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가오 옌 그림, 김난주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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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김난주 옮김, 고양이를 버리다, 비채, 2020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쓴 매우 짧은 소책자이다. 하루키가 어린 시절 매일 봐오고 가장 기억에 많이 남던 아버지의 모습은, 아침마다 죽은 전우와 적이었던 중국인을 위해 경을 읊던 모습이다. 그 매일매일의 업무”(그것이 하루키의 아버지의 표현이다)를 할 때, 아버지의 모습은 너무도 엄숙하였고 강하게 몰두하여 말을 걸기조차 쉽지 않았다고 한다. 하루키의 아버지, 무라카미 지아키는 1917년생으로,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을 군인으로서 겪었던 인물이었다.

 

1938년 그는 징집 통보를 받고 제16사단 치중병 제16연대에 배치되었고 중국에서 여러 전투에 참여하였다. 1939, 1년 만에 전역한다. 하지만, 전역한 지 1달 만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결국 그는 1941년에 다시 소집 명령을 받고는 처음에는 보병 제20연대에, 직후 제53사단 치중병 제53연대에 편입된다. 이 제53사단은 전쟁 말기에 임팔 작전에 참가한 부대였으며, 이라와디 회전에서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지아키가 속했던 제20연대도, 제16사단도 부대원 대부분이 전투 중 전사하고 만다. 처참한 전황 속에서 지아키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어떤 모종의 이유로 2달 만에 소집 해제되었기 때문이었다. 19456월 세 번째 소집 통보를 받아 국내 근무 부대로 배치되었지만, 2달 뒤 전쟁이 끝났다. 그는 목숨을 건졌다라고 회상했다고 한다.

 

지아키는 약 12개월간 전쟁을 겪었으며, 이는 원래 징집병의 의무 복무 기간인 2년보다도 짧은 기간이다. 그러나 그 시간이 지아키의 인생에 남긴 자국은 평생토록 남았다. 그는 다행스럽게도 살아남았지만, 그가 소속되었던 부대의 부대원들은 대부분이 전투 중에 전사하였다. “혼자만 목숨을 건지고 과거의 동료 병사들이 그렇게나 먼 남방의 전쟁터에서 허망하게 목숨을 잃어간 것”. 이 사실이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마음에 새겨진 또 하나의 전쟁 경험은 중국인 병사 포로의 처형이었다. “중국 병사는 자신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소란을 피우지도 않고, 그저 눈을 감고 조용히 거기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참수되었다.하루키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말이다. 하루키의 기억이 애매하게 남은 탓에 정확히 그것이 무슨 상황이었고, 지아키가 무슨 감정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것이 그가 유일하게 아들에게 속내를 털어놓은 경험이었다는 데에서 추측건대, “그의 마음에 크나큰 응어리였음은 사실일 것이다. 죽은 전우들, 비록 적이지만 전사한 중국의 병사들. 그는 이들을 위해 매일 아침마다 그토록 엄숙하게, 마음을 다하여 경을 읊었다. 평생동안 지아키의 마음속에서 그들은 떠난 적이 없던 것이다

 

한국은 바로 67년 전까지 전쟁을 치룬 국가이고, 오늘날까지도 한국전쟁을 겪으신 분들이 생존해 계신다. 한국전쟁 자체는 휴전 상태이지만, 전쟁이 남긴 잔상은 아직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하루키가 전달하고자 한 전쟁이 한 인간의 삶과 정신을 얼마나 크고 깊게 바꿔놓을 수 있는가라는 메시지는, 한국에도 유효한 메시지로 읽을 수 있겠다. 나에게는 할아버지/할머니 세대, 나의 아버지/어머니 세대에게는 자신들의 아버지와 어머니 세대의 이야기가 이 책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그는 책의 말미에서 '나'라는 존재는, 아주 우연하게 생겨난 하나의 빗방울이라고 말한다. 이 빗방울 하나하나에는 저마다의 역사가 있다. 그는 그 역사를 계승되어 이어가야 함을 역설한다. 

