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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이 죽던 해



김일성이 죽던 1994년 그 날. 특히 그날은 교포친구가 본국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전쟁이 나는줄 알았던 그 날. 한국인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지레 겁먹었던 ‘ 그 날‘ 이었던 것이다.


좋은 작가를 만나서 좋았다. 8개의 단편 다 좋았다. 하나도 버릴것이 없었다. 각 소설마다 다루는 의미도 달랐다. 이력을 보지 않으면 김일성이 죽던해 태어난 작가라는게 믿기지 않을정도. 최근 첫 장편 소설도 나왔으니 그것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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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틈을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파고드는 것이 있다.
사람의 힘으로 될것같으면 누구든 다 했겠지.

종교로 인한(어떠한 형태든) 상처가 없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파칭코 작가를 기대하며 읽어서 그런가
내가 기대했던 것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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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에 드레스덴에 갔을때 평화로운 모습만 보고왔었다. 일부의 장소만 갔다왔지만 폭격의 잔혹함은 없었고 평화로운 광장에서 맥주 한잔을 마시고 왔었다. 히로시마 하고는 분위기가 꽤 달랐었다. 어떤 이유에서건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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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억과 팰맬 담배만 남은 등신이 되었다.


나는 또 아들들에게 학살 기계를 만드는 회사에서는 일하지 말고, 우리에게 그런 기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경멸하라고 말해왔다.(P.34)


˝어쩌다 내가 이렇게 늙은 거니?˝(P.63)


하나님, 저에게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차분한 마음과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언제나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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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지 2023-03-21 2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안 ㅋㅋ 한잔을 마시고왔다니 조금 웃겨서요^^
평화롭고 참 좋았는데, 드레스덴♡♡

placebo 2023-03-21 23:25   좋아요 0 | URL
알쓰인 내가 한잔도 못마시지 ㅋㅋ한모금 ㅋㅋ
 

불면증이었던 빌 헤이스는 아이러니하게도 깊이 잠든날 연인이었던 스티브가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었다. 빌헤이스는 그날밤 수면제 반알을 먹지않았다면 그를 살릴수 있지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있다. 그러다가 올리버색스를 알게되고 그와 연인이 되었다. 여기 헤이스의 중년과 올리버 색스의 노년의 삶을 나는 아직 겪어 보지 않았지만, 이정도면 아름답게 살아가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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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길다고 믿지 말라.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로 여기고 그 가치 이상의 삶을 살지어다. 기대치 이상을 살아낸 날이 많은 자, 많은 생을 살리니, 하루의 짧음을 불평하는 날 또한 적을 것이다. 지나간 시간은 그림자와 같은 것, 시간을 현재에 있게 하라.
-토마스 브라운 <기독교인의 도덕성>중-
나는 죽음보다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 더 두렵다"
올리버 색스 2009.10.31

"그때 나는 충격 상태였다거나 멍했다고 말하고 싶지만, 아니다. 나는 모든것 ㅡ 그래, 모든 것 ㅡ 을 그대로 느낄수있었고 모든것이 다 아팠다"

나는 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스티브의 자잘한 개인용품 몇가지를 챙겨왔다. 스티브가 쓰던 콘택트렌즈가 그중 하나인데, ....나에게 스티브의 렌즈는 그의 눈 일부일 뿐만아니라 그이 몸, 생명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렌즈 없이는 거의 아무것도 볼수없었던 스티브 였다. 그것을 템즈강에 던져버리고 내게 다양한 세상을 보여주었던 스티브에게 고마운 마음을 보냈다. .... 런던 브리지에 도착해서 마지막 남은 화장재를 뿌렸다. 스티브의 유물중 강물에 던져지지 않은 유일하게 의미 있는것은 나 하나였다. 그 생각을 해봤다는 얘기가 아니다.(41쪽)
케네디 공항에 착륙해 내 생에 첫 메트로 카드를 사서 10달러를 충전했다. 무제한 이용권에 대해 알았더라면 망설이지 않고 그것을 택해 신나게 돌아다녔겠지만, 그렇다 해도 내가 받는 느낌은 무제한이었다. 무엇이 어때야 한다로부터 자유로우며 다음은 어떻게 되는지를 근심하지 않는.(49쪽)

