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생태환경사
김동진 지음 / 푸른역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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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에서 새로운 연구가 나오는 경우는 두 가지다. 하나는 새로운 사료가 발견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생각이 나오는 것이다. 이 말을 곰곰이 곱씹으면, 우리는 역사학 연구에서 역사가가 수행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이해할 수 있다. , 역사가는 사료를 비판적으로 연구하면서 객관적 사실을 규명하는 한편, 동시에 이러한 실증적 차원을 넘어 역사적 맥락의 재구성을 통해 그러한 사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하고 밝혀내는 것이다.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E.H.카가 규정한 역사의 핵심(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로서의 역사)이 된다.

 

다시 말해, 역사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자의 역할은 단순히 기록된 역사를 읽고 사료의 내용을 정리하는 데에서 끝나지 않는다. 고고학의 예시를 든다면, 새로운 유물이나 유적이 발견되었다고 해도 그것은 당장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다른 유물이나 다른 부족의 문화를 연구하여 그 용도나 사용방식 등이 규명되었을 때에야 그것은 의미 있는 고고학 연구의 재료로 사용될 수 있다. 역사학에서 사료도 고고학의 유물과 같다. 가령 정조의 <홍재전서>에 이런 내용이 있다. “근래에 개간한 화전이 푸르던 산을 온통 덮었다.” 아무 정보도 없이 이 구절 하나만으로, 혹은 정조가 이 말을 했다는 것만으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홍재전서>에서 어떤 컨텍스트 하에서 정조가 이 말을 했는지, 그 말을 한 배경은 무엇인지, 이 구절과 비교할 만한 다른 사료가 존재할 때 비로소 이 구절은 유의미한 정보로 가공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맥락이 부여됨으로써 사료는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역사가는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시점을 확정하여 역사적 맥락을 재구성한다. 그리고 그러한 맥락 속에서 사료와 역사적 사건을 위치시킴으로써 그 의미를 평가할 수 있다. 역사가가 어떤 맥락을 부여하느냐에 따라 한 사료와 사건은 전혀 다르게 평가되고 서술된다(쉬운 예가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명칭에 대한 논쟁이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언어로써 표현하면 내러티브적 서술 방식이 채택되며, 이는 곧 역사 서술은 발단과 결말을 가진 플롯을 통해 표현된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탁월한 역사책이란, 그저 사실을 나열하거나 밝힌 책이 아니며 설득력 있는 역사적 내러티브를 만들고 제시한 책일 것이다.

 

이러한 일반적인 내용을 전제하고 이 책을 살펴보자. 이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생태환경이라는 관점에서 조선 시대를 바라보았다. 저자가 생태환경적 관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오늘날 한국인들에게 공유된 역사 전통 중 대다수는 15~19세기에 새롭게 창조된 기억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억이 생태환경을 구성하는 여러 요인의 변화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필요한 자원의 대부분을 주변 자연환경에서 얻어야 했던 사람들이 창조한 문화는 생태환경에 크게 의존하기 마련이었다.” 한반도 생태환경의 제반 특성과 변화 양상은 20세기 이전 한반도 주민의 삶을 강력히 규정하였던 중요한 요소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주목한 생태환경은 야생동물과 가축 같은 거시생태, 농지 개간, 산림과 범람원(이 책에서는 범람원 대신 무너미라는 순화된 용어를 사용), 미생물과 같은 미시생태이다. 저자는 아직 생태환경을 통해 역사를 이해하려는 연구는 아직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자신의 연구의 새로움과 필요성을 역설한다. 따라서 이 책의 우선적 목표는 생태환경사적 방법론을 한국사에 접목한 성과를 소개하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우리는 저자의 목표대로 읽는 것보다 저자가 어떠한 새로운 시각과 맥락을 서술하는지, 구체적으로 한반도의 생태와 조선 시대 사람의 활동이 어떻게 상호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저자가 이러한 새로운 역사적 관점에 걸맞은 새로운 역사상을 제시했는지 확인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저자가 말하는 생태환경사란 무엇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 놀랍게도 저자가 직접적으로 생태환경사 연구의 정의를 언급한 부분이 없어, 프롤로그에서 관련 부분을 모두 찾아서 요약해야 하는 수고를 해야만 한다. 생태환경사란 인간과 자연환경의 관련성을 깊이 연구하는 것으로, “자연과학 분야에서 성취된 생명 현상에 대한 이해 심화와 연구방법론의 진전을 역사학 연구에 접목하려는 시도이다. 생태환경사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인간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넘어 인간과 다른 생명체와의 관계를 맺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인간-비인간 생명체의 관계와 그러한 관계 맺음을 가능하게 하는 환경적 조건에 대한 탐구역시도 생태환경사의 주제에 포함된다. 이를 볼 때, 저자는 인간에 의한 환경파괴를 의식하면서 인간과 자연환경의 균형관계를 강조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서로 관련된 내용이 많은 1~3부부터 요약해보자. 저자에 따르면, 한반도의 생태환경은 15~19세기 들어 획기적으로 변했다. 이 시기는 한국사에서 조선 시대에 해당한다. 조선 시대 들어 산림이나 야생동물의 생태에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은 조선의 국가 운영 이념 때문이었다.

