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에서 만난 사람들 - 모든 사람은 한 편의 드라마다
이언주 지음 / 비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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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방 애청자가 아니라 조금은 미안한 마음으로, 그러나 종이책이라 무척 기쁜 선물을 3월에 받았다. 유퀴즈만 시청을 안하는 게 아니라 TV 시청을 그다지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출연 소식에 들뜨고 놀란 조성진 편은 본방과 재방을 꾸준히(?) 하고 있다.

 

세상의 많은 것이 소음이라 대체로 괴로운 나는 조성진의 연주는 하루 종일도 들을 수 있다. 스타시스템에 길들여진 거냐는 친구의 놀림을 받기도 했지만, 불면을 부를 정도로 소리민감성이 심한 내게 한 번도 거슬리지 않는 소리로 느껴지는 그의 연주가 귀하고 특별할 뿐이다.

 

예능에 출연한 그는 잔잔하고 담담하게 몹시 웃기기도 해서 (티켓팅이 극악해서 몇 번 안 되지만)연주회에서도 한 적 없었던 큰 소리로 웃고 말았다. 이후에 다른 영상을 찾다보니, 읽은 책의 저자로 만나 존경하게 된 분들과 사연과 모르던 다른 분들의 감동적인 삶과 깊은 통찰이 담긴 이야기들도 찾게 되었다.





 

정답 따위 없는 것이 인생, 답이 없이 사는 것도 정상. 너는 너로서, 나는 나로서, 결핍은 결핍대로, 삶은 그렇게. 둘리와 친구들처럼!”


나는 지혜롭지 못한 인간인 게 좋다. 덕분에 직간접으로 만나는 모든 타인에게서 배운다. 보물섬 표지만 슬쩍 봐도 어린 시절에 마음이 지잉 울리고, 둘리 만화를 보던 때는 모르던 아무도 완벽하지 않은 인간 자체와 그 모자람이 감동이 되고, 함께 살아갈 이유이자 필요조건이 된다는 걸 겨우 배운다.

 

깨닫고 나면 자연스럽게 행동에 나설 수밖에. 인간의 이기심에 혹사당하는 동고래가 있다면 풀어주는 게 (...) 호주제가 비자연적이고 차별적이라면 폐지하는게 (...) 기후 변화가 생명체 전체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대처 방안을 고심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이 공식을 믿는다. 반증은 질리도록 보고 그 반증에는 내가 외면하고 행동하지 않은 순간들이 가득하다. 그래도 믿는다. 그렇게 사는 이들이 더 많으니까. 생각을 나누어야 실천이 이루어진다고 믿는 최재천 교수님의 모든 활동을 응원한다. 나는 재민이. *최재천 교수님 유튜브 구독자

 

“‘할아버지가 재산을 옳은 일에 기쁘게 내놓으셨으니 명예롭게 생각해야 한다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고 했다. 최준 선생이 후손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 그 자체일지 모르겠다.”

 

일본이 미국에 항복한 일이 한반도의 광복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한국근현대사를 배우며 충격 속에서 깨달았다. 광복은 점령군의 부재 이후로 계속 만들어야했던 정치사회적 과업이었다. 애 쓴 분들이 많았고 성과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잘 못한 부분, 미진한 부분, 부족한 부분이 많다. 당당히 비석을 세우고 이름을 내걸고 국유지에 묻힌 친일파들의 묘가 오류의 증거 중 하나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다면 지금은 사람이 보여요. 저분이 나를 도와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내가 응원받은 것처럼 수많은 보통의 삶이 응원받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다정한 선함을 나누면 그 선함은 세상을 오래 넓게 여행하며 많은 이들에게 닿는다. 마치 꿈, 기적, 동화, 소설 같은 두 명의 김민섭 이야기. 책을 먼저 읽었는데 영상도 있어서 다시 행복했다. 친절하자, 다정하자, 잊지 말자.

 

존경하는 의사들 중에도 특별한 감동으로 기억하는, 진료실 밖으로 나선 양창모님. 과식이 돈이 되는 시대에, 많이 먹을수록 먹고 사는 일이 우스워지는 시절에, 가난한 이들이 떳떳하라고, 부끄럽지 않으라고’ 1000원을 받는 밥집. 일본이 마지막까지 착취하고 바다에 수장시킨 옥매광산의 유일한 생존자로서 요새 어른으로서 말할 자격이 없다어른을 닮지 말고 정도를 가라고 오히려 사과를 한 김백운 할아버지. 내가 어른이 되면 적어도 아이들이 마지막 선을 넘지 않도록 돕겠다고, 단 하나의 아픔이라도 내 손으로 끊어주겠다고 결심한 대로 살아가는 구미 황상동 버스 종점 앞 작은 미용실의 어머니. 함께 아파하면, 반드시 찾을 수 있다는 슬로건을 만들고 재직 내내 함께 아파하고 자신의 시간을 보낸 이건수님.

