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나무라는 처음보는 출판사에서 몽양 여운형 선생님의 산문집을 발간하였다. 총 두 권인데, 하나는 해방 이전에 쓴 글, 다른 하나는 해방 히우에 쓴 글들을 모아놓았다. 여운형 선생님의 글만을 모은 책이 드디어 나왔다는 사실에 감복하였다. 이제 연구서나 다른 저술이 아니라 여운형 자신이 쓴 글로 여운형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니시 아마네의 저술도 번역이 되었다. 니시 아마네라는 이름이 생소한 분들을 위해 잠시 설명드리자면, 그는 후쿠자와 유키치와 함께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던 저술가이자 문명개화 운동가였다. philosophy의 번역어로서 철학이라는 단어를 최초로 고안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책소개를 보아하니, 이번에 번역 출간된 <백일신론>은 '니시의 강연문을 토대로 야마모토가 출판'한 것이라고 한다. 메이지유신을 이끌었던 사상가들의 사상은 어떠했는지 알 수 있는 귀중한 역서가 출판된 것 같다. 이 책도 구매리스트로..


번역자인 허지향님은 리츠메이칸대학에서 학위를 받았고 이 분야와 관련하여 연구를 하시는 분 같으니, 번역의 질도 어느 정도 믿고 읽을만할 것 같다. 


*출판사 소개가 재밌다. "사장이 읽고싶은 고전을 출간하겠다며 만든 출판사" 사장님께 감사드립니다. 빈서재 출판사 대성하시어 더 많은 고전을 내주십시오!!!

금번에 출간된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 개략> 및 과거에 나온 <학문의 권장> 같은 책과 같이 읽어야겠다.


난바라 시게루의 책도 번역되어 놀랐다. 난바라 시게루는 우치무라 간조의 제자였으며, 도쿄제국대학 법학부를 나와 영국, 독일 등에서 독일관념론을 공부하였고 일본의 국체론을 비판한 것으로 유명하다. 세대를 따지면, 메이지유신 이후 20년이 지난 시기에 태어났다. 그의 영향력이나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 인물의 책이 이제서야 번역되었다. <국가와 종교>는 국체론 비판의 한 성과이며, 부제가 '유럽 정신사 연구'이고 목차 등을 볼 때, 플라톤 - 그리스도교 - 칸트 - 나치 등으로 이어지는 국가관을 "종교적 신성의 문제"와 연결지어 연구한 저서인 듯하다. 

 

번역을 맡은 윤인로 씨는 니시다 키타로의 <선의 연구>, 도사카 준의 <일본 이데올로기론>, 그리고 가라타니 고진의 여러 저술들을 번역한 분이니, 번역에 신뢰가 간다. 그리고 소명출판의 책이니 더더욱. 




한국 출판 현황을 보면 상당히 놀라운 점 중 하나가 의외로 각국사 관련해서 좋은 책이 많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프랑스사는 과거에 절판된 <혁명과 반동의 프랑스사>와 거의 20년전에 나온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프랑스사> 정도를 빼면 깊이 있는 프랑스사 개설서는 잘 안 보인다. 


이러한 갈증을 해소시켜주기라도 하는듯, 제라르 누아리엘이라는 학자의 <프랑스 민중사>가 곧 출판된다. 책 소개나 목차 등을 봤을 때,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가 많이 연상된다. 






유진 피터슨의 <사무엘서 강해>가 나왔다. 며칠전에 그의 <다윗, 현실에 뿌리받은 영성>과 김회권의 <하나님나라 신학으로 읽는 사무엘서>를 리뷰한 적이 있었는데, 타이밍이 기가 막히다. 

