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 강아지 아무개의 마법
완다 가그 글.그림, 정성진 옮김 / 지양어린이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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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를 잃고 버려진 강아지 삼형제. 그 중 눈에 보이지 않아 아무개라고 불렸던 강아지가 있다. 형제들이 어떤 아이들의 손에 떠나고, 홀로 남게 된 아무개. 아무개는 형제들을 쫓아 가다가 길을 잃고 헤매다. 다행이 아무개는 까마귀의 도움으로 마법을 익히게 된다. 마법의 도움으로 아무개는 모습이 보이게 됐고, 강아지 삼형제를 다시 만나게 된다.

유쾌한 줄거리, 부드럽고 풍부한 표현이 담긴 그림, 따뜻한 배려가 인상적인 그림책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의 재미는 보이지 않는 강아지라는 설정이 아닐까 한다. 보이지 않아 외롭고 쓸쓸한 소외된 이의 심정을 느껴볼 수 있다.  

까마귀가 알려주는 마법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9일 동안 새벽 일찍 일어나 돌면서 주문을 외우는 노력 말이다. 그건 아마 단군신화의 곰처럼 동굴에서 한 달 동안 마늘과 쑥을 먹으며 인내하는 것과 같은 뜻이 담긴 것은 아닐까? 

‘투명 강아지’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우선 장애인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은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로 취급당한다. 그러니 투명한 존재이고, 아무개가 아니겠는가! 

또 ‘투명 강아지 아무개’는 현대 사회의 소외된 어린이들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아무개가 자신의 모습을 찾으려는 노력은 어린이들이 성장하면서 겪는 어렵고 힘든 현실에 대한 은유다.

이 그림책에는 꿈을 잃지 않고 나아가는 어린 생명에 대한 격려와 애정이 담겨 있어 따뜻하다. 또한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여운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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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 호랑이 탄 한국인과 놀다 - 우리 이야기로 보는 분석 심리학
이나미 지음 / 민음인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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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여러 민담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의문이 생긴다. 민족과 지역을 넘어 놀랍게도 비슷한 플롯, 비슷한 상징들이 반복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우리가 잘 아는 '콩쥐 팥쥐'와 '신데렐라'는 닮은꼴이다. 또 우리의 '구렁이 신랑' 민담과 '미녀와 야수', '개구리 왕자'는 모두 공통적으로 동물과 결혼한 아가씨가 우여곡절 끝에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게 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로 다른 문명권의 이야기가 왜 닮은꼴인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융의 분석 심리학은 흥미로운 이론을 제안한다. 분석 심리학은 인간에게 공통된 집단 무의식이 있다고 주장하고, 그 집단 무의식에서 원형(archetype)이라는 질서를 찾아낸다. 즉 인간의 집단 무의식과 원형이 민담에 담겨 있기 때문에 세계의 민담이 닮은꼴이라고 본다. 

이 책은 이러한 융의 분석 심리학의 도움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민담들을 분석한다. 도식적인 분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둔다. 그리고 그 해석이 우리의 삶, 사랑, 성장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현대 한국인의 심리 상태와 사회를 읽기도 하는 등 다채로운 미덕을 지닌다.

예를 들면, 저자는 '소박맞은 세 자매' 민담 해석을 통해 성숙한 결혼 생활을 위해 필요한 태도가 무엇인지 살펴본다. 저자는 소박맞은 세 자매가 사실은 남편의 무의식이라고 뒤집어 읽는다. 남자의 무의식 속에 아직 성숙하지 못한 여성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성숙한 결혼 생활을 위해 이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저자의 지적은 날카로운 점이 있어 읽는 동안 '뜨끔'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호랑이 잡은 피리' 이야기를 인생의 바닥에서 다시 올라가 행복해지는 법에 관한 훌륭한 교범으로, '도깨비 감투'는 감투, 즉 지위나 신분 등의 가면 뒤에 숨어 망가져 가는 자아에 대한 은유로, '호랑이 뱃속 잔치'는 힘든 과정을 견디는 이들에게 영감과 힘을 줄 수 있는 이야기로 읽어낸다.  

