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설은 과거와 미래 사이의, 혹은 인류학적으로 말해서 경험과 기대 사이의 차이규정 속에서 역사적 시간‘ 이라는 것을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이가 듦에 따라 경험과 기대의 관계도 변한다는 점, 하나가 커지면 다른 하나는 작아진다는 점, 하나가 다른 하나를 통해 보상된다는 점, 내면적이거나 외면적인 생물학 외적 지평이 있으며 이 지평을 통해 개인의 삶이라는 유한한 시간이상대화된다는 점은 생물학적으로 규정된 인간의 성질이다. 그러나역사적 세대들의 연쇄 속에서도 분명히 과거와 미래의 관계는 변화해왔다.
이 글들에서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어떠한 시간이 새로운 시대로, 즉 ‘근대(Neuzeit)‘로 경험될수록, 미래의 도전은 점점 커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현재와 지금은 어느덧 지나가버린 그 당시의 미래가 고찰대상이 된다. 어떤 시대의 사람들이 주관적으로경험을 소화해내는 가운데 미래의 비중이 커진다면, 그 세계는 틀림없이 새로운 경험을 모으고 점점 빨라지는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인간에게 점점 짧은 시간간격을 강요하는 기술적·산업적으로 고도로 형식화된 세계이다. - P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떤 사상가를 정치사상가로 부르기 위해서는, 현실 사태에 대한 그의 원인 규명과 그에 대한 해결 방안이 있어야 한다. 묵자는 전국시대의 혼란상을 각자가 자신만을 사랑하고 서로에 대해 강렬한 배타성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 두 가지 문제의식은 묵자의 중심사상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므로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사람들이 서로를 배척하고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는 것은 ‘11하기 때문이다. , “모두 제 의만을 옳다고 하고 다른 사람의 의를 잘못이라고 한다.”(皆是其義, 而非人之義, <묵자> <상동하>) 공동체 내에 서로 다른 가치관과 이해관계를 지닌 개인들이 조화되지 못하고 자신의 옳음만을 주장할 경우, 이들은 서로 배타적이게 되고 사회는 파탄에 이르게 된다. 묵자는 이러한 11의와 그로 인한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의의 통일을 주장한다. 이때 의를 통일하는 주체는 국가와 정부여야 한다. “11의를 통일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형정을 수립하고 정장을 세울 필요가 있다. 정장의 우두머리가 바로 천자다.” 여기서 형정이란 오늘날의 말로 국가기구이고, 정장은 관료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국가-군주-관료집단이 하나의 의를 수립함으로써 다른 의를 제거하고 통일하는 것이 혼란한 국면을 위로부터 변화시키는 길이라고 묵자는 본 것이다. 이러한 묵자의 위로부터의 개혁을 상동(尙同)’이라고 한다.

 

형법과 법령을 수단으로 의는 성취된다. 그리고 이 법률은 군주에 의해 제정된다. “의는 어리석고 천한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반드시 귀하고 지혜로운 사람에게서 나와야 한다.”(<天志中> 천자야말로 귀하고 지혜로운 존재이기에 법률 제정에 가장 적합하다. 그러므로 아래 계급은 천자의 의를 절대적으로 따라야 한다. 군주와 관료조직에 의해 법률을 확립해야 한다는 데에서 묵자의 상동의 핵심은 통치질서의 확립임을 알 수 있다. 통일된 의는 어떻게 보급할 것인가? “부귀로 앞에서 인도하고, 분명한 형벌로 뒤를 이끈다.”(<상동하>)

 

