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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장한 신체를 지니고도 실업상태에 있는 이들의 처우에 대해 로크가 한 제안은 아주 잘 알려져 있는 것으로서, 현대의 학자들이 그에 대해 언급할 때는 일반적으로 그 비참함에 대해 비난을 하면서도 그 당시의 기준에 비추어서 옹호하기도 한다. 좀더 중요한 논점은 그러한 제안이 로크의 가정들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구빈원(감화원)의 책임자들은 그들을 제조공장에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노동자로 만들 것을 요청받고 있었으며, 치안판사들은 그들에게 강제노동을 부과했다. '세 살 이상 된' 실업자의 자녀들은 국가의 불필요한 짐이었다. 그들은 일을 해야만 했고, 그들의 생활비를 더 많이 벌어야 했다. 이 모든 것은 실업이 경제적인 원인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타락에서 기인한다는 명백한 근거 위에서 정당화되었다. 로크가 무역위원회의 위원자격으로 1697년에 서술했듯이, 실업자의 증대는 '기율의 해이와 풍속의 붕괴 이외에는 어떤 것'에 의해서도 발생하지 않는다. 실업자들을 정치체제의 완전한, 자유로운 구성원으로서 처우하는 것은 로크에게는 생각조차 되지 않았다. 그들이 전적으로 국가에 예속된다는 것도 똑같이 의심할 바 없다. 그리고 그들이 합리적 인간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기준에 따라 살아가지 않는 것이기에 국가는 그런 식으로 처우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257~258)



마지막 문장에 주목해보자. 로크에 따르면, 실업자가 생기는 이유는 경제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기율의 해이와 풍속의 붕괴' 때문이다. 실업자들은 '합리적 인간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기준에 따라 살아가지 않'기 때문에 재산을 가지지 못한다. 여기서 합리성의 의미는 극단적으로 물화되어 재산 소유 여부, 즉 재산이 많냐 적냐가 합리적 인간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며, 재산을 가지지 못한 이들은 합리적이지 못한 것이다. 


사회 속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며, 인간다운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재산이 있어야 한다. 더 정확히 말해 재산이 많아야 한다. 참으로 섬뜩하고 부박한 논리이다.


로크에게 있어 재산이란, 인간의 신체와 그러한 신체로부터 만들어지는 노동력이다. 즉, 인간은 노동하는 신체의 소유자이다. 로크의 논리를 따른다면, 노동을 통해서 재산을 형성한 자만이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취급받으며 제대로 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철저하게 부르주아적 논리이다.


로크는 사상사적으로 자유주의를 정초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로크가 토대를 쌓은 자유주의는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을 철저하게 옹호했으며, 이는 - 로크가 설령 그것을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 현실에서는 부르주아들의 사유재산의 무제한적 확장에 기여했다. 이렇게 볼 때, 자유주의는 부르주아들의 이데올로기다.


한국 자기개발서들의 논리도 기본적으로는, 사유재산의 소유를 인간 합리성의 척도로 삼은 로크의 사유적 개인주의와 유사하다. 이런 것도 읽어보자며 주식 투자 책, 자기개발서적 등을 뒤적거려도 생리적으로 거부감이 들어 손이 안 가는데, 아마 이런 요인이 원인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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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정의 - 문학적 상상력과 공적인 삶
마사 누스바움 지음, 박용준 옮김 / 궁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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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정치는 인간 개개인의 중요함을 강조한다. 정치에서 말하는 인간이란, 모두 저마다 이름을 가지고 고유의 개별성과 정체성을 유지하는 개인이다. 이러한 고유의 정체성이야말로 정치에서 인간이 중요한 존재라고 전제하는 이유이다. 이 개인은 서양 근대 철학에서 주장하는 추상 속의 무연고적 자아가 아니다. 그들은 피와 살을 지니고 이름을 가지며 구체적인 상황과 맥락 속에 존재하는 개인이다. 정치란 개개인에게 그들의 정체성과 이름을 찾아주는 행위이다. 따라서 타인에 대한 관심은 공적인 삶, 정치적 삶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정치적 삶과 문학 사이의 중요한 연결고리가 생긴다. "문학은 구체적 시공간 속에 살고 이름을 가진 캐릭터의 이야기를 펼친다. 과학은 이름을 무시하거나 추방하는 한편, 문학은 그 이름들을 사용하고 존중한다." (Harvey Mansfield, "How To Understand Politics") 마사 누스바움이 <시적 정의>라는 책에서 주장하는 것도 문학, 특히 소설을 읽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더 좋게 만드는 데 있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누스바움의 책은 정치에서 아주 중요한 함의를 드러내는 것이다.


