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전 세트를 구매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무슨 책인지도 모른 채 수능 끝나고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봤는데, 너무 어려워서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정말 너무 좋은 책이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서양예술사 기본 서적이니, 가급적이면 전부 읽고 정리해보려 한다.


현재 1권 제3장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읽고 있다. 

이 장에 그리스 비극을 설명한 부분이 있는데, 

개략적인 설명이더라도 그리스 비극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설명인 것 같다. '비극'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비극이야말로 아테네 민주제의 특색을 가장 선명하게 나타내는 예술이다. 아테네 민주제의 사회구조가 내포하는 갖가지 모순을 이만큼 직접적이고 명확하게 표현한 예술장르는 없을 것이다. 비극은 그 외적 형식 즉 일반대중을 위해 공연되었다는 점에서는 민주적이지만, 그 내용 즉 소재가 된 영웅전설과 영웅적 비극적 생활감정이라는 점에서는 귀족적이었다."


즉, 민주제 시대 고대 그리스는 사실 정치/문화적으로 귀족적 관습과 파토스에 더 익숙했다. 

그러면 비극이 상연되던 극장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하우저에 따르면, 극장은 선전기관이었다.


"축제 극장은 도시국가가 가진 가장 효과적인 선전시설이었다. 따라서 도시국가가 그 운영을 시인들 마음대로 하도록 맡겨놓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비극시인들은 실상 국가의 녹을 먹고 국가가 필요로 하는 작품을 제공하는 사람들이었다....비극은 경향문학이었고, 또 그외의 것으로 평가받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당대의 현실정치를 다루었고 항상 귀족국가 대 시민국가의 관계라는 당시의 가장 절박한 문제와 직간접으로 관련된 문제만을 주제로 삼았다."


현대와 고대 그리스의 정치관에서 가장 차이가 나는 부분은, 고대 그리스인은 정치와 실생활의 구분이 없었다는 것이다(정치와 정치학이 독립적으로 이해되기 시작한 것은 마키아벨리 이후이다). 그러므로 "실생활이나 정치와 아무 관계가 없는 연극이라는 관념은 당시의 예술관으로 보면 전혀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스 비극은 가장 좁은 의미의 '정치극'이었다."


다시 말해 그리스 비극은 정치적 질문들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전제로 하고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봐보자.



안티고네: :

오오, 내 친아우인 사랑하는 이스메네야,

오이디푸스에게서 비롯된 수많은 재앙 가운데

제우스께서 우리 생전에 이루시지 않은 것을

너는 한 가지라도 알고 있니? 고통과 재앙,

치욕과 불명예 가운데 내가 너와 나의 불행에서

보지 못한 것은 한 가지도 없으니 말이다.

하거늘 방금 또 장군님께서 도시의 모든

백성들에게 무슨 포고를 내리셨다는 거니?

알고 있니? 아니면 너는 적들이 받아야 할 재앙이

우리 친구들을 위협하고 있는 것도 모르고 있니? (<안티고네>, 1~10행)


안티고네는 처음부터 '적'과 '우리'를 구분하면서 대사를 시작한다. 

적은 무엇이고, 우리는 무엇인가? 

적과 우리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이며,

적과 친구의 구도는 어떤 원리에 의해서 어떻게 연결되는가?

31~32행 안티고네의 대사에서 이를 파악할 수 있다.


안티고네:

크레온 님이 우리 두 오라버니 중 한 분은 후히 장사지내되

한 분은 장사지내지 못하게 하셨단다. (31~32행)


안티고네:

그분이 이리로 오신다는데, 이 일을 그분은

가볍게 여기시지 않고, 조금이라도 그 명령을

어기는 자는 시민들이 돌로 쳐서 죽이게 하셨대.

네 처지가 이러하니, 이제 곧 보여주게 되겠지.

네가 네 가문에 걸맞은지, 걸맞지 않은지를. (34~38행)


갈등의 원인은 안티고네의 두 오라버니, 폴뤼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의 시신 매장이다. 에테오클레스는 법과 규범에 따라 장사되지만, 장군(archon) 크레온의 명령에 따라 폴뤼네이케스는 장사도 지내지 못하고 애도조차 지내지 못한다. 폴뤼네이케스 장사 금지령에 대한 안티고네의 반박 근거는 혈연, 즉 가족윤리에 있다. 법과 같은 규범은 안티고네의 입각점이 아니다.


