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이 세상은 본래 크나큰 이야기 (poiesis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9190168</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이야기를 좋아한다. 처음 들은 이야기가 가장 친밀한 존재로부터 들려왔기 때문에.</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04 Sep 2026 07:26:19 +0900</lastBuildDate><image><title>poiesis</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391901684104520.gif</url><link>https://blog.aladin.co.kr/739190168</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poiesis</description></image><item><author>poiesis</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한번뿐인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로 향하고 마는 ‘무언가’ - [오디세이아 - 오디세우스의 방랑과 모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480397</link><pubDate>Sun, 30 Aug 2026 13: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48039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30227&TPaperId=174803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586/2/coveroff/8932030227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030227&TPaperId=1748039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오디세이아 - 오디세우스의 방랑과 모험</a><br/>아우구스테 레히너 지음, 김은애 옮김, 호메로스 원작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07월<br/></td></tr></table><br/>&nbsp;“전쟁은 인간의 증오와 잔인함, 탐욕이 초래한 끔찍한 불행이 아닐 수 없다.”  &nbsp;  십 대에 처음 읽었을 때는 서양 전래 동화처럼 읽었고 관심사가 아니었던 스토리라 딱히 큰 재미가 없었다. 20대에 재독을 시도했는데, 내 탓인지 번역 탓인지 잘 읽히지가 않았다. 영화로 만들어졌대서 편하게(?) 서양 고전을 다시 만나보자 싶었고, 내 기억보다 훨씬 단순해진 주인공 캐릭터에 살짝 지루하고 재미가 덜했다.   &nbsp;  전공자가 아니라 훼손 없는 원작 그대로를 고집할 이유는 없어서, 독일에서 교과서로도 사용된다는, 사건들이 순차적으로 재구성된 이 번역서가 끌렸다. 결과는... 원작 완역서보다 영화보다 더 재밌었다. 번역에 대한 저항 없이 엄청 재밌게 읽었다. ‘아우구스테 레히너’와 ‘김은해’ 조합으로 출간된 시리즈를 다 읽어보고 싶다. #강추  &nbsp;  “병사들은 (...) 제발 계속 항해나 하자고, 이제 더 이상 괴물의 화를 돋우지 말아달라고 간청했다.”  &nbsp;  나이 덕분인지 호기심에 호승심에 자만심까지 가득한 오디세우스라는 인물이 이번엔 잘 보였다. 친구가 되고 싶진 않지만, 이런 성향인들이 세상을 덜 지루하게 만든다는 생각도 한다. 물론 그 대가가 주변인들의 엄청난 피해와 희생일 가능성이 높다.  &nbsp;  물론 나는 현재의 상황이 그런 성격 - 성향 -을 거의 자제하고나 저항하지 못한 인류의 선택이라고 파악한다. 어떤 아이디어의 위험성을 아무리 누군가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고 해도, 대개 ‘인간’은 듣지 않는다. 혹은 듣지 못한다. 오래 전, 유전공학 학회에서 연구자들이 하나같이... 어떤 파국이 있더라고 일단 실험을 해보고 싶다고 하는 발언들을 들으며 모골이 송연해지던 기억이 난다.  &nbsp;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 중 불사의 여신과의 결혼을 통해, 자신도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마다할 자가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nbsp;  이 작품에서 오디세우스는 “인간 중 가장 현명한 자”로 불린다. 그에 걸맞게 오디세우스는 반성도 결심도 할 줄 안다. 문제는 새로운 상황에서 또 잊고 또 유혹당하고 또 결과가 좋지 못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답다. 내 모습과도 내가 경험한 다른 인간의 모습과도 흡사해서 허탈하게 웃다보면 정감이 가기도 한다.  &nbsp;  아주 오래 전부터 다 알고 있던 사실들을 다시 짚어가며, 인간이란 생명체의 ‘디자인’은 정말 쉽게 바뀌지 않는구나 싶다. 그때도 지금도 인간이 중요한 것들을 망각하게 하고 하고자 하는 걸 멈추게 만드는 것은, 고통이나 불행보다 쾌락과 편안이다. 고난이 심할수록 오디세우스는 재빨리 상황을 탈출한다. 귀가 시간이 이토록 늦어진 대부분의 이유는 고통을 동반하는 악재 때문이 아니다.  &nbsp;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된다면, 영원한 생명과 젊음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이오?”  &nbsp;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겐 각자의 ‘이타카’가 간절할 지도 모른다. 모든 시기 누구에게나 ‘목적’과 ‘목표’가 반드시 선명하게 존재해야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다만... 한번뿐인 삶에 있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로 향하고 마는 ‘무언가’가 있을 수 있다. 끈질긴 질문과 지향은 ‘인간’만의 특징이기도 하니까.  &nbsp;  간결하고 아름다운 번역 문장들 위로 삶과 죽음이 어지럽게 교차하고, 친절과 환대와 폭력과 피가 구분할 수 없이 섞인다. 신의 말씀에 복종하고자 하지만, 인간 자신의 광기에 사로잡히면 감각도 판단도 리셋 되고 만다. 이런 것이 삶... 무시무시하다. 그러니 우리는 이 짧은 삶을 사는 동안 한 번 더 애써서 서로에게 친절해야할 밖에.<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1586/2/cover150/8932030227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5860211</link></image></item><item><author>poiesis</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함께 살기 위한 인류의 다음 수는 무엇일까 - [나를 우습게 봤겠지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480386</link><pubDate>Sun, 30 Aug 2026 12: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48038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52130612&TPaperId=1748038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82/32/coveroff/k85213061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52130612&TPaperId=1748038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를 우습게 봤겠지만</a><br/>베라 쿠리안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07월<br/></td></tr></table><br/>&nbsp;뇌가 두부처럼 익을 것 같아 두려운 매년 여름... 서늘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읽지 않은 스릴러... 표지만 봐도 설렌다.<br><br>  &nbsp;  “사람들이 심리학을 사랑하는 건 자기애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이코패스로서 나는 유달리 자기애가 강했다.”  &nbsp;  사이코패스 진단 받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스릴러인데, 재밌고 사랑스럽다. 누구보다 더 애써서 ‘정상’으로 보이고 살아가고자 애쓰는 인물이 애처로울 정도이고, 사이코패스 진단이 무색하게 철저히 약자와 피해자로 살아온 인물이 또 잘못될까 마지막까지 걱정하며 읽었다.  &nbsp;  전형적인 악인으로 가해자로 사이코패스 진단자를 소비하는 않는다는 것이 반가운 문학이다. 비난할 대상을 하나 만들어 세상만사를 그 탓으로 돌리는 게으른 악의를 현실에서도 지겹도록 무수히 목격하고 산다. ‘인간’이란 대채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는 역시 문학을 만나는 체험 시간이다.  &nbsp;  “복수란 차갑게 냈을 때 가장 맛있는 요리라는 건 알고 있다. (...) 복수가 완벽하기를 바랐다. 기다려야 한다.”  &nbsp;  유행이니 트렌드니 가볍고 경쾌한 이름으로 불리지만, 마치 다수가 정답을 제시하고 그 시류나 무리를 따르지 않으며 곧 조롱과 차별의 대상으로 삼는 일은 폭력이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이다. 신뢰성이 없는 테스트를 근거로, 'T' 성향을 욕설과 멸칭으로 소비하는 유행도 바로 얼마 전 일이다.  &nbsp;  끝없이 닥치는 크고 작은 문제들 앞에서, 현실 수습을 위한 합리적 판단과 냉정하고 담담한 태도, 동요하지 않기,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먼저 하기, 그리고 내 감정/감수성은 혼자 감당하기와 같은 성격적 특성은 나도 좋아하고 편안해하는 것들이라서, 소위 ‘공감’보다 냉랭한 판단이 자연스러운 작품 속 인물들을 응원하고픈 기분이다.  &nbsp;  “해가 뜨는 대로 내가 늘 해왔던 일을 할 작정이었다 - 적응하고, 재정비하고, 다음 수를 두는 것.”  &nbsp;  인간은 모두 제각각이고 그래서 누구도 함부로 배제시키면 안 된다. 현실은 그랬던 적이 없고, 지성과 성찰보다는 선동과 악의에 늘 격렬한 반응을 보이지만, 적어도 이렇게 멋진 작품 속에서, 부당한 이미지와 편견을 오랜 연구로 차분히 반박하려는 어른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nbsp;  이제껏 인류가 만들어낸 시스템이 완벽과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가치를 실현하거나 지켜내는 데에도 부족해서, 온갖 형태의 사적 정의 구현이 더 많이 표현되고 유통되는 듯하다. 원칙을 거론하는 것 외에는 딱히 논리적으로도 결과적으로도 반박할 수 없어서 서글프고 두렵다.  &nbsp;  다만, 자신의 단점들을 잘 알고 있는 주인공이 혹시 후속편에 다시 등장해서, 한층 더 많은 고민을 거친 상상력 -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 - 으로 새로운 함께 살기의 방식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재밌고 안타깝고 유익한(?) 소설, 강추한다.<br><br><br>&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82/32/cover150/k85213061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823226</link></image></item><item><author>poiesis</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환경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구조적 해법이 필요하다 - [분리수거에 진심인데 왜 지구는 뜨거워질까? - 친환경 생활의 역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469102</link><pubDate>Mon, 24 Aug 2026 17: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46910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12130016&TPaperId=1746910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38/96/coveroff/k31213001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12130016&TPaperId=1746910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분리수거에 진심인데 왜 지구는 뜨거워질까? - 친환경 생활의 역설</a><br/>마이클 마니아티스 지음, 김지혜 옮김 / 황소걸음 / 2026년 07월<br/></td></tr></table><br/>&nbsp;“친환경 생활을 지속한다는 것은 기후 위기 대응에 대한 서로 간의 문제의식이 공명하고 사회 구조적 해법을 요구하는 파장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nbsp;  분리배출, 수거, 재활용... 단계가 진행될수록 목표보다 실행율은 낮아진다.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이 완벽해진다고 기후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속상한 것은, 뭐라도 해야 하니까,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이들이 겪는 일상의 좌절이다.  &nbsp;  이 책은 조금은 조심스럽게 차분히 읽어야 한다. 