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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우의 『존재와 사건』 입문
크리스토퍼 노리스 지음, 박성훈 옮김 / 서광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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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입문
조 휴즈 지음, 황혜령 옮김 / 서광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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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의 <정의론> 입문
F. 러벳 지음, 김요한 옮김 / 서광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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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해제
존 프레스턴 지음, 박영태 옮김 / 서광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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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는 어떤 근거로 자발적 매춘이 아닌 일본이 저지른 국가범죄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매춘과 성노예를 구분 짓는 요소는 본인의 의지 유무이다. 자신의 의지로 한 것이면 매춘이고, 누군가 강제로 시켜서 했다면 성노예가 되는 것이다. 한일 간 위안부 문제에서 화두가 되는 것은, 일본군 위안부가 일본정부와 군부가 지휘한 국가범죄라는 데 있다.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지켜야 하는 국가가 직접 성매매, 학살 등에 나서서 범죄를 일으키는 것은 곧 인류범죄와 다름이 없다. 따라서 왜 위안부가 국가문제이고 일본의 위안부에 대한 주장의 허점을 파악해야한다. <건국절과 소녀상> 제5장 '전쟁 성범죄와 소녀상'을 통해 알아보자.


일본은 명백하게 위안부를 제공하는 위안소를 직접 운영하고 관리했었다. 이를 입증할 중요한 법적 근거는 일본 육군성의 영내 매점 규정인 야전주보 개정 규정이다. 이 규정이 중요한 이유는 위안 시설 운영에 관한 내용이 나오기 때문이다. 전쟁터에서 여러 물품을 군인에게 싼 값에 판매하기 위해 고안된 영내 매점 운영 규칙 제1조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1조 영내 매점은 전쟁터 또는 사변이 발생한 곳에서 군인, 군속, 그 외 특히 종군을 허락받은 자에게 필요한 일용품, 음식물 등을 정확하고 싼 값에 판매함을 목적으로 한다. 영내 매점에는 전항 이외에 필요한 위안시설을 (설치)할 수 있다. (<건국절과 소녀상>, p. 220에서 인용)


 

군국주의 일본은 이런 별도의 조항을 만들어 가면서까지 위안소를 합법적으로 운영하고자 했다. , 위안부는 일본군의 복지를 위한 일용품처럼 취급받았다. 저자 이인재는 약 10~20만 명의 위안부가 있었을 것으로 계산하는데, 그렇다면 10~20만 명의 여성이 일본군의 물품으로 제공되었던 것이다. 3조에는 영내 매점은 부대장이 관리하는 것으로 나온다. 이를 근거로 위안부와 위안소 역시 부대장이 최고 책임자로서 관리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 규정은 일본 국무회의 결의안을 바탕으로 결재되었다는 것이다. 위안소 설치를 일본 정부가 관여하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위안 시설 운영 필요성 인정과 이용자의 범위를 명확하게 하여 위안부 업자들을 군속대용업자로 만들겠다는 개정 사유를 보아도, 위안부가 일본이 저지른 국가범죄라는 것은 명백하다. 또한 내몽골 주둔군과 외무성 사이의 전보문도 일본 대표 정부들이 위안부에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증거가 된다. 내몽골 주둔군은 외무성에 위안소 관련 조치를 요청했는데, 이러한 사실 자체가 이미 위안부 문제가 국가와 관련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위안소 및 위안부의 실제 운영도 일본군이 깊숙하게 개입되어 있다. 이 일은, 일본군 점령지의 군정(軍政)을 관할하던 일본군 조직인 군정감부(軍政監部), 전투부대에 물자를 제공하는 병참사령부에서 담당했다.


일본군 위안소에 물품으로 제공될 위안부는, 군속 혹은 군속 대우 업자들의 사기 모집에 의해서 모집되었다. 일본의 우익은 위안부 강제 연행 사실은 없었다고 부정하지만, 이는 눈속임 주장에 불과하다. 영내 매점 규칙에 따라 위안소는 국가 업무의 차원에서 운영되었기에 위안부 모집 지역 소재 군이나 경찰, 관헌은 위안부 모집에 협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성 관련 업무로 여성을 모집하면, 그 모집에 응할 사람은 없을 것이기에 다른 형태의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식으로 사기적인 홍보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최종 단계에 이르러서는 군대와 업자에 의한 인신매매·약취·강제동원 등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일본 육군성이 마련한 영내매점 개정규칙에 따라 위안소가 설치되고, 병참부대, 헌병대, 영사관의 허가를 받아 위안부를 모집하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군속 대우 위탁업자가 현청과 내무성을 통하여 위안부 모집을 진행했을 경우라면 내무성과 현청, 위안소 소재 영사관, 군사령부, 해당 부대가 모두 협조하여 진행해야 하는 국가 업무였다.”(p. 233)


