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의 계절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평점 :
품절





가수 이소라를 한 친구가 많이 좋아했다. 연애와 이별을 반복한 후 매번 앨범을 만든다는 그의 음악은 질척과 끈적과 지나치게 사적인 울부짖음 같아서 나는 듣기가 괴로웠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 날 친구가 너도 들을 수 있을 새 노래가 나왔다고 들려주었다.

 

몇 줄 가사의 의미가 관통력을 가진 듯 인상적이었다. 사랑은 비극이다. 우리는 서로가 아니고, 추억은 다르게 적히므로. 필기구의 향기보다는 체취가 더 많이 느껴지는 글이 권여선 작가의 글이다. 제목이, 내용이 그 노래가사를 떠올리게 했다. 각각이 각자의 계절을 경험할 뿐.

 

20대에 만났기 때문일까, 소위 통속과 비릿한 절망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던 다른 청산문학과는 그때도 달랐기 때문일까. 여러 해 선배인데 동지의, 동기의, 얘기를 듣는 듯했다. 여전히 그렇다. 함께 했다고 믿은 계절, 기억, 추억, 기쁨, 슬픔, 아픔 모두 각각 흘러가버렸다.

 

서늘한 표정으로 대외적 품위를 지킬 수 없게 만드는, 불쑥 치밀어 오르는 견딜 수 없이 뜨거운 슬픔이 작가의 글에는 늘 있다. 내 경험인지 다른 이의 것인지 구분이 안 되는, 낯설고 익숙한 어떤 기억들이, 상처처럼 숨겨 두었다가, 숨어 있다가 글자 위로 겹쳐지는 순간이 있다.

 

과거를 반추하면 할수록 내게 가장 놀라웠던 건 그 시절의 내가 도무지 내가 아닌 듯 무섭고 가엾고 낯설게 여겨진다는 사실이었다. 오래전 기억 속의 자신은 원래 그렇게 생각되는 법인지 모른다. 하지만 원래 그렇더라도 놀라운 건 놀라운 것이다. 내가 손쓸 수 없는 까마득한 시공에서 기이할 정도로 새파랗게 젊은 내가 지금의 나로서는 결코 원한 적 없는 방식으로, 원하기는커녕 가장 두려워해 마지않는 방식으로 살았다는 사실이, 내게는 부인할 수도 없지만 믿을 수도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이런 게 놀랍지 않다면 무엇이 놀라울까. 시간이 내 삶에서 나를 이토록 타인처럼, 무력한 관객처럼 만든다는 게.”

 

온통 흔들리며 읽었다. 읽었던 작품들도 모두 새롭게 읽었다. 읽혔다. 다르게 읽고 말았다. 덕분에 휴일 내내 아침 늦잠을 잤다. 밤을 샌 것도 아닌데 뇌가 떨려서, 추억이 흔들려서, 혼곤하게 지쳤다. 정신을 차리지 말고,. 문장들만 생각하며, 가만히 숨만 쉬며, 살고 싶었다.


 

다정한 작가의 말과 인터뷰 글이 낯설 만큼 떨렸던 단편들의 저 담담한 어조를 떠받치는 절망과 속절없음과 염오. 그는 건너왔고 나는 나도 건넜다고 잘못 기억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의 글은 지난 시간이 모두 꿈이라고 말하면서도 가장 섬세하게 기억해주는 기록 같다.

 

누구나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는 최소한 받아들일 만한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 그 처참한 비열함이라든가 차디찬 무심함을 어느 정도 가공하기 마련인데, 나 또한 그렇게 했다. 어느 순간 번쩍 몇 가지 일들이 떠오르면서, 그것들이 뜻밖의 별자리를 만들면서 내 정신은 깊은 어둠과 무지에서 파르르 경련을 일으키며 깨어났다.”

 

알아차릴 수 없도록 뭉개진 감정들을 울고 싶은 타인의 글로 만나는 충격과 충돌하는 파삭한 감정들, 그때도 지금도 버겁지만 좋다, 그의 글은 좋다. 사랑해서 얻는 게 악몽이라면, 차라리 악몽을 꾸자고 (...)” 다음 계절에도 우리는 어떻게든살아? 살아,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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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깨달음. 왈츠를 들으며 읽어볼까 했는데, 조성진도 백건우의 연주로도 듣기가 어려웠다. 20, 춤곡은 내 것일 수 없다는 완곡한 거절처럼. 같은 3/4박자이지만 호흡이 느린 미뉴에트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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