마사 누스바움은 저명한 정치철학자이기도 하면서 문예비평에서도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그녀는 시카고 대학 로스쿨에서 법학과 학생들과 "소포클레스, 플라톤, 세네카, 디킨스를 읽었다. 문학 작품들과의 연결고리 속에서 우리는 동정과 자비, 공적 판단에서 감정의 역할, 그리고 나와 다른 타인이 처한 상황을 상상하는 데 필요한 것 등에 대해 토론했다."


누스바움이 이렇게 법학도와 정치학도들에게 문학을 옹호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와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타인의 좋음에 관심을 갖도록 요청하는 태도의 필수적인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학을 읽음으로써 타인의 삶에 대해 상상하고 그들의 처지에 공감하며, 현실에서도 이러한 공감을 적용할 수 있다. 좋은 문학을 통해 마주하는 타인은 우리에게 격렬한 감정(Thymos)을 불러 일으키고, 불안을 야기하고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저자는 문학 장르 중에서도 소설을 강조한다. 소설의 서사와 묘사는 다른 문학과 비교할 때 매우 구체적이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나와 같이 신체를 지니며 이름을 가진 사람이다. 보다 보편적으로, 문학은 개별적인 것에 관심을 가진다. 또한 우리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그 인물의 처지를 생생하게 상상 가능하다. 이러한 상상력과 공감 능력이야말로 현실의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게 하고 그들과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실천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저자는 문학읽기를 통해 우리가 적절한 감정을 함양할 수 있음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감정은 공적인 영역에서 추방되어야 할 불안정한 인지 능력이 아니다. 감정은 특정한 대상을 향한 분명한 방향성을 내포하고 있다. 또 감정은 특정한 믿음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만약 내가 분노를 느꼈다면, 그것은 무언가 소중하고 가치있는 사람이 고의로 해를 입었다는 믿음에서 기인하며, 분노의 대상은 그 해를 입힌 대상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감정은 주체로 하여금 특정 종류의 의미나 가치를 지각할 수 있게 한다. 상대방이 처한 상황을 상상하고 공감하는 능력(같이 분노하고 같이 슬퍼하는 능력)은 정치적 삶에서 우리의 판단을 더욱 풍부하게 해줄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맹목적으로 문학과 감정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누스바움은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에서 빌린 개념인 "분별 있는 관찰자"로 이를 설명한다. 분별 있는 관찰자는 우리의 감정을 보다 합리적으로 해줄 것이다. 이는 사건에 개인적으로 연루되어 있지 않아 편향적이지 않으면서도 특정 상황에 처한 사람들 각각의 처지와 느낌을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는 역지사지의 감정을 갖고 있다. 이러한 적절한 감정의 함양은 시민적 삶에 매우 중요하다. 반대로 감정의 부재는 사회적 무관심과 둔감함으로 이어진다. 이런 장면은 숱하게 볼 수 있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소설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문학과 소설보다는 비문학을 더 선호한다. 나 역시 디킨스나 박완서보다는 애덤 스미스나 앨버트 허쉬먼 같은 이들의 책이 훨씬 더 사회정의에 어울린다는 편견을 가진 독자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나의 편견일 뿐이었다. 사회적 인간은 어떻게 탄생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공동체와 소외된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게 할 수 있을까? 마사 누스바움은 문학에서 그 답을 길어올리고 있다. 문학은 구체적 상황 속에 있는 개개인의 얼굴을 마주보게 한다. 사회적 삶 역시 얼굴과 이름을 가진 개개인을 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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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2-26 19:1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도 정말 좋아했지만 이 책에 대한 김민우 님의 리뷰도 너무 좋네요. 시적 정의를 책장에서 꺼내와 다시 읽고 싶어집니다. 저는 늘 소설을 사랑했는데 제가 소설을 사랑한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어요.