이 책에서 시도하는 분석 중 압권은 역시 '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아닐까 한다. 저자는 이이야기를 완전한 자아의 독립을 위한 이야기로 해석한다. 이렇게 옛 민담에서 오늘날 우리의 초상을 보고, 개인의 성장과 치유에 도움을 주는 이야기로 해석한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친숙한 민담에 현대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현실에서 부딪치는 문제를 해결하고 참된 자기를 찾는 실마리로 삼는다. 

이 책은 쉽게 쓰여 분석 심리학의 여러 용어들의 쓰임새도 절로 익힐 수 있다. 즉 아니마, 아니무스, 그림자, 페르소나, 참-자기 등은 물론이고, 수동 공격형 방어, 부정적 동일화, 충동 조절 장애 등의 개념도 사례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어 무척 유용하다. 따라서 이 책은 분석 심리학의 훌륭한 입문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분석 심리학을 모르는 일반 독자에게도 흥미로운 민담을 통해 그 숨은 의미를 찾아가는 재미를 주며 자아의 성장과 치유에 도움까지 주는 좋은 책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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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디우스의 사랑의 기술 - 2000년을 이어온 작업의 정석
오비디우스 지음, 김원익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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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디우스의 <사랑의 기술>은 플라톤의 <향연>이나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처럼 철학적이지 않다. 또 사랑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목적으로 하는 책도 아니다.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정보들로 가득한 실용서다.그렇다고 그 정보들이 얄팍한 것은 아니다. 사랑에 대해 성찰에서 나온 정보들이다. 결국 이 책은 통찰과 깊이를 지니면서도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정보를 제공한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무척 놀라웠다. 로마 시대에 쓰여진 연애 서적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사랑에도 합리적인 기술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로마 시대에 체계화된 연애 서적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오늘날 연애 서적의 기초 전제도 바로 '사랑은 기술'이라는 것이다. 철학적인 성찰이 가득한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부터 얄팍한 연애 서적까지 말이다.

또 로마의 일상생활을 알려 주는 역사적 정보들도 많아 재미있다. 이를테면 로마의 목욕탕이 복합문화시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쨌든 사랑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준비한 자에게만 사랑은 찾아온다. 이 책은 그 준비를 잘 하게 도와준다. 예로 든자면, '작업 걸 시점을 잘 선택하라'는 충고다. 오비디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여자의 생일이나 아프로디테 여신과 그녀의 애인 아레스 신의 결합을 기념하는 4월 1일에는 작업을 거는 것을 삼가라. 어차피 그날은 여자가 선물을 받는 날이다. 극장 앞이 예전처럼 자잘한 인형을 파는 잡상인들로 붐비는 게 아니라, 왕가의 휘황찬란한 보물들로 전시되는 날도 작업을 걸지 마라. 그날은 선물을 해도 빛이 나지 않는다."(81쪽)

그렇다. 오비디우스의 충고는 정말 적절하다. 오늘날 이성의 환심을 사기 위해 밸런타인 데이나 화이트데이 때 선물을 주곤 하는데, 그것은 정말 효과가 없는 일이다. 오비디우스의 통찰은 참으로 놀라움 점이 있다. '체위는 체형에 맞게 정하라'는 조언도 인상적이었다. 오비디우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얼굴에 자신 있는 여자는 반듯하게 누운 자세가 좋다. 등에 자신 있는 사람은 등이 보이는 자세가 좋다. 히포메네스는 아탈란데의 다리를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려놓는 자세를 취했다. 다리가 매끈한 사람은 이런 자세가 좋다. 키가 작은 여자는 기마 자세를 취하라."(246쪽)