 

조선은 산림천택의 이익을 백성과 함께 누린다산림천택 여민공지(山林川澤與民共之)’의 이념을 택했다. 또한 식량을 가장 많이 생산할 수 있도록 중농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일부 국가적으로 봉금(封禁)된 지역을 제외하고는, 백성과 일반 사족이 산지와 범람원 지역으로 들어가 농지를 개간하여 살기 시작했다. 국가도 이 흐름에 합세해 천방(川防)을 설치하여 논의 면적을 늘렸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은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개와 닭이 서로 호응하여 우짖고’, ‘밥 짓는 연기가 서로 이어지는경관으로 바뀌었다.”

 

이와 같은 활동은 야생 생태계에 큰 영향을 초래했다. 호랑이와 표범과 소의 사례를 통해 그 변화 양상을 관찰해보자. 숲과 범람원을 개간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야생동물과 맞서야 했음을 의미했다. 특히 범람원 지역은 평탄하고 기름진 곳이었기 때문에 수많은 야생동물이 서식했다. 조선 정부는 이러한 야생동물의 위협에 대응하여 “‘착호갑사(捉虎甲士)’라는 전문 군사를 양성하여 운영하였다. 지방에서도 자체적으로 호랑이 사냥을 전담하는 군사를 두었다. 사냥의 성과를 확인하고 강제하기 위해 호랑이와 표범의 가죽을 바치게 했다. 농지의 확대와 전문 사냥 군사의 활동으로 활동 영역이 점점 축소된 호랑이와 표범은 17세기 이후에는 극적으로 개체 수가 줄어 20세기 결국 멸절되었다. 5세기 동안 지속적으로 수가 줄었던 범과 표범과는 달리 농사에 꼭 필요했던 소의 개체 수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매일 500여 마리가 도살된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추정할 때, 조선 후기에 소는 대략 100만 마리 이상 사육되고 있었으며, 이는 조선 초기와 비교할 때 30~40배 이상 늘어났다.

 

농업 확대의 또 다른 영향력은 지리 환경의 변화이다. 조선 초기에는 주인 없는 황무지 등을 개간하여 농지 면적을 확대하였다. 그와 동시에 관개면적을 늘리는 정책에도 집중했는데, 여러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이 바로 천방, 즉 보를 쌓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국가와 지방 단위 수령을 비롯하여 사족과 일반 백성도 천방을 건설하여 논과 밭을 늘려나갔다. 그러나 천방 개간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17세기 무렵에는 천변에서 개간할 수 있는 땅이 고갈되기 시작했고, 이러한 변화는 화전 개발에 불을 당겼다.” 양란 혼란 속에서 화전을 통한 산림 지역 개간은 새로운 가업 경영의 기반이 되었고, 화전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결국 19세기에는 화전으로 개간된 토지와 일반 평지의 땅과 다를 바 없다는 기록까지 등장했다.