이처럼 일본군 위안부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끝날 것이 아니라 국가가 조직하고 운영한 국가범죄임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일본정부는 위안부에 대해 명확한 진상규명과 함께, 피해자들에게 국가적 사과 그리고 합당한 배상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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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8-15 0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광복절, 어제는 일본군 ‘위안부‘기림의 날이었네요. 최근에 할머니들에게 또다시 상처가 된 사건들을 겪다보니 더 송구하고 죄송스러운 날들입니다. 일본은 지금 혐한 하나만으로 버티는듯 보여서 아마도 일본의 국가차원에서의 제대로 된 사과와 배상은 더 멀어진 거 같아요.

김민우 2021-08-15 16:57   좋아요 0 | URL
몇달전 재판부의 판결은 정말 시대를 역행하는 판결이었죠..
 
부동산 계급사회 우리시대의 논리 11
손낙구 지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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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고 있는 책 중에 낸시 피어시라는 사람이 쓴 <완전한 진리>라는 책이 있다. 이제 1부를 다 읽은 참이지만, 정말 좋은 책이라는 확신이 든다. 한국어판 서문 첫문장부터 내 마음에 들었다. “그리스도인은 각 시대마다 성경의 영원한 진리를 참신한 방식으로 전파할 소명을 받은 자들이다.”(p.29) 1부에서 저자는 기독교인의 신앙이 개인의 내면, 교회 내부에서만 머물고 세상에 전혀 효력을 미치지 못하는 괴리를 비판한다. 저자는 복음의 영역이 일요일 예배 시간으로 축소되어서는 안 되고 삶의 전 영역, 사회 전 영역으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성경의 메시지는 종교교회생활이라는 딱지가 붙은 삶의 일부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 창조-타락-구속은 창조된 모든 실재의 본성을 형성하는 거대한 사건들을 묘사하는 것이다. 그 범위는 우주적이다.”(p.187)

 

낸시 피어시의 고언을 응용해서 받아들인다면, 한국에 사는 기독교인은 신앙 서적 못지않게 한국 사회의 현실을 이해할 수 있는 책도 필히 읽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사회를 진단하고 그것을 기독교 신앙의 렌즈를 통해 해석해보는 것이다. 그런데 진단의 작업은 혼자서 하기 쉽지 않으니, 다른 이들의 작업을 빌려올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손낙구의 <부동산 계급사회>는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이 말하듯이 “‘부동산이라는 키워드로 한국 사회를 분석한 것이자, 대한민국 부동산 문제에 대한 하나의 종합 보고서이다. 저자는 국회의원 보좌관이라는 이점을 활용하여 부동산 관련 자료를 최대한 섭렵하여 이 책을 저술하였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제1부동산, 무엇이 왜 문제인가’, 6대안을 찾아서’, 그리고 책을 마무리하며에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꼼꼼히 읽어야 할 부분은 한국의 기형적 부동산 구조의 양상과 원인을 분석한 제1장이다.

 

저자가 말하는 한국 부동산의 문제는 크게, 1) 너무 빠른 가격 상승률, 2) 그에 따른 지나치게 높은 가격, 3) 일부 부유층의 부동산 독점 등이다. 부동산의 가격은 오르지만, 부의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부동산을 통한 불로소득은 소수만이 가져간다. 그리하여 몇십 채, 많게는 1,000채 이상도 소유한 부동산 재벌이 있는 반면에, 반대편에서는 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허름한 집에서, 심지어는 그런 집도 없이 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부는 한 세대에서 끝나지 않고 자식 세대로 대물림된다. 부동산은 한국 사회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생산해낸다. 결국 부동산 재산 정도, 부의 편중도에 따라 삶의 질, 학력, 생활세계, 정치의식까지 영향을 미치는 부동산 계급사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떻게든 돈을 벌어 부동산에 투자한다. 다르게 말해, 부동산은 한국 불평등 문제의 핵심이며, 한국인의 욕망과 절망이 담겨 있다.