사실 피터슨의 <다윗>은 강해서는 아니고, 말하자면 설교에 더 가까운 글이었다면 이 책은 그의 유일한 강해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서로 비교해가며 읽어야겠다. 그의 다른 저서들과 관점은 대략적으로 비슷하겠지만, 피터슨이 쓴 강해서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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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언 - 기독교는 어떻게 서양의 세계관을 지배하게 되었는가
톰 홀랜드 저자, 이종인 역자 / 책과함께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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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아테네부터 미투 운동까지. 톰 홀랜드의 <도미니언>은 기독교의 발흥과 확산, 그리고 서구인들의 의식 세계 속에서 빠질 수 없게 된 기독교적 가치의 역사를 다룬다. 21개의 장으로 구성되어있고, 각 장에는 그림자’ ‘성령등의 표제가 붙어있는데, 저자의 논지를 잘 따라가면서 표제의 의미를 생각하면, 이 사람이 얼마나 치밀하게 이 책을 썼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 기독교는 어떻게 서양의 세계관을 지배하게 되었는가이다. 원서의 부제도 “The Making of the Western Mind”인데,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기독교가 서양, 정확히는 서유럽(동유럽과 정교회는 다루지 않았다)에 미친 영향력의 역사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싶다. 제목인 도미니언은 지배권이라는 뜻으로, 기독교가 서유럽인의 정신과 육체를 지배해온 역사를 한 단어로 축약한 것이다. 화이트헤드가 서양 철학은 플라톤의 주석이라고 주장했고 대니얼 윌리엄스는 서양 기독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각주라고 말했는데, 오늘날 서구의 가치관은 기독교의 주석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서구가 기독교 세계가 되기까지는 4개의 혁명을 나열할 수 있다(내가 임의로 나눠본 것이다). 첫 번째 혁명은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하여 바울이 설파한 혁명이다.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될 것이다(마태복음 20:16, 공동번역, 번역자분은 성서 인용구를 번역할 때 공동번역을 참조하셨는데, 이 서평도 공동번역을 썼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마태복음 22:39, 공동번역).” 로마인들이 다 기피하는(심지어는 유대인도) 십자가형이라는 극형을 받은 예수님의 전복적 지혜와 가르침의 불은 꺼지지 않고 그의 제자들을 통해서 퍼져나갔고, 그중 바울 사도는 예수님의 복음이 그레코-로만 지역에 자리 잡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초기에 기독교는, 켈수스 같은 기독교의 비판자들이 공박한 것처럼 하층민들이 다수였고, 인육을 먹는다는 등의 루머에도 시달려야 했다. 그럼에도 이 하층민의 종교는 그들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옮기고 자선과 이웃사랑을 실천에 옮기며 점점 더 영향력을 키워 나갔고, 300년쯤 가면 황제도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되었다. 특히 이 자선 행위는 로마 사회에서 구별되는 그들만의 특징이었다. 약자를 사랑하고 가난한 이웃에게 자선을 베풀라는 가르침은 로마의 다른 종교나 철학에서는 볼 수 없었다(194p). 자선과 약자 사랑은 고대 그리스나 고대 로마의 정신은 아니었던 것이다.

 

2의 혁명은 11세기 그레고리우스 7세에 의해 진행된 교회 개혁이다. 그레고리우스 7세는 당시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인 권력으로부터의 교회 독립을 추구했던 인물이다(11세기 교회 개혁을 상세하게 다룬 책으로는 김봉수, <페르투르 다미아니와 중세의 교회개혁운동> 참조). 그는 교황청의 영향력 범위가 온 세상에 미치는 보편적인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는 전임자 누구보다 과감하고 급진적으로 세속 권력에 대한 교회의 우위성을 확신하였는데, 이때부터 성과 속/교회와 국가의 구분이 영구적으로 서구의 근본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의 개혁과 성과 속의 이분은 교회와 교황의 권위에 헌신해야만 하는 교회 조직을 탄생시킨 것이다. 세 번째 혁명이자 마틴 루터가 그 기를 들어 올린 종교개혁은 그레고리우스 7세의 개혁이 만든 교회 조직을 부정하고, 교황청이 제정한 교회법보다 우위에 있는 양심의 법과 값없는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인 구원을 주창하였다. 여기서 그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성령이었다. 루터의 도전은, 다양한 기독교인 집단들이 성령을 내세우면서...교황청의 권위에 도전하도록 불을 붙였다. 성령에 의지한 권위에 대한 항의의 연쇄작용속에서 성령의 영감을 성경보다 중시한 퀘이커교도는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을 내세웠고, 스피노자도 이러한 성령에 의한 권위 파괴 전통에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다(비록 그는 성령이 아닌 이성의 빛을 주장했지만).

