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김운찬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단테의 <신곡>은 단테가 쓴 인간 구원의 서사시다.

R.W.B. 루이스는 <신곡>의 주제를 한 남자가 자기 자신을 찾으며 성장해가는 여행으로 간명하게 정리해낸다. 물론 이 외에도 단테가 물려받은 문화적 전통에 대한 시적 탐구베아트리체에 대한 장편의 헌시로도 규정하지만, 나는 <신곡>을 읽으며 단테의 자기를 찾는 여행, 다시 말해 자기 구원의 서사시로 이해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한 것은 이 작품의 첫 3행을 읽고서이다.

 

우리 인생길의 한중간에서

나는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에

어두운 숲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지옥, 1.1~3)

“MIDWAY upon the journey of our life

I found myself within a dark forest,

for the straightforward pathway had been lost.”

(영어 번역의 출처는 digitaldante.columbia.edu)

 

서양 고전 문학에서 화자가 로 설정되면 주의해야 한다. 는 이 시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단테를 지칭할 수도, 아니면 이 책을 읽는 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첫 행에서 우리라는 인칭대명사를 썼으므로, 후자로 해석함이 타당해 보인다. 아무튼 는 길을 잃어버려 는 지금 어두운 숲속을 헤매고 있다. ‘는 이 숲을 스스로 벗어나보려 하지만, 표범(음란), 사자(오만), 암늑대(탐욕)가 자신을 방해하여 더더욱 태양이 침묵하는 곳으로밀려났다. 절망에 빠진 그는 그 순간 한 안내자의 도움으로 그 숲을 벗어나 빛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이 시는 저승 여행의 구조를 이루고 있으나, 인간의 행위와 행복에 대한 관심은 매우 보편적인 주제이다. 이 시는 중대한 심리적 위기가 어떻게 해결되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전개된다. 그 심리적 위기란, ‘올바른 길을 잃어버린 것으로 표현되듯이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인생의 허무함 등 다양한 경험과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단테의 여정은 잃어버린 올바른 길을 다시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의 첫 단계는 지옥이다. 지옥에서 단테는 하나님을 떠나 죄인들의 공간이다. 단테는 이러한 지옥에서 수많은 인물과 만나며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정의와 뜻을 깨닫는다. 이는 지옥 3곡의 유명한 지옥문에서 암시되어 있다.

 

정의는 높으신 내 창조주를 움직여,

성스러운 힘과 최고의 지혜,

최초의 사랑이 나를 만드셨노라.” (지옥, 3.4~6)

“JUSTICE URGED ON MY HIGH ARTIFICER;

MY MAKER WAS DIVINE AUTHORITY,

THE HIGHEST WISDOM, AND THE PRIMAL LOVE.”

 

죽음도 없고 영벌과 슬픔만 있는 지옥은 역설적으로 창조주의 정의’와 최초의 사랑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즉 지옥은 창조주의 정의가 실현된 공간이다. 지옥에 갇힌 이들은 현실 세계에서 하나님의 올바름을 실천하며 살지 않았다. 단테의 지옥은 하층부로 내려갈수록 더욱 정신적인 죄악을 저지른 이들이 있는데, 단테는 모든 죄악 중에서 배반을 최악으로 두었다. 배반 중에서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의에 대한 배반이 가장 최악의 죄이다. 신앙심이 있어도 현실 세계에서 불의를 저지르는 이들은 하나님을 배반한 존재이고, 그들이 가는 곳이 지옥의 최하층이다. 결국 단테는 지옥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은 올바름을 구현하는 데에 있음을 시사한다.

 

올바른 길을 잃고 방황하던 단테는 지옥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깨닫는다. 그리고 지옥에서 하나님의 의를 깨달은 단테는 연옥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연옥은 지옥과 천국의 중간적 존재로서, 연옥에서는 인간은 불로써 자신의 죄를 씻어내고 천국에 올라갈 수 있다. 지옥의 불이 영원의 불이라면, 연옥의 불은 죄인의 정화를 위한 순간의 불이다.’ 단테는 이곳을 지나며 본격적으로 천국에 오를 준비를 한다. 9곡은 이러한 단테의 정화 과정을 상징적 비유를 들어 표현한다.

 

우리는 그곳으로 다가갔는데 첫째 계단은

새하얀 계단으로 너무 깨끗하고 맑아서

나의 모습이 그대로 안에 비쳐 보였다.

둘째 계단은 어둡기보다 검은색인데

거칠고 메마른 돌로 되어 있었으며

가로와 세로로 온통 금이 가 있었다.

그 위에 얹혀 있는 세 번째 계단은

마치 핏줄에서 튀어나오는 피처럼

새빨갛게 불타는 반암(斑岩) 같았다.” (연옥, 9.94~102)

 

역자의 주석을 활용하면, 첫째 계단은 자신의 양심에 비춘 자기반성을, 둘째 계단은 죄의 고백을, 그리고 마지막 셋째 계단은 죄의 형벌을 채우려는 의지를 상징한다. 이 세 계단을 오르면서 단테는 회개를 통해 죄를 벗고 질적으로 고양된다. ‘새빨갛게 불타는 반암과 같이.