안티고네와 대립각은 세우는 크레온은 국가주의자, 규범주의자이다. 그의 첫대사를 봐보자.


크레온:

한데 그분의 아들들이 서로 치고받는 가운데

서로 형제의 피로 물든 채 죽고 죽이는

이중의 운명에 의해 한날한시에 죽은 까닭에,

이제는 내가 고인들의 가장 가까운 인척으로서

왕좌와 모든 권한을 갖게 되었소이다.

한데 통치와 입법으로 검증받기 전에

한 인간의 성격과 심성과 판단력을

완전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오. (170~177행)


크레온:

(...) 그리고 누구든 조국보다 친구를

소중히 여기는 자 역시 나는 경멸하오.


크레온은 통치와 입법으로서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내면과 심성도 통치와 입법으로 검증할 수 있고, 규범으로서 다스릴 수 없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생각을 더 확장하면 크레온은 국가에 충성을 바쳐야 한다는 국가주의적 사고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여기 두 가지 가치관이 대립하고 있다.

하나는 크레온으로 대표되는, 외부 세계의 궁극적 실체로서 국가와 규범을 중시하는 입장이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국가와 인간이 만든 규범 이전에 혈연으로서 맺어진 원초적 관계와 감정(친밀감 등)을 중시하는 안티고네의 입장이 있다.

국가주의/규범주의 윤리와 가족주의 윤리가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

두 입장의 대립은 결국 올바름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크레온:

(안티고네에게) 너는 긴말 말고 짤막하게 말해보아라.

너는 그러지 말라는 포고령이 내려졌음을 알고 있었느냐?

안티고네: 알고 있었어요. 공지사항인데 어찌 모를리 있겠어요?

크레온: 그런데도 너는 감히 포고령을 어겼단 말이더냐?

안티고네: 내게 그런 포고령을 내린 것은 제우스가 아니었으며,

 하계의 신들과 함께 사는 정의의 여신께서도

 사람들 사이에 그런 법을 세우시지 않았으니까요.

 나 또한 한낱 인간에 불과한 그대의 포고령이

 신들의 변함없는 불문율들을 무시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고는 생각지 않았어요.

 그 불문율들은 어제오늘에 생긴 게 아니라

 영원히 살아 있고,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르니까요. (446~456행)


올바름에 대한 두 가지 입장은 결코 화해될 수 없음을 크레온과 안티고네의 이 대화만 봐도 알 수 있다. 필멸의 인간이 만든 명문화된 규범(크레온). 불멸의 신이 만든 불문율(안티고네).

아마 이 연극을 실제로 봤을 당시의 관객들은 두 입장 중 무엇이 옳은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을 것이다. 혹은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자체가 당대에 정치적으로 민감했던 이슈를 다루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수도 있겠다.


개인은 국가의 법과 정치 지도자의 명령을 어디까지 복종할 것인가? 국가의 권한은 어디까지 정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 크레온은 오만방자하게(hybris) 장군으로서 자신에게 허락된 권한의 범위를 넘으려 했다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자신의 아들 하이몬과 아내 에우리디케가 자살한 것이다.


결국 무엇이 올바른가? 그리고 국가 논리의 균열 지점은 어디인가? <안티고네>가 던지는 질문은 이런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이 주제로 참고가 될 수 있는 책들을 몇 권 정리해본다..

마사 누스바움,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

헨리 소로우, <시민의 불복종>

카를 슈미트, <정치적인 것의 개념>

카를 슈미트, <파르티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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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9-03 09: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옆에 꽂아 놓고 틈틈히 참고하는 책이예요
구판과 개정판이 섞여서 5권^^
시대마다 요구되어지는 올바름이 다르죠.
페이퍼 넘 잘 쓰세요

김민우 2021-09-03 11:59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구판과 신판이 다 있으시군요 ㅋㅋ

막시무스 2021-09-03 11:1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김민우님의 이 책에 관한 리뷰가 계속 이어지길 응원합니다!ㅎ 구판으로 2권까지 봤다가 신판이 나와서 1권을 다시 구입했는데 언제나 그렇듯이 대기중이네요!ㅠ.ㅠ

인간의 법 VS 신의 법 사이에서 갈등에 관한 안티고네를 보면서 당시 지배층과 피지배층은 어떤 느낌이 었을지 궁금해 집니다. 즐거운 불금되십시요!

