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잃어버린 것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2
서유미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5

 

<우리가 잃어버린 것>어쩌면 서둘러 읽게 되지는 않았을 작품이었다뭐랄까나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진지하게 결혼출산육아경력단절구직활동을 쓰디쓰게 겪어낸 분들을 위해 작가가 차분하게 손길을 내민 작품일 거라 짐작했기 때문이다.

 

나이 든 분들은 지금 좀 힘들어도 아이는 꼭 필요하다고우리 사회에 아이가 없어서 어떡하느냐며 걱정한다그런데 밖에 나가 보면 이 사회의 시스템 자체가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중략그러면서 왜 결혼을 안 하고 애를 안 낳느냐고 묻는다아이 문제뿐 아니라 그런 일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그런 부조리한 일들에 대해 생각하면 피로해졌다.

 

2/5

 

2월이 시작되고 존경이란 단어 하나로는 거의 아무 것도 설명할 수 없는그분들의 부재란 내 삶의 갖가지 구성들을 와장창 부수고 말가르치고 보살피고 맡겨진 역할 이상의 수많은 것들을 주신 두 분 스승들께서 타계하셨다.

 

먼저 떠나신 분의 부재조차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매일 확인하고 놀라고 절망하는 일을 온통 감정적으로 반복하는 중에 또 다른 연락이 밀치고 들어왔다한 순간이라도 늦춰볼 수도 말려볼 수도 싸워볼 수도 없는어떤 노력도 재능도 가진 것도 다 무의미한닥치는 대로 당하는 이별연이은 사별이었다.

 

가까이 사는 친구가 금방 울 것 같은 얼굴로 찾아와 먼저 읽어 봤다며 조용한 위로처럼 책을 건넸다황망한 마음에 고인 슬픔이 조금만 줄어 네 손바닥 위에 올릴 수 있는 이 작고 고운 책처럼 257g이 되길 바란다는 편지와 함께.

 

무연탄 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를 사용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232-257g/km 기저질환이 없는 노후건강을 위한 탄수화물 섭취권장량이 257g 이하 4,200원 할인 판매한다는 맛은 그저 그렇다는 즉석비빔밥 내용량이 257g 중고판매상품으로 나온 윌슨테니스라켓이 257g 궁극의 포켓터블 스냅용카메라 무게가 약 257g 세상엔 257g인 것들이 많네 이유도 의미도 없이 화면에 띄워보았다.

 

3/5

 

표지 그림을 오래 보았다풀지 못하면 내용을 들여다볼 수 없는 퍼즐처럼말이 되게 짐작해보고자 이해하고자 이리저리 애를 썼다함의들이 가득할 거라는 강박적인 느낌에 편하게 넘길 수가 없었다.



저 뾰족한 칼을 든 이는 사람일까 인형일까 한 명은 사람이고 한 명은 인형인가 다른 자아인가 딸인가 뾰족해 보이지만 나뭇잎을 뭉친 것만 같은 칼날은 무엇일까 정면을 향하도록 왼손으로 들고 선 이유는 무엇일까 상자 옆면에 앉은 고양이는 기울어진 차원에 존재하는 걸까 검은 고양이는 상자 밖을 벗어난 존재인가 나무가 받치고 있는 이 상자는 어떤 세계인가 숨 막히게 작은 사적 공간인가 열려 있는 상자인데 아무도 밖으로 나오지 않는 건가.

 

감상 훈련이 부족해서 이야기들이 들어맞지도 연결되지도 않았다아티스트 역시 내용을 읽고 표지 그림을 만들었을 수 있는데읽지는 않고 왜 머뭇거리는 것인지본질의 한가운데로 뛰어들기 전 미적거리는 이런 버릇은 언제부터인지시작하기를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4/5

 

부족한 문해력이 간혹은 더 부족해지기도 하는지 책 소개를 읽고 받은 인상과는 촉감이 다르게 읽히는 문장들을 많이 만났다결혼출산육아경력단절구직에 대한 하소연과 속 풀이를 진하고 풍성하게 담은 이야기가 아니었다경주라는 인물의 상실의 계기가 그랬을 뿐어떤 계기로 무엇을 잃어버린 누구이든모든 상실은 발생하는 순간은 감당하기 힘들고 속절없이 당하고 나면 결과를 견디기 힘들다는 것을 오래 지켜본 시선이 느껴졌다.

 

경주는 막막하다는 말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 같았다앞과 뒤양 옆을 둘러봐도 열고 나갈 수 있는 문이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쳐지고 어떤 회의가 끼어들까봐 최선을 다해 저항했다.

