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속삭임 - 제24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보름달문고 93
하신하 지음, 안경미 그림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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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좋아하는 물리학 전공자이고 칼 세이건과 <코스모스>의 오랜 팬이다. 그래서 20대에 생긴 별명이 별먼지 그리고 우주먼지다. (부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재밌다.)

 

귀 기울여 듣고 싶은 멋진 책 제목에 첫 단편은 [반짝이는 별먼지]이고 책과 함께 우주복권도 도착했다. 여러모로 몹시 설렌다. 아이들에게 넘기기 전에 먼저 읽어보고 싶었다.

 

1

 

말도 안 되는 일이 더 많이 벌어지는 게 세상이지. 지금까지 50년이나 기다렸단다. 나는 이제 곧 오로타로 가게 될 거야.”

 

할머니가 등장하는 여행자숙소, 설정을 파악하자마자 울 것 같은 기분이 사라지지 않는다. SF라는 착장을 하고 지독한 그리움을 우주라는 막막한 공간에 투사하는 서러운 이야기를 동화처럼 풀어내었다.

 

떠나는 사람이 있으면 오는 사람이 있지. 별먼지처럼.”

 

생멸生滅이란 손 쓸 도리 없는 냉혹한 법칙 같은 일들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뜨거운 눈물을 쏟고 매달려보고 오래 그리워하는 일뿐이다. 그래도 혼자 남겨 두지 않은 다정함이 안심이 된다. 아이들을 이런 세상에 두고 떠날 생각이 두려운 어른 독자에게도 위안이 된다.

 

내 몫의 여행을 떠날 때가 왔구나.”

 

2

 

이끼류에 대한 짧은 공부를 하고 난 뒤, 오랜 생존의 역사에 대한 존경심이 커졌다. 동시에 포자로 번식하는 균류에 대한 무섬증도 조금 생겼다. 특별한 악의가 있다는 상상(모함)이 아니라, 이전 존재를 분해하고 지운다는 역할이 놀라운 만큼 두렵기도 해서 그렇다. 두 번째 단편의 전개와 장면이 그런 내 느낌을 다루는 소재라서, 사랑의 이야기라는데 나는 두렵기도 쓸쓸하기도 했다.

 

3

 

달은 점점 지구로부터 멀어져 언젠간 지구의 궤도를 벗어날 거라고 한다. 하지만 달은 아직 나를 따라다니고 점점 더 세게 끌어당긴다. 밤에 떠오른 환한 달을 보고 있으면 엄마가 다가와 내 등을 슬슬 문질러 준다. 그러면 어느새 깜빡 잠이 들었다 아침을 맞곤 했다.”

 

평범한 가정의 풍경 같았는데, SF라는 걸 잠시 까먹었다가 호되게 충격을 받았다. 인간의 기대수명이 더 늘어나는 것이 좋기 만한 일인지 또 생각이 많아진다. 뭐 고민한다고 막을 수도 바꿀 수도 없을 것 같지만.

 

기억을 가져가길 원해서 지우지 않았어요. 달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때까지 전원을 억지로 끄지 말아 주세요.”

 

달에 대한 이끌림을 이런 결말로 마무리하는 작가의 현실 어딘가의 고발 르포 같은 문학이 놀랍고 서럽다. 구매하고 소비하고 폐기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 된 인류 문명을 생각한다. 관계도 그렇게 된 지 이미 오래일까. 사랑의 수명은 어떻게 되는 걸까.

 

내가 사랑한다고 말했는지, 안녕이란 인사를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4

 

태양의 뜨거운 열기를 견디지 못한 수성과 금성이 먼저 타올랐다. 그 뒤로 지구를 따라 돌던 달이 폭발했고 그 조각들이 지구로 쏟아졌다. 머지않아 지구는 물론이고 화성과 목성도 곧 사라질 것이란 뉴스가 쏟아졌다.”

 

지구 종말의 풍경은 영화라도 보고 싶지가 않다. 우주가 궁금하고 반하기도 했지만, 우주를 오래 들여다보면 언제나 무섬증과 소름이 돋는다. 인간이 살 수 있는 단 하나의 우주 공간은 지구뿐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산소와 탄소와 수소, 칼슘과 황, 염소 등으로 만들어졌어. 거기에 구리, , 규소가 약간 들어가 있지. 인간은 지구와 같은 성분으로 이루어졌다. 쉽게 말해 인간의 몸은 흙과 같은 성분이라고 할 수 있단다.”

 

우주 공간을 떠돌며 점점 더 기계화되고 컴퓨터와 의식만 남은 존재가 되는 이야기 속에서 종이책을 잠든 가족에게 읽어주는 장면이, 헤어지고 싶지 않은 사람의 마지막 잡은 손길 같아서 또 훌쩍거렸다.

