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먼트
테디 웨인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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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먼트 리뷰 대회아파트에 관한 얘기도 천재에 관한 이야기도 문학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었다모두 관련 있지만 현실에 수없이 많았을 시기질투실수오판상처후회에 관한 이야기이다그리고 이 모든 것을 펄펄 끓여낼 수 있었던 안타깝도록 순진하고 젊은 존재의 기록이다.

 

경험이 제공한 면역에 자신한 나는 불편하도록 실감을 끌어내는번역을 무화시키는 필력에 무서웠다미숙함과 어리석음은 큰 문제가 아니고 배움과 경험으로 다듬을 수 있는 결핍들이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로 인해 파멸로 끌려 내려간 이들은 얼마나 많았는가.

 

삶의 가장 달콤하고 환한 덫은 내게 중요한 것자신과 동일시할 정도로 정체성의 일부를 구성하는 것을 칭찬하는 사람이다격렬하게 사랑에 빠지듯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와 빌리’ 사이도 시작도 그러했다.



내가 젊기는 하지만, (...) 사람의 마음이라는 저수지가 끝없이 다시 채워 넣을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나라는 인간의 껍질에서 가장 뚫고 들어가기 힘든 층은 여전히 늘어나고 있으며빌리는 내가 그 안으로 들어오게 허락하는 일에 가까이 갔던 마지막 사람이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같은 전공 학생이지만 둘의 경제적 입장은 다르다학비와 머물 집에 대한 걱정이 없는 는 빌리에게 자신이 사는 집의 작은 방을 빌려 준다분명한 호의이나 몹시 불길하다. ‘가 원한 것은 아니지만호의와 맞교환되는 것이 화장실 청소를 포함한 집 청소이기 때문이다.



자본으로 계산되지 않음으로써 더욱 확실하게 위계가 정해지고 마는 방식이다이 둘은 진짜 친구가 될 수 없을 거란 생각은 너무 성급한 것일까더구나 빌리는 단순한 약자가 아니다확실하게 우월한어쩌면 지금의 위계를 뒤집을 재능을 가지고 있다.

 

빌리가 살아가는 환경을 생각하면 호의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비난할 수는 없다경쟁이 규칙인 현실에서 내가 가진 무기를 사용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다단지 대등한 공격력을 가진 이들 사이의 공수가 아닐 경우종종 대결은 편법과 반칙과 악수로 얼룩진다.



당장은 전투력이 낮은 의 마음이 깊이 다칠 것이지만 어떤 반격의 형태인지는 모를 일이다친절과 호의가 진심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아픔우정을 원했으나 상대의 공격성을 느끼고 방어를 위한 행동을 시작하는 ’. 젊음이 다치고 얼룩지는 것이 아까운 독자로서 성장을 위한 배분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읽는다.



거절당하는 것보다 유일하게 외로운 운명은 거절당할 가능성에 자신을 절대 노출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생각했던 것 같다.”



누구도 변호할 수 없었다화학적 결합이 불가능한 상대를 원하는 마음물리적인 결합의 무용함숭배와 질투 사이의 모호한 지점에 선다는 것노력으로 이룰 수 없는 것을 원하는 이의 선택지…….



누구에게 물어도 어떤 정답도 주지 못한다폭풍 속에서 살아남았다면 훌륭하게 성장한 것이다서툴게 내린 모든 순간의 선택들로 잃어버린 것들을 너무 오래 기억하지 말자. 내 젊음과 갖가지 서툰 불안을 목격했던 갭 블루진은 언제 어디로 보내버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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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일리아스 - 신들의 전쟁과 인간들의 운명을 노래하다 주니어 클래식 16
장영란 지음 / 사계절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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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독서의 순간들을 기억해보면 재밌고 만족스럽고 감동스러운 경험보다 의외로 그렇지 않는 일들이 더 생각난다그런 기억이 오래 남아서일지도 모르겠다한국전래동화는 호러의 최고봉이었고세계명작동화 역시 무서운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서 떨기도 울기도 했다.

