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블룸은 <오셀로>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오셀로>란 작품은 우리들에게 이 선택, 즉 현실의 명확한 인식 위에 기초한 비열한 삶이냐, 아니면 거짓 위에 서 있고 비극으로 끝나는 고결한 삶이냐의 선택을 제시한다.” (<셰익스피어의 정치철학>, 93p.)

 

여기서 현실의 명확한 인식 위에 기초한 비열한 삶은 이아고를 말하고, ‘거짓 위에 서 있고 비극으로 끝나는 고결한 삶은 오셀로와 데스데모나를 지칭한다.

 

블룸의 이러한 평가는 <오셀로>에 대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는 생각을 뒤흔드는 평가이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악인 이아고의 계략에 의해 오셀로가 질투심에 불타올라 선량한 부인 데스데모나를 살해하는 이야기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 얘기에서 언뜻 데스데모나는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보이는데, 앨런 블룸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데스데모나와 오셀로의 사랑조차 의심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블룸의 분석과 평가는 <오셀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사항들을 알려준다. 데스데모나는 정말로 아무 죄 없는 비련의 주인공인가? 아니라면 그녀의 비극의 원인은 무엇인가? 데스데모나와 오셀로의 관계는 무엇에 근거했는가? 그리고 극에서 이아고가 수행하는 진정한 역할은 무엇인가?

 

셰익스피어의 비극 속에서 파국은 비극적 주인공의 성격으로부터 직접 유래한다.” 이 원리에 따라서 오셀로와 데스데모나의 성격을 드러내는 부분에 집중해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오셀로는 열등감으로 괴로워하는 인물임을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작품의 배경인 베니스에서 흑인에 나이도 많고 심지어 이슬람 지역인 무어 출신이다. 베니스에서 그는 이방인이다. 하지만 의외로 그의 대사에서는 열등감을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부분은 없다. 그는 첫 등장부터 과도하게 자기를 과시하며 등장한다.

 

오셀로: 해볼테면 해보라지.

내가 베니스 공국에 해 준 일이 얼만데

그의 불평쯤은 파묻힐걸.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

그걸 자랑하는 게 명예라면,

공표하도록 하지 - 나는 태생과 핏줄이

왕족이다, 그리고 받을 만하다,

다른 장식이 없어도, 내가 얻게 된

이 자랑스러운 행운을. (12)

 

오셀로는 베니스 공국을 위한 자신의 영웅적 헌신과 무어에서의 왕족 혈연을 내세웠다. 이러한 것 때문에 그는 자신이 이 사회에서 인정받을 가치가 있다며, 자신의 가치를 확신한다. 그러나 이러한 확신이야말로 그가 베니스의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소외감과 열등감을 암시한다. 오셀로가 데스데모나를 사랑하게 된 이유를 들어보면, 그가 얼마나 인정욕구가 강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오셀로: 그녀는 내가 겪어 온 위험들 때문에 나를 사랑했소,

그리고 나는 그녀가 이것들을 측은해하므로 그녀를 사랑했지요.

이것이 내가 사용한 유일한 마법이요. (13)

 

그는 데스데모나가 자신의 위험’, 즉 영웅적 행위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했다고 말한다. 그에게는 그녀가 자신을 인정하고 있다는 이 느낌이 가장 중요했을 것이다. 너무나 이유가 빤히 보이는 이 사랑은, 오셀로의 대사 속에서 가장 고결한 정신적 사랑으로 치장된다.

 

오셀로: 그녀 말대로 해 주시오.

하늘에 맹세코, 내가 간청을 드리는 것은

내 입맛을 채우거나,

성욕을 달래거나 - 젊은 욕정은

내게 없어졌소 - 적당히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없이 한없이 그녀 마음을 따르고 싶기 때문이오. (13)

 

말은 번지르르하지만, 그의 사랑은 자기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는 행위일 뿐이다. 오셀로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사랑이 성립되기 위한 충분조건은 데스데모나에 대한 오셀로의 우위, 즉 그가 사랑받고 인정받을 만하다는 확신이다. 그리고 젊고 아름다운 유력 귀족 가문의 아가씨의 사랑을 받는 것에서 다시금 그는 흡족함을 느낀다. 정확하게 말해 그가 사랑한 것은 데스데모나가 아니라 데스데모나의 사랑이었다.

