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우리집
미나코 알케트비 지음, 전화윤 옮김 / 난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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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미로 기억에 남는 영화들 중에는 over-dramatised 혹은 under-dramatised란 느낌이 드는 작품들이 있다. 1800년 대 고단한 삶에 지친 농부들이 막 욕실에서 나온 것처럼 아주 깔끔 깨끗하고 빛나 보일 때그 장면은 20여 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뇌리에 꽤나 생생하게 남아있다.



<사막의 우리집>의 가족들이 등장할 때마다 그때처럼 의아하고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견디지 못하고 사진작가인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사진 속의 피사체로서의 존재들이 dramatised된 것 맞냐고 물었더니크게 웃으며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교양강좌같은 내용을 다 삼키고 한 마디로 하면동물을 목격(?)한 내 경험이 갇힌묶인도시 생활에 적응된요컨대야생성에서 멀리 떨어진 개체로서의 동물을 보는 일에 익숙해져서 그렇다고 한다여러 가지 건강 문제가 있고간혹 슬프거나 우울하고간혹 영향상태가 나쁘거나 정신적으로 포기해서 털의 윤기조차 사라진 동물들과는 달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한다.

 

신뢰하는 친구의 말이 아니라면 좀 더 의심해볼만 하지만나는 대신 내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에 충격을 받았다그리고 슬프고 서운했다아름다운 동물들을 보고 살 기회가 드문 삶을 사는구나그랬구나



눈빛이 맑고 밝아서 감정 상태가 보이는 표정의 동물들몸짓에 경직이나 두려움이 없이 느긋하고 기쁜 동물들적의나 폭력이나 오해와 같은 의사소통의 불확실성이 없는 관계있는 힘껏 친구를 신뢰하며 계속 넘겨다본 장면에는 정말 믿을 수 없는 모습들이 담겨 있었다.

 

어릴 적 확실한 애정을 느끼고 믿고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살아본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점점 더 나는 합리적 의심을 신중함으로 여기는 버릇이 들었다그래도 의사소통이 어려우니 동물은 동물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서로에게도 더 편한 일이지 않을까그런 태도를 지지하는 편이었다.

 

친구와의 오랜 대화 속에서 알고 있었지만 잊고 싶었다고 애써 순화시키고 싶은 경험은, ‘언어를 사용해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동종 인간들과의 사이에서 무수한 오해와 불통이 더 많았다는 점이다심지어 그 언어가 한국어라고 할지라도


유일하게 억지와 혼란이 없었던 언어는 언제나 수학뿐이었다그래서 나는 최루탄을 너무 많이 마셨을 때도슬픔이 가득할 때도두통이 그치지 않을 때도불안이 팽창할 때도물리학의 이야기를 차려입은 수학을 몇 장씩 풀며 진정을 했던 것 같다.



사막에 가고 싶다.

 

예전처럼 멍청하게 한 겨울 이집트 피라미드나 찾아 나서지 말고,

 

자연스러운 모습들이 가득한 사막에 가고 싶다,

 

맑고 바람이 잔잔하고 노을이 차분한 참 좋은 날엔

사막에 누워 밤새 밤하늘을별들을공간을우주를 쳐다보고 싶다.

 

밤이 지나고 잠이 깨면별빛을 닮은 이런 눈빛과 표정을 동물들을 만나고 싶다.

 

사락사락 모래를 헤쳐 밟으며 이들과 하릴없이 걸어 다녀보고 싶다.

 

계절에 따라 하늘의 색도 사막에 남는 발자국도 달라진다는 것,

아침에 보름달이 고요하게 지평선 너머로 진다는 것,

아무것도 없는 듯 보여도 이 사막에는 많은 생명이 숨쉬고 있다는 것,

만나야할 가족과 만나서 있어야 할 곳에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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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지 마 어휘 한자어 1 놓지 마 어휘 한자어 1
신태훈 지음, 나승훈 그림, 정상은 감수 / 주니어김영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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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시절부터 중국어 공부도 재밌게 신나게 하고


한자능력시험도 스트레스 안 받고 보는 큰 아이가 있습니다.