 

문득 낯이 화끈 뜨거워지며 민망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난데없이 닥친 불행으로 다치는 사람살이의 아픔누군가의 그 틈이 더 벌어지기 전에 실체로 다가가서 메우고 품으며 살자했던 서유미 작가가,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 대해 취재 기사처럼 특정한 상실 사건을 다루는 문장들을 한가로이 수집했을 리가 없는데.

 

인생이란 얼마나 이상한지여기에서 저쪽을 보면 그럴싸해 보이고 고통이나 그늘을 짐작하기 어렵다. SNS는 그런 착시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사람들은 그걸 알면서도 기어이 접속해서 그 온도차를 경험했다.

 

인간도 인생도 원래 이런 거니 마음 편히 가지라는 위로나패배감이나 죄책감에 마음이 패이고 녹아내리는 이들에게 돌파구를 안내해주는 이야기가 아니다허정거리며 나아가는 길에 걷는 속도가 비슷해 우연히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동행처럼내가 있을 장소와 공간을 찾거나 마련하지 못해 몸 둘 바를 모르는 이의 옆 자리에 조용히 앉는작가는 그런 연대와 연결을 만드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호감을 느끼지만 호감을 표현하는 일을 하지 않아 줄지 않고 딱 그만치서 경주가 서 있는 거리가 쓸쓸했다여유롭게 나이를 탓하며 이미 꽤 오래 전에 말로 자신을 충분히 설명해서 친밀감을 쌓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느꼈으면서홀라당 뒤집어 보여줄 수 있는 가방 속 같은 거라면 얼마나 간단하고 명료할까아쉽고 피로하다는 게으른 변명도 자주 했으면서그래도 뭐라도 물어 보고 날씨 얘기라도 꺼내보라고 경주에게는 소곤소곤 귀엣말을 전하고 싶었다.

 

운이 좋은 이들은 그런 시기 죽도록 쓸쓸하네외롭네허전하네막막하네 를 겪고 나서잘 몰라도 확실한 친밀감을 느끼는 상대를 알아보는 능력이 발현되기도 한다그냥 아는 거순간의 눈인사로목소리로행동으로간단한 말로짧은 글로무엇으로든차곡차곡 겪어 본 감정의 결들이 빅데이터처럼 순식간에 종합적 판단을 내리고직관이라 부를지 운명처럼 느낄지 선택지만을 남겨 준다.

 

이 작품에서 참 중요한 요소가 공간장소들이라는 걸 이해하고 나니경주와는 겹치거나 비슷한 장소를 공유하지 않는데도어느 날의 내 일상을 관찰한 것인가 싶은 당혹한 느낌을 주는 표현들이 줄줄이 이어진다는 모순적인 느낌을 받았다대상 인물의 일기장도 읽어 보았나 싶게 반쯤은 잊거나 흐릿해진 심정을 속속들이 되짚어 내기도 한다경주가 어떤 장소에서 어떤 생각을 할 때마다 나도 잠시 내 현실에 있었던 그 장소로 이동해서 하던 일을 하고 느끼던 것을 오롯이 느끼는 복기체험을 하기도 했다.

 

하루가 먼 우주 속으로 사라지며 소멸하는 건지 새롭게 시작되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뭐가 잘못된 걸까시간을 다시 돌린다면 어떤 부분을 바꿔야 할까.

 

무엇에 홀렸나 싶은 헛헛한 마음 한편에도 누가 나를 재미 삼아 엿봤구나하는 불쾌하고 억울한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작자는 연신 그랬구나그렇지그랬을 거야라고 공감하는 내내 쉬지 않고 살피고닦고씻고다듬고솜씨 좋게 수선해서 환한 웃음과 함께 보여 주고는뭐든 잃지 말고 잘 보관하라고 모든 기억들을 곱게 개켜서 건네준다.

 

뭐라 말할 수 없고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누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특정한 누군가를 원망하는 것도 아닌그냥 어떤 순간을 지나가는 길이 고단해서 쏟아지는 눈물이었다.

 

어른이 되어도 눈물로우는 일로만 속엣 것을 끄집어낼 수밖에 없는 시기를 지날 때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중략인생을 산다는 게 그 접힌 페이지를 펴고 접힌 말들 사이를 지나가는 일이라는 걸아무리 가깝고 사랑하는 사이여도 모든 것을 같이 나눌 수도 알 수도 없다는 걸하루하루 각자에게 주어진 일을 해나가다 가끔 같이 괜찮은 시간을 보내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로가 강력하면 할수록유일하게 필요한 그 순간에 말하지 못하고 행동하지 못해서자신에게는 후회로 상대에게는 오해로 전달되는 시간들이 반복되는그러면서 서로가 잃어가는 것들도 많아지는 경주를 가만 지켜보며 읽는 일은 아프고 안타까웠다아프고 쓰린 모양으로 지속되는 삶을 살면서 무언가를 천천히 잃어가는 일이 삶 그 자체라고그걸 알아가는 게 슬프기만 한 건 아니라고 작가는 다정스레 말을 건넨다.

