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책을 읽는다>

기온이 어제는 꽤 높아서 드라이브의 유혹에 슬슬 콧구멍에 바람이 들어가는 나. 이럴 땐 빠른 결정이 답이지. 반일연가를 내고 미리 모아 둔 책을 몇 권 친구한테 나눔도 하고 그 덕에 귀여운 자동차 키케이스도 받고 신나게 집에 와서 먼지와 함께 했다. 쌓인 먼지 보내기가 뭐가 그렇게 아쉽다고 여태 미뤘다가 마음먹고 청소를 한 것이다. 그 참에 책 정리까지!! (뿌듯)
이런 나의 보기 드문 바지런함을 목격한 엄마는 이 사실을 저녁때 아빠에게 전달까지 하더라는... 이럴 때 알 수 있다. 내가 그동안의 쌓아 놓은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를 말이다.

책을 읽을 때 듣는 곡들이 있다. 스토리가 나에게 오는 그 과정을 더 아름답게 채워서 단어들을 풍성하고 더 생생하게 전달시켜 주는, 나의 감성을 일렁이게 만드는 소중한 시간을 선사해 주는 나만의 플레이리스트. 그리고 그 곡의 시작이 있어야 독서의 시작도 있다. 나의 독서 취향인 거겠지.

새벽 일찍 일어나는 주말. 내가 책 읽을 때 가장 좋아하는 그 시간. 늦은 저녁만큼이나 생각이 많아지는 감성이 샘솟는 다소 위험하기도 한 이 새벽에 눈을 뜨고 이런 생각부터 들었다.
감사하다. 이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 참 감사하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참 어려운 일인데 현재의 만족을 하며 건강한 마음으로 살아가면 그 이상 바랄 게 뭐가 있을까. 고통이나 밀려오는 무력감을 예전보다는 금방 증발시켜 날려버리는 나만의 방법을 찾게 되어서 그럭저럭 다스릴 수 있음에 가까워졌긴 했다. 하지만 완성형은 아니다. 그렇지 못한 날도 있다. 그럴 땐 나름의 수고가 따른다.
‘ 잠시 우울감이 드는 것뿐이다. 사실 별거 아니다. 이 정도로 삶에 대한 상실감이나 무력감은 아무것도 아니다. 지나간다.’
생각나는 말들을 내 안에 욱여넣어 본다. 그조차도 도움이 되지 못할 때는 내 ‘한계’를 ’인정‘하고 ‘자연’에 나를 맡겨본다.
‘저 나무는 뿌리가 어마어마하게 깊겠지? 금세 단풍이 더 들었네? 이 새소리는 어디에서 들려오는 것일까? 굽이굽이 꽤 높아 보이는 저 산을 넘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까?‘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고... 그렇게 말이다.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책은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배반>과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 인데 동시대를 다룬 내용은 아니지만 식민지에서 나고 자란 압둘라자크 구르나와 노동자 계층에서 나고 자란 디디에 에리봉, 이 두 사람이 들려주는 메시지 속에서 때론 같은 울림을 느끼기도 한다.
고국을 떠나 식민 모국에서 살아가는 죄의식을 느꼈던 압둘라자크 구르나, 그리고 출세에 도움이 안 되는 벗어나고 싶은 고향을 떠나 ‘그들(브르주아지)‘이 사는 곳에서의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서 과거를 탐구하는 디디에 에리봉. 그들의 이야기에서 머무르는 중이다.


사람들이 책을 읽는 이유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새로운 지식을 쌓는 즐거움이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당연할지도…. 작년부터 다시 읽기 시작한 책은 나에게서 처음엔 거의 뭐랄까…. 생존 독서 였을 것이다. 그리고 책 속에서 내 마음과 딱 들어맞는 문구를 보면 그날 하루는 정말 소중한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 그게 그렇게 힘이 되더라. 그러면서 책에 더욱 마음을 열기 시작하고 나의 치유만이 아닌 다른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여유까지 얻는, 믿지 못할 감정에 맞닥뜨리게 되는 행운도 다시 얻었다. ‘배움’이란 참 중요하다는 걸 매 순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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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5-03-15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꽂이도 예쁘고 책들도 좋네요. 사진 확대해보니 반가운 책들이 많이 보이네요~! 책과 음악과 커피만 있으면 그것이 바로 휴가 ㅋ

곰돌이 2025-03-15 13:02   좋아요 1 | URL
총균쇠 읽고 바로 주문한 사피엔스는 지금 독서탑 가장 밑에 깔려서 도대체 언제 읽게 될지 모르겠어요. 벽돌책을 정말 벽돌로 두는 것 같아요 ㅋ 오늘은 날씨도 좋아 덩달아 더 좋은 주말이네요. 책과 음악과 커피와 함께 하기 딱입니다 :)

transient-guest 2025-03-15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주님의 방 같아요 ㅎㅎ 음악과 독서 참 좋은데 주말 이른 새벽이라면 더더욱!

