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이정철 지음 / 너머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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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대동법>(역사비평사)을 저술하였는데, 누군가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라는 제목으로 그 책의 서평을 남겼다. 똑같은 제목을 사용한 이 책은, 그 서평의 질문에 대한 고민과 저자가 내린 결론이 담겨 있다. 책의 내용과 관련해 제목의 의미를 더 구체적으로 덧붙이자면, 왜 선한 정치를 펴도록 교육받은 지식인이 기축옥사 같은 “거대한 파국”을 맞이했는가, 일 것이다.

이 책은 선조 8년~23년까지의 15년 동안에 벌어진 동서분당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 시기는 더욱 조명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 대단히 ‘조선다운’ 정치적 갈등의 양상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조선 시대에서 가장 “정치에서 이상이 드높이 외쳐진 시대”였음에도 사림의 정치적 이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저자는 이 시기를 “권력현상의 관점”에서 접근하며, 정치적 행위자들의 정확한 정치적 입장과 그것의 객관적 의미를 파헤친다. 저자의 이러한 방법론은 비단 조선시대 당쟁사뿐만 아니라 오늘날 한국의 정치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림은 연산군 대부터 명종 대까지 약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4번의 사화를 받는 등 정치적 탄압을 견디어 왔다. 특히 기묘사화(1519)에서 선조가 즉위할 때까지(1567) 약 50년이라는 탄압의 시간과 기억은 선조 대 당쟁의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인물들의 삶과 사고를 지배하였고, 그것이 정치에도 반영되었다.

명종 대 정치는 외척과 훈구 세력이 기승을 부렸던 파행적 정치를 보여주었기에, 선조가 즉위하면서 떠오른 정치적 과제도 자연스레 “구체제의 유산을 청산하는 문제”였다. 신진사림에게 구체제 청산이란, 훈척 세력과 외척 세력의 청산을 의미하였다.

교과서에서는 동서분당에 대해 이조 전랑 자리를 놓고 벌인 심의겸을 비롯한 서인과 김효원을 필두로 하는 동인 사이의 정치적 대립이 격화되어 발생한 것으로 배운다. 그러나 이는 그들의 정치적 입장을 반영하지 않은 매우 피상적인 설명이다. 심의겸은 선조 초기 수렴청정을 하였던 인순왕후의 남동생, 다시 말해 외척 세력이었다. 따라서 동인에게는 심의겸과 그와 관계를 유지하는 서인 그룹은 용납할 수 없는 대상이었다. 사실 선배사류였던 서인은 “사화를 미연에 막고 신진사류의 대표적 인물들을 보호한 공이” 있는 심의겸과의 관계를 쉽사리 끊을 수 없었던 것이지만, 후배사류는 이를 이해할만한 여유나 식견이 없었던 듯하다.

심의겸과 김효원의 갈등은 동서분열의 원인으로 볼 수는 없지만, “사림분열의 한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즉, 갈등이 개인적 수준을 넘어 사림 간 집단주의적 갈등으로 전개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분열의 기저에는 역사적 경험에서 누적된 구세력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그에 대비되는 자신들에 대한 도덕적 확신이 존재했다.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등 언관직을 차지하면서 오랫동안 부패한 “훈척에 대한 도덕적 비판자의 역할”을 해왔던 신진사림들은 자신들의 도덕적 정당성과 정치적 주도권을 확신하였다. 언관은 오늘날로 따지면, 비판적 민간 언론에 해당하는 관직으로, 그 본질적 기능은 “비관료적 기능으로 관료조직의 건전성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언관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국정 현안에 대한 해결 능력이 아니라 비관료성과 부패 방지였다. 국정 현안 해결은 대신에게 필요한 능력이었다. 그러나 신진 사림이 목격해왔던 대신은 부패만 일삼는 훈척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대신의 권한과 역할을 부정하고 공론을 자신들만이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었을 것이다. 이는 선도 대 대신의 권위와 권한 약화라는 결과로 이어진다.

동서분당을 이해할 때 핵심적 사안은 사림을 제어할만한 합리적이고 권위 있는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였다. 이 시기는 언관의 권한이 강한 대신 대신들의 권한은 매우 취약하였던 시기였다. 선조 대 사림들은 부도덕한 이전 시대 조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여 존경을 받는 대신을 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그들은 대신을 배제하고 정치적 주도권과 공론을 배타적으로 독점하고자 하였다. 이는 정치적 욕망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으나, 더 근본적으로는 역사적 경험이 바탕이 된 도덕적 확신에서 나온 행위였다.

이이가 주장한 개혁의 핵심도 동서 사림을 통합하는 한편 약해진 대신권을 강화하는 것이었으나, 대신권의 강화는, 공론을 유일하게 주도할 정치적 주체로서의 자격을 진심으로 믿었던 삼사에게는 이전 시대로의 회귀와 이이 당파의 조정 진출을 의미했기에 이이는 격렬한 반대에 직면했다.

당쟁이 더욱 격화되면서, 동인은 서인과의 갈등을 ‘옳고 그름’의 문제로 바라보았고, 이는 곧 이들이 한 세력은 제거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음을 의미했다. 이것이 그들의 프레임이었고, 그들이 인식한 조정의 현실이었다. 대표적인 동인이었던 김우옹은 “당시 조정의 정치세력을 선과 악의 구도로 구획했다.” 다른 동인들도 “당시를 심의겸이 주도하는 외척의 전횡이 계속된 시기로 보았다.” 류성룡마저도 “개혁하는 것은 옳은 일이지만, 이 일을 이이와 함께 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그렇다고 서인이라고 달랐던 것은 아니었다.