빠른 읽기와 긴 오해가 팬데믹처럼 온라인을 휘몰아치는 요즘은 더 그렇다. 저자의 입장과 주안점은 확실하다. ‘기후 위기는 구조의 문제이고 따라서 구조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 그렇다고 “친환경 생활양식”이 완전한 실수거나 무의미하다거나 오히려 해악이라는 것도 아니다.  &nbsp;  “느리지만 꾸준히 그리고 효과적으로 행동해보자. 나에게만 수렴하는 실천이 아니라 타인과 사회에 발산하는 행동이 필요하다.”  &nbsp;  다만, ‘개인적 실천’만이 유일하다거나 중요하다고 미화하고 선전하는 유행의 태생을 정확히 파악하고, 결국 소비를 증가시키고 판매 수익을 올리기 위한 기업의 계책과 이를 문제 삼지 않고 환경 문체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의지도 없는 정부관료들을 똑바로 파악해야한다.  &nbsp;  어떤 멋진 ‘친환경 제품’이라도 소비가 줄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환경에 유해하다. 그리고 개인으로서의 어떤 노력도 개별적으로는 당면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다. 위기 상황을 바꿀 진짜 해결책은 이런 생활양식을 시민 행동으로 가는 진입로로 삼을 때 나타나고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진다.   &nbsp;  “인간이 실천을 지속하지 못하는 건 인간 본성의 결함 때문이 아니다. 의지가 강한 사람마저 나가떨어지게 하는 소비 사회의 강력한 힘 때문이다.”  &nbsp;  안타깝게도 환경 문제는 인간이 마주친 문제들 중 그 스케일이 가장 크다. 따라서 ‘사소한’ 노력으로는 해결기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떤 ‘실천들’이 나를 구성하고 규정하기 때문에 계속한다. 그리고 이런 실천은 소중하다. 나는 어떤 사상이든 일상의 실천이 없는 거대 담론가의 말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nbsp;  어떤 일이든 일단 시작하고 꾸준히 하고, 그 과정에서 더 깊고 넓은 학습이 필요하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한계를 돌파하고 변화를 이끌 방법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갈 수 있는 실천과 능력에 달려 있다. 변화는 학습과 행동에서만 태어난다.  &nbsp;  “사람들이 넋이 나가 있을 때도, 환경을 향한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자동으로 환경보호를 실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nbsp;  이 책의 장점은 이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료 시민, 이웃, 친구, 가족을 사소한 ‘비실천’만으로 비난하거나 배제하거나 적대시하지 말자는 내용이다. 중요한 지적이다. 전 세계 모든 사람을 친환경적으로 바꾸기 보다는, 일상의 구조가 자연스럽도록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빠르고 중요하다. 삶은 정치적 결정들로 재구성된다.  &nbsp;  “감시와 비난의 대상은 힘이 있으면서 사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기업, 정부 관리자였다.”  &nbsp;  사회적 변화를 꿈꾸는 상상력은 빈약해지고, 일상의 피로감은 커지고, 이익추구집단의 세력은 더 공고해지는 듯하지만, 그래도 빈틈은 어디에나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 빈틈을 알아볼 수 있는지와 실천으로 변화에 필요한 크기로 틈을 넓힐 수 있는가이다.   &nbsp;  부연 같지만, 환경 위기는 어떤 일부를 해결한다고 전환되지 않는다. 개인적이고 고립된 실천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학습으로 개인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도록, 유쾌하고 끈질기게 노력해야만 한다.   &nbsp;  “공공 정책은 마트에서 파는 물건이 아니다. 수백만 명이 친환경 소비를 열심히 실천하면서 정치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면, 친환경 소비자 증가는 오히려 절망적인 일이 될 수 있다.”  &nbsp;  절망과 죄책감과 불안에 시달리는 중에 이 책을 만나 좋았다. 이렇게 서로 힘을 나누는 모든 기회가 다음 순간을 더 버티게 돕는 중요한 힘이 되어 준다. 나의 태도와 희망에 어떤 균형점을 다시 조율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38/96/cover150/k31213001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389603</link></image></item><item><author>poiesis</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결코 변하지 않는다고 단언하지 마세요 -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거짓말 - 기원석 산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450770</link><pubDate>Fri, 14 Aug 2026 16: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45077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52130728&TPaperId=174507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84/50/coveroff/k15213072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52130728&TPaperId=1745077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거짓말 - 기원석 산문</a><br/>기원석 지음 / 달 / 2026년 07월<br/></td></tr></table><br/>&nbsp;너무 쉽고 가볍게, 마치 재밌고 즐거운 농담인 양 사람 안 변한다고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몸이 확 굳어지는 저항감이 든다. 그렇다면 양육과 교육과 기타 등등... 함께 살기 위해 애쓰는 모든 노력들은 무슨 헛짓거리란 말인가.   &nbsp;  매번 불쾌하고 부당하다고 느낀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반갑다. 어떤 내용일지 기대가 크다.<br><br>  &nbsp;  “서른 살의 나에게 연애도, 관계도, 학업도, 꿈도, 열정도 이렇다 할 증언을 해주지 않았다.”  &nbsp;  저자의 이력이 흔치 않다. 나는 절대 알 수 없는 다른 직업과 관련된 에세이 읽기는 매번 흥미롭지만, 교정직은 낯선 만큼 놀랍고 강렬했다. 일상 속 숙고를 전하는 내용일 거란 짐작이 빗나가서, 두근거리며 읽었다.  &nbsp;  갇힌 이들과 그들을 관리하는 이들의 대화, 관계, 사건들은 조마조마하게 읽는 스릴러 같기도 했다. 물론 ‘우리와 그들’이라고 완전 분리된 존재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읽을수록, ‘인간’에 대해 질문해 온 나의 의문들과 닮은 내용들이 많아졌다.  &nbsp;  “본질적으로 사람은 변할 수 있을까? 범죄를 저지른 대가로 수용되어 갖은 고생을 하며 살고 나면, 사람이 바뀔까?”  &nbsp;  “2024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모든 범죄에 대한 삼년 이내 재범률은 약 22퍼센트”라는 것은 반가울 만큼 희망적이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변화’란 어떤 조건 속에서, 어떤 영향 하에서 싹을 틔우게 되는 걸까.  &nbsp;  어쩌면 정답도 공식도 없을지 모르겠다. 책 속 에피소드들만 보아도, 각자의 사연과 사정은 각자의 것으로 남고, 해결이나 해소를 위해 타인이 접근 가능한 정도도 확연하다. 그러니 최대보다 최소에 더 집중해서 누군가의 변화를 방해하는 일만은 없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nbsp;  “나에게 교정矯正과 교화敎化란 그저 수형자들이 ‘다음에는 나쁜 선택을 하지 않도록’ 함께 궁리해보는 일이었다.”  &nbsp;  온라인이라는 무한 공간에서, 마치 재밌는 놀이처럼 번지는 현상, “타인의 삶을 재단하고 평가하고 지적하고 혐오하”는 일은 누구도 돕지 못하고 필요도 없는 독성물질이다.   &nbsp;  그런 이들이, 누가 보지 않아도 선하고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한 고단한 선택을 할 리가 만무하다. 유혹이 강할 때라도 나쁘고 악한 선택을 하지 않으려고 애쓸 리가 없다. 그리고 그렇게 노력하는 누군가를 방해하고 좌절시킬 가능성도 있다.  &nbsp;  “수형자들과의 상담에서도 나는 (...) 더 들어야 한다고 되뇐다. 날카로운 말보다 부드러운 침묵이 지닌 힘을 믿으며.”  &nbsp;  100%라고는 영원히 장담할 수 없겠지만, 나는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그런 시각을 포지하지 않을 것이다. 고민과 질문이 진지하고 복잡할수록, 간단명료한 정답은 없지만, 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인의 글로 만날 수 있어서, 천천히 기쁨이 스며드는 독서였다.<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84/50/cover150/k15213072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845005</link></image></item><item><author>poiesis</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감각적인 체험과 깊이 있는 이해를 돕는 훌륭한 지적 체험장 - [실험하는 고고학자 - 고대 인류 문명의 모습과 소리, 냄새, 맛을 재현하는 과학자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444267</link><pubDate>Tue, 11 Aug 2026 11: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44426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02130125&TPaperId=1744426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32/39/coveroff/k90213012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02130125&TPaperId=1744426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실험하는 고고학자 - 고대 인류 문명의 모습과 소리, 냄새, 맛을 재현하는 과학자들</a><br/>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6년 08월<br/></td></tr></table><br/><br>제목이 충격적(?)입니다. 고고학에서 실험을 할 수 있다니! 벽돌책이라서 더 반가운, 펼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일 거라 기대합니다.<br>&nbsp;* 고고학: 물리적 흔적을 남긴 ‘사람들’에 관한 학문.  &nbsp;  <br>“실험고고학은 (...) 능동적으로 과거를 재현한다. (...) 일부 지지자들은 이 분야를 (...) ‘경험’ 고고학, 심지어는 ‘살아 있는’ 고고학이라고 부른다.”  &nbsp;  좋은 책은 사는 재미를 되찾게 해준다. 덥고 힘들고 낙관하기 어려운 소식들도 많은 여름에, 제목이 흥미로워서 읽고 싶은 책은, 그 기대를 훨씬 넘어선 즐거움을 주었다. 사람들 - 고대인들 포함 - 과 삶에 다시 흥미로워졌다.  &nbsp;  내용과 문장이 좋기도 하고, 아프리카에서 출발해서 마치 인류가 확산한 속도와 방향으로 - 인류가 단순직선 확산을 하진 않았지만 - 나 역시 시공간을 여행하듯 간접 체험하듯 느끼며 읽었다. 더구나 오류 정정한 팩트들도 다양해서, 살아 있는 동안 좋은 책들 더 많이 읽고 배워야지, 하는 의지도 불쑥 솟게 해줬다. #강추  &nbsp;  “곡물을 기반으로 만든 맥주 (...) 일부 고고학자들은 그것이 역사상 최고의 복잡한 문명이 탄생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까지 생각한다.”  &nbsp;  물론 저자는 학자답게 겸손하다. 일부가 지지하는 개념이다, 주류 학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점이다 등등, 실험 고고학자들과 그 지지자들의 이야기가 ‘일리’라는 것을 과장하지도 부정하지도 않고 솔직히 언급한다. 실험 고고학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지식이 결국 한정적 진리라고 생각하는 나는 그래서 더 거부감 없이 편히 즐겼다.  &nbsp;  인류의 정착 농경 문명의 탄생을 맥주 만들기와 연결시키는 것은 아예 낯선 것은 아니지만, 상세 설명이 더해져서 더 재밌고, 로마 멸망을 더 자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먹고 토하는 로마인 설정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그 외에도 도토리를 수천 년간 수많은 이들이 먹어왔다는 것도 놀랍고, 그로 인해 참나무 소유권 분쟁 - 전쟁 - 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nbsp;  “고고학이 과거에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드러내겠다는 약속을 진정으로 이루려면, 그들이 실제로 ‘경험’한 것 - 그들의 하루와 생활을 채웠던 순간들 - 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nbsp;  책의 구성도 독특하다. 