곰돌이 2025-03-15 15:33   좋아요 1 | URL
정리의 보람이 있네요. 희희 :) 새벽이 주는 고요함은 나만의 사색 시간으로 참 좋은 것 같아요. 그 날 하루의 시작을 차분하게 열 수 있게 하는데 도움 많이 받고 있어요.

transient-guest 2025-03-16 00:51   좋아요 0 | URL
저도 주말엔 무조건 일찍 일어나서 책보고 운동가요 ㅎ
 

저항은 나를 잃는 길이었고, 복종은 나를 구하는 길이었다. - P190

시몬 드 보부아르의 책들과 동성애자로서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욕망이 내가 파리에 정착하게 만든 두 가지 큰 이유였던 것 같다.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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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노력과 집안일로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파리다는 과거의 행복 혹은 그 비슷한 것을 떠올리며 웃고 있었다. 그녀의 미소에는 다 안다는 듯한 미묘한 일그러짐, 숨겨진 농담을 혼자 알아들었을 때와 같은 입꼬리의 떨림이 있었다. - P204

1950년대 지도 살짝 보기에 이렇게 탐닉하는 이유는 당시의 세계가 얼마나 다른 모습이었는지를 기억해내기 위해서다. 어떤 공황이 지척에 와 있었는지, 몇 년 뒤에 유럽 정부들 대부분이 지켜야 할 의무를 전혀 느끼지 않는, 종잇조각에 불과한 일련의 조약들과 계약들을 남긴 채 보따리 싸서 고국으로 도망가리라는 걸 정말로 알았던 사람은 아무도없었다. 그래서 아민과 라시드 같은 젊은이들의 자아상과 미래는 식민지인들이 지금까지 기대해온 바와의 분리를 시작조차 못한 상태였다. - P213

(그녀는 어디가 아팠는지 아민에게 보여주기 위해 주먹으로 가슴을 꼭 눌렀다). 마치 자신의 일부가 잘려나간 것만 같았다. 너는 그런 걸 느껴본 적 있어? 없으면 진짜 상심이 뭔지 아직 모르는거야. 꿈을 꾸면 몸바사의 이미지와 냄새가 느껴졌고 잠에서 깼을 때 잔지바르 집임을 깨닫고 나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 P228

그들이 자기가 지배하는 자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했다. 그는 상상했다, 그들에게 우리는 단순한 불안과 성마름의 왁자지껄처럼 보이고 우리의 외침과 헉 소리는 언제든 피지배자의 단순한 칭얼거림처럼 들릴 거라고. - P240

더 먼 옛날의 무심은 활기가 넘치고 통제가 안 되는 시간이었다. 바람과 함께 온 활기찬 모험가들의 피가 때때로 거리에 흐를 정도로. 그래서 사람들은 아이들이 유괴당할까봐 외출을 금지했다. 그것이 그들이 보게 될 마지막 무심이었음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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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이야기 안에는 여러 개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는 것, 그 이야기들은 우리의 소유물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무질서한 흐름의 일부라는 것, 그리고 이야기가 어떻게 우리를 사로잡고 영원히 얽매는가에 관한 것이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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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형제들과 같은경로를 갔더라면, 나도 그들처럼 되었을까? 그러니까 나도 국민전선에 투표했을까? 나 역시 우리나라에 난입해서 "자기 나라에 있는 양" 구는 "외국인들"에 맞서서 항의했을까? 사회, 국가, ‘엘리트‘ ‘권력자‘ ‘타자‘가 그들에 반대해 벌이는 영원한 공격이라고 간주하는 것에 맞서서, 나도 그들과 같은 반응을 하고, 같은 방어 담론을 공유했을까? 나는 어떤 ‘우리‘에 속해 있었을까? 어떤 ‘그들‘과 대립했을까? 한마디로 내 정치학은 어떠했을까? 세계의 질서에 저항하는, 혹은 부응하는 방식은?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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