Redman 2022-02-26 20:06   좋아요 5 | URL
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이 책을 좋아하게 될 것 같습니다. 소설과 친하지 않은 저에게는 소설과 친해질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책입니다

초란공 2022-02-26 20: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민우님의 소개로 이 책을 더디지만 읽고 있습니다^^ 많이 생소한 분야라 진도가 느리지만 남은 부분 읽기에 좋은 참고가 되겠습니다^^

Redman 2022-02-26 20:50   좋아요 4 | URL
좋은 독서가 되셨으면 합니다. 저도 두 번 정독해서 겨우 책의 윤곽을 이해했네요 ㅎㅎ

바람돌이 2022-02-27 02: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의 저를 만든 많은 부분이 소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했어요. 나와 다른 삶을 이해하는 힘을 제게 준다는 느낌이 강했거든요. 그런데 그런 감정을 이렇게 정의한 책이 있고 김민우님이 리뷰로 그 근거들을 짚어주니 진짜 좋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Redman 2022-02-28 18:22   좋아요 4 | URL
이 책에서 말하는 문학의 긍정적 기능을 경험하셨군요! 이 책이 정말 도움이 많이 되실 것 같습니다

얄라알라 2022-03-02 00: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필사했던 그 문장, ˝그것이 우리와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타인의 좋음에 관심을 갖도록 요청하는 태도의 필수적인 보이기 때문이다.˝ 김민우님의 리뷰에서 다시 만나니 반갑습니다. 저 역시 초란공님과 마찬가지로 생소한 분야인지라 빨리 못 읽고는 있지만 음미하며 나가겠습니다^^ 리뷰 감사합니다

Redman 2022-03-02 17:50   좋아요 1 | URL
같은 문장에 밑줄을 그었군요! ㅋㅋㅋ 얄라알라님 파이팅입니다!
 

제자백가는 중국사상사를 통틀어서, 더 나아가 전 세계 사상사적으로도 가장 창조적이고 풍부한 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시대이다. 류쩌화의 <중국 정치사상사> 제1권의 90%가 제작백가 각 학파의 주장을 논술하고 있다.


반고의 <한서> <예문지>에 따르면, 제자백가의 작품은 거의 100여 종에 이른다. 제자백가를 오늘날처럼 구분하기 시작한 것은 사마담과 반고이다. 사마담은 음양, 유가, 묵가, 법가, 명가, 도덕가 등 육가로 제자백가를 나누고, 반고는 종횡, 잡, 농, 소설사가들 더 나우었다. 학파 간 구분 뿐 아니라 학파 내에서도 다양한 파벌이 존재했다. 예를 들어 순자는 유가를 '대유' '소유' '아유' '속유' '산유' '천유' '구무유' 등으로 구분했다.


이처럼 학설상의 다양성은 각 사상가들로 하여금 사유의 대상을 각개 영역으로 뻗치게 했고, 이 때문에 제자백가의 저술은 대부분 역사, 교육, 경제, 정치, 철학 등 제 주제를 논하는 백과전서의 성질을 띠고 있다. <순자>를 보면, 철학(천론, 정명, 성악, 비상 등), 정치학(왕제, 왕패, 군도, 신도, 강국, 예론, 악론 등), 경제(부국). 교육(권학, 수신, 불구), 군사(의병), 도덕, 자연과학, 역사학 등 여러 주제를 노급하고 있다. <묵자> 역시 철학, 정치를 비롯하여 군사와 인식론, 논리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백가와 백과가 격량함으로써 문제 하나하나마다 적게는 수 종, 많게는 수십 종의 다양한 견해가 제기될 수 있었다. 이 사상의 보고야말로 중화민족의 문화적 축적이며 지혜의 결정으로 기초가 잘 다져진 위대한 창조다." (260p)


왜 이 시기에 이렇게 많은 사상가가 출현하고, 인식의 지평이 확대되었을까? 류쩌화는 이 시기가 "중국 역사상 대변동의 시기"였음을 지적한다. 봉건적 질서가 해체되는 역사의 도정에서 제자백가는 사람들의 인식 지평 위에 그려진 것이다. 급격한 사회적 변화가 제자백가 출현의 한 원인이다.