정여립의 모반 사건으로 촉발된 기축옥사는 선조 8년부터 이어진 사림 세력의 분열 양상이 더 극단적으로 반복된 사건이었다. 기축옥사 심문 과정에서 서인 정철은 동인에게 노골적인 적의감을 드러냈고, 피해자였던 동인 측도 정철을 포함하여 이미 한참 전에 사망한 이이에 대해서도 대단한 적대감을 보였다.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 기축옥사를 통제할 수 있던 인물은 당시 정국을 주도하고 있었던 선조뿐이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사림의 갈등은 역사적 요인과 당시 정치 구조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 정치 현상이었다. 과거의 경험에서 이들은 도덕적 정당성에 갇히어 분열했고 “그것보다 더 강력했던 권력에 대한 욕망의 자장으로 빨려들고 마침내 함몰되었다.” 자신의 정치를 하려던 선조는 이들의 분열을 자신의 왕권 강화에 이용하였고, 그로써 독재에 가까운 권력을 행사하였다. 이는 사림 그 누구도 원하던 결과가 아니었다.

이 시기 정치 행위자들에게 공통으로 부족했던 것은 “사회적 결과에 대한 책임”, 즉 정치적 책임에 대한 의식이었다. 그나마 이이를 제외한 모든 사림은 개인적 혹은 당파적 신념에 대해서만 책임을 졌을 뿐, 실제 사회적 결과에 책임을 지는 데에는 실패했으며, 선조는 정치적 책임을 지는 대신 그것을 사림들에게 떠맡기고 자신의 왕권 강화에만 집중하였다. 명종 대에서 선조 대로의 이동은 사림의 역할 변화이기도 했다. 그들은 이제 단순한 도덕적 비판자가 아니라 국정과 민생을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있었지만, 이를 알았던 인물은 이이밖에 없었다. 정치가 “민생개혁에 대한 추구”가 아니라 “정치세력 간의 시비”로 격화될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이 책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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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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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하여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해소되면서 끝이 난다. 그 과정에서 아킬레우스는 철없는 소시민에서 성숙한 영웅으로 성장한다. 그를 영웅으로 만든 것은 전우 파트로클로스와의 우정, 공동체에의 헌신, 무엇보다 자신의 운명, 즉 죽음을 받아들인 것이다.

2.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서사시는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직접적인 주제임을 드러낸다. 아가멤논 왕이 전쟁에서 승리한 대가로 취한 크뤼세이스 대신 아킬레우스가 얻은 브리세이스를 빼앗아 감으로써 그의 분노가 촉발되었다. 그가 분노한 이유는 첫째 “자기보다 훨씬 못한” 아가멤논이 “세상 누구보다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는(강대진, <일리아스, 영웅의 전장에서 싹튼 운명의 서사시>) 자신의 “명예의 선물”을 가져가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즉, 일차적으로 명예의 문제가 개입된 것이다. 그리고 둘째, 트로이아군 헥토르에 의해 자신과 가장 친밀한 우정을 나눴던 전우 파트로클로스가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해소되기 위해서는 헥토르에게 복수해야 하며, 침해된 그의 명예가 회복되어야 한다. 헥토르를 죽이는 것은 22권에 가서 이루어지고, 명예의 회복은 24권에서 이루어진다.

아킬레우스의 명예는 본래 전장에서 많은 적을 쓰러뜨려서 획득한 것이었다. 명예가 전쟁에서 공을 세워 받는 전리품이라면, 브리세이스를 돌려받고 거기에 추가로 더 좋은 것을 받아야지 아킬레우스는 명예롭게 될 수 있다. 특히나, 전황을 한번에 뒤집고 헥토르를 쓰러뜨렸던 아킬레우스가 아닌가! 그는 더 좋은 것을 요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 왕에게 헥토르의 시신을 되돌려줌으로써 새롭게 명예를 부여받는다. 아가멤논이 브리세이스를 뺏어서 훼손된 명예가, 헥토르의 시신을 되돌려주면서 회복된 것이다. 그는 더 이상 분노하지 않는다. 오히려 프리아모스를 위로하며 그의 아픔에 공감하는 온유함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3.

반면에 9권에서의 아킬레우스는 이와 극단적으로 대조된다. 9권에서 아킬레우스의 내면을 잘 보여주는 장면은 ‘아킬레우스의 선택’이다. 아킬레우스는, 전장에 나와 다시 싸우라고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온 사절단을 이렇게 거부한다. “내가 이곳에 머물러 트로이아인들의 도시를 포위한다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막힐 것이나 내 명성은 불멸할 것이오. 하나 내가 사랑하는 고향 땅으로 돌아간다면 나의 높은 명성은 사라질 것이나 내 수명은 길어지고 죽음의 종말이 나를 일찍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오.”

그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다시 무기를 들고 전장에 나가 공동체를 구하고 전공을 세워 영웅이 되는 것이다. 이 길을 택하면, 그는 불멸의 명성을 얻지만 필시 죽는다. 다른 하나는 명예를 버리고 고향 땅으로 돌아가 얇고 긴 인생을 사는 것이다. 여기서 아킬레우스는 사절단의 권유를 뿌리치고 후자를 택한 것이다. 강유원에 따르면, 이때의 명예란 “위험에 처한 공동체를 구하는 것”이다. 아직 아가멤논에 대한 화가 풀리지 않은, 속된 말로 아가멤논 때문에 삐진 아킬레우스는 전투에 나가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왜냐하면 “싸워봤자 고맙게 여기지도 않을 것이” 뻔하고 “뒷전에 처져 있는 자나 열심히 싸우는 자나 똑같은 몫을 받고 비겁한 자나 용감한 자나 똑같은 명예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심경을 바꾼 결정적인 계기는 파트로클로스의 전사다. 주요 장수들이 계속해서 부상을 입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파트로클로스는 전투에 나선다. 하지만 헥토르와의 대결에서 전사하고, 그 소식을 듣게 된 아킬레우스는, 죽을 줄 알면서도, 드디어 전투에 임하기로 작정했다. 전우의 죽음을 통해서 정신적 성장을 이룩할 것이다. 아가멤논과 화해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그가 변했음을 알 수 있다.

