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딜, 세 편의 드라마 - 미국의 뉴딜.무솔리니의 파시즘.독일의 나치즘
볼프강 쉬벨부시 지음, 차문석 옮김 / 지식의풍경 / 200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미국의 뉴딜은 미국만의 특수한 정책이 아니라 1930년대 보편적인 세계적 현상이었으며, 미국의 뉴딜과 독일의 나치즘, 이탈리아의 파시즘 정부는 공통의 기반에서 출발했다고 주장한다. 그 공통의 기반이란 바로 대공황의 충격이다.

 

대공황은 경제적 공황임과 동시에 정신적 공황이기도 하였다. 또한, 대공황은 1930년대의 시대 정신을 결정한 계기였다. “영원한 풍요와 복지 상태에서 밑바닥 없는 허공 속으로 추락하는 경험을 겪게 된 사람들은, 이 위기를 만든 것으로 간주된 자본주의나 자유민주주의의 생명이 다했다고 느꼈으며, 유일하게 보호와 안전의 토대를 마련해줄 수 있는 피난처로 국가가 떠오르게 되었다. “대중들이 이끌렸던 것은 자신들이 무시받지 않고 동등한 존재로서 취급받는다는 느낌 때문이었으며, 자신들이 더 이상 혼자 힘으로 살아가지 않아도 되며 국가라는 새로운 계급 없는 공동체가 제공하는 보호, 안전, 연대를 향유할 수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뉴딜, 파시즘, 나치즘의 유사성은 이러한 사회 구성원의 환상으로부터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은 새로운 국가 질서를 수립하고자 했는데, 그 질서란 바로 탈자유주의적 질서, 다르게 말해 평등주의적 기획이었다.

 

대중의 평등주의적 열망의 정책적 실천은 국가의 총체적 개입과 사회 통제였다. 자유주의는 불신받았다. 자유주의에 대한 반감과 사회 통제에 대한 선호를 공유하는 이러한 공통점은 1930년대 미국의 한 혁신주의 관료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자유방임주의는 죽었다. 사회 통제 만세! 사회 통제는 우리에게 전쟁이라는 엄격한 요구에 응할 수 있도록 해줄 뿐 아니라, 도래할 평화와 형제애를 위한 기초가 된다.” 다시 말해서 대공황은 결과적으로 권위주의적 지도자와 국가의 출현을 야기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자는, 2장부터 5장에서 각 장의 표제처럼 미국과 독일의(그리고 이탈리아의) ‘리더십’, ‘선전’(정부의 언론통제), ‘지역주의’, ‘공공사업등을 분석하여 그 내적 논리의 유사성을 지적한다. 이를 요약한다면, 카리스마적 지도자, 대중의 열광주의적 지지, 대중의 국민화이다. 이 중에서 우리가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바로 제5장 공공사업이다. 이 장에서 본격적으로 우리가 뉴딜 하면 가장 익숙한 TVA 사업과 이탈리아의 아그로 폰티노 사업·독일의 아우토반을 비교·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일과 이탈리아의 사례까지 모두 검토하는 것이 마땅하나, 이 글에서는 뉴딜만을 검토하겠다.

 

이 세 사업의 공통점은 바로 기념비성의 제공이다. 저자는 1930년대 공공 건축에서의 신고전주의를 주목하는데, 이는 신고전주의와 기념비적 건축이 국가의 권력과 권위를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보여주는 건축 양식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기념비적 건축은 국가의 총체적 개입을 상징하는 건축물이었다. 신고전주의가 절정에 달했던 1930년대는 또한 국가 개입의 절정이기도 했다. 기념비성의 관점에서의 뉴딜(뿐만 아니라 독일의 뉴딜적 정책)이란 경제 부흥책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심리학적 충격 요법이었다. 당시 미국은 전력이 완전히 공급되는 곳도 적었으며, 테네시 인근은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하나였다. 그런 테네시 계곡에 국가의 주도로 세워진 웅장한 규모의 댐은 고역과 착취로부터의 구원을 약속하는 상징이었다. TVA에 의해 생산되는 전기는 최초로 대중이 주권적인 생산자이자 소비자로서 창출한 것이다, 전기는 난폭한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산업화가 저지른 거대한 역사적 오류로부터 벗어나는 수단이다, 그리고 최신 기술로 자연을 정복하여 이런 건축물을 지은 강력한 국가와 지도자를 통해 대중의 열망은 실현될 것이다. 기념비성이 제공하는 상징적 구원. 이것이 국가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대중의 심리적 기제였다. 그렇다면 미국과 독일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대공황의 충격에서 회복했던 것은 이전의 자유주의적 질서를 빨리 포기한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2차 세계대전은 파시즘/국가사회주의와 뉴딜이라는 자유주의적 변이국가 시스템의 승리를 확정지었고, 이로써 양자의 동근성은 은폐되고 낯선 것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1930년대를 지나면서 유럽과 미국 모두에서 거대한 역사적 전환, 곧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서 국가자본주의로의 전환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과 제안들도 끊임없이 논의되고 있거니와, 그러한 논의들에서 알 수 있듯이 1930년대에 제기된 문제들이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는 면에서, 우리는 어쩌면 후지이 다케시가 말한 것처럼 30년대”(<파시즘과 제3세계주의 사이에서>)에 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1-08-06 17: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파시즘이나 뉴딜이나 공황이 초래한 것이다보니 그 속내는 비슷할거 같군요. 그런데 미국도 진짜 공황을 극복하고 완전고용이 실현된건 결국 2차대전 참전이 계기였다고 해요. 말씀하신대로 뉴딜은 선언적 홍보적 성격이 더 강했던거죠. 자본주의의 내부 폭발을 정부의 힘으로 잡는것은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김민우 2021-08-06 21:01   좋아요 0 | URL
2차 대전 참전이 중요한 계기였군요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