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위한 변론 - 무자비하고 매력적이며 경이로운 식물 본성에 대한 탐구
맷 칸데이아스 지음, 조은영 옮김 / 타인의사유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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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에 대한 지식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는 독자이지만, 어떤 문장들은 내가 식물에 대해 느끼는 바와는 무척 달라서 놀라기도 하고 그 점이 흥미롭기도 했다. 예를 들어 식물이 지루하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이란 단어가 마치 누군가 땅에 심어줘야 자랄 수 있는 존재라는 느낌을 주지만, 식물은 인간이 존재하기 훨씬 오래 전부터 자생해왔고, 인류가 모두 사라진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다. 식물의 종류는 물론 오랜 진화의 전체적인 면면을 인간은 파악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식물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awe에 가깝다. 경외감, 방대한 존재와 거대한 생명력에 두려움을 느낀다. 한 뼘 텃밭의 잡초에도 인간은 자력으론 이길 수 없다. 열지 않는 촘촘한 방충망, 농원에서 구매한 흙과 모종을 심은 베란다에도, 어디선가 날아온 소위 잡초들이 어느새 자라고 있다.

 

전 지구 생태계에선 물론이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은 언젠가 식물에 뒤덮여 무너질 것이다. 나는 가끔 인간이 멸종한 후, 관리 시스템이 멈춘 핵시설이 식물에 의해 파괴될 것도 걱정한다. 그래서 더욱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시선과 지식과 감정을 배우는 시간이 즐거웠다.

 

저자가 설명하는 인간중심적 사고방식들을 감사히 배우고 동의하지만 나는 그 경계를 벗어나는 사고와 일상을 보낼 자신이 별로 없다. 아마 죽을 때까지, 먹을 수 있는 식물과 좋아하던 꽃과 나무를 여전히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식물이 인간을 위한 자원이라고만 생각한 적은 없다.

 

나보다 더 대단한 존재들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비록 나라는 의식은 사라지겠지만, 다음 생에는 큰 나무로 태어나길 바라며 죽을 것이다. 물론 이 판타지 역시 나무가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이는 인간중심적 사고이긴 하다.

 

저자가 놀라울 정도로 내밀하게 알아 낸 식물의 일상은 인간 못지않은 고군분투이고, 액션 가득한 블록버스터 영화이며, 온갖 무기가 동원되는 전투다. 아마 베란다 화분 식생에도 몰라서 보이지 않는 치열하고 놀라운 상호작용이 휴식도 휴전도 없이 진행 중일 것이다.



 

인간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선악과 아군/적군은 아무 의미가 없는 세계, 곰팡이마저 죽이는 마늘냉이, 악마의 정원을 만들고 관리하는 나무와 개미 부대는 흥미진진한 드라마다. 날이 갈수록 식사를 챙겨 먹는 것이 번거롭고 지겨운 인간으로서, 태양의 핵융합 반응을 직접 활용해서 식량을 만드는 광합성 식물에 대한 동경은 더 강해질 듯하다.

 

지구의 표면을 덮은 아주 얇은 토양이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터전이다. 그 토양이 해양으로 흘러가지 않게 붙잡는 존재가 식물이다. 식물 서식지를 망치는 일은 자해나 자살과도 같은 짓이다.

 

인간은 생태계 핵심종key species이 아니며 될 수도 없다. 기적처럼 태어나서 우세종이 되는 동안 가장 먼저 멸종할 위기도 만들었다. 연쇄반응은 핵폭발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현명한 인용을 마지막으로 마무리한다.

 

땅을 차지하려고 싸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땅을 즐기는 것이다. 할 수 있을 때, 그 땅이 아직 남아 있을 때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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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본 적 없던 바다 - 해양생물학자의 경이로운 심해 생물 탐사기
에디스 위더 지음, 김보영 옮김 / 타인의사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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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무서워할 수는 있지만, 물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라고 물을 좋아하는 나는 평생 오해 중이다. 육지에 살고 공기호흡을 하지만, 인간이 물을 싫어하면 수많은 목욕탕과 수영장과 물놀이 시설이 있을 리가 없다. 여름 해변가가 붐비는 것은 단지 더워서만은 아닐 것이다.

 

올 해는 여행 없는 휴가를 보내서, 바다가 더 그립다. 어릴 적부터 몇 년 전까지 바다는 언제든 접근 가능한 일상 공간과도 같았는데, 여러 이유로 중단 중이다. 바닷속 쓰레기도 표면 미세플라스틱도 슬프고 화가 난다.