제자백가가 출현한 또 하나의 배경은 춘추전국시대 정치변혁과 상호경쟁이었다. 당시 제후국들은 내정과 외교의 과제가 주요 현안이었고, 시의적절한 전략과 정책이 필요했다. 이는 정치가 이론적 지침을 요구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지식, 지적 역량은 국가의 존망을 결정할 수도 있었다. 통치자들은 경쟁적으로 지식인들을 포섭하고자 했다. "어떤 군주는 현자를 구한다는 훈령을 하달하기도 했으며, 어떤 군주는 많은 재물을 사기도 했다." 이 정도로 지식인 층이 정치 공간에서 우대받고 활약했던 것은, 서양에서는 길게 잡아도 50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제후국 간의 상호경쟁은, 백가쟁명의 세 번째 요소, 지식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이 비교적 컸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정치공간의 확대. 지적 경쟁에의 적응은 자연스럽게 정치공간에서 士 계층이 정치권력에 대해 상대적으로 독립성을 갖도록 해주었으며, 사들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자주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류쩌화는 이를 강조한다. 곧 "사상의 자유가 있었기에 백가가 쟁명할 수 있었으며, 백가의 쟁명이 있었기에 인식을 심화시킬 수 있었다."


한마디로, 제자백가는 "모든 것을 인식 대상으로 삼을 수 있었다." 이 확대된 인식의 지평에는 군주와 권력도 포함된다. 이는 "권과 리의 상대적 이원화"로 표현된다. 제자백가는 현실 권력과이치를 이원화해서 이해했다. 류쩌화의 글에서 그 예시를 일부 추릴 수 있다. 유가는 도(이상 정치)와 왕(현실 정치)를 구분하여 도가 군주보다 높고, 왕이 아니라 도에 따른다(從道不從君)라 주장했다. 도가는 제왕을 자연의 도 아래에 위치시켰다.법가 역시 법가적 원칙에 근거해 군주를 품평했다. 장자가 군주를 도적이라고 비판했던 것도, 맹자가 당대의 군주들을 비판했을 때도 이런 전제조건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국 시대에 권력과 인식의 이원화라는 조건과 분위기가 있었다는 것은 백가쟁명을 발전시키고 깊이 있게 만드는 데 아주 훌륭한 환경을 마련해주었다." 


따라서 반드시 따라야 할 권위도 없었으며, 이론에 비추어 비판하지 못할 권위도 없었다. 이는 제자백가 상호 간에도 마찬가지로, 그들은 서로 격렬한 쟁명을 벌였는데, 이런 이론상의 상호 공박은 쟁명의 깊이를 더욱 깊게 해주었다.


정치사상적으로 제자백가는 정치이성의 발전을 촉진했다.제자백가는 정치에서 신비주의를 배격하고 정치를 온전히 인간 행위 속의 일로 간주했다. 그들에게 정치란 사람의 능동성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정치철학, 정치에 영향을 주는 요소, 구체적 정치노선과 정책, 통치자의 자기조절 문제를 폭넓게 토론했다. 여기에는 '혁명'의 문제도 있다. 이상은 정치이성의 발전을 설명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제자백가가 다룬 문제는 훨씬 많다. 전국시대 이후 사상은 모두 제자백가에게서 그 원형을 찾을 수있다.


지금까지 논했듯이, 제자백가가 쟁명하고 흥기할 수 있었던 데는 몇 가지 조건이 있었다. 사상의 자유, 상대적 독립성, 제후국간 전쟁은앞의 두 가지 조건이 가능했던 배경이다. 이러한 조건들에 변화가 일어나면 자연히 제자백가의 상대적 독립성과 상대적 자유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진, 한 이후 봉건통치자들은 모두 특정한 학설을 독존적 지위로 확정하려고 모색했다. 그 결과 사상을 질곡에 빠뜨렸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선택능력과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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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문제 - 시민의 정치적 책임
카를 야스퍼스 지음, 이재승 옮김 / 앨피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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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죄는 정치인의 행위와 국민 지위에 존재한다. 내가 국민이라는 이유로 국가 행위의 결과를 감당해야 하고, 내가 국가 권력에 복종하고 국가 질서를 통해 나의 생존을 유지하고 있다면 정치적 죄는 바로 국민이라는 지위에 있다. (죄라기보다는 정치적 책임Haftung이다.) - P85

한 민족의 집단적 죄나 여러 민족들 가운데 특정 집단의 집단적 죄 같은 것은 정치적 책임을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 P101