 

데스데모나를 살펴보자. 그녀는 13장 후반부에 처음으로 등장하지만, 그 전에 아버지 브라반치오의 대사를 통해 그녀의 성격을 알 수 있다. 그녀는 한 번도 당돌했던 적이 없는 처녀였으며, ‘영혼이 너무도 고요하고 조용한 얌전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는 베니스의 부유한 가문, 즉 베니스 최상의 것을 거부하고 베니스를 초월하는 어떤 것을 사랑하고자 했다.” (앨런 블룸)

 

오셀로가 들려준 모험담은 그녀의 이런 욕구에 잘 맞아 떨어졌다. 그렇기에 데스데모나는 오셀로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녀는 거짓말을 한다.

 

데스데모나: 제가 저 무어 분을 사랑하여 함께 살기를 바란다는 것은,

저의 당돌하고 파격적인 행동이

세상 만방에 널리 고한 바입니다. 제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제 주인의 본성 바로 그것이었죠. (13)

 

데스데모나는 오셀로의 본성 때문에 그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뒤에서는 그분의 심성에서 오셀로라는 형용을 보았기 때문에, 즉 오셀로의 심성과 형용이 일치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거짓말이다. 오셀로의 말에서 보았듯이, 데스데모나는 오셀로의 모험담을 듣고 그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녀가 사랑한 오셀로는 결국 그녀의 마음이 만들어낸 모험담 속 가공의 오셀로였다.

 

그녀의 말은 오셀로가 진단한 그들의 사랑과 어긋나 있다. 오셀로는 그녀가 자신이 겪어온 위험 때문에 사랑한다고 생각하나, 데스데모나는 오셀로의 심성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둘의 관계는 누군가 살짝만 건드려도 바로 무너질 정도로 취약한 토대 위에 서 있었다. 그 토대 자체가 둘의 거짓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사실 둘의 관계가 비정상적이라는 것은, 그 둘 빼고 주변 모든 인물이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던 바였다. 11장에서 오셀로에 대한 이아고의 험담, 데스데모나의 아버지 브라반치오의 분노와 경고가 모두 이를 지적하고 있었다.

 

이 지점에서 이아고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이아고는 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인물이다. 그는 오셀로와 데스데모나의 고결한 사랑이 허위에 기초해 있으며, 오셀로의 과장된 자기애도 자신의 불안함을 감추기 위해 만들어낸 거짓 자아임을 간파한다. 이아고는 사람들 속에 숨겨진 궁핍, 즉 그들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악마는 아니다. 다만 악마적 통찰을 가졌을 뿐. 그는 이 악마적 통찰력을 가지고 오셀로의 연약한 부분을 파고들어 그의 질투심을 유발한다. , 이아고는 오셀로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약점을 건드려 악을 현실로 구현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이아고는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파악하여 절대로 다른 사람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11장 이아고는 모든 고결하고 숭고한 것들을 비웃듯이 이렇게 말한다. “하늘이 알지, 사랑과 의무감이 아니라, 그렇게 보임으로써 내 개인적인 목적을 따른다는 걸.” 그는 타인에게 보여지는 자신과 실제 자신의 본질을 정확하게 구분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아고는 오셀로와 데스데모나의 허위를 꿰뚫어 볼 수 있었다. 현실적인 이아고의 눈에는, 오셀로가 얼마나 타인의 평판을 의식하는 의존적인 성향이고 둘의 사랑이 허풍임이 뻔히 보였다. 그래서 이아고는 오셀로 안에 잠재된 열등감을 부채질한다.