 

경주가 하게 된다면이라고 가정한 것들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 배신한 것이 아니라 막상 그렇게 되고 보니 별 볼 일 없다는 걸 깨닫는 방식으로 그녀를 실망시켰다중략실제로 만난 현실은 대체로 볼품없었지만 늘 그렇거나 완전히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예상하지 못한 비밀이나 놀라운 장면을 숨겨두었다가 완전히 절망하려는 순간에 내밀기도 했다그 예외성이 삶 속에서 가정법이 사라지지 않고 지속되도록 도와주었다.

 

삶의 중요한 시기를 지날 때마다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들이 줄어들었다이제 누군가와 가까워질 가능성은 별로 없고 친구라 해도 좋을 만한 관계를 지속해나가는 것도 어려웠다. J가 자신을 배려하지 않은 것에 대해 서운해하는 것보다 자신 역시 이기적인 존재이므로 이해하고 지나가는 쪽을 선택했다.

 

5/5

 

경주야살살 체로 걸러서 위에 남은 것들은 모두 반짝이고 맘에 들고 행복한 미래를 보장하고 온전히 내 거!라는 그런 성인됨을 축하하는 의식이 모두의 권리로 국경일로 정해져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체 아래로 흘러내린 모든 것들이 처음부터 내게 필요하지 않은 것이었다면이런 상상이 정신 승리에 준하는 위로가 아니라 사실이라면 얼마나.

 

경주는 한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세계가 그리 넓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경주야그다지 긴 시간을 살아보지도 못하는 한 개인이 살면서 챙길 수 있는 것은 얼마 안 된다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게 망각이 쉼 없이 필요할 리가 없지지혜를 획득하지도 해탈을 맛보지도 못하는 우리지만 선택했다면 이후의 후회는 필요가 없다상실처럼 선택 또한 어떤 고립이고 단절일 테니.

 

경주는 그들에게 묻는 대신 자신에게 물었고 그들에게 답을 들을 수 없을 것 같아 지나쳤다오랫동안 혼자 짐작하고 헤아렸다자신을 설득하는 동안 질문의 공소시효가 지나가버렸다.

 

너무 많은 조건들을 일일이 확인하지 말고뭐가 되었든 고심한 끝에 멍청한 선택을 하느라 힘겨웠을 자신을바로 뒤따를 상실을 예감하지 못하고 실수를 거듭하는 자신을 잠시 들여다 봐주자그렇게 잠시 이 시기를 지나가자.

 

그럴 수도 있지그래도 되는 거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햇살한스푼의 후다닥 집밥 - 쉽고 빠른 워킹맘 레시피
햇살한스푼 지음 / 미호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쓰레기든 분리수거 가능한 재활용품이든 뭐가 되었든 극적으로 더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매일 더 커진다포장지나 용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지수가 치솟는다일상은 별 일 없어도 분주하고 체력도 한정적이고 뭐가 되었든 먹긴 먹어야 하고아무리 맛있다 해도 매일 같은 메뉴를 먹게 되지는 않고한번 타협하고 잠시 마음을 풀면 배달이든 포장이든 남는 것들이 수북하다.

 

포장이 가장 간단한 식재료들을 구입해서 요리를 해보자는 생각이 뜨거운 울화와 함께 들었다시도해보고 배출되는 쓰레기 분리수거품 양을 비교해보고생각보다 쉬운 지지속 가능한 지 아닌지재난이 닥칠지 어떤 결과가 나올지 일단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식재료는 물론 조리법도 간단하고 쉬워야 하고조리 시간도 짧으면 좋다.

 

다들 저보단 더 잘 아시겠지만식재료 구입손질준비조리뒷정리…… 생각 안 하려고 해도 자꾸 막 남이 해준 것들만 먹고 살고 싶어진다. 이런 복잡한 심정으로 만난 <햇살 한 스푼의 후다닥 집밥>.  제목처럼 햇살이 광명처럼 내리는 후다닥 해치울 수 있는 요리법들이 담긴 책이라 믿고 읽었다.

