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씨잡변 - 조선의 기획자 정도전의 사상혁명 규장각 새로 읽는 우리 고전 총서 6
정도전 지음, 김병환 역해 / 아카넷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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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은 이 책에서 불교의 인과설, 윤회설, 화복설, 지옥설 등 불교의 대표적 이론을 주자학의 관점에서 비판하며, 마음과 본성에 대한 불교적 관점을 논박한다. 그러나 이 책은 “동아시아에서 출판된 불교 비판서 중 가장 정연한 주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받는 한편, 아직 불교에 대한 이해가 심오하지 못하여, 불교의 기복신앙적 측면을 확대하여 불교 전체를 비판하기도 하며, 논의의 초점을 잘못 맞추기도 하고, 불교에서 말하는 심성론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는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보조국사 지눌의 『수심결』 원문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인용하기도 하였다.

문제의 구절은 이렇다.


“보조도 ‘마음 밖에 부처가 없고, 본성 밖에 법이 없다.’라고 했는데, 이 또한 불과 법을 구분하여 말한 것이다. 이런 말에는 무엇인가 통찰한 바가 있어 보이지만 그럴듯한 것을 상상해서 얻은 것일 뿐이고, 크고 탁 트여 참됨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없다.” (3편 마음과 본성에 대한 불교 이론을 논변함)

그러나 원문은 이렇다.

“‘만약 마음 밖에 부처가 있다고 생각하고, 본성 밖에 진리가 있다고 말하며’” (수심결)

지눌의 이 말은 “심즉불”, 즉 불성을 떠나 따로 법이 없다는 것이며, 정도전이 인용한 것과 같은 불성과 법을 이분한 것이 아니다. 정도전은 원문을 “자신의 의도에 맞게 변형해서 해석했다.” “호교론적” 저술 의도가 강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던 것 같다. 이렇게 정도전뿐 아니라 당시 유학자들의 불교에 대한 이론적 이해가 깊지 못했기 때문에 역자 김병환은 “고려 불교에 대한 당시 유학자들의 이론적 이해 지평”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불씨잡변』에서 전개되는 불교 비판의 또 다른 한 축은 현실에서, 그리고 역사적으로 불교가 사회에 끼친 해악과 폐단에 대한 공격이다. 이는 7편 ‘불교가 인륜을 훼손하는 것에 대해 논변함’, 12편 ‘불교의 걸식행위를 논변함’, 16편 ‘부처를 섬기면 재난이 닥침’, 17편 ‘천도를 버리고 불교의 인과설을 따르는 일을 논변함’, 18편 ‘부처를 믿을수록 왕조의 수명이 단축됨’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12편에서는 “오직 가만히 앉아서 의식을 소비할 뿐이며, 좋은 일이라고 거짓으로 의탁하여 갖가지 일로 사람들로 하여금 공양하게 하고, 음식을 낭비하며 비단을 찢어 갖가지 기(旗)를 만들어 불당을 장엄하게 꾸미니, 대개 평민 열 집의 재산을 하루아침에 탕진”하는 당시 불교 승려들의 폐단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

정도전이 이 책을 지었던 시기는 1398년으로, 그가 죽기 전 6개월 전이다. 이 시기는 조선이 건국된 지 6년밖에 지나지 않았던 때였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고려는 불교를 국교로 삼았다. 그러나 고려 후기로 갈수록 비대해진 불교 세력은 위에서 보았듯이 온갖 폐단과 사회문제를 일으켰고, 조선을 건국한 유학자들은 이러한 불교를 극복하면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는 우선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조선의 건국”이라는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정도전이 이 책에서 드러내는 불교에 대한 강한 적대심과 대결 의식 같은 것은, 조선을 성리학의 이념으로 다스려지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고대로부터 깊게 뿌리내렸던 불교적 가치관을 완전히 제거하고자 하였던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그가 꿈꾸었던 조선 사회의 유교적 전환은 조선 후기에 가서야 여러 사회 경제적 요인을 통하여 완성되었다. 그러나 그 사회는, 지배 엘리트층인 양반은 온갖 사회적 의무에서 면제되고 그로 인한 모든 부담은 다시 평민에게 돌아갔으며, 여성에 대해서는 정도전 당시보다도 배타적이었다(물론 이러한 변화는 미야지마 히로시가 지적한 것처럼 주자학의 영향이라기보다는 재지양반의 경제력 하락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정도전이 비판했던 불교의 폐단과 유사한 행동을 조선 후기 양반이 그대로 하고 있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누군가는 이런 것을 보고 조선은 성리학에 경도되어 망했다고 할 것이다.

사실 『불씨잡변』, 그중에서도 18편 ‘부처를 믿을수록 왕조의 수명이 단축됨(事佛至謹年代尤促)’은, 성리학 때문에 조선이 망했다는 주장과 닮은 점이 있다. 망국의 원인을 어느 특정 사상에 돌린다는 점에서 그렇다. 정도전은 조선 건국 초기 현실의 권력 집단이었던 불교가 아니라 성리학을 조선의 지배 질서로 자리 잡게 하기 위해서, 초점이 어긋난 비판을 하면서까지 불교를 공격했다. 현재는 식민지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서 성리학이라는 제물을 발견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정도전에게 불교는 현실의 문제였고, 현대에 성리학은 어느 정도 과거의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도전이고, 성리학 책임론을 주장하는 이들도 그렇고 자신의 관점이 일방적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 불교 세력의 폐단이 심했지만, 정도전이 비판하는 불교가 진정한 불교도 아니거니와 불교가 고려 멸망과 연결 지으려면 더 설득력 있는 근거가 필요하다. 물론 당시 그에게 이런 정도의 요구를 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이며, 이것마저 후대의 일방적 비판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성리학을 조선의 멸망에 바로 대입하려면 무리가 많으며, 대개 그들이 생각하는 성리학도 실제와 다른 경우도 많다.

어쩌면 후대의 공격은 망한 나라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겪어야 하는 운명일 수 있겠다. 누가 알겠는가, 언젠가 대한민국이 망한 뒤에는, 자유민주주의가 한국을 망하게 했다고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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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3-13 13: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도전 관련 글을 읽으면서 “어이, 불씨! 여기 앉아봐 “ 막 이런 상상 했던 적이 있습니다. ㅎㅎ 이 책이 이렇게 출판되어 있을 줄이야. 좋은 글 공감하며 잘 읽고 갑니다 *^^*

김민우 2021-03-13 16:36   좋아요 1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아카넷에서 좋은 책을 많이 출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