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닌 - 제2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하승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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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성 차별과 저열한 폭력에 망가지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성장한 재일이라는 희망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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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
마야 안젤루 지음, 김욱동 옮김 / 문예출판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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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에는 몰라서 못 읽은 한국어 초반본에 대한 아쉬움과 10년 늦은 애도를 담아 만나보고 싶은, 마야 안젤루Maya Angelou 문학의 힘.

 

여성이 자신을 위해 일어서는 것은, 모든 여성을 위해 일어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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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의 흑인 여자아이에게 성장한다는 것이 고통스러운 일이라면, 추방당한 느낌을 의식한다는 것은 목덜미를 위협하는 면도날에 슬어 있는 녹이다.”

 

문학을 전공한 친구에게 소개 받은 몇 편의 미극 흑인문학 작품을 읽어서일까, 아는 바도 없고 접점도 없는, 1969년 흑인 여자 아이의 삶 속으로 이야기를 따라 빠르게 입장한다. 문학이 가진 힘은 신비롭다. 간혹 기시감을 느끼는 투명인간처럼 어린 소녀의 삶을 그 풍경 속에서 지켜보듯 읽는다.

 

개념어들은 때론 공허하다. 같은 테두리를 가졌어도 그 안의 내용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우울감이 다양한 신체적 증상을 보이듯, 차별 역시 경험한 서사가 다를 것이다. 일기장을 공개한 듯 더없이 솔직한 자전 소설은 어린 마야의 아직 내가 되지 못한시간들이 차별의 구체적인 기록이자 메시지이다.

 

부인 말로는 무지는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 되지만 문맹은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학교에 다닐 수 없었어도 대학교수들보다 더 아는 것이 많고 심지어 지혜로운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저주에 걸려 백인인 외모를 잃었다고 상상하는 일, 백인 작가의 작품을 애정하게 되는 일, 백인 하느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일 등은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는 여정을 그만큼 더 늦추게 만든다. 주류가 아닌 지구상의 많은 이들이 그와 같은 소외와 박탈과 부정을 경험을 공유한다.

 

한 종으로서 인간은 그야말로 혐오 그 자체였다. 우리 모두가 그랬다.”

 

마야가 성장하면서 겪는 에피소드들이 흑인이 아닌 다른 누구도 겪지 않는 일들은 아니다. 자전 소설이기 때문에, 일련의 갈등이 하나의 메시지를 향해 질주하는 느낌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발견이라는 성장 과정을 훨씬 더 차분하게 읽고 생각해볼 수 있었다.

 

순탄하기만 한 삶은 거의 없으니, 상처가 난 대로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배워야한다고 어느 날엔가 배웠다. 그렇다고 살 수 없다고 판단한 이들을 판단하고 싶진 않다. 다만... 성장기였기 때문일까, 놀라운 생명력으로 다양한 상처들을 별 것 아닌 것처럼 다 견뎌 내고 계속 살아가는 모습이 놀라웠다.

 

마지막 선택과 결말은 뜻밖이었다. 어머니의 반응도 놀라웠다. 아무도 이들을 끝까지 좌절시킬 수는 없어 보였다. 덕분에 마야의 삶이 책장 너머로 계속 이어지는, 창작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진 연속성을 느꼈다.

 

지금의 나는 새 장에 갇힌 새는 쳐다보기도 어렵겠지만, 노래라도 부른다면 듣기도 마음 아플 테지만, 거대한 시스템에 갇힌 채로, 태어난 사회에 맞춰 사회화된 채로 살아가는 모두의 처지가 그리 다르지도 않다. 그러니, 살아남는다는 것은, 계속 살아간다는 것은 놀랍도록 강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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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콰마린
백가흠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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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정의의 시계가 종을 칠 때 당신의 무엇을 자를 것인가?”

 

아콰마린의 환상적인 색감을 표지로 착장하고, 국가폭력과 공권력에 의한 학살, 왜곡하고 조작한 사법기득권, 그렇게 멈춘 정의의 시계, 그렇게 지연된 정의, 비극과 진실, 상처와 용서를 다루는 기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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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콰마린은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빛이다. (...) 죽음으로 남긴 저 심해의 빛이다. (...) 결국 그것은 모든 빛이 빠져 죽은 바다다.”

 

아는 내용의 신화를 낯설도록 오싹하게 비극적으로 전하는 문장들, 도입의 느낌이 놀랍다. 평생 아름다워 보인 아콰마린을 침몰시키고야말 사건과 진실이 지닌 무게감이 어떻게 드러날지 두근거리며 읽기 시작했다.

 

청계천과 잘린 손목과 미스터리 전담반 형사들이 무시무시한 기시감을 준다. 평범하지 않은 각자의 이유로 모인 팀원들에 대한 빌드업이 세심하다. 인물 사이를 오고가는 다소 느린 듯한 촘촘한 전개가 오히려 긴장감을 높인다.

 

용의자가 저 밖에 있고, 이쪽이 범죄를 추적 검거하는 설정이라면 가뿐한 속도감이 있을 것이지만, 이 작품은 다르다. 대화처럼, 기억의 부분처럼 슬쩍 드러나는 사연과 관계가 모두를 침몰 시킬 그물로 한 땀씩 짜이는 느낌이다.

 

어느 하나 가볍지 않을 것 같아서 뻐근한 느낌을 내쉬며 계속 읽어나갔다. 신화적 운명으로 해석된 얽힘은 현대 사회가 만들어낸 사회 시스템이 가하는 운명과도 같다. 필연적 결함과 한계에 기인한다. 공적 시스템은 해당 사회의 복잡성에 따라 지난한 기능 저하를 보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결국 라는 물음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범인을 잡는다고 해도 사건은 여전히 미스터리가 된다는 것을 (...).”

