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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정치적인 시골살이 - 망해가는 세계에서 더 나은 삶을 지어내기 위하여
양미 지음 / 동녘 / 2024년 9월
평점 :
발작적으로 반가운 책 제목, 사람살이는 온전히 정치적이라는 현실이야기를 제대로 해 줄 책. 동녘에서 번역 출판한 머레이 북친Murray Bookchin의 <착취 없는 세계를 위한 생태정치학> 중 ‘코민주의’의 내용이 떠오른다.
돌가루가 섞이지 않은 듯 가볍고, 코팅하지 않아 미끄럽지 않은 표지가 반가운, 늘 감사한 동녘의 도끼 같은 신간이다.
“생각하는 대로 살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도시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 기쁨은 저항이 된다. 더 이상 기쁨이 없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기억하는 한 신체적으로(?) 가장 편하게 읽은 책이다. 몇 폰트인지 정확히는 모르나 큰 글자도서보다 크게 느껴지는 활자에, 반사되지 않는 종이 위에 초록색으로 인쇄. 노화가 진행되는 독자로서 안도와 감사가 내내 함께 했다.
내용은 그리 편안하지 않다. 현실이 그럴 것이다. 경험하지 못한 것은 절대 모르는 인간으로서, 내 좁은 세계의 두터운 테두리(가장자리)를 늘리고 열어보고 싶어서, 진지하게 배우겠단 결심으로 종종 뜨거운 문장들을 차분히 읽었다.
“테두리의 존재로서 “테두리의 안쪽(자본주의)이 아니라 바깥쪽을 향”하기로 한 저자에게, 자본주의의 환상을 구현하는 도시와 구분되며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공간인 시골은 도약의 장소, 로도스인 것이다."
존재하지 않은 환상과 조작되거나 설파되는 이미지들 대신, 이 책이 많이 읽히기를 바라게 된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한양으로”란 유구한 조언이 있음에도, 고향과 지방은 도시와 현실을 잠시 가리고 묵히는 도구로 활용되어왔다.
지방, 시골, 고향이 그렇게 그립고 영성적인 장소라면 이렇게 소멸되어갈 리가 없다. 고령의 부모 혹은 조부모이 해주는 음식들을 연휴마다 얻어먹는 것도 그리 칭찬할만한 (연령상)성인들이 할 짓이 아니다. 요리를 해드리거나 외식을 시켜드리는 편이 집밥 찬양보다 효도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자가 명확하게 주목하는 소재들은 사적 경험을 넘어서는 시골의 이동권, 건강권, 생존권, 정치와 민주주의 등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고 살 수 있으려면 필요한 조건들이자, 시공에 부재하고 부족한 것들이다. 삶은 정치를 통해서 개선되므로 ‘시골살이’는 ‘너무나정치적’일 수밖에.
“불평등을 흔히 부나 경제의 영역으로 설명하지만, 불평등이란 인간이 이룩한 발전과 성취에 따른 가능성에서 배제된 상태다. 지금 비도시권에서 겪고 있는 소회, 빈곤, 무기력, 자학, 기회의 박탈은 불평등의 결과다.”
자본주의는 거의 유일한 체제가 되었다. 그러니 삶을 이해하려면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아야한다. 이론으로 따로 배우려면 한숨부터 나오지만, 저자가 왜 시골행을 택했는지, 어떻게 살아가기로 결심했는지,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편하게 읽다보면 친절한 안내문을 읽듯 일부 배울 수 있다.
“돈을 벌어 구입하고 싫증 나면 버리는 삶은 자본주의에서 권장하는 방식이다. 그 과정에서 사람도 물건도 자연도 쉽게 사용되고 버려진다. (...) 순환하지 않는 삶이다. (...) 도시는 (...) 착취와 소비가 최선이고 최적인 곳이다.”
도피와 외면은 내 특기다. 그래서 얻은 조금의 편안함에 비참할 정도로 집착한다. 문제는 그래서는 무엇도 바꿀 수 없고, 내내 도피와 외면을 하며 살아야한다. 그것 역시 몹시 피로한 일이다.
불편할 수도 있지만, 삶의 민낯을 보여주고, 감취진 행태들을 드러내는 이들의 책은 그래서 선물이자 무기이다. 어떻게 활용하고 무엇을 하고 어디까지 갈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지만, 환영과 거짓보다는 진실과 저항의 기록이 낫지 않을까. “나는 자연인”으로 살지 않을, 귀촌을 오래 바라던 이들이라면 더욱.
“나는 대안이란 괜찮은 삶을 더불어 누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가능성이라고 믿는다. 정치는 그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활동을 보장하고 권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