 

21세기의 아이들은 친절하게 전달되는 여러 배려가 담긴 책들을 많이 만나서인지 황당하기 이를데 없는 그리스로마신화도 재밌게 읽는다고전문학도 읽지만 멋진 창작동화들도 많아서 독서에 대한 경험들이 비교불가하게 다양해졌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같은 작품은 번역을 접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읽기가 더욱 어려웠다세상에 존재한 적 없는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던 번역성경체가 성경책 읽기를 꺼리게 만든 것처럼주니어 클래식 시리스로 출간되는 일리아스라니... 격세지감을 느끼는 옛날 사람이다요즘 아이들 부럽네!

 

호메로스 눈 먼 사람이라는 뜻실존 인물 여부 모름구전을 편집한 사람의 이름일 수도 있음.

** 일리아스 일리온(트로이의 옛 지명)의 노래라는 뜻.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은 한 두 개도 아닌 여러 단절을 존재에 품고 사는 일이라근원을 궁금해 하는 오랜 질문이나 일관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고전에 대한 경험도 공부도 부족했다그나마 교과서에 잘려서 실린 작품들에 얼마나 공감하며 즐거운 독서를 경험할 수 있었을까.

 

이런 단절들언어의 문제역사문화사회적 괴리는 나이가 들고 경험한 세계가 넓어지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거듭 접하면서 비로소 난제에서 그럴 수 있는 일들도 바뀌어갔다. ‘고전이란 명칭이 붙은 철학과 문학을 불편함과 거부감 없이 만나게 된 건 오래되지 않았다.

 

분노는 떨어지는 꿀보다 훨씬 달콤해서 인간들의 가슴속에 연기처럼 퍼져 버려요인간들의 왕 아가멤논은 나를 분노하게 만들었어요.”

 

사람 사는 일의 공통적이고 유사한 어려움들을 경험하고 나면 철학과 문학에 담긴 보편적 사유질문고민들도 끄덕이며 읽을 수 있다상상력은 현실의 경험을 재료로 해서만 발현 가능하다는 점에서 데이터가 늘어날수록 아직 남은 괴리를 채우는 일도 조금씩 수월해진다.

 

“<일리아스>의 어느 곳을 읽어봐도 그리스인이라는 표현은 없다. (...) 기원전 약 750년 경에 기록된 <일리아스>에는 여전히 헬레네라는 명칭도 찾을 수가 없다그렇다면 트로이 전쟁이 일어났다고 가정되던 시대에 그리스인은 과연 자신들을 어떻게 불렀을까그들은 자신들을 아르고스인들아카이아인들다나오스인들이라 불렀다.”

 

2천 년 전의 인간의 삶갈등과 전쟁시련과 고통사랑과 우정죽음과 신... 그로부터 내내 살아남아 인간의 시간으로는 충분한 불멸을 얻은 이야기읽다 보면 다른 후손들의 말과 글로 여러 번 만나본 낯설지 않은 삶의 모습들이다.

 

호메로스는 인간의 삶의 방식에서 오만을 가장 경계한다근본적으로는 자신의 한계를 알지못하고 지나치게 욕망을 추구할 때 오만을 범하게 된다. (...) 이것은 단지 영웅에 국한되지 않는다인간은 누구나 지나치게 행운이 따르면 오만에 빠지기 쉽다.”

 

매번 새롭지만 이제 마지막이 아닐 트로이 전쟁과 영웅들의 이야기를 다시 만난다열심히 산다는 일이 가끔 바닥 모를 허망함에 짓눌릴 때시련과 한계와 역경을 극복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오래전 인간의 원형을 만나는 일은 일종의 그리움이자 적절한 위로이다.

