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나를 살기로 했다
요스미 다이스케 지음, 송소영 옮김 / 라이프맵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나는 왜 아직까지도 자기계발서를 끊지 않는가. 아마도 내리막세상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해서이거나 아직도 충전할만한 외부 에너지가 있다고 믿고 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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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도시락이지만 웬만해서는 어김없는 도시락. 에서 탁 하고 숨이 막혔다.

웬만해서는 어김없는 도시락을 해 준 나기네 어머니 순자,

순자의 순은 어째선지 열흘, 이라는 의미의 순().

어째서일까?

 

탁 하고 숨이 막힌, 웬만해서는 어김없는 도시락과 어째선지 열흘, 이라는 의미의 순을 이름으로 가진 순자. 이야기의 구조 한 귀퉁이에 애자라는 블랙홀이 있고 다른 한 귀퉁이에는 어째선지 열흘, 이라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순자가 있다. 열흘은 서수, 세기 위한 수. 하나, . 세기 위한 수. 그저 도시락이지만 웬만해서는 어김없는 도시락 하나, , , 모종의 질서, 순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 사랑()만으론 안 된다는 말은, 실은 사랑 하나도 제대로 못해본 사람들의 상투적인 변명일 뿐이지만, 사랑만으론 안 된다. 하지만 사랑이 일 순위인 삶은 가능하지 않을까. 이 순위는 밥 먹고 똥 싸기, 삼 순위는 남하고 심하게 다투지 말기 등등.. 사랑만으론 안되지만, 사랑이 첫 번째인 삶은 살 수 있지 않을까. 애자는 순서가 없다. 순서 없음의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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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 하나도 안 맞는 말로 모세(나나 뱃속 아기의 정자제공자(?))에게 달려드는 소라, 그런 소라를 언니야, 라고 부른 것을 분해하는 나나. 소라와 나나는 애자를 엄마라 부르지 않고 나나는 웬만해선 소라를 언니라 부르지 않고.

 

무언가를 써야 한다면, 나는 이 소설에 대해 무언가를 써야 한다면 소라와 나나처럼, 나기처럼 쓰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소설 내용을 대상으로 삼는, 직접 가리키는 글을 이미 위에 써버렸으니 망했지만, 소설 내용은 한 마디 언급 없이 그저 내가 독서하는 사이에 어떤 행위들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했는지를 스스로 관찰하여 썼다면, 아니 스스로 관찰한 결과와 그렇게 관찰했다고 착각한 결과들을, 그저 했던 순서대로 나열했다면,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고 아직도 쐐기처럼 심장에 박혀있는 무언가가 저지한다. 그건 꾸미고 싶은 욕심과 꾸밈이 가능하지 않음의 간극이고, 나는 그 간극 그대로 놓아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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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은 간혹 심연의 간극까지 나를 데려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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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는 등장인물 이름을 그냥 짓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걸 확인했다. 인터뷰 같은 걸 본 것은 아니지만, 『지상의 노래』도 그렇고 『식물들의 사생활』 등장인물 이름도 그렇고. 똑딱단추처럼 딱 맞춘 이름을 짓고 싶어하는 스타일이라고 느꼈다. 형제의 이름은 이렇다. 우현, 기현. 한자로는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나는 그냥 습관에 젖어 이렇게 해석하고 만다. 愚賢, 起賢. 여주인공 순미는 順美로도 純美로도 읽힌다. 우현과 순미를 구성하는 한자들은 어떤 상태를 표현한다. 이미 그렇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기현은 일어날 기()로 인해 움직임을,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느낌을 준다. 현명함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 즉 성장한다는 뜻이므로 이 소설은 기현의 성장소설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지만, 그것만은 아니겠지.

 

우현과 결부된 사물은 카메라. 시대 사건을 찍어 기록하고자 한 열망으로 가득 찼던 청춘. 그는 증거하는 자로 살고 싶어한 자였다. 기현과 결부된 사물은 렌즈가 들어간 또 다른 사물, 망원경. 그것은 기현이 탐색’, ‘탐사’, ‘탐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현이 겪은 사고로 카메라는 이제 사용되지 못하고 형을 질투한 기현은 밖으로 돈다. 불구된 카메라와 방황하는 망원경. 덧붙여 유린된 노래(목소리). 세 인물이 형성하는 꼭지점은 이렇다. 물론 이 꼭지점들은 유동하는데, 그건 개인의 정념 때문이기도, 규범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게 만드는 시대의 악착같음, 집요함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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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많은 부분, 기현의 회상이다. 기현의 회상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화자의 기억과는 달리 선명한다. 이 소설 형식을 한마디로 말하면 신화인데, 잊을 수 없는, 사진처럼 선명한 기억이라는 소설적 장치는 이 신화를 든든하게 뒷받침한다.