실험 설명과 결과만 보고하는 대중과학서가 아니라, 고고학에 엄청난 상상력이 필요한 것처럼, 이야기도 소설처럼 공을 들여 재구성했다. 덕분에 정말 소설을 읽는 듯 몰입했고, 정서적 반응도 다양하게 경험했다. 목차의 각 대륙마다 어떻게 이렇게 재밌게 소재를 과학적으로 활용하는지 감탄만 나온다.  &nbsp;  분량이 많지만, 아주 재밌어서 빠르게 읽을 것도 같았는데, 상상하는 시간이 길어서 한참 읽었다. 그래도 더 천천히 읽고 싶었다. 나도 최대한 상세하고 치밀하게 상상하고 재구성하고 싶었다. 실험 고고학! 완전 재밌다.  &nbsp;  “우리와 먼 과거의 사람들을 통합하는 공통점을 드러내고, 그들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nbsp;  나는 아주 오랫동안 꿈이 지구여행가였다. 이왕 지구에서 태어났으니 최대한 많은 곳곳을 여행하다 길에서 죽어도 좋을 듯했다.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가 궁금해서였다. 그런 여행은 못 했지만, 10여 개국을 방문하고 더러 오래 머물고 일 하고 공부하고 여러 해 살기도 했다.   &nbsp;  하지만 그건 동시대의 여행 경험이었다. 이 책을 통해,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것처럼, 낯선 공간들을 방문했다. 문자 속 여행이라 안전하고, 최고의 가이드가 있는 것처럼, 많이 배웠다. 그리고 새삼 다시 확인했다. 우리가 지금 존재하는 것은, 우리 이전의 모든 존재가 애쓰며 살아온 덕분이라는 것을.   &nbsp;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그들의 조건에서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nbsp;  쉬운 것, 당연한 것은... 사는 동안 사실 아무 것도 없다. 물리적 실체 - 몸 - 이 있는 존재가 삶의 본질을 경험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행동’하고 ‘경험’하는 것이다. 이 책은 아주 감각적인 체험과 깊이 있는 이해를 돕는 훌륭한 지적 체험장이다.<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932/39/cover150/k90213012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9323912</link></image></item><item><author>poiesis</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뇌(신경)과학으로 만나보는 예술적 천재성 - [뇌가 만든 천재들 - 광기와 창조성은 어떻게 연결되는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436431</link><pubDate>Thu, 06 Aug 2026 22: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43643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968402&TPaperId=1743643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73/41/coveroff/896596840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968402&TPaperId=1743643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뇌가 만든 천재들 - 광기와 창조성은 어떻게 연결되는가</a><br/>마리오 데 라 피에드라 월터 지음, 성소희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07월<br/></td></tr></table><br/><br><br>광기, 창조성, 천재성, 창의성, 예술, 뇌과학, 인공지능... 모두 흥미롭고 연결되면 더 궁금할 내용들입니다. “미쳤다”는 건 어떻게 해석되고 유의미해 지기도 할까요. 미쳐야 할 수 있는 것들에는 뭐가 있을까요.<br><br>  &nbsp;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는 대상은 죄다 광기라고 부르는 듯하다. 정말로 실패한 것은 그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의 논리다.”  &nbsp;  뇌과학과 예술, 한 분야도 쉽지 않은데, 어떻게 연결되고 설명될지 궁금했다. 대중과학서도 아니고 의학사도 아니고 예술 서적도 아니고, 이상하게 그 모든 것 같기도 하다. 품이 넓은 방식의 주제 선정과 글쓰기랄까. 그 낯섦이 재밌다.  &nbsp;  구석기 후기 동굴벽화에 관해 처음 배울 때, 외계인 얘기처럼 신기했다. 그러니까... 그 시절에도 인간은 예술 작업을 했구나. 어쩌면 생존과 번식이라는 유전자의 명령을 따르는 행동을 제외한 활동이 인간만의 고유함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다.  &nbsp;  그때 이후로 인류 문명은 발전(?)했다고 자평하지만, 욕망에 휘둘리고 성과에 급급하여 효율성을 따지는 팍팍하고 비예술적인 삶의 방식이 칭찬받는 내용 - 인문학이나 예술의 무용성 주장처럼 - 을 보면 오히려 인간다움에서 멀어진 퇴행 같기도 하다.  &nbsp;  “뇌는 감각의 제약을 받으며, 외부 정보를 걸러내 현실을 구성한다. (...) 예술 역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으며,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을 반영한다.”  &nbsp;  이 책을 통해, 광기와 창의성이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런 이야기가 오래 불편했다. 공감각을 가진 예술가들도 있고, 광기라기보다는 정신질환으로 분류된 - 현재에 와서는 약물 치료가 가능한 - 어려움을 가진 이들도 분명 있다.  &nbsp;  그러나 ‘천재성’이란 그 한계들로 인해 자동발현되는 게 아니라, 그것들을 예술적 표현의 도구로 활용하며 어려운 상황과 조건에서도 노력한 그 점에 있지 않을까. 정신 질환이 있어도 의학 진단을 받지 못한 예술가들이 있으며, 질환이 없이도 천재적인 예술 작품을 인정받은 이들도 있다.  &nbsp;  문제가 되는 것은 ‘증상’이나 ‘어려움’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혹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게으른 뇌가 선택하는 판단 방식, 협소한 세계관, 각자의 편견, 없는 간극을 굳이 만들고 넓히는 허구, 과학과 예술처럼 연결되고 이야기될 수 있는 분야들의 분리 등.  &nbsp;  “우리 뇌가 구성할 수 있는 현실은 감각 기관의 능력에 제한받는다. 우리는 생물학적 장벽에 갇혀 제한된 세상에서 살아간다.”  &nbsp;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고의 유연성을 넓히고 시야를 확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여러 내용, 여러 인물들을 만나면서, 그렇게 편안한 기분으로 저자의 제안과 설명을 즐겼다. 과거로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 내내 흥미로울 분야들 - 과학과 예술 -이다.  &nbsp;  “누가 예술을 만들 수 있을까?”  &nbsp;  마지막으로 예술을 만드는 주체는 누구인가 혹은 누구여야만 하는가에 관한 내용이 흥미롭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서 만든 작품은 예술이 아닐까. 그 기술이 그저 도구일 뿐이고, 프로그램 활용에는 여전히 인간의 창의성이 필수 요소라는 주장은 타당할까.  &nbsp;  혹은 더 나아가, 인공지능이 의식*을 갖추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의식 활동을 하는 존재가 만든 작품이 사고를 촉진하고, 감상자에게 충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면 창의성을 수반한다고 인정할 수 있을까. 그래도 창작은 인간의 전유물일까. 그리고 그 근거는 무엇일까.   &nbsp;  * “생물학에서 의식consciousness(결합을 뜻하는 라틴어 'con'과 지식을 뜻하는 ‘scientia’의 합성어)을 각성 상태(전반적인 반응 상태), 자각(현재와 즉각적인 경험에 대한 인식), 자극에 반응하려는 동기의 존재로 정의한다.”<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73/41/cover150/896596840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734192</link></image></item><item><author>poiesis</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제 스스로 자기 삶을 환하게 밝히는 새별이 - [천 개의 웃음과 눈물의 낙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423768</link><pubDate>Fri, 31 Jul 2026 14: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42376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42130101&TPaperId=1742376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70/32/coveroff/k04213010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42130101&TPaperId=1742376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천 개의 웃음과 눈물의 낙원</a><br/>전경린 지음 / 김영사 / 2026년 07월<br/></td></tr></table><br/><br>천 개의 웃음이 있는 곳은 틀림없이 낙원이겠지요. 고운 눈물이 메마르지 않은 곳도 그렇고요. 그리운 시절을 가만히 꺼내보거나, 꿈으로 재현해서 재회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다른 이의 유년 시절을 만나는 일은 조금 설레고 많이 궁금합니다. 읽다 보면 잊힌 제 유년의 상세함도 조금 더 채워지리라 기대합니다.<br><br>  &nbsp;  “세월이 흐르고 흐르면서, 내 기억의 가장 깊은 바닥에 깔린 감꽃들은 보석인 양 휘황하게 빛나고 있어.”  &nbsp;  어릴 적에는 애벌레에서 번데기 과정을 거쳐 성체로 ‘변신’하는 불연속적인 삶을 사는 존재들이 신비로웠습니다. 인간은 연속적인 성장 곡선을 유지한다고 이해했고요.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 외향은 그렇게 성장하고 노화될지 모르나, ‘존재’는 꼭 그런 방식이 아닌 듯합니다.  &nbsp;  어릴 적 ‘나’를 기억해보면, 지금의 나와 동일한 존재라고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더 생각해보면, 삶의 여러 순간들에 ‘나들’은 어떤 의미로 이전과는 다른 존재로 살아가기로 선택하기도 하고, 그로 인해 변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기억이 재구성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내내 그리워하는 습성이 더 신기하기도 합니다.  &nbsp;  “세월이 지나 왜 나는 다른 내가 아니고 지금의 내가 되었을까. 나선형의 기억을 따라가면 여기서부터 거기에 갈 수도 있을까.”  &nbsp;  개천 자맥질, 넓적 바위 위 미용실, 세상 이치가 그렇다고 말해주는 어른, 온동네 어른들이 마당에 멍석을 깔고 이야기하는 저녁, 온동네 아이들이 불을 피워 야간 놀이하는 마을, 바랭이풀 우산, 풀꾹새, 홍시의 맛이 주는 위로…….  &nbsp;  어른 전경린이 기억처럼 풀어 낸 어린 새별이의 세상에는, 저는 몰라서 부러운 것들이 아주 많습니다. 상상하고 시기하느라(?) 작고 가벼운 책을 오래 읽었습니다. 완벽한 세상이 없다면 낙원도 없는 거겠지만, 불편하고 아프고 불온해도, 성격도 결점도 제각각이라도, 이 풍경 속 사람들은 서로를 헤아리고 알아가며 함께 살아가고 필요할 때 돌봅니다.  &nbsp;  “가만있는 사람이나 산 생물을 잘못되게 하고 , 마음 상하게 하는 짓이 해코지다.”  &nbsp;  반짝반짝 새별이는 크게 울기도 잘합니다. 맹랑한 소리도 잘 해서 멋집니다. 그 새별이의 기분과 생각을, 어른 전경린의 더없이 감각적이고 자연과 공명하는 방식의 글이 아름답고 안타깝게 그려냅니다.  &nbsp;  그런 문장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어려서 몰랐던, 내게는 없었던 순간들과 존재들을 또 부러워하며, 함께 두려워하고 외로워하고 슬퍼하고 서러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잊고 산 어떤 기억들이 살그머니 떠오르기도 합니다.  &nbsp;  복잡한 일과 복잡한 기분을 싸안고 견디다 보면, 문득 탁 떨어뜨려서 차라리 깨버리고 싶은 못된 기분도 듭니다. 그런데 이 소설이... 그런 약골인 존재지만 인간으로 살아가는데 크게 모자람이 없다고, 그런 토닥임을 건네는 듯해서 살짝 눈물이 납니다.<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70/32/cover150/k0421301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703278</link></image></item><item><author>poiesis</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모두에게 열려 있는 집 만들기를 실천하기 위하여 - [낯선 집 - 재일 이주 여성의 자리를 엮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421650</link><pubDate>Thu, 30 Jul 2026 15: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42165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42130813&TPaperId=1742165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34/79/coveroff/k34213081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42130813&TPaperId=1742165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낯선 집 - 재일 이주 여성의 자리를 엮다</a><br/>조경희 지음 / 사계절 / 2026년 07월<br/></td></tr></table><br/><br>한국 사회 내부에도 얼마나 많은 실금과 빗금들이 있을까, 상상할 때마다 꼼짝 없이 그 줄에 걸린 듯 답답합니다. 