 

니체가 선언한 신 죽음의 혁명이 마지막 혁명이다. 강력한 기독교의 비판자였던 니체는 그 누구보다도 당시 사람들의 마인드에 깊게 뿌리박은 기독교의 지배력을 인지하였다. 그래서 망치를 들어 기독교라는 기둥을 붕괴시키려 하였고 신은 죽었다...우리가 그를 죽였다.’라는 말은 기독교적 가치관의 붕괴를 선언한 것이기도 하였다. “인간의 존엄성, 노동의 존엄성기독교 도덕성에 매달리는 자들을니체는 경멸하였고, 그 근원지인 신을 죽임으로써 인간을 해방시킬 수 있다고 믿은 듯하다. 니체의 혁명과 더불어 과학 지식의 진보는 기독교에 치명적이었다. 갈릴레이와 뉴턴 시대까지 신앙과 과학은 양립불가능한 것이 아니었으나, 진화론과 지질학의 발전으로 기독교 신앙의 신빙성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서구를 기준으로 봤을 때, 기독교의 영향력은, 과거와 비교했을 때 미미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21세기로 넘어와서는 기독교는 급진적 아젠다에서 후퇴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점점 힘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톰 홀랜드의 주장처럼, 기독교가 표면적으로는 사회적 영향력이 떨어지는 것 같지만, 사실 서구인의 가치 세계, 문화, 심지어는 기독교 비판자들이 기독교를 비판하는 논리와 용어마저 기독교에서 나올 만큼, 기독교는 무의식의 저편에서 그들을 지배하고 있다. 이것이 비단 서양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책에서도 나온 것처럼, 현대 아프리카, 특히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폐지의 중심에는 기독교가 있었다. 19세기 인도에서도, 로이가 타락한 힌두교와 진정한 힌두교를 구분하였는데, 이러한 논리 이면에는 힌두교가 아닌 전통적인 개신교의 /의 신념이 있었다. 또한, 본문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한국에서도 천주교가 조선에 처음 전래되었을 때, 신분제를 뛰어넘어 양반과 노비가 교류하게 만든 천주교 전복적 가르침은 조정을 긴장케 하였고 박해의 원인이 되었다. 이후 약 100년 뒤 개신교가 들어온 뒤에는 온건적 복음주의 선교사들과 한국인 지도자들에 의해서 문화 곳곳에 기독교 신학과 신앙의 흔적이 남기 시작했고 그 초기 결실이 평양대부흥이다. 기독교는 전파되는 곳마다 그 사회를 가만히 놔두지 않으며, 어떠한 식으로든 자기의 흔적을 남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도쿠가와 이에야스처럼 기독교를 그 뿌리채 제거해버리는 수밖에 없다그렇지만, 그런 일은 이제와서는 불가능한 일이고, 결국 오늘날 세계의 거의 대부분은 기독교적 가치관을 어느 정도 공유하게 되었다.

 

오늘날 많은 한국의 기독교인이 기독교의 영향력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기독교의 모순도 여전하며, 기독교를 둘러싼 극단적인 갈등도 여전하다. 아니 오히려 모순과 갈등은 이전 그 어느 시대보다 더 강하게 기독교를 위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독교의 영향력 회복이 주요 화두가 되기 시작한 것도 이미 오래전 이야기다. 기독교는 그들만의 리그가 될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세상을 놀라게 하고 변혁시키는 생명력을 보여줄 것인가. 이 세상을 하나님의 뜻에 맞는 세계로 만들고 기독교의 영향력을 회복하고자 할 때,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식의 유치한 사유 말고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답이 무엇인지는, 이 책을 읽으며, 독자들이 스스로 궁리해보고 같이 토론해볼 문제일 것이다. 많은 기독교인이 읽었으면 좋겠다.