 

그래. 이 소설은 신화다. 때죽나무-소나무, 야자나무, 물푸레나무가 상징하는 이야기들이 신화고, 우현-순미의 사랑, 우현-순미-기현의 관계, 형제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스물한 살 어머니가 사랑한 남자의 이야기 또한 신화다. 그렇기에 만남의 장면 또한 신화적이다. 환상적이다. 기현이 순미를 처음 만났던 집 앞의 벚꽃들이 화르르 떨어져내리던 4월의 마지막 날’, 다시 만난 순미가 나를 그 호텔에 넣어줘요라고 뱉었을 때, 야자나무 아래 평상 위에서 두 남녀가 하나가 되었을 때, 독자는 수 천년 동안 농축된 이야기의 원형을 접하게 된다. 현실과는 멀리 동떨어져 보이는 신화의 형식을 취한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것은 신형철의 해설처럼 사랑의 한 논리를 탐구한 것이기도 했을 테지만 나는 논리보다는 이미지, 선행하는 이미지가 더 강렬했다. 인상 말이다. 알랭 드 보통이 사랑을 시계장치 분해하듯 분석했을 때 내가 느낀 약간의 해방감과는 달리, 이승우의 사랑은 다시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다시 숭고하다. 다시 거리를 둔 것이다. 바로 이 느낌, 거리를 둠으로써 사랑이 더욱 성스럽게 느껴지도록 하는 기제. 통유리를 칸막이 삼아 이편에서 저편의 사람들을 볼 때 느끼는 기분. 더 생동감 있게 다가오고 급기야 사랑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 나는 신화의 형식을 통해 사랑을 다시 대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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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 앵글, 도덕적 초점은 독자를 비좁은 외딴 골목으로 몰아간다. 『태엽감는 새』, 『칼의 노래』 그리고 앤드루 와이어스의 템페라화에서 내가 느꼈던, 근본적 선택에 대한 압박을 다시 한 번 받았다.

 

음엽. 이라는 어휘가 나온다. 같은 식물에서 햇빛을 잘 받는 쪽의 이파리가 양엽, 약한 빛에 의해 형성되는 이파리가 음엽이다. 면적이 보다 넓고 두께가 얇다. 세계가 내재하고 있는 불평등은 우선 이쪽에서 해결해야 한다. 햇빛이 약하게 드는 쪽은 이파리를 넓게 해야 하듯, 사랑이 희미한 시대에는 감성의 이파리를 최대한 넓혀야겠지. 나는 희생이라는 말에 예전만큼 감동받지 않는다. 소설의 결말은 내겐 좀 멋쩍었다. 하지만 현실에 투명한 칸막이를 내려보는 일, 촉을 최대한 넓게 조밀하게 세워보는 일에 대해 탐구해 보고 싶은 마음은 강해졌다. 그것은 엄연히 말하면 인간 자체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사랑 그 가능성에 대한 사랑일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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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울티모가 자동차 경주대회를 구경하러 간 날, S자 도로를 보고 감탄하며 한 말. “참 아름다워요”. ‘아름답다의 어원이 한 아름 가득의 그 아름에서 나왔다고 들었다. 두 팔을 크게 벌려 딱 안을 수 있는 크기. , , 인치, 피트 등 신체를 통해 세계를 재려고 했던 인간들. 제 몸을 척도로 삼아 어떡하든 무한의 세상을 헤아려보려고 한 조그만 인간들. 무한을 헤아리기 위한 유한의 수. 라는 소설 속 문장을 나는 만트라처럼 속으로 되뇌었다. 울티모의 시작과 끝이 같은 서킷’, 엘리자베타의 두 손을 감추고 품속에서 연주하는 슈베르트는 그 척도의 개인화된 어휘가 아닌가.  

 