김민우 2021-09-03 12:02   좋아요 3 | URL
앗 더 열심히 읽겠습니다 ㅋㅋ 아마 지배층은 크레온 응원하고 피지배층은 안티고네 쪽에 더 공감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ㅋㅋ

초란공 2021-09-03 11: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리뷰 기다리겠습니다~ ^^

김민우 2021-09-03 12:02   좋아요 3 | URL
시간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읽고 써보겠습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 한국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과 위기, 개정2판
최장집 지음 / 후마니타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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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쓴 최장집의 문제의식은 87년 민주화 이후에 군사 독재가 끝났음에도 왜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았는가,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졌는가이다.

 

최장집은 87년 이후 민주화가 보수적이었다고 규정한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보수 편향적 대표 체제라는 것이다. 그가 봤을 때, 한국의 민주주의를 보수적으로 만든 가장 큰 요인은 냉전 반공주의이다. 대한민국은 국가 건설 단계에서부터 좌우갈등을 통해 적대적 이념과 세력을 배제하며 시작되었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냉전적 반공주의는 더욱 심화되었고 사회의 지배 구조와 사고의 틀을 이분법적이고 단순 도식적인 구조로 바꾸고 이를 지속적으로 재생산하는 담론적 기능을 갖는다.” 이러한 좌우 갈등과 냉전 반공주의의 확립은 한국 사회에 이념적 획일화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모든 것은 A 아니면 B. 그 중간이란 없다. 중간 지대에 있었던 조봉암 같은 인물에게는 곧바로 빨갱이 딱지가 붙기 십상이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양극화는 두 가지 결과를 낳았다. 하나는 강력한 권위주의적 국가이고, 다른 하나는 약한 정당과 약한 대표성의 문제이다. 강력한 국가와 관련하여 주목할 것은 박정희식 모델이다. 쿠데타로 집권하여 통치의 정당성이 약했던 박정희 정권은 정부의 수행 능력과 효율성에서 부족한 정당성을 찾았고, “성장, 효율성, 목표 달성이 그들의 철학이자 가치였다. 고도성장 정책을 국가 목표의 최우선 순위에 올려놓음으로써 발전주의는 국가 이념이자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방대한 행정 관료기구의 조직과 중앙정보부라는 국가기구의 신설은 권위주의적 노선의 정치적 실천이었던 셈이다. 또 한편으로, “냉전은 한국 사회에서 정치의 틀을 조직하고 그 틀 내에서 허용되는 정치적 실천과 이념의 범위를 매우 좁게 제약하는 가장 큰 힘이었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대중 참여와 정당에 의한 대표를 큰 특징으로 한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정치적 조건 속에서 한국의 정당은 밑으로부터의 대중적 이익이나 요구에 기반을 둔 대표성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냉전적 반공주의가 다른 사상이 끼여들 여지를 허용하지 않았기에 선거 경쟁에 들어온 그 어떤 정당도 보수적 이념 이외의 것을 대변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한 사회의 균열과 갈등은 정당을 통해 표출되지 못하게 되었다. 물론 1987년 이후 정당이 대중적 성격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향리적, 연줄 관계적, 지역 분획적 방법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서구와 같은 일반적 형태의 정치 균열로 발전하지 않았다.” 지역주의의 균열이 있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보수 편향적이고 지역균열은 사회경제적 내용을 결여한 담론이다. 한마디로 한국의 정당들은 이념적으로 협애한 대표 체제를 가지고 있고 사회적 기반으로부터 괴리됨으로써 정당으로서 제대로 된 구실을 못 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 사회가 어떻게 변했을까? 한국의 경우 민주화 이후 국가의 가장 큰 특징은 강력한 국가무력한 정부의 문제이다. 얼핏 모순되어 보이는 이 문제를 이해할 방법은 헤게모니, 구체적으로 하나의 정부가 냉전 반공주의라는 우리 사회의 지배적 이념을 정권의 핵심적 가치 정향으로 삼고, 이를 바탕으로 구축된 보수적 기득 이익의 지지를 받는정치적 현실에 있다. 