현대 국가에서는 적어도 선거에서 투표를 하거나 기권을 하는 식으로 누구든지 정치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정치적 책임의 의미는, 그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어느 누구에게도 허용되지 않는 데에 있다.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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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세 (양장) - 전정판
B. 파스칼 지음, 김형길 옮김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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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맥락도 정확히 모른채 여기저기 인용되는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명구의 출처인 파스칼의 <팡세>는 파스칼이 죽은 뒤 발견되어 유족과 출판업자들의 손을 거쳐 1620년 발간되어 지금까지 널리 읽히는 고전이 되었다. 하지만 파스칼의 <팡세>는 읽기 어렵다. 이는 내용이 난해하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아무렇게나 퍼져있는 듯한 단편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와도 관련이 있다. 판본마다 다르지만, 대략 1000여 개의 단편들로 구성된 <팡세>는 그간 체계성이나 논리적 구성이 없다고 여겨져왔다. 기승전결로 연결된 스토리가 없다 보니, 이 책은 통일성이 없어 보이고 읽는 순서 상관없이 아무곳이나 펼쳐도 되는 것 같으며, 파스칼이 무엇을 전달하고자 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새로운 사본의 발견과 연구자들의 노력에 의하여 파스칼이 <팡세>의 전체적인 구상을 기획했음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현대 중요한 사본은 크게 제1사본과 제2사본으로 나뉘는데, 1사본을 저본으로 한 것이 라퓌마 판이고 2사본을 저본으로 하여 편집된 판본이 셀리에판이다.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에서 출간한 <팡세>는 이 셀리에판을 번역한 것인데, 역자에 따르면 제2사본이 제1사본보다 더 정본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참고로, 라퓌마판을 번역한 것이 민음사판 <팡세>다). 제1사본은 편집자와 필사자 등에 의해 가필정정이 이루어져 훼손된 반면, 제2사본은 유족들의 정성어린 간수에 의해서 완전한 원형에 가까운 보존상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판본이 중요한 이유는 미분류된 단편들을 가장 적절하게 보이는 순서로 배열되어 있으며, 가장 적절한 질서를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판본들의 발견으로, 우리는 파스칼의 <팡세>가 무질서하게 배열된 파편들의 뭉치가 아니라 파스칼에 의해 어떤 내적 질서가 존재함을 알 수 있고, 이로써 파스칼의 메시지 또한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파스칼의 질서"란 무엇인가? <팡세>는 다양한 신학적, 철학적 논쟁을 담은 글뿐만 아니라, 기적, 은총에 관한 글, 기도와 명상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여러 주제를 다루는<팡세>의 단편 중 8할 이상은 '기독교 호교론'과 관련이 있다. 파스칼은 두 번의 회심을 겪으면서 죽을 때까지 철저한 복음주의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런 "파스칼에게 있어서 '호교론'이라는 말은 <팡세> 속에서 '기독교적인 세계관으로 옹호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서 작성된 내용들'을 통틀어서 가리키는 용어이다." <팡세> 전체는 호교론적인 구상으로 내용이 채워져있다. 이는 "1658년 6월의 계획"에 드러나 있다. 제1장 40편은 그가 어떤 식으로 기독교를 설득할지에 대한 단계를 예고하고 있다.

"제1부. 신 없는 인간의 비참

제2부. 신과 함께하는 인간의 행복

혹은

제1부. 본성이 타락하였다는 것

제2부. 회복자가 있다는 것. 성서에 의해서."

