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더욱더 거룩하게 하시고 저 새의 어리석음도 물리쳐 이제는 서로 믿고 사랑하게 하옵소서.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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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플라톤

플라톤의 경우, 한국에서는 대표적으로 3종류의 번역본이 존재한다.

 

첫번째는, 박종현 역본이다. 박종현 선생님은 국내 고대 그리스 철학계의 대부이시다. 플라톤 저작 전체 완역은 아니지만, 중요한 저작들은 모두 번역하셨다. 특히, <국가>는 정암학당에서 번역이 나오지 않는 한, 박종현 선생님의 <국가/정체>(서광사, 2005)가 가장 정확한 번역본이 아닐까 싶다. 고어투 문체가 읽기 힘들 수 있지만, 번역의 정확성만큼은 보장된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천병희 역본이다. 고전문학을주로 공부하신 천병희 선생님은 그리스어뿐만 아니라 라틴어에도 매우 조예가 깊으시다. 2019년 총 7권 볼륨으로 플라톤 전집을 완역하셨다. 특히, <국가>는 박종현 선생님 이후로 두 번째 완역이라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법률>도 번역되어 있다. 천병희 역본의 가장 장점은 가독성이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 문학쪽으로는 타의추종을 불허하기에 어느 정도 신뢰하고 읽을 수 있는 번역이다.

 

세번째는, 정암학당에서 나오는 플라톤 전집이다. 독일, 영국 등 해외 유학파 출신 등 권위있는 전공자들이 대거 활약하고 있는 정암학당에서 오래전부터 플라톤 전집을 발간하고 있다. 원래는 이제이북스에서 출판했으나, 현재는 아카넷에서 장정을 새롭게 하여 재출판하고 있다(내용을 보완하고 책의 구성이 조금 바뀌었으며, 양장본이 된 대신 판형이 조금 작아졌다) 전공자들의 번역이니, 각주와 해제가 본문보다 길 때도 있을 정도로 충실하다. 그리고 그리스어 단어 색인도 잘 되어있어 공부할 때도 매우 유용하다. 정암학당 플라톤 번역은 거의 아카넷과 이제이북스에서 나오지만, <법률>은 특이하게도 나남출판에서 나왔다. 

 

결론적으로 1. 정암학당->2. 천병희->3.박종현 순으로 추천할 수 있겠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기준입니다)

 

 

2.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달리 아직 번역이 많이 이루어진 것 같지는 않다.

 

우선 <정치학> <시학><니코마코스 윤리학> 등은 천병희 선생의 번역이 있다. 그러나 전집을 내지는 않았다.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정치학>은 도서출판 길에서 출간한 번역본도 있는데, 이쪽은 전공자들이 번역하였다. 특히, 김재홍 선생님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은 분이다. 전공자들의 번역을 원한다면, 도서출판 길에서 나온 것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면 천병희 선생님의 번역을 읽어도 상관없겠다. (그런데 내가 다니는 대학의 고대 그리스 전공하신 교수님도 천병희 선생님의 <정치학>을 읽는데, 그런거 보면 크게 차이는 없는 건가 싶다)

참고로 저는 천병희 선생님 역본으로 읽습니다 (중고로 싸게 나와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악명높은 철학 저술 <형이상학>은 조대호 번역본(도서출판 길)과 김진성 번역본(이제이북스)이 있는데, 두분 다 정암학당 소속이다.

조대호 번역본이 일반적으로 많이 읽히는 것 같다. 김진성 번역본도 좋지만, 주로 한자로 번역되던 용어를 풀어쓴 한글 단어 옆에 괄호쳐서 한자어를 병기하는 등 읽기 조금 번잡스러운 면이 있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전집 발간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는 플라톤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은 이제 갓 시작한 상태이다.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의 아카넷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을 발간하고 있는데, 현재 두 권이 나왔다. <영혼에 관하여>에서 <소피스트적 논박>까지 2년 걸렸는데, 이 속도면 역자분들이 죽기 전에는 나올 수 있겠다

 

 

여러 출판사 이름이 반복해서 나오고 있는데, 아카넷-길-이제이북스 등의 출판사들은 사실 거의 믿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길에서는, 각 분야의 전공자들이 직접 번역에 참여하고 있어 높은 가격대임에도 소장할 만하다.