냉전 반공주의를 과도하게 의식하면서 헤게모니를 얻기 위하여 민주화 정부가 스스로 보수적 이념 지향을 흡수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야당과 그 후보는 선거 경쟁에서 이념적 정체성을 모호하게 드러냈고, 그 결과 투표자의 지지와 선출된 자의 책임성 사이의 관계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이기보다 매우 느슨하고 모호하다.” 이러한 지지자와 선출 권력 사이의 느슨한 책임성의 고리는 집권 정당의 정체성 상실로도 이어졌다. 민주화 정부는 권위주의와 냉전 반공주의의 논리를 청산하고 새로운 사회적 대안과 비전을 제시할 기회에 실패한 것이다. “국가의 운영 원리라는 점에서 민간 정부와 앞선 권위주의 정부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최장집의 분석은 집권 정당의 느슨한 책임성과 대표성의 결과이며, 또한 국가는 강력한데 정부는 무력한 문제의 결정적 원인이기도 한다. “새로운 발전 모델을 제시하지 못한 정치 엘리트들은 점차 관료에 의존하게 되고, 곧 관료에 포획되는 관계로 바뀌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정부의 선출된 정치 엘리트들이 민주국가의 발전 모델을 제시하지 못하고 국가를 공직 배분의 장으로 여길 때, 정책 의제를 설정하고 결정을 내리는 기본적 과업이 모두 관료의 수중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대통령의 권력에 의해 보호된 기술 관료들은 언제나 듣던 성장·효율성·질서·안정이라는 익숙한 소리만을 외치게 되는데, 국민을 대표한다는 신화는 이렇게 대표와 투표자가 격리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군부의 권위주의 독재하에서는 이런 체제가 운영되는 것이 이해되어도, 민주화 이후까지도 지속되는 것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문제는 한국 민주화 이행의 보수성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한국에서의 민주화 이행은 운동에 의한 민주화협약에 의한 민주화라는 특징을 가진다. 구체제를 해체한 힘은 운동권에서 나왔지만, 민주주의를 제도화한 힘은 신민당 같은 야당으로부터 나왔다. , “한국 민주주의의 이행 과정에서는 냉전 보수주의의 정치 엘리트만이 이행을 위한 협상 과정에서 대표되고, 운동의 중심 세력들이 완벽하게 배제되는 급격한 단절이 만들어졌다. 이는 이후 민주주의의 공고화 과정에서 한국 민주주의가 보수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운동권도 그들의 가치와 이상을 정치적으로 조직화할 역량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 역시 민주화의 보수적 귀결에 영향을 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보수라는 이념적 호칭은 이름뿐, 시민들의 실생활 문제와 직결된 대안적 정책들을 민주화 정부는 만들지 못한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한국식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때인 듯하다. ‘한국식 민주주의라 하면, 박정희 정권 때 독재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했던 왜곡된 선거제도와 민주주의를 떠올릴 수 있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우덜식 민주주의가 아니라 진정으로 한국의 일상과 정치 현실에 뿌리박은, 다시 말해 한국의 갈등 상황과 계층을 정치적으로 대표하고 여러 대중 조직이 자유로운 선거 경쟁을 통해 대중 권력을 실현한다는 의미에서의 한국식 민주주의다. 정치 비관론자나 정치에 대한 광범위한 무관심 현상은 민주주의적 정치, 즉 대표성과 책임성의 원리가 제대로 실현되고 있지 않을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올해는 19876월 민주화 이후로 34년이 지난 해이다. 한 세대가 지난 셈이다. 이제는 민주화를 이끈 주체들에 대한 감사와 존경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성과와 한계가 무엇인지도 살펴봐야 한다. 민주 주체들의 민주주의 이해에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 그리고 정치 엘리트들이 만든 87년 체제의 한계는 무엇인지를 비판적으로 성찰하여 현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의 좌표를 찍을 때, 우리의 민주주의 이해도 더 깊어지고 한국의 민주주의 역시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한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 정도는 민주주의 이해 정도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남는 의문:

최장집은 대의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으로써 민주화 이후에도 민주주의의 민주화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이는 대중정당을 통해서, 즉 대의제 민주주의를 회복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버나드 마넹이 주장하듯이 선거에 의한 대의제 민주주의와 선출 권력은 민주정보다는 귀족정적 요소에 더 친화적이다(<선거는 민주적인가>, 4장 참조). 편파성(공직 진출 가능성의 편파성 및 후보자에 대한 편파적 평가)과 탁월성의 원칙을 큰 특징으로 삼고 있는 선거는 수동적 시민의 문제를 야기한다. 소극적 시민의 양산이 반드시 취약한 대표성 때문만은 아닌 이유이다. 그렇다면 이런 대의제하에서 그가 주장하는 대중정당과 정당 민주주의는 얼마만큼 기존 민주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사회적 균열에 기초한 정당체계도 결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있어서 한계를 안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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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1-09-02 1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의제 민주주의는 엘리트주의와 귀족정이라는 말씀에 한표입니다. ^^

김민우 2021-09-02 15:45   좋아요 1 | URL
마넹의 선거란 민주적인가 안 읽어보셨다면 추천드립니다 ㅎㅎ

북다이제스터 2021-09-02 15:50   좋아요 1 | URL
자와 독서 취향이 좀 비슷하신 것 같아서 반갑습니다. ㅎㅎ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와 <선거는 민주적인가>모두 이미 사 놓았는데,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추천 감사합니다. 조만간 꼭 읽어보겠습니다. ^^
 

Oxford University Press에서 출간하고 있는 'A very Short Introduction' 시리즈는 문고본 분량에 각각의 주제에 입문서 격 역할을 하는 책들을 내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원서는 500권 가까이 나왔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시리즈입니다.

국내에서는 교유서가에서 '첫단추 시리즈'로 이 시리즈를 꾸준히 출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워낙 유명하다보니 이전부터 여러 출판사에서 이 시리즈의 책을 번역했습니다.


그동안 국내에 출판된 'A Very Short Introduction'를 모아봤습니다.


1)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국내에서도 유명한 시리즈입니다. 저는 대략 이 정도만 구매하였습니다. 

이 시리즈는 늘 뒤에 더 읽을 거리도 저자들이 추가해두었습니다.

영어권 독자 기준이다보니, 저자가 추천하는 책이 국내에 번역됐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번역자분들이 국내에 번역본이 있으면 따로 표시합니다.

특히 이재만 씨 같은 번역가분은 저자가 만든 독서 안내 이외에 또 추가로 국내 독자들을 위한 더 읽을 거리도 적어두어 매우 도움이 됩니다.




2) 비아 교양

 성공회 계열 출판사 '비아'에서 <구약> <신약> <예수> <성공회>를 번역했습니다. 


<예수>를 쓴 리처드 보컴은 <예수와 그 목격자>들이라는 저서로 유명한 학자인데, 몇년전에 이 책을 인상깊게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 말고 <성서>는 교유서가에 번역되어 있는데, 역자는 이재만 씨입니다. 








3) 그리스도교를 만든 3인의 사상가

제가 신뢰하는 출판사인 뿌리와이파리의 '그리스도교를 만든 3인의 사상가'라는 시리즈로 

<사도 바오로> <아우구스티누스> <마르틴 루터>를 번역했습니다. 

각 책을 저술한 E.P.샌더스, 핸리 채드윅, 스콧 헨드릭스는 모두 각 분야의 권위자입니다. 


세 명 모두 한국에 다른 저작들이 출간되어 있는데, 샌더스의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는 비싸기도 하고, 아직 제가 사서 읽을 책은 아닌 듯하여 안 샀습니다. 핸리 채드윅의 <초대교회사>나 스콧 헨드릭스 <마르틴 루터>는 소장하고 있는데, 둘다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교를 만든 3인의 사상가 3권 중 2권이 현재 절판됐습니다. <마르틴 루터>만 남았는데, 보아하니 며칠 안 가 이 책도 절판될 것 같으니, 관심이 있으시다면 얼른 구매하시길..


 참고로 뿌리와이파리 출판사에서는

스티븐 하우의 <제국>을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절판)

번역자는 강유원, 한동희 씨입니다. 







4) 한겨레지식문고


한겨레지식문고에서 9권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없는 한 권은 <마키아벨리의 네 얼굴>인데, 이 책은 교유서가에서 원서전면개정판이 <마키아벨리>라는 이름으로 재출간되어 있어 뺏습니다. 그리고 <기후변화의 정치학>도 원서가 제4 개정판까지 나왔습니다.