“(...) 하나 아무리 괴롭더라도 지난 일은

잊어버리고, 필요에 따라 가슴속 마음을 억제하도록 합시다!

이제 나는 분노를 거둘 것이오. 화해하지 않고 언제까지나

화를 낸다는 것은 내게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오.” (19.65~68)

“가장 영광스런 아트레우스의 아들이여, 인간들의 왕 아가멤논이여!

선물들은 마음이 내키시면 적당히 주시든지 아니면 간직하시든지

그대가 알아서 할 일이오. 지금은 서둘러

전의를 가다듬읍시다.” (19.146~149)

절정은 앞에서도 언급한 프리아모스와의 대화 장면이다. 프리아모스가 홀로 자신을 찾아오자, 그의 용기를 칭찬하며 자신과 마찬가지로 소중한 사람을 잃은 프리아모스의 처지에 공감해주고,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주며 그의 장례식을 완수할 때까지 전투를 그치겠다는 약속까지 한다. 특히, 24권 518~551행까지 이어지는 행복, 길흉화복, 죽음를 얘기하는 아킬레우스의 모습에서는 9권에서 사절단을 거절했던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이전에는 싸움만 잘하는 육체적 영웅에 불과했던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과의 갈등-파트로클로스의 죽음-헥토르와의 전투를 거치면서 영웅에 걸맞은 인격까지 얻게 된 것이다.

4.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일리아스>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그는 트로이아와의 전쟁에서 죽는다. 원래 아킬레우스가 살고자 했던 삶은 명예를 포기하는 대신 죽음의 운명에서 멀어지는 것이었다. 그런 그가 다시 전장에 돌아왔다는 것은 죽을 운명을 각오했음을 말해준다. 작중에서 아킬레우스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요절할 운명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그러한 자신의 운명을 겸허히 수용한 결과, 그는 시인의 노래를 통해 불멸의 명성을 얻게 되고, 제우스가 새로운 명예를 수여하였다. 그것은 강대진이 말했듯이, “자기 운명을 받아들이고 적에게 관용한 데서 생겨난 새로운 명예이다.”

누가 영웅으로 불리고,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며, 영웅적 가치란 무엇인지. <일리아스>를 통해 이 질문에 대해 어느 정도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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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Lewis <순전한 기독교>(문고본, pp. 168~ 182) 중 발췌


1) 결혼의 영속성에 대해

기독교의 결혼관은 남편과 아내는 하나의 단일한 유기체 – 이것은 한몸에 해당하는 현대어입니다 –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을 감상적인 표현이 아니라 사실의 진술로 믿습니다. 인간이라는 기계를 만든 제작자는, 남자와 여자라는 두 반뽁은 단지 성적인 차원에서만 짝으로 결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차원에서 완전히 결합되도록 만들어졌다고 말씀합니다. 혼외정사가 그토록 흉해 보이는 것은 원래 함께 어울려 모든 차원에서 연합을 이루도록 만들어진 것에서 딱 하나(성적인 연합)만을 떼어낸 탓입니다.

교회들은 적어도 이혼이 일종의 외과 수술처럼 살아있는 몸을 잘라내는 일과 같다는 데에는 모두 동의합니다.......이혼을 단순히 ‘짝 재정리하기’ 정도로 여겨서, 배우자에게 더 이상 사랑을 느끼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을 경우에는 언제든지 이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현대인의 관점에 반대합니다.

성적 충동이 다른 충동들과 똑같은 것이라면, 성적 충동 역시 다른 충동들과 똑같이 취급해야 합니다. 즉, 다른 충동들이 약속의 제재를 받듯이 성적 충동 역시 결혼 서약의 제재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느껴야만’ 결혼 생활을 지속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경우, 결혼을 계약이나 약속으로 볼 여지는 아주 사라져 버립니다...그런데...서로 사랑하고 있는 연인들에게는 약속으로 자신들을 묶으려는 경향이 자연스럽게 나타나기 마련입니다....기독교의 법은 사랑의 열정이 갖는 본질에 어울리지 않는 무언가를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열정 자체가 촉구하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라고 요청할 뿐입니다.

‘사랑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꼭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와 같은 두 번째 의미의 사랑은 사랑(사랑의 느낌과 구별되는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의지로 유지되며 의도적인 습관으로 강해지는 깊은 연합, 두 사람이 하나님께 구해서 받는 은혜로써 강화되는 깊은 연합입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좋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순간에도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좋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을 때에도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심지어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배우자 아닌 다른 사람에게 쉽게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이 사랑을 계속 지킬 수 있습니다.

처음의 흥분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감정적이지 않은 재미에 마음을 붙일 준비가 되어있는 그 사람이야말로 아주 다른 방향에서 새로운 흥분을 발견하게 되기 쉽습니다...저는 이것이야말로 “어떤 것이 먼저 죽지 않는 한 참으로 살아날 수 없다”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담긴 뜻의 작은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결혼을 두 가지 종류, 즉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부과하는 법으로 통제되는 결혼과 교회가 교인들에게 부과하는 법으로 통제되는 결혼으로 구별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엄밀하게 구별해야 어떤 부부가 기독교적 의미에서 결혼했으며, 어떤 부부는 그렇지 않은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2) 아내의 순종에 관하여: 에베소서 5장 22~24절에 대한 답변

(왜 머리가 필요하냐는 질문에 대해) 기독교에서 가정에 머리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은 결혼이 영속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남편과 아내의 의견이 언제나 일치한다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하지만 실제로 의견이 갈렸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결혼이 영속적인 것이라면, 최후의 수단으로 둘 중에 한 사람은 결정권을 가져야 합니다. 헌법 없이는 어떤 연합체도 지속시킬 수 없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왜 꼭 남자가 머리가 되어야 합니까?...주위 사람들을 지켜본 바에 따르면 자기는 가정의 머리가 되고 싶어 허는 여성도 옆집 여성이 머리 노릇을 하는 것은 보통 좋게 보지 않습니다...아내 자신들이 남편 위에 군림하는 일을 어느 정도 부끄러워하며 그렇게 자신에게 휘둘리는 남편을 경멸하는 것을 보면, 아내가 남편 위에 있어야 한다는 규칙은 무언가 부자연스런운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가정과 바깥 세상의 관계는 최후의 수단으로 결국은 남성이 책임져야 하는데, 남성은 가정 밖의 사람들에 대해 언제나 더 공정해야 할 입장에 있으며 또 대개는 더 공정하기 때문입니다...남편은 아내의 강력한 가족 사랑으로부터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후 결정권을 갖습니다.