 

이아고는 상황을 연출하여 오셀로의 부사관 캐시오가 데스데모나를 만나는 장면을 일부러 오셀로가 보게 한다.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본 오셀로는 데스데모나의 외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는 이아고에게 집착하며 그의 생각을 말하라고 종용한다. 오셀로 자신의 생각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이아고로 채워넣은 것이다. 처음의 득의양양한 모습은 사라지고 타인 의존적인 찌질이 오셀로만 남았다.

 

이아고는 그녀는 자기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장군님과 결혼하면서요라고 말한다. 이 말은 브라반치오가 오셀로에게 이미 한 번 했던 말이다. 그 자리에 같이 있던 이아고에 의해서 브라반치오의 암시가 부활하여 오셀로에게 확신을 갖게 한다. 그는 이제 아내의 외도를 잠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자기혐오와 아내에 대한 배신감으로 치를 떤다. 흑인으로서의 정체성, 무어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오셀로의 자기 비하를 더 깊게 하고, 데모데모나에게 속았다는 생각에 분노한다. 처음의 자기 과시는 완전히 무너져 그는 의심의 최저점으로 떨어졌다.


결정적인 계기는 데스데모나가 실수로 떨어트린 손수건이다. 이 손수건은 오셀로가 처음으로 그녀에게 준 선물이었다. 이 손수건을 입수한 이아고는, 캐시오가 그것을 쓰고 있었다고 오셀로에게 얘기한다. 이아고의 말대로 자신이 준 손수건이 사라진 것을 안 오셀로는 질투심의 정념에 사로잡혀 아내에게 거칠고 싸늘한 태도를 보인다. 오셀로의 다음 행보는 이 지점까지 오면 하나밖에 없다. 데스데모나를 죽이는 것.

 

오셀로의 태도가 바뀐 것이 뻔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데스데모나는, 남편은 질투해본 적 없다며 별 문제 없다는 등 전혀 현실감이 없는 소리만 반복해댄다. 자신이 만들어낸 이상적인 가상의 오셀로를 현실의 오셀로에게 투영하여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오셀로가 자신을 죽이기 직전까지도 당신에 대해 품은 사랑이 죄죠.”라는 철없는 말만 하여, 자신이 만들어낸 허위의 사랑의 세계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겉으로 드러나는 자아가 있고, 내면의 본질적인 자아가 있다.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는 자아를 통해서 남들이 이렇게 봐주었으면 하는 식으로 자신을 꾸미기도 한다. 이는 자신의 본질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봐주었으면 하는 가상의 자아를 다시 나에게 투사시켜서 마치 그것이 나의 본질인 것처럼 삼으면, 허위의 세계에서 허우적대다 오셀로처럼 자신의 힘으로 생각하지도 못한 채 남의 말에 끌려다니거나 데스데모나처럼 죽을 때까지 머릿속이 꽃밭인 채로 살게 된다. 이 지점이 바로 <오셀로>라는 텍스트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지점이다.

 

맨 처음의 앨런 블룸의 인용문을 봐보자. 이아고의 현실적이나 비열한 삶, 그리고 오셀로와 데스데모나의 고결하나 거짓된 삶. 어느 쪽도 제대로 된 삶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아고도 파멸한다. 앨런 블룸은 이아고의 아내 에밀리아를 통해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렇게 명확한 안목을 가지고 있는 이야고도 보지 못한 한 가지가 있다. 그는 에밀리아가 진실을 위해 죽을 용의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지 못한다. 오직 진실을 위한 단순하고 꾸밈이 없는 열성의 가능성은 그의 시야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열정을 표현하는 삶은 고결할 뿐만 아니라, 바로 그 본성에 의해 기만으로부터 해방되지 않겠는가?” (<셰익스피어의 정치철학>, 9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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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7-29 23: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셰익스피어는 정말 다양한 해석의 왕국이군요. 오셀로의 해석 흥미진진하네요. ^^

김민우 2021-07-30 11:51   좋아요 0 | URL
다시 읽어도 늘 새로운 것이 고전의 매력이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