하나의 정경으로, 더 나아가 하나의 의사 체험으로, 달리 말하면, 아버지 마음을 오래 짓누르고 있던 것을 아들인 내가 부분적으로 계승한 셈이 되리라.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고, 또 역사라는 것도 그렇다. 본질은 ‘계승’이라는 행위 또는 의식(儀式) 속에 있다. 그 내용이 아무리 불쾌하고 외면하고 싶은 것이라 해도,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 P51

한 방울의 빗물에는 한 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해간다는 한 방우로서의 책무가 있다. 우리는 그걸 잊어서는 안 되리라.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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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으려나 서점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고향옥 옮김 / 온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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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줄곧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되던 책 ㅎㅎ 이 책에 나오는 책들을 보며 나에게는 어떤 책이 필요할까 상상하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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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0-10-21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아이디어 하나하나 너무 좋았어요

김민우 2020-10-21 19:45   좋아요 1 | URL
맞아요 ㅋㅋ 특히 옆에서 응원해주는 책은 정말 있으면 좋겠더라고요
 
오리진 - 지구는 어떻게 우리를 만들었는가
루이스 다트넬 지음, 이충호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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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인간은 자연과 불가분의 관계라는 인식이 점차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역사학 분야에서도 인간 삶의 토대로서의 환경과 역사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역사서들이 많이 나오고 있으며, 생태환경사는 주목받는 분야 중 하나로 떠오르게 되었다. 생태환경사의 고전이라고 한다면, 클라이브 폰팅의 <녹색 세계사>와 제럴드 다이아몬드의 <, , >가 있다. 김동진의 <조선의 생태환경사>는 한반도의 환경에서 농지 개간, 산림, 생태계 종, 미생물과 조선인의 생활 간의 관계를 탐구한 책이다. 지리학자 하름 데 블레이의 <왜 지금 지리학인가>와 팀 마샬의 <지리의 힘>은 지리나 자연환경이 인간의 선택에 미치는 영향을 다뤘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 위에 놓인 책으로 볼 수 있다. 앞의 책들보다 스케일은 작지만, 대중적으로 쓰인 유현준의 <도시는 무엇을 사는가>도 큰 맥락에서는 유사하다 할 수 있겠다.

 

루이스 다트넬의 <오리진>도 이러한 생태환경사의 하나로 분류할 수 있다. 다른 책들과의 차이점이라면, 인간 역사의 기원을 지구과학의 지식을 활용하여 행성의 형성부터 파헤친다는 점이다. 서문에서 그는 종으로서의 우리는 여전히 지구와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돼 있고, 우리의 활동이 자연계에 분명한 흔적을 남긴 것과 마찬가지로 지구의 역사도 우리에게 새겨져 있다. 따라서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자연경관의 특징과 그 배경을 이루는 기본 구조, 대기 순환과 기후 지역, 판 구조론과 과거의 기후 변화 사건을 비롯해 지구 자체의 역사를 살펴보아야 한다(14p).”라고 말한다.

 

현재의 자연환경과 인간의 역사에 근본적으로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빙하기/간빙기 주기와 판 구조론을 들 수 있다. 두 요인은 상호작용을 거치며, 현재의 지구 모습을 만들었고, 생물의 진화와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내용을 주로 다루는 1~3장은 충분히 정독해야 한다. 지구는 간빙기이냐 빙하기이냐에 따라 해수면, 기후, 물과 식물과 먹이 등이 달라졌는데, 예를 들어 백악기 시대에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300m, 13~115000년 전에 일어난 바로 앞의 간빙기는 해수면이 약 5m 더 높았다. 그중에서도 260만 년 전에 지구는 현재의 대빙하기로 접어들었는데, 이 시기 내에서도 지구 궤도와 자전축 기울기에 일어나는 규칙적인 변화로 인해 빙기와 간빙기가 교대로 반복되었다.” 이러한 교대 주기는 수만 년에 걸쳐 40~50번이나 일어났는데, 각각의 주기는 인류의 진화와도 연관이 깊다. 특히 새로운 호미닌 종의 출현과 멸종은 습한 기후와 건조한 기후의 급격한 요동의 시기와 일치하는 경향이 있다.