 

아킬레우스는 불멸하는 영웅이다.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가 죽는 장면이 삽입된다면 그리스의 승리를 축하하는 노래라기보다는 영웅 아킬레우스의 죽음을 기념하는 노래로 기억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같은 신화를 다룬 다른 작품 <아킬레우스의 노래>에서 만난 파트로클로스가 유령이 되어 아킬레우스의 꿈에 나타난 장면은 여전히 인상적이다나이가 들수록 삶과 죽음의 경계가 가까워지거나 흐려지는데분명한 경계가 있다는 이야기가 이제는 덥석 반가울 지경이다.

 

꿈을 매일 꾸는 게 맞는지매일 잊을 뿐인 것인지잠든 시간이 그대로 무화되어 삶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 듯한 삶에그리움을 가진 존재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마련된 공간인 꿈을 통해 만나는 애틋함과 간절함이 좋다.

 

상당히 흐릿해진 영화 <트로이>에서 만난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트로이의 마지막 왕이자전쟁의 진짜 영웅인 프리아모스도 잊었던 지인처럼 덕분에 떠올려본다장영란 교수의 번역과 해설이 가독성은 늘리고 재미는 줄이지 않아 즐겁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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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류 인구
엘리자베스 문 지음, 강선재 옮김 / 푸른숲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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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장르 별로다 하시는 분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작품입니다미래가 후손이 중요하니 그 외의 것들이라 분류된 다른 이들은 아예 보이지 않거나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 어쩔 수 없다... 라는 암묵적인 동의가 없는 귀한 이야기입니다엘리자베스 문의 전작 <어둠의 속도>를 만난 독자들은 저자가 약자와 소수자에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는 것을 재확인하시겠지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란 말의 한 편에는 나이에 맞게 사는 것이 맞다라는 생각도 공고합니다저도 나잇값 못하는구나 싶어 부끄러운 생각이 드는 순간도 많습니다그러면 나이에 맞게 산다는 건 정확히 무엇일까요누구나 처음 맞는 오늘을 사는 건 똑같을 텐데나이가 들면 새로운 생각도 시도도 실수도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요.

 

아니그럴 필요가 있었어그런 것이 필요하다는 걸 모르면서 살았던 평생 동안 그런 게 필요했어창작의 기쁨놀이의 기쁨은 가족과 사회적 의무로는 채워지지 않는 빈 곳이었어. (...) 내게 놀이가 얼마나 절실했는지아름다운 것을 다루고 더 많은 아름다움을 창조하려는 스스로의 유치한 욕망을 따르는 일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했는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물론 이야기 속 오필리아는 젊지 않기 때문에 모두 다 떠나버린 행성에서 만난 괴생명체와 싸우는 대신 다른 반응을 선택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기를 결정했지만 그 의지가 적극적으로 소유하고 성취하려는 공격성이 없으니 대화가 가능했을 거라 생각합니다어쩌면 삶과 죽음에 대한 강렬한 애착이 덜한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지요.

 

그런 의미로 오필리아는 자신의 경험을 잘 갈무리한 지혜와 현명함을 갖춘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그 캐릭터가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평면적이고 전형적인 인자한 노인은 아닙니다자신을 제외한 모든 인간이 떠난 곳에 남은 단 한사람이라는 설정이 멋집니다대화할 인간이 없다는 점이 사회화된 치장과 변명이 필요 없는 진실한 반추와 생각을 가능하게 합니다.

 

우리는 인간Human Being이라 읽고 실은 Human Doing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제목의 잔류Remnant’란 단어가 읽기 전에는 쓸쓸하고 아팠습니다인간을 기능주의로 선별하는 비인간적인 시스템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잔류 인구의 세계에서는 대단하게 작동하지 않아 안심입니다.

 

불량제품 골라내는 것도 아니고 인간에게도 붙은 지긋지긋하고 유해한 산업자본주의의 가치들인 쓸모와 정상성에 대해 재밌고 실감나게 고민해볼 수 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오필리아는 빌롱의 어머니도할머니도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역할에는 이미 작별을 고했다.

착한 아이좋은 아내좋은 어머니가 되는 것에도.