 

일단 재료 손질과 육수 내는 법이 나온다이런 건 한번 해두면 몇 차례 요리할 동안 건너뛸 수 있으니인내심을 가지고 결심해서 한번 하면 된다고 독려해본다반찬 목록들을 쭉 보고최하위 난이도라고 생각되는 것들만 먼저 읽었다노안이 온 내 눈에는 폰트가 좀 작은 듯한데펼쳐 놓고 서서 요리할 때 참고하려면 좀 작은 듯도 하지만, 몇 번 하게 되면 실용서의 특징 상 오래 볼 필요가 없을 지도 모른단 희망을 버리지 않기로 한다.

 

책 읽다가 검색을 해보니 저자의 블로그와 동영상에도 자료가 많다https://blog.naver.com/dew36 조리법과 상세 과정을 을 배울 때 참조하기 좋을 듯하다.

 

1. 양배추 겉절이(처음 봄): https://blog.naver.com/dew36/222223288921

2. 계란탕(원재료에서 새우 빼고 도전): https://blog.naver.com/dew36/220593732913

3. 미역무침(처음 봄): https://blog.naver.com/dew36/220587784298

4. 봄동 겉절이(얼른 해야겠다): https://blog.naver.com/dew36/220631302790

5. 돌나물 물김치(처음 봄): https://blog.naver.com/dew36/220694371300

6. 간단한 오이무침(좋다): https://blog.naver.com/dew36/220712479291

 

계절 별 요리법들을 보며계절감을 참 많이 잃고 산다는 생각이 든다겨울 내내 오이를 먹은 듯.

 

무침이 제일 쉬운 듯하고 볶음도 간단한 종류들이 있다오호감자채를 썰어 물에 담그지 않고 볶아서 쫀득쫀득하게 먹어 봐야겠다어쩐지 내가 하면 감자채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이 들기도 한다.

 

국 종류도 다양하고 내가 좋아하는 간단한 맑은 국들이 있어 좋다.

 

일품요리는 음……. 후일을 기약하며!

 

한 그릇 요리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요리는 아무래도 당분간 배달과 포장이 답이 듯하지만 다회용 용기가 가능한 곳들을 택해야겠다. 쓰레기 스트레스, 이 시국이 곧 끝나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하니 이젠 아무리 관대하게 생각해봐도 예외적 상황이라는 말로 더 감당이 안 된다.

 

6장 술안주를 보니갑자기 집중과 노력을 통해 요리 실력을 업그레이드 하고 싶은 욕구가 막 생긴다몽땅 육류가 들어가긴 하지만식재료들은 언제나 살짝 변주를 할 수도 있는 일이다오지치즈후라이https://blog.naver.com/dew36/220712479291 라는 새로운 음식을 알게 되었다.

 

일석이조가 될 것인지 포장 쓰레기는 줄고 먹을 수 있는 음식도 만들고 조금 두근두근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긴 어게인 - 삶의 연습이 끝나고 비로소 최고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버니 S. 시겔 외 지음, 강이수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연습도 리허설도 불가능한 것이 삶이라고 꽤 오래 전 정리가 끝났다골머리가 썩더라도 그 순간의 최선’ 이외에는 아무런 대안이 없는 막막한 일이 사는 일이라고.

 

그러니 삶의 연습이 끝나고 비로소 최고의 인생이 시작되었다는 문장을 내세우는 이 책이 안 읽으면 나만 모르는 새로운 발견을 담은 건가 궁금했다언제까지가 연습이고 언제부터 연습이 효과를 발휘하는 진짜 쇼가 시작되는 것인지.

 

믿음을 굳게 다지는 가장 강력한 기도는 고맙습니다가 아닐까 싶다.

 

갈림길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로 이어지는 커다란 원의 시작점이다.’

 

힘든 일이 지나고 나면 그 덕분에 성장한 나를 알게 된다지독하게 끔찍한이건 감당하지 벅차다싶은 일도 지나고 나니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 지는 가변적이지만 이후에 전혀 기대하지 않은 감사한 결과에 이른 적이 있다.

 

위기를 감지하고 평소의 게으른 자아 대신 다른 나가 힘을 내어 그 방향으로 걸어간 것인지여러 복합적인 요인들이 그리로 우연히 결론을 마련했는지는 그 시간을 복기하는 것이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 한 번도 진지하게 분석해 본 적은 없다.