우리집 꼬꼬맹이가 그런 분위기 탓인지,


저도 한자를 배워 보겠다고 하는데,


제가 느끼기엔 쉽지 많을 않을 듯한 느낌적인 느낌이~ㅎ


'놓지마 정신줄'을 저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재밌게 좋아한 아이니까.


이 책을 만나면 용기백배, 즐겁고 반갑게 한자 공부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참 반가운 책소식입니다.


주니어김영사 is 뭔들! 이라 생각하는 팬으로서 반갑고 감사한 마음으로 기대 백배입니다.


저는 한국어공부 제대로 하느라 한자, 2급과 1급 자격증을 10 여 년도 더 전에 합격하긴 했지만,


실생활 활용도가 적어 어느새 거의 다 잊어 버렸는데, ㅠㅠ


이번 기회에 꼬꼬맹이랑 함께 한자어 공부하고 같이 시험도 봐볼까 합니다.


다시 한 번 반갑고 안도감이 드는 책 출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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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빙하 같지만 그래서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 - 소설가가 책상에서 하는 일
한은형 지음 / 이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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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건 아니지만이 책의 독서법으로 목차를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자신이 읽은 문학 작품 내용을 한차례 떠올리는 것도 좋고짧게 설명된 인물에 대해 상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유별나다라거나 까다롭다라는 말을 들으며 아직껏 살아왔다는 스스로 문제적 성격을 지닌 인물이라 칭하는 작가 한은형이 끌린 격정과 놀람으로 만나게 될 이들이다.

 

너무 많이 느끼는 안나 ― 레프 톨스토이안나 카레니나

죽음을 사랑하기로 한 안나 ― 레프 톨스토이안나 카레니나

불멸할 수밖에 없는 로테 ― 요한 볼프강 폰 괴테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결혼하고 싶지 않은 엠마 ― 제인 오스틴엠마

제멋대로 사랑하는 리디아 ― 피에르 드리외 라 로셸도깨비불

누구보다 세련된 엘렌 ― 이디스 워튼순수의 시대

배울 기회가 없었던 테스 ― 토머스 하디더버빌가의 테스

시대를 갖고 논 사라 ― 존 파울즈프랑스 중위의 여자

거짓 속에서 산 브리오니 ― 이언 매큐언속죄

돈으로 가득한 데이지 ― F. 스콧 피츠제럴드위대한 개츠비

아몬드 냄새가 나는 페르미나 다사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콜레라 시대의 사랑

끝내 지루함을 선택한 캐서린 ― 에밀리 브론테폭풍의 언덕

순수와 격정을 오가는 요코 ― 미즈무라 미나에본격소설

열세 살에 권태를 느낀 에스메 ― J.D. 샐린저에스메를 위하여사랑 그리고 비참함으로

한 번에 담배 두 개비를 피우는 조던 베이커 ― F. 스콧 피츠제럴드위대한 개츠비

세상 모두에게 잔혹한 나스따시야 ―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백치

죽을 때까지 왕녀인 마틸드 ― 스탕달적과 흑

서른에 사랑을 처음 배운 레날 부인 ― 스탕달적과 흑

’ 있는 사랑을 하고 싶었던 보바리 부인 ― 귀스타브 플로베르마담 보바리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델핀 루 ― 필립 로스휴먼 스테인

미칠 수밖에 없었던 에스더 ― 실비아 플라스벨 자

남자 없는 여자에스텔러 ― 찰스 디킨스위대한 유산

고아가 되기로 한 테레사 ― 밀란 쿤데라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애벌레에게도 상냥한 앨리스 ― 루이스 케럴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검은 모자가 된 사비나 ― 밀란 쿤데라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인생의 즐거움을 누리는 쇼샤 부인 ― 토마스 만마의 산

운명의 자매인 세 마녀 ― 윌리엄 셰익스피어맥베스

내가 꿈꾸는 사람바베트 ― 이자크 디네센바베트의 만찬

 