 

여담: 역자 이종인 선생님의 옮긴이의 말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종인 선생님은 본서 맨 첫 페이지에 인용된 아우구스티누스, 니체, 비틀즈의 말을 각각 모순’·‘갈등’·‘사랑이라는 키워드로 정리하고, 3개의 핵심 단어를 바탕으로 본서 전체의 내용을 요약·정리해주고 있다. 이 글은 방대한 내용의 본서를 읽을 때 매우 참고가 되니, 다른 독자들도 먼저 옮긴이의 글을 읽은 뒤에 본문으로 들어가면 방대한 내용에도 길을 잃지 않고 읽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책 추천.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기독교의 역사><기독교, 그 위험한 사상의 역사>와 바트 어만의 <기독교는 어떻게 역사의 승자가 되었나>를 함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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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oaa123 2020-10-14 16: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보고서 순간 책읽은줄 알고 착각할뻔..

김민우 2020-10-15 04:16   좋아요 0 | URL
ㅋㅋㅋ 이제 이 책을 읽으시면 되겠군여

deep 2020-10-23 1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번역은 괜찮나요? 책의 주제는 무척 중요한데, 같은 역자의 <폭군>. <유러피언>의 번역에 크게 실망했던지라 주저되네요.

김민우 2020-10-24 00:16   좋아요 0 | URL
사실 저는 <도미니언>의 원문을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번역이 정확하다, 오역투성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국인이 봤을 때 의미전달이 불분명한 문장에 직역체가 아닐까 우려하신다면, 그런 염려는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었을 때는, 문장이 술술 잘 읽혔고 내용 이해도 잘 되었습니다. <폭군>, <유러피안>의 오역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이 책의 역자인 이종인 선생님은 오랜 기간 다량의 번역을 해오셨고, 술술 잘 읽히는 번역으로 정평이 나 계십니다. <리비우스 로마사> 같은 경우가 그렇죠. 그래서 예외 경우도 있는 듯하지만, 어느 정도 신뢰할 만 합니다
 

다윗왕은 비단 기독교만이 아니라도 매우 유명하고 많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다. 다윗의 행적에 관해 가장 풍부하게 담은 자료는 성경의 '사무엘서'이다. (역대기도 있지만, 이는 사무엘서보다 후대에 저술된 것으로 보이고 사무엘서에서 다윗의 과오 등을 빠뜨린 부분이 있다) 이번 글에서는 다윗, 더 나아가 사무엘서 전반에 대한 아주 매력적인 두 책을 소개하려고 한다. 김회권의 <하나님나라 신학으로 읽는 사무엘>(상하)와 유진 피터슨의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이다. 


김회권은 하나님 나라 신학이라는 독특한 신학으로 유명한 구약학자이다. 그가 사무엘서를 바라보는 관점은, '공의의 하나님의 통치를 이스라엘에서 실현한 이상왕을 찾는 이야기'다.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사무엘>은 사무엘서 주석서이다. 따라서 이 책에는 본문 해석 문제와 같은 비평적 문제도 여럿 들어가있다. 또한, 간혹 히브리어 원어에 대한 설명도 곁들어 본문을 주해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사무엘하 10장 "2절에서 은총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헤세드로서, 그것은 계약상의 의무수행(covenantal loyalty)을 가리키는 전문용어다. 따라서 다윗이 암몬의 왕 나하스에게 은총을 덧입은 적이 있었다면 둘 사이에는 그보다 앞서 모종의 언약이 체결된 적이 있어야 한다."