 

나에게 책 읽어 주기는 우리가 꼭 다시 만나서 서로의 촉감을 확인할 날이 올 것을 약속하는 시간이었다.”

 

생명을 가진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해야 할 일은, (있다면) 무엇일까. 얼마나 먼 미래를 위해 현재를 사용하고 준비해야할까.

 

아주 짧은 순간 느꼈던 감각의 기억들이 이 우주선 안에서도 나를 따라다녔다.”

 

이번 생에 나는 결국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에 실패해서 아무 것도 극복하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평생을 허우적거린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제 십대인 아이들이 살아가기에 좀 더 친구가 많은, 친구 같은 세상이기를 바라니까, 떠날 날까지 뭐라고 하며 살아야겠지.

 

온 우주가 우리의 친구였던 것처럼, 우주 또한 우리를 친구로 여겨 주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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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클래식 그래픽 노블
조지 오웰 원작, 피도 네스티 지음, 강동혁 옮김, 염승숙 해설 / 사계절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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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는 상당히 어두운 톤의 그래픽이다. 만화라고는 하지만, 크기가 일정한 컷이 단정한 방식이라서 주제처럼 진지하고 묵직한 분위기가 여전한 매력이 있다. 나처럼 조지 오웰 책을 만화로 읽을 생각을 못 해본 독자들에게도 너무 낯선 느낌이 없어서 좋다.



 

예전에는 좀 더 SF적 상상력과 문학으로 마음 편히 만났다면, 지금은 무척이나 서글프다. 사회의 문제와 비밀을 먼저 알아챔 사람이, 변화를 위해 애썼지만 실패하고, 저항을 그만 두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결국 지배 대상인 빅브라더를 사랑하게 되는 결과라니. 나대신 사랑하는 이를 고문해 달라는 내용은 작가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지독하게 아프다.

 

그를 마음 편히 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훨씬 더 약하고 비겁하게 굴 것 같기 때문이기도 하다.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문당하고 처형당하고 배신과 변절을 강요당하고 망가졌을지 너무나 슬프기 때문이다. 억울함 대신 죄책감으로 원망과 고발 대신 기록도 없이 사라져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문 얘기를 먼저 했지만, 지배대상은 기억과 언어다. 인간의 정체성과 고유성을 이루는 것들을 통제하고 관리함으로써 어떤 지배가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그래픽이라서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서늘해진 경고의 메시지를 품은 문학이다.

 

새 언어의 목표는 생각의 범위를 좁히는 것이라네. 우리는 결국 사상범죄를 문자 그대로 불가능하게 만들 거야. 사상범죄를 표현할 단어가 사라질 테니 말이지. 필요한 모든 개념은 정확히 한 단어로 표현되겠지. 혁명이 완수되는 건 언어가 완벽해질 때야.”



 

이튼스쿨을 다닌 조지 오웰 자신이 말했듯이* 사립학교에서 옥스퍼드를 거쳐 지배계급이 되는 영국의 초엘리트들은 전문 지식보다 정치적 언어유희를 더 중시하는 태도를 배운다. ‘옥스퍼드 유니언이라는 토론 클럽에서는 지배계급의 말솜씨를 훈련시켜 정치무대로 내보냈다. 이 패턴은 영국 현대사 전반에 걸쳐 반복됐다.

 

* “어떤 형태로든 과학은 배우지 않았다. 정말로 너무 무관심해서 자연사에 관한 관심조차 꺾일 지경이었다.”

 

우리가 기억하지 않고 기록하지 않고 말하지 않고 비판하지 않으며 어떤 세상을 살게 되는지를 그래픽으로 가시화된 문학을 통해 다시 깨닫는다. 가능성과 경험 모두 두렵고 무섭다. 더 위험한 공포 영화는 없다. 피로하고 지쳤다고 조금 더 안주하고 외면하고 싶을 때 떠올린다면 목덜미가 서늘해질 경고다.

 

1984년은 지났지만, 우리가 안주하는 어느 순간에도 1984의 풍경은 다시 도래할 수 있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라는 구호는 낡지 않았다. 힘이 빠지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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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농장 클래식 그래픽 노블
오뒤르 지음, 강동혁 옮김, 조지 오웰 원작, 염승숙 해설 / 사계절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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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책으로도 한글 번역본으로도 읽었는데, 이제 그래픽노블로도 만날 수 있다. 초등생에겐 동물농장이 가독성이 더 좋을 듯하고 고등학생에겐 둘 다 권할 예정이다(20세기에 읽은 어른 독자의 선입견일지도). 판형이 커서 왠지 설렌다. 경고와 메시지는 더 강렬할 듯한 시절이다.