사랑(PP. 205~211)

기독교적 의미의 사랑은 감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감정의 상태가 아니라 의지의 상태로서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자연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남에 대해서는 배워서 익혀야 하는 것입니다.

대개의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마음이 생길 때 그 마음을 북돋워야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앉아 인위적으로 애정의 감정을 만들어 내려고 애쓰는 것이 곧 사랑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입니다. 어떤 이들은 기질적으로 냉정합니다...자신이 이웃을 사랑하나 사랑하지 않나 고민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그냥 그를 사랑한다 치고 행동하십시오. 그러먼 곧 위대한 비밀 하나를 발견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 치고 행동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로 그를 사랑하게 된다는 비밀 말입니다... 그가 단지 하나님이 지으신 자아이기 때문에 나의 행복을 바라듯 그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잘해 준다면, 그때마다 우리는 조금식 더 그를 사랑하게 될 것이며, 아니면 적어도 덜 싫어하게 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기독교적인 사랑은 머릿속이 감상으로 가득찬 사람들에게는 아주 냉정해 보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애정과 아주 구별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애정을 낳습니다...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친절하게 대하려고 애쓰며, 그렇게 하는 가운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처음에는 자기가 좋아하게 되리라 상상조차 못 했던 사람들까지 포함해서-좋아하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치고 행동하십시오...“만일 내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무엇을 할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래서 떠오르는 일을 가서 하십시오.

감정은 하나님의 주된 관심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든 인간을 향한 사랑이든, 기독교적인 사랑은 의지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노력한다면 곧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마22:37-38)”는 계명에 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감정은 있다가도 없어지는 것이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의 죄나 무관심에 지치는 법이 없습니다. 그 사랑은 우리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하는 한이 있더라도, 또 하나님께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죄를 치료하겠다는 결심을 완수할 때까지 단 한 걸음도 뒤로 물러서지 않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여성관과 결혼관 (헨리 채드윅, <교부 아우구스티누스>,pp150~151 발췌)


(고린도 전서 11:7에 대한)아우구스티누스의 의견은 남자와 여자가 육체적으로 구별될 뿐, 영혼이나 정신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여성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당시 생물학적인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아담에게 지적인 대화를 나누고 일을 함께할 짝으로서 조력자가 필요했다면, 하느님은 분명히 또 다른 남자를 주셨을 것이다. 하느님이 이브를 주셨을 때 의도하신 것은, 종의 유지를 보장하시려는 것이었다”(de genesis ad litteram ix9)

또한 그는 부부가 서로 ‘나란히 걸어가야 한다’(결혼론 I.1)고 말했다. 남편은 앞에 걸어가고 부인은 아이들과 짐을 챙겨서 뒤에 따라가는,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는 이 관습을 아우구스티누스는 안타깝게 여겼던 것 같다. 공공 영역에서는 남편과 아내가 평등하지 않지만 혼인의 권리에서는 절대적으로 동등하다고 그는 말했다(마니교의 파우스투스에 반대하여22.31; 구약 7경서에 대한 물음들iv59)

어떤 설교에서 그는 자연, 음악, 꽃과 그 향기, 좋은 음식, 그리고 ‘부부 간의 포옹’에서 느끼는 기쁨이 정당한 것이라고 선언한다(설교 159.2). <신국론>(xxii.17)에서는 다가올 세상에서 부활한 남자와 여자 모두 남자의 육체를 지니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단호히 거부한다. 이런 생각은 마치 여성성을 창조주의 불미스러운 오류로 생겨난 것처럼 여기는 것이었다.


디트리히 본회퍼의 결혼

(<저항과 복종: 옥중서간> 중 5월15일 레나테와 베트게의 결혼식을 위해 쓴 설교문 발췌. 대한기독교서회, pp. 103~111)


본문: 에베소서 1:12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들이 서로에게 서약한 “예”라는 대답과 더불어 그들은 자유로운 결단 속에서 삶의 전환을 맞이한 것입니다. 두 사람의 삶은 지속적인 결합에 직면해 주어졌던 온갖 물음과 염려들에 기쁨에 가득 찬 확신을 갖고 도전하고, 자신의 행동과 책임 가운데서 그들의 삶을 위한 새로운 나라를 차지한 것입니다. 이러한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삶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측량할 수 없는 자유와 힘이 주어져 있다는 것에 대한 환희가 모든 결혼식에서 울려퍼져야 합니다.

그대들이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즉 여기서 작용하고 있고, 승리하를 구가하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인간적 의지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들이 가는 길은 당신들 스스로 선택한 길입니다...따라서 그대들 자신과 그대들만이 이에 대한 책임을 집니다....이것은 우리의 의지요, 우리의 사랑이며, 우리의 길이라고 말할 용기가 없다면 그것은 잘못된 신앙으로 도피하는 것입니다. “강철은 사라져 가지만 우리의 사랑은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대들에게 승리, 환희, 자부심을 허락함으로써 하나님은 그대들을 당신의 의지와 계획의 도구로 삼으셨습니다...그는 그렇게 하심으로써 동시에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십니다. 그는 그대들의 사랑을 성스러운 결혼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대들의 결혼생활을 제정했습니다. 결혼은 그대들 사이의 사랑 이상의 것입니다. 결혼생활은 좀 더 높은 존엄성과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결혼은 하나님이 거룩하게 제정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인간을 마지막 날까지 보존하시기를 원합니다. 사랑 속에서 그대들은 오직 자신들만으로 바라보지만, 결혼을 통해서는 인류의 한 지체가 됩니다. 결혼이란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위해 오고가게 하시며, 이를 통해 당신의 나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결혼은 인격을 초월하는 것이며, 신분이고 직무입니다...하나님과 인간들 앞에서 부부되게 하는 것도 사랑이 아니라 결혼입니다...그대들의 사랑이 결혼을 지탱해 주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결혼이 그대들의 사랑을 지탱해 줍니다.