본문에서는 이와 같이 실제 역사적 사실, 비평적 문제, 신학적 논점들을 중심으로 본문을 주해하고 결론에서는 각 장들에 대한 총체적인 결론과 한국 교인들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뽑아낸다. 이처럼 다소 까다롭고 전문적인 이야기가 있으나, 성경의 정확한 내용을 밝히고 그 안에서 현재의 한국 사회에 필요한 교훈을 이끌어내기에, 이 책은 사무엘서를 읽으며 같이 두고 읽을 만한 책이다. 



유진 피터슨은 '목회자의 목회자'라고 불릴 정도로 세계적으로 많은 영향력을 미친 목회자이자 신학자이다. 그는 성경이 가지는 문학성과 내러티브성에 더 포커스를 맞춘다. 이는 저자가 어렸을 적 자기 전마다 성경의 이야기를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각색해서 들려준 이야기꾼 어머니의 영향이 큰 것 같다. 


그가 다윗의 이야기를 바라보는 가장 큰 관점은 '참 인간이 되어가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다윗 이야기는 성장의 이야기다. 이야기에서 각 사건은 다음 사건 속으로 흡수 통합되며, 그럴 때마다 다윗은 그 전보다 더 윗다워진다.(핸디북 버전, 230p)" 유진 피터슨은 그러면서 다윗의 성장 이야기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우리의 삶으로 끌고 온다. 마치 한 편의 설교를 듣는 것 같다. 그는 역사적 사실이나 신학 문제 등에도 물론 관심을 기울이지만, 그보다는 다윗 이야기의 구조와 내러티브에 더 집중한다. 예를 들어, 6장 '성소'에서 성소에 찾아온 사울왕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어 성소로 도망쳐 삶에 필요한 힘을 얻은 다윗과 그에게 먹을 것과 무기를 준 제사장을 왕에게 밀고(사실 제사장은 다윗이 쫓기는 줄도 몰랐다)하여 제사장들을 모두 죽게 한 도엑을 비교하며 도엑을 "그저 적당한 교인이었다. 그에게 종교와 종교에 관련된 일들은 그저 정치적 이득이나 직업상의 목적을 위한 것일 뿐이었다(118p)."라고 평한다. 


이 두 책을 비교하는 서평을 쓰는 것은 단순히 다루는 성경 본문이 같아서가 아니라, 둘이 같은 사무엘서를 읽더라도 참 다르게 읽고 다르게 해석한 것이 눈에 띄기 때문이었다. 구체적인 예시를 보자. 김회권이 사무엘서에서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사무엘하 7장의 '다윗언약장'이다. 앞에서 그는 사무엘서를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는 이상왕'의 이야기로 본다고 얘기했는데, 이 다윗 언약이 그러한 관점을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김회권이 봤을 때 다윗 언약이란 "안정되고 평안한 이스라엘 땅 정착을 위해서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안정된 왕조가 필요한데, 바로 하나님께서 위의 약속들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다윗을 위해 영원한 집을 지어 주겠다는 약속(113p)"이다. 그리고 이 영원한 집, 영원학 왕조는 "공평과 정의를 실천하는 데 투신된 왕조, 왕실(111p)"이다. 결과적으로 다윗 왕조에 대한 이러한 하나님의 신적 보증은 이사야의 메시아 예언시에도 반영되었으며(143p), "인간 다윗의 원형인 다윗의 후손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과 십자가상의 대속적인 심판 감수(144p)"는 최종적으로 성취되었다. 결국 인류의 모든 불순종과 죄악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은혜의 승리가 다윗 언약 안에 함축되어 있다(144p). 