 

하지만몇 번이나 반복해서 그런 경험을 한 것은 분명하다그래도 힘든 당시에는 그런 경험을 떠올리진 못한다어쨌든 내가 의식을 선명하게 하든 못하든자신이 살아가면 만들어간 성향관성이라는 것은 분명히 있다아주 극적인 물리적 환경 혹은 정신적 변화가 동반되지 않는다면비틀거리다 자기가 걷던 길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결국은 그렇게 스스로 그려 만든 원 안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삶의 면적인 것도 같다자신의 팔다리가 좀 더 길어진 것을 알아차리는 이는 지름이 길어진 만큼의 원둘레를 다시 그릴 수 있을 것이고그런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면 이전의 면적 안에서 웅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끊임없이 타인의 문제에 관심을 쏟으며 진정성 없이 살아가는 일상도 감정 부정의 신호다어쩌면 이들은 치유되지 않은 과거의 트라우마를 부인하거나 좀처럼 풀리지 않는 현재의 인생을 부정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스스로 느낄 수 없는 상처는 치유할 수 없다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비슷한 분석들이 많아서 아주 낯선 이야기는 아니다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눈에 띄게 이런 경향을 보이는눈치 없기로 유명한 내게도 들키는 이들을 간혹 만난다그러면 마음이 무겁고 아플 때도 있다.

 

분석만으로 뭐 하나 도움이 될 재주는 없으니 그것도 서럽다. ‘이럴 땐 이렇게 저럴 땐 저렇게’ 사는 일에 지침서가 적절히 업데이트 된다면 참 열심히 따라 해볼 텐데……많은 경우나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아무 것도 못한다.

 

진심과 확신신념과 직관이 가득한 말은 강력한 폭탄과 같아서 폭발의 진동이 난관이라는 바위를 산산조각 내고 고대하던 변화를 가져온다.’

 

엉망진창이 되더라도 막 솔직하고 진심으로 부딪치는 게 맞는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이 되지 않는다어렵다모르겠다.

 

잊지 말자주위 사람들도 모두 나와 똑같은 삶을 살고 있다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고민과 어려움을 안고 살아간다그러니 세상이 불공평하고 암울한 곳이라 느껴진다면 인생 혹은 삶의 태도부터 바꿔야 한다중략지금 여러분의 인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바꿔라변화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변화시켜야 한다.’

 

계속 답을 못 찾는 답답한 기분이 든다번개처럼 머리에 내려치는 통찰도 좋지만 여전히 내게는 그래서 어떻게!가 필요하다.

 

자기만의 경전을 만들어라책을 읽을 때마다 커다란 나팔 소리처럼 큼 울림을 주는 단어와 문장을 선별해서 모두 수집하라.’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1803-1882) 미국의 작가초월주의 운동 지도자.



 경전이 될지는 몰라도 필사와 기록은 하고 있다그런데여러 해가 지나도 여전히 지금 필사한 내용에 감탄하는 모습이라면 좀 서운하고 서글프다.

 

잘 하지도 못하지만 유명한 비유를 대략 활용해 보자면내가 읽고 쓰는 목적은 지금 수준에 맞는 최선의 배를 만들어 눈앞의 강을 건너려는 목적이다도강이 성공하면배를 만들고 강을 건넌 경험만 남고 배는 두고 다른 길을 가고 싶다.

 

삶이 무슨 퀘스트처럼 클리어해야하는 단계의 연속은 아니지만그래도 처음 만든 배를 필요한 기능 이상으로 장식을 하느라 머물고 싶은 생각은 없다.

 

혐오는 타락의 한 형태다혐오는 두려움에서 비롯되고 두려움은 생각에 골몰할 때 생겨난다누군가를 혐오하는 사람은 살은 자기 자신과 자기 삶을 혐오하는 것이다자신을 미워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않게 되고 나아가 이해하게 된다.’

 

자신과 직접적 관련도 없고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았을 누군가를 공격적으로 혐오하는 사람들을 마구 혐오했다혐오를 혐오하자란 말을 들은 적도 있지만약간의 시간과 호흡으로 다른 대응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노력을 하기 싫어 그냥 경멸하고 혐오했다


당사자들에게 전달될 일은 없으니 그저 성질부린 것속 풀이 한 것에 지나지 않겠지만 막 자랑스럽지도 않다언젠가 기회가 있다면그때는 좀 더 담백하고 단호하게 잘못이라고 말해보고 싶다.

 

껄끄러운 관계에 놓인 그 사람과 마주칠 때 그가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지 생각한 다음 그대로 행동에 옮기면 됩니다.’

 

그토록 기다린 어떻게하란 문장이 드디어 나왔는데어렵기 마찬가지그래도 열심히 생각해보겠다비록 크나큰 오해와 더 깊은 껄끄러움을 낳는다고 해도.

 

삶은 전투가 아니라 선택의 연속임을 명심하라인생은 죽음과 씨름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력을 돌보는 것이다.’

 

‘“언제나 조금씩 금이 간 채로” 살아가겠지만 사랑이 그 빈틈을 가득 채운다는 것을 잊지 말자.’