총 29명의 이들 작가 한은형이 한편이 되어 “우리가 뭐 어때서!”라고 일갈하면독자인 나는 숨을 멈추고 끝까지 들을 수밖에 없었다부족한 것 없이 성공한 인생을 누린 인물들이 비범한 성격도 지니고 있더라는 불편한 이야기가 아니라모두 자신의 성격으로 인해 어려운 시간을 보내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읽을수록 공감할수록 매력을 느낄수록 인생에 도움은커녕점점 더 살기 힘들어질 일만 남았다기존 질서도귄위도관습도때론 법과 도덕을 이유로도 자신다움을 누르거나 죽이거나하여튼 참지 않았던 이들이다그래도 저자는 태연히 우리를 일단 위로한다. ‘인생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겁먹을 필요는 없다우리에게는 대신 재미가 있으니까.’라고.

 

물이 얼어 얼음이 되어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기록하는 사람 회화 작품을 소개하듯 적힌 작가소개에목록에 있는 어떤 인물보다 작가가 궁금했다서늘하다던 온도는 작가의 글의 온도는 아닌 듯하다이 책의 문장들은 뜨겁다마치 클래식 음악에 작가가 새로 가사를 붙여 칸타타로 만들어 부르는 것처럼재해석과 변주가 화려하면서도 친근했다표지가 점점 더 세련되게 아름답게 디자인되어 재출간을 거듭해서 우리 곁에 거듭 돌아오는 세계고전문학이란 예술 작품처럼이렇게 모두 한 권에 담지 말고 한 인물에 한 권씩 29+1시리즈로 출간되었다면 얼마나 더 재미날까안타까웠다아까웠다.

 

 

엠마를 읽고 나서 제인 오스틴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평생 자기 방을 가진 적도 없고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제인 오스틴이 다 가진 여자’ 엠마에 대해 질시하거나 냉소하지 않고 공평하고도 균형 잡힌 태도를 취하는 걸 보면서 마음이 뻐근해졌던 것이다나는 이런 배포가 있는 큰 사람’ 앞에서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런 그녀에 대해 버지니아 울프가 한 말을 적어본다. “1800년경 증오나 쓰라림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항의하거나 설교하지 않으면서 글을 쓴 여성이 있었다.”

 

나는 어느 순간 내가 꽤나 사람을 좋아하는 부류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고전 소설을 좋아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거기에는 인물들이성격들이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어쩔 때는 체온과 체취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저마다 다른 사람들성격들을 생각하면 깊은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토끼 굴로 떨어지고 있는 앨리스가 된 듯한 마음이랄까.

 

남녀노소를 반하게 하는 안나라는 이 여자는 그런 완전무결한 인간에게 흔히 따라다니는 자부나 오만과는 무관한 데다 관대하고 지혜롭기까지 하다나는 이런 인물에 백전백패하고 만다. ‘진 느낌이랄까.

 

에스더는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에 입학했고아주 아주 끔찍하게 여기는 필수과목(물리학과 화학이었다마저도 혼자서 A학점을 따내곤 하는 예외적인 학생이었다. “물리학 수업을 받는 내내 속이 울렁거렸다참을 수 없었던 것은모든 것을 글자와 숫자로 쪼그라들게 만든다는 점이었다라고 느끼면서 그럴 수 있다는 데 나는 경이를 느꼈다.

  

1950년대라는 시대의 공기와 함께 그녀들을 떠올리면 말이다. 1950년대 여자들에게는 요리와 속기와 춤이 필수로 요구되었다는 걸 벨 자를 읽어 알게 된 나는 에스더처럼 토할 것 같았다요리와 속기와 춤은 저마다 멋진 것인데이게 여자들에게 필수 덕목으로 요구되는 상황은 정말이지 끔찍하다남자를 돌보거나 보조하거나 기쁘게 하는 일들이 여자의 필수 덕목이었던 시대에 에스더 같은 여자는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에 드는 친구들이 잔뜩 모여 나를 위해 기다려주는 것처럼 들떠서 책을 헤매며 읽었다내가 달 코멘트라야 사족에 불과하지만 만난 시기도 공교로울 뿐더러 여전히 괴이하면서도 특별한 작품과 인물이 버티고 있다. 30 여 년이 지나 이 미친 연인을 다시 만났다.