그런데 묵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의의 통일이라는 위로부터의 통합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런 상황이 조성된 원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가 서로를 사랑하지 않기때문이다. 그 뿌리는 자애에 있다.” 자애의 실제 내용은 자리(自利)’이다. 자리의 문제점은 그것이 사람을 차별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묵자는 자애’ ‘자리가 서로 통한다고 생각했다. ‘자애’ ‘자리는 사람을 대하는 데, 처세하는 데, 일을 하는 데 있어 반드시 교별즉 서로 차별하게 만든다.” 나의 이익과 나의 집단의 이익만을 우선시하면서 다른 집단을 배척하고 차별한다. 그리고 이것이 필연적으로 묵자가 살던 시대와 같은 혼란함을 일으켰다. 이런 자애와 자리를 무엇으로 대체할 것인가? 그것이 겸상애와 교상리이다. 겸상애는 다른 사람의 나라 보기를 제 나라 보듯이 하고, 다른 사람의 집안 보기를 제 집안 보듯이 하고, 다른 사람 몸보기를 제 몸 보듯이 하는것이다. 겸상애는 자와 타 사이의 차이와 차별을 폐기한다. 이것이 중요한다. ‘은 평등의 원리를 표명한다. 물론 이때의 평등은 정치적·경제적 평등이 아니라는 점을 유념해야 하지만, 겸은 ’ ‘자리의 원리와 대조된다. 교상리는 겸상애의 현실적 반영이다. 말 그대로, 서로가 서로에게 이익이 생기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교상리의 중요한 정신은 상하의 조화이다. 위 계급과 아래 계급이 조화를 이룰 때 이익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평등을 지향하는 겸애와 상동은 모순된다. 그렇지만 묵자는 이 양자를 통일해낸다. “겸애는 평등을 지향하고, 상등은 전제를 지향한다. 보기에는 양자가 완전히 상반된다. 그러나 사실상 묵자는 이 둘을 기묘하게 통일하여 나타낸다. 그는 상동의 방법으로 겸애를 끌어내는 데, 이때 겸애는 행정 권력의 종속물로 바뀐다. 겸애는 상동에 의지해 실현되는데, 이때 상동은 사회조작의 주체가 되므로 전제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백성으로 하여금 상동하게 함에 있어서 백성을 사랑하여 힘쓰지 않게 하면 어느 곳에서도 부릴 수 없다. 그래서 <상동하>에서는 반드시 적극적으로 사랑하면서 그들을 부리고, 지극히 믿게 하면서 지키도록 한다고 쓰여 있다. 국가가 겸애와 교상리를 의로 삼아 적극적으로 이에 개입하여 보급하면, 서로 대조되는 겸애와 상동이 통일된다. 겸애는 백성을 부리는 수단이 되고, 엄격한 형벌을 통해 그것을 지키게 한다. 묵자의 정치적 실천 프로그램은 이렇듯 강제성을 띤다.

 

묵자의 정치사상에서 상동과 겸애 외에 주목할 만한 것으로는 상현설, 절용설, 비공설 등이 있다.

- 상현설

능력 있는 인재의 고용은 다른 제자백가들도 주장한 것이지만, 묵자는 이를 가장 급진적으로 주장했다. 그는 부귀친척을 용인하는 귀족정치를 폐기하고 능력주의적 관료정치를 세우고자 하였다. 이는 귀족들이 정권을 장악하던 현실에 대한 비판이다.

 

- 절용설

절용(節用)은 묵자 전체 사상 체계의 기본 명제 중 하나이다. 이는 단순히 물건을 아껴 쓰는 것을 넘어 소비와 생산 등 경제의 기본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시도이다. 묵자의 절()1) 일정한 수준의 소비가 있어서 생활의 기본 수요를 만족시키는 것, 그리고 2) 소비를 재생산에 유리하게 만드는 것 등의 의미이다.

 

- 비공설

()은 묵자가 말하는 의와 이에 합치하지 않는 경제·정치·도덕 여러 방면의 모든 행동을 지칭한다. ‘비공(非攻)’이란 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묵자는 공을 기준으로 전쟁을 설명한다. 묵자는 모든 전쟁이 아니라 의와 이에 대치되는 전쟁만을 반대한다. 그는 당시의 겸병 전쟁을, 사유재산권의 침해, 백성의 손해, 막대한 군비 부담 등의 이유로 반대하지만, 이익이 있고 의에 합치하는 ()’의 전쟁은 긍정한다. 그런데 과연 정당한 전쟁이란 있을까? 비공설을 읽고 생각해보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본주의의 이상
에인 랜드 지음 / 자유기업센터(CFE) / 1998년 5월
평점 :
절판


작년 이맘때쯤 <정념과 이해관계>를 읽고 서평을 썼다. 그 책은 초기 자본주의 옹호론의 역사를 추적하고 있는데, 현대의 자본주의 옹호론을 엿보고자 에인 랜드의 <자본주의의 이상>을 읽었다. 하지만 이 독서는 실패한 것 같다.