 

모두에게서 모르던 세상을 배우고, 잊었던 배움을 다시 기억한다. 이미 돕고 있는 모두를 더 잘 도울 방법 중 하나는 제대로 기능하는 정치다. 한 명이라도 덜 외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주말에 사전투표 하러간다. 3일도 너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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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지음 / 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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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작가가 전하는 지랄 맞음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축제로 전환시키는지 놀라울 모든 이야기가 궁금하다... 이런 느긋한 생각으로 펼쳤다가, 온갖 지랄 맞음에 일단 두들겨 맞았다.

 

언제쯤 달라지려나, 안보고 사나 싶었던 행태들에 계속 익숙한 상처를 받으며 사는 일들이 불쑥, 여기저기, 사전 경고 없는 공습처럼 등장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분노에 휩싸여, 원망하고 고발하는 그런 글이 아니다.

 

호로록 목을 미끄러져 내려가는 국수가닥처럼 잘만 읽히는 문장들은 문득 에세이임을 읽고 단편소설을 보듯 정신없이 몰입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정신을 또 차리고 보면, 이젠 알만큼 안다 생각한 오만에 얼굴이 붉어지는 현실이다.

 

아니, 이 책에는 내가 모르는 세계, , 직업, 만나본 적 없는 이들이 더 많다. 그래서 그게 또 궁금해서 나는 어두워진 노안을 깜빡거리며 물을 계속 마시며 줄어드는 분량을 아까워하며, 오랜만에 붉은 줄을 죽죽 그으며 읽었다.

 

중도 장애란 한 가지 표현으로 이해한, 그러니까 아무 것도 아는 것 없는, 삶을, 장애 진단부터 진행 과정과 잔존시력을 모두 잃은 후까지 자전소설 같은 생생함으로 처음 (문학적으로) 경험했다.

 

학교를 가지 않고 도서관에 파묻혀, 시력이 남아있는 동안 손에 닿는 대로 책을 읽는 시간. 저자는 책은 눈으로만 읽는 것이라 생각한 당시의 무지를 언급하지만, 나 역시 그런 기분으로 책을 읽는다. 노안의 진행이 더 빨라지고 심해지면 언젠가 책을 놓게 될 것이니까. 시력의 약화와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큰 나는 심장이 벌렁거리는 공감으로 저자의 필사적인 독서 시간들을 목격했다.

 

마사지사라는 직업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의무였다.”

 

시각장애인 마사지사라는 직업의 합법적 허용에 관한 법적/사회적 논쟁이 있었던 기억이 얼핏 났다. 사정을 모르니 남의 일이었다. 마사지실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정말 모르던 세계로 향하는 내 세계의 문을 살짝 열어주었다. 주의하지 않으면 머릿속에서 세상이 얼마나 단순화되는지 다시 경계했다.

 

장애란 이런 것이다.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느닷없이 튀어나와 등짝을 걷어차 버린다.”

 

아픈 데는 많지만, 어쨌든 복지카드에 등록된 장애가 없는 나는 더 조심해야한다. 장애가 정체성의 일부라는 표현도, 극복이라는 표현도, 나는 알고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응원을 하고 싶을 때도 오만한 태도가 없는지 살펴야겠다고 식은땀이 좀 났다.

 

보이지 않아도 보고 싶은 욕망이 있다. 들리지 않아도 듣고 싶은 소망이 있다. 걷을 수 없어도 뛰고 싶은 마음은 들 수 있다. (...) 비록 제한적인 감각이라 해도 (...) 그것을 행복하다면 여행의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세 명의 장애인이 무사히 해외여행을 한, “아무 것도 아닌 사실에 나는 주먹을 꽉 쥘 만큼 감동했다. 팬데믹이라는 모두가 자가 격리된 특별한경험이 장애인들에겐 일상적 거부와 제한이라는 것을, 다 같이 그 시절을 힘들어했으면서도, 한국 사회가 장애인 이동권에 대해 지금 보이는 태도를 생각하니 더 속이 상한다.

 

겨우 몇 달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한다고 답답해 미치겠다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누군가는 평생을 그리 살기도 한다고. 방구석에서 자유를 상상하며 자기위안에 빠져 평생을 사는 이들이 있다고.”