 

책을 다 읽고 나자 이 책의 저자가 현직 외과의사라는 것이 다시 기억난다외과적 처치 방식에 익숙한 저자라면분명 삶은 다시 또 다시 시작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싶다


물론 저자 인터뷰조차 접해본 적 없는 내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층적인 숙고가 자리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저 부럽다금이 갔지만다시 힘내서 살아갈 기회를 누군가에게아마도 많은 이들에게 줄 수 있었던 저자의 직업이.

 

"No Endings, Only Beginnings Bernie S. Siegel"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슬플 때도 있는 거야 -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겪은 아이들을 위한 책 마음과 생각이 크는 책 (개정판) 2
미셸린느 먼디 지음, R. W. 앨리 그림, 노은정 옮김, 이임숙 감수 / 비룡소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떻게 시작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십 년 전 어느 날 당시 5살 꼬맹이가 할머니하늘나라 가실 때 가방은 제가 들고 같이 갈게요.”라는 말을 했다그리곤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도 해야 하는 건가?”라는 엉뚱한 질문도 했다.

 

마냥 웃긴 얘기라고 느껴지기엔 뭔가……어른들 모두 각자의 복잡한 생각에 주춤거리는 시간이 동시에 어색하게 흘렀다.

 

그리고 10년이 흐르는 동안가족 친지는 아니지만알던 분들좋아하던 분들 중 돌아가신 분들이 있었다.

 

아이들도 어른들과 문상을 하며 자연히 느끼고 배우는 게 있긴 하겠지만상례란 집안 분위기와 대처 방식에 따라 각양각색이기 마련이라그런 상황들을 현상 그래도 받아들이는 어른들과는 달리아이들은 사별이라는 이별의 형태에 대해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는 생각은 문득 문득 들었다.

 

실제로 아이들이 눈물을 흘리며 마음 아프게 직접 경험한 이별은 어린이집유치원학교의 반친구들과 선생님들과의 이별이 경험의 전부이다.

 

멀어지는 것뿐만이 아니라다시는 만날 수 없고아무리 찾아봐도 세상 어디에도 없게 되는 죽음이라는 이별의 의미는 어떻게 전달되어야하는 걸까.

 

유교의 제례와 불교의 윤회와 기독교의 천국과 과학상식의 건조한 설명이 모든 것들이 중첩되고 혼재한 현실의 한국 아이들은 어쩌면 정말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단 생각도 새삼스럽게 들었다어렵다.

 

1. 죽음은 누구의 잘못이 아니며 잘못에서 비롯된 일이 아니다.

2. 추억을 나누고 이야기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3. 나만이 아니라 모두 슬프다는 걸 (가능하면) 기억하고 조금씩 덜 슬퍼질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나면 해본다.

4. 어른들도 정답을 모를 가능성이 충분히 높으니관련 책을 읽어보는 것은 좋은 판단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과격한 표현과 욕설이 포함된 글입니다.



아이들’ 관련 책들 중에는아이들을 잘 키워 보자는 권유와 열정이 가득한 책들혹은 당신의 아이가 정상이 아닐 지도 모른다고 불안을 파고들어 마케팅을 하는 책들혹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최고의 교육법을 알려 주겠다는 제안서들이 다수일 듯하다그래서 작가의 직업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라 하니 처음부터 흥미로웠던 책은 아니었다.

 

그러다 책의 일부를 접하고 마음이 움찔거렸고자주 그렇듯 좋아하는 지인들이 전하는 말에 완전히 홀려서 나도 읽자고 구입해 두었다그리고 뜻밖에 북클럽 2월의 도서로 결정되어 계획(?)보단 빨리 읽게 되었다.

 

총평(?)하자면어린이와 어린이들의 세계를 따스한 온기를 지닌 채 가만히 들여다본 책이라서기대를 완전 배반하는 시선이라 좋다감동적이고 잘 배우고 싶은 내용들이 엄청 많다.


1


아이와 관련된 이야기들 중 깨달았도다수준의 충격과 더불어 기억하는 최초의 경험은 내 친구의 이야기이다출산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가어느 밤 잠든 자신의 아이를 보다 통곡에 가까운 울음과 함께 눈물이 막 흘렀다고 한다.

 

아이를 낳아 키워보니 어른들이 해줘야할 것들이 너무 많고그렇게 살뜰하게 다 살펴줘야 비로소 살아 성장하는 생명이 아이라는 생각에그렇다면 부모 없는혹은 다른 양육자의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너무나 걱정되고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그렇게 인식이 내 아이에서 다른 아이들에게로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되고 나니그 밤이 지나고 눈물은 멈추었지만아무 일도 없었던 듯 아무 것도 안 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시간이 흐르는 모든 순간이 피부가 따가울 만큼 괴로워서전혀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찾아서 할 수 있는 후원을 하기로 했다 한다.