하나님은 그대들의 결혼을 파기될 수 없는 것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19:6)” 하나님은 그대를 결혼을 통해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강조는 내가)......그대들은 사랑 안에 항상 내재하는 불안에서 벗어나 확신과 신뢰를 갖고 우리는 결코 서로 헤어지지 않고 뜻에 따라 죽을 때까지 하나라는 사실을 말해도 좋습니다.

하나님은 그대들이 결혼을 통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 안에서 합당한 일입니다. 남편들이여, 아내를 사랑하시오.(골3:18)”..그대들은 그대들의 가정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자유롭습니다. 단지 하나에서,, 즉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는 것에서만 그대들은 속박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남편과 아내에게 그들이 가져야 할 영예를 허락했습니다. 창조이야기에 나와 있는 대로 남편에게 봉사하고 그를 돕는 것이 아내의 영예이며, 아내를 마음으로부터 사랑하는 것이 남편의 영예입니다. 남편은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한 몸이 되고”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해야 합니다.(창 2:24, 마 19:5, 엡 5:29. DBW3(창조와 타락),88-95)” 남편을 지배하려는 아내는 자신과 남편에게 불명예를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것 또한 자신과 아내에게 불명예를 가져다주는 것입니다...아내가 남편과 같이 되려는 데서 명예욕을 찾고, 남편이 아내를 단지 자신의 지배와 방종의 장난감으로밖에 여기지 않는다면, 결혼생활은 불건전한 시간과 관계들로 채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가정은 세계 한가운데 존재하는 나라 그 자체요, 시대의 폭풍 속에 있는 성채요, 피난처며, 성소입니다. 가정은 외적이고 공적인 삶 속에 나타나는 변화무쌍한 사건들의 흔들리는 터전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만 안식처를 갖습니다. 즉 가정은 하나님에 의해서만 의미와 가치, 본질과 권리, 그리고 규정과 존엄성을 획득합니다. 가정은 세계 안에 하나님의 터전...그리고 무엇보다도 행복이 거쳐해야 하는 장소입니다...이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중대한 운명이며 과제하는 것을 아는 아내는 복됩니다.

“남편이 진심으로 아내를 믿으면 가난을 모르고 산다. 그의 아내는 살아있는 동안 오직 선행으로 남편을 도우며 해를 입히는 일이 없다. 양털과 삼을 구해다 부지런히 손을 놀려 일하기를 즐거워한다....날이 밝기도 전에 일어나 식구들에게는 음식을 만들어 주고, 여종들에게는 일을 정해 맡긴다...한 손은 펴서 가난한 사람을 돕고, 다른 손은 펴서 궁핍한 사람을 돕는다...자신감과 위엄이 몸에 배어 있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자식들은 모두 일어나 어머니의 업적을 찬양하고, 남편도 아내를 칭찬하여 이르기를 ‘덕을 끼치는 여자들은 많이 있으나, 당신이 모든 여자들 가운데 으뜸이오’라고 말한다(잠31:11-13,15,20)” “어진 아내는 남편의 면류관입니다(잠12:4)”

남편이 아내의 머리로 지칭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심같이(엡5:23)”라는 내용이 첨가된다는 것은 우리의 지상적인 관계에 신적인 광채가 비쳐지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남편의 존엄성은 인격적 능력이나 성품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혼인과 더불어 받은 직무 안에 놓여 있습니다. 아내는 이러한 남편의 존엄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존엄성은 동시에 남편 자신에게는 최고의 책임입니다. 머리로서의 남편은 아내, 결혼, 가정에 대해 책임을 집니다. 남편은 자기 식구들을 돌보고 보호해야 합니다...(남편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가정을 대표하는 가장입니다.

하나님은 결혼에 복과 함께 짐을 지워 주십니다. 복은 후손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의 계속되는 창조사업에 동참하게 합니다...부모는 하나님으로부터 자녀들을 얻고 그들을 다시 하나님께 인도해야 합니다. 따라서 부모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권위를 갖게 됩니다.

아내와 남편에게는 하나님의 진노의 말씀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덮여 있고 그들이 감당해야 할 하나님의 짐이 지워져 있습니다. 아내는 고통을 통해 자녀들을 출산해야 하고, 남편은 자기 자녀들을 양육하기 위해 가시밭에서 곡식을 거두어야 하며 얼굴에 땀흘려 노동을 해야 합니다....이 짐 때문에 하나님을 찾고 그들의 본질이 하나님 나라에 있음을 기억하게 됩니다...지상의 가정은 하늘 집의 모상입니다. 지상의 가족은 모든 인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반영해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에게 결혼의 근거로서 그리스도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려고 여러분을 받아들이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서로 받아들이십시오.(롬 15:7)”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대들의 죄를 서로 용서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것 없이는 인간의 공동체도, 결혼도 성립될 수 없습니다...서로 대립해 죄를 상대방에게 떠넘기지 말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상대를 매일 마음으로부터 용서해야 합니다. 그대들의 가정으로부터 나오는 광채와 능력이 다른 사람들의 가정에 미치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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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투퀴디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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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에 아테나이로 표기된 부분은 편의상 아테네로 바꾸었음을 알림.