 

그러나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기존의 안내자인 베르길리우스가 아니라 새로운 인물이 있어야 했다. 그리스 로마 문화의 전통을 상징하는 베르길리우스가 퇴장하고 베아트리체가 단테를 새롭게 인도한다.

 

베아트리체의 안내를 받아 천국에 올라선 단테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으로 인간적 한계를 초월한다. 항성천, 원동천을 지나 최고천까지 올라간 단테는 맑고 날카로운 눈을 회복해야 한다. 은 단테의 한계를 벗기고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눈이다. 마지막 안내자로 등장하는 베르나르두스의 거룩한 말을 통하여 성모 마리아의 사랑까지 깨달은 단테의 의지와 열망은 하나님의 사랑과 합치하게 된다.

 

단테의 여정을 압축적으로 표현해보자. 올바름, 희망(혹은 소망), 그리고 사랑. 이 삼요소가 갖추어졌을 때 단테가 말하고자 하는 인간의 구원이 최종적으로 완성된다. 이러한 <신곡> 전체의 주제와 구조는 각 편의 마지막 문장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마침내 나는 동그란 틈 사이로 하늘이

운반하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았고,

우리는 밖으로 나와 별들을 보았다.” (지옥, 34.137~139)

 

나는 그 성스러운 물결에서 돌아왔고,

새로운 잎사귀로 새롭게 태어난

나무처럼 순수하게 다시 태어났으니,

별들에게 오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연옥, 33.142~145)

 

여기 고귀한 환상에 내 힘은 소진했지만,

한결같이 돌아가는 바퀴처럼 나의

열망과 의욕은 다시 돌고 있었으니,

태양과 별들을 움직이는 사랑 덕택이었다.” (천국, 33.142~145)

"Here force failed my high fantasy; but my

desire and will were moved already—like
a wheel revolving uniformly—by

the Love that moves the sun and the other stars."

 

원문으로 보면, 모든 편의 마지막 단어는 (stelle)’로 끝난다. 단테는 지옥을 나와 별을 쳐다보았고, 연옥을 오르며 그 별들에 다가갈 희망을 가지고, 천국에서는 그 별을 움직이는 사랑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랑과 함께단테의 여정도 끝난다. 절망의 순간 단테를 다시 올바른 길로 이끌어준 존재는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번역자 김운찬은 해제를 “<신곡>은 고전들 중의 고전이라 말할 수 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단테를 연구하는 사람이, 그것도 움베르토 에코의 제자라는 사람이 쓴 문장치고는 너절하다. 다음 문단으로 오면 더 난감해진다. “<신곡>의 주제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저승 여행 이야기다. 작가이자 주인공인 단테가 살아 있는 몸으로 일주일 동안 지옥과 연옥, 천국을 여행하며 보고 들은 것을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신곡>의 핵심을 단순히 저승 여행담으로 보는 것은 이 작품이 지닌 의미를 잘 전달해주지 못하는 것 같다. 나 역시 <신곡>을 잘 알지 못하지만, 번역자의 해설은 이 감동적인 작품을 지탱하기에는 너무 가볍다는 생각이 든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늘 심각하게 대두되는데, 그 원인이 꼭 일반 대중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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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1-07-14 13: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신곡>의 지옥편은 <오뒷세이아> <아이네이스>의 저승편의 전통을 계승했다는 인상을 깊게 받았습니다. 김민우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고대 그리스/로마의 전통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저승으로의 하강 이미지 뿐 아니라 빛의 세계로의 상승이 무엇보다 필요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곡>의 완성이 천국에서 마무리 지어지는 것을 통해 단테는 ‘신의 나라‘ 완성을 희망했고, 그러한 희망을 보고 후대에서 그를 ‘최후의 중세인‘이라 부르는 것은 아닐까도 생각해 봅니다. 김민우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김민우 2021-07-14 19:18   좋아요 1 | URL
아 제 중언부언한 글보다 겨울호랑이님의 이 해석이 훨씬 더 통찰이 느껴지네요!! 탁월한 견해신 것 같습니다! 다음에 신곡을 읽을 때 저도 겨울호랑이님이 말씀한 부분을 더 집중해서 읽어봐야겠습니다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ㅎㅎ

페넬로페 2021-07-14 14: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단테의 신곡이 어려워 읽기에 무척 힘들다고 하는 책인데 김민우님의 리뷰는 신곡 입문으로 너무 좋습니다.
이 글로 신곡에 좀 더 접근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김민우 2021-07-14 19:17   좋아요 1 | URL
너무도 감사하고 기쁜 말씀이십니다 ㅎㅎ 신곡 읽기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