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지겨움
장수연 지음 / Lik-it(라이킷)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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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라디오를 즐겨 듣는다. 가족들이 매일 아침 모이는 식탁에는 항상 라디오가 틀어져 있다. 우리 가족끼리의 대화 속에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이야기가 이슈가 되는 것은 그래서 흔히 있는 일 중의 하나이다. 나는 라디오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디제이에는 익숙했지만, 그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피디의 이야기는 잘 몰랐기에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여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여러 라디오 채널 중에서도 우리 가족이 즐겨 듣는 라디오는 MBC이다. 아침의 시작은 시선집중에서 들려주는 세상의 이슈로 시작하는 우리집. 그 프로그램의 조연출을 거쳐 정오의 희망곡등을 연출하는 여성 PD인 장수연 PD가 집필한 이 책은, 다양한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자신이 취업을 하기까지 겪었던 일화부터, 라디오국에서 일어났던 여러 에피소드들, 그리고 하나의 프로그램을 매일 이끌어나가기 위해 하는 여러 고뇌들을 꾸밈없는 솔직한 어투로 드러내고 있는 저자의 이야기가 참으로 인상깊었다.

 

저자는 말한다. 라디오에서 끝나는 시간을 인식할 줄 알게 되면 프로의 경지에 오른 디제이라고. 그리고 이것은, 마치 어른이 된다는 것과 삶을 제대로 살 줄 안다는 것이 죽음을 알고 있다는 뜻인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을. 그녀는 매일 반복되는 삶의 권태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언젠가 올 마지막을 보는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해주고 있었다. 나는 아직 나의 마지막을 상상해본 적이 없다. 그냥, 매일 아침 눈을 뜨고 할 일을 하고 눈을 감는, 일상의 반복을 하고 있을 뿐이다.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내가 지금 고뇌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죽음을 앞에 두고 그 죽음을 향해 가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하기에, 굳이 힘들게 살 필요가 없겠구나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더라도, 우리 곁에는 라디오라는, 조금은 느리게 흘러가는 친구가 있다. 무조건 빠른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라디오를 통해서 배우고 있다. 나의 하루, 그리고 우리 가족의 하루 하루를 좀 더 의미있고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라디오라는 매체가 곁에 있다는 것이, 나는 참으로 좋다. 그리고 라디오를 존속할 수 있게끔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일하고 있을 여러 사람들의 노고가 참으로 고맙고, 앞으로도 라디오라는 세상의 창이 계속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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