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말하고 싶은 것들 - 인간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
김경훈 지음 / 시공아트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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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사진이 전달하는 이야기의 힘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사진 속 이야기는 때로는 세상을 바꾸어 놓을 수 있을 만큼 강력합니다때로는 그 이야기가 오해와 편견 속에 읽히기도 하며 때로는 고의적으로 혹은 악의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사진은 오늘 우리의 이야기를 담는 타임캡슐이 되어 훗날 역사의 증거가 되기도 하고사진 속 많은 이야기는 때로는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기도 합니다.

 

살면서 나만 모르는 베스트셀러들은 많고 많지만개중에는 나중에 알게 되면 통증처럼 느껴지는 책들도 있다또네이런 한탄이 절로 소리가 되어 나오는 책이 책의 저자인 김경훈 로이터 통신 사진기자의 첫 번째 책은 <사진을 읽어 드립니다>이다.



개론 강의를 듣고 심화 과정에 도전하는 기분으로 두 권의 책을 펼쳐보았다무척 노련한 교수법을 가진 사진작가는 사진 보는 법이 아니라 읽는’ 법을 먼저 가르쳐주고다음엔 한 수 더 나아가 사진이 (직접) ‘말하고 싶은’ 것들이란 멋진 제목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현실이 아니라면 흥미와 재미만으로도 즐거운 이야기들이지만현실이라 때론 숨을 삼키고 입술이 마르는 긴장으로 심각하고 흥미롭게 읽게 되는 책이다.

 

사진이 우리 모두의 언어가 되어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고 해놓고내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진보다 저자의 유려한 말과 글에 눈길이 더 오래 머문다재밌기도 하고 살짝 이율배반적이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사진이 말하고 싶은 것을 가장 정확하고 아름답게 전달하고픈 저자의 애정이라 믿는다.

 

뇌의 기능이나 인지 과학 혹은 양자역학 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사실성과 진실성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우리 뇌의 프로페셔널한 왜곡 시스템과 고의로 그런 건 아니고 정보량이 너무 많아서 패턴을 만들어 대략 맞춰 판단하지 않으면 영원히 정보 분석만 하면서 아무 판단도 못하게 되어서 그렇다 기억력이란 내편인 듯 내편 아닌 능력은 이런 고민에 든든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그런 프로세스의 약점을 동결하듯 순간의 진실로 실체화 시킨 사진이라면 가장 사실성에 근접해야 마땅하지만그 사진을 보는 주체가 다시 인간이라 또 다시 위의 오류체계에해석의 오류에 빠질 가능성은 영원히 존재한다더구나 사진에 찍힌 순간의 전후 맥락을 볼 수 없는 우리로서는 사진과 짐작만으로 스토리를 완성시키고 상황 판단을 하게 될 것이다.

 

좀 더 차분히 이런 저런 생각을 할수록 아찔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그런 경우들 중 사진의 피사체가 된 인물에게 실질적인 고통이 가해진 경우들이 얼마나 많을까지금은 모두가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시대누구나 찍을 수 있고 찍힐 수 있는 시대이다.

 

또한 디지털 사진의 복제와 무한공유는 유통속도가 빛과 같이 빠르다디지털 장의사라는 신종 직업에서 의뢰인의 디지털 사진이나 영상을 찾아 검색 0로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집중력과 상당한 시간이 요구된다고 하던 말이 생각난다.

 

한 장의 사진에 담긴 디테일들은 사진이 촬영된 당시의 사회적역사적 환경에 의한 영향 그리고 사진을 보는 사람의 배경지식과 관점에 따라 주관적으로 해석됩니다바로 이 과정에서 의도적인 왜곡의 개입이 가능해지는 것이지요.

 

그러니사진을 통해 진실을 전달하고자 하는 사진기자로서 저자는 얼마나 고민이 많을 것인지짐작(할 수 있는 척) 해본다어쩌면 그 어려움을 위무하고자 저자는 이 책에서 이토록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으로 그간의 답답함과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45년부터 2020년까지 백여 년에 걸친 다양한 사진들을 한 이야기로 수렴하며 논조를 유지한다는 것은 비범한 능력이다. 20여 년간의 현장 경험이 단단한 지지대로 기능하는 듯하다.