 

이러한 맥락을 염두에 두고, 앞에서 인용한 <홍재전서>의 기록을 다시 봐보자. 이는 화전으로 인해 황폐해진 산림 환경을 한탄해 하는 구절로 해석할 수 있다. 평지와 화전의 면적이 비슷하다는 말까지 나올 만큼 화전의 문제가 심각했다면, “화전이 늘어나고 숲이 줄어드는 만큼 종 다양성이 줄었다는 결론도 도출할 수 있다. “산림이 씻겨 내려가면서 새와 짐승들이 몸을 숨길 곳이 없어졌고, 강원도에서 많이 나던 인삼이 더 이상 생산되지 않았다.” 화전은 그 자체로 심각한 산림 파괴 문제였다.

 

이상에서 본 것과 같이, 이 책 1~3부는 어느 정도 신선한 내용을 담고 있다. 또 나름의 관점도 없지는 않은 듯하여 각 챕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옴니버스식이라 구성이 다소 느슨한 것은 단점이다. 이는 목차를 봐도 알 수 있는 것인데, 저자가 체계적인 서술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그런지 유사한 내용이 여러 장에서 반복적으로 나오기도 하고, 서로 연결된 내용이 아예 다른 챕터에서 서술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어떤 결론을 내리는 것도 아니라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모호하고, 저자의 서술이 그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될 가능성만 커졌을 뿐이다.

 

4미시생태는 흥미롭기는 하지만 다소 잡다한 정보를 지루하게 나열하고 있다. 4부는 누룩, 김치 같은 발효 식품, 전염병 등 지엽적인 주제를 다루면서, 이들 주제를 하나로 꿰어 통일된 서사로 만들어주는 역사관이나 역사상은 부재한다. 4부에 포함된 1~3장은 각각의 내용들이 지나치게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래서일까? 된장이나 고추장 등이 과연 역사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결국 또 다른 역사상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4부의 내용은 그저 흥미로운 옛이야기로 전락하고 만다. 차라리 제4부는 일종의 부록이나 자료집처럼 이용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조선 시대의 환경과 인간의 상호 영향은 나름 잘 설명하여 한국사 연구 성과와 최근 발굴된 각종 자료를 생태환경사라는 연구 방법론으로 재결집하여 한국 생태환경사의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목표는 이루었을지 모르나, 이를 통해 새로운 역사상이나 또 다른 역사적 내러티브를 제시하는 데는 실패했다. 생태환경사라는 또 다른 역사를 추구하는 분야를 소개하면서, 정작 또 다른 역사가 없는 것이다. 단적으로 프롤로그에서도 관련된 내용을 볼 수 없다. 저자는 생태환경사 연구는 근대 과학이 확립한 방법론으로서 분석주의, 이분법, 기계론적 세계관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을 지향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불분명하다. 생태환경사는 역사학을 더욱 역사학답게만든다느니,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한다느니, “새로운 역사 이해와 인간의 삶을 더욱 풍부하고 정확하게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느니 하는 기능적 설명은 많지만, 이들 모두를 총괄하는 생태환경사의 테제는 보기 어렵다. 이러한 사실부터 저자가 체계적 저술을 염두에 두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역사학자는 단순한 이야기꾼이 아니라 체계적 학자여야 한다.

 

이 책은 사서는 읽을 만한 책이다. 이 책을 사서 읽는 것은 우선 여러 정보를 정확하게 얻는다는 만족감을 줄 수 있다. 또한, 이후 저자가 더 발전된 저서를 출간하기를 기대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저자의 새로운 저서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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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북사랑 2021-07-23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김민우님 서재에 들르면, 제가 평소 스쳐 지나가도 몰랐을 좋은 책들이 새로 올라오네요^^

김민우 2021-07-23 13:5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 제 관심사가 역사 분야라 역사 책에 더 관심이 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