여기서 '비참'과 '행복', '신 없음'과 '신과 함께'이 대립구도로 설정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볼 때, 파스칼이 시도하고자 했던 것은 기독교야말로 인간을 행복하게 해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할 수 있다. 파스칼이 미완으로 남겨둔 채 사망하는 바람에 결국 온전하지는 않지만, 다른 단편들도 이러한 계획에 따라서 분류하려고 했다. 이러한 구도에 따라 총 28묶음으로 이루어진 "1658년 6월의 계획"은 1부 11묶음, 제2부 17묶음으로 분류된다. 파스칼의 구도를 염두에 두고 읽으면, 1부는 "신없는 인간들'에 관한 실존적인 연구에 해당하며, 나머지 17개의 묶음들은 이들을 '신과 함께하는 인간들'로 변화시키는 호교론적인 노력에 해당한다." 인간은 왜 신앙을 가지지 못하고 신 없이 비참한 상태에 있는가? 인간의 본성이 원죄와 죄로 인하여 타락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이 타락하였기 때문에 인간은 비참하다. 비참함을 이기려면, 신과 함께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회복자")가 속죄자로서 이 땅에 오셔서 인류의 죄악을 대속하였고, 그것이 성서에 의해서 확신되어 있으므로 신과 함께하는 상태는 인간의 행복이다. "신앙이 없는 인간은 진정한 선도 정의도 할 수가 없다는 것. 모든 인간들은 행복해지는 것을 열망한다"로 시작하여 "신만이 인간의 진정한 행복이다"라는 결론을 내리는 11장 "최고선"이 이 책의 구조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단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구도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과 매우 유사한 얼개를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파스칼을 아우구스티니안(Augustinian)으로 규정한 필립 셀리에의 말은 새겨볼 필요가 있으며, <팡세>를 읽는 데 중요한 부분을 지적한다. "이 명언들은 아우구스티누스적인 기독교, 즉 거의 1,500여 년 동안 서양 세계를 지배해왔던 하나의 세계관 내지는 역사관을 제시해주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삶을 신학적 관점에서 회고적으로 성찰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인간의 비참함과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온 인간의 평안과 행복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영혼이 당신을 등질 때에는 외도를 하는 것이고, 당신을 떠나서 순수하고 청정한 것을 찾더라도, 당신께로 돌아가지 않는 한, 결코 찾아내지 못합니다."(<고백록>, 성염, 2.6.14) 그는 하나님을 회복한 삶이 인간의 본래적 삶임을 보이고,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사랑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고백록>에는 유려한 필체로 세상사의 온갖 질곡을 겪으며 좌절하는 인간의 실존이 묘사되고, 그 유한함의 끝에서 하나님을 찾게 되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파스칼을 아우구스티니안으로 규정한다고 했을 때는, 신을 떠난 인간의 비참과 신과 함께하는 인간의 행복을 논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볼 때, <고백록>을 읽고 <팡세>를 읽는다면(혹은 그 반대라도) <팡세>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상의 내용은 옮긴이의 해설을 나 나름대로 정리한 것으로, 이를 바탕으로 <팡세>란 책을 규정할 수 있다. 이 책은 명언 모음집이 아니다. 저자가 의도한 순서와 목적이 있다. 이 책은 우선 매우 아우구스티누스적인 기독교 서적이다.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팡세>는 인간의 비참함과 인간의 행복을 말한다. 인간이 자신의 비참함, 즉 인간의 유한성을 알게 될 때, 그가 멈춰 선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이것이 그의 행복이 된다. 이것이 '생각하는 갈대'라는 단편이 전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인간은 미미한 갈대와 같은 비참한 처지이지만, 그 갈대는 생각을 통해서 하나님과 가가워진다는 점에서 위대하다. 이러한 '생각하는 갈대'의 테제는 <팡세> 전체를 통해 파스칼이 의도하였던 바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부분들을 염두에 두고 <팡세>를 읽으면, <팡세>를 아주 새롭게 읽을 수 있을 듯하다.

"7. 위대, $145

생각하는 갈대

내가 나의 존엄성을 찾아야 하는 것은 결코 공간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의 생각을 조절함으로써이다. 내가 더 많은 당을 소유한다고 해서 더 우월한 자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공간에 의해서 우주는 나를 포함한다. 그리고 나를 하나의 점인 것처럼 삼켜 버린다. 그러나 나는 사고에 의해서 우주를 포함한다."

"$146

인간의 위대성은 자기가 비참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에 있다. 나무는 자기가 비참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자기가 비참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그러나 비참하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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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2-02-02 1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는 사고에 의해서 우주를 포함한다.‘는 생각하는 갈대의 멋진 반전이네요! 가끔 <팡세>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정작 종교에 관한 언급은 공감이 가지 않아 지나치게 됩니다. 소개해주신 이런 맥락으로 읽으면 다르게 보이겠네요. 저는 파스칼이 보여주는 인간에 대한 통찰만으로도 정말 깜짝 놀라고 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Redman 2022-02-02 17:53   좋아요 1 | URL
그래서 이 책에서는 파스칼이 후대 실존주의의 시조라고 평가합니다 그리고 1부는 실존주의죽 요소들이 강하게 느껴지고요
인간의 사유를 근거로 인간의 존엄성을 끌어낸게 멋있죠 ㅎㅎ

mini74 2022-03-08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우님 리뷰 당선되심을 축하드립니다. 깊이 있는 글 잘 읽고 있어요. ~

Redman 2022-03-08 18:4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미니님!

서니데이 2022-03-08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Redman 2022-03-09 09:35   좋아요 1 | URL
축하 감사드립니다 서니데이님! 서니데이님도 좋은 하루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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