 

미국의 보도사진가 제임스 나처웨이는 중략그의 사진 한 장이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한 정답을 제시해줄 수도 없고사회를 바꾸어 놓을 힘도 없지만 사진을 보는 이들에게 우리 사회의 문제를 생각해 보는 계기를 준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관심을 원해서 돈벌이 수단으로 명백한 악의를 가지고 사진을 악용하는 이들은 사라지지 않을 지도 모른다원하던 관심과 돈을 얻는 한은하지만 우리는 이미지의 소비자로서 그 범죄를 중단시킬 수 있다아주 간단하다관심과 돈벌이가 되지 않게 잠시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판단하고 행동하면 된다. ‘좋아요를 누르고 업로드할 것인지 아닌지를.

 

이미지를 소비하고 촬영대상에게 무례하고 왜곡을 위해 의도적으로 혼란을 부를 장면도 가능하고 아예 이미지 자체를 조작하기도 하는 시절의 인간 사회사진작가가 아니라 사진기자로서 사진의 역할에 진지하고 조심스럽고 책임감 있는 태도는 귀중하고 존경받아야 마땅하다언론 신뢰도가 밑바닥인 한국의 상황을 떠올리면 더욱 그러하다.

 

시사성과 사회성과 현실성을 모두 갖춘 책을 만난 덕분에 지식정보도 시선도 이해도 판단도 조금씩 좌표를 이동했다늘 그렇지만 긴 사족 같은 내 말을 적느라 책의 100분도 소개 못한 내용이다


경외와 감사의 마음을 담아김경훈 기자의 중요한 이야기들이 담긴 사진들에는 늘 말하고 싶은 의미가 풍부하길역사의 기록 그리고 역사 자체로 불멸의 생명력을 얻길 응원하고 싶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89022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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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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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책 내용보다 작가의 근황이 궁금하여 읽기로 결정한 책이었다결론이 난 일이지만 존경과 사랑과 감사를 모두 거둬들일 순 없었던한 시절을 갖가지 감정들로 채워주던 신경숙을 다시 만나보고 싶었다그래서 다소 복잡한 심정으로 불안과 기대가 어지럽게 교차하는 기분으로 책을 열었다.

 

문장들이 담백해서 호흡이 곧 안정이 된다여전히 촘촘하고 정교하고 서두르거나 자극적으로 감정을 달구지도 않고통찰력과 정서는 비슷한 듯 다르게 절절하다.

 

가령, ‘그 집을 떠나본 적이 없는 흙먼지 같은 일생을 살기도 하는 게 인간의 삶이기도 하다.’ 평범한 문장에 별 다른 일이 아닌 듯도 한데마음이 잠시 흙먼지처럼 부옇게 되고 만다.

 

그리고 어젯밤엔 문득 내가 아버지를 보호하러 왔는지 내가 보호받기 위해 왔는지 구분이 안 될 만큼 불안해져 나는 작은 방 책꽂이에 꽂힌 내 오래된 책들 앞을 서성거렸다.’

 

이 문장은 괴이하게도 내 전생의 장면인 듯, 내가 본 영화의 장면을 기억해내듯 심상으로 빠르게 전환되었다친했지만 너무 오랜만이라 잠시 어색했던 이를 금방 알아보고 기억해내듯 신경숙의 글이 스며들어왔다.

 

딸을 잃은 작가가 고향에 계신 아버지를 찾아가 함께 지낸 이야기이다문득 신경숙 작가도 글을 잃고 찾아갈 고향과 아버지가 계셨을까 뒤늦게 잠시 궁금해본다찬찬히 살펴보면 이 글에서 그의 그간의 세상살이들을 오롯이 다 보게 될 것도 같았다.

 

바쁜 시간에 어쨌든 쉼표가 찍혔고 순전히 내 짐작일 뿐이지만 그 시간의 틈에서 지나온 생을 분명 한번쯤은 훑어보게 되었을 것이다온전히 혼자 살아온 삶이 아니니 가족과 고향과 이웃들을또 그들과 얽히고설킨 많은 이들을 떠올렸을 것이다그러다보니 아버지의 비밀도유년시절의 기억들도고향의 풍경들도고향집에 남은 추억들도동네사람들의 모습도 체온과 체취가 고스란히 느껴질 듯 그렇게 되돌아오지 않았나 싶다사진을 찍은 듯한 묘사와 서사들이 빼곡하다.