그 외에도 오비디우스는 많은 유용한 충고를 준다. 이런 많은 유용한 정보를 그 어떤 책에서 또 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다. 유용한 정보를 접하는 재미 외에도 오비디우스의 뛰어난 문장을 보는 것도 재미나다. 오비디우스의 문장은 무척이나 유려하다. 아름다운 문장을 잘 보여 주는 부분을 인용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파티도 여자들에게 접근할 기회를 제공해 준다. 파티에서는 포도주 말고도 덤으로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곳에서는 얼굴에 홍조를 띤 사랑의 신 에로스가 부드러운 손으로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를 끌어안는다. 포도주가 에로스의 마른 날개를 살짝 적시면, 신은 제자리에 그래도 서 있기가 힘들다. 그는 젖은 날개를 재빨리 털어보지만, 이미 사랑으로 촉촉하게 적셔진 그의 심장은 도저히 말끔하게 털어낼 수가 없다."(62쪽)

그렇지만 오비디우스는 여성에 대한 편견을 지니고 있다. 이는 시대의 한계라 할 수 있겠다. 이를테면 "남자들의 욕망은 분수를 알고 광적이지 않다. 남자들의 욕망에는 신체적으로 한계가 있다. 하지만 여자들의 욕망은 끝을 모른다."(67쪽)고 하는 부분이나, "여자들은 한 남자만을 사랑하는 게 아주 힘든 모양이다."(73쪽)하는 부분도 그렇다.

또 "이 모든 범죄는 여자의 정욕 닷에 일어난 것이다. 여자의 정욕은 우리 남자보다 훨씬 더 격렬하고 거의 광기에 가깝다."(78쪽)거나 "여자들은 완력을 좋아한다...... 여자는 갑자기 기습을 당해 사랑의 기쁨을 누리는 것을 즐긴다."(106~7) 하는 부분도 그렇다. 특히 마지막 인용은 잘못하면 강간을 합리화하는 논리가 될 수도 있어 위험하다.

어쨌든 오비디우스에게는 이러한 편견이 있어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 책 <오비디우스의 사랑의 기술>은 많은 장점이 있다. 1, '훌륭한 해제' 2, '읽기 편한 번역' 3, '우아한 문장' 4, '뛰어난 심리묘사' 5, '로마의 일상생활 재현' 6, '다채로운 도판과 그에 대한 친절한 해설'이다. 

오비디우스의 사랑의 기술은 단지 여성을 꼬시는 기술을 가르쳐주는 얄팍한 책이 아니다. 여성에게 필요한 기술과 이미 얻은 사랑을 지키는 방법도 알려 준다. 그리고 상처받은 사랑을 잊는 방법도 알려 준다. 순고하고 아름다운 사랑은 기술이 필요하다. 그리고 배워야한다. 오비디우스의 사랑의 기술도 그에 도움을 주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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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번역가는 현대 연애 서적이 오비디우스의 책에 비해 통찰과 깊이에 미치지 못한다고 소개한다. 그렇지만 그건 오늘날 서적을 잘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몇 가지 예만 들어도, <똑똑하게 사랑하라>(필립 맥그로), <사랑은 어떻게 시작하여 사라지는가>(스턴버그), <사랑의 색깔>(알란 리) 등의 주옥 같은 책들이 있다. 성찰과 실용이 모두 겸비된 책들이다. 

심지어 최근엔 청소년용 책도 나왔다. <사랑을 물어봐도 되나요>(이남석)가 그것이다. 이 또한 청소년용임에도 깊이 있는 성찰과 실용적인 정보를 담고 있다. 책들은 나름대로 다들 가치가 있다. 이 책 역시 오늘날에도 공감할 만한 정보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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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정원 - 어느 미술사가의 그림 에세이
정석범 지음 / 루비박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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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그림으로 장식된 기억의 보물창고 만들어

우리나라 미술 책은 보통 정형화된 작품 해설과 관련 사상, 예술사적 지식 등을 소개하곤 했다. 그런데 이 책은 신선하다.