일단 저자 소개 먼저.
에인 랜드는 20세기 후반 영미의 우파와 자유지상주의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소설가, 사상가이다. 그녀의 영향은 정치적으로는 대처와 트럼프 같은 이들을 통해서 드러나며, 경제학 사상쪽으로도 밀턴 프리드먼 같은 자유시장 신봉자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녀의 대표작 <파운틴헤드>와 <아틀라스>는 미국에서는 지금도 많이 읽히는 소설이며, 과장 보태서 말하면 그녀에게서 영향을 받은 우파 지식인 정치인들이 오늘날의 개인주의적 제도를 형성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녀는 소설가로서 경력을 시작했지만, <아틀라스> 이후로는 소설 집필보다는 대중을 상대로 하여 자신의 객관주의 사상을 전파하는 것에 몰두했다. <자본주의의 이상>은 이때 강연 원고들과 그녀가 정기간행물에 기고한 글들을 모은 책이다.

에인 랜드의 사상은 자본주의에 대한 옹호, 자유방임주의와 능력주의로 정리할 수 있다. 이만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니, 체계적이고 설득력 있는 자본주의 옹호론을 썼을 거라 생각할 법하지만, 실제로는 학문적인 부분은 거의 보이지 않고 지루한 웅변조로 자본주의와 자유방임을 주장하는 선전물이다. 딱 소설가가 몇 가지 학문 개념을 대충 익혀서 썼을 법한, 딱 그만큼에서 멈춘 문장과 사유의 깊이.

에인 랜드는 인간의 이기심을 긍정하고, 개인의 자유로운 생산활동을 방해하는 어떠한 정책이나 행위를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이런 맥락에서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나 부의 재분배를 책 전반에 걸쳐서 비판한다. 그러나 그녀는 ‘공유지의 비극‘은 말하지 않는다. 에인 랜드는 능력주의를 옹호하나, 능력주의 엘리트의 우연성, 능력주의적 세습과 그것이 불러올 사회적 악영향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에인 랜드는 개인과 사회 사이의 아무런 연관도 없기에 공공선 같은 실체가 불분명한 목적을 위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희생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정치사상의 무지에서 나온 터무니없는 헛소리다. 에인 랜드는 자신을 객관주의자로 말하고 객관주의의 틀을 통해서 자본주의와 자유방임을 정당화한다. 그녀가 말하는 객관주의란 내가 봤을 때 대공황 이전 자유주의 경제사상과 똑같은 독창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지만, 그녀는 역사적으로 실패한 이 사상과 차별성을 주고 싶었는지 객관주의라는 조잡한 용어까지 갖다 붙인다.

진지하게 다룰 책은 아니나 나는 역설적으로 에인 랜드의 다른 책에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에인 랜드의 사상 때문이 어니라 그녀의 영향력 때문이다. 에인 랜드의 사상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연구소가 있을 정도로 그녀가 남긴 유산은 적지 않으며 그 중요성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소설들은 미국에서는 고전적 지위를 누린다. 고전이 당대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책이라고 한다면, 에인 랜드의 소설들도 1960년대 이후 미국의 시대상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나의 고민이 시작된다. 텍스트를 둘러싼 미국의 시대상(콘텍스트)을 읽기 위해 <자본주의의 이상>에서 일부 발췌문만 보아도 유치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소설들을, 심지어 드럽게 긴 그 소설들(<아틀라스> 번역본은 3권이나 한다)을 읽어야 하나?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다이제스터 2022-06-26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에릭 랜드 사상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연구소가 미국 랜드 연구소는 설마 아니겠죠? ^^

Redman 2022-06-26 19:27   좋아요 1 | URL
ㅋㅋ 아쉽게도 아인 랜드 연구소 였습니다
 

https://blog.aladin.co.kr/739070192/12368342

작년에 이런 글을 썼는데, 그동안 더 알게 된 괜찮은 책들을 추가해봅니다.