 

오래 슬퍼하지는 말어라잉.

우리도 여태 헤맸고나.

모두들 각자 그르케 헤매다가 가는 것이 이 세상잉게.

 

할머니들은 내 곁으로 바투 다가와서 손을 잡고 어깨를 만지고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두드렸다나는 산보를 하다가 할머니들에 에워싸여 느닷없는 위로를 받고 있었다내 마음에 팬 것들이 흐릿하게 뭉개지는 느낌이었다.

 

중간에 읽지 않고 덮을 수 있는 그런 힘없는 글이 아니라서 반가움과 안도감이 동시에 든다출간작부터 신경숙문체라고 느껴지던 문체는 거의 그대로이다아주 새로웠다면 섭섭했을 것이니 새롭지 않다고 실망스럽지는 않다.

 

모든 걸 다 계획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꺼낸 화제처럼 이야기가 전개되니느긋한 산책길에 잠시 의자에 앉아 친구랑 이런 저런 얘기를 오래 나눈 느낌이 든다부모님은 별 일 없으시냐고 물었다가뜻밖에 모르던 일화를 듣게 된 기분날씨가 좋아서 울컥 슬퍼지지도 않고 바람이 좋아서 화가 치밀지도 않고그냥 다들 그런 슬픔이 있지힘들고 아팠겠다그렇게 차분히 건네는 위로 같은 분위기.

 

어떤 사실들은 때로 믿기지 않을 만큼 비현실적이라 시간이 흘러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끝내 사실일까싶은 의문과 회의가 든다어떻게 그런 일이싶어서 사실이 우연이나 조작에 의한 것처럼 보이고 어떤 형식에 맞추기 위해 도식을 끌어온 것처럼 여겨지며 상상에 의한 허구가 오히려 사실처럼 느껴진다.

 

단죄도 비난도 판단도 아무 이유도 의도도 없었지만소설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자꾸만 작가의 모습을 찾아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끝끝내 방해가 되었다신경숙은 자신의 서사를 아주 소중하게 작품에 담는 이라는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라고그 버릇 탓이라고 변명해본다.

 

어쨌든 나는 이 책을 결국 오독하고 만 것 같다.

 

꽉 짜인 미스터리서스펜스스릴러추리 작품이 아니라면 반갑지만은 않은 분량의전혀 끌리지 않는 제목의 책을 신경숙이란 이름에 붙잡혀 읽었다.

 

마음이 뻐근하다.

 

그가 이렇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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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로 보는 동양고전
서승완 지음 / 지식과감성#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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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70년 대 생인 나는 천지현황으로 시작하는 천자문동몽선습명심보감 등의 책들을 어린 시절 권장도서로 알고 자랐다그렇다고 훈장님께 종아리 맞아 가며 외우고 책거리를 하는 경험은 없었지만비공식적인 교재들로 내 삶에 함께 했던 것만은 틀림없다.

 

어째서 하늘이 검다고 한 것인지 여러 어른들께 여쭸지만 누구도 납득이 갈 대답을 안 해주신 것은 오래 섭섭했다나중에 물리학을 전공하면서 다크 물질dark matter에 대해우주 공간에 대해 배우며비로소 오랜 질문에 답을 얻었다도대체 그 옛날 그저 하늘을 올려다 본 것만으로 어떻게 아셨을까 - 빛이 어둠의 부재라는 것을올려다 본 하늘 즉 우주의 모습은 검을 현어둠이라는 것을 - 하고 몹시 감동을 받았다.

 

어릴 적 교육이 가진 관성의 힘을 생각보다 더 강했는지자연과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어서도 사서삼경 공부 모임을 기웃거렸다논어를 함께 읽고 엄청 놀랐다단아하고 아름답고필사하여 외우고 싶은 내용들이 가득한 멋진 책이었다지금도 논어는 참 좋다.

