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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1 ㅣ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E L 제임스 지음, 황소연 옮김 / 시공사 / 2022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눈을 감고서 내 품에 안긴 여인의 감촉, 나를 누르는 그녀의 무게감, 호흡과 함께 오르내리는 그녀의 등, 내 다리에 감긴 그녀의 두 다리를 기억 속에 저장했다』
부드러운 그의 시선이 손길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육체적인 대화가 격하게 다뤄지는 소설이라 농도 짙은 교감에 치중한 에로티시즘으로 그려지지만, 몸으로밖에 표현이 안 되는 육감적인 끌림과 진정한 사랑을 만난 애틋함을 그들의 엉킴과 화음으로 과감 없이 드러낸 작품이다. 아나의 아름다움을 쟁취하고픈 욕망과 그레이의 아픔까지 사랑하는 포용이 뒤엉켜 사랑의 시너지를 발산한다. 그가 묘사한 사랑의 장면은 여성 독자들의 마음을 쓰다듬는 부드러운 손길임과 동시에 깊은 미로 속으로 끌어당기는 묘한 만족감까지 준다.
비행, 항해, 섹스.
아나를 만나기 전에 그가 보낸 주말 일상들이다. 언뜻 보면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모든 게 바뀌었다. 아나를 만나기 전에는 외롭다는 것을 몰랐으니까. 외로움이란 행복이 담긴 잊지 못할 순간을 경험해 본 사람이 느낄 수 있는 훈장 같은 걸까? 그러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백만장자인 그가 사치라고 생각하는 게 딱 하나가 있다. 바로 행복이다.
『일어섰을 때 넥타이가 발에 밟혔다. 어젯밤 벌인 즐거운 놀이의 흔적이었다. 아나와의 황홀한 기억이 내 감각 안으로 침투했다』
『아나가 머리채를 어깨 뒤로 휘 넘기자 탁자 위 램프의 불빛이 머리카락에 쏟아지며 붉은빛과 황금빛이 도는 터럭을 강조했다. 그 아름다움이 내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내 관심은 아나의 입술로 이동했다』
아나를 보는 그의 시선은 행복 그 자체다. 그래서 두렵고 불안하다. 그는 오직 결혼하여 아나를 소유하는 것만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넌 사랑이 어울려.” 엘리엇이 말했다. 나는 눈을 치켜떴다. 형이 나한테 이렇게 닭살 돋는 말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당신은 자신이 행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비교적 생소하게 느껴지겠지만, 그 행복감을 키우고 소중히 여기세요”』
아나를 사랑하며 느끼는 행복을 만끽하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그를 응원하는 주변 사람들이 참 다정하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그들이 쏟아낸 열정을 말해주고 있지만, 아나에 대한 욕구가 채워질 날이 과연 올까?
이 책의 독자는 거의 여성일 것이다. 남자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행위에 대한 스킬에 집중하기보다는, 닿을 듯 말 듯 한 사랑의 속삭임을 원하는 여성의 속내를 찾는 데 도움이 될 테니.
*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생각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