1. 고대 그리스 비극

작년 10월까지는 아직 그리스 비극을 읽지 않았는데, 훈련소에 있으면서 본격적으로 읽어보았습니다. 거기서는 훈련 제외 남는 게 시간이니...천병희 선생이 번역한 선집 <그리스 비극 걸작선>으로 읽었는데, 그리스 비극 작가 3인(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대표작 두 작품씩을 선별하여 엮은 것입니다. 천병희 선생의 번역으로 전집이 나와있지만, 선집으로 입문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천병희, <그리스 비극의 이해>는 고대 그리스 비극을 읽을 때 알아두면 좋을 기본적 사항들을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만, 책소개와 달리 본격적인 해설은 하지 못했습니다. 천병희 선생은 번역에는 탁월하지만, 해설은 미진한 부분이 있습니다. 최혜영의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는 비극의 정치사회적 맥락과 종교사회적 맥락을 짚어주어 텍스트가 생산된 맥락 속에서 텍스트를 읽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 천병희 선생의 책을 보완하는 본격적인 해설서라 할 수 있습니다.



컨티뉴엄 리더스 가이드 시리즈에서 최근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입문>을 출간했는데, 이 책은 아직 안 읽어봤지만 이 시리즈는 믿고 볼만하니 <오이디푸스 왕>을 읽을 때 같이 읽어봐야겠습니다.


참고로, 김기영 선생이 을유문화사에서 <오레스테이아 3부작> <오이디푸스 왕 외> <메데이아> 등을 새로 번역하여 출간했으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로버트 페이건이라는 학자가 영역한 penguin classic 판 소포클레스의 <The Three Theban Plays>는 번역도 좋지만, 앞에 해설도 충실하여 같이 읽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리스 비극을 읽기의 끝판왕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라 할 수 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분석틀과 개념으로 그리스 비극을 읽어도 좋은 독서가 될 것입니다. 니체는 고전문헌학을 연구한 학자였다. 니체의 중요한 문제의식이 집약된 <비극의 탄생>은 쉽게 이해할 텍스트도 아니며 한 차원 깊은 비극 공부를 위해 읽어볼 만하므로, 순서상 뒤로...




2.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시학 얘기가 나왔으니,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최근 번역출간된 뒤퐁록과 랄로의 주해서를 같이 읽으면 좋겠다. 












3. 장자

중국 도가철학의 중요한 사상가인 장자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장자>


국내에 여러 번역본이 있기는 하지만, 전 일단 길 출판사에서 나온 번역본으로 읽습니다. 


같이 읽어볼 책은 후쿠나가 미쓰지의 책인데, 저자는 세계적으로도 권위 있는 장자 연구자입니다. 그가 지은 장자 입문서인 <장자 - 고대 중국의 실존주의>는 저자의 깔끔하고 깊이 있는 장자 이해와 풍부한 원전 인용으로, 방대한 장자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이 책 후반부에 실려 있는 <장자 내편> 해제를 통해서 노자와 장자와의 차이점까지 짚을 수 있으니, 꼭 읽어볼 책입니다. 


후쿠나가 미츠지의 <장자 내편>도 따로 번역되어 있으니 참조.


한국인으로서는 가장 좋은 것은 한국인이 쓴 해설서이므로 전호근 선생의 <장자 강의>도 같이 읽어봐야겠습니다.












4. 마키아벨리 <군주론>

국내에 수많은 마키아벨리 <군주론> 번역서 중 추천하는 것은 이 세 가지입니다. 곽차섭 역, 김경희 외 역, 박상섭 역. 






군주론뿐만 아니라 마키아벨리 자체에 대해서는 두거물 정치철학자들의 저서를 소개하고자합니다.


하나는 레오 스트라우스의 <마키아벨리>이고, 다른 하나는 그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은 하비 맨스필드의 <마키아벨리의 덕목>입니다. 스트라우스의 책에 대해서는 맨스필드의 책에서도 거론하니 이 책을 먼저 읽을 것을 권합니다. 


맨스필드의 책은 이런 순서로 읽으면 좋을 것입니다. 첫째, 서문을 읽는다. 둘째, 2부의 군주론 해제를 반복해서 읽는다. 마지막으로 셋째, 1부 '마키아벨리의 덕목'을 읽고서 통독을 한다. 녹록치 않은 글이지만, 이 순서로 읽으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실 1부와 2부 군주론 해제만 집중적으로 읽어도 무방합니다. 


마키아벨리가 살던 당대의 역사상을 알고자 한다면, 스티븐 그린블렛의 <1417년, 근대의 탄생>도 같이 추천합니다.













5. 논어


논어는 저번 글에서도 다루기는 했는데, 그때는 번역본 위주로 소개했다면, 이번에는 해설서 두 권을 소개하려 합니다.