 

마치 동안거와 하안거를 마친 승려가 화두를 깨친 듯한 발표를 한 친구 덕분에 나는 하마터면 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된다거나 출산 시 불교에서 일컫는 자비의 차크라가 열린다거나 하는 모든 과격한(?) 속설들을 다 믿을 뻔 했다.

 

이후에 그 친구는 두 명을 더 낳아 무려 세 명의 아이를 키우면서어느 날 내 자식들을 키우느라 모두 함께 살아갈 유일한 세상에 대한 관심을 너무 오래 접고 살았다고다시 한 번 인식과 삶의 영역을 자연스럽고 필연적으로 확장하는 결심을 발표해서 나를 비롯한 친구들에게 새로운 충격과 감동을 전했다.


나라의 앞날을 짊어질 한국인이니 뭐니 하는 말도 자제하면 좋겠다

어린이는 나라의 앞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을 위해서 살아있다

나라의 앞날을 둘째 치고 나라의 오늘부터 어른들이 잘 짊어집시다.


2


인간이란 종은 언제부터 어른이 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내게 더 유의미한 건 '법적 성인'이라는 신분이라서, 솔직히 몰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다 난생 처음으로 입장이 극도로 난처해져서 진땀을 흘리고 불안했던 경험을 하게 되었다.

 

큰 사고 소식을 듣고 놀라 궁금해서 TV를 켜자 화면 가득 배가 기울어져 잠겨 있던 장면붉은 글씨로 크게 입힌 전원구조라는 소식그리고 연락을 받은 학부모가 이제 안심이 된다고 하던 인터뷰나 역시 그 소식에 안도해서 전원을 끄고 커피를 내려 마시며 다른 일정을 시작했다.

 

그 거짓보도를 반증하는 이후의 끔찍한 과정이 이어지고마침내 분향소가 차려졌을 때나는 아이들이 내게 뭘 물어볼까 매일 더 두려웠다어째서 어른들이 아이들을 구하지 않았는지 제대로 설명해줄 말이 없었다차분하게 인터뷰를 하던 학부모가 어째서 오열을 토하는 유가족이 되어 떠도는 유류품을 움켜잡고 내 자식의 찢겨진 살점 같다고 통곡하게 되었는지그들이 길 위에 누워 버티는 곳을 찾아 빨갱이 새끼들 어묵되었다고 낄낄대며 아귀처럼 처먹던인간과 매우 닮은 저것들은 누구인지……. 눈도 못 돌리고 목격하는 현실의 장면마다 변변한 변명거리도 위로도 희망도 떠오르지 않았다.

 

언제나 절망이 더 쉽다.

절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얻을 수 있고,

무엇을 맡겨도 기꺼이 받아준다.

희망은 그 반대다.

갖기로 마음먹는 순간부터 요구하는 것이 많다.

바라는 게 있으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외면하면 안 된다고,

심지어 절망할 각오도 해야 한다고 우리를 혼낸다.

희망은 늘 절망보다 가차 없다.

그래서 우리를 걷게 한다.

 

온 가족이 의무처럼 8시 뉴스를 매일 말없이 시청하는 날이 흐르고 흘러어느 날 국회의사당 앞에서 차를 돌리는데 8살 꼬맹이가 창 밖 심수미 기자를 알아보던 그 순간까지이미 늦었을 수도 있지만나는 가장 폭력적이고 비극적인 형태로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다기성세대로서 만들어온 세상에 대해 미래세대에게 책임을 추궁 받게 될 지도 모른단 피할 수 없는 자각과 함께대답을 해야 하는 어른이라는 입장에 대해 절감했다.

 

절망적인 소식들이 쏟아질 때면 자연히 포기하는 쪽으로 몸과 마음이 기운다

분노와 무력감 사이를 오가다보면 이 나라를 외면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내가 버리는 짐은 결국 어린이가 떠안을 것이다.

 

3


김소영 작가가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보여주고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내 친구나 내 이야기와는 아주 다른 이야기들이다시선의 이동도 품고 있는 느낌도 다르다그래서 참 좋다새롭고 따뜻하다그런데 아주 깊고 무거운 이야기도 있다그런 이야기들조차 어떻게 모조리 재미있게 들려주나 싶어 자주 놀라며 읽다가 무심코 새어나온 제 웃음소리에 당황한 멍청한 순간들도 있었다.

 

어린이는 착하다.

착한 마음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어른인 내가 할 일은 착한 어린이가 마음 놓고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나쁜 어른을 응징하는 착한 어른이 되겠다.