30년 동안 전 그리스 세계가 말려들게 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역사를 기록한 이 책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전쟁이 터지자마자 그는 이 전쟁이 과거의 어떤 전쟁보다 기록해둘 가치가 있는 큰 전쟁이 되리라 믿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투퀴디데스는 자신의 조국 아테네를 몰락시킨 전쟁에 대해 기술하였고, 전쟁의 원인과 전개, 전쟁 속에서 드러난 인간 행동의 패턴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는 “과거사에 관해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따라 언젠가는 비슷한 형태로 반복될 미래사에 관해 명확한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내 역사 기술을 유용하게 여길 것이며,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라고 말한다. 즉, 인간의 본성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나 전쟁 중에 벌어진 일들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유사한 모습으로 끊임없이 재현될 것이라고 그는 예언하였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다 보면, 그의 예언이 허언은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전쟁의 원인에 관하여, 투퀴디데스는 페르시아 전쟁 이후 “아테네의 세력 신장이 라케다이몬인들에게 공포감을 불러일으켜 전쟁을 불가피하게 만든 것”이라고 분석한다. 여기서 핵심은 공포다. 라케다이몬(스파르타)은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급격히 성장한 아테네를 두려워하여 견제하였다. 여기에는 단순한 공포감 말고도 이익, 명예심이 결합되어 있는데, 도널드 케이건은 “투키디데스의 이 세 가지 설명 방식은 모두 국제관계를 지배하는 근본적인 동기에 대한 자신의 분석을 정당화한다. 공포심, 명예, 이익이 바로 그것이다”라며 투퀴디데스의 분석이 여전히 유효함을 시사하였다(도널드 케이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까치). 또한, 이러한 설명은 ‘투퀴디데스 함정(Thucydides Trap)’이라는 개념으로도 유명한데, 최근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은 『예정된 전쟁』(정혜윤 옮김, 세종서적)에서 이 개념을 통해 미중 갈등이 초래할 위험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개인적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또 다른 부분은 3권 81~83장에 걸쳐 나오는 케르퀴라 내전과 그로 인한 학살에 대한 분석이었다. 케르퀴라의 민주파와 과두파가 치열한 정치적 분쟁을 겪고 있었는데, 과두파가 케르퀴라의 민주정을 전복시키려는 과정에서 아테네와 라케다이몬까지 개입한 내전이 발발하였고, 결국 민주파가 승리하였다. 승리한 민주파는 “자신들이 적으로 간주한 시민들을 계속 학살했다.”

그런데 이 학살은 정치적 보복의 형태만을 띠지 않았다. 어떤 이는 개인적 원한 관계 때문에 누군가를 죽였고, 어떤 이는 채무 관계 때문에 죽었다. 투퀴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에 일어난 잔혹한 죽음과 학살은 이번 전쟁에만 국한된 특수한 사건이 아니라 모든 전쟁에서 일어날 수 있다고 파악하였다. 왜냐하면, “평화 시에는 도시든 개인이든 원하지 않는데 어려움을 당하도록 강요받는 일이 없으므로 더 높은 도덕적 수준을 유지한다. 그러나 일상의 필요가 충족될 수 없는 전쟁은 난폭한 교사(敎師)이며, 사람의 마음을 대체로 그들이 처한 환경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전쟁은 살상과 같은 폭력이 더 일상화된 ‘가치 전도’의 상황이다. 이로 인하여 기존에 존재했던 증오와 분노라도, 전쟁을 만나면서 그 양상이 더 극단적으로 치닫게 된다. 『마을로 간 한국전쟁』(박찬승, 돌배개)에서도 민간에서의 상호 학살 과정을 분석하며, 그 원인을 한국전쟁 이전부터 각 마을 공동체가 갖고 있던 갈등이 전쟁 기간 중에 학살이라는 형태로 표출된 것으로 지적하였다.

또한 전쟁은 대부분의 사람이 최소 두 진영으로 나뉘어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상황이다. 폭력의 일상화에서의 이분법적 대립과 갈등은 곧 상대 진영에 대한 학살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여기서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고, 모든 사람들은 둘 중 하나에 참여하기를 강요받으며 또 강요한다. “충동적인 열의는 남자다움의 징표가 되고, 등 뒤에서 적에게 음모를 꾸미는 것은 정당방위가 되었다. 과격파는 언제나 신뢰받고, 그들을 반박하는 자는 의심을 받았다.”

투퀴디데스는 이러한 전쟁의 광기를 초래하는 근원 역시 “탐욕과 야심에서 비롯된 권력욕”이라고 보았다. 정치의 지도자들은 권력을 잡기 위해 극단적 수사를 동원하여 광기를 부추기며, 그 과정에서 반대파에 대한 학살이나 폭력적 수단을 통한 불법적인 권력 탈취가 행해진다는 것이다.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으며, 시간이 흘러 변하는 것과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누군가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고 한국전쟁을 떠올릴 수도 있고, 어떤 이는 내전의 성격을 갖는 다른 전쟁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무엇을 떠올렸든, 전쟁은 “인간의 본성에 따라 언젠가는 비슷한 형태로 반복될” 것이라는 투퀴디데스의 예언적 지혜는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여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분량도 만만치 않거니와, 생소한 인명과 지명, 각 동맹국 간의 복잡한 이합집산에 대한 설명이 계속해서 등장하여, 서사의 흐름 자체를 좇아가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전쟁의 마지막 10년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도널드 케이건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함께 읽을 것을 권한다. 현대인이 좀 더 읽기 쉬운 문체와 적재적소에 배치된 지도 자료로, 내용이 좀 더 머리에 잘 들어온다. 그리고 투퀴디데스의 서술이 중단된 이후 부분까지 서술되어 있다. 나도 케이건이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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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21-01-06 0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전을 읽으셨군요. 저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2021-01-06 07: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Redman 2021-01-06 13:4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

막시무스 2021-01-06 08: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본성이 바뀌지 않고, 전쟁에서 벌어질 역사가 재연되리라는 통찰이 서늘하게다가 오네요!