시리즈 전체가 절판되었지만, 아직은 중고로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5) 기타

나머지는 여러 출판사에서 한 두권 정도 출간한 걸 모았습니다


폴 S. 보이어,  <세상에서 가장 짧은 미국사>


테리 이글턴, <인생의 의미> - 이런 것도 입문서가 있네요


마가렛 월터스, <여성 인권의 역사>


콜린 워드, <아나키즘이란 무엇인가>




로버트 영, <아래로부터의 포스트식민주의>


로저 스크러튼, <아름다움>


미리 루빈, <중세>

에릭 클레인, <성서 고고학> <트로이 전쟁>


버나드 크릭, <민주주의를 위한 아주 짧은 안내서>


스티브 스미스, <러시아혁명>






시공 로고스 총서도 very short introduction을 번역한 시리즈이기는 한데,

워낙 예전에 나와서 개정판이 나온 원서가 많을 것 같아 여기서는 제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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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8-29 00: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읽은 교유서가의 인류세가 이 씨리즈 였군요. 글이 굉장히 매끄럽고 잘 읽히던데 역시!
다른 책들도 신뢰가 갑니다!

김민우 2021-08-29 11:46   좋아요 1 | URL
믿고 읽을 수 있는 시리즈죠 ㅎㅎ

얄라알라북사랑 2021-08-29 07: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교유서가 시리즈 달랑 2권 정도 읽었는데 500권의 방대한 군집이라니!

이렇게 소개해주시니 봤던 시리즈도 다시 보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포스팅^^

김민우 2021-08-29 11:46   좋아요 0 | URL
도움이 되셨다면 참 다행입니다 ㅎㅎ

얄라알라북사랑 2021-08-29 0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겨레지식문고는 생소한데, 이렇게 안내해주셔서 보니 표지가 참 좋네요! 다 읽어보고 싶어요
 
황금광시대 - 식민지시대 한반도를 뒤흔든 투기와 욕망의 인간사
전봉관 지음 / 살림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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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스스로 이 책을 국문학자의 금광 연구라고 규정하는데, 내가 봤을 땐 이 연구는 꽤 성공적인 것 같다. 이 책의 탁월한 점은 식민지 시기 조선의 황금광 열풍이라는 한탕주의의 기원을 일본제국과의 관계, 더 나아가 전 세계적 자본주의 경제 상황에서 찾았다는 것이다.

 

책은 1~3부에서는 여러 일화들을 보여준다. 낮에는 금을 캐다가 밤에는 글을 쓴 김기진과 채만식 같은 문학가들, 금광열풍에 약해진 사회주의 운동, 황금광시대 살아있는 성공 신화 최창학과 방응모, 풍년이 오면 배가 고픈 농민들, 금광 출원증으로 수십, 수백 배의 이득을 챙기는 투기꾼들, 어떻게든 황금 하나라도 빼내려 갖은 수를 동원하는 광부들. 이러한 일화들은 식민지기의 한 단면을 그리지만, 또 동시에 당시의 세계사적 차원에서 기반을 두고 있다.

 

이 시기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였고, 전쟁의 혼란 속에서 연합국들은 탄약 및 기타 물자의 보급을 전쟁의 포화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 있던 일본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엄청난 전쟁 물자 공급을 통해 일본의 산업은 군수산업, 경공업, 농업 할 것 없이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때는 식민지 조선도 그나마 살 만했다. 하지만 1920년대 세계 경제가 공황에 빠져들고, 일본과 조선의 경제 상황 역시 급격히 악화되었다. 1923년 발발한 관동대지진은 공황의 충격을 극복하기 더 어렵게 만들었다.