 

천국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더라,

그냥 그 말이야나는 세상으로 돌려보내 달라면서

정말로 서럽게 울었어.

천사들이 화가 나서 나를 집어던졌는데,

떨어진 자리가 폭풍의 언덕 히스 밭이었어.

나는 너무 행복해서 엉엉 울다 잠이 깼어.

 

에밀리 브론테폭풍의 언덕

 

언제 처음 읽으셨나요저는 10대에겨울방학이었습니다조금만 부주의하게 넘기면 간혹 피부가 베이기도 하는 날선 종이 위에 세로로 빼곡하게 적힌어두운 양장으로 둘러싸인 묵직한 세계문학전집으로 만났습니다.

 

감정의 결을 전혀 이해하지도 못하고 벅찬 노동처럼 완독을 했는데참 마음에 들지 않는 어두운 분위기와 불행 당시 내가 느끼기에 의 냄새와 호감을 가질 여지가 없는 캐릭터들과 배반당한 듯 억울한 기분이 들던 결론모두가 별로였습니다.

 

빨리 잊고 싶었는데도 어떤 이유로 사로잡혀서 폭풍이 그치지 않는 히스 밭에서히스클리프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불편한(?) 기분을 한동안 현실에서 꿈에서도 느꼈습니다.

 

캐서린만 그런 게 아니라 이 소설에는 제대로 된 사람이 별로 없다어딘지 비현실적이고 어딘지 이상하고 어딘지 망가져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게 두 남녀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캐서린과 히스클리프는 누가 더 격정적인지 누가 더 망가질 수 있는지 죽을 만큼 힘겹게 다투는 연인이다캐서린이 지루한 천국을 택하자 히스클리프는 자신의 모든 재능을 복수하는 데 쓴다캐서린은 죽고그들 주변 사람들의 인생은 모두 망가진다.

 

그녀가 말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피를 토하는 게 저런 건가 싶다. “나는 내 히스클리프를 사랑할 거고저승까지라도 데리고 갈 거야그는 내 영혼 안에 있으니까.” 캐서린은 결국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병이 나서 정신착란을 일으키고 죽는다자신의 열기로 자신을 죽였고그러므로 히스클리프도 죽인다’.

 

역사도 도시도 아름답지만 불편한 점이 없지 않은 영국 요크에는 업무로만 가보았고해안가 히스 언덕 쪽은 쳐다도 안 보고 도심의 거리를 슬슬 걷다 왔습니다히스클리프와 같은 성정의 인물이 살고 있을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들었거든요.

 

폭풍우가 치는 워더링 하이츠에서 일렁이는 히스 밭은 캐서린이다히스클리프의 마음에서 꺼지지 않고 계속해서 그를 뒤집어놓는 그 분홍 화염 말이다.

 

한은형 작가가 자신의 책 속에 펼쳐 놓은 히스밭을 돌아다녀보니, 10대의 나는 감상의 축이 어긋난 채로 읽었단 생각이 듭니다어긋난 그 공간어두운 틈에 온통 두렵고 불편한 상상들을 채워 기억했던가 싶습니다.

 

참 좋은 친구가 행복하고 다정하게 살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요크언제까지 저는 히스 밭이 놓인 그 언덕에 사시사철 폭풍과 어둠이 머무는 상상을 하고 있을까 막막합니다.

 

새로 배운 단어완악완악하다1 (惋愕하다) [동사깜짝 놀라다완악하다2 (頑惡하다) [형용사성질이 억세게 고집스럽고 사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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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시험은 왜 치나요?
이윤섭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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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은 왜 치나요?’란 질문을 처음 한 것은 언제인지 정확한 기억은 안 나지만학창시절은 늘 시험을 통한 평가로 이루어진 시간이었고오로지 대학입학이라는 한 가지 목표만이 단조롭게 외길처럼 놓인 길이었다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시험성적과 전교생 등수를 공개하는 방식을 시도했다가 교육청으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했다3까지의 삶은 그 이후의 진짜 삶을 준비하는 과정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만 같았다다른 모든 계획과 꿈들은 입시 이후에만 예약이 가능한 메뉴처럼 미뤄졌다.