 

20세기를 살던 20대의 나는, <동물농장>을 체제 비판, 정치체 비판, 사회 비판으로 정하고읽었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권한을 탐하고 권한을 가진 후 부패해지는 모습은 여전히 궁금하고 흥미롭고 안타까운 지점이다.

 

차이가 있다면, ‘권력은 언제나 대의하고 대행하는 우리에게 있다는 점을 원칙적으로 확실히 인지한다는 점이다. 현실에서는 여전히 원칙으로만 존재하고, 권한을 가진 자가 군림하긴 하지만, 그래서 더욱 원칙은 중요하다.

 

책은 점점 더 친절해지고 있다. 이전에는 오독과 남독도 많았지만, 상상과 해석의 여지도 더 컸다. 동물 농장의 인물 관계도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가이드북은 시절 변화를 절감하게 한다. 덕분에 활동도는 더 좋아질 것이다. 혼자 읽기에도 도움이 되지만, 학교에서 학습 자료로 쓰기도 편리할 듯하다.



 

또한 알던 문장이 아닌 새로운 서술을 따라 읽는 것과 시각(그래픽)이 더해진 책은 이전의 흑백의 암울한 상상 속 동물농장과는 다른 분위기로 캐릭터와 이야기를 만나게 해주어서 새로운 즐거움이 있다.

 

정보 독점과 은폐와 조작이 불가능할 시대가 될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그런 일은 여전하고 다양하고 플랫폼이라는 수단을 통해 확산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고, 가스라이팅(인지 의도적이고 자발적인 동의인지)은 더 가시적으로 강력한 것처럼 보인다. 이 모든 게 다 강화되는 편견과 선입견으로 귀결되는 알고리즘 탓일까.

 

어쨌든 부패와 지배의 공학은 같다. 우리에겐 살아온 세월만큼의 데이터가 있다. 부패의 사례도 거짓말(사기)의 사계도 많다. 그리고 분명 속지 않고 제대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시민으로 사는 방법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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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몇 번의 동의를 구했나요? - 건강한 관계를 위한 경계 존중 수업 사계절 1318 교양문고
오승현 지음 / 사계절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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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존중은 청소년만 배울 내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육과정이나 인간관계에서 미처 배우지 못한 어른들이 많고 배웠다고 해도 기억하고 실천하고 연습하지 않으면 무심결에 경계를 존중하지 못하는 말과 행동을 하게 되니까.

 

존중이란 동의할 때는 물론 거절에도 중요한 태도다.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기본이고 먼저다. 간단하지만 쉽지 않은 게 미스터리다. 이는 청소년의 성적 자기 결정권과 범죄 예방으로도 확장되니 더욱 중요하다.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 일반 권고 제35여성에 관한 모든 형태의 차별 철폐에 대한 협약을 보면 부부·지인·데이트 강간을 포함하여 성범죄의 정의가 자유로운 동의의 부재에 기반을 둔 강압적인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보장하라라고 명시합니다.”

 

어른이라 할 말이 더 없이 부끄러운 시절, 명백한 악의를 가지고 혹은 의도적으로 혹은 이익 추구를 위해 타인을 공격 대상으로 삼아 모욕하고 죽어라 돌팔매질도 서슴지 않는 폭력적인 사회에서 비극을 막기 위해 이른 시기부터 꼭 필요한 교육이다.

 

많은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살던 대로 하던 대로 말하던 대로, 너무 당연하고 쉽게 우리가 동의를 구하지 않고 하는 행동을 돌아보고, 익숙해질 때까지는 노력이 필요한 의식적인 연습이 필요한 중요한 주제다.

 

독자의 연령에 따라 내 위치와 입장이 하나가 아닌 여러 개로 중첩될 수가 있다. 그래서 때론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타인의 폭력에 당한 경험도 누군가에게 부주의하게 했던 언행도 모두 짚어보자.

 

고민하고 조심하고 경계하고 결심을 새롭게 하고 언행에 주의하고. 감정이 치솟을 땐 차라리 침묵하고. 서두르지 않고 호흡을 고르며 상대를 제대로 보고 들을 줄 알면 큰 실수나 가해를 예방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

 

거리를 둔다는 건 멀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 배려하고 조심한다는 뜻이에요. '조심(操心)'이라는 글자는 '마음을 쓴다'는 뜻의 한자어예요. 잘못이나 실수가 없도록 자기 말과 행동에 마음을, 즉 신경을 쓴다는 뜻이에요. 상대가 불쾌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사람은 자기 경계를 잘 지킬뿐더러 타인의 경계도 잘 지켜 줘요.”