 

 

번외로 고대 그리스 철학을 더 자세하게 알고 싶다면, 도서출판 길에서 나온 <서양고대철학>1~2가 있다. 1권은 자연철학자에서 플라톤까지, 2권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서양 중세 철학까지. 각 분야의 권위자분들이 모여 집필한 책이므로 (많이 어렵지만) 이만한 개설서는 없을 것 같다.

 

 

 

 아 그리고 최근 현대지성사에서 박문재 선생님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과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향연>을 번역하셨다. 주로 기독교 계열의 서적들을 번역하셨고 전공자는 아니지만, 20년 넘게 번역 일을 해오고 매번 양질의 번역을 하신 분이니, 여러 권을 사서 읽는 것보다는 단권으로 읽고 싶다면 이러한 번역본도 읽을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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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민주적인가 - 현대 대의 민주주의의 원칙에 대한 비판적 고찰, 폴리테이아 총서 2
버나드 마넹 지음, 곽준혁 옮김 / 후마니타스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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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끝난 뒤에 주된 관심사 중 하나는 투표율이다. 투표율의 높고 낮음에 따라서 사람들은 대중의 깨어 있는 시민 의식을 찬양하거나, ‘무지몽매한 대중을 한탄하기도 한다. 그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인식과 맞닿아 있는 듯하다. 자기를 다스릴 지도자를 본인의 손으로 직접 뽑는 것은 참정권의 핵심으로, 선거에 출마하지 않는 한 시민이 정치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수단이다. 또한, 민심을 대변함으로써만 통치의 정통성과 적법성을 인정받는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정부도 그 민의의 표출로서의 선거를 무시할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라는 말에서 그 민주주의는 우선, 직접 민주주의가 아닌, 대의제 민주주의임을 알 수 있다. 다수의 대중은 자신들을 대변하고 대표할 수 있는 인물에게 표를 주어 지도자로 삼는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선거에서 다수의 표를 얻은 후보는 국민의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하게 시장, 국회의원,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그런데 민심의 표출이라든지 국민의 선택이라든지 하는 단어는 어딘가 석연치 않다. 선거가 성립되어서 민심 대표운운하는 이야기가 나오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유의미한 투표율이 필요하다. 그런데 여기서 고민해봐야 할 점은 유의미한 투표율’, 가령 50~70% 이상의 투표율이 나온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진정으로 민심을 대변했다고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이다. 만약 선거율이 70%가 나왔다고 하자. 그렇다면 투표하지 않은(혹은 못한) 30%의 의견은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설령 모든 국민이 다 한 표를 행사했고, 그래서 대표가 선출되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의 대표성문제가 해결된 것일까? 낙선한 후보자에게 던져 유효투표임에도 당선자 결정에 구실을 하지 못한 사표는 어떻게 해결되는가? 게다가 현실에서는 100%는커녕, 선거율이 70%를 넘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국민의 선택이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국민의 범위가 협소해진다. 대의제 정부의 핵심은 대표가능성에 있는데, 결국 대의제가 대표하는 것은 선거에 나와 표를 던진 사람 중에서도 당선자를 지지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선거권이 만 19세 이상의 성인에게만 주어진 한국에서, 정부와 정치인이 말하는 대표란 만 19세 이하 청소년의 의견은 전적으로 배제된 것이다. 더 본질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충분히 대변해줄 수 있는 후보를 찾지 못한 사람들의 표는 어디로 가는가? 이런 사람들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다른 후보에게 표를 준다고 하여, 그 사람들이 충분히 의견을 표현했다고 할 수 있는가? 대의제의 대표는 무엇을 근거로 대표를 자칭할 수 있는 것일까?