 

당시엔 교육정책이나 변화에 관심과 시간을 들여 알아보던 때가 아니라 전체적인 그림을 몰랐는데몇 년이 지나지 않아 교직에 선 친구들이 생기면서백년지대계와는 전혀 판이하게 뒤바뀌는 교육 정책과 일선 교원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장관이 새로 부임할 때마다 그 장관의 결제 서명이 찍힌 새로운 교육과정이 시도되고교원들은 방학에도 쉬지 못하고 새로운 교육과정 연수를 몇 주씩 들어야하고그 변화의 폭이 클 때면엄청난 예산이 필요한 교과서 변경과 수업 변경도 뒤따른다고 한다.

 

교육 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마련하는 정책이 아니라 학생교사학부모들은 이리저리 휘둘리며 짜증스럽기만 했고 때때로 출판업계의 로비 과정이 드러나 보도가 되기도 했다.

 

물론교육연구자들이나 종사자들이 오래 고민하고 제안한 교육 목표들과 세부사항들 모두가 그렇다고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명암이 뚜렷한 시행착오를 계속 겪어 왔을 뿐이지만대입이라는개천에서 용나기를 바라는한 방에 인생을 결정하는 시스템을 두고서는 다른 여타의 교육개혁이란 수박 겉핥기나 단기 방책을 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를 매번 어쩔 수 없었을 뿐이다.

 

어쨌든 나는 더 이상 진학이나 취업을 위해 시험 평가를 받는 진땀나는 시절을 다 지나왔다그러니 오히려 약한 의지력에 도움이 되고자작은 성공을 쌓아가고자자발적으로 원하는 시험을 택하기도 한다결과로서의 평가는 내 스스로의 목표에 도달했는지 아닌지의 변별력만 있을 뿐다른 스트레스로 작동하지 않는다이제 내게 시험이란 그런 의미의 성취 평가이다객관식이든 주관식이든 실습이든 학습에 도움이 되고 기억을 돕는 방식이라면 대단한 창조적 방식을 일을 목표로 삼지 않는 한 큰 문제도 안 된다.

 

평가는 누군가를 심판하기 위해 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발전을 위해 치는 것이다그때는 자기 스스로의 성장에 대한 기대로 두근거릴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등급으로 인간을 분류하는 방식이 또 다른 현실에 엄존하는 한대한민국 사회는 여전히 성과주의를 독려하는 현실에서 멀리 떠나오지 못했다고 본다출발과 기회와 과정과 결과가 모두 공정하고 신뢰할만하다면 모를까다른 방법이 없어 따르긴 하지만 불신과 냉소와 자포자기 또한 미리 마련된 그 현장의 모습들에 나도 무람한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시험선발성적 관리내신 등급이 현재의 형태로 유지되는 한성적 거래 등의 범죄를 유발할 가능성 또한 언제나 있을 것이다저자에 따르면 인생의 길목마다 합격과 불합격을 결정하고개인에게 크나큰 위험부담을 전가하는 고부담 시험이다이 방식으로 평가를 통해 성장한 이들이 경쟁과 선발에 익숙한 사람으로서 사회활동을 하는 것은 자명한 일.

 

평가로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머릿속에 있는 것이 얼마나 정확한지 확인하는 것이다평가로 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을 제외한 모든 것이다중략평가는 아이들의 머릿속에 있는 것을 ...... 꺼내어 세상에 적용해 보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머릿속에 머물고 있는 지식 유통기간은 시험을 마치는 순간까지이다.

 

암기식이 아니라 창의성을 위주로 한 교육 플랜이라는 홍보도, 도무지 개념을 알 수 없던 열린 교육도, 객관식 문항들을 없앤다는 발표도그 외 다양한 교육 과정들 역시 바라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시간은 흐르고 문제는 반복되었다.

