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
김선현 지음 / 메가스터디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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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 끌려 한참을 쳐다봤다.

잘록한 허리, 가느다란 손목, 풍성한 드레스 자락.

하지만 이 그림에서 주목할 부분은 여인의 시선이다. 이탈리아 고전주의 화가 비토리오 마테오 코르코스의 ’작별‘이라는 작품이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건지 아니면 떠나는 건지 알 수 없어 그녀의 시선이 더 애틋해 보인다. 이 책의 작가는 작별 이후의 시작에 초점을 두고 설렘을 이어간다. 그 처음을 기억하고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안다면 자신의 행복을 개척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에 몸이 노곤해진다. ‘처음’과 ‘설렘’의 발음은 입술을 다물게 한다. 여운을 느끼기에 좋은 단어들이고 달콤한 말이라 그림 속 여인의 작별을 거둬들이는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선이 고운 여인의 시선은 가슴 아프지만, 넓은 바다가 배경이니만큼 작별을 고하는 일과 또 다른 시작이 한결 수월했으리라 생각한다.

『화해 : 그림, 마음을 만나다』 [개정판]
김선현 저 | 메가스터디북스 | 2022년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이 내 의지대로만 될 수도 없고, 강요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며 아픔이나 상처와 화해하는 시간을 그림을 통해 가져보길 바라는 마음에 2016년에 나온 책이 리커버된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이 책은 총 네 파트의 구성으로 죽음, 무관심, 편애, 타인의 시선을 다루는 첫 번째 파트에서는 시간이 모든 것을 바꾸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 모든 것을 바꾸어야 한다는 의미와 함께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는 치유의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의 ‘거지 소년’은 빛이 겨우 드는 어두운 바닥에 남루한 옷차림의 소년이 앉아 있는 모습에서 부모와 사회로부터의 무관심과 결핍이 보인다. 두 손으로 상의를 붙잡고 있는 모습도 불안해 보이고 시무룩한 표정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아이의 상처와 부모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상처받은 아이가 어른이 된다는 것’을 주제로 실패, 시련, 외로움, 이별, 우울증 등에 대해 다루는 두 번째 파트는 ‘삶이 언젠가 끝나는 것이라면 삶을 사랑과 희망의 색으로 칠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죄수’라는 작품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아주 작은 틈 사이로 들어오는 빛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긴 남성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어둠의 비중이 너무 커 답답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현대인들의 소통 부재로 속내를 터놓고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에서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는 목소리와 속마음을 터놓고 싶은 사람이 되기를 저자는 권하고 있다.

나이 듦, 가난, 분노 등을 가라앉힐 행복에 관한 파트에서는 날마다 새롭게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냈다. 이 파트는 첫 장부터 눈길을 끈다. 중년의 여인이 거울을 보고 있는 모습인데, 아름답지만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서 보이는 모습에 씁쓸함이 전해져 온다. 성숙해진 연륜과 나이 듦의 인정을 통해 아름다운 어른의 모습을 그려보라는데 이 여인의 뒷모습은 관리를 아주 잘한 여성으로 보여서 받아들이기 쉬웠다.

마지막으로 ‘나’와 화해하기를 다루는 작품 중 2016년도에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표지를 장식했던 작품이 나온다. 고개 숙인 여인의 상념에 빠진 모습이 어둡게 그려져 있으며, 쓸쓸한 모습이지만 여인은 아름답다.

‘그림 속 여인처럼 잠시 멈춰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고요한 이 그림을 들여다보며 우리 역시 잠시 숨을 고르고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의 저자가 ‘그림의 힘’ 작가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최근에 출간된 포르체 출판사 ‘디지털 치료제’의 저자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작가 소개 글을 보니 현재 연세대학교 원주의과 대학교 디지털 치료 임상센터장 및 교수로 재직 중이다. 관심 있게 봤던 책이었는데 꼭 사서 읽어봐야겠다.

치유나 위로라는 말에 힘을 실어주는 편이 아니다. 바쁜 일상에서 치유는 순식간이고 위로는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여유’라는 걸 느껴보고 싶었다. 그림을 보면 숨 쉬는 게 편안해진다. 리뷰를 쓰는 지금 키보드를 치는 소리와 함께 내 심장도 쿵쾅거린다. 고개를 살짝 돌려 그림과 마주하면 심장이 느긋해짐을 느낀다. 빽빽하게 나열된 텍스트가 주는 기쁨은 물론 크지만, 때론 답답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김선현 작가의 『화해 : 그림, 마음을 만나다』를 펼쳐보길 바란다.