하나는 중국인 연구자 양자오가 쓴 <논어를 읽다> 그리고 일본인 사상사 연구자 오구라 기조의 <새로 읽는 논어> 둘 다 역사적 관점에서, 사회적 맥락에서 논어의 내용을 해석한 책으로 한 번쯤 읽어볼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상사 연구에서는 잘 지적하지 않는 공자가 살던 춘추시대의 사회상을 자세하게 알려면 리펑의 <중국고대사>가 좋은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6. 카를 마르크스

권위 있는 사상사 연구자 이사야 벌린의 <칼 마르크스>는 사상사적 관점에서 마르크스의 생애를 서술한 책으로, 아직도 최고의 마르크스 입문서로 꼽히는 책입니다. 이 책은 마르크스가 영향을 받았던 당대 유럽의 사상사적 흐름들을 조명하는 한편, 그것을 마르크스가 어떻게 수용하고 자신의 저서에 녹여냈는지까지 다루어, 마르크스의 생애를 알고자 하는 이들 그리고 마르크스의 저서를 읽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최적의 입문서입니다. 구하기는 어렵지만, 레셰크 코와코프스키가 쓴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흐름> 제1권도, 마르크스의 사상을 청년기부터 주요 저작들에 대한 해설을 통해 살펴보므로 큰 도움이 됩니다.

토니 주트의 <재평가>를 읽으면서 알게 된 책인데, George Lichtheim의 <Marxism>이라는 책이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를 깊이 있게 다룬, 여전히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합니다. 












마르크스의 방대한 사상 체계로 입문하려면 역시 <공산당 선언>이 좋을 것이며, 그의 사상의 절정은 <자본론>에서 정리되어 있습니다. <자본>을 완역한 강신준 박사가, <자본> 관련으로 의미있는 연구를 많이 남긴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까지 번역하였군요. 그리고 본인이 직접 <자본> 해설서를 쓰기도 하였습니다. 이 책은 아무것도 몰랐던 대학교 1학년 때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다가 어려워서 반납한 기억이 나네요 ㅋㅋ 지금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9o8p7h6i5s4t 2022-07-27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대진 선생님의 <비극의 비밀> (2013)을 읽어봤는데, 비극 입문 및 해설로 아주 좋았습니다.

Redman 2022-07-27 16:11   좋아요 0 | URL
추천 감사합니다!!
 

법가는 사마담의 <논육가요지>에서 처음으로 하나의 학파로 분류되었다. 그런데 사마담의 개념화 이전에도 '법가'로 통칭할 만한 통일된 사상적 흐름이 존재했었다. 이들은 법의 작용을 특별히 강조하여 법으로써 나라를 다스리고 더 나아가 인간의 행위 규범도 법을 통해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입법과 변법을 통한 사회문제 해결이라는 법가적 실천은 이미 춘추 시대 관중과 자산이 보여주었지만, 그에 상응하는 이론을 제시한 인물은 이회(기원전 455~기원전 395)이다.

한비(기원전 280?~기원전 233)는 법가 사상의 집대성자다. 그의 사상사적 위치는 다음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순경은 유가를 기치로 삼아 선진 제자백가의 사상을 집대성했으며, 한비는 법가를 기치로 삼아 선진 제자백가의 사상을 집대성했다." 우리가 공자와 맹자에게 쏟는 관심의 반만이라도 순자와 한비자에게 쏟으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한비는 고국 한(韓)나라의 멸망을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는 취약한 국가가 부국강병으로 나아가는 길을 법치의 실행에서 찾았다. 한비에게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정법(定法), 즉 법률로 현존하는 봉건 질서를 고정"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군주 전제의 고취"이다. 강국의 관건은 법이다. 그러나 법치는 군주의 권력을 제약하기보다 군주전제를 고취했다. 한비에 따르면 "법이란 일 처리에 가장 적합한 것이다."(法者, 事最適者也, <問辯>) 법의 목적은 일을 다스리기 위함인데, 그 핵심은 公을 존중하고 私를 폐기하는 것이다. 여기서 공은 군주이며, 사는 군주와 대치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 '군주와 대치하는 것'은 내부적으로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를 의미하는데, 여기에는 백성뿐만 아니라 신하들까지도 포함된다. 인치를 부정적으로 인식한 그는 통치에서 "법을 절대화한 동시에 군주를 절대화하여 군주의 절대적 권위를 수립한 것이다."