 

완벽한 제도가 어디 있을 것인가 싶지만대한민국의 시험제도라는 것은 파생되는 문제점들의 수도 대단하지만 그 정도도 지나치다불가항력이나 과실로 인해서가 아니라 시험’ 때문에 학생들이 매년 자살하는 공화국이다문제점들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내 자식 일이 아니면 일단 넘어가지도 말고 교육의 주체로서 좀 더 의견들을 내주시면 한다.

 

좋은 결과에 좋은 과정이라면 더 격려하고 나쁜 결과에 좋은 과정이라면 더 위로하고 좋은 결과에 나쁜 과정이라면 더 충고하고 나쁜 결과에 나쁜 과정이라면 함께 고민하자.

 

코로나로 학부모도 학생도 교원들도 모두 힘겨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어렴풋이 의무교육 시행 방식이 변화할 것이란변화가 필요하다는 정도의 의견들만 떠돌고 선명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은 없다.

 

필요한 변화가 있다면 요구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시험을 예찬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은 이 책에서 지식 평가와 학습 효과라는 목표를 잘 성취하면서 다른 방식의 교육 활동들이 어떻게 가능한지 저자는 예들을 많이 들어 보여 준다교육 비관론에 빠질 만큼 복잡한 심경과 고민들을 나누고 정리하고 배우며 읽을 수 있어 도움을 받은 유용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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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라는 이름 - 부모의 뇌를 치유해야 아이의 뇌가 달라진다
도모다 아케미 지음, 김경인 옮김 / 마인더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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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장이 아플 것 같은 책이었다학대로 인해 사망에 이른 아동의 이름으로 분노하고 아파하며 법원에 손으로 눌러 쓴 탄원서를 보내는 시기를 거치자 마자 연이은 아동 사망사건들을 접하느라 통증이 생생한 기분으로 읽었다소아정신과 의사이자 뇌과학자인 저자가 간단하게 분석 정리한 내용도울음이 울컥하는 기분이 느껴져 이를 꼭 닫고 읽으며 필사를 했다.

 

차일드 멀트리트먼트(child maltreatment)’라는 표현을 사용한다중략. ‘부적절한 양육’, ‘부적절한 관계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스웨덴은 1979년 자녀 양육 관련법을 개정하여 세계 최초로 아이에게 어떤 체벌도 심리적 학대도 할 수 없도록 법률로써 금지한 나라다그리고 이 법제화를 계기로 아이에 대한 학대를 격감시키는데 성공했다

 

스웨덴의 성공 사례를 좀 더 살펴보면아동학대 금지를 법제화하고캠페인을 실시하고아이를 때리지 않고 키우기 위한 충고나 지원 방법을 정리한 책자를 배포하고소아과 임산부 클리닉과 연계해서 지원하고사회 전체의 의식 향상을 위해 우유팩에 계발 문구를 인쇄하거나 공익 광고 제작 방송을 해서체벌에 대한 전체 사회의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고 한다.

 

누구나 생물학적 부모는 갑작스럽게 될 수 있다하지만 좋은 부모가 되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모두가 불완전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모두가 불안전한 육아로 성장했으니 피할 수 없는 결과이기도 하다보완할 방법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고민하고 배우고 결심하는 학습 말고는 없다나는 사전 예방적인 부모 지원의 측면이 사회 전체에 더 다양해지고 대중화되는 것이 사후 처벌과 대책만큼 중요해 보인다.

 

2장에서 자녀를 치료하려고 센터를 찾았다가 자신의 문제가 더 위급하다는 것을 깨닫고 돌아가는 부모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저자는 지당하다고 했고 나는 놀라며 읽었다.

 

아니라고 할 이들도 많겠지만대한민국은 폭력과 혐오가 쉽고 빈번하게 목격되는 사회이다때리는 사람을 문제 삼기보다 맞는 사람이 맞을 짓을잘못을 했을 거란 이해와 공감이 뿌리 깊었던 사회이다아직 제대로 규제할 사회적 합의도 법도 마련되지 않아서 합당한 처벌도 어렵다.