 

바다 이야기를 읽으면, 바다의 엄청난 규모 - 지구 표면의 약 68% - 에 근거 없는 안심이 된다. 아프리카 대륙만한 플라스틱 쓰레기섬을 만들었어도, 설마 인간이 바다를 다 망친 건 아니라는 비겁한 안도감이 든다.

 

내가 경험할 수 있는 바다는 얕은 해안가가 거의 전부라서, 우주보다 가기 어렵다는 심해라는 세계와 생물들을 알려주는 이 책은 마법서처럼 신기하고 귀하다. 인간에게 관측되거나 탐사되지 말라고 응원하고도 싶지만, 존재를 알고 아름다움을 보면, 덜 망칠 이유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무 것도 없는 우주 공간을 한참 들여다보았더니(물론 망원경으로), 깊은 우주와 무수한 천체들이 보였다. 그 우주보다 더 어두울 거라고 생각한 심해에도, 빛과 생명체와 생태계 시스템이 있다. 경이(驚異)롭고 경외(敬畏)롭다.

 

수심 600m에서 섬광의 강도는 햇빛의 천 배였고, 빈도는 분당 100회가 넘었다. 그 수치들은 화려한 조명으로 장식한 수레가 지나가고 불꽃놀이가 장관을 이루는 디즈니랜드 야간 퍼레이드를 연상케 했다. (...) 대체 저 아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반딧불이 희미하고 단조로울 정도로 다양한 빛이 만화경kaleidoscope처럼 반짝이고, 인간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발광 생물도 존재한다. 지구는 스스로 빛을 내는 생물들로 가득한 - 중층수 생물 75% 가량 - 빛나는 행성이었다.

 

우주공간보다 물속에서 더 오래 생존할 수 있는 인간은 어쩌면 기후붕괴의 시대에 심해에서 살 방법을 고민해야하는 것은 아닌가. 어쩌면 인류의 일부는 수생생물로 진화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살아남을 수 없는 미래지만, 책 덕분에 현실을 잊고 상상해보는 시간은 즐거웠다.



 

어릴 적엔 심해 생물들과 긴 여행을 하는 꿈을 정기적으로 꾸었는데, 사라진 건지 여전히 꿔도 기억을 못하게 된 건지 모르겠다. 심해 다큐멘터리도 좋아하지만, 이 책은 무척 특별한 심해 여행이자 처음 만난 안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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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모자, 피노키오를 줍고 시체를 만났습니다 옛날이야기 × 본격 미스터리 트릭
아오야기 아이토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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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만 봐도 알아보는 시리즈입니다. 2020<옛날 옛적 어느 마을에 시체가 있었습니다>로 처음 만났습니다.

 

한국전래동화 트라우마가 컸던 유년 시절을 보낸 지라, 민담이나 설화나 동화의 소재나 테마를 차용해서 변형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문학이 신기했습니다.

 

전래동화에는 내가 한 번도 사용해본 적 없는 사물들이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의 일상용품으로 나오곤 하니, 아이들에겐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이 더 어렵기도 합니다.

 

특히나 민속촌 말고는 남은 것이 없고, 신제품으로 갈아치우는데 열심인 한국사회에는 더 낯설 뿐이지요.

 

어쨌든 그런 점에서 반갑고 늘 기대되는 작가의 작품입니다. 여름이 끝나기 전에 만날 수 있어 좀 더 반가웠습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동화들도 제가 다시 찾아 읽을 일은 없었을 작품들이라서 좀 더 좋습니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캐릭터들의 낯선 면면이 무척 재미있습니다.

 

물론 미스터리는 차분히 풀어나가야 하지만. ‘범인 찾기추리는 매번 흥미롭습니다. 살인범이니 꼭 찾아야겠지요.

 

빨간모자, 피노키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아기 돼지 삼 형제 등등을 이런 흐름으로 엮다니, 진지하게 읽다가 웃기도 했습니다.

 

아오야기 아이토 작가는 기존 레시피에 없는 재료들로 반죽하고 제빵하는 능력자입니다. 그 재료에 시체가 가득하다는 것이 호러이긴 합니다만.

 

동화들을 읽지 않아서 내용을 모르는 이들은 어떻게 읽을지 문득 궁금합니다. 빨간 모자처럼 선명한 욕망들... 스포일링이 하고 싶어질 지도 모르니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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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처블 러브 스토리
김수연 지음 / 엘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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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다는 영원히 신비로울 일이 일어나면, 상대를 더 가깝게 느끼고 깊이 이해하고 싶어진다. 제목을 다 기억하진 못하지만, 그런 바람이 상대와 몸과 영혼이 뒤바뀌는 설정으로 나오는 작품들을 만나곤 했다.