 

빙하기와 더불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또 하나의 원인은 판 구조론이다. “지난 5000만 년 동안의 지구 기후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냉각화이다. 신생대 냉각화라 부르는 이 과정은 빙기와 간빙기가 교대로 반복되는 현재의 맥동 빙기인 260만 년 전에 정점에 이르렀다. 이 장기적인 지구 냉각화 추세를 견인한 주요 원동력은 인도 대륙과 유라시아 대륙의 충돌과 히말라야 산맥의 융기였다.” 지각 융기와 높은 산맥의 형성, 그리고 300~400만 년 전 판의 이동 현상은 동아프리카의 기후를 건조하게 바꿔 놓았다. 숲 서식지가 줄어들고 대지는 사바나로 변모해갔다. 또 판의 이동은 해류의 패턴도 변화시킨다. 파나마 해협이 그 경우이다. 대륙 총돌의 결과로 생겨난 파나마 해협은 280만 년 전에 태평양과 대서양 사이의 연결을 차단하였고, 적도 해류의 방향을 바꾸어 북대서양 주변 육지를 더욱 따뜻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판의 활동과 기후 변화가 인간의 활동에 어떠한 변화를 주었을까? 루이스는 인간의 지능 발달과 인류 대이동이 앞에서 언급한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고 말한다. 인간의 지능은 자연 선택의 결과라기보다는 급격히 일어난 환경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진화가 내놓은 해결책(37p)”이었다. 동아프리카에서 살던 초기 호미닌들은, 판 이동과 빙하기 등으로 인한 급격한 기후 변화의 환경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는데, 흥미로운 것은 제각각 다른 도구 기술 단계의 발달과 확산이 일어난 시기도 극단적인 기후 변동 시기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습한 기후와 건조한 기후를 반복하면서 초기 호미닌은 도구 기술을 발전시킬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네안데르탈 등 힘으로는 더 우세인 다른 종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또한, 마지막 빙기와 그로 인한 해수면 하강은 인류가 동아프리카를 떠나 인도차이나반도, 뉴기니, 오스트레일리아 등으로 건너갈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이었다. 특히 알래스카를 걸어서 갈 수 있었던 것은, 해수면이 100m나 낮아지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현재의 간빙기는 17천 년 전에 시작되었는데, 지질학 용어로는 홀로세라고 부른다. 이 시기는 예외적으로 기후가 매우 안정적인 시대였다. 기후가 안정되었다고 해서 기후의 영향력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프리카 대탈출처럼 인간의 활동은 더욱더 지구 환경 위에서 성립했다. 그중에는 농업과 동물의 가축화도 있다. 사실 빙기에도 모든 곳이 다 농업의 발달을 막을 만큼 아주 건조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도저히 예측불가능한 기후의 변화였다. 까딱하면 모든 농사물을 망칠 수 있는 환경에서는 농업이 성장할 수 없었는데, 예외적으로 기후가 안정된 시기를 최초로 경험한 11천 년에 터키 남부를 시작으로 메소포타미아의 평야 지역으로 밀과 보리 농업이 시작된 것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그리고 지구 수천만년 동안 일어난 지구 냉각화와 건조화1만 년 이내에 갑자기 나타나고 우리가 가축으로 길들인 우제류와 기제류가 살아갈 생태계를 만들었다. 물론 이때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들의 분포가 매우 불균형했고, 그마저도 유라시아에 많이 몰려있었다. 유라시아 대륙은 남북 방향으로는 비교적 좁은 범위에 분포하고 있기에 위도상 큰 차이가 없어 작물의 이동과 작물을 다른 곳에 심는 것에 매우 유용하였고 이것이 유라시아 문명 발달에 큰 이점이 되었다는 설명은 다이아몬드도 제기하였던 유명한 주장이다.

 

지구 환경이 인간의 역사에 미친 중요한 또 다른 사례로, 중앙 스텝 지대를 살펴보자. 스텝 지역은 강수량도 적고, 매우 건조하며, 여름과 겨울의 최대 기온 차가 60도 차이가 나서 인간이 살시 적합한 환경이 아니다. 그러나 말에게는 오히려 스텝이 최고로 살기 적합한 환경이었다. 말이 먹을 수 있는 풀은 스텝의 건조한 기후에서 많이 자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지역에 사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말 타는 법에 능숙해지게 되었으며, 말이라는 기동력을 얻은 이들이 식량 등을 이유로 대륙 가장 자리의 농업 문명과 군사적 충돌을 겪었다. 이러한 충돌은 각자의 서식지에서 살아가는 생활 방식을 반영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자유롭게 여러 지역을 이동할 수 있었던 데에는 오랜 시간 판의 충돌이 없었고 오랜 침식을 통해 평평해진 자연 지형이 있었다. 왜 스텝은 하필 그런 지형을 가지고 있었을까? 바로 대기의 순환 패턴 때문이다. “뜨거운 태양열에 의한 증발과 상승 기류는 적도 부근에서는 비가 많이 내리는 요인이 되지만, 위도 30도 부근에서는 건조한 공기 변하여 이 지역들을 건조하게 만든다. 이러한 띠들은 양 반구에서 모두 나타나지만, 육지가 훨씬 많은 북반구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북반구의 이 지역을 툰드라라 부르는데, 이 툰드라 남쪽에 위치한, 온대 기후에 습윤한 해풍의 영향을 적게 받는 지역 타이가 기후대이고, 이곳이 바로 스텝이다.