*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생각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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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압축 성장의 기술 - 직장에서는 절대 가르쳐 주지 않는 회사 밖 성장 공식
김미희 지음 / 푸른숲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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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콤플렉스는 숨기고 싶어하고, 결핍은 채워지길 바란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역으로 이를 이용하여 자신의 발목을 잡던 결핍을 어떻게 발판으로 삼아 뛰어오를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는 10년간 대기업 모바일 서비스 기획자이자 디자이너로 일했으며, 본인의 콤플렉스에 착안한 모바일 회화 플랫폼으로 반지하 사무실에서 단 4명과 시작해 론칭 3년 만에 100억 대 매출을 달성하는 압축 성장을 경험했다. 모든 조건이 훌륭한 대기업에서 10년간 별다른 성취를 얻지 못해 결핍으로 점철된 실패의 결정체이자 평범 이하의 사원이라 여긴 저자가 부족하고 준비가 안 된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성장하는 사람의 특성과 그 방법에 관한 성장 공식을 펼쳐놓았다.


내 인생, 압축 성장의 기술
김미희 저 | 푸른숲 | 2022년


결핍이 절박함을 만나 실행으로 이어지게 하는 게 중요하다. 저자는 직원 채용 시 이력서를 볼 때도 성공 경험보다 실패를 극복한 맥락을 보려고 했고, 도전할 의지가 있는지 알아보려고 했다. 그렇게 각자의 결핍과 연약한 지점을 공유하고 서로 보완해 주는 울타리의 존재가 성장을 이끌어내는 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변화를 위해서는 완전히 새로운 습관을 만들기보다 나의 환경이나 습성을 이용하는 게 좋다. 그러려면 일단 나를 파악해야 한다. 이미 나에게 있는 일상의 루틴과 환경 말이다』


이동 경로 사이에 습관을 설정하여 고정적인 아침 루틴을 만드는 것이다. 습관을 체질화하면 기대하지 않은 성과로 이어진다. 그 결과 덜 예민해지고 매사에 긍정적이게 된다.



결핍 속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셀프 진단 및 기회 도출을 시작으로 능동적인 마인드의 비밀과 우선순위를 원칙으로 한 성과를 만드는 공통분모를 찾아 나선다. Yes 맨이 아닌 깊게 고민하는 습관으로 장기적 탄탄한 경쟁력을 향한 통찰력이 넘치는 Why 맨이 되기 위한 방법도 제시하고 있다. 스타트업에서 목표 설정하는 방법과 거듭된 실패로부터 멘탈을 지키는 방법 그리고 이미 많은 기업이 레슨 런드 프로세스가 기업의 성과와 직결되는 것을 알고 실패에 대한 관점을 바꾸고 회고를 공유하기도 하는데 저자는 성장 레시피 노트를 활용해 개인 또한 시도와 실패 해석의 궁리를 권하고 있다.


『성공이 아닌 성장을 목표로 삼으라고 말한다. 성장은 성공으로 이어지는 사다리이자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도 설정할 수 있는 목표이며, 끊임없이 동기부여와 학습을 이끌어내는 결핍의 다른 말이다』


누구나 갖고 있는 삶 속의 크고 작은 고난과 결핍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어떻게 하면 다른 시각에서 새롭게 재해석하고 또 더 나아지기 위한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라는데 그러기 위해서 경험이 중요하다. 직접적인 경험이 아닌 책의 도움을 받아도 된다.


뭔가를 해볼 요량으로 자기 계발서를 읽긴 하는데 막상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오직 ‘시작’만을 위해 지식을 쌓다 보면 조급함이 앞서게 된다. 도전을 위한 ‘준비’ 단계에서 지식을 접하면 주어진 상황 속에서 적용할 날이 반드시 온다. 일단 축적만 해도 된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결핍을 아이템화하든, 갈망의 동기부여로 삼든 자신의 결핍부터 파악하자. 꼭 사업적으로 연결하지 않아도 결핍의 파악은 성장 과정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평소 준비한 자기 계발적 요소로 커버할 만한 부분이 있으면 적용하도록 노력해 보는 것도 좋다.