 

서평인 주제에 서론이 쓸데없이 길어졌다. 어쨌든 우리가 관습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의제=민주주의라는 도식이 따지고 들어가보면 상당히 근거가 빈약한 도식임을 전달하고 싶었다. 버나드 마넹의 <선거는 민주적인가>도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반해서 쓰인 책이다. 이 책의 목적은 대의 정부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해”, 더 구체적으로 말해 대표가 선출되고 공공 결정이 만들어지는 방식을 관리하는 제도(16p)”를 밝히는 데에 있다. 마넹은 글의 서론에서부터 현대의 민주주의 정부는 그 설립자들이 민주주의와는 대립되는 것으로 이해했던 정치 체제로부터 발전(13p)”했다고 못을 박는다. ‘선거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핵심이지만, 사실 선거는 고대 그리스 때부터 미국의 독립 이전까지 귀족정과 상통하는 개념이었다. 반대로 민주정의 핵심 요소로 여겨진 것은 추첨이었다. 16세기 사상가 몽테스키외는 추첨과 민주주의를, 다른 한편으로는 선거와 귀족정을 밀접히 연관시키고 민주정이 추첨과, 그리고 귀족정이 선거와 어울린다는 것을 하나의 불변적이고 보편적인 법칙으로 상정했다(97p).” 18세기의 정치사상가 루소 역시 <사회계약론>에서 추첨과 민주정을, 선거와 귀족정을 연결시킨다(100p).” ‘추첨=민주주의/선거=귀족정의 등식은 우리의 일반적인 민주주의 통념과 완전히 상치된다. 특히, 직접 민주주의와 추첨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던 고대 아테네의 역사적 사례를 떠올려 볼 때, 추첨은 중우정치로 가는 길로 느껴진다. 그러나 마넹은 이렇게 반문한다. “왜 우리는 추첨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우리 스스로를 민주주의자라 부르는 것일까(24p)?”

 

아테네 민주정은 교체의 원칙을 매우 중시하였다. “민주정의 기본적인 원칙은 민중이 통치자이자 피통치자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이 두 위치를 번갈아 가며 차지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46p).” 통치자가 피통치자를 다스릴 수 있는 권리는 이전에 한때 그 반대뇌는 위치에 있어 보았다는 데서 비롯된다(47p).” 아테네가 이렇게 교체의 원칙을 중요하게 여긴 데에는, 아테네 민주정의 최고 이상이 보울로메노스(ho boulomenos)”,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동료 시민에게 건의할 수 있다는 원칙, 좀 더 일반적인 표현으로 평등한 사람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다는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보울로메노스의 원칙을 실현하는 데에 있어서 최적의 수단이 추첨이었던 것이다. 이럴 경우,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의 직접성은 행정관, 평의회나 법정 등 통치 기관의 구성원들을 충원하는 추첨이라는 방법(42p)”에서 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직접 민주주의는 오늘날의 오해와 달리 전체 국민의 수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오히려 의 차원에서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것은 그 함의를 해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추첨을 통해 지명된 이름은 오직 자원한 사람의 이름(50p)”이었다는 것이다. 추첨기계에 이름이 들어가는 사람은 행정관에 선출되기를 자원하는 사람뿐이었다.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평등하게선출될 수 있는 교체의 원칙자발성의 원칙이 결합한 형태가 아테네 민주정인 것이다.

 

