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제국 - 찬란한 600년의 기록
오가사와라 히로유키 지음, 노경아 옮김 / 까치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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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조선 왕조 500년 역사를 부각하는데, 오스만 왕국은 이보다 100년은 더 오래간 600년 역사이다. 티무르 왕조의 공격으로 왕이 납치당하고 10년간 왕위 다툼이 일어났던 공위 시대가 있었고, 후기에도 지속적인 위기가 있었으나 오스만 제국은 600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친 역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마이클 만이라는 학자는 권력의 4가지 원천으로 군사/경제/정치/이데올로기를 지목한다. 앞의 2개는 팽창 단계에서 중요한 요소라면, 뒤의 두 요소는 어느 정도 안정기 들어서면 공고화할 때 중요한 요소들이다. 이렇게 팽창에서 공고화 단계로 넘어가는 것을 아우구스투스의 문턱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아우구스투스의 개혁으로 공화정이 제국으로 변화한 것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제국이 되기 위해서는 군사와 경제적 힘뿐만 아니라 정치와 이데올로기에서도 우위를 장악해 공고화 단계에 들어서는, 아우구스투스의 문턱을 넘어서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헤어프리트 뮌클러는 <<제국>>에서 오스만 제국도 아우구스투스의 문턱을 넘은 중요 사례로 거론한다. 그는 정치사의 순환 모델이라고 하는 모델을 이용하여 제국의 상승과 하강을 더 자세히 분석하는데, 이때 상승의 주기에 더 오래 머물도록 하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앞에서 말한 아우구스투스의 문턱이다. 당연하겠지만, 4가지 권력의 요소가 균등하게 작용할 때, 순환주기의 윗부분에 장기간 머무를 수 있고 제국의 수명도 그만큼 길어질 수 있다. 뮌클러는 이렇게 아우구스투스의 문턱을 넘은 중요한 사례로 오스만 제국을 거론한다. (자세한 내용은 헤어프리트 뮌클러, <제국>, ‘3장 초원제국, 해양 제국, 그리고 지구적 경제를 참조할 것)

 

그렇다면 오스만 제국은 어떻게 하여 이 문턱을 넘은 것일까? 다시 말해, 오스만은 어떻게 팽창의 단계를 지나서 질서 있는 지속, 장기적인 존속의 시기로 넘어간 것일까? 첫 번째 요인은, 뮌클러의 표현을 따르면, 유목민적 특성을 전환시킨 것이다. 오스만 제국은 노예 군인 출신 튀르크인이었다. 이들은 아나톨리아 북서부의 작은 마을 쇠위트에서 시작하여 오스만-오르한-바예지드 1세를 거쳐 거의 모든 아나톨리아 지방을 통합하였다. 그렇지만, 이미 오스만 때부터 유목민적 생활양식이나 유목민 특유의 유대감은 없어진 것으로 보이며, 대신 아바스 왕조, 셀주크 왕조 등 무슬림 왕조들이 발전시킨 통치 기술들을 차례로 도입했다.” 후술할 예니체리가도 앞선 무슬림 왕조들에게서 이어받은 최고의 유산들 가운데 하나였다(58)”.

 

두 번째 요인은, 군사력과 중앙집권화이다. 초기 데브쉬르메로 징용된 노예를 정치/군사 엘리트(카프쿨루)로 만든 것은 술탄의 권력을 강화하였고, 토지에 대하여 징세권만을 인정하고 치안 유지의 의무를 부여한 티마르 제도는 구 후국의 유력자 등 지방 세력을 해체하고 오스만 왕조의 군주와 새로운 유대를 맺게 하는 수단이었다. 특히 술탄은 노예들을 자의적으로 처형할 수 있었기에 술탄 중심의 중앙집권 체제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카프쿨루, 그중에서도 예니체리라는 병영에서 생활하는, 그럼으로써 언제든지 투입될 수 있는(뭔클러, 178)” 군사 엘리트의 존재는, 서구나 다른 국가에 대한 오스만 제국의 군사적 우위를 보장하였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전투에서 대포의 중요성이 커지고 데브쉬르메가 아닌 연줄을 통해서고위관료가 선발되면서, 예니체리 중 실제로 군무에는 종사하지 않는 유령군단원이 증가한 뒤부터는, “예니체리의 신분이 주는 특권과 연줄을 이용하여 경제활동에 종사하는...이스탄불 사회에 뿌리내린 일종의 중간 단체로 기능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하겠다. 추가로, 형제 살해라는 극단적인 관습을 통해 왕위 계승 다툼의 후환을 제거한 것도 통치 안정화의 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제국의 유연성이다. 통치 체제만 놓고 봐도 오스만은 처음에 튀르크계 특성에서 출발하였다가 중앙집권적 왕조, 마지막에는 입헌군주제의 국민국가 체제로 바뀔 정도로 변화에 능동적이었다. 또한, 술탄을 비롯하여 제국인은 다층적이고 다양한 소속 의식을 가졌다. 초기 오스만은 이슬람 신앙 전사를 자처했고, 이후에도 술탄과 칼리프라 불리며, 오스만 제국은 알렉산드로스나 로마 제국, 오구즈족의 귀족인 카이 씨족 등의 후예라 주장하여 자신들의 역사적 정체성을 하나로 국한하지 않았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균일하고도 동질적인근대 국민국가 체제로 바뀌면서, 다층적 정체성 의식에서 나온 오스만 제국 특유의 유연함이 사라졌다는 결과로 이어졌다. 타종교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오스만은 선입견과는 달리 매우 관대했다. 기독교도에 대한 강제 개종도 없었으며 특히 1856년 무슬림과 비무슬림에게 동일한 권리를 부여한다는 칙령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물론 그 이전부터 인두세를 폐지하고(1855) 배교자에 대한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등 공존의 길을 걷고 있었다.

 

위와 같은 세 가지 요인이 합쳐져, 16~17세기 오스만은 오랫동안 순환 주기의 윗부분에서 오랫동안 있을 수 있었고, 제국을 장기화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뮌클러는 오스만 제국이 정치적-군사적 힘과 이데올로기적-경제적 힘(뮌클러, 179)”이 불균등한다고 보았고, 특히 경제적 힘이 매우 약했다고 주장한다. 경제적 힘의 결핍은 시간이 지날수록 유럽 국가와의 격차를 벌어지게 하였고 무기 등에서 오스만의 군사적 우위마저 밀리게 하였는지도 모른다(이 점은 필립 호프먼의 <정복의 조건>을 읽으면 참고가 될 듯하다).

 

오가사와라 히로유키의 <오스만 제국사>는 국내에서 매우 보기 힘든 오스만 제국 통사이다. 이 책의 장점은 두 개 정도를 꼽을 수 있는데,

첫째로 오스만 제국과 터키공화국을 전공한 저자가 쓴 최신 입문서

둘째로 오스만 왕가라는 관점에서, 오스만부터 압둘메지드 2세까지 모든 술탄과 칼리프를 한 명도 빠짐없이 다 다루었다는 점이다. 저자의 설명을 덧붙이면, 이는 오스만 제국의 역사가들의 시각에서 오스만사를 재구성했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마지막 셋째로, 전 시대를 균등하게 다뤘다는 점도 본서의 특징이다.

적절한 분량으로 오스만의 역사를 가장 최신 정보까지 포함하여 공부하고 싶다면, 이 책이 매우 적절하다 하겠다. 오스만에 대한 호기심과 매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던 좋은 책이었다.


본 서평은 부흥 카페 서평 이벤트(https://cafe.naver.com/booheong)에 응하여 작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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