이들의 거침없는 무자비함을 목격하듯, 공간이 확장된 만큼 더 막막하고 무의미하다.

 

그래서 사랑은 어디, 언제, 라고 조금은 불안해질 때, 나는 그 서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몰라, 애틋한 그리움만을 겨우 이해하는 사랑의 문장들을 만난다. 우주공간이란 인간에게 적대적인 환경이 배경이라서, 잘 모르는 그 사랑도 귀하디귀하다.

 

그냥 사랑하는게 아니고, 내가 날아온 거리만큼, 그 지긋지긋한 우주 공간만큼 사랑하는 거라고. 그래서 너를 한자리에 매어두고 싶다고. 하지만 그 말은 할 수 없었어. 정말로 너를 매어두는 게 옳은 일인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 부분이 애매했지. (...) 영혼에 관한 문제였으니까.”

 

이 사랑은 정말 타자간의 연애일까, 이름 없는, ‘반란군이란 별칭으로 불리는 주인공은, 문학을 창작하는 작가가 문학이란 중력에 꼼짝없이 붙들려서, 존재와 세계와 허무에 대해 내내 고심하는 것처럼, 중력장으로 증거하고 복원으로 존재하는 존재 자체의 무게와 관계에 대한 고민과 소통에 대한 어려움을 읊조린다.

 

아무튼 지구 출신들은 여러모로 이상해. (...)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원초적인 윤리는 식인이나 근친상간에 관한 금기가 아니라 위와 아래를 구분하는 능력이래. 사람의 귀는 내면에서 들려오는 자아의 소리나 양심의 소리를 알아듣기 훨씬 이전에 중력이 몸을 끌어당기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나.”

 

독백처럼 들리는 문장들이 쓰라리고 서글프다. 찰나의 실존을 경험하는 동안 우리는 왜 이다지도 깊은 허무를 때로 느끼며 견뎌야할까. 대화와 응답은 물리적 거리보다 더 먼 이해의 차이를 확인시켜주는 경우가 더 많다.

 

우주에서 누구도 알아보지 못한 어둡고 작은 행성 지구, 그 중력에 맞춰 태어난 우리는 이런 외양을 하고, 우주 공간에 겁먹으면서도 대담하게 우주로 나선다. 직접 가지 못하면 의식이라도 보낸다. 혹은 우주를 지구로 데려온다. 그건 지구에서의 삶이 때론 무척이나 외롭기 때문일까. 아무리 확장해보아도 여전히 외롭기 때문일까.

 

그리고 평화가 찾아왔어. 천천히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혹은 반드시 우리 자신을 되돌아봐야 하는 시간이.”

 

전쟁도 사랑도 청혼도 모를 일이다. 다만 지구인간임Earth-humanness’*에 조금 울었다. * 이 작품에 없음. 내가 만든 조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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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테말라 안티구아 파노라마 - 200g, 핸드드립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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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받은 친구가 아주 좋다고 해서 몹시 궁금해서 내게도 선물해 봄. 포장을 여니 황홀한 향. 깊을 맛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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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잘해줘도 당신 곁에 남지 않는다 - 가짜 관계에 끌려다니지 않고 내가 행복한 진짜 관계를 맺는 법
전미경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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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올드한 표현이지만, ‘천직을 수행하는 듯한 이들이 계시다. 책을 읽으면서 내용에서 배우는 것들도 즐겁지만, 저자와 문장이 주는 느낌에서 받는 힘이 좋다. 내게 없고 내가 못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나는 위로를 받는다.

 

우물쭈물하지 않고 솔직하고 군더더기 없고 오랜 성실한 경험에서 배운 것을 자신 있게 나누는 글. 가제본으로 200쪽이나 읽었지만, 이후 내용이 무엇일지, 얼른 더 읽고 싶었다. 읽을수록 피로가 회복되는 신기하게 유쾌한 책이다.

 

처음 들어본 신조어(?), ‘알빠노에 웃으며 이어읽기를 시작했다.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부담에 그렇게 살기 어렵지만, 속으로는 수백 번 외쳤을 법한 말이다. ‘내가 알 바 아니다!*’ 내 식대로 바꾸면, ‘그게 내 잘못은 아닐 텐데!’

 

* 알프레드 아들러가 제안한 과제의 분리’. 내가 남의 과제까지 해결해 주지 말자는 것.

 

특히 상대가 먼저 이기적이고 무책힘한 알빠노를 시전한 경우, “합리적 알빠노로 내가 대응할 수 있다면 문제 해결, 관계 관리, 스트레스 감소를 돕는다. 예를 들면, 악플은 안 읽는 게 최선이지만, 혹 눈에 띈다면 부디 힘차게 알빠노하시길 응원한다.

 

기억할 점은, ‘알빠노’, 각자의 과제를 분리한다는 것은 인간관계의 목표가 아니라 입구(알프레드 아들러)”라는 것이다. 서로를 철저히 배제 분리하는 방식이 아니라, 과한 밀착 상태를 정리하고 필요한 거리를 확보해서, 이상적으로는 서로가 좀 더 편안해지자는 것이다.

 

이는 내가 주로 하는 외면과 회피와도 다르다. 저자는 인간관계의 갈들을 피하지 말고 부딪히는 것이 성장하는 방식이며, 나답게 살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밝힌다. 그래서 타인과 싸운 기억이 잘 없는 나는 관련 고민이 많다.

 

늘 유용한 조언인, “난다는 것과 낸다는 것의 차이는 평생 기억하고 싶다. 주어와 목적어에 짜증등 어떤 감정 반응이라도 활용 가능하다. 감정이 생기는 것이야 말릴 도리가 없지만(해탈에 이르지 않는 한), 그 감정을 타인에게 쏟아내는 것은 하지 않고 살 수 있기를.

 

타인에게 감정을 솔직히 표출하는 것이 꼭 바람직하지만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타인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 상황에 맞는, 적절한 정도의 부정적인 감정 표출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잘못한 점을 스스로 돌아보게 해줍니다.”

 

분노의 다양한 형태 - , 짜증, 성가심, 격노 등 - 에 대한 설명과 분노가 가진 힘 - 유일하게 우리가 행동화하게 만드는 정서 - 이란 정의가 좋다. 분노는 없애기보다, 정당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세상의 불의와 부조리에 대응하는 힘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은 움츠러든 방식이 아닌 행동하는 방식이 된다.

 

인지적 공감에 대한 예시도, 공감만 말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구체적인 행동이 진짜라는 지적도 기분 좋은 일침이다. 말만 하는, 공치사만 남발하는, 그런 식의 실망과 좌절을 경험하게 하는 태도는 얼마나 많았던지.

 

전체적으로 일관되게 그건 가짜!”라고 분명히 말해주는 책이라서 즐겁게 위로 받으며 읽었다.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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