그러나 관직 배정에 있어서 평등에 대한 고려(120p)”17~18세기 동의의 원칙이 더 우선시되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테네인이 그토록 중시한 교체의 원칙은 참조 사항 정도로 밀려난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레 선거가 고려되기 시작하였다. 이와 더불어 대표는 자신을 선출한 사람보다 사회적으로 더 뛰어나야만 한다는 대의 정부의 또 다른 불평등한 특징이 서서히 도입되었다(125p).” 우월성의 근거가 재산이든 덕성이든, 대표는 무조건 유권자보다 우월해야만 한다. 미국에서 메디슨 등의 연방주의자들은 대표와 선거인 사이의 비동일성을 당연하게 여겼다. 매디슨은 대의 정부를, 광대한 국가에서 시민들을 한 데 모으는 것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기술적인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인민에 의한 정부의 유사 형태로 보지 않았다...대의 정부에서는 선택된 시민 집단이라는 매개를 거치면서 대중의 견해가 정제되고 확대되는 효과를 가진다(14~15).’”라고 말했다. , 대의 민주주의는 직접 민주주의가 불가능해짐에 따라 불가피하게 고안된 대안이 아니다. 선거자와 피선거자 사이의 비동일성과 대표의 우위를 전제하고 있는 선거의 원칙은 귀족정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선거의 어떤 부분이 귀족주의적일까? 이것이 본서 제4장의 내용이다. 첫 번째는 편파성이다. 이는 다시 (1) 공직 진출의 가능성이 일부에게 편중되어 있음, (2) 선거 과정 중 후보자들에 대한 편파적 대우와 평가로 나눌 수 있다. 둘째, 탁월성의 원칙이다. “선거는 한 차원에서든 다른 차원에서든, 나머지 주민들, 즉 유권자보다 뛰어나다고 간주되는 후보들의 자기 선택과, 후보들에 대한 선택(177p)”이다. 셋째, “두드러진 자극이다. 한 마디로, 얌전한 후보보다 논란이 될 만한 발언을 많이 해도 튀는 놈한테 더 관심이 가게 된다는 것이다. 넷째는 정보 선전 비용이다. 개인 홀로 선거 비용과 선거 운동에 드는 비용을 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로써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선거 원칙은 진정 정치적으로 탁월한 사람이 선출되는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라는 우리가 경험적으로도 몸소 느끼는 진리이다(184p).

 