그런 것들에 70여 년을 쏟아 부었다몰두했다,

이제는 색칠하고 조각하고늙고 갈라진 목소리로

낯선 괴동물들과 더 낯선 그들의 음악에 맞춰

노래하는 오필리아가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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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마요
김성대 지음 / &(앤드)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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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문학상을 받은 소설내가 아는 김수영 말고 다른 김수영인가낯선 곳에 잘못 내린 것처럼 잠시 생각이 유영했다시인 김수영이 맞다저자 김성대도 시인이다그런데 <키스마요>는 장편소설이다읽단 읽어 본다.

 

나는 너의 눈을 바라보았다.

너의 눈으로 나를 보았다.

보이지 않았다.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너의 눈에 나를 비춰볼 수 없었다.

너에게 나는 없었는지 몰랐다.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 채로.”

 

시가 아니라 소설이 맞는데 시처럼 느껴지는 문장들이 없는 것은 아니고전체적인 설정은 또 이해 못할 바가 아니라 신기하게 헷갈리며 계속 읽는다뉴스 보도를 옮긴 것만 같은 오로지 현실적인 상황들이다.

 

낯선 바이러스에 전 세계인들이 고전하고급히 만든 백신은 바이러스와 다를 바 없이 많은 사람을 죽이고바이러스는 인간에게서 가축과 반려동물로 옮겨 가고인간은 늘 그러했듯이 대량 살처분 살해 -를 저지르고이 혼란의 도가니에서 더 떠들썩한 시위사이비종교집단 자살발발한 시간이 동시대는 아니지만 고스란히 현실에서 있었던 일들이다.

 

다른 거라곤 외계인비행물체그들의 메시지뿐이다가장 중요한 사건의 축은 주인공의 연인이 사라진 것연락할 수 없고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연인을 기다리다 찾아 나서다……지구는 멈추지 않고 혼란을 거쳐 종말로 향하고 있다.

 

혼자서 헤어질 수 있을지.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네가 돌아와서 헤어졌으면 했다.

만나서 헤어졌으면.

너 없이 헤어질 수 없으니까.”

 

인간의 몸을 우주라고 한다면 인간의 몸에 공생하는 들은 우주에서 명멸하는 은하들태양계들별들과도 같다그 균들이 없으면 인간은 생존할 수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니 잊고 살고평생 함께 살아도 인사 한 번 나누지 않는다.

 

우주에 있어 지구 행성의 존재는 그보다 더 미미하다지구가 사라져도 우주 전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없을 뿐더러 우주는 지구의 존재를 모르고 모를 것이다소설에서 지구가 우주의 실패한 실험 중 하나라고 해서 섭섭할 이유는 없다존재감이 뚜렷해지는 천재일우의 기회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주를 궁금해하고 지구를 구하려하고 그 모든 이유가 사랑이라는 인간은 우주 차원의 신비한 존재이다인간의 의식consciousness는 어째서 창발emerge했으며 진화의 방향은 왜 이쪽이었을까. 20대에 천착했던 질문인데 어느새 잊혀졌다.

 

이런 이상한 감상글을 읽고 이 작품이 심심하고 지루할 거란 생각은 하지 말기를깜짝 놀랄 복선과 반전의 결말이 존재한다혼란스럽도록 여러 생각과 감정의 변색을 경험할 지도 모른다아무래도 시인이라 이런 효과가 가능한 듯도 하다.

 

살아도 산 거 같지 않은 곳이었다.

살면서 잊는 곳이었다.

살수록 기억이 안 나는 곳이었다.

언제 이곳에 있었냐는 듯.”

 

인간들...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냐고 내부에서 외부에서 물어 오는 소설...

 

인간은 지구에서만 있어야 하는 건지.