 

우리 집 큰 꼬맹이는 초등학생 때부터 중국어를 그렇게 신나게 배우고한자도 재미있어 하는데동양고전에는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굳이 천자문부터 낭랑하게 읽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조금 섭섭하기는 하다어쩔 수 없는 일이고 대신 나는 무지한 이백이나 두보의 한시들을 좋아하게 된다면그 또한 멋진 일이라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만날 날이 있을 거란 생각은 물론 하지만이렇게 젊은(?) 저자가 유쾌하고 발랄한 기획으로 엮은 책이라면 어떨까 슬쩍 너지nudge를 부려본다이 목차 좀 봐전남친 공자래하고 막 무리를 해보면서.



 어쩌면 혹자는 불경한(?) 짓이라 표정을 구길 지도 모르지만재작년에 20대 철학도가 마르크스 자본론을 엄청 재미난 만화로 출간한 것을 보고 감동을 받은 것처럼이번에는 20대 철학자가 동양고전 입문서를 SNS 형식으로 해설한 것이 나는 반갑다권위를 요구하기 보다는참 좋은 책들이 더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회자되는 일이 더 좋기 때문이다.

 


중학생이 세상을 보는 눈이란생각보다 건조하지만 적확할 수도 있다생각해보니 세상이 제일 시시해 보였던어른들이 사는 모습이 이상해 보였던 시절이 그때였던 것 같다한 마디로 평하자면 이 책의 아이디어는 재밌지만 만약 공자맹자노자장자와 같은 분들이 카톡과 인스타를 했다면 시비와 욕설이 난무하는 악플에 시달리셨을 지도 모른다고 한다으음…….



어쩌면 나 역시 나이든 남자들이 뭘 자꾸 가르쳐 주려는 시도를 달가워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고전을 책으로 접했을 때는 논어의 문장들이 몹시 아름다워 좋아하게 되었지만, SNS로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면<노프사 노장>을 좋아했을 것도 같다.

 

물론 프사 프로필 사진과 정보 가 없다는 것만으로 좋아진다는 것은 아니다내용이 충실한 말과 글을 들려주면서도 프사에 정보가 거의 없다시피 하는 경우에 어떤 분인지 궁금해지기도 하고여타의 정보에 관심을 가지고 익히는 대신 들려주는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는 기분 좋은 경험을 여러 번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몇 년을 구독하다시피 했는데어느 날 문득 보니 블로그 이웃조차 아니었던 경험도 있고이런 흥미로운 분도 계시구나하며 SNS상으로만 소통했는데알고 보니 대학 때 같은 수업을 들은 동창인 경우친구의 친구인 경우심지어 중학교 때 스승인 경우도 있었다불필요할 뿐 아니라 선입견만 굳히는 사전 정보들 없이 지금현재존재에 집중해서 만날 수 있고그래서 완전히 새로운 만남이 가능하다는 것이 큰 장점이라 느꼈다.

 

저자는 이렇게 아무런 프사도 설정하지 않고 비워두는 이들에게서 노자의 모습을 읽는다고 한다심지어 노자란 이름조차늙을 노에 선생님 자즉 나이 많은 선생님이고그 정체는 아직도 확실히 모르며이 세상에 남긴 것은 <도덕경> 단 한 권뿐이었으니.



노자는 “‘비움의 중요성에 주목했고 비움은 원래의 나 자신순수한 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중략노자는 프사를 없앰으로써 자신의 비움의 철학을 녹여내고겸허한 마음을 내어 보이고자 한 것이다.”

 

단지 프사만이 아니라 우리 일상에도 의식에도 공간에도 비어 있는 것’ 혹은 채워져 있는 것’ 어느 쪽이 불편한 지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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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좋아하는 소 페르디난드 비룡소의 그림동화 48
먼로 리프 지음, 정상숙 옮김, 로버트 로손 그림 / 비룡소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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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년도 더 전에 읽은 책을 다시 읽어 보게 되었다. 2020년에 여전히 멋진 표지로 24쇄 출간! 여전히 재출간을 거듭하고 있다는 점이 반가웠다내용은 흑백이고 검은 잉크에 담근 펜으로 그린 그림체이이다한국의 수묵화처럼도 보이고 나는 이 펜화가 좋다그리고 미처 못 봤지만에니메이션은 캐릭터들이 더 많이 나와서 재미있다는 좋은 평을 받았다고 한다.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인간들의 축제초식동물인 소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상대방에 적대감을 고조시켜 억지로 싸우게 만드는 그런 일이 언젠가 사라지는데 일조할 수 있다면 더 다양한 문학과 예술로 이 메시지가 많은 이들에게 전달되면 참 좋겠다 싶다.