 

평생 타인에게 열등감을 느끼며 사는 나는, “원망이나 설움이 전혀 없이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는 아저씨도 현실 어벤져스 같은 숙희씨도, 내가 갖고 싶은 호방함으로 타인을 품고 먹이지만, “어디서나 이방인 취급을 받고 사는 언니도 수다스럽게 다 소개할 수가 없어서 너무나 아쉽다.

 

삶의 결이 나와는 다른 사람. 그녀는 내게 늘 진심이다. 나는 그런 그녀가 좋으면서도 불편하다. (...) 나는 수미씨의 올바름에 화가 났다. 그녀는 결핍을 모르는 사람이다.”

 

악의와 의도가 없어도 타인을 얼마든지 상처 입힐 수 있다. 몰라서 그렇다. 배운 적이 없으니 내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수는 있지만, 나는 더 주저하고 조심하고 사과하며 살면 좋겠다. 잊지 말고 그렇게 살고 싶다. 무심함과 무지에는 내 게으름도 조금은 책임이 있으니까.

 

일상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늘 시간에 눈물겹다. 그러니 책은 늘 귀하고 때로는 유일한 배움의 기회다. 차분한 호흡처럼 솔직하고 담담한 글이 많이 아파서 많이 배운다. 축제가 빨리 오기를, 성대하기를 고대한다. 그동안 이 단단한 문장들을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기를 앙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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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별의 시간 - 엄마랑 너는 가봤니? 딸이랑 나는 가봤다!
김미순.성예현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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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학교 교사로 33년째 일한 저자가 60을 바라보고 은퇴를 고민하다, 딸과 함께 산티아고 순례를 한 이야기다. 존경과 부러움이 함께 왔다. 나도 60쯤 되면, 은퇴를 하면, 보잘 것 없어진 체력을 회복할 방법이 있을까. 그땐 맘대로 멋대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보고 싶은 사람만 보면서 살 수 있을까. 다시 여행을 떠나게 될까.

 

이번 산티아고 순례하는 동안, 나는 NO 물집, NO 스틱, NO 선크림, NO 화장품 등을 실천하며 천연비누 한 장으로 충분한 자연인 순례자였다. (...) 산티아고를 다녀와 자가용을 없애고 뚜벅이 삶의 가치를 실천하며 여전히 버려야 채워지는 삶의 지혜를 공부하고 있다.”

 

매사에 너무 진지한 꼬맹이는 5학년까지만 내 여행에 동행해주겠다고 했다. 그 후엔 자신이 너무 바빠져서 힘들 거라고. 팬데믹 탓에 제대로 여행을 못 갔다. 출장을 따라가겠다고 했으나 고민 끝에 혼자 떠났다. 이제 중학생이 되었으니, 너무 바빠서 내가 부탁해도 거절을 할까. 재미없는 출장이라도 같이 갈 것을 그랬나 싶다.

 

순례는 휴식 같은 여행이 아님에도 떠나는 순간부터 휴식 같은 여행이라고 하셔서 마음이 짠했다. 그리고 다행이라고 함께 기뻤다. 저자가 속한 여러 관계 속의 이름들 - 특수학교 교사, 맏며느리, 아내, 엄마 - 이 나는 씩씩하게 다 못 할 것 같아서 더 그렇다. 에너지 차이가 이렇게 많이 나는 건 좀 많이 부럽다.

 

함께 평화롭게 살고, 환경을 지킬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세상을 위해 우리는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아름다운 자연을 만날 때, 함께 살아가야 하는 동물들을 만날 때 부쩍 탄소중립’, ‘생태전환이라는 단어가 새삼 자꾸 떠오른다.”

 

나도 오랜 시간 산티아고 순례 여행을 바랐기에, 에세이도 많이 읽었다. 이제는 어떤 사진들을 보면 마치 걸어본 듯 정확한 위치와 명칭을 알아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새로운 것들은 적을 거라 생각했는데 또 다르다. 시선과 에너지가 다르니 풍경도 달라 보인다. 그리움으로 기억하는 추억들이라 나도 함께 애틋해진다.

 

각자의 방식과 각자의 생각과 각자의 순례가 달라서 의미가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름이 주는 가치를 깨닫는 것이 진정한 순례의 가르침일 것이다.”

 

어느 계절에 가게 될지 나는 잘 모르겠다. 결국 가게 될 지도 가게 되어야 알 것 같다. 그럼에도 상상만으로도 한발 한발 걷기만 하면 되는 날들이 이어진다고 생각하니 만성 두통도 식초를 잘못 삼킨 듯 쓰린 속도 다 나을 듯한 기분이 된다. 걷기만 하면 되는 삶... 그 길에서 나는 어떤 나를 만나게 될까.