 

이 와중에 의도적으로 폭력적인 혐오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균열시키고 반목하게 만들어 제 이익을 차리는 후안무치한 이들이 공적 지위를 차지하는 일도 가능한 사회이다


사적 관계와 공간즉 사생활로서의 권리는 과장되고 온갖 미화된 가치들의 생성지로서의 가족과 가정 역시감시도 처벌도 관리도 없었던 오래된 잔혹한 폭력의 현장들이기도 하다.

 

어떤 이유로 선정되는지 정확히는 모르나간혹 환기를 주의시키려는 듯부모에 의해 다치고 살해된 아이들가르치는 이들이나 선후배간의 스포츠계 폭력 피해여성과 노인 폭행과 살해 기사가 하이라이트 된다.

 

매일 누군가는 맞고 죽임을 당하고 극심한 불안 속에 살고 트라우마와 함께 살아남는다학대와 폭력은 가정에서 사회로혹은 사회에서 가정으로양방향으로 거침없이 번지고 대물림*되기도 한다학대는 최대 70%의 확률로 다음 세대에 대물림된다.


다른 범죄와 마찬가지로 이 범죄 역시 단호하고 적합한 처벌과 피해자 구제와 회복으로만 중단될 수 있다법과 제도사회 공동체의 의식 내에서의 공감이 필요하다

 

정신의학 분야에서는 심각한 트라우마를 경험하거나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안고 생활하더라도 잘 순응하는 능력 혹은 그 과정이나 결과를 리질리언스*라고 한다. ‘정신적 회복력’, ‘정신적 탄력성이라고도 한다. *resilience

 

연구결과한 번의 옥시토신 투여로 애착장애 아동의 좌뇌 복측 선조체에서 보수계의 반응 개선이 관찰되었다그것도 증상이 중증인 아이일수록 뇌에 미치는 작용이 강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편아이를 학대하는 부모의 뇌에도 문제가 있고, ‘차일드 멀트리트먼트(child maltreatment)’로 인해 다친 아이의 뇌도 그 고통에 적응하기 위해 뇌 스스로 변형된다고 한다. 이 내용을 읽으며 나는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했다. 물적 증거가 있으면 치료와 지원 역시 구체적일 수 있으니.


뇌 부위들 중 전두전야는 체벌로 위축되고그 결과 본능적인 욕구나 충동을 제어하기 어렵게 된다시각야는 성적 멀트리트먼트나 가정폭력을 목격할 때 위축되며시각적인 기억 용량이 감소하고이는 11-13세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다.

 

청각야는 폭언을 경험하면 비대해지는데함께 하는 시간이 많은 부모의 폭이 많은 경우심인성 난청정서불안사람과의 관계를 갖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게 된다.

 

해마는 유소아기 시기의 멀트리트먼트로 위축되며 3-5세에 이미 학습능력과 기억력이 저하된다공통적으로 멀트리트먼트를 경험한 아이들은 좌뇌 발달이 크게 뒤처져서사람에 따라 사회적 장애정서적 장애인지적 장애기분 장애불안증, PTSD, 해리성 장애경계성 성격 장애로 나타날 수 있다.

 

부모 트레이닝을 통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대물림을 끊기 위한 사회적 지원과 공동 육아 등의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내용들이지만일본 내의 치료법과 사례와 대안이라 한국에서도 충분히 활용 가능할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 ADHD: 일본에서는 발달장애의 한 분야한국의 장애인복지법상 발달장애는 자폐성장애와 지적장애만을 포함한다.

 

각자의 복잡한 사정으로 살아가며 서로를 다치며 죽이기까지 하는 이들단일 관계 내의 가해자를 최대한 비정하게 다루는 기사와책임을 방기한 이들을 찾아 고발하지 않는 엉성함과 최소한의 안전망도 마련하지 못한 사회는 무고한지 묻고 싶을 때가 많다어렵고 힘들겠지만폭언과 폭력을 근절하지 않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니 함께 노력해봐야 하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아이에 대한 행위가 학대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로 인해 아이가 상처를 입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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