 

어린이를 감상하지 말라어린이는 어른을 즐겁게 하는 존재가 아니다.

 

어린이는 정치적인 존재다

어린이와 정치를 연결하는 게 불편하다면

아마 정치가 어린이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른들은 흔히 애들을 위해서 말을 가린다라고 하는데 어린이야말로 말조심을 한다중략

경험은 어른보다 적은데 책임은 어른보다 많이 져야 한다

우리 어린이들이 어른들 보아 가며 말하느라 참 고생이 많다.

 

나는 평소에 어른들이 아이들 듣는데 애 땜에 산다’, 그런 말은 그만 좀 하셨으면 하고 자주 바란다어쩌다 그런 말을 직간접으로 듣게 되면 그 말을 듣는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놀라 당황하게 된다살기 싫은데 나 땜에 억지로 산다는 생각을 하진 않을까그 부모가 계속 살기를 그만두면 또 어떤 힘든 생각을 하게 될까그만 마음이 몹시 복잡해진다이런 말을 무신경하게가끔은 재미있다는 듯이 하는 부모들…… 정말…… 너무……속상하다.

 

여러 온도로 쓰인 문장들을 읽어 나가며 김소영 작가가어린이들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는지그 마음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지얼마나 애쓰는지어린이들이 느끼는 자부심과 세우고 싶은 체면이 얼마나 진지한 일인지가만히 쳐다보는 것만으로 누군가에 대해 이토록 우아하고 품위 있게 묘사하는 것에 반했다참 멋지다.

 

이 책이 선생님한테 있잖아요하지만 다 똑같은 책이어도 이 책엔 제 마음이 있어요.”

 

이 문장을 읽고 내 마음에 누가 손을 뻗어 간질이는 것처럼하여튼표현 못할 기분이 들었다부러워서 그런 것 같다이런 선물을 받는 선생님 쪽보다는 이런 표현이 가능한 어린이를 더 부러워하는 스스로에게 당황하긴 했지만.

 

공감할 수 있는 문장들이 배부르게 많고너무 달라 불안한 부분들은 걱정될 만큼 저자의 여린 성품에 있다본인 생활은 그래도 최소한 챙기며 꾸려 가시는 건지 어딘가에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웃기지도 않은 오지랖처럼 불쑥 들기도 했다.

 

우리가 어린이를 위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린이 스스로 그렇게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약자에게 안전한 세상은 결국 모두에게 안전한 세상이다

우리 중 누가 언제 약자가 될지 모른다우리는 힘을 합쳐야 한다

나는 그것이 결국 개인을 지키는 일이라고 믿는다.

 

10 여 년도 더 전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새 건물을 완공하고 입구 문을 만드는데세 명을 초청해서 이용하기 편한지 시험해 달라고 했다어린이와 노인과 장애인이 세 명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문이라면 다른 누구라도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유니버셜 디자인Universl Design’*이란 개념을 모르던 내게는 무척이나 마음이 울컥하는 감동적인 일화였는데이런 디자인이 유니버셜하게(보편적으로보급된 사회에서는 그저 당연한 일일 뿐이었다.

 

유니버셜 디자인: universal design. 아홉 살 때 척수성 소아마비에 걸려 이동하기 위해 휠체어를 이용한 미국의 건축가 로널드 메이스(Ronald L. Mace, 1942-1998)가 자신의 철학인 모든 나이와 능력을 위한 디자인(design for all ages and abilities)”를 나타내기 위해 용어를 만들었다오늘날 제품시설서비스 등을 이용하는 사람이 성별나이장애언어 등으로 인해 제약을 받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참조https://ko.wikipedia.org/wiki/유니버셜_디자인

 

이 책에는 우리가 어쩌면 나만 만나지 못한 새로운 세계가 마련되어 있다비가시적이지도 않고 타자화되지도 않은 어린이들이 살아가는 세계양육자들이나 교육자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와 처음부터 함께 살아가고 있는 어린이들의 세계.

 

많은 분들이 함께 읽어 보시면 좋겠다.

 

곁에 있는 어린이들과 함께.

혹은 내 아이가 생길 때까지 몽땅 미뤄둔 관심과 애정을 가진 어른들도 함께.

 

물론 부모로서 아이를 사랑하는 일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차원의 것임을 안다.

아이와 함께하는 삶을 위해 인생의 속도와 방향을 조정하고,

어느 순간까지는 아이 몫의 결정과 그에 따른 책임도 감수하는 것이 양육이 아닐까나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아이를 키우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것까지가 양육이 아닐까 하고.

기쁘고 보람 있는 일이겠지만 아마 그만큼 무겁지 않을까 그것 역시 짐작해본다.


유엔아동권리협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