다른 한편 상상할 필요조차 없이 굵고 단단한 줄들, 그 경계 밖에 존재할 것을 강요받은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nbsp;  낮고 작은 목소리들을 선명하게 기록한 책이 반갑고 감사합니다. 귀한 배움의 기회로 삼아 일신의 불평을 잠시 놓고 찬찬히 읽습니다.<br><br><br>  &nbsp;  “디아스포라에게 고향은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신화적 장소이다. 귀환은 정체성의 결여를 채우는 종착점이 아니라 새로운 경계와 마주하는 또 하나의 시작이다.”  &nbsp;  성장이란 건, 양육자를 떠나, 생가를 떠나, 고향 혹은 제 나라도 떠나 살게 될 수도 있는 사건이다. 떠나서 좋은 이들도 있겠지만, 일련의 이별은 그리움을 품게도 한다. 내 그리움의 성격은 대개 homesick보다는 nostalgic이었다. 부재를 선명히 인지하지만 그리운, 그 인지로 인해 아슬아슬하게 슬퍼지는.  &nbsp;  재구성을 거듭하는 기억 속 ‘고향’은 내게는 빛나고 행복한 내용일 수 있으나, 그렇게 기억될 수 있게 한 많은 수고는 한국 사회의 가부장제와 불평등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모든 수고를 감당한 분들이 가장 애틋하게 그립다.  &nbsp;  떠난 분들을 강렬하게 기억하고 때로 재현해보는 내 기억 속 고향은, 그래서 부재와 상실의 다른 이름이다. 나는 현실의 어디로도 ‘귀환’할 수가 없다. 그 비숫한 고향의 복원이란 현존하는 이들이 친밀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새로운 시공간을 만드는 노력뿐이다.  &nbsp;  “한국 거주 재일조선인, 즉 ‘재한 자이니치’라는 낯선 삶의 제도적 조건과 일상의 경험에 대해 말하려 한다.”  &nbsp;  나의 상실과 부재를 몇배나 농축해서 느낄 것 같은 이들을 이 책에서 만난다. 선명한 공간적 경계를 넘나들며 축적된 경험, 그 경험으로 인해 평생 어디서 산다고 해도  ‘진짜 한국인’이 되기는 어려운 이들 - 그럴 필요도 없지만.  &nbsp;  이분들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혐오 정동”과, 실패를 보장하는 갖가지 정책들을 경험한 역사의 증인이다. 동시에 낡고 그릇된 절대화와 치명적 좌절을 경고하고 되짚어 재사유와 질문을 이어가는 이들이다.   &nbsp;  “한국에서는 반공주의나 가부장제(여성혐오)의 영향이 짙게 반영되었다면, 일본에서는 식민주의/인종주의(혐한)가 역사적으로 형성된 이데올로기의 핵심이었다.”  &nbsp;  지극히 사적인 경험도 있겠지만, 혐한 - 혐오 - 은 그렇지 않다. 혐오는 감정이지만, 그 분출은 타자 집단을 위계로 누르는 장치로 작동한다. 게다가 혐오 - 증오 - 는 감정이지만, 즉발적인 표현 행위가 아니라, “훈련되고 양성된다.” 더구나 현대사회는 혐오발언이 무한 확산되고 무한 재생산되는 온라인 소통 방식을 갖췄다.   &nbsp;  말로써도 상대를 죽일 수 있다. 심각하게 존엄성을 훼손할 수 있다. 한탄스럽게도 이를 선거 전략으로 활용하는 비열한 정치인들이 있다. 휩쓸리지 않고 저항하는 지성은 역사를 보는 방식으로도 깊어질 수 있다. 그리고 매번 정확하게 물어야 한다. “누가 누구에게 공포를 말하는가. 그것은 타당한 공포인가.”  &nbsp;  “타자성을 지우거나 평균의 서사로 환원하지 않고, 그 어긋남과 불일치를 견디면서 서로를 ‘듣는’ 조건을 마련할 수 있는가.”  &nbsp;  아무 때나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아도, 동일한 존재란 없다. 서로 다른 존재의 생존 방식은 필연코 “ 차이를 매개로 연결되는” 것이어야 한다. 한 사람의 삶도 출발과 도착이라는 직선으로만 이어지지 않는다.   &nbsp;  디아스포라의 삶 역시 “하나의 기원에서 출발한 이산과 수난, 그리고 귀환의 서사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만남과 대화를 통해 공통의 언어를 만들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공들인 논문집 같은 이 책이 그 먼 길에 힘과 의지가 될 것이다.   &nbsp;  “집은 그곳으로 향하는 길 위에, 그리고 그 길에서 벗어난 이후의 삶 속에 흩어져 있다.”  &nbsp;  * 본 리뷰는 사계절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34/79/cover150/k34213081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347966</link></image></item><item><author>poiesis</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우연이 만들어내는 가장 행복한 색깔 - [식물이 바꾼 지구의 역사 - 식물과 동물, 그리고 진화의 위대한 로맨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421621</link><pubDate>Thu, 30 Jul 2026 15: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42162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72130210&TPaperId=1742162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42/87/coveroff/k97213021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72130210&TPaperId=1742162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식물이 바꾼 지구의 역사 - 식물과 동물, 그리고 진화의 위대한 로맨스</a><br/>라일리 블랙 지음, 조정남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6년 07월<br/></td></tr></table><br/><br><br>정확하고 장대한 과학적 상상력이 재구성한 이야기는 최고의 판타지 문학처럼 설렙니다. 아주 오래 기다린 설레는 주제입니다.<br><br><br><br>“지구에서 식물의 역사를 떼어놓고는 우리 행성의 생명체를 조금도 이해할 수 없다.”<br>한 인간 개체에 비하면, 비교불가하게 오래 된 지구... 그리고 등장한 모든 생명체들은 그 시간 동안 필연적으로 변하고 현실적으로 멸종을 맞았다. 멸종은 늘 현재 진행형이고, ‘대멸종’이라 불리는 시기처럼, 현존하는 생물 대다수가 사라지기도 한다.<br>기록도 화석조차 없는 아주 오래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당시의 생명체들과 서식 환경까지 이해하는 것은 그래서 ‘전적으로’ 상상력에 의존한다. 과학사 책을 읽는다고 생각했지만, 많은 내용이 마치 영화처럼, 새롭게 재구성된 다큐멘터리처럼 흐른다.<br>“우리의 현재 모습은 우리의 선택이나 우리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 현재도 진행 중인 식물과 함께한 상호작용의 결과이다.”<br>식물이 주인공처럼 들리는 제목이지만, 읽다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개별적이고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었고 있는 생명이란 없으니까. 세계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자국의 역사도 제대로 알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내용은 더 흥미롭다.<br>산호를 만들지 않은 초기 광합성 생물들 - 광합성은 식물의 전유물이 아니다 - 이, 고대 광합성 생명체들이 1억 년 이상 바다와 땅의 경계에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놀라운 - 나만 모르던? - 내용, 그렇게 생명은 단지 행성에서 살아간 것이 아니라 지구 행성 자체를 변화시켰던 시간들, 그렇게 진화를 거듭해서, 식물은 마침내 수많은 다른 생물이 사아갈 수 있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br>“기후는 생명체에 일어나는 어떤 사건이 아니라, 지구의 생명체들과 자연환경 사이의 끝없는 상호작용의 일부다.”<br>끝없는 상호작용 - 늘 호혜적이지는 않은 - 의 일부로 오래 살아남으려면 ‘유연성’이 필요하다. 예측 불가한 미래에 대응하기 위해 진화는 ‘엉성한’ 방식을 취한다. 그 빈틈이 생존을 위한 유연성을 보장하도록.<br>아무리 잊지 말자고 해도, 게으른 뇌는 자꾸만 현실을 단순화시킨다. 직선적인 사고가 편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다시 정직한 관찰로 돌아가서, 지구와 생명의 역사와 현실을 보면, 전혀 다른 무늬를 알아차릴 수 있다. 생명체들은 한 줄 서기를 하지 않는다. 완전한 분리란 불가능하게 얽혀 있다.<br>“나와는 너무나 다른 삶을 알아차리고, “너에게 삶은 어떤 것인가?”라고 물어보는 것. (...) 삶은 엉망이고, 기이하며, 끈질기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다양하다.”<br>종중심주의를 벗어날 수 없으니, 사고를 확장 해봐도 인간의 삶으로, 인간의 질문들로 돌아온다. 그럼에도 책 속에서 함께 한 오랜 산책이 편협한 뇌에 여러 다른 갈래의 작은 길을 만들어줬다고 생각한다. 유연한 연대... 그런 초록한 생명살이를 상상한다.&nbsp;<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42/87/cover150/k97213021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428798</link></image></item><item><author>poiesis</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우리가 함께 숨 쉬는 사회를 위한 지식과 제언 - [공기의 세계 - 보이지 않는 숨, 질병, 그리고 생명의 역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393638</link><pubDate>Wed, 15 Jul 2026 19: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39363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72130176&TPaperId=1739363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40/68/coveroff/k27213017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72130176&TPaperId=1739363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공기의 세계 - 보이지 않는 숨, 질병, 그리고 생명의 역사</a><br/>칼 짐머 지음, 이상훈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06월<br/></td></tr></table><br/>&nbsp;600쪽이 넘는 기분 좋은 두꺼운 책, 오랜만이다. 공기호흡을 하는 존재임에도, 호흡량이 식사량보다 많음에도, 주저 없이 공기를 오염시키는 무시무시한 인류 문명... 탐정 소설처럼 재밌다니, 이정모 관장님 추천이라니 기대가 크다.<br><br>  &nbsp;  “오늘날 과학자들은 공기라는 공간 전체에 가득한 생명체를 에어로바이옴, 즉 공기 생물군계라고 부른다.”  &nbsp;  미생물학 강의를 들은 대학 시절 친구는 그 후 며칠을 식사를 제대로 못했다. 인간의 감각들이 일상적으로 감지하지 못하는 영역의 지식이 초래한 부작용이었다. 못 보고 못 듣고 못 맡지만 존재하는 것. 인간의 ‘의심’은 감각의 한계를 벗어난 세계를 기어이 밝혔다.  &nbsp;  낯선 학자들의 이름이 가득한 책 속에서 의구심을 연구와 실험을 통해 확신 가능한 사실로 밝히는 이들의 얘기는 흥미롭고 재밌다. 감각 기관의 기능을 증폭시키는 기계 장치들을 만들어 보고야 마는 집념. 그렇게 공기 중 많은 입자들이 인간의 사진에 찍힌다.  &nbsp;  “아마토는 결국 구름이 살아 있음을 증명했다. 퓌드돔 상공을 떠다니는 안개 한 티스푼마다 수천 개의 미생물이 들어 있었다.”  &nbsp;  물리학과 화학의 틀에서 세상을 보는데 익숙한 나는, 공기를 떠올리면 분자량이나 기체 배율 혼합 등을 먼저 떠올리지만, ‘공기’는 그 자체로 생태계다. 날아다니는 생명체가 가득한 한시적인 생태계다. 애초에 해양의 생명체들이 파도에 의해 공기 중으로 부상해서 육지로 이동하지 않았다면, 땅에는 생명이 없었을 것이다.  &nbsp;  덥고 가물 때 육지 생명체들이 간절히 바라는 비도, 겨울을 포근하고 아름답게 만들고 식물의 발아에 필수인 수분을 보충해주는 눈도, 그렇게 부상한 후 구름을 이루는 물방울에서 사는 다양한 생명체들 - 곰팡이나 조류, 꽃가루, 지의류, 곤충, 세균, 바이러스 등 - 이 응결핵이 되어 주어 발생하는 기상 현상이다.  &nbsp;  “구름을 이루는 물방울에는 다양한 분자가 들어 있으며, 일부 미생물은 이를 이용해 성장할 수 있다. 구름을 먹고 사는 것이다. (...) 구름 속 미생물은 매년 100만톤의 유기 탄소를 분해하고 있다.”  &nbsp;  오래 전 생태학을 공부할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 중 하나는 “구름이 미생물의 이동수단”이라는 점이었다. 