 

1929년의 대공황으로 일본의 물가는 추락했다. 일본은 경제 공황 극복을 위해 금본위제를 추진했다. “금본위제하에서 금은 상품이 아니라 돈이었기 때문에 다른 물건값이 떨어져도 금은 일정 가격 이하로 절대 떨어질 수 없었다. 그럼에도 경제 혼란은 계속되었다. 일본의 극우파 군부가 정당 정치를 종식시키고 권력을 장악했다. 그 이후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대공황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기적적 기사회생의 모습을 보였다.” 군부가 이전의 무능한 정권들로부터 받은 경제 상황이란, 금 유실로 인한 신용 경색의 위기전 세계적으로 금본위제가 정지되면서 해외에서 금을 수입해올 길까지막힌 상황이었으며, 설상가상으로 군부는 미국과 영국에 대한 일전을 역설했기에 군비와 함께 유일한 국제 통화인 금을 확보해야만 했다. “도대체 어디서 금을 구하냐? 해외에서 사올 수 없었으므로 땅을 파고 찾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부에서는 연이은 지령이 떨어졌다.···정권을 장악한 군부는 대대적인 산금정책을 세우고 돈을 풀었다. 그것도 화끈하게 풀었다. 금 채굴을 장려하기 위해 금광에 보조금을 지급했고, 생산된 금을 고가에 매수했다.” 그러므로 “1930년대 초 한반도에 불어 닥친 골드러시는 정교하게 기획된 정책의 산물이었다.” “1931100%에 가까운 성장률을 보인 후 매년 50% 이상씩 초고속으로 성장한 전도유망한 사업이었던 식민지 조선의 금광업, 황금광 열풍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조선에서도 1929년 크게 증대된 쌀 생산량과 대공황은 쌀값을 폭락시켜 인구의 절대 다수가 농민이었던 조선에 치명적인 경제 위기를 가져다 주었다. 이는 조선의 경제 상황이 자급자족적 경제가 아니라 이미 생산과 소비가 분리된 자본주의로 재편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지표이거니와, 자본주의적 사회구조 속에서 쌀값의 폭락은 기초적인 의식주 생활조차 영위하기 힘들게 하였고, 대공황의 여파 속에서 다른 산업은 침체된 와중에 유독 금광업의 활황은 훨씬 도드라져 보였다.

 

책을 읽다 보면, 사람들이 투기에 빠지고 일확천금을 노리려는 속물적 심리도 자본주의적 경제의 구조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시대를 겹쳐 볼 수 있는 지점이다.

 

부제 식민지 시대 한반도를 뒤흔든 투기와 욕망의 인간사는 이 책의 핵심 주제와 논지를 담기에는 부족하다. 마치 투기의 원인을 전적으로 인간의 속물적 심성에서만 찾아내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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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1-08-27 22: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세기 한반도의 골드 러시 이야기는 처음 들어봅니다. 흥미롭지만 이것 또한 치밀하게 기획된 일이었다니요 ㅜㅜ

김민우 2021-08-28 01:24   좋아요 1 | URL
씁쓸해지는 사실이죠... 한편으로 식민지 시기의 상황은 무엇이든 식민 지배국 일본을 빼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 - 역사적 자료에 기초한 초대교회 모습 1세기 기독교 시리즈 1
로버트 뱅크스 지음, 신현기 옮김 / IVP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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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푸블리우스라는 가상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1세기 초대 교회의 예배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푸블리우스는 그리스도교인은 아니지만, 기독교 가정의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았고, 거기서 그들의 예배 모습을 관찰한다.

 

비기독교인으로서 그는 자신의 생각과 너무도 다른 예배 모습에 신선함을 느낀다. 예배를 인도하는 성직자도 없고, 노예와 자유인 할 것 없이 동등하게 대우를 받았으며, 그가 생각했을 때 종교적인 의례는 거의 보이지 않았고, 모두가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주고받는 듯하면서도 권위(성경과 바울의 서신)에 순종한다.

 

푸블리우스가 초대 교회의 예배를 보며 종종 사용하는 단어가 실제적이라는 말이다. 화려한 수사도 장대한 예식도 없었다. 하지만 푸블리우스가 본 초대 교회 교인들의 찬송, 기도, 설교는 삶에 강하게 뿌리박혀 있었다. 종교의 자리와 삶의 자리는 구분되지 않았고, 그렇기에 그들의 예배는 실제적이다. 푸블리우스가 단순하면서도 옹골찬 그들의 예배에서 느낀 힘은 바로 일상에 뿌리박은 종교에서 나온 것이었으리라. 한마디로 그들의 예배는 총체적’(total)이었다.

 

저자는 여러 자료를 통해 초대 교회 예배의 모습을 잘 재구성하며, 더 나아가 주제의식까지 잘 녹여냈다. 그래서 50여 쪽 남짓한 이 책은 매우 얇지만 많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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