 

마지막 사례이자 현재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사례로, 석탄의 사용이 있다. 주지하다시피, 석탄의 사용은 자연 에너지 사용의 한계를 벗어나게 해주고 현대 세계를 건설한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이다. 석탄은, 나무가 쓰러져도 썩지 않기에 형성되었다. 그런데 석탄이 퇴적된 주 이유는 생물학이 아니라 지질학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석탄기 후기 지구는 열대 바다와 차가운 극 지역 바다 사이에 일어나는 순환이 막혔고, 적도에서 극 쪽으로 열의 이동이 원활하게 일어나지않아 매우 추웠다. 그 결과 지구는 얼음 저장고가 되었고, 빙기와 간빙기 때의 판들과 대륙들의 배열의 직접적인 결과로, 지구의 기온과 얼음에 갇힌 물의 양은 요동치며 해수면도 상승과 하강을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식물 물질이 자주 해양 퇴적층 아래에 묻혔다가 결국 석탄층이 되었다.” 또 다른 지질학적 요인은, 판들의 격렬한 충돌이었다. 이러한 활동은 이탄이 보존되고 석탄층이 침식되지 않도록 계속 침강하는 분지를 만들어줬으며, 이것이 결과적으로 그 어느 시기보다 생산적으로 석탄이 생성될 수 있었던 환경이었다.

 

이러한 모든 논의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지구가 우리를 만들었다(391p).” 이것이 루이스 다트넬이 말하고자 했던 바이리라. 그러나 이 결론은 역설적이게도 다음의 무시무시한 결론으로도 이어진다. 지구는 우리를 만든 만큼, 우리를 끝장낼 수도 있다



"본 서평은 부흥 카페 서평 이벤트(https://cafe.naver.com/booheong)에 응하여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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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김진성 옮김 / 이제이북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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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쓸모의 시대를 살고 있다. 효율과 효용성, 그리고 실용성이 모든 것의 판단 기준이 되어가고 있다. 자연히 이러한 경향은 대학 학과에도 반영되어, 과거부터 제기되었던 인문학의 위기는 새로운 위기를 맞게 되었다. 역사학, 문학, 철학, 신학 등의 학문은 이제 실용성이라는 측면에서 자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왜 우리 사회가 이렇게 효율과 실용주의의 측면을 강조하게 되었을까같은 빅퀘스쳔은 이 짧은 글에서 다 논할 수는 없지만, 현대의 세대들이 겪은 교육과정을 돌아보는 것은, 유의미할 것이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한국의 12년 교육과정의 최종적인 목표는 수능을 잘 보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고, 이는 다른 말로 좋은 대학 보낼 수 있는 학생으로 만드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특히나 고등학교의 경우, 궁극적으로는 수능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진도 위주의 교육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또 다른 특징은 문제집 교육이다. 시중의 문제집을 살펴보면, 이 말의 의미가 이해된다. 수능특강수능완성등을 살펴봐도 문장형 설명은 별로 없고,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형태로 일목요연하고 깔끔하게 정리된 글 덩어리들만 존재한다. 이러한 글은 정보 습득은 용이할지 모르나, 그 정보들을 하나로 엮어 자기화하는 총체적인 이해는 힘들어진다. 그렇게 되면 아는 것도 많아지고 문제도 꽤 잘 풀지만, 그 지식은 내 삶과는 유리되고 그저 시험 점수를 잘 얻기 위한 지식이기에 시험 한 번이면 남는 것이 없다. 수능만 끝나면 백지가 된다는 우스갯소리마저 이렇게 이해하면, 마냥 웃기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한 대안처럼 제시되기도 하는 것이 인문학 공부이다. 구체적으로는 인문 고전을 읽음으로써 단순히 지식을 얻는 것을 넘어 사고력을 강화하고 현행 교육의 단점을 보완하자는 것이다. 나는 이에 적극 찬성한다. 하지만, 정말 인문 고전을 읽히기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까지는 않다. 슬프게도 효율성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우리의 공부 패턴은 인문학 공부에도 손을 뻗친다. 단적으로 말해서, 한국 교육에서의 인문 고전 교육도 결국은 대학 입시, 더 정확히는 논술 시험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 같다. 독서는 나의 지적 호기심 충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떠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굳이 어려운 철학책을 붙들고 있는 것은 시간낭비이다. 철학 원전을 직접 읽으며 공부하는 것은 시간도 오래 걸리거니와, 어찌저찌 완독하여도 남는 내용이 거의 없을 확률이 크다. 하지만 인터넷 요약 글과 영상은 다르다. 약간의 시간 투자를 하고 대충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이해가 잘 된다. 그래서 우리는 원전보다도 해설서나 인터넷에 ‘~ 5분 요약’ ‘~한 줄 정리를 찾아본다. 말하자면 효율적인 공부인 것이다(물론 이는 아무 지식 없이 원전을 읽을 때 느끼는 어려움 때문일 가능성이 더 크기는 하지만). 내가 직접 플라톤이나 톨스토이나 공맹의 책을 찾아보지 않고, 교과서에서 서너 페이지로 정리된 내용, 또는 인터넷에서 매우 짧게 압축적으로 요약/발췌한 글을 본다. 마치 보기 좋게 정리된 도표와 양식으로 가득한 문제집처럼, 우리는 남들이 보기 편하게 정리한 이리저리 흩어지고 파편화된 지식을 접한다.