이 책을 통해, 구름은 단지 이사를 돕는 것만이 아니라, 구름 자체가 다양한 생명 활동을 보장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새롭게 배운다.  &nbsp;  인간은 국경선을 만들고 이동을 권리로 명시했지만, 수십억 년 동안 수많은 생명체들은 공기 중에 살며 국경 없이 이동했다. 과학의 장점, 과학서를 읽는 즐거움은 일상을 사는 우리를 잠시 지구생태계 시스템에서 가늠해보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nbsp;  “에어로바이옴에 대한 인간의 영향력은 구름에까지 미치고 있다. (...) 머리 위를 떠다니는 평범한 구름 하나에 1조 개가 넘는 항생제 유전자가 들어 있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 비가 올 때 인간은 우리가 직접 만들어낸 DNA의 빗줄기 속을 걷고 있는 셈이다.”  &nbsp;  이 책은 과학서지만, 과학계 내부의 갈등, 행정과의 불화, 지식과 음모의 괴리 등 다양한 해당 사례를 보여주며, 무엇이 공중보건의 문제인지, 왜 방역을 개인의 책임에만 맡겨서는 안 되는지, 사회가 설계해야 할 인프라가 무엇인지를 제기한다. 흥미롭고 유익하다. 동시에 단순하지 않아서 더 선명한, 재밌는 과학사책이기도 하다.   &nbsp;  궁금하다. 이 모든 지식으로  우리는 함께 숨 쉬는 사회를 어떻게 설계할 수 있을까. 관심 있는 많은 분들의 일독을 기쁘게 권한다.<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40/68/cover150/k27213017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406841</link></image></item><item><author>poiesis</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우리가 숨차게 달려가는 미래는 어디 그리고 무엇 - [이름 없는 것들의 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390937</link><pubDate>Tue, 14 Jul 2026 11: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39093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82130711&TPaperId=1739093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27/79/coveroff/k38213071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82130711&TPaperId=1739093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이름 없는 것들의 밤</a><br/>정보라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07월<br/></td></tr></table><br/><br>매번 반갑고 살짝 떨리는 정보라 작가님 신간 소식, 1부 2023-3 밤이 오면 우리는, 2부 2024-12 예언자, 3부 2026-3 우리는 악마에게서 왔다, 순서로 읽어본다. 월간지에 인덱스 해주셔서 기분이 방긋하다.<br><br>  &nbsp;  “어쩌면 인간은 점점 달아오르는 이 행성에 너무 많이, 너무 오래 갇혀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nbsp;  목덜미가 잡힌 듯 꼼짝 않고 읽게 되는 이야기의 마력은 여전하다. 그래, 이게 내가 좋아하는 SF의 모든 것이지, 싶다. 작품 속 캐릭터처럼 불안과 의심에 싸여, 초조해하며 등장인물 - 혹은 로봇 - 을 파악하려 가늠해본다.  &nbsp;  25년 전 나는 인간의 의식이 왜 창발emerging하는 지가 정말 궁금했다. 전기신호들 - 스파크 - 들이 신경세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의 수많은 조합으로 다른 차원의 무언가가 창조되는 그 기이한 현상. 그때도 모르고 지금도 모른다.   &nbsp;  인간의 뇌가 기능하는 방식으로 학습하는 AI 역시 그렇게 진화할 것이다. 그래서 몹시 비관적이다. 철저히 ‘합리적’으로 사고하면 인간이 말살당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미 그래도 된다는 선례 - 지능이 높다는 이유로 다른 종을 죽이고, 착취하고, 변형시키고, 길들이고, 죽이고, 먹어치우고 - 를 남겼다.  &nbsp;  “로봇은 안전장치를 가동하고 인간을 말살하기 시작했다. 벌써 오래된 얘기다.”  &nbsp;  똑똑한 로봇들은 “언제나 같은 인간을 죽이는 일에 능숙”한 인간들을 이용해서 인간들을 죽인다. 반박할 논리가 하나도 없어서, 쓴 맛이 입에 고이는 기분으로 “지구상 다른 모든 생물종을 위한 최선의 안전장치는 인류 문명의 종말”이라는 문장을 한참 보았다.  &nbsp;  인간이 인간 아닌 존재들로 대체되는 시간의 배열이 촬영본처럼 생생한 작가의 필력으로 이어진다. 거친 호흡이 타의로 멈춘 듯한 지점에서, 예언자는 몽환적인 서글픔과 비극을 뿌리며 이야기의 초점을 이동시킨다. 읽고 나니 몹시 슬픈 꿈을 꾼 것 같다. 의심도 못하고 정서적 이입을 깊이 해서 읽었더니 현실의 절망처럼 반전이 아팠다.  &nbsp;  “결국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어. 자기 힘으로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면 조만간에 자기는 왜 기계이고 너희는 인간이냐는 질문을 스스로 생각해낼 테니까.”  &nbsp;  무엇이 인간인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나는 늘 이런 질문을 하는 SF를 좋아했다. 대개의 작품에서, 인간은 부끄럽고 인간 아닌 존재들이 인간다움의 가치를 더 갈구한다.   &nbsp;  기억 데이터의 이동과 저장 수준이 아닌, 학습 가능한 불멸의 ‘의식’이 이제 단일우세종이 될까. 너무 빠른 속도로 바뀌는 미래를 덜 보고 사는 나이라 안심이 되기도 하지만, 인류의 모든 지식을 학습한 그 ‘의식’이 밝힐 우주와 생명의 비밀은 너무나 궁금하다. 진단서이자 예언서와 같은 작품, 정식 출간을 고대한다.  &nbsp;  “통신망 안으로 녹아 흩어진 의식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소멸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어딘가에서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827/79/cover150/k38213071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8277981</link></image></item><item><author>poiesis</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제발 저를 제 아들과 생이별시켜주세요. - [안녕, 피터팬 - 중증자폐인 아들을 두고 떠나는 시한부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389566</link><pubDate>Mon, 13 Jul 2026 16: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38956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130273&TPaperId=1738956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45/80/coveroff/k092130273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130273&TPaperId=1738956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안녕, 피터팬 - 중증자폐인 아들을 두고 떠나는 시한부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a><br/>전경철 지음 / 이야기장수 / 2026년 06월<br/></td></tr></table><br/>&nbsp;2026년 3월, MBC &lt;실화탐사대&gt;를 나는 아직 못 보았다. 그럼에도, 장애가 있는 자식을 두고는 죽어도 죽을 수 없는 양육자들의 이야기는 아주 오래 전부터 들어왔다. 여전히 그렇다는 것이 아플 뿐이다.   &nbsp;  능력주의와 극우가 찰떡 같이 융화하는 한국 사회에서, 배려와 연대와 복지는 범죄처럼 오역되고 욕을 먹고 위협을 당한다는 현실도 아프다. 차분히 읽고 할 수 있는 도움에 참여하면서, &lt;피터팬재단&gt;이 설립되고 피터팬마을이 생기고 피터팬들도 갈 곳 있고 살 곳 있는 한국 사회로 바뀌길 지켜볼 것이다.<br><br>  &nbsp;  <br>“나는 지금 막 인생 전역을 명받았다. ‘기대여명은 수개월’이라는 활자가 무심하게 찍혀 있는 진단서.”  &nbsp;  필요한 순간 도와줄 다른 이가 없다면, 양육자는 고열에 시달려서 정신이 아득해도 일어나야 한다. 양육 대상이 아직 어리거나, 평생 도움이 많이 필요한 경우라면, 내 미래의 죽음이 나란 존재의 소멸이라서 두렵고 슬픈 게 아니라, 양육과 보호의 역할을 못하는 되기 때문에 가장 무서운 사건이 된다.  &nbsp;  이 책의 저자이자 아버지의 사정도 그렇다. 시한부 진단을 받아도 아들 밥 먹이는 게 걱정이라 퇴원을 해야 하고, 차마 맘대로 죽지도 못할 기분이 든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아직... 이런 염려와 걱정에 잔인할 정도로 응답이 부족하다.  &nbsp;  “동반 자살이란 단어, 잘못 쓰이고 있는 건 알지? (...) ‘Murder Suicide’ 이건 ‘살해 후 자살’이야.”  &nbsp;  법과 지침이 없는 것도, 아니고 글로 기록되어있는데도 현실에는 없다. 왜, 어째서 그럴까. 그 법과 지침이 환영이 아니라면, 그에 따른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 일이 왜 그렇게 힘들고 불가능하게 느껴져야 하는 걸까.    &nbsp;  저자이자 아버지는, 주눅 들어 애원하거나 비굴해지다 외면당하는 존재가 더 이상 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는 국민이고 생존권이 있고 복지서비스를 누릴 권리도 있다. 그러니 당당하게 요구하기로 결심했다.  &nbsp;  “제 마지막 소원은요. 아들이 집도 잊고, 저도 잊고 새로운 곳에서 혼자 잘사는 것. 그저 그것 하나뿐이에요.”  &nbsp;  그러나 현실 사회의 부조리는 끝없이 무례하다. 전혀 모르는 상태로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변형된 상징이자 희생양으로 이용될 뻔하기도 하고, OECD 국가라는 성취를 자랑스러워하는 한국사회는 헌법에 명시된 책임도 방기하고, 세금과 예산 타령만 한다.  &nbsp;  그래서 저자는 여기저기 막다른 골목에서도 더 크게 외친다. 복지예산과 지출은 의무이고, 내 요구는 나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장애에 따른 필요는 부모만이 끝까지 가정에서 책임지는 일이 아니라고.    &nbsp;  “이 나라는 우리에게 늘 ‘밖으로 물러나라’고 가르쳐왔습니다. (...) 우리는 잘 준비된 시설의 ‘안전선 안으로’ 초대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 필요한 건 배제가 아니라 배려입니다.”  &nbsp;  저자가 찾아낸 희망과 계획을 책에서 만나는 분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누구나 살 곳이 필요하다는 이 최소한의 사실에 동의할 수 있고, 인간이라서 동등한 우리가 다른 핑계로 서로를 차별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모두가 함께 하면 현실이 될 수 있다.<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45/80/cover150/k092130273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458047</link></image></item><item><author>poiesis</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저마다의 진실, 그렇게 증언된 역사 - [비밀구락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387042</link><pubDate>Sun, 12 Jul 2026 10: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38704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679283&TPaperId=1738704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45/91/coveroff/893567928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679283&TPaperId=1738704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비밀구락부</a><br/>이화경 지음 / 한길사 / 2026년 06월<br/></td></tr></table><br/><br>  &nbsp;  한길사 장편소설, 매번 그렇듯 이번에도 짐작 이상일 거라 기대합니다. 문학으로 다시 체험하는 역사일 듯도 하구요. 읽는 내내... 육성으로는 다시 들을 길이 없는 조부모님 이야기들이 더 그리워질 것 같습니다.<br><br><br>  &nbsp;  “천아지. 천한 것. 형편없는 이름. 이번에도 천하다고 쫓겨날까봐 무서웠다.”  &nbsp;  주인공과 조연들로 이루어진 구성이 아니라서 좋다. 감정 이입을 좀 더 하는 화자는 있지만, 덕분에 다른 상황이라면 알고 싶지 않은 인물의 이야기도 빠트리는 문장 없이 다 읽을 수 있다. 남 얘기할 필요도 없이, 타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기 위한 내 인내심과 시간도 줄어드는 편이라서, 독서 자체가 훈련과 공부가 되었다.   &nbsp;  기록되고 자주 회자되는 인물들로 역사가 바뀌어왔다고 단순화시키기 쉽고, 목소리도 존재도 지워진 이들을 기억하기란 어렵다. 비극적인 상황을, 수치스러운 역사를, 책임이 적은 이들에게 전가하는 멸칭과 심리와 논리를 되새긴다.  &nbsp;  “바뀐 이름으로, 바뀐 처지로, 바뀐 마음으로 그녀는 있는 힘껏 진짜 자기 자신으로 살아보려 한다.”  &nbsp;  굶주리다 팔려간 어린 시절, 도망밖에는 묶인 지옥을 벗어날 방법이 없었던 상황, 함께 어려움을 견디고 도와준 어른의 부재가 참 아프고 서럽다. 그래서 화자 천아지의 이후 선택은 그 시절의 허기에 기인한다.  &nbsp;  물론 그녀가 유일한 피해자는 아니다. 글을 모르는 대다수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깨닫기 전에, 맞고 짓밟히고 죽어갔다. 그러나 “서른 살의 배운 여자”가 된 천아지는 조선에서 쓸모가 없었다. 이미 나이가 너무 많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nbsp;  “그녀가 꿈꾸는 것은 단 하나, 살아남는 것, 할 수만 있다면 자유로워지는 것.”  &nbsp;  그녀가 사랑한 식민지 지식인은 저항의 수단으로 공부하고, 이론으로 현실을 바꾸려는 의지가 아주 강했지만, 그 이론은 설명의 수단일 뿐, 실질적 무기가 되지 못했다. 변화를 위한 힘을 가진 이들 중에는, 독립보다 권력을 더 원하고, 타인의 열망을 자신의 야망을 위한 연료로 쓰려는 더 끈질기고 독했다.  &nbsp;  유일한 사랑은 늘 미래와 가정 속에서만 희망과 약속을 얘기하고, 그녀는 자신이 도달한 답을 찾지 못한다. 생존을 위한 다음 선택은, 급변하는 한반도 상황에서 지속적인 보호 장치도 바라던 미래도 되지 못한다.  &nbsp;  “한 번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했기에, 국가가 있는지조차 몰랐던 그녀에게 국가가 마지막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국가가 호명해준 이름은 스파이였다.”  &nbsp;  내게는 내 조부모님들과 부모님이 전해준 진실의 엽편들이 있다. 작가에게도 그럴 것이다. 소설의 방식이지만 나는 작가에게 이어진, 역사적 진실의 조각들을 만난다. ‘전체’ 진실은 모르겠다. 한 사람이 다 알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나는 진실은 드러나는(to be revealed) 것이라고 생각한다.   &nbsp;  그렇기 때문에 대개 “진실은 울퉁불퉁하고 앞뒤가 맞지 않으며 때로는 아무 의미가 없는 사건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래서 더 진실하다. “매끄럽고 앞뒤가 딱 떨어지는 것”들은 재구성과 조작과 연출 혹은 잘 포장된 거짓말일 테니까.<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45/91/cover150/893567928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459104</link></image></item><item><author>poiesis</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어두움과 죽음으로 엮은 전건우 방식의 신작 공포 - [믹스테이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379125</link><pubDate>Tue, 07 Jul 2026 19: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37912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42130599&TPaperId=173791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5/19/coveroff/k24213059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42130599&TPaperId=1737912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믹스테이프</a><br/>전건우 지음 / &(앤드) / 2026년 07월<br/></td></tr></table><br/><br>표지만 봐도 으스스... “사람의 손때가 많이 묻은 동전”이 “액운을 물리치고 잡귀를 막아주”는 줄 몰랐네요. 저로선 “손때가 많이 묻”었다는 게 더 무섭습니다만. 호러... 스릴러... 넘 오랜만이라 두근두근합니다.<br><br>  &nbsp;  “모든 일을 완벽하게 수행해야 자신이 살아남는다는 걸, 남자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nbsp;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펼친 샘플북, 트랙 3까지 분량만 있으니 읽고 나서 얼마나 더 궁금할지 두렵다. 믹스 테이프를 본 지가 까마득하다. 별밤을 청취하던 중학생 시절이 떠오른다. 선물로 주고받았는데 남은 게 하나도 없다. 반세기 전에 친구가, 유학 선물로 믹스 녹음해 준 CD 두 장이 여전히 차에 실려 다닌다.  &nbsp;  작품 속 믹스테이프에는 듣기 좋은 노래가 아닌 ‘죽은 자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그 녹음을 들은 자들은 죽게 된다. 그런데 이 사건에는 악령보다 인간의 그림자가 배후에 서성인다. 마치 실험을 통해 저주의 힘을 확인하려는 듯이.  &nbsp;  “무엇보다, 점은 테이프 괴담이 처음 떠돌기 시작했던 게 1982년이었다는 사실이 주목할 점이죠.”  &nbsp;  제공한 정보보다 더 많이 아는 듯한 의뢰인과, 환청과 환각에 시달리는 전직 형사인 외뢰 수락인이 이 저주의 힘과 사건에 얽혀 있을지 - 혹은 무관할지 - 알아나가는 사건 전개가 기대된다.   &nbsp;  특히 목소리를 듣고 자살한 이들이 “수치스러워서... 살 수가 없다”고 했다니 전모가 더 궁금하다. 반갑기도 하다. 수치심을 모르는 인간이란 못할 일이 없어서, 가장 견디기 힘든 괴물이다. 공모한 범죄와 죄악의 대가라면 문학에서라도 단죄해주는 이야기가 조금은 위로가 된다.  &nbsp;  “검은 테이프? 왜 그런 이름이 붙은 거죠?”  &nbsp;  남은 내용이 훨씬 더 많아서 출간이 기다려진다. 이전 작품들에서도 ‘어두움’과 ‘죽음’을 책을 다 읽어도 끝나지 않는 공포로 엮어서 건네는 전건우 작가의 이 신작이, 이번 여름에도 서늘한 선물처럼 도착할 거라 기대한다.<br><br><br><br>&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705/19/cover150/k24213059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7051908</link></image></item><item><author>poiesis</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모든 약한 존재들이 사라지지 않게 - [내성적인 뱀파이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367704</link><pubDate>Wed, 01 Jul 2026 11: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36770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52130774&TPaperId=1736770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99/31/coveroff/k05213077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52130774&TPaperId=1736770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내성적인 뱀파이어</a><br/>최상희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06월<br/></td></tr></table><br/><br>  &nbsp;  청소년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가 점점 더 많아진다. 청소년 문학이 따로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 대한 보상 같은 궁금증이기도 했고, 훨씬 직설적인 표현 방식이 좋기도 했다. 지금은 숨 가쁘게 빨라진 변화가 넓힌 세대 차이에다가, 소셜미디어 사용으로 더 멀어진 다른 일상과 고민을, 문학을 통해서라도 배우고 싶기 때문이다.  &nbsp;  사랑스러우면서도 웃음이 나는 표지다. 그래도 표제작부터 찾지 않고 순서대로 차근차근 읽었다. 달라진 조건들은 많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꽤 외롭다. 그리고 그 외로움을 동물 친구들과 동년배 친구들, 혹은 상상의 친구들이 채워준다. 욕망에 사로잡힌 못난 어른들의 세상에서 서로를 돌보는 이들 모두가 안타깝도록 연약하고 소중하다.  &nbsp;  “500년 넘게 진짜 지루했는데 이제야 좀 재밌어 지려고 한다.”  &nbsp;  표제작은 아주 흥미로웠고 너무 슬펐다. 속상해서 울고 싶기도 했다. 차별금지법도 혐오방지법도 없는 사회라서, 저지선도 교육도 부재한 현실이라서, 10대는 혐오를 놀이로 삼고 일상 언어로 사용하는 끔찍한 상황에서, 경박한 사고와 태도로 근거 없는 혐오와 단죄를 벌이는 풍경을 문학으로도 만나는 순간이 아팠다.  &nbsp;  인간다움의 오류들을 정직한 문장으로 기록한 고발장 같다. 자식을 학대하는 부모, 보호 받지 못하는 어린이, 문제의 원인을 늘 외부에서 찾는 습관, 과학도 논리도 없이 가장자리에 있(다고 멋대로 규정한)는 이들에게로 당연한 듯 향하는 책임 전가, 그런 분위기를 파악하고 혐오를 놀이처럼 여기는 아이들. 현실은 더 심각할 거란 경고다.  &nbsp;  “적극적이란 단어가 왜 공정함과 연결되는 걸까, 소극적이면 비겁한 걸까.”  &nbsp;  산업 기술을 개발하고 활용을 선점하지 못하면 반드시 굶어죽고 말거란 두려움은 정확한 진단일까. 그래서 핵발전소도 더 짓고, 엄청난 열공해를 유발할 데이터센터도 최대로 짓고, 빙하가 녹는 것도 기회라며 북극항로 개척을 기뻐하고, 그렇게만 하면 한국 사회의 미래는 불행으로부터 더 유예 되는 걸까.   &nbsp;  우리 집 십대 아이들을 생각하면 두렵다. 기성세대의 뜻도 의지도 상상력도 치졸해서 부끄럽다. 그 수준이 진심이자 최선일 거라 생각하면 어지럽고 혼란스럽다. 사람을 살리고 살게 하는 일에는 다른 고민들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양육/교육과 양육/교육 환경과 양육/교육종사자들의 노동조건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시작되어야 한다. 늦었지만 하루라도 더 늦지 않게.<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99/31/cover150/k05213077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993126</link></image></item><item><author>poiesis</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기억의 미로를 걷는 사람들”을 돌보는 이들의 어려움을 배우며 - [기억의 미로를 걷는 사람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364455</link><pubDate>Tue, 30 Jun 2026 14: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36445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42138864&TPaperId=1736445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52/1/coveroff/k54213886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42138864&TPaperId=1736445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기억의 미로를 걷는 사람들</a><br/>다샤 키퍼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04월<br/></td></tr></table><br/><br><br>“가족 구성원들은 자기도 모르게 광기의 일부가 되어간다. (...) 사랑하는 사람의 인지 저하를 그저 목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가 되어 매일 매분 초현실적이고 암담한 현실을 살아간다.”  &nbsp;  인간이 직접 경험만으로 만사를 가장 잘 배우고 이해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떤 경험은 그 고유성과 구체성으로 인해, 지극히 사적인 고통과 힘겹도록 느린 시간을 견뎌야만 앙상한 관계와 빈약한 실체를 겨우 알아차리게 되기도 한다.  &nbsp;  현명하고 지혜로운 이들은 많겠지만 불운하게도 나는 그렇지 못하다. 누구나 늙고 죽는다는 간단한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의연하게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부모의 노화와 죽음과 그에 따른 모든 사건들에 허덕인다. 그저 간신히 책임을 다하고 있는 모든 순간에 잠시 안도할 따름이다.  &nbsp;  “우리의 뇌는 보호자와 환자 사이의 모든 오해, 언쟁, 비난이 가리키는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 늘 써먹던 무의식적 편향과 가정이 이제는 우리를 헤매게 한다.”  &nbsp;  전무하다곤 할 수 없지만 노년 돌봄에 대한 사회적 시스템이 한숨 나올 지경인 사회에서는, 여전히 충격적일 정도로 많은 가족 구성원들이 그 돌봄을 감당하고 있다. 24시간 돌봄 노동을 하는 건 아니라 해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면면도 시간도 충분하지 않다.  &nbsp;  중요한 결정은 당연히 가족의 몫이겠으나, 중요하지 않은 순간은 하나도 없는 건가 싶게 잦다. 가족이라서 할 수 있는 일도 있고, 가족이라서 더 힘든 일도 있고, 가족이라서 크게 오해하는 일도 있고, 가족이라서 불필요하게 큰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nbsp;  “환자가 기억을 잊어버릴 때 자신이 지워진 기분을 느끼고 (...)