인간끼리만 살아야 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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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 학벌주의와 부동산 신화가 만나는 곳
조장훈 지음 / 사계절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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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수능 난이도가 높을수록 다음해 사교육 시장 수요가 올라간다는 분석이 있다분노에 휩싸일 말도 안 되는 문제들을 접하고 난 뒤온라인상에서는 몇몇 음모론이 이미 회자되고 있다출제가의 의도를 알 도리는 없지만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고 결과는 기사제목 - 불수능에 대치동 수요 폭발 - 과 같다

 

언제부터 금수저흙수저란 단어들이 사용되었는지는 기억에 없다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보면불평등이 상식이 되고 경쟁이 당위가 된 21세기 초입에 태동되었을 듯하다.

 

자산의 형태는 여러 가지이고 사람마다 가장 원하는 것은 다를 수 있으나교육은 특별한 지위를 가진 사회적 자원이었다교육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이라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나소위 경쟁과 능력을 앞세우는 사회에서는 교육의 내용만이 아니라 학벌이 과장된 지위를 누리고 있다.

 

전 세계 모든 학교들을 매년 업무평가를 하고 연구실적을 검토해서 투명한 결과를 발표하고 순위를 매기는 시스템이 있다면 모를까, ‘명성과 교육기관으로서의 가치는 늘 일치하지 않거나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물론 원하는 것이 교육을 통해 세계 최고의 학자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간판을 달고 다른 이익을 좀 더 수월하게 챙기겠다는 것이라면 또 다른 문제가 된다맛도 없고 서비스도 나쁜 식당이지만그 식당에서 식사를 한 경험이 계급성을 표현하는 유일한 길이라면 참고 먹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도권 교육에 대한 내 경험은 20년 전의 것들이 대부분이다그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을지 정확히 모르나결코 변할 수 없는 것들이 여전하고 예나 지금이나 심각하게 유해한 부작용과 사회 문제를 재생산하는 시스템으로 작용하는 고질 병폐는 더 심화되었을 것이다.

 

한국사회문제의 가장 뜨거운 핵심은 입시와 부동산이다일하다 죽은 노동자는 이슈가 안 되어도 대입 시험을 못 치른 사정은 전 국민의 관심을 받는다시험날은 등교도 출근도 조정되고 군사훈련도 중단되고 경찰들은 곤경에 빠진 수험생을 태워 나른다.

 

학벌주의와 부동산 신화의 농도가 가장 진한 곳대치동의 사교육 제공자로 산기획 PD겸 작가인 저자는 이 책을 인류학적 보고서ethnography 혹은 참여관찰 기록지field note이길 바란다고 한다모든 기록은 중요하다영상 기록인 다큐멘터리의 역할과 기능처럼 잘 꾸며진 책이다.

 

한국사회의 뇌관이자 어떤 손해도 감수할 수 없는 내 자식들의 미래가 걸린 일그래서 아무도 손을 대려 하지 않는다차라리 덮어두고 죽을 날을 기다릴지언정 누군가 나서서 성공 확률이 없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수십 년째 새로운 바르는 약을 개발했다는 이들만 들락거렸다내상에 외상연고를 발라 병이 나을 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곳에서 만난 학부모와 학생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모두 절실하게 자신의 욕망을 좇고 있었다때로는 도박판의 플레이어처럼 성적과 정보를 거짓으로 부풀리고, (...) 때로는 구세주를 찾는 맹신도처럼 울며불며 매달렸고때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기꾼처럼 인간을 수단으로 취급했으며때로는 구도자처럼 모든 정신력을 긁어모아 자신이 목적하는 바에 쏟아 부었다.”

 

인생 한 방이 통하는 사회는 양아치 사회이다꾸준히 일관되게 올바르게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요행이든 기회든 한 방을 잘 잡아 인생을 뒤바꾸려는 욕망그런 의미에서 대학 입시가 이후의 인생을 상당 부분 결정할 가능성이 아주 높은 한국 사회는 저열한 곳이다이렇게 쓰고 나니 속상해서 마음이 쓰리다.

 

더구나 한국 사회의 대학 입시는 차별의 정식 출발점이다학창시절 내내 무엇을 좋아하는지하고 싶은지 보다 진학할 학교들의 순위에 신경을 썼다이보다 더 계급적인 선택은 없다이후에 사회적 이동의 기회는 거의 없으며학벌은 사회적 지위와도 직결된다.