 

쓸모가 가장 중요한 척도처럼 되어버린 사회에서 쓸모없음의 극치인 철학 고전을 왜 읽어야 하는 것일까? 철학 원전 독서의 이유와 그 유용성을 고민한다면, 필연적으로 서양 철학의 발상지인 고대 그리스에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게 된다. 철학이라는 학문을 태동시킨 곳의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철학에 몰두한 것이고, 왜 다른 곳도 아닌 그리스에서 이후의 서양 사상의 근원이 되는 학문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일까? 다른 말로 하면, 왜 이곳 사람들은 정말 쓸데없어 보이는 것을 탐구하고 나선 이유를 물어보는 것이 가능하겠다. 이러한 궁금증을 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읽어보자. <형이상학>의 원제는 <타 메타 타 피지카>인데, 이를 번역하면 자연학적인 저술들 또는 문제들 뒤의 것들쯤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기서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탐구하여 있음의 의미와 그 있는 것들의 으뜸가는 원인과 원리를 찾는다. 철학사상 탈레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 철학은 자연과 현상의 배후에 있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탐구했었다.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 보았으며, 그의 제자인 아낙시만드로스는 실체는 없지만, 불멸하고 무한히 운동하는 물질인 아페이론을, 아낙시메네스는 대기를 만물의 근원으로 파악하였다. 이들에 반대하여 파르메니데스는, 자연에 있는 것은 있는 것으로 탐구해야지 보이지도 않고 있지도 않는 배후의 원인으로 있는 자연을 탐구해서는 안 된다고 반박한다(이것이 소위 파르메니데스의 역설의 요지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이러한 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형이상학> 11장은 사람이 어떻게 학문적 인식의 단계에 이르는지 그 과정을 설명한다. “모든 인간은 본래 앎을 욕구한다.” 그 근거는 인간이 감각을 그 자체로즐긴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감각은 동물에게도 공통된 요소이다. 동물에게는 거의 없지만, 인간에게는 가능한 것, 그것은 기억을 바탕으로 해서생겨나는 단일한 경험의 가능성과 이 경험을 거쳐서 인간에게생기는 학문과 기술이다. 감각에서부터 시작된 논의가 경험과 기술(테크네)의 영역까지 확대된 것이다. 이 기술은 보편적인 것에 대하여 성립된다. 구체적으로 말해, 이때 말하는 기술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실용적인 지식이 아니라, 현상의 원인을 탐구하고 더 보편적인 차원으로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사병이 났을 때, 물이나 수분을 섭취하면 왜 좋은지 원인을 찾아보고, 모든 사람에게 다 해당되는지 어떤 부류의 사람에게는 다른지 분류하여 더 정확하고 보편적인 치료행위를 개발하는 것이 학문과 기술의 영역이다. 그는 이러한 학문과 기술이 경험보다 더 지혜, 앎에 가깝다고 본다. 그 이유는, 성공의 가능성 때문이 아니라 원인을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술을 가진 사람이 실천 능력에 따라서가 아니라, ‘이론을 가짐원인을 앎을 기준으로 삼아, 그들이 더 지혜롭다고 본다.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은 가르침의 능력이다.” 기술을 가진 사람은 보편적인 원리와 원인을 알고 있기에 가르칠 수 있다. 감각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그저 그렇다는 것만을 알려줄 뿐이다.