 

단순하고, 자유롭고, 자연스럽고, 들숨 날숨 평안하고, 텅 빈 고요로 행복하고, ‘만 바라보여 충만하고, 자연의 숭고함에 순종하고, 존재 자체로 이미 너무 감사하고.”

 

다녀온 누구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점점 더 좋아진다. 힘들고 아프고 괴로울 텐데도, 순례를 마친 이들에게 채워진 힘이 느껴진다. 성취와 정복이 아니라 인간의 다리로 걷는 여행에 이토록 많은 이들이 계속해서 매료되는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본다. 고단한 우리가 간곡하게 그리는 것들은 정말 무엇인지 오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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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 숲과 평원과 사막을 걸으며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
배리 로페즈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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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이 서로를 살아가게 하는 사랑의 기록이... 뜨겁고 아픈 고통도 눈물도 닦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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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 숲과 평원과 사막을 걸으며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
배리 로페즈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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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가 공원이 되고 집이 기념관이 되는 행정 프로젝트가 결정되었기 때문에 불가피한 이사를 해야 했을 때, 어머니는 견딜 수 없는 이별을 하는 이처럼 많이 우셨다. 괜히 자식들은 제 잘못이 있는 것처럼 죄스러웠다.

 

누구나 장소가 있어야 생존을 할 수 있고, 그 장소는 곧 안전한 피난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마치 공간이 기억 자체를 담지한 각자의 삶의 고유한 존재가 되는 것처럼, 어디를 둘러보아도 살았던 이들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내가 다섯 살에 이사 온 단독 주택에서 동생을 낳고 우리를 키웠던 젊은 어머니는, 성장한 자식들을 다 떠난 보낸 뒤에도, 그 집을 쓸고 닦고 가꾸고 우리를 기다리며 거의 평생을 사셨다.

 

그 장소를 확장하면, 짐정리를 돕고 인사하러 나오신 오랜 이웃들과 어릴 적 자주 들락거린 너그러웠던 그들의 집이 있다. 더 확장하면 학교와 가게들과 다양한 공동의 공간들이 있다. 익숙한 거리조차 오랜 친구 같고, 너무 높지 않아 자주 올랐던 산과 계절별로 고운 풍경을 전하던 강변이 그립게 존재한다.

 

바쁘기만 한 성장한 자식들은 서둘러 서툰 위로를 건네며 이사를 마쳤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그날 목격한 어머니의 슬픔이 나는 두려워졌다. 마치 오래 삶을 견디고 견딘 이가 이사 - 장소를 빼앗김 - 를 계기로 어딘가 무너지신 건 아닌지, 불쑥 떠오르는 사념에 숨이 턱 막히곤 했다.

 

나이든 부모를 제대로 마주하고 돌보는 일을 잘 배우지 못한 나이만 찬 자식은 어머니의 울음을 통해 지킬 수 있을 듯한 작은 결심을 했다. 대단한 효도와 위로는 아니지만, 적어도 어머니에게 비상 알약처럼 복용할 수 있는 무언가를, 슬프고 아플 때도 한 알씩 꺼내 먹을 수 있는 기억을 같이 만들고 싶었다.

 

매주 방문해서 옛집이 변하는 모습을 같이 보면서 천천히 이별을 했다. 대부분의 이웃들도 이사를 가셔서 반가운 얼굴들은 적었지만, 아직은 옛 거리의 모습이 남은 동네를 천천히 걸었다. 함께 살 때 함께 걷는 일을 더 자주 했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에 식초를 잘못 삼킨 듯 마음이 쓰렸다.

 

모든 장소는 유일무이하며 다른 어디에서도 되풀이되지 않는다. 놓치는 순간 사라져버린다.”

 

전화 통화로 안부를 묻는 일 대신 직접 만나고 걸으며 얘기를 나누니 날씨와 계절의 변화도 함께 만나게 되었다. 어머니는 옛집과 이사에 대한 아픔을 얘기하는 대신, 자신의 고향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어 들려주었다. 내가 만나본 적 없는 생기발랄한 어린이가 이야기 속 장소들에서, 다치고 놀고, 친구들과 싸우고, 심부름을 하고, 전쟁을 피내 피난을 가고, 사람들을 만나고, 동생을 돌보며 생존하고 성장했다. 그리고 나는 모르던 야생화의 이름을 매주 배웠다.