성공을 위해 무언가를 더 쌓기만 하는 게 아니라 성장을 위해 구멍 난 결핍을 채우는 게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점을 알려준 책이다.



*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생각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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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쾌락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7
에피쿠로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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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이 진정한 행복이다.’

에피쿠로스를 음탕한 말을 늘어놓는 자라고 부르며 맹렬히 비난하는 사례가 책의 초반에 나온다. ‘진정한 행복은 모든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다’라고 덧붙이지만 ‘쾌락’의 악센트는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세다. 그런데 왜 에피쿠로스는 ‘쾌락’으로 통칭했을까?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은 느낌이 쾌락과 고통, 이렇게 두 가지라고 말한다. 느낌은 모든 살아 있는 것에서 생기는데, 본성에 고유한 것은 쾌락을 낳고, 본성에 이질적인 것은 고통을 낳는다. 쾌락과 고통에 근거해 선택과 회피가 결정된다. 탐구하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은 실재와 관련되고, 어떤 것은 단지 말과 관련된다. 이것이 철학의 구분과 진리의 기준에 관한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의 기본 입장이다』

그의 사상을 말 그대로 진정한 행복으로 집약시키기엔 에피쿠로스가 만들어낸 사상은 광범위를 오가면서도 인간적이다. 실존주의를 내세워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현실을 좀 더 자극할 만한 ‘쾌락’이야말로 그가 말한 뜻에 가깝다. 그리고 그 중심에 ‘느낌’(감각)이 있다. 이 ‘느낌’(감각)을 설명하는데 자연학과 천체 현상들에 관한 긴 논의가 이어진다.

사람들이 인생의 목적인 아타락시아(평정심)의 반대인 혼란과 괴로움(타라코스)을 겪는 두 가지 이유는 천체들이 신적인 존재들이라고 믿는 것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말한다. 에피쿠로스는 ‘평정심’을 지칭하며 보통 ‘아타락시아’(마음이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평정한 상태)를 사용하지만, ‘갈레니스모스’(고요하게 하는 것)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하여 자연학 원리들에 대한 지식은 ‘평정심’을 얻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평정심‘을 얻는데 자연학 전체의 주요 원리를 파악하여 정확하게 이해해서 활용하는 사람은 철학 체계의 개별적이고 세부적인 것을 전부 알지 못하더라도 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힘이 생길 것이라고 말한다. 철학 체계 전반을 명확하게 깨우치지 못한 사람들도 ’평정심‘을 얻는 데 가장 중요한 원리들을 훑어보고 알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이 책의 초반에는 자연학과 천체현상에 관한 서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통에서 벗어나 평정심을 찾기 위해 자연학과 천체현상의 설명은 에피쿠로스의 철학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다. 이 ‘평정심’을 통한 최종 목표는 모든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인 진정한 행복에 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죽음으로 ‘평정심’에 쐐기를 박는 내용이 있다.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익숙해져라. 모든 좋고 나쁨은 감각에 있는데 죽음은 감각의 박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죽음은 아무것도 아님을 아는 바른 지식은 우리 삶에 무한한 시간을 더해주는 방식이 아닌, 불멸에 대한 갈망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삶의 필멸성조차 즐길 수 있게 한다. (…) 죽음은 모든 재앙 중에서 가장 두렵고 떨리는 재앙이지만,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동안에는 죽음은 우리에게 오지 않고, 죽음이 우리에게 왔을 때는 우리는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은 감각의 박탈이며 ‘죽음이 우리에게 왔을 때는 우리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아주 당연한 사실에 감탄하는 게 철학이며, 위안과 걱정의 마무리를 안겨주기도 한다. 그가 말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결국 쾌락은 죽음이라는 대전제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의 극치는 아닐까.

‘모든 사람은 마치 방금 태어난 것처럼 세상을 떠난다.’

인생의 끝을 잡고 있는 참 슬픈 문장이다. 에피쿠로스 쾌락은 ‘한 세상 잘 살다 간다’로 이어지게 하는 진정한 ’아타락시아‘의 길을 맛보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하다.