 

가해자와 가해에 가담한 이들은 잊고 살기도 하지만, 희생되고 상처 입은 이들은 잊지 않음으로써 복수를 돌려준다. 크리스마스카드에 적힌 성경 욥기의 구절을 전달하는 방식은 법적 처벌 이상의 복수를 예고하는 장치로 보인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복수라는 종교를 믿어요. 우리는 그 일부분이고요.”

 

도입에 등장한 잘린 손, 여성의 속옷, 잘린 양말 등은 부분적인 추리와 혼돈을 키우는 미스터리 장치들로 활용되지만, 진실은 기대하지 않은 반전을 통해 전모를 드러난다. 결국 과거의 모든 것이 현재를 만들었으므로, 과거는 사라지지도 잊히지도 않는다.

 

저는 셋 중에 첫째예요, 당신은 둘 중에 첫째고요. 이제 때가 되어서 당신을 만나러 왔어요.”

 

영상물에서는 사적 복수를 그린 여러 작품들이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그 통쾌함은 현실에서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무엇을 보상해도 이미 늦어버린 건가 싶은 상처도, 당사자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서 살펴봐야 한다.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한 행동의 합이 현존하는 모든 것을 만든다. 기록되고 기록되지 않은 역사 모두가 미래가 도착할 방향을 정한다. 그러니 위선조차 거추장스럽다는 듯 노골적인 혐오와 폭력이 권력을 얻는 상황이, 반지성주의와 무지성주의가 대세가 된 듯한 의견들이 두렵다.

 

두껍지 않은 책이 무거웠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불길함이 읽는 내내 함께 했다. 작품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생각할 물리적 심적 여유가 부족하도록 강제된 삶이, 사유와 진지함이 조롱당하는 것이, 반복되는 비극이, 지난持難한 반성 없음이 모두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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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없는 농담
김현민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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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은 모순적인 데서 온다는데 내 삶이 딱 그러했다. (...) 슬픈데 웃겼고, 웃긴데 슬펐다.”

 

잊지 않으려고 해도 습관은 무서운 거라서, 살다보면 세상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을 거라는 망상을 하게 된다. 늘 인지하지 못하니 의사소통이 잘 될 거라는, 상황과 이슈에 대한 이해가 비슷할 거라는 기대를 무심결에 하는 실수를 거듭한다.

 

몰입이 필요한 소설이 잘 안 읽히고, 대중과학서가 가장 편한 독서의 나날 중에, 전혀 모르는 직업을 가진 전혀 다른 존재의 이야기를 읽는 시간은 잠이 깨는 효과를 주는 공부의 기회가 된다.

 

하나뿐인 취미가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 꿈을 이룬 듯했다.”

 

저자는 SNL 코미디작가로 일을 시작했다. 그 꿈을 발견한 고등학생 시절에 어머니가 암에 걸려 돌아가셨다. 저자는 대학생활을 해보지 않아서, 대학을 배경으로 하는 코미디 대본을 쓰는 게 어렵다고 했는데, 독자로서는 SNL 프로를 시청한 적이 없어서 아쉬웠다.

 

순탄하고 즐겁게만 사는 이들이 몇 없으니, 웃음을 주는 대본이란 참 어려운 것이라고 짐작할 따름이다. 중간 중간에 아주 짧은 농담 같은 이야기들이 있어서, 저자의 대본의 느낌도 이럴까 짐작해본다.

 

어머니는 자신의 병과 죽음이 두렵고 힘드셨겠지만, 그로 인해 자식에게 섭섭함을 느끼셨을 것 같지는 않다. 짐작일 뿐이지만, 남은 가족이 어떤 죄책감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애도의 과정이라 여긴다.

 

엄마의 얼굴과 내 죄책감의 농담濃淡은 점점 옅어져만 간다. (...) 내 인생은, 농에서 담으로 흘러갈 것이다.”

 

저자는 놀랄 일도 용감한 선택도 아니었다고 하지만, 학력이 전혀 필요하지 않는 분야에서도 당연한 듯 학력 차별과 위계가 엄존하는 게 한국사회다. 책에는 줄여서 썼겠지만, 창작의 어려움, 아르바이트, 고시원, 원룸, 맨션으로 시공간이 이동하면서 저자가 만들어 나가는 삶이 용감해 보였다.

 

고된 와중에도 팍팍해지지 않고, 타인의 삶을 존중하고, 혐오를 무기삼은 공격을 경계하고, 좋은 농담을 만드는 고민을 계속하고, 자신의 모순에 대해 잘 인지하며, 행복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하려는 지향이 좋다.

 

코미디 작가인 나는 가끔 불편함을 듣기 싫어하고, 엄마 없는 나는 가끔 불편함을 들어줬으면 한다.”

 

타인의 삶을 읽는 시간은 내 삶으로부터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다. 타인의 고민에 집중하면서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고민들을 잊는다. 저자의 희망처럼 좋은 농담이 많으면 좋겠다. 웃을 일이 적을 때의 웃음은 큰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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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없는 농담
김현민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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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된 와중에도 팍팍해지지 않고, 타인의 삶을 존중하고, 혐오를 무기삼은 공격을 경계하고, 좋은 농담을 만드는 고민을 계속하고, 자신의 모순에 대해 잘 인지하며, 행복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하려는 지향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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