 

1950625일 전쟁이 일어났고 1953727일이 휴전이 체결되었다는 문장으로는 전혀 알 수 없는 풍경들이 어머니의 기억 속에서 생생한 색을 전혀 바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죽은 이들의 피가 줄기를 이루며 흐르던 날도, 쌕쌕이 비행기가 폭탄을 떨어뜨리며 날던 날의 공포도, 급히 피하다 찔레 가시에 찔려 피가 난 아이들의 얼굴도. 그리고 황폐해진 땅과 물에서 황망한 정신으로도 먹을 것을 찾아 뭐라도 먹으며 살아남은 이들의 이야기도 있었다.

 

찬란한 감동과 지독한 고통이 함께 했던 어린 베리 로페즈의 서사는 눈물 속에서도 차분하게 끝까지 읽어낼 수 있는 감당할 수 있는 인연처럼 다가왔다. 그와 내 어머니와 내가 찾아가고 만나고 머물고 살았던 장소들은 겹치지 않지만, 각자의 눈에 새겨진 풍경들도, 각자가 반추한 것들도 다르지만, 나는 그가 낯설지 않았다. 너나없이 상처를 입고, 때론 흉터로 쉽게 아물지 못하는 상처를 입고도, 장소와 관계에 기대고 힘 입어서 삶의 연결을 놓지 않고 살아간다는 닮은 슬픔.

 

자기 시련이 이례적이지 않음을 인정하고, 그로부터 타인의 고통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구원과 아름다움에 대하여 더 넓은 인식을 직조해냈다.”

 

성취 지향적 삶을 사느라 부모와 집과 고향을 떠나 오래 살았다. 생의 반환점은 여러 해 전에 돌았다. 내 어머니는 어느새 예순이다. 오래 전 영국에서 논문 지도를 해주선 교수가 글을 쓰다 고민이 되면, 강에 관한 건 강에 가서 물아보라고 했다. 위로와 격려를 담은 농담이라고 생각한 점이 많이 아쉽다. 그때 강에 가서 물어볼 것을. 오래 강을 보고, 자주 보고, 끈질기게 물어 볼 것을. 답을 얻거나 힘을 받아 안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누구도 혼자 생존이 가능한 존재로, 현명한 지혜를 갖춘 채 태어나지 않는다. 누군가가 태어났다는 것은 많은 존재들이 바라고 도왔기 때문이다. 내 삶은 나 혼자 만든 것이 아니다. 다 셀 수도 없는 알거나 알지도 못하는 다른 존재들의 노동과 사랑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리고 사랑을 한다는 것은, 사랑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구체적인 연결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분리되고 쪼개지고 떨어져나가고 헤어지면서 우리가 이룬 많은 것들이 차라리 하지 않았으면 좋을 실패들이다. 그러지 않고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깊이 들여다볼수록 문명 전체의 문제가 되고 만다. 그러나 나는 훌쩍거리며 이 책을 읽는 동안 거대한 절망과 발작 같은 공황 대신 조곤조곤한 위로를 받았다. 특별한 여행지가 아닌 동네 산책만으로 내 어머니와의 연결점을 차곡차곡 늘려 나가는 것처럼.

 

개인으로서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 낼 수는 없을 거라는 무력함과 무기력 대신, 나는 베리 로페즈의 미풍처럼 소곤거리는 다정한 말을 따라보기로 한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절망 속에서 죽기보다 앞에 놓인 가능성을 위해 사는 것이 내게도 중요하다.

 

인간이 우주에서 유일한 집에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를 알게 된 후의 충격과 이후의 끝없이 반복되는 희망의 좌절과 대응 부재는 생존의 위태로움을 발작 같은 불안으로 경험하게 한다. 미래세대 걱정을 할 일이 아니었다. 통계 숫자들은 이미 늦었다고 한다.

 

하지만 낙관하며 살아야하는 것인지 묻는 친구들 덕분에 나는 오래 고민했고, 살아 있는 동안에는 희망하기로 했다. 다른 선택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다른 선택은 마음이 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살아 있으면 아무리 적어도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뭐라도 하면 뭐라도 달라질 것이니까.




 

고령의 부모와 아직 십대인 아이들 어느 쪽을 보아도, 감당해야 할 책임과 두려움이 불쑥 짓쳐들지만, 마음가짐을 제대로 세우고 행동하는 것은 공포를 수용하지 않는 것과는 다르다. 이것이 반백(半白)의 반백(半百)이 되고서야 이제 배운 사랑을 길러나가는 법이라고. 아직 남아 있는 여기살아 있는 것들이 아주 많다고. 힘이 없지 않다고. 얼마가 되었든 이울어가는 몸 안에 아직 남아 있는 생명이라는 선물을 만끽할 것이라고지금, 여기, 살아 있는 것들이 서로를 살아가게 하는 사랑의 기록이... 뜨겁고 아픈 고통도 눈물도 닦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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