 

대학 입시라는 통과의례는 인생이 걸린 계급의 거름망이고 운명의 갈림길이다대학 입시를 통해 인간이 분류되고한 번 분류당한 인생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이 때 필요한 지원을 해서 자식을 진학시키지 못한 부모는 자식 인생을 망친 범죄자실패자 취급을 받기도 한다벼랑 끝에 선 것은 수험생만이 아니다묘하게도 부동산 자산 증대와 자식 교육이라는 첨예한 책임을 도맡은 어머니들 역시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 놓인다.

 

여기에 무슨 낭만과 청춘이 있을까무슨 다른 충고가 먹힐까어떤 사회적 분석과 정책적 시행이 충분할까이런 시절을 경험하는 사회 구성원들이 통합이 가능할 리가 없다사회는 더욱 해체되고 분리되고 차별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여전히 아는 지옥이 낫다고 익숙하다는 이유로 이 모든 비용과 낭비와 부작용을 치르며 모순 안에 머물러야 할까여전히 변화가 더 큰 혼란과 악일까적폐를 환영하고 지지한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는데 왜 새로운 적폐를 차곡차곡 쌓는 일에 협조하는 것일까.

 

차별과 부당함에서 벗어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 모순된 세계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거기서 낙오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21세기 21년 동안 한국인들의 문해력은 점점 더 떨어지고 있다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 공부하는학력이 가장 높은가장 인내심이 강한가장 부지런한 사람들이 읽고 쓰는 법을 모른다는 것이다읽기와 쓰기문해력과 논술을 외면하는 교육 과정이기 때문이다.

 

읽고 쓰기를 빼고 가능한 사회문화적 활동이 무엇일 있을까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사람들끼리는 소통을 어떻게 할 수 있나왜 책을 안 읽냐고 놀랄 일이 뭐가 있나.

 

!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코로나 시대에도 입시로부터의 해방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3은 좁은 공간에서 밀집된 채로 오랜 시간을 보내도 괜찮은 존재였고” “재난은 우리 사회가 학생들을 입시와 학벌의 피라미드 아래에서 그저 공부만 하는 존재 정도로 여긴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한국사외의 학벌과 능력(학력)주의

 

사실은 능력주의의 정반대편에서 인지적 편견에 기초한 집단주의적 차별이 문화적 악습으로 뿌리내린 결과일 뿐이다.”

 

자기 학교 출신을 밀어주고 끌어주며 특혜와 가산점을 주어 만들어온 강고한 연고주의의 성채가 바로 학벌주의다.”

 

한국 사회는 능력주의를 제대로 실현한 적이 없다당연히 자유경쟁도 없었다전근대적이고 연고주의가 강고한 가운데 예상치 못한 예외적 성공을 이룬 낯선 이들을 개천에서 난 용이라 부르며자신들의 불의한 시스템이 공정한 것인 양 선전하는 수단으로 이용해왔다.

 

학벌을 옹호하는 이들은 (...) 자기 조직의 상징을 문신으로 새기고 건들거리는 조폭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삥 뜯는 일을 자신의 특권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학벌주의는 어떻게 타파해야 하는가?

사라지지 않을 경쟁이 초래하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갈수록 진화하고 세분화되는 불평등은 어떻게 다뤄야하는가?

불로소득을 향한 욕망과 결합한 학벌 집착은 어떻게 분리할 것인가?

학력이 높아지는 만큼 지성을 존중하기는커녕 불신하고 혐오하는 반지성주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서울대 나온 놈들이 세상을 다 망친다고 하고 서울대 나온 이들도 그 말에 동의하지만 내 자식은 서울대에 가길 바라는 괴리를 무엇으로 설득할 것인가?

집단의 은밀한 세속적 욕망을 어떻게 파악하고 끌려 다니지 않는 정책을 마련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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