 

그러나 그는 학문과 기술을 다시 제작과 관련된 학문이론에 관련된 학문으로 구분한다. “어떤 기술들은 (삶에) 필요한 것들을 위해, 또 어떤 기술들은 삶의 즐김을 위해 발견되었는데, 이러한 기술들이 세워지고 나서 쾌락이나 필요한 것들을 겨냥하지 않은 학문들이 사람들에게발견되었다. 그리고 이중에 후자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사물들의) 으뜸 원인들과 원리들을다루는 지혜의 학문이라 불릴 만하다. 왜냐하면, “학문들 중 그 자체를 위해 그리고 그것을 알려고 하여 고른 학문이 ‘(그로부터) 나온 것들 때문에 고른 것보다 더 지혜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 그는 어떠한 유용한 결과를 내놓기 때문에 추구되는 학문이 아니라 앎 그 자체를 위해 추구되는 학문이야말로 지혜라고 역설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왜 그리스가 철학의 시초가 된 까닭을 간접적으로 읽을 수 있다. 어떤 것을 “‘의아하게 생각함으로써 지혜를 추구하기시작한 그리스인은 앎을 앎 그 자체를 위해 탐구하였고, “어떤 다른 쓸모 때문에 지혜를구하지 않았다. 그리스의 이러한 정신이 철학을 태동시킨 원동력이었다.

 

여기까지 읽었으면, ‘철학을 왜 공부해야 하고, 왜 철학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답은 명백해진다. 그는 이 질문에 대해 그냥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에 따르면, 철학은, 인문학은 그냥 공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철학책들도 그냥 읽는 것이다. 굳이 교양을 쌓거나, 더 성공하겠다거나, 더 나아가서는 더 똑똑해지겠다는 마음도 공부의 최종적인 목적은 아니다. ‘그냥무언가 호기심이 생기고 궁금증이 들면, 왜 그런지 원인을 알아보고 스스로 만족할만한 대답을 찾으면 그만인 셈이다. 이러한 탐구에서는 속도는 중요하지 않으며, 획득한 지식은 불완전하지만 평생동안 잊히지 않을 확실한 내 지식이 된다(정말 쓸데없는 지식일 수는 있지만). 그리고 이런 것이 본래적 의미에서의 공부이며 탐구가 아닐지 싶다. 철학은 왜 공부하느냐, 그냥. 어려운 철학책은 왜 읽느냐, 그냥. 공부는 그냥 하는 것이다.

 

* 사실 고백하자면, 나도 아직 이 책을 중간까지밖에는 읽지 못했다. 눈치 빠른 분은 알겠지만, 이 서평은 <형이상학> 11장과 2장의 내용만을 바탕으로 작성한 서평이다(현재는 5권까지 읽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천천히 가려 한다. 어차피 시험보는 것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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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10-20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요즘 조금씩 철학에 관심이 생겨서인지 내용이 쏙쏙 들어오네요 ^^