마지막 6대의 정부의 변형들에서 마넹은 대의제의 형태를 의회 정치’, ‘정당 민주주의’ ‘청중 민주주의라고 분류하는데, 이중 청중 민주주의가 우리 사회와 밀접하다고 느껴, 이를 더 집중적으로 보겠다. 대의제도에서 통치자의 결정과 유권자의 정책 선호 사이에는 크게 (1) ‘대표의 부분적 독립성’, (2) ‘(반복적) 선거’, (3) ‘여론의 자유’, (4) ‘토론에 의한 평결이라는 4가지 요소가 작용하는데(5), 차례대로 살펴보자. 먼저 (1) 청중 민주주의하에서 대표들은 일반적으로 이미지, 즉 후보의 개인적 이미지와 그들이 속한 조직이나 당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선출(274)”되는데, 이렇게 되면 선거 운동은 하나의 적대적과정, 즉 서로의 이미지에 흠집을 내는 과정이 돼버리고 만다. 게다가 (2) 유권자는 매 선거에서 제시되는 선거 공약에 단순히 응답하고 반응하는 존재가 된다. 주도권은 정치인에게 속한다. 이것이 (1)과 연결되면, 유권자는 정치인이 제시하는 선택의 항목과 분열선에 반응하여 적과 아군을 구분 짓는 일종의 청중으로 나타난다(270p).” 따라서 대표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더 커진다. 여기에 (3) 상업적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여론 조사 기관도 가세한다. (4) 특정 쟁점에 대한 미디어 매체에서의 활발한 토론은 유동적 지지자층을 형성한다. 그리고 이들은 정치인들로 하여금 대중에게 직접적으로 정책을 제안하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대의 대의제 민주주의는 민주정적 요소도 있지만, 귀족주의적 요소가 더 강한 귀족적 민주정이라는 혼합정의 형태를 띠고 있다. 아테네의 민주정이 시민의 참정과 발언의 자유를 최대한 평등하게 보장하려 노력했다면, 대의제하에서 대중은 대표에 주도권을 넘기며 단순히 반응하는 청중의 역할에 머물러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의 두 원칙, 교체의 원칙과 자발성의 원칙을 현재에도 적용할 수 있는 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테네의 민주주의도 실제 권력이 아닌 권력을 가질 수 있는 (수학적) 확률(59p)”을 추첨을 통해 동등하게 배분했다는 점에서, 불완전한 면이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언급은 안 했지만, 아테네에서 시민의 범위는, 여성과 노예를 제외한 매우 제한적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발언의 평등을 신경 썼던 아테네서조차 배제되고 소리 내지 못하는 이들의 존재가 있었다. 이렇게 스스로 소리 내지 못하는 이들을 찾고 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만드는 데에 대의제를 뛰어넘은 민주주의의 핵심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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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개념어총서 WHAT 6
고병권 지음 / 그린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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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는 그린비 개념어 총서시리즈의 하나로 출간된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민주주의 개념에 대해서 논하고 있지 않다. 그보다는 21세기 대한민국이라는 상황에서 민주주의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역설하고 있는 책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많이 알다시피, 현행 대한민국 헌법 체제는 19876월 항쟁 및 그때까지의 민주화 투쟁의 산물로서 탄생한 것으로, 흔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우리의 눈 앞에 존재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발전보다는 권위주의의 잔재인 것처럼 보인다. 오늘날 거리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혐오 발언과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차별적 언사들이 자유’·‘역차별에 반대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대의제하에서 누구도 대변해주지 못하는 소수자의 목소리와 소수성의 문제들. 이것들에 대하여 민주주의는 배제 이외의 답을 줄 수 있을까? 사실, 더 근본적으로 민주적이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부터 우리는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촛불 혁명 이후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더욱더. 지금 우리에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그리스어 데모크라티아의 번역어로서 민주주의는 부적절한 번역이다. ‘~주의(主義)’라고 번역되는 다른 단어들은 영어에서는 접미사 ‘~ism’이 붙는데, 이는 어떠한 이념이나 사상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그런데 민주주의(民主主義)’‘democracy’ ‘demokratia’로 어떠한 사상 체계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그렇다고 데모크라티아에 대한 번역으로 민주정도 적당하지 않아 보인다. 고대 그리스어로 정치체제를 지칭하는 말에는 아르케(근거, 지배, 관장하는 직무라는 뜻)’가 붙기 때문이다(군주정-monarchy/과두정-oligarchy).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규정하는 아르케는 아나르코스아르케 없음이라고 조롱하였다. 그러나 민주주의에는 아르케가 없는 대신 을 뜻하는 크라토스가 붙어 있다(17p).” 아르케와 크라토스의 차이는, 아르케 그룹에서는 누가 지배자인지가 명백하고 정체는 지배자의 숫자로 나타난다. 아르케가 없다는 것은, 그 반대라는 의미이다. 지배자의 형상도 없고 지배자의 숫자도 의미가 없다. 민주주의에 이라는 단어가 함께 사용된 것은, “어떤 일을 해낼 능력 내지 역량에 주목한 명명인 셈이다.” “‘데모크라티아는 혁명의 순간에 데모스의 자기 권리주장과 더불어 출현한 정체였다. 이처럼 데모크라티아는 어떤 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집합적 신체로서 데모스가 가진 역량이다(20p).” 민주주의는 지배와 지배자가 없다.

 