한편, 유진 피터슨은 이 본문에서 어떠한 메시지를 읽었을까? 그는 여기서 다윗의 열정과잉을 읽는다. 하나님의 성전을 건설하겠다는 다윗의 호언은,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관심에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가득한 상태로 넘어가기 직전(277p)"인 마음에서 나온 말이었다. "다윗의 건축 계획이 다윗을 위한 하나님의 건축 계획에(275p)" 방해가 될 수도 있었다. 평소의 다윗이라면 그러지 않았겠지만, 그는 이 시점에서 자신의 지위와 안락한 생활로 하나님의 주권을 망각할 뻔했다는 것이 그의 통찰이다. 그래서 피터슨은 이 이야기에서 "행동하지 않기로 한 행동(278p)"의 교훈을 발견한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지만, 언제나 무엇을 해주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때로는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280p)". 우리는 다윗처럼 하나님이 멈춰 세우실 때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 탁월한 견해이며 과도한 교회 일/대학교 선교단체 일에 싸여있는 성도분들에게는 특히나 매우 적실한 메시지이다. 


(참고로 여기서 인용되는 성경 구절은 새번역이나 개역개정 성경 구절이 아닌데, 아마 유진 피터슨이 번역한 메시지 성경을 사용한 것 같다.)


정리하자면, 김회권의 책은 성서학자의 관점에서 해석한 사무엘서이고 유진 피터슨은 목회자의 입장에서 다윗 이야기를 해석하였다. 전자가 성서학자의 성경 독법이라면, 후자는 목회자의 성경 독법으로 나는 이해하였다. 둘 중 무엇이 더 좋고 나쁨은 없다. 성경을 깊이 읽기 위해서는 두 사람의 독법이 모두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같은 본문에 대해서도 이렇게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음에 놀라며 성경을 읽는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어 더 큰 독서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김회권과 유진 피터슨 모두 자신의 강점과 관점을 살려 저술한 책이기에 두 책을 함께 읽으며 더욱 풍부하게 사무엘서를 읽자!



그럼에도 굳이 한 명의 책만 읽는다면, 김회권의 책을 추천하고 싶다. 왜냐하면 유진 피터슨의 책도 더할나위 없이 훌륭하지만, 김회권의 책이 한국의 교인들에게 필요한 내용을 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사무엘상 28장에서 사울이 무당을 고용해 사무엘 선지자의 영혼을 불러내어 예언을 들었다는 부분에서, 교인들마저 무당을 찾아가는 풍토를 비판하며 왜 무당 신앙이 위험한지를 역설하고, 요압-아브넬의 전투 중 희생된 24명의 이스라엘 장정들로부터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화해를 호소하는 것은, 피터슨에게서는 절대로 들을 수 없는 이야기다. 한국 사회의 문제와 상황을 놓고 고민하며 성경을 통해 답을 찾으려는 고민을 담은 김회권의 책을 일독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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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시덕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일본인 이야기>

이분의 책은 뭘 읽어도 다 강렬한 인상을 주고 지적인 자극이 매우 크다. <동아시아>는 임진왜란부터 시작하여 대동아공영권까지 한국과 일본의 다양한 사료를 활용하고 청과 러시아의 동방 진출, 동인도 회사, 타이완 등 동아시아에서의 주요 플레이어들의 활동을 연결지으면서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위치의 변화를 탐구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일본은 이렇다' '조선은 저랬다' '중국은 저렇다' 같은 단순한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각 장마다 더 읽을 책을 제시하여 이후의 공부에도 도움이 많이 된다. <일본인 이야기 1>는 전국 시대 후기~도쿠가와 막부 성립까지의 역사를 다룬다. 16세기 가톨릭이 전래되면서 가져온 일본 사회의 변화와 세계 경제 질서의 하나가 된 일본과 동아시아의 모습을 알 수 있어서 여기에 이 책도 같이 적는다. 


- 미타니 히로시 외 <다시 보는 동아시아 근대사>

이 책은 한국사, 일본사, 중국사 등 각 분야의 권위 있는 연구자들이 모여 집필한 동아시아 통사책이다. 에도막부, 청, 조선부터 시작하며, 류큐의 역사도 장을 달리하여 들어간다. 또 하나의 특징이라면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역할을 본격적으로 다룬다는 점이다. 다소 딱딱한 서술에 읽기 힘들 수 있으나, 내용은 매우 훌륭하고 한중일 + 러시아 + 류큐라는 복잡다단한 역사를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교과서 같은 느낌의 책. 김사덕의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와 같이 읽으면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그런데 현재 절판되고 출판사도 재간할 생각이 없는 듯하여 도서관 등을 이용하시기를..