 

혹시 투우사가 빨간 천을 흔드는 것만으로 소를 흥분시킨다고 알고 계시는 이들이 있을까 사족을 붙이자면투우사들은 황소가 화를 내게 하기 위해 작살칼로 상처를 입힌다최대한 오래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학대하며 천천히 죽어가는 것을 환호성을 지르며 즐기다 마지막에 자비를 베푸는 양 목숨을 빼앗기도 한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구역질이 나는 잔혹변태폭력적인 문화상품이다스페인 대도시를 중심으로 투우 경기가 중지되는 일도 있지만 하루 빨리 사라졌으면 한다.



예전엔 주인공 페르디난드에 집중하느라 재빨리도 잊어버린 페르디난드의 엄마가 무척 멋져 보인다다른 소들과 다른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가장 좋아하는 장소에서 행복하게 지내도록 내버려두는 일그렇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일이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일 지도 모르겠다.



정상성의 범주에서 나오려하면사회적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적다면심지어 외모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자식들에게부모들이 실제로 보이는 태도들을 아주 솔직하게 조사하고 분류하면우리가 가진 가정과 가족에 대한 이미지의 일정 부분 정도는 반드시 균열이 갈 것이다.



다행히 페르디난드는 그런 엄마의 굳건한 마음을 닮았는지 자신 역시도 주변 환경에 휘둘리지 않는다남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된 이후에도 주눅이 드는 법이 없다자신의 행복이 무엇인지 정확히 안다그러니 싸우라고 주변에서 무슨 짓들을 하건 가만히 앉아 꽃향기만 맡는다나도 일희일비는 관두고 잠시라도 이런 태도로 살아 보고 싶다.



선입견을 갖고 있는 것이야 어쩔 도리가 없다 하더라도타인을 자신의 선입견으로 너무 빨리 평가하는 일이나 왜곡하는 일은 충분히 주의 깊게 조심해야한다편견과 편애가 강한 나는 언제나 이 점이 걱정이고 그래서 판단에 자신이 없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아이들이 읽기에도 좋지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이해하고 믿어 주는 이가 없어 힘들었던 어른들이 읽고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도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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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다음에는 책방에서 만나자
김지선 지음 / 새벽감성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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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갛고 보드라울 것 같은 표정의 책이 도착했다.

베이비 핑크가 옅게 퍼진 표지에 이렇게 귀여운 곰돌이가 담긴 책을 읽어본 적이 있었을까.

손에 잡히는 무게조차 포근하다.

표지 글씨를 가만 보면 타닥타닥 타이핑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소설이라고누군가의 일기장일 것만 같은 분위기이다.

 

무엇을 얻는다는 것은 무엇을 잃는다는 것과 같다책방의 책들은 종별로 한 두권많아야 다섯 권 정도만 갖추고 있는 책방이라서 하나의 책이 판매가 완료되면 그 자리는 새로운 책이 차지한다.”

 

두 걸음이면 충분하다는 작은 책방이라지만다락방도 고양이도 있다.

 

책방이 다락방까지 연장된 장소라니,

작가와의 만남도주제가 정해지면 모이는 모임도티타임과 수다타임도

낮잠을 자고 간다고 청하는 손님도 있다니,

 

사장은 참 다양한 모임을 만들었다얼마 전엔 공기 반 소리 반이라는 주제로 공기 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는데정말인지 공기 대회에서 사람들의 수다가 반이었다사장이 만들어 낸 모임 명이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는 시간이었다수다의 절반은 공기놀이의 룰에 관한 거였다.”