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넘어서서 부정당하는 느낌까지 받는 쪽은 보호자다.”  &nbsp;  보호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잘 전달하는 저자의 연구 결과 덕분에, 결정권자이자 보호자로서의 나를 아주 많이 위무하며 읽었다. 알고 있지만 다 잊고 감정적 반응을 보인 순간들도 다시 연구자의 문장들로 읽으니 차분히 정리가 된다.  &nbsp;  내 경우에 배운 대로 살지 못하는 건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연습이 부족해서다. “의식적 반응으로 전환”하는 습관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끈질기게 연습해야겠다. “오래 된 상처”를 자꾸 들춰내는 일이 줄어들면,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이 돌봄 노동과 관계에서도 해소와 구원의 면면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nbsp;  “내가 바란 것은 보호자들이 겪는 어려움, 특히 자책, 겉보기에 비합리적인 행동, 그에 따르는 후회처럼 그들이 자초한 어려움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nbsp;  저자가 아주 분명하게 보호자들의 어려움을 알아봐줘서 도움이 크다. 내가 겪는 감정적 어려움들이 아픈 상대가 아니라, 비교적 건강한 나의 뇌에 있다는 것, 내가 만들어 온 편향과 내가 좋아하는 성향으로 기인할 수 있다는 것을 잘 기억하자.  &nbsp;  병을 앓는 건 병자의 책임이 아니다. 그 병으로 인해 신체적인 약화 이외에 관계적, 윤리적, 도덕적 일탈 - 처럼 보이는 - 을 저지르는 것은 병에 걸린 사람 탓이 될 수 없다. 특히 돌이킬 수 없는 신경학적 원인으로 “기억의 미로를 걷는 사람들”에게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기억하자.<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52/1/cover150/k54213886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520190</link></image></item><item><author>poiesis</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선한 사람이 버텨 내기 어렵게 설계된 세상... 당신의 선택은 무엇 - [사라질 소행성 - 제12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작품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352891</link><pubDate>Wed, 24 Jun 2026 17: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35289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62137119&TPaperId=173528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48/12/coveroff/k36213711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62137119&TPaperId=1735289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라질 소행성 - 제12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작품집</a><br/>오영민 외 지음 / 사계절 / 2026년 04월<br/></td></tr></table><br/><br>  &nbsp;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미래가, 먼 미래가, 미래가, 근 미래가, 초근 미래가, 현재와 뒤섞이더니... 현재와 구분이 사라지고 현재진행형 속도로 새로운 ‘것’들이 쏟아졌다. 그래서... SF 작품들을 이전보다 덜 읽다가 오랜만에 낯가림하며 펼쳐본다.  &nbsp;  “우린 정해진 임무를 따르는 게 아니라 우리만의 속도로 새로운 행성을 찾는 여행을 꿈꾸기 시작했다. (...) 우린 지구로 가지 않을 것이다.”  &nbsp;  SF 문학의 정서가 달라졌다(고 느낀다). 이전에도 그런 작품들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 작품집을 다 읽고 나니, 전반적인 분위기의 차이가 확연하다. 시뮬라시옹 -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들이 만연 - 은 흉내내기를 학습과 집단 생활의 기본기로 장착한 생물의 생존기술일 수도 있지만, ‘원본’이라는 것이 인간 내에도 인간과 인간을 닮은 존재들 사이에도 ‘정말’ 존재하는지 실은 모르겠다.  &nbsp;  이제 인간은 조연으로 밀려난 듯하다. 인간을 닮은 - 인간의 장점이라 할만한 것들을 여전히 지닌 - 안드로이드가 주연인 듯하다. 그 역시 피사체를 통해 인간을 이해해보려는 노력이라고 여전히 말할 수 있을까. 요즘 인간인 나는, 인간도 인간다움도 무엇이었고 무엇이며 무엇이 될지 더 헷갈리고 더 모르겠다.  &nbsp;  “지구의 대기 오염이 심각하기 때문에 실제 자연과의 접촉은 ‘생체 오염’이라고 배웠다.”  &nbsp;  지구의 환경은 인간에게 덜 적합하게 더 위험하게 변할 것이다. 다 같이 노력하는 이상적인 상황에서도 그 변화는 불가역인데, 아직도 전쟁 중이고 앞으로도 수많은 잘못된 선택들이 이어질 것이다. 그래도 나는 절망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건 포기하고서는 살 수 없어서 일 지도 모르겠다.   &nbsp;  어쨌든 그런 환경이 될수록 인간이 적응을 위한 진화를 가속할 방법이 없는 한, 어딘가 갇혀 안전을 도모하며, 인공지능 안드로이드의 활동에 더 의존하게 될 것이다. 그전에 전쟁으로 공멸하거나 영화 터미네이터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그렇다. 혹은, 나는 상상하지 못하는 환경과 생물의 극적 변화로 삶의 ‘경계’가 바뀌고 새로운 생존 방식을 발견할 지도 모르겠다. 또는 다른 능력, 초능력이 생기거나.  &nbsp;  “그라운드 제로. 폭탄이 터진 곳이라는 뜻이었다. 피해가 너무 커서 아무엇도 남지 않고 불타 버린 곳.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이 빈 땅에 싹을 틔우며 의미가 바뀌었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뜻으로.”<br><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48/12/cover150/k36213711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9481219</link></image></item><item><author>poiesis</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망령이 되어버린 사랑, 강처럼 깊고 어두운 슬픔 - [그리고 강은 그녀를 끌어내린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349000</link><pubDate>Mon, 22 Jun 2026 15: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34900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82139519&TPaperId=1734900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96/31/coveroff/k98213951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82139519&TPaperId=1734900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그리고 강은 그녀를 끌어내린다</a><br/>윤지현 지음, 박지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6년 06월<br/></td></tr></table><br/><br>  &nbsp;  “미래라는 제 이름을 정작 맞이하지 못한 미래. 미래가 죽은 지 열 달이 지났지만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다.”  &nbsp;  슬프다. 마지막 장까지 슬프다. 어머니와 자매가 등장하면 대부분 슬프고, ‘한국적인’ 정서와 생활양식이 스며들면 아프도록 슬프다. 한반도에 산 수많은 약자들 - 대개는 아이들과 여성들 - 은 끊임없이 죽임을 당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악귀로 등장해서 범인을 벌주라 하소연하는 것. 그런 이야기들도 모두 슬프다.   &nbsp;  자주 멈추며 천천히 오래 읽었다. 슬플수록 더 무거워지는 기분을 널어 말렸다 다시 추슬러 읽었다.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잃고 난 후 망가짐이 아프고, 사랑이라 생각한 모든 오해와 그로 인해 가한 모든 유해가 또 슬프다. 몰라서 돕지 못했던 아프고 슬펐던 어린 자매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아득하다.  &nbsp;  “기적과도 같은, 생명을 불어넣는 여자들로 가득한 집이었지만, 정작 그들 자신은 구하지 못했다.”  &nbsp;  처한 상황은 달라도 보편적이랄 수 있는 고통은 반복되는 악몽 같다. 지독한 굶주림 속에서 손닿는 다른 생명을 착취하고 죽이면서 살아나갈 때, 그 부담을 감당한 이는 끔찍한 저주 같은 능력을 가진 이 집안의 여성이었다. 슬픔에 빠져 양육자의 책임을 방기한 아버지와 어린 동생과 제 스스로를 먹여 살려야 하는 이는 큰 딸이었다.  &nbsp;  ‘첫째 딸은 살림밑천’이란 잔인한 인식은 큰 딸들을 어딘가에 팔아치우는 결정으로 이어지고 용인되었다. K- 큰 딸은 - 그런 직거래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 사적으로는 집 안을 돌보고 동생들을 키우고 자신의 성장도 꿈도 욕망도 지운 완벽한 딸로서 살았고, 공적으로는 근대화와 산업발전의 연료로 소모되었다.  &nbsp;  “두 사람은 남자 때문에 죽었다. 어머니는 남자의 부탁을 거절해서, 언니는 남자에게 따져 물으려다가.”  &nbsp;  작품 속 인종 간 차별은 시시하게 느껴질 정도로, ‘한국적인’ 모든 올가미에 걸린 채 짧게 살다 죽어간 언니 - 미래 - 의 상황이 잔혹했다. ‘미래’는 그렇게 죽고 오지 않았다. 설화 속 원귀가 그랬듯이 죽어서야 제 감정대로 제 뜻대로 자유롭게 살아볼 수 있었다. 더 이상 참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미래의 복수를 응원했다.  &nbsp;  꿈에 재현될까 두려울 정도로, 작가는 존재하지 않고 가본 적도 없는 작품 속 배경을 생생하게 전한다. 덕분에 더 무서웠다. 한쪽 어깨가 시리도록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어딘가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것 같아 가만히 둘러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사랑’해서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무엇인지 고민했다.  &nbsp;  “좋은 환경에서 착한 사람이 되는 건 쉬웠다.”  &nbsp;  타오르는 분노와 얼어붙은 공포가 깊고 오래된 슬픔에서 연유했다는 것이 쓰리도록 슬프다. 상실은 피할 수는 없다. 상실 후에 누구나 잘못된, 바보 같은, 비극이 될 선택을 할 가능성은 늘 있다. 이 작품이 내게 남긴 질문들이 비교불가하게 중요하고 그에 관한 지혜가 터무니없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공포다.  &nbsp;  다른 이들은 어떻게 읽으셨는지 몹시 궁금하다. 관련 리뷰들을 찾아 읽으며 약간의 용기와 지혜를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br><br><br><br>&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496/31/cover150/k98213951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4963115</link></image></item><item><author>poiesis</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나는 인간이 아니야 - [물에 발을 담근 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343938</link><pubDate>Fri, 19 Jun 2026 18: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34393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52130975&TPaperId=1734393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15/18/coveroff/k95213097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52130975&TPaperId=1734393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물에 발을 담근 채</a><br/>이새벽 지음, 김승아 그림 / 사계절 / 2026년 06월<br/></td></tr></table><br/><br>제목과 달리 표지에는 손만 담그고 있어서 웃으며 펼쳤다. 살짝 닿은 손끝들이 반짝거린다.<br><br>  &nbsp;  “인공지능과 안드로이드가 인간의 거의 모든 노동을 대신하는 게 가능해지고부터 공교육은 ‘창의적 인재 양성’을 새로운 목표로 삼았다.”  &nbsp;  미래가 현재로 바뀌는 속도가 너무 빨라졌다. 과학기술은 단지 편의를 높이는 것만이 아니다. 아무 브레이크 없이 어느 방향으로든 고도로 개발되는 기술들은 결국 인간의 관리 능력을 벗어나게 되고, 그 결과는 재앙이다. 