역사그들의 역사, 역사와 관련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들러리를 서지 않는 것. 이라고 말하는 엘리자베타. 그녀의 말에 크게 끄떡거리며, 남의 들러리를 서지 않음은 또한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그건 남들이 만든 부지기수의 서킷이 이미 존재하더라도 자신만의 서킷을 꿈꾸고 설계도를 그리는 일, 품속에서 손가락을 움직여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슈베르트를 연주하거나 단 한 사람의 독자를 상정해 두고 허구적인 일기를 쓰는 일, 한 사람의 무죄증명을 위해 남은 평생 회고록을 쓰는 일 같은 것 아니겠냐고, 작가는 제시하고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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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 겸 식당의 여주인이 서킷에서의 자동차 경주를 노상에서의 자동차 경주와 빗대 하는 말. 이제 시()나 영웅적인 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그들은 똑같은 트랙을 수도 없이 돌죠. 얼빠진 동물처럼 말이에요.” 그건 진짜 길이 아니라고 말한다. 진짜 길은 진짜 세계의 은유다. 서킷은 자기만의 완성, 1차 세계대전의 전쟁형식을 바꾼 참호는 지표에 난 상처, 함정의 길이고, 사랑하는 여인 엘리자베타는 가다가 죽는 한이 있어도 가볼 만한 길이다. 길은 시적 현현이다.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카레이싱으로 시작하는 소설이지만, 소설은 철저히 을 모티프로 작동된다. 제목 『이런 이야기』는 『이런 』로 치환할 수 있겠다. 길은 내가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모티프 가운데 하나다. 소설은 이 모티프를 마치 울티모가 그린 서킷의 설계도처럼 수 많은 우여곡절이 담긴 굽잇길로, 아름다운 속도의 곡선으로 구현한다.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 이끄는 여정만이 아름답다던 울티모. 그의 생각대로 소설의 형식은 완성된다.

 

 

 

여관 겸 식당에서의 엇갈림, 울티모의 추상적 아이디어가 엘리자베타의 체험이 되는 마지막 장면에 대해 할 말이 아주 많다. 입이 근질근질하다. 아니다. 말하지 않겠다. 다음에 이 아름다운 여정에 동참할 사람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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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10-12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장면이 궁금해지는데요? 그 여정에 동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살짝 보관함에 담습니다. 아주 예전부터 보관함에 담겨있던 책인것 같기도 해요, 저 표지.

dreamout 2014-10-13 00:04   좋아요 0 | URL
마지막 장면이 근사해요. 정말로. 하루키의 댄스 댄스 댄스, 삿포로에서의 드라이브와는 다르지만 (이건 드라이브라기 보다 레이싱에 근접한 체험이지만) 마지막 대목을 읽으면서 묘한 엑스터시를 느꼈어요.
 

 

연휴의 첫날. 광화문역 근처.

세종문화회관 뒷편 kb카드 건물 지하, 평안도 만두집은 좋아하는 식당이다. 만두국을 든든하게 먹고 나온후 바로 지상에 있는 공원 벤치에서 짧게 독서를 했다. 알레산드로 바리코의 '이런 이야기'

소설을 읽기 시작한지는 꽤 됐는데, 요즘 평일 저녁엔 주로 고주망태라서 진도가 늦었다. 하긴.. 그런 사정이 아니어도 이 소설은 빨리 읽어치울 책은 아니다. 야외 벤치에서 책을 읽어본지가 하도 오래여서 그런지 좋았다. 다만, 반팔을 입고 나간게 미스. 추워서 바로 커피숍으로 직행.

 

둘째날, 홍대/합정 근처.

책을 읽기 위해 나갔는데, 책만 사서 바로 들어왔다. 와우북 페스티벌은 일부러 찾아 간 적은 한 번도 없는데, 몇년째 계속 보고 있다. 할인행사를 일부만 하고 독서토론이랄지 저자 인터뷰랄지 하는게 과반수 이상인 그런 행사는... 하기 힘들겠지. 이번엔 제법 신선한 시도도 있었지만, 여전히 북페스티벌 자체는 실망이다. 두께 때문에 사다 놓으면 부담만 될 것 같아 안 샀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반값에 샀다. 사긴 샀는데, 반칙한거 같아. 만든 사람들한테 미안한 마음.

 

셋째날, 경복궁/광화문 근처.

'이런 이야기' 일독. 진지하다. 단단하게 아름답다.

소설을 다 읽은 다음에 경복궁역에서 친구를 만나 밥을 먹고, 적선동 일대 산책. 예매해 두었던 팻 메스니 내한공연을 봤다. 휴식없이 2시간 40여분을 논스톱으로 달렸다. 지루함 전혀. 팻 메스니의 골수 팬들만 모인것 마냥 분위기는 아주 좋았고, 음악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성악/기악곡에 대한 내 취향은 점점 더 기악곡 쪽으로 기우는데.. 그건 TV에서 본, 산속에 들어가 혼자 산다던 어느 아주머니의 말씀마냥.. 성악곡이 사람을 더 외롭게 만들기 때문인지도...

 

다음주는 징검다리 휴일을 사용할 수 있는 한 주지만, 나는 사용하지 않는다. 그건 토요일에 건강검진이 잡혀 있기 때문에.. 휴일 쓰기가 아까워서.. 독서에 집중하자. 지금은 '이런 이야기'만큼 매혹적인 소설을 더 만나고 싶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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