저자 자신의 경험을 통해 그림에 대한 이야기와 분석, 미술 이론을 설명한다. 클로드 모네, 빈센트 반 고흐 등의 서양 화가부터 나빙, 거렴, 안도 히로시게 등의 동양 화가까지 섭렵하며 그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저자는 군인인 아버지 때문에 전국 곳곳을 떠돌며 이방인으로써 지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들과 어린 시절의 예민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경험을 인상적으로 그려낸다. 이 책은 저자의 추억을 읽는 에세이 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준다. 그에 더해 명화를 연결시켜 이야기를 더욱 진행시켜 글 읽는 재미를 더욱 배가한다.

이 책은 저자의 최초의 기억, 네 살의 기억부터 시작해 열두 살이 되는 사춘기의 문턱에서 끝난다. 저자는 어린 시절을 애써 외면했다고 말한다. 힘겨운 시절을 떠올리기 싫었다며. 그런데 그림을 보면서 다시금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어린 시절을 좀 더 낙관적인 시선으로 보고 어려서 알지 못했던 새로운 의미도 찾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어린 시절 기억의 편린과 명화의 이미지를 함께 보는 버릇이 생겼고, 이런 책으로도 나오게 되었다.
저자는 사라져가는 자신의 기억을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하는 되살려 기억의 보물창고를 만든다.
그곳에는 케테 콜비츠의 <죽음의 위로>도 있고, 클로드 모네의 <생 라자르 역>도 있다. 

그림 보는 눈도 열어 주는 책 

이런 신선한 시도에 이끌려 이 책을 펼치면 다음에는 깔끔한 그림 해설에 사로잡히게 된다.
클로드 모네의 <생 라자르 역>에 대한 설명을 예로 들어 보자. 

저자는 이 그림이 화가가 파리의 기차역에서 발견한 개인적인 인상을 담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그림에서 사물의 고유한 색채는 찾아보기 어렵다. 모든 대상은 청색과 밤색의 단 두 가지 색조로 환원된다. 형태도 뚜렷한 윤곽을 잃은 채 흐물흐물 대기라는 용광로 속에서 녹아 해체된 것처럼 보인다고 설명한다.

결국, 이 그림은 유리 지붕 아래로 쏟아지는 햇빛과 그 위의 맑은 하늘, 그리고 역동적인 기관차가 뿜어내는 연기의 충돌로 빛어진 대기의 변화무쌍한 인상에 주목한 작품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설명은 그림의 인상을 명확하게 설명해 주었다. 모네의 그림은 전에도 본 적이 있고, 해설도 본 적이 있지만, 이 책만큼 명쾌하게 마음에 쏙드는 설명을 접하지는 못했다. 

칸딘스키의 <즉흥6-아프리카>에 대한 설명도 인상적이었다. 전통적인 회화 원리에서 벗어나 색채 추상이 시작된 그림이라고 설명한다. 사물이 구체적인 형상을 상실하고 추상적인 색채의 면들로 전화되어 가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물론 이런 설명은 일반 미술책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런 설명 전에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 즉 놀이공원에서 겪은 일을 연결시켜서 가슴에 와 닿는 설명을 만든다. 

그 외 기리코의 <거리의 우울과 불가사의>, 앙리 마티스의 <음악>, 그로츠의 <사회를 지탱하는 사람들> 등에 대한 설명도 명쾌하다. 저자가 지닌 그림을 읽어내는 눈이 참으로 뛰어나며, 그것을 매우 쉽게 설명하는 것이 이 책의 또다른 커다란 매력이다. 마치 내가 그림을 보는 눈이 성장한 듯한 착각마저 주는 책이다. 짧은 글이지만, 많이 배운 듯한 뿌듯함을 준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어릴 적 이야기가 단순 소재로 머무는 것이다. 어렸을 때 메뚜기 볶음을 싫어했다는 얘기를 하고, 이어서 메뚜기가 있는 초충도를 보여 주는 글에서 특히 그러했다. 어린 시절의 경험과 그림 해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지는 않은 것이다. 이런 약간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글 읽는 재미와 그림을 보는 눈을 열어 주는 이 책의 매력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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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하성란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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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A는 오대양 사건을 모티브 삼아 쓰여졌습니다. 23년 전 1987년 8월 29일, 신도 32명이 한꺼번에 사망해 당시 시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입니다. 종교적 문제와 관련있을 것으로 추측하지만 정확한 내막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죠. 하성란은 이를 시멘트 공장 기숙사에서 24명이 한꺼번에 사망한 사건으로 그립니다. 하지만 오대양사건을 소재로 쓸 뿐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거나 섣부른 판단을 내리지 않습니다. 
 