 

몇 년 전만 해도 깜짝 놀랄 만큼 자신의 아이와 가족을 매일 노출시키는 사진과 글이 참 많았다.* 직접적인 사진만이 아니라, 타인이고 개별 인격체인 자녀 이야기를 동의 없이 공개하고 다른 이에게 전달하는 것도 해서는 안 된다.

 

* 셰어런팅: 부모가 SNS에 자녀를 찍은 사진이나 자녀에 관한 글을 습관적으로 올리는 행위.

 

내가 살고 싶은 사회는 자신을 자주 들여다보는 사람,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 누군가를 보살필 줄 아는 사람, 애써 힘을 보태고 위로를 건네는 사람, 그런 마음과 태도를 가진 이들이 많은 종류이다. 그런 문명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필요한 존중과 배려와 숙고를 생각해보라고 친절하게 손잡아 주는 소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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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홀 사계절 1318 문고 78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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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멀쩡해 보이는 맨홀도 무섭다. ‘이라고 믿은 도로와 인도도 무섭다. 언제 홀hole이 생기거나 거대하게 가라앉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발생하는 지반 침하는 모두 맨홀man(made)hole이다.

 

허술한 시스템이 대량 양산한 현실 곳곳의 유무형의 홀hole들이 안타깝고 두렵다. 박지리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을 이제야 읽는다. 작품 속 맨홀은 어둡고 깊은 함정일까, 도피처일까.

 

이곳은 운동과 상담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잠깐의 유예 장소일 뿐이다.”

 

...! 제목을 보고 인간이 만든()만 생각했는데, 인간 자체가 무수한 구멍이구나. 한 방식으로 아는 지식도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면 그제야 어떤 깨달음처럼 느껴진다. 그렇구나, 내 몸에 난 구멍을 다 셀 수가 없구나. 땀구멍과 모공이 모두 몇 개야...?

 

이런 충격(?)을 도입부터 받고, 아는 바가 전혀 없는 장소와 상황에 대해 마치 절절한 경험이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문장력에 사로잡혀 점점 더 깊게 파묻히며 계속 읽어 나갔다.

 

아홉 살 때 목격한 절망적인 천장이,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서성이던 열두 살의 어두운 하늘과 이어져 있고, 열두 살 때 느낀 공포는 마치 오늘이 어제가 되듯 잠을 잘 수 없었던 열다섯, 열일곱의 밤 속에 녹아 있다.”

 

박지리 작가님 그리 일찍 떠나지 않으셨으면 어떤 작품들을 더 만나볼 수 있었을까 진해지는 아쉬움과 비례하듯, 막 넘어진 직후라서 벗겨진 피부로 찬 공기와 출혈을 고스란히 느끼는 순간처럼 이야기가 욱신욱신 아프다.

 

문학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고통이 반복되는 가정, “고요한 순간 뒤에 다가올 더 큰 폭력에 두려워하는가정에 대해 짐작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경험하고 기억하는 유년기와 청소년기는 평균표준에 가까운 어떤 것들이다. 친구들에게서도 아주 다른 이야기를 듣지 못했소, 지금 십 대 아이들의 시절도 대개 무탈하고 별 일이 없다. ... 지독한 악몽 같지만 자력으로 떠날 수 없는 지옥 같은 시간들을 견디는 법을 혹은 끝내는 법을 모른다.

 

변호사는 내가 아버지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맨홀에 보물처럼 숨겨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엄마와 누나는 긴장한 모습으로 변호사의 말이 모두 진실인 것처럼 경청하고 있었다. 나는 마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반복적으로 폭행하고 살해하기도 하는 가해자를, 세상은 여전히 가족이라고 혈육이라고 부른다. 정말 그럴까, 어린 시절 흔한 경고처럼 조심하라던 낯선 사람보다 더 위험하고 위협적인 그가 영원한 생득적 권리를 가진 듯 가족이어야 할까.

 

나에게 스스로에 대한 긍지라는 게 조금일도 있었다면 나는 그 사람의 죽음에서 어떤 슬픔도 느끼지 않았으며 내가 저지른 살인은 오로지 내가 선택한 결과였다고 항의했어야 했다. 당신들이 나를 성실하고 착한 아이로 알고 있었을 때, 나는 늘 살인을 꿈꿨고 오히려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살인자가 되는 망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

 

세상엔 피난처가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이미 (나이만)어른이 된 뒤에도, 어린이와 청소년이 의논할 단 한 사람의 어른은 왜 이리 부족하냐고 남의 일처럼 화를 내며 살았다.

 

십 년간 나를 불러들인 구멍은 구청에서 고용한 사람들이 시멘트로 막아 버렸다. 하지만 여기 밤거리를 달리는 이 구멍은 무엇으로 막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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