김민우 2020-10-21 03:33   좋아요 0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 - 학살과 파괴, 새로운 질서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세계대전 2
A. J. P. 테일러 지음, 유영수 옮김 / 페이퍼로드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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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에 테일러가 쓴 <준비되지 않은 전쟁, 2차 세계대전의 기원>(페이퍼로드)을 매우 인상 깊게 읽었다. 그래서 그가 쓴 1, 2차 세계대전 통사 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로 읽기를 결정하였다. <준비되지 않은 전쟁>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부터 2차 세계대전의 발발까지 약 20년의 전간기를 다룬 책이다. 이로써 1차 세계대전에서 제2차 세계대전까지 30년의 역사를 한 저자의 저술로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참고로 세 책의 번역자도 동일하다). 장서 욕심이 있는 나로서는 혹하는 조합이다.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준비되지 않은 전쟁>과 내용상 당연히 연결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1장과 2장은 <준비되지 않은 전쟁>의 전체 내용을 저자가 요약정리한 것이었다. 테일러는 기본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이 온전히 해결되지 못한 전후 독일 문제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베르사유 조약에 대한 불만과 대공황으로 인한 여파로 국가사회주의가 탄생하였다. 히틀러는 대공황은 독일이 전쟁에서 패배하여 생겨난 유산으로, 이를 극복하는 수단인 자급자족 경제는 정치적 침략을 할 수 있도록 독일을 튼튼하게 만들어줄 것이었고, 거꾸로 정치적 침략을 통해 독일의 자급자족 경제가 더욱 강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것이 그가 의도해서 세계대전이라는 대전쟁을 일으켰다고 볼 수 없다. 이러한 생각은 타당하지 못하다. “히틀러와 일본의 통치자들은 이 점을 날카롭게 인식하고 있었다. 종종 그들이 전 세계적 규모의 전쟁을 계획했다고 여겨지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기는커녕 세계대전이 일어나면 자신들이 파멸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21p).” 테일러가 이렇게 생각하는 근거 중 하나는, 독일의 상대적으로 부족한 군사력이었다. “1938년에 독일이 국경에 배치한 항공력은 영국보다 고작 60퍼센트 더 높은 데 불과했고 예비력은 더 약했다...독일인들은 독립적인 폭격을 위한 항공기도 전략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42p).” 사정이 이러한 데도 독일에 대한 다른 유럽국의 두려움은 부풀려졌다. 히틀러는 대규모 군사 전쟁보다는 소규모의 위협과 전쟁을 통해 독일의 지위를 굳히려 하였고, 주어지는 사태를 잘 활용하여 이 목적을 달성해갔던 인물이었다. 1939년의 폴란드 침공도 그러했다.

 

테일러는 국제정치학자답게 국가 간의 관계나 자국의 정치 상황이 전쟁 중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중점을 두며 2차 세계대전사를 써 내려간다. 가령, 테헤란회담 부분에서는, “그렇게도 협력을 이루지 못하던 두 세계적 강대국(미소)이 드디어 하나가이정표라고 평가하면서도, 처칠-스탈린-루스벨트의 동상이몽을 지적한다. “루스벨트는 아마도 자유 무역을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 세계를 건설하려고 생각했을 것이고, 처칠은 대영제국을 회복시킬 생각을 했을 것이다. 스탈린은 오로지 독일의 패배만을 생각했다(333p).” 루스벨트는 처칠을 배제하는 한이 있더라도 스탈린과 협의를 보려 했다. 이 회의에서 스탈린의 의견대로 북부 프랑스 상륙 작전이 결정된 것은, 루스벨트가 그의 의견을 지지했고 처칠은 묵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지중해는 부차적인 일이 되었다(334p).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내용은 독소전쟁 내용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전쟁>에는 이러한 대목이 있다. “히틀러가 성공에 이른 비밀은 처음부터 끝까지 군사력이 아니라 교묘한 술책이었다. 히틀러는 군사력이 승패를 결정하게 되었을 때 파멸했다.” ‘군사력이 승패를 결정하게 되었을 때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2차 세계대전>을 읽으며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독소전쟁이었다. 테일러는,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할 때에는 실제적인 동기가 있었고, 영국과 스탈린마저도 독일의 승리를 예상했었다. “히틀러는 소련이 위험해서가 아니라 소련을 패배시키는 것이 엄청나게 쉬울 것이기 때문에 소련을 침략했다. 히틀러가 항상 도박을 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는 확실한 패에 걸었다고 생각했다(171p).”

 

전체적으로, 6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의 역사를 한 권 안에 입체적으로, 그것도 자기의 관점까지 잘 담아놓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 후반부에 나오는 인물 소개도 인상적이었는데, 매우 유용하게 활용하였다. 그리고 이 책은 소제목이 달려 있지 않아서 가뜩이나 정보량도 많은 책인지라, 읽다가 금새 지칠 수도 있다. 그럴 때에는, 직접 본인이 본문을 차근차근 읽어가면서 직접 장절을 나누고 소제목을 달아가며 읽으면, 훨씬 더 재밌는 독서가 될 수 있을 듯하다. 태평양전쟁에 대한 설명이 좀 부족하지 않나 싶지만, 이것은 다음 독서의 과제로 여기겠다. 한 권 분량으로 2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이해하고 싶은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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