2009.12.26
올리버가,뉴욕에서 전화를 걸어와, 더듬거리며 말한다. "내가 온갖 제약을 갖고 있다는 거 알아요. 장벽을 쳤죠. 빌리하고 사람 많은곳에 다는 것도 꺼려 했어요. 이제는 말하고 싶어요. 나도 당신을 사랑하고, 어디든 당신과 함께 가고 싶다고."
나라 반대쪽에서 나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나도,당신하고,어디든 가겠습니다,젊은이." 내가 말했다.(70쪽)
2013.2.6
아이팟을 끼고 있었는데 근처의 나이 지긋한 부인이 내게 손짓하면서 뭔가 말하는 것 같았다. 이어폰을 뺐다. "뭐라고 하셨어요?"
"내자리에 앉겠어요?"
나는 주저하면서 왜 자리를 양보하시는지 물었다.
"그쪽이 너무 지쳐 보여서요"
이렇게 슬플 수가.

2013.2.9. 밤 11시15분
"잠 푹 자고 나면 생각이 왕성해지면 좋겠어. 오늘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O가 말했다. "그런 날에는 얼마나 기쁜지. 마치 그동안 자기를 의식해주기를 기다려 왔다는 듯 모든 생각이 한꺼번에 수면으로 치고 올라오는 데..."
나는 O의 잠자리를 준비해준다. 양말을 벗겨주고, 자리끼를 마련하고, 수면제를 갖다 주고, 뭔가 읽을거리를 갖춰둔다.
나 : "더 해드릴 게 있을까요?"
O : "존재해줘." (192쪽)

2013.10.16
(중간생략)
O가 불쑥말한다. "지구행성에 빌리랑 함께 있어서 참 기뻐. 그렇지 않았다면 너무 외로웠을거야."
나는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는다.
"나도 그래요." 내가 말한다. (217쪽)

2015.2 날짜 없는 날의 기록
기쁘게도, 너무나도 기쁘게도, 수영장을 다시 찾았다.
O는 레인 끝까지 헤엄쳐 가더니 나를 향해 말한다. "우리 더 하자."
나 : "좋아요!"
현재 우리의 삶을 이 세 마디보다 더 절실하게 정의 하는 말이 있을까.
'우리 더 하자.'(302쪽)

2015. 4. 2
내가 실수로 방울토마토 상자를 바닥에 떨어뜨렸을때 O의 반응 : "예뻐라! 다시 해봐요!"
그래서 다시 한다.
O:"빌리 친구들이 얼굴 좀 보자고 아우성일 것 같은데."
나:"글쎄요. 모르겠네요. 여기가 내가 있고 싶은 곳인걸요. 당신하고요."
O:"미쳤어. 하지만 고마워."(3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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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3-03-17 12: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책 지금 당장 사러 갑니다…이 책의 존재를 알려주려서 고마워요.

placebo 2023-03-17 14:19   좋아요 1 | URL
잔잔하니 좋았던 작품입니다. ^^
 

1947년도에 나온 책이지만 코로나19 시대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전의 삶이 다시 되돌아 올까 하는 의문과, 물자조달의 어려움 그리고 의료진들의 노고등 페스트시대와 코로나 시대와 별반 다른것이 없는듯 하다. 이렇게 펜데믹 시대에는 비슷할 것이지만 대응하기란 쉽지가 않은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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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사람들을 주춤거리게 했던 것은 , 분명 감옥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시의 교도소에서 집계된 과도한 사망률에 따르자면 투옥되는 것은 사형당하는 것과 같다는 주민 모두의 공통된 확신때문이었다.・・・페스트는 특히 군인들, 수도승들, 죄수들처럼 단체로 생활하는 모든 사람을 물고 늘어지는 것으로 보였다.

모든 형식은 간소화되었고, 전체적으로 장례식은 폐지되었다. 환자들은 가족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죽었고 의례적인 밤샘은 금지되었다. …. 대부분의 경우 가족이 병자 곁에서 지냈다면 예방 격리 되어있는 상황이어서 이동할 수가 없었다.

병의 급격한 퇴각은 기대하지 않은 일이었으나 우리 시민들은 성급히 기뻐하지는 않았다. 지난 몇개월 동안, 그들은 해방에 대한 욕말을 키웠지만, 또한 조심스러움 역시 배워서 전염병이 조만간 끝난다는 기대를 점점 덜하도록 길들여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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