얄라알라 2021-02-11 2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이관왕! 축하드립니다!
 

마루야마 마사오, 김석근 옮김, 초국가주의의 논리와 심리, 현대 일본의 정치와 사회, 한길사, 1997, pp. 45~64

무라카미 하루키, 이영미 옮김, 약속된 장소에서 언더그라운드 2, 문학동네, 2014

 




1.

누미노제(Numinose)전적 타자, 즉 세속 영역을 철저히 초월하는존재로, 인간으로 하여금 압도적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이 공포심은 옆방에 호랑이가 있을 때에 물리적인 공포심과는 달리, 초월적·초자연적 존재에 압도되면서 생긴 경외심에 가깝다. C.S. 루이스에 따르면 이러한 누미노제를 경험하는 것이 종교의 첫째 요소이다. 그러나 누미노제 자체는 도덕적 선과 같은 것이 아니므로, 경외감에 사로잡힌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그것을 마치 선악을 넘어선대상처럼 생각하기쉽다. 피조물보다 질적으로 더 우위에 있는 존재를 자각하는 것은 종교의 첫 요소이지만, 그것에만 머물면 필연적으로 광신과 사이비로 흐르게 된다. 누미노제 앞에서 개인의 개별성(individuality)과 주체성(subjectivity)은 마비되어 모든 판단 기준이 도덕적 선악이 아니라 누미노제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누미노제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은 C.S.루이스, <고통의 문제>, 서론 참조)

 

2.

마루야마 마사오는 전전(戰前) 일본 사회를 규정한 초국가주의에 대해 국가가 국체에서 진선미의 내용과 가치를 점유하는 곳이었다고 분석한다. 국가가 진선미의 절대가치를 체현했다면, 그 기반인 국체, 곧 천황은 진선미의 극치이며 일본제국은 본질적으로 악을 행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일본제국이나 천황은 다른 기준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선이고, 이러한 구조 하에서는 국가는 개인의 어떠한 정신영역에도 자유자재로 침투할 수있다. 이는 이미 메이지유신 이후 정신적 권위과 정치 권력과 하나가 된 순간부터 그 싹을 보였다. 1870~80년대 자유민권운동이 있었지만, 그것은 도덕의 내면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오로지 개인 내지 국민의 외부적 활동의 범위와 경계를 둘러싼 다툼일 뿐이었다. 이와 같은 자유민권운동이 민권에서 국권론으로 논의의 중심이 쉽게 옮겨간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따라서 선이나 진리가 개인의 내면이 아니라 외부에 존재하고 개인의 내면을 보호할 어떠한 수단도 없던 일본에서는 구조적으로 종교나 도덕, 양심과 같은 사적인 가치는 국가에 의해서 인정받을 수도 생겨날 수도 없었고, 어떠한 경우에도 침해받지 않는 권리를 부여받은 근대적 개인이 설 공간도 없었다. 오히려 근대적 개인에게 주어지는 양심과 권리 같은 사적인 것은 절대적 선인 국가·국체에 대한 악이거나 악에 가까운 것으로서 부정된다.

 

초국가주의 사회는 진선미의 현현이라는 궁극의 윤리적 실체”, 곧 천황을 정점에 둔 일종의 동심원 구조를 이루고 있는 사회다. 이러한 동심원 구조에서, “국가적·사회적 지위의 가치규준은 그 사회적 직능보다도 천황으로부터의 거리이며, “절대적 가치체인 천황에 가까울수록 그 사람은 지위에서뿐만 아니라 존재론적으로도 더 우월해지는 것이다. 나보다 지위상 위에 있는 사람은 질적으로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닌 것이다. 밑에 있는 사람은 윗사람 말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다. 그는 지성, 도덕 판단, 가치 판단에 있어서 더 우월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사람은 자기보다 윗사람에 종속되고 자기보다 밑인 사람을 종속시키는 억압의 이양이 연쇄적으로 발생하여 결국 끊임없이 한쪽에서 규정되고 있으면서 다른 쪽을 규정한다는 관계가 사회 전반적으로 완성된다. 한 사람은 개인으로서 존재할 수 없으며, 반드시 누군가(상급자)를 매개해서만 그 가치와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런데도 누구도 이를 독재라 여기지 않는다. 독재라는 관념도 자유로운 주체의식이 전제되어야 가능한데, 초국가주의 사회에서는 그런 의식이랄 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참 편리한 구조다.

 

이보다 더 무서운 초국가주의 사회의 특징은, 개인의 도덕성과 주체적 사고 능력을 마비시킴으로써 권위에 혹닉(惑溺)되어 무슨 명령이든 충성스럽게 수행하는 인간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초국가주의에는 자유로운 주체의식과 그에 따르는 개인의 책임은 불필요하다. 밑에 있는 사람은 자신보다 질적으로 뛰어난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로써 이전 시대보다 훨씬 더 활동적이고 침략적행위도 가능해지는 한편, 초국가주의라는 상자 안에서, ‘그 자체로 도덕적 선인 국가와 천황을 위한 행동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도덕적 정당화 명분까지 얻는다. 다시 봐도 참 편리한 구조다.

 



3.

지극히 억측이지만, 옴진리교 교단이 작동하는 원리는 마루야마가 고찰한 초국가주의의 구조와 매우 흡사한 것처럼 보인다. 아사하라 쇼코는 카리스마적 지도력과 통찰력으로 신도들을 압도시킨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인터뷰한 옴진리교 ()신도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본 듯한 아사하라의 설법에 압도되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은, 아사하라가 “‘현세에서 이런 일을 했지라거나 당신은 현세에 있을 때 너무 놀아서 공덕을 많이 낭비했어’”라고 한 것에 놀랐다고 한다. 수상쩍은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의 신비적 아우라와 카리스마에 눌려 그의 권위를 받아들인다.