 

여기에 부동산 재벌, 정치인, 보수언론, 일부 학자까지 가세하여 투기를 조장하고 부동산 가격을 높이는 장치와 시스템을 유지시킨다. 그러나 저자가 봤을 때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헌법과 법률에서 확립된 사유재산권 절대주의이다. 이로 인해 토지와 주택은 상품화되고, 소수가 땅을 독차지하여 재산증식을 위한 투기 수단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동산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사유재산 절대주의라고 저자는 분석했기 때문에, 저자가 내놓는 해결책은 급진적인 토지 공유화이다. 토지에 대한 관념 자체를 바꾸자는 것이다. 물론 저자는 다른 대안들도 주장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해결책은 토지공개념에 기초한 토지 공유화이다.

 

사실 레위기의 희년을 떠올리면, 저자의 주장은 기독교에 그렇게 낯선 이야기는 아니다. ‘희년의 정신은 성경의 가르침과 하나님의 공의에 입각하여 토지정의를 세우려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가난하고 억압된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려는 것이다. ‘사유재산을 신처럼 떠받드는 사회에 사는 기독교인으로서 희년의 원리와 정신을 사유하고, 이를 어떻게 회복하고 구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은 의미 있는 활동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처음에 인용했던 낸시 피어시의 말을 다시 봐보자. “그리스도인은 각 시대마다 성경의 영원한 진리를 참신한 방식으로 전파할 소명을 받은 자들이다.”

(희년 사상과 한국의 상황을 연결하는 시도는, 김회권, 김근주 외, <희년>, 홍성사 참조)

 

2008년에 출간되어 시간이 좀 지난 책이니, 이 책을 좀더 의미 있게 읽기 위해서 독자가 현재의 데이터를 찾아서 13년의 시차를 메워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기는 하다. 그리고 외국 사례 분석도 단순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때까지의 다양한 통계 자료가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어 자료용으로 써도 좋고, 저자의 문제의식이 아직 유효하여 읽어볼 가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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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2 1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김민우 2021-08-12 22:54   좋아요 0 | URL
아 ㅋㅋㅋ 얼마 전에 구매해서 읽었습니다 좋은 책이었습니다

서니데이 2021-09-10 18: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김민우 2021-09-10 19:0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초딩 2021-09-11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관왕 축하드립니다~
ㅎㅎㅎ 좋은날 되세요~
 

공자는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알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그렇게 사는 데 노력을 쏟았다. 몇 해만 더 살 수 있었으면 하는 뜻을이렇게 밝히기도 했다. "내 나이 오십이 되도록 주역을 공부한다면 큰 허물이 없게 될 수 있으리라." 학문, 자기완성을 향한 욕구, 그리고 지금살고 있는 이 삶이 자신의 소망을 추구할 유일한 기회라는 인식에 그의 존재의 특성이 있었음을 이 말에서 알아볼 수 있다.
비슷한 소망과 인식을 가진 사람이 그 시대에도 더 있었을지 모른다.그러나 공자처럼 소망이 강렬한 사람도 따로 없었고, 공자처럼 굳건한 마음으로 자신에게 전해진 역사, 시, 예법, 음악 등 모든 지식을 알뜰하게 갈고닦아, 인간의 본성과 운명에서 본질적이고 항구적인 요소가 무엇인지이해함으로써 큰 허물 없이 살고자 애쓴 사람도 따로 없었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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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딜, 세 편의 드라마 - 미국의 뉴딜.무솔리니의 파시즘.독일의 나치즘
볼프강 쉬벨부시 지음, 차문석 옮김 / 지식의풍경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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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국의 뉴딜은 미국만의 특수한 정책이 아니라 1930년대 보편적인 세계적 현상이었으며, 미국의 뉴딜과 독일의 나치즘, 이탈리아의 파시즘 정부는 공통의 기반에서 출발했다고 주장한다. 그 공통의 기반이란 바로 대공황의 충격이다.

 

대공황은 경제적 공황임과 동시에 정신적 공황이기도 하였다. 또한, 대공황은 1930년대의 시대 정신을 결정한 계기였다. “영원한 풍요와 복지 상태에서 밑바닥 없는 허공 속으로 추락하는 경험을 겪게 된 사람들은, 이 위기를 만든 것으로 간주된 자본주의나 자유민주주의의 생명이 다했다고 느꼈으며, 유일하게 보호와 안전의 토대를 마련해줄 수 있는 피난처로 국가가 떠오르게 되었다. “대중들이 이끌렸던 것은 자신들이 무시받지 않고 동등한 존재로서 취급받는다는 느낌 때문이었으며, 자신들이 더 이상 혼자 힘으로 살아가지 않아도 되며 국가라는 새로운 계급 없는 공동체가 제공하는 보호, 안전, 연대를 향유할 수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뉴딜, 파시즘, 나치즘의 유사성은 이러한 사회 구성원의 환상으로부터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은 새로운 국가 질서를 수립하고자 했는데, 그 질서란 바로 탈자유주의적 질서, 다르게 말해 평등주의적 기획이었다.