- 설혜심, <인삼의 세계사>

위의 <다시 보는 동아시아 근대사> 미국의 동방 진출 파트에서 이런 구절이 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산출된 조선 인삼과 제비집, 얼음도 태평양을 건너 중국에 수출되었는데, 장기적인 교역상품으로 성장하지는 못했다.(121p)" 미국에서 인삼을 산출했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문장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위 문장이 이해가 되었다. <인삼의 세계사>는 '인삼'의 세계 교역 루트와 미국에서 인삼이 재배되고 수출된 이유, 유럽에서 각광받던 인삼, 그리고 이러한 인삼이 사라진 이유 등을 다룬다. 하나의 교역품을 통해 세계사적인 안목과 함께 오리엔탈리즘을 생각할 수 있는 탁월한 책.





- 하네다 마사시, <동인도회사와 아시아의 바다>

이슬람사를 전공한 하네다 마사시는 아시아 해양사 분야에도 대가라는 듯하다. <동인도회사와 아시아의 바다>는 포르투갈부터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의 동인도회사가 아시아에서 어떠한 활동을 펼쳤으며 어떠한 상호교류가 있었는지를 탐구한 역작이다. 동인도회사에서 쓴 배의 종류, 선원들의 식단, 취급한 상품까지 나오니, 매우 유용하다. 특히 네덜란드의 활동을 아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다만, 이 책도 절판되어 일본어가 가능한 분은 원서에 한번 도전을.




-  정민, <18세기 한 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

한문학자 정민 선생님의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은 하버드 도서관에서 발견한 후지쓰카 컬렉션을 통해 18세기 조선과 청 지식인들의 지식인 네트워크, 문예공화국을 밝힌 책이다. '한문'과 '필담', 편지를 통해 지식과 정서를 나누던 그들의 역사를 알 수 있다. 내용은 지금까지 추천한 책들 중에서 가장 쉽게 읽을 수 있고 또 매우 재미있으니 한 번쯤 일독해보는 것을 추천









이러한 책들을 읽고 <하멜 표류기> 같은 책을 다시 읽으면 기존과는 또 다른 느낌과 감상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런 책들을 읽다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한중일은 생각보다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세계사 전반과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17세기 이후 러시아의 동방 진출이 동아시아에 미친 영향이나 그보다 훨씬 전에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상인, 그리고 이들과 같이 들어온 기독교의 존재가 일본에 미친 파급력, 그리고 이어지는 연쇄 작용들. 그리고 현대를 생각해보면....새삼스럽지만, 역사 공부는 할 짓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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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10-08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삼을 미국에서??? 정말요? 흥미롭네요. 한번 읽어봐야겟네요

김민우 2020-10-08 00:48   좋아요 0 | URL
예! 꼭 강력히 권유하는 책입니다 ㅎㅎ 미국의 인삼 재배 말고도 재미있는 사실들이 많이 있어요
 

의분과 분노는 결과를 낳지 못하고 질질 끌게 되면 절망이나 체념으로 무너질 위험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군주란 자유와 평등의길, 모두에 의해 민주적으로 관리되는 공통적인 것을 모두의 손에 쥐여주는 과제를 제시하는 길을 가리킨다. 물론 우리가 여기서 군주라고 부르는 것은....오늘날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상이한 형태의 저항과 투쟁이 마디마디 이어져서 이루어진 정치적 결합체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 군주는일관된 배열로 움직이며 암묵적으로 어떤 위협을 가하는 데, 다중으로서 나타난다. - P33

이제 서로를 발견하고 모일 시간이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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