*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생각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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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계절 암실문고
페르난다 멜초르 지음, 엄지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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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인 단어에 집중하다 보면 책을 바로 덮을 것이다. 그로테스크를 들여다보는 통찰만이 이 소설의 완성도를 이해할 수 있다. 휘휘 젓듯 걷어 낼 건 걷어내고 비집고 들어가 찾아낸 여백의 공감하나 건지면 된다. 추악하고 배려심 없는 전개에 손사래를 쳐도 지구 어딘가에서벌어지고 있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멜초르의 문체는 확신에 차있다. 이유와 핑계는 찾아볼 수 없고 한곳을 향해 정확하게 칼끝을 겨눈다. 반박조차 할 수 없어 고통 그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는 힘이 있다.


『태풍의 계절』
페르난다 멜초르 / 엄지영 역 | 을유문화사 | 2022년
독일 문화의 집이 수여한 국제 문학상과 안나 제거스상 수상
맨부커상 국제 부분과 더블린 국제 문학상의 최종 후보


『다리에 난 털만큼이나 검은 스타킹과 검은 긴소매 블라우스, 마찬가지로 검은 치마와 하이힐, 또 검고 긴 머리칼을 정수리에 둥글게 말아 올린 뒤 그 위에 머리핀으로 고정시킨 베일까지, 온몸을 모두 검은색으로 치장한 그녀를 본 사람들은 모두 충격에 빠졌다. 놀라서인지 웃겨서인지, 사람들은 그녀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뜨거운 햇볕 때문에 머리가 타들어 갈 지경인데』


마녀의 등장에 리얼리즘을 흔들어 놓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마녀의 존재가 시사하는 바는 컸다. 빈곤과 폭력, 혐오 그리고 차별 속에서 그들에게 믿을만한 구석이 필요했고 마녀는 우스운 구경거리인 동시에 두려움과 미신적인 존재였다.


『나무 위에서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바짝 붙어 앉아있는 소년들의 등이 저녁 햇살에 비쳐 반짝였다. 어떤 등은 타미린드 씨앗처럼 갈색으로 빛났고, 어떤 등은 우유로 만든 과자나 잘 익은 사포딜라의 과육처럼 부드럽고 매끈했다. 계피 빛깔 혹은 자단목과 비슷한 마호가니 빛깔의 피부, 물에 젖어 반짝이면서 탄력이 넘치는 피부. 저 멀리서, 마녀가 숨어서 엿보고 있는 곳으로부터 몇 미터 떨어진 나무줄기 위에서 어른거리는 빛깔들. 마녀의 눈에 그 살결들은 매끄러우면서도 아직 시고 떫은 풋과일의 과육처럼 속이 꽉 차고 단단해 보였다』


눈에 보이는 것을 망설임 없이 써 내려간 이 문단은 태풍의 계절에서 제일 아름답다. 마녀는 산들바람을 타고 들판에 떠도는 남자아이들의 짭조름한 체취를 상상 속에서 음미하기 위해, 베일을 머리 위로 걷어 올렸다. 쉴 새 없이 불어 대는 산들바람에 모든 것들이 끝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빈곤과 소외, 차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순간이며, 나무줄기 위에서 어른거리는 빛깔을 통해 다가온 성애만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유일한 시도는 극에 달하고 통제에 익숙하지 않아 가학적인 행위까지 받아들여 사회적 문제를 여과 없이 노출시키는데 멜초르는 성공한다. 표현은 쉴 틈 없이 거침없었다. 본능이라고도 내세울 수 없는 그들의 무지에서 솟아오르는 빈곤과 폭력, 마약과 동성애로 뒤범벅된 괴기한 리듬에 맞추다 보니 슬픔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불편한 진실에 펜 하나로 맞서는 멜초르에게 총알은 저속한 단어들이다. 거리감이 느껴지는 어둠의 쏟아냄은 반드시 존재하는 사실을 전달하기 위한 필수적인 선택으로 보였다. 독자를 자극에 시달리게 하여 어둠에 충실한 삶을 맛보게 하는 일이 그녀의 목적은 아닐까.

마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그들 간의 얽힘은 연민을 자아내면서 극의 흐름이 살인이라는 범죄보다 사회적 소외로부터 오는 취약함을 더 와닿게 한다. 타락한 인물들은 어느새 기억 속에서 잊히고 설득력 있는 멜초르의 외침만이 자리 잡게 해 짙은 어둠만을 토해내는 『태풍의 계절』이다.