 

대중의 평등주의적 열망의 정책적 실천은 국가의 총체적 개입과 사회 통제였다. 자유주의는 불신받았다. 자유주의에 대한 반감과 사회 통제에 대한 선호를 공유하는 이러한 공통점은 1930년대 미국의 한 혁신주의 관료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자유방임주의는 죽었다. 사회 통제 만세! 사회 통제는 우리에게 전쟁이라는 엄격한 요구에 응할 수 있도록 해줄 뿐 아니라, 도래할 평화와 형제애를 위한 기초가 된다.” 다시 말해서 대공황은 결과적으로 권위주의적 지도자와 국가의 출현을 야기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자는, 2장부터 5장에서 각 장의 표제처럼 미국과 독일의(그리고 이탈리아의) ‘리더십’, ‘선전’(정부의 언론통제), ‘지역주의’, ‘공공사업등을 분석하여 그 내적 논리의 유사성을 지적한다. 이를 요약한다면, 카리스마적 지도자, 대중의 열광주의적 지지, 대중의 국민화이다. 이 중에서 우리가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바로 제5장 공공사업이다. 이 장에서 본격적으로 우리가 뉴딜 하면 가장 익숙한 TVA 사업과 이탈리아의 아그로 폰티노 사업·독일의 아우토반을 비교·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일과 이탈리아의 사례까지 모두 검토하는 것이 마땅하나, 이 글에서는 뉴딜만을 검토하겠다.

 

이 세 사업의 공통점은 바로 기념비성의 제공이다. 저자는 1930년대 공공 건축에서의 신고전주의를 주목하는데, 이는 신고전주의와 기념비적 건축이 국가의 권력과 권위를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보여주는 건축 양식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기념비적 건축은 국가의 총체적 개입을 상징하는 건축물이었다. 신고전주의가 절정에 달했던 1930년대는 또한 국가 개입의 절정이기도 했다. 기념비성의 관점에서의 뉴딜(뿐만 아니라 독일의 뉴딜적 정책)이란 경제 부흥책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심리학적 충격 요법이었다. 당시 미국은 전력이 완전히 공급되는 곳도 적었으며, 테네시 인근은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하나였다. 그런 테네시 계곡에 국가의 주도로 세워진 웅장한 규모의 댐은 고역과 착취로부터의 구원을 약속하는 상징이었다. TVA에 의해 생산되는 전기는 최초로 대중이 주권적인 생산자이자 소비자로서 창출한 것이다, 전기는 난폭한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산업화가 저지른 거대한 역사적 오류로부터 벗어나는 수단이다, 그리고 최신 기술로 자연을 정복하여 이런 건축물을 지은 강력한 국가와 지도자를 통해 대중의 열망은 실현될 것이다. 기념비성이 제공하는 상징적 구원. 이것이 국가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대중의 심리적 기제였다. 그렇다면 미국과 독일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대공황의 충격에서 회복했던 것은 이전의 자유주의적 질서를 빨리 포기한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2차 세계대전은 파시즘/국가사회주의와 뉴딜이라는 자유주의적 변이국가 시스템의 승리를 확정지었고, 이로써 양자의 동근성은 은폐되고 낯선 것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1930년대를 지나면서 유럽과 미국 모두에서 거대한 역사적 전환, 곧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서 국가자본주의로의 전환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과 제안들도 끊임없이 논의되고 있거니와, 그러한 논의들에서 알 수 있듯이 1930년대에 제기된 문제들이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는 면에서, 우리는 어쩌면 후지이 다케시가 말한 것처럼 30년대”(<파시즘과 제3세계주의 사이에서>)에 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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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8-06 17: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파시즘이나 뉴딜이나 공황이 초래한 것이다보니 그 속내는 비슷할거 같군요. 그런데 미국도 진짜 공황을 극복하고 완전고용이 실현된건 결국 2차대전 참전이 계기였다고 해요. 말씀하신대로 뉴딜은 선언적 홍보적 성격이 더 강했던거죠. 자본주의의 내부 폭발을 정부의 힘으로 잡는것은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김민우 2021-08-06 21:01   좋아요 0 | URL
2차 대전 참전이 중요한 계기였군요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