 

제목은 물론이고, 비가시적 존재인 귀신, 친밀한 공간인 소도시, 우연을 운명으로 해석하는 일, 모험적이라 더 낭만적일 수 있는 블라인드 데이트, 추워서 인간 사이가 더 가깝고 따뜻해지는 겨울, 모두 사랑을 위한 설정이었다.

 

인구수만큼 다른 사랑의 방식이 있겠지만, 여기에 담긴 여섯 가지 사랑이야기가 내게는 충분히 새롭고 흥미로워서 읽기에 즐거웠다. 애틋하고 조금은 슬프고 안타까운 것도 여전한 사랑의 풍경이라서 반갑기도 했다.

 

수십 년째 스물세 살의 얼굴로 자신의 곁을 맴돌아온 팬을 대면한다면 (...) 고마워할까요, 무서워할까요?”

 

귀신은 한결 같은 모습으로 사랑하는 이의 곁에 머물 수 있지만, 살아있는 인간들이 성장하면서 멀어지게 되는 수많은 경우는 어떻게 위로하고 격려해야할까. 예의 바르게 상처가 깊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나한테 확신을 좀 주지 그랬어. 일보다 나를 쪼끔은 더 좋아했다는 거.”

 

근래에 잘 읽지 못한 섬세한 감정 언어들도 새삼스럽게 좋았다. 완벽하지 않으면, 충분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 같이 아프고 힘든 시절, 서로에게 진통제가 되어준 관계도 고마운 것 아닐까.

 

인간이 느끼는 슬픔은 존재의 유한성에서 오는 것 같다. 모든 것이 곧 끝난다는 사실, 늦출 수도 막을 수도 없다는 진실. 잘못이나 실수를 해도 안 해도 어떤 관계들은 정해진 수명을 다한다. 보고 싶고 그리운 마음을 남긴 채.

 

SF의 방식으로 펼친 사랑의 풍경은 더욱 슬프다. 같은 종이라고 가장 사랑하는 건 아니지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부재하는 공백을 어쩔 수 없는 두 존재가 사랑을 한다는 건, 너무나 허허로워서 여름밤이 싸늘해지는 기분.



 

오로라란 단어를 들으면 양성자와 자기장이 생각하는 과학전공자이지만, 겨울에는 포근한 눈이 내리기를, 고요하기를,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이와 따뜻한 체온을 나누며 행복한 기억을 늘려가기를 바란다.

 

책 소개 카드에 적힌 '드뷔시Claude Achille Debussy 음악의 모호함'이 궁금해서,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달빛, Piano Play>을 플레이해두고 읽었습니다. 오직 사랑, 이나 사랑, 만이... 라는 말을 모두 믿고 싶게 만든 건 건 연주였을까요, 책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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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에게
최현우 지음, 이윤희 그림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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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이윤희 작가의 <열세 살의 여름>은 우리 집 열세 살을 행복하게 해주었다. “이 작가님 책은 또 읽고 싶어요란 감상이 충분해서 기뻤다.

 

드디어 그림책 작가로 신간이 출간되었다. 나는 어릴 적 상실에 읽기 전부터 아프고, 고등학생이 된 당시 열세 살 독자는 함께 사는 개동생이 떠날까 슬퍼지는 내용으로.



 

어릴 적 사진앨범 크기의 그림책은 넘길 때마다 다른 색감의 냄새가 난다. 그림책이 아닌 책을 읽을 때와는 다른 오감이 작동한다. 후각은 심장으로 폐로도 빠르게 번져서 점점 더 기분이 울렁거린다.

 

너의 두 발, 이렇게 뛸 때마가 즐거운 냄새로 충만해지는 날들을

 

함께 살게 된 인간 이외의 동식물 가족 이름을 직접 지어본 독자들은 코코, 코코라고 가만히 불러볼 때마다 마음이 출렁거릴 지도. 내가 이름 지은 개오빠는 그 이름과 함께 묻혔고, 나는 이별도 망각도 할 수 없었다.

 

늘 궁금해. 너는 나를 뭐라고 부르는지.”

 

영원히 상실한 온기와 감촉을 잊을 수도 되찾을 수도 대체할 수도 없다. 사람의 수명으로도 오래 전 일이라, 이제 그만 울어야지 여러 번 생각했다. 그 덕분인지 울음은 그만 두었다. 눈물은 어쩔 도리가 없다.

 

심장을 포개어 주려고 달려오는 작고 기쁜 영혼이었지.”



 

산책이 일상이 된 지금 네가 곁에 있다면.

나는 매일 웃으며 살 텐데.

 

일찍 만나서 행복했고

일찍 헤어져서 남은 시간 모두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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