그들을 향한 연민의 끝은 어디인지. 인간답게 사는 삶의 기준 속에 그들은 어디만큼 닿았는지. 과연 그 기준이 얼마나 합당한가에 대한 암실문고의 물음은 ‘21세기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가장 어두운 성취’라는 타이틀을 한 번 더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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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인생을 바꾼다 - 1일 1페이지 나의 잠재력을 100% 끌어올리는 방법
페니 맬러리 지음, 박혜원 옮김 / 더퀘스트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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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선수가 경기 직전 코치에게 파이팅과 함께 점검받는 기분이 이런 걸까? 뭔가 해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 해의 시작이니만큼 두근거리는 마음과 더불어 긍정적으로 다가온 책이다. 물론 멘탈력에 관한 책을 꽤 읽어온 터라 대부분이 겹치지만 시기를 잘 만난 건지 다시금 되새기며 확고해지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이 책은 긍정 확언, 처세술, 자기 계발 등을 동반한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결국 나만이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해답을 얻기 위한 멘탈력 강화의 길을 365가지 방법으로 펼쳐놓았다.


또 한 가지 이 책이 믿음이 가는 이유는 저자 페니의 인생 스토리가 인간승리 그 자체라는 것이다. 삶의 통제력을 상실하고 바닥을 치던 시절 수년간 노숙자 쉼터와 이집 저집의 소파 신세를 전전하며 방황하다 친구에게 돈을 빌려 평생의 꿈이었던 랠리 카를 운전하게 되면서 세계 최초의 유일한 월드 랠리 챔피언십 레이싱을 펼친 여성 참가자가 되었다. 자동차 관련 TV 프로그램을 다수 진행했고, 퍼포먼스 코치가 되기 위해 훈련을 받아 멘탈력에 관한 권위자가 되는가 하면 인지 행동 치료에서 마스터 프렉티셔너가 되었다. 멘탈력에 관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조연설자라는 점에서 안 끌릴 수가 없었다.


『나는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인생을 바꾼다』
1일 1페이지 나의 잠재력을 100% 끌어올리는 방법
페니 맬러리 저 / 박혜원 역 | 더퀘스트 | 2022년


『자신감은 자신의 진짜 가치에서 온다. 당신의 업적과 능력을 진심으로 믿고 긍지를 느끼는 것이다. 자신만만함, 자기 확신은 내면을 평온하게끔 돕고, 기꺼이 남의 말을 듣고 배우게끔 하며, 타인을 돕게 만든다』


자신감 하나는 자신 있다. 계속 그럴 줄 알았다. 최근 실패를 맛보면서 많이 위축된 상태였는데 다행스럽게도 이 책을 만나 회복 속도가 빨라지면서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목표가 있으면 발전 정도를 판단할 수 있고, 일이 진전될 때 계속해서 나아가게끔 돕는다.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울수록 성취할 확률도 높아진다. 목표를 설정하면 수행 능력이 향상될 것이다. 이는 동기부여를 주고 기술을 습득하는 능력을 높이며 자신감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또 당신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있다는 확신을 줄 것이다』


이상하게 구체적인 거에 약하다. 앞만 보며 달리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라 쉼 없이 달리기만 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얼마 전에 PDS 다이어리를 구입해 시간대별로 일과를 작성하고 있다. 느슨해진 내 모습에 조금 답답함을 느끼는 중이지만, 어쨌든 이 방법도 발전을 위한 과정이니 꾸준히 해보는 일만 남았다.


대단한 포부로 야심 차게 한 해를 시작한다고 해서 인생을 뒤바꿀 만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사소한 행동에 집중하는 새로운 습관을 형성하고, 동기를 얼마나 많이 유발하는지에 상관없이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루틴을 개발하여 정해진 일정을 지켜보자. 실수했더라도 최대한 빨리 제자리로 돌아가는, 내 안의 동선에서 잔잔한 성공과 실패를 맛보는 걸로 시작하여 눈 굴리듯 동글동글 굴려보는 것도 나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초석이 된다고 믿는다.


새해 초반임에도 세월의 흐름에 순응만 하고 아무 생각 없는 사람, 멘탈력에 관한 책을 너무 많이 읽어 정리가 안되는 사람, 뭘 해야 될지 몰라 앞날이 답답한 사람에게 노숙자에서 멘탈력의 권위자가 된 페니 맬러리의 『나는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인생을 바꾼다』를 권하고 싶다.



*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생각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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