소설의 줄거리를 이렇습니다. 시골마을에 시멘트 공장을 세워 단기간에 급성장한 신신양회에는 대표인 '어머니'와 회사 내 기숙사에서 20년째 함께 지내온 여자들이 함께 살아갑니다. 여자들은 서로 자매처럼 지내며 '어머니'를 따릅니다. 그리고 그녀들은 아버지를 알 수 없는,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처지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어머니'가 신신양회를 무리하게 확장하려는 데서 시작됩니다. 사채를 끌어쓰다가 신신양회는 풍지박살이 나게 되고, '어머니'는 궁지에 몰립니다. 결국 이들은 집단자살을 합니다. 아무런 저항 없이 목을 졸려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목을 조른 사람은 마지막으로 밧줄에 목을 매 자살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게 해서 죽은 이는 여자가 21명, 남자가 3명.
 
주인공 '나'는 당시 현장에 있었으나, 후천적 시각장애로 겨우 살아남게 됩니다. 하지만 볼 수 없기에 목격 또한 할 수 없었습니다. 주인공은 어둠속에서 유일하게 범인의 목소리와 손만 기억합니다. 그리고 사건 당일 학업 때문에 다른 지역에 있던 신신양회 아이들도 살아 남습니다. 
 
사건 후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지지만, 어른이 되어 홀린듯 서로를 찾습니다. 그리고 다시 신신양회로 모여듭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엄마들이 했던대로 그들만의 공동체를 만듭니다. 여성의 왕국 아마조네스처럼. 이들은 마음에 드는 남자와 하룻밤을 보낸뒤 임신한 후 신신양회로 돌아와 아이를 낳아 키웁니다. 결혼은 하지 않으니, 남편도 없고 아버지도 없습니다. 이들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한동안 잘 살아갑니다. 무너진 신신양회를 멋지게 재건시키고, 아이들을 잘 키웁니다. 
 
한편 소설 속 시간과 화자는 순환하면서 반복됩니다. 그래서 소설은 복잡하게 읽힙니다. 일관된 서사가 아니라 인물의 기억과 현실의 삶을 교차되면서, 신신양회의 과거와 현재가 부딪힙니다. 그리고 똑같이 반복됩니다. 이러한 구성이 때로는 소설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점이 있지만, 주제를 드러내기 위한 작가의 의도임은 분명합니다. 어쨌든 과거의 신신양회가 개인의 욕망에 의해 무너졌듯 현재의 신신양회 또한 끝임없는 욕심으로 평화가 무너집니다. 

줄거리를 정리하면 소설 'A'는 간단해 보입니다. 하지만 글은 단편으로 잘려 흩어져 있습니다. 화자와 시간도 계속 바뀝니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는 의미있어 보입니다. 독자에 따라 다양한 재구성이 가능해지니까요. 즉 작가는 일부러 간단한 줄거리를 제공하지 않고, 독자가 스스로 '놀이'를 즐기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골치 아픈 놀이를 즐기는 독자는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대중성보다는 새로운 시도에 집중한 저자의 노력에 찬사를 보냅니다. 그리고 이 소설은 천사, 아마조네스, 간통의 뜻이 되는 A의 정체에 대해서는 계속 생각을 계속 생각하게 만듭니다. 새로운 구성에 묵직한 메시지를 전하는 미덕을 지닌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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