 

한적한 골목간판 없는 작은 책방이라는데 다들 아시고 살뜰하게 즐기시는 일상이 뜨겁게 부러웠다.

 

어릴 적엔 문구점 주인좀 더 커서는 서점 혹은 북카페 주인꿈을 이루기 위해 아무 것도 애써 노력하지 않았지만, ‘이라고 하면 여전히 순위 안에 당당 자리하는 모습이다대신 문구와 책들이 가득한 대형서점을 신이 닳도록 다니는 것으로 욕구를 채워 왔달까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마의 공간매번 똑같은 고민을 하는 안타까운 나그래도 덕분에 갖가지 추억이 가득하다늘 그곳으로 만나러 나와 주던 친구들 보고 싶네.

 

서점을 하게 되면 제가 원하는 것좋아하는 소품과 간식과 음료만 잔뜩 쟁여 둔 엄청나게 불친절한 서점 주인이 될 것 같고편견과 편애로 공기가 무거운 사적 취향 가득한 책들만 가득할 것 같지만안 맞으면 서로 안 만나고 사는 거지이런 속 시원하고 후회 없는 태도로 삶을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참 신나는 상상이다.

 

사장은 책방에는 다양한 카테고리가 있다고 답했다어떤 곳엔 책을 사러 가고 어떤 곳엔 책을 읽으러 가고 어떤 곳엔 책을 쓰러 가고 어떤 곳엔 책이 있어 그냥 좋은 거라고.”

 

적요한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아는한적한 곳인데 햇볕은 잘 드는작은 공간인데 유리창 밖의 풍경은 널찍한방문한 누구나 둘러보면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는책이 잘 읽히고 글이 잘 써지는그런 서점을 그려본다.

 

자꾸만 상상을 하다 보니 백만 년 만에 그냥 있어도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는 게 느껴지고 행복해진다책 사는 거책 읽는 거책 쓰는 거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공간을 지키고 유지하고 사는 일.

행복한 상상의 끝에 후유증이 크고 오래갈까 두렵다.

 

책에 대해 잘 모르고작가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일 년 넘게 책방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것은 모든 책은 책마다 좋은 점이 분명 다 있다는 점이다.”

 

이 구절을 읽으며 나는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 떠올랐다.

 

본전 생각만 하지 않는다면 모든 책에서 얼마간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독서에 관한 한 냉철한 낙천주의자가 되고 싶은 그는 일개 평범한 독자일 뿐이다.”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 김경욱

 

간혹 서평글을 쓰면서 별을 네 개 표시하면 친한 이들은 그 의미를 알고 말을 건다무슨 일이냐고

읽으라고 만든 책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생각 없이 다 읽히면 별 다섯 개적어도 별 숫자로 다른 평가는 할 수 없다


그리고 나만 읽을 수 없는 글이라는 가능성이 언제나 있으니내가 받은 느낌이 무슨 대단한 평가씩이나 될까그저 이런 기분이 들더라그 정도만 적을 수 있는 것이 서평의 정체가 아닐까 싶다.

 

내가 일하는 동안 한 번이라고 책방에 들렀다면 당신의 이야기가 이 책 속에 담겨있을지 모른다아직 책방에 오지 않았어도 괜찮다다음 책엔 당신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으니 언제든 놀러 와 주라내가 일하는 동안에.”

 

놀러와 주라!

 

이 표현만큼 강렬한 제안을 당분간 찾지 못할 터이다.

 

놀러 가서 한참을 놀고 싶다.



그리고 참,

 

사장님책을 내는 작가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거예요?” 새벽 네 시를 지나 아침으로 향하는 시간이 시간이 이상한 걸까누군가는 꿈을 꾸고 있을 이 시간에 잠을 자고 있지 않으면 현실에서 꿈을 꾸게 되는 걸까문득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사장에게 물었다.”

 

이건 에세이다뭐가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찾아보자하는 마음이 설핏 든 순간도 있었지만곰돌이의 심리를 진지하게 살피고 그 변화를 알게 되니 이건 소설이야로 판단이 순식간에 바뀌었다모든 것이 환상 장치 같기도 하고 긴 초대장 같기도 하고 서점 브로슈어 같기도 한묘하게 매력적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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