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찾아서 창비시선 438
정호승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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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찾아서』 서평, 정호승


 

정호승 시인이라 하면 「슬픔이 기쁨에게」라는 시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실려 있어 수업 시간에 열심히 필기를 했던 소소한 기억이 있다. 감정과 감정끼리의 대화가 이루어진다면 정말 이런 이야기들이 오갈까, 하는 막연한 상상과 동시에 시인이 왜 슬픔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했는지 궁금했다. 그런 정호승 시인의 열세 번 째 시집이 다시금 창비에서 출간되며 서평단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신청하게 됐다.


해당 시집에 실린 125편의 시를 읽으며 들었던 가장 크게 들었던 생각은 시인의 순수함이었다. 꼭 세상을 살며 때가 묻지 않아야만 순수한 것인가. 아닐 것이다. 원치 않게 묻게 된 때까지도 안고 가며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고 자신의 흔적을 반성하는 모습 자체가 시를 쓸 수 있는 그만의 기반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인스타그램에 게시한 손미 시인의 시집 이외에도 다양한 시집을 읽어왔다. 그래서 나에게 정호승 시인의 시들은 더 잔잔하고도 평범하고,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이전에 내가 읽었던 시집들은 강렬한 이미지, 그로테스크한 상징, 저 아래서부터 끌고 올라온 어둡고 뜨거운 열망, 강직하고 무거운 슬픔과 같은 것이 시의 대부분을 차지했었다. 하지만 정호승 시인의 시는 전반적으로 해석에 큰 어려움 없이 화자가 하고 싶은 말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매력이었다. 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나이와 비례하지 않은 어린 사람으로 묘사하며 인생사에 통달한 듯하면서도 그렇지 못한 자신을 털어놓는 느낌을 준다. 어쩌면 그런 자세이기에 시를 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시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두 가지 키워드는 어머니이다. 총 다섯 부로 나뉘어진 시집에서 전반부에는 새에 관련된 시 혹은 텍스트에 새가 언급된 경우가 굉장히 많았고, 후반부에는 시인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어머니가 굉장히 많이 등장한다. 시인은 새라는 존재에 대해 말할 때 결코 인간이 더 나은 존재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계속해서 자문한다. 더불어 자신의 인생에 있어 계속해서 등장하는 일종의 동반자라고도 생각하는 듯하다. 이 시집을 내기 전에 시인이 새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새에 관련된 특별한 경험들이 있었는지가 궁금해졌다. 어머니에 대한 시들은 시인의 그득한 그리움과 가슴 속 깊이 묻힌 쓰라린 상처, 못다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상처」라는 시에는 같은 사물을 보고도 시인의 청년 시절과 현재의 다른 마음을 말한다. 내가 일흔 즈음이 되었을 때, 이 시집을 읽으면 지금과는 또 다른 감명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기차에서」, 「시계를 볼 때마다」, 「썰물」이라는 시는 인생을 살아가며 누구나 한 번쯤 혹은 여러 번 느낄 법한 감정을 격언처럼 풀어낸 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상 깊었다. 자고로 나에게 좋은 시란, 순간적으로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기차가 달리는 동안에는 달리는 기차를 사랑하라는 시인의 말은 더욱 기억에 남는다. 어찌됐든 살아보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든 삶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문장일 것 같다. 지금도 기차는 달리고 있으니, 눈에 스치는 많은 것들을 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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