 

그런데 아사하라 쇼코의 절대적 권위는 그의 직관적 통찰만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랬다면, 옴진리교라는 조직은 일찍이 무너졌을 수 있다.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옴진리교에 사람들이 빠진 데는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음을 시사한다.

 

옴진리교에 빠진 사람들의 대부분이 가진 특징 중 하나는, 세상의 문제점과 모순에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었다. “매사에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고, 현세에 불만을 품은 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옴진리교뿐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옴진리교의 교의와 아사하라 쇼코는 해결자였고, 자신들이 품은 의문을 최종적으로 풀어줄수 있는 존재였다. 세상의 복잡한 문제들은 옴진리교라는 닫힌 상자 속으로 들어가면 카르마해탈이라는 모호한 개념으로 전부 명쾌하게 해명된다.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듯한설법과 교의로 자신들의 의문을 해결해줌으로써 아사하라 쇼코의 권위는 형성되어 갔다. 그는 존사요, “최종 해탈자로서 교단 내부에서는 절대적 가치를 지닌 실체이다. 이로써, 아사하라라는 한 종교적 초월자에 의해 개개인은 해탈되어야 하는 자로 규정되며, 이런 식으로 그가 신도들의 내면 의식에 침투함으로써 그들 개개인의 주체 의식은 희박해지기 시작한다.

 

따라서 옴진리교 내부에서는 구조적으로 이란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최종 해탈자아사하라의 판단과 결정은 모두 올바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성도들은 책임 의식 등을 모두 아사하라 한 명에게 떠넘겨버린다. 그들은 절대 잘못될 수 없는 그의 말을 듣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반 신도들이 그의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합리적인 의문이 아니라 모두 자기 자신의 더러움에서 기인한 것이다. 나중에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 역시도 결국은 나는 알지 못하지만 뭔가 심오한 의미가 있겠지같은 사고 과정을 통해 아사하라의 권위에 대한 더 이상의 의심을 중단시킨다.

 

아사하라가 선인 데 반해, 바깥 세상은 악, 그들의 표현으로는 번뇌와 진창의 세계다. 세상에 악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옴진리교의 경우 문제는 처음부터 자신들은 절대적 선이라는 전제를 받아들이다는 점이다. 옴진리교 신도들 대다수가 지하철 테러 사건을 옴진리교의 소행으로 여기지 않는(혹은 않았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선악 이원적 세트에서, 아사하라 쇼코와 교의에 의해 그들은 언제나 선이었기에, 그런 악한 일을 저지를 가능성은 애초에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자기라는 사적인 의식의 존재는 희미해지고 악한 것이 된다. 옴진리교의 수행이라는 것도 최종적으로 자아를 버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아사하라는 자기번뇌를 동일화한다. 따라서 해탈이라는 궁극적 지향을 위해서는 번뇌와 함께 자기’, 한 신도의 말을 따르자면 잠재의식 깊은 곳 개인의 본질적인 왜곡을 함께 버려야 한다. 이렇게 자기의식을 버린 자리에는 아사하라가 대신한다. 그리하여 아사하라에 더 가까워지는 것이 좋은 것이며, ‘자기같은 사적인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은 나쁜 것이 된다. 이 양상은 다시금 초국가주의의 논리를 연상시킨다. 더욱이, 옴진리교 신자들은 현세의 모든 이익(인간관계, 직장, 가족)을 모두 포기하고 출가한 성도들이 대다수다. “이제 와서 되돌릴 순 없다는 마음에 그들은 더욱 해탈이라는 정신적인 이상향을 추구하게 된다. 그나마 그들을 잡아줄 일상적 경험이 끊긴 폐쇄적 상태에서의, 수행과 약물을 통한 각성된 의식체험은 더욱 자아의식을 희미하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옴진리교 신자들은 아사하라의 카리스마와 교리에 혹닉(惑溺)되어 자기를 잃었으며, 그 결과로 아사하라의 어떠한 명령도 거부하지 못하는 수동적 존재가 되었다. 실제로, 무라카미 하루키와 인터뷰한 이들은 모두, 인터뷰 당시 옴진리교를 탈퇴하여 교단에 매우 부정적인 이들조차도 자신에게 가스 테러 제안이 오면, 매우 망설였을 것이란 답변을 하였다.

 

4.

마루야마 마사오는 <초국가주의의 논리와 심리>(1946년에 작성)라는 논문을 끝맺으면서, 천황이 절대성을 상실한 1945815일 이후야말로 일본 국민은 비로소 처음으로 자유로운 주체가 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50년 뒤인 1995, 초국가주의를 닮은 옴진리교 교단에 의해서 수많은 시민이 끔찍한 피해를 입었다. 첫 번째는 그 폭력성이 일본 외부 식민지로 향했다면, 두 번째는 일본 사회 내부에서 벌어졌다. 물론 매우 불충분한 비교라 오류도 크겠지만, 옴진리교는 최소한 초국가주의적인 것, 혹은 누미노제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동등한 인간대 인간이 아닌 누군가를 존재론적으로 높거나 낮게 보는 순간, 그리고 인간이 주체적 사고를 못하게 되는 순간, 선악이 결여된 괴물 같은 누미노제는 언제든 다시 등장하여 악몽 같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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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1-01-04 2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일혈통으로 유사이래(또는 이전부터) 하늘로부터 권위를 부여받은 아마테라스의 후손들을 인정하는 천황제는 여러 면에서 일본이 진정한 근대화를 이루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로 생각됩니다. 형이상학적 존재인 신이 아닌 인간에게 그 권위가 부여되었고, 그가 동시대에 산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다른 어떤 논의도 필요없게 된다는 점에서 일본 사회의 특수함을 느끼게 되는 듯 합니다...

Redman 2021-01-05 08:51   좋아요 1 | URL
확실히..겨울호랑이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일본은 평화 헌법조차 천황에 대한 규정에서부터 시작하니.. 일본 사회를 이해하려면, 천황제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에 <국체론>이라는 책도 나왔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