한비가 바라보는 세계와 인간은 참으로 부박하다. 인간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며, 이것은 개조할 필요가 없다. 이 세계는 쌍방 대립 모순된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순된 쌍방은 절대로 양립할 수 없다.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한쪽이 상대방을 압도하든가 아니면 압도당하든가, 둘 중 하나이다. 중립이나 절충따위는 없다. 정치에서의 모순 관계는 군주와 군주에 대치되는 세력의 대립이다. 법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군주를 존중하는 것이다. 군주의 이익은 다른 사람의 이익보다 중요하며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군주의 이익과 상충되는 다른 이익은 배제해야 하며, 이럴 때 가장 유효한 원칙이자 수단은 '힘', 즉 실력이다. 정치란 신민의 힘을 모두 동원하여 군주에게 집중시키는 데 있다. 한비자가 정치사상의 세 영역(권력론, 정의론, 국제관계론) 중에서 권력투쟁론을 중점적으로 논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처럼 한비는 극단적으로 군주 절대주의를 주장했다. 그러면 어떤 이가 군주이며, 군주는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 유가는 군주에게 수양을 통한 인격의 도야를 요구했다. 그들은 요순과 같은 이상적 성인을 모델로 삼아 현실의 군주에게 그 모델을 따르도록 요구했다. 통치방식에서 유가는 인치를 주장했다. 법을 운용하는 것도 인간이기에 현명한 군주와 현명한 재상이 있어야 법이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한비자는 이들을 비웃는다. "군주 대다수는 또한 그저 중간 정도의 자질을 갖추었을 뿐이다." 인치의 무엇보다 큰 문제점은, 통치자의 질의 안정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염없이 요순과 같은 성인이나 현명한 인물이 나타나기를 기다릴 수는 없다. 그렇다고 급박한 현실에서 군주를 수양시켜 현인으로 만드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법치는 인치의 약점을 상쇄한다. 법치가 확립되면, "중간 사람도...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 법에 의한 통치가 우선시된다면, 폭군이나 범인이 다스리더라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며, 누가 집권하더라도 폭정으로 빠지는 가능성은 줄일 수 있다. 류쩌화는 이 사상이 황당하다라고 평하지만, 나름의 개혁적, 정치사상적 의의는 가진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더 공부해둘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가 인치를 반대하는 이유는 또 하나 더 있다. 현인을 기용하는 것은 군주의 권위에 위협이 될 수 있으므로 군주는 현인 기용에 절대 반대해야 한다. 이처럼 그의 법치 사상은 "군주 개인 독재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므로 개혁의 분위기는 희석되어 버린다." 한비자의 정치사상은 권력투쟁론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경제문제에 대해 논급한 것은 적지만, 언급한 것은 상당히 특색이 있다.

한비자를 공부할 때 눈여겨볼 것이 사상통제('백가학설의 금지')이다. 한비는 "모든 말은 법의 궤도 아래", "관리들을 모든 일의 스승으로"라는 사상통제의 원칙을 제기했다. 이는 전 백성의 사상을 법과 교육으로 결정하려 한 시도이다. 그는 법령 준수와 교육을 하나로 결합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 "이리위사(以吏爲師, 관리들을 모든 일의 스승으로)"를 제기했다. 한비자에게 있어서 "교육의 기능은 오직 하나뿐이다. 바로 정치적 순화 작용이다." 유가는 교육의 독립성을 중시하나, 한비자는 교육을 정치의 부속품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는 묵가나 유가 등 다른 제자백가 학파들을 비판하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언변을 일삼을 뿐 검증이 없으며, 진부하여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들의 사상은 어리석고 증명할 수 없는 인의 따위를 증거로 삼기에, 그들의 사상을 따르는 것은 망국의 길이다. 교육도, 통치도 마땅히 법으로만 해야 한다.

결어에서 류쩌화는 이렇게 말한다. "한비는 군주와 신하, 군주와 인민 관계의 장막을 가장 진솔하게 벗겨버렸다...그가 성인의 팻말을 건지지 못한 주요 원인은 아마도 그가 너무 사실에 충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봉건시대에는 허위가 성실보다 더욱 유용하며 더욱더 군주를 기쁘게 하였다." 한비자의 사상은 사실을 충실하게 말해서 군주들에게 채택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