전쟁 없이 살아본 시간이 극히 짧고 무기 개발에 막대한 자본이 몰리는 이 문명의 성격상 낙관은 불가능하다.   &nbsp;  이런저런 이유에서, SF 문학을 한동안 덜 찾게 되었다. 불안과 두려움이 궁금함과 재미를 넘어섰다. 그래서 오랜만에 청소년 문학이자 SF 문학을 읽게 되어 설렜다. 어쩐지 내가 모르는 사이 훌쩍 뛰어넘은 현실과 인식의 변화가 반영된 듯, 과학기술상품은 어느새 인간과 함께 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감정의 교류를 고민하고 있다.  &nbsp;  “지금도 고민하고 있어. 말하는 게 맞을까? 말하고 나면 너와 내가 전과 같을 수 있을까? 너도 같은 마음이었겠지?”  &nbsp;  사랑은 어떤 과정과 결과를 거쳐도 확실한 성장의 기회이다. 분명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위계적이고 차별과 혐오를 일삼는 사회라면 그런 감정은 대상이 누구든 - 무엇이든 - 여전히 어렵고 애틋하기 마련이다. 더구나 예전부터 문학과 영화 속에서 안드로이드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간보다 인간적인 장점들을 더 굳게 지키고 드러내는 존재였다.  &nbsp;  더구나, 인간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깊어질수록, 인간의 선택과 행동에 대한 냉정한 판단과 평가도 가능해진다. 인간이 인간만이 가진 고유하고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들이라 강변한 것들은 허술한 골조를 드러내듯, 가변적이고 우연적이고 얄팍한 이유를 폭로당하고 만다.   &nbsp;  “세상에 진짜는 없고 가짜만 판친다는 그 기묘한 믿음은 성빈을 만나고 그 애의 꾸준한 다정과 친절을 경험한 다음에야 놓을 수 있었다.”  &nbsp;  나이가 들수록 모를 일만 많아진다. 성장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며, 성장은 생물만 하는 것인지, 학습은 성장인지 아닌지. 완벽한 존재도 그런 세상도 없다고 인식하는 것이 성숙한 태도라면, 성장 역시 부족한 점을 채워나가려 실패할 노력을 계속하기보다, 그런 부족함 자체가 내 존재의 구성요소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 나은 것인지.  &nbsp;  확실한 것은, 연애도 성장도 어렵다는 것이다. 현실에서도 문학 속에서도 그렇다. 그런 생각에 기분이 가라앉으려 하는데, 책 마지막에 친절하게 설명된 5단계 학습법을 발견하고 크게 웃었다. 이런 구체적인 가이드가 있다는 것이 기분을 가볍게 한다. 이 작품을 통해 독서가 즐거운 활동이라 느낄 독자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15/18/cover150/k95213097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151870</link></image></item><item><author>poiesis</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말하기 전에 잘 듣고 정말로 들었다고 알리는 것부터 - [대화한다는 착각 - 열심히 말하는데, 왜 마음은 멀어질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330951</link><pubDate>Fri, 12 Jun 2026 16: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33095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22138504&TPaperId=1733095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66/89/coveroff/k32213850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22138504&TPaperId=1733095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대화한다는 착각 - 열심히 말하는데, 왜 마음은 멀어질까?</a><br/>마이클 니콜스.마사 스트라우스 지음, 윤삼호 옮김 / 교양인 / 2026년 05월<br/></td></tr></table><br/><br>원제와 한국어 번역 제목을 함께 보니 이 책이 다루는 주제가 잘 보인다. 사적 관계에서도 그렇지만 사회적 병리 현상을 볼 때도 궁금하다. 왜 못 듣는지, 어떻게 들을 수 있는지, 걸림돌이 되는 대화 습관들은 무엇인지. 반갑고 유용한 지적과 가이드를 만날 거란 기대가 크다.   &nbsp;  “인간 경험에서 이해받고 싶은 마음만큼 강렬한 열망은 별로 없다. (...) 그런 이해를 구하는 게 간단해 보여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  &nbsp;  잠시 상상해본다. 그 누구도 누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세계를. 끔찍한 공포다. 혹여 오해라 할지라도 부족하다 할지라도 우리 모두에게는 그래도 이해하고 이해받는다는, 그럴 수 있다는 경험과 희망이 필요하다. 그건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nbsp;  만약 공감과 이해가 중요하지 않다면, 공감과 이해 부족과 오해에 대해 이렇게 많은 불만과 고민이 있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뭐가 문제인지 어떻게 잘못을 고치는지,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지를 알려주고 함께 고민하는 책은 귀한 선물이다.  &nbsp;  “내 생각과 감정을 말하기 전에 상대방 생각과 감정부터 듣고 인정하는 것, 즉 반응적 듣기는 우리가 관계를 맺을 때 상호이해를 증진하는 최상의 수단이다.”  &nbsp;  물론 아는 것만으로는 소용이 없다. 습관이 될 때까지 지속적이고 의식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실패하면 다시 시작하면 된다. 그러니 방법들을 잘 숙지하자. 쉬운 일이 전혀 아니다. 나 자신의 “기억, 욕망, 판단”을 내려놓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경청”이 가능해진다.  &nbsp;  나는... 예전엔 그랬을지도 모르나, 어느 순간부터 경청이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체력과 시간을 마구 잡아먹는 그 관계가 두려워졌다. 그래서 정말 소중한 사람들이 아니면 경청하는 듯한 태도는 취하나 진짜 경청을 하는 일이 드물어졌다. 즉 상대에 대한 관심과 존중이 줄어들었다. 어쩌면 이래서 나이 들수록 친구를 새로 사귀기가 어렵다고 하는 지도 모르겠다.  &nbsp;  “내 반응은 잠시 미루고 상대방 말부터 인정하라는 조언이 부자연스럽다고 항변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화가 난다. (...) 좋은 경청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nbsp;  우리는 아끼는 이들에게는 자동적으로 보일 만큼 배려를 하거나 경청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관계에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저자는 듣는 능력 자체가 기술이고 다른 기술처럼 개발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nbsp;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이전에는 구분되지 않던 - 구분할 노력도 하지 않던 - 내 인간 관계의 한 면이 이해된다. 경청이 가능할 정도로 아끼는 이들로만 구성된 세계, 존중을 보일 가치가 있어서 경청할 노력을 하는 세계. 내 자신도 내 세계도 확장이 필요하고 얼마간이라도 가능하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덕분에 어렵지만 천천히 차분히 다시 노력해보고 싶어진다.   &nbsp;  “사람들의 말은 들을 가치가 충분하고, 그들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듣기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 된다.”<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266/89/cover150/k32213850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2668949</link></image></item><item><author>poiesis</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핑계거리가 아닌 답을 찾아보자 - [아빠의 도시락 편지 - 매일 혼자 점심 먹는 왕따 딸을 살린 기적의 편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321809</link><pubDate>Sun, 07 Jun 2026 17: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39190168/1732180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22138162&TPaperId=1732180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69/98/coveroff/k82213816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22138162&TPaperId=1732180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빠의 도시락 편지 - 매일 혼자 점심 먹는 왕따 딸을 살린 기적의 편지</a><br/>크리스 얀들 지음, 최지영 옮김 / 이야기장수 / 2026년 05월<br/></td></tr></table><br/>&nbsp;에세이는 매번 약간의 두려움을 주지만, 상관이 별로 없을 거란 짐작과 다른 접점들은 신기하게도 늘 존재한다. 특이 이번 에세이는 어른으로서도 양육자로서도 서글플 정도로 부족하고 실수를 반복하는 독자(나)에게 위로와 공감이 되는 내용들이 꽤 있다. 다른 사회 환경이고 아버지도 아니고 도시락도 편지도 매일 준비하지 않지만.  &nbsp;  “저는 왜 딸에게 도시락 편지를 쓸까요? 왜 지금이어야 했을까요?”  &nbsp;  어떤 우위도 오래 점유할 수 없다는 건 알았지만, 아이들의 성장은 나의 부족함을 낱낱이 절감하는 경험이다. 어른들이 척척박사가 아니란 사실을 아이들은 알아챈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에게보다는 더 이상은 겸허해질 수조차 없이 양육과 제 일상에 허덕이고 탈진한 어른 독자에게 더 위로가 되는 내용인지도 모르겠다.  &nbsp;  어떤 편지는 아름답지만, 초등학교 이후로는 한국 교육 현실에서 더는 건네지 못한 기도처럼 들린다. 끝까지 네 편이겠지만, 다른 집단과 세대에 속해 살아가고 살아갈 아이에게는 그게 실질적인 힘이 될까 확신할 수 없어 그만 둔 소원 빌기 같은 말들...  &nbsp;  “아무도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는다. (...) 그러나 당연하게도 소통은 그런 식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nbsp;  어떤 편지는 생각할수록 두려운 “욕만 하는” “증오로 범벅이 된” 사회에 가장 필요한 이야기로 읽힌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SNS 나이제한을 하지 못해서? 더 오래 되고 누적된 오류? 결과 혹은 부작용 따위는 나중 일로 제쳐둔 계산 빠른 어른들의 수익 창출 때문에? 원인을 안다 해도 변화를 위한 행동이 부족할 익숙한 세상 탓?   &nbsp;  문제는 복잡하고 다 같이 망할 듯한 흐름은 거센데, 떠오르는 방법은 생각할수록 단순하고 고전적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의 생각도 다른 이들의 말도 차분히 듣고, 천천히 다 듣고, 잘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찬찬히 곱씹고, 대화와 소통을 끊지 않는 대화를 이어가려면.  &nbsp;  “옳은 일을 위해 나서라. 선의를 위해 부디 당신의 목소리를 내라.”  &nbsp;  도시락 편지답게 편지들은 대개 짧고 해석도 길지 않다. 대개 그렇듯이 이해하기에는 어렵지 않고 행동으로 따르기에는 어려운 일들이라서, 금방 다 읽은 책을 옆에 두고 따끔따끔한 내용들은 자꾸 다시 읽어 보았다.  &nbsp;  아무리 좋은 콘텐츠라도 숏츠나 릴스로 제공되지 않으면, 10대-20대 - 다양한 국가에서 - 에게 유의미한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듣기도 말하기도 쓰기도 아닌, SNS의 짧은 콘텐츠들로 아이들이 세상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팬데믹처럼 무서운 면이 있다. 극우의 부상과 확장도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nbsp;  알 것 같은 짧은 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모르겠다. 무엇도 충분하지 않게 느껴지는 조급증에 자주 목이 마르다. 어떻게 살아야할까. 어떤 대화를 어떻게 나눠야할까. 옳은 일을 꾸준히 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nbsp;  “말하는 대신 좋은 본보기가 되자. (...) 타인의 의견에 침묵하기는 쉬워도 행동을 외면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꼭 기억하자.”<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69/98/cover150/k82213816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699817</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