또한, 민주주의에는 통치의 근거가 없다. 여기서 근거를 기준이라고 이해해도 될 것이다. 플라톤이 민주주의에 참을 수 없던 점도 바로 이것이리라. 플라톤에게 있어, 피통치자와 통치자 및 통치에 필요한 모든 유의미한 분별과 척도와 기준을 폐지하는 민주주의는 잡탕 덩어리며 혼돈의 도가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민주주의에서는 지식도, 재산도, 혈통도, 성별도, 심지어 숫자도 다른 어떤 것을 억압하거나 배제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 민주화란 기존에 당연시되었던 기준과 근거가 사실은 근거 없음임을 폭로하며 척도 자체를바꾸어 내는 일이다. 현재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통치의 근거는 다수결의 원칙이다. S. 밀은 이를 두고 다수의 횡포이라고 불렀는데, 대의제 정부에서 대표는 기실 선거에 참여한 이들 중 당선자에게 표를 던진 이들만을 대표한다(여기에 선거권이 없는 이들은 애당초 고려되지도 않음은 말할 것도 없다). 대의제는 민심을 대변한다고 하지만, 이는 대부분 근거가 없다.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후지이 타케시(藤井たけし)는 시위와 한국 사회 변혁의 주체로서 거듭 소환되는 국민에 의문을 표한다(<무명의 말들>, 포도밭). 타케시의 문제의식은 우리로 하여금 국민인민주권이 한 나라 안에 있는 수많은 주체를 포괄할 수 없음을 생각하게 한다. 고병권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2장도 바로 이러한 지점과 맞닿아있다. 우리가 민주주의와 동의어로 여기는 인민주권민주주의에 대한 근대적 이해에서 기인한 것으로, 16세기 이후에나 나온 상상된 개념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부분과 관련해서는, 버나드 마넹, <선거는 민주적인가>, 후마니타스, 2~3장 참조) 홉스나 루소 등의 근대 사상가들은 주권의 초월성보다는 주권을 통한 통일성 내지 단일성에 관심이 많았다(56p).” 홉스에게 있어 군주는 공동체를 통일시키는 강제력을 가졌기 때문에 주권자가 될 수 있고, 온갖 이질적인 주체들이 섞인 다중은 다지 다중이라는 사실, 즉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주권을 표상할 수가 없다(57p).” 따라서 다중은 국민(인민)’이라는 가상적 통일체가 됨으로써 대표들에 의해 대의가능한 존재가 되었다. 선거 제도가 이 시기에 중요해진 것도, 대의제가 가지는 귀족주의적 성격과 더불어, 인민주권이 가지는 이중 허구성, 모두를 동질적인 한 집단으로 간주하는 허구와 개인들이 독립되어 있으면서 통약가능하다는 허구(73p)” 때문으로도 볼 수 있다. 이렇게 다양성을 거세하고 하나의 허구적인 동질 집단을 만든 순수성으로 국민국가가 출발하였기에, 국민국가는 국민이 아닌 것들, 다른 말로 대표(표상)불가능한 것에 대해 알레르기적 반응을 일으킨다. 그래서 제거해버리거나 동화시켜 버린다. 대의제 민주정에서 기존에 선거권이 없던 이들, 다른 말로 정치에서 배제되었던 이들, 19세 이하 청소년, 난민, 이주노동자들, 그리고 성소수자처럼 지금껏 누구도 그들을 대표한 적 없었다고 판단되는 이들. 더 나아가 우리의 인식으로는 아직 포착되지 않아 이름조차 없는 무명의 타자들. 대표가 대표할 수 없는 것들의 존재는 대의제의 실패를 의미하며, 이들로부터 주권과 대의제를 벗어난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이 도출된다.

 

민주주의는 대의 정부다수결의 원칙’, ‘국민주권같은 정지되고 고정된 현실태로서가 아니라 언제나 변화하는 역동적인 가능태로서 존재한다. 따라서 그것은 도달해야 할 어떤 목표가 아니다. 최장집은 87년의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민주주의가 문제시되는 상황에 충격을 받았다. 그의 문제의식은 일견 타당하지만, 여전히 민주주의를 제도 같은 고정된 어떤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 “하나의 민주주의는 자신이 예견할 수 없었던 타자의 도래,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의 출현,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사태의 도래와 함께 종언을 고한다(95p).” 이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타자의 이름을 알고 얼굴을 봄으로써, 민주주의는 자신을 새롭게 재정의하고, 모든 기준과 조건, 척도를 뛰어넘어 이들과 연대하는 삶을 구축한다. 다스림을 정당화하는 어떠한 근거도 거부하며, “서로 소통가능하게 만드는 집합적 신체(33p)”를 구축하는 것. 바로 여기에 데모크라티아, 데모스의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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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의 민중반란 - 동학과 갑오농민전쟁 그리고 조선 민중의 내셔널리즘
조경달 지음, 박맹수 옮김 / 역사비평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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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운동의 주체성이라는 관점에서 천도교까지의 동학 및 동학농민운동 통사를 기술한 명저이다. 98년도에 나온 책임을 감안해도, 충분히 읽을만한 책이다. 역자인 박맹수 선생님의 연구와 비교해가며 읽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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