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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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유아교육 코너에서 본 촌스런 표지..
제목도 지금보면 정겹기 그지없지만 그 때는 제목도 그저그랬다.
원제는 작은 나무의 교훈 이었던가...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 가슴속 어딘가 뭍혀 있던 자연에 대한 동경과 진정한 지혜에 대한 갈망이 타올랐다.
카터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상상력을 보태어 비교적 간단하고 쉬운 문체로 자연을 풀어내었지만 나는 왠지 한번 읽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래 나도 작은나무가 되어서 다시한번 새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내게 가르침을 주는 이런 조부모가 없을지라도 작은나무의 가족을 다 내 가족으로 삼자.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대한 할아버지의 명언을 가슴에 새기자...

읽는내내 쿡쿡 하고 웃게 만드면서도 가슴이 따뜻해짐을 느끼게 하고 자꾸만 나를 돌아보게 하는 이 작품은 내게 정말 알맞았다.
이래저래 약한 충격에도 상처받기 쉬웠던 나에게, 이 작품은 달콤한 꿈을 주는 안식처였다.

이후 카터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았지만,
번역된 것은 별반 없는듯하였다. 이정도 생각과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더 많은 선물을 할 수 있었을텐데...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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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끓는 시간 사계절 1318 문고 19
박상률 지음 / 사계절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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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압력밥솥이나 전기밥솥으로 밥을 하는 시대에도,
밥냄새는 여전히 너무 좋다.

엄마가 밥을 하던, 제가 안치던
밥이 끓는 냄새를 엄마냄새, 사람 사는 냄새로 여기는 순지.

이 책을 읽는 내내
작가는 요즘 이 시대의 불행이란 불행,
돌봐 주는 부모 없는 어린 여자 아이가 지게 되는 모든 짐들을
낱낱이 밝혀 놓는 것만 같았다.

아빠는 일자릴 잃고 빚이 늘자 폭력남편이 되었고
엄마는 그런 남편을 묵묵히 참아주다 아빠가 바람 피우는 걸 알고는 자살해 버렸다. 순지는 살림은 물론 어린 남동생 순동이를 돌보느라 학교에도 가지 못한다. 아이들의 놀림은 순지에게 그리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더큰 문제가 엄청난 크기로 다가와 있기 때문에.
축사같은 집에 머물며 살다 어느날 새어머니가 들어오고, 아빠와 불화로 새어머니는 갓난 순달이를 남겨놓고 사라져버린다.

이 뒤에도 줄줄이 이어지는 부모없는 아이의 몫.

그 무게란 엄청난 것이었는데도, 순지는 담담한 목소리로
혼자서 하나하나 나누어보고 합쳐보고 곱씹어보며
스스로 소화해내고 인생을 그렇게 살아간다.

그 중 가장 큰 힘이 되는 건
밥이 끓는 냄새, 그 시간이다.
부엌에서 밥끓는 냄새가 난다는 건
먹을 밥이 있다는 걸 의미하고, 밥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의미하고, 같이 먹을 가족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밥이 끓을 때마다 실어증을 앓을 때에도 어김없이 밥솥앞에 앉아 지키던 엄마의 앉은 모습도 함께 본다.
그렇게 밥을 끓이던 순지는 오늘아침 출근했다가 돌아온 아버지를 맞듯이 그렇게 한참만에 돌아온 아버지를 맞는다.

"아빠 배고프죠?"
슬픔과 초월이 묻어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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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 1 - 묻혀진 역사
고정욱 지음 / 산호와진주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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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순신에 대한 드라마도 많고, 책도 새로이 많이 나온다. 이순신과 함께 역사에 등장하나 그리 좋은 평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원균'에 대한 소설이 나왔다길래 너무 기대되었다.

이 책을 읽다보니 전에 읽었던 김훈의 칼의 노래가 생각났다.

일단, 칼의 노래는 이순신의 일기인 난중일기를 소설화한 것이고, 원균은 원균에 대한 여러 가지 기록을 모아 쓴 소설이다. 역사적으로 이 둘이 라이벌 관계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이 책을 읽기도 전에 원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려진대로 이순신을 모함한 자였는지 얼마나 궁금하고 또 설레였는지.


사람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 원균 1-묻혀진 역사를 꺼내 들고 정독한다. 처음엔 그날 따라 맘이 싱숭생숭해서였는지 내용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원균의 측근이었던 자가 ‘이선’이라는 사람에게 원균 이야기를 해 주는 액자식 구성이라 그랬던 것 같다. 액자식 구성은 이야기에 몰입이 좀 힘들다고 느낀다.


일단 줄거리를 보자면,

원균은 이 작품 초반에서는 우리나라 북쪽 땅에 자주 침범하는 여진족으로부터 고을을 지키는 장수였다. 그 용맹하기가 하늘을 찔러, 말을 타고 여진족의 진으로 쳐들어갈 때면 언제나 앞장서서 적을 물리쳤다. 여진은 원균이 자기들과 맞서게 될 때마다 원균을 몹시 두려워하여 잘 되지 않는 발음으로 ‘엉규이다, 엉규이 왔다’하며 도망가기에 바빴다.

그 후 몇십 년이 지나,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을 무시하고 오랜 태평한 세월을 보낸 조선은 왜란에 휩싸이기 직전. 이 때 선조는 부랴부랴 이순신을 전라 좌수사로 임명하고 원균을 경상우수사로 임명한다. 둘은 거의 비슷한 등급의 지위에 있게 되었지만 이순신은 좌의정 유성룡의 뒷받침으로 그야말로 지방 현감에서 전라 좌수사로 초고속 승진을 한 것이고 나이도 원균보다 다섯 살이나 어렸다. 더구나 후에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원균의 상사가 된다. 하지만 두 장수 모두 공과 사를 구별하는 장수였기 때문에 함께 작전에 나가 적들과 싸우는 데 있어서는 별 문제가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원균은 성격이 불같아서 싸움에서 항상 앞장을 서고 두려워하는 것이 없었고, 그에 반해 이순신은 신중하기가 이를데가 없어 하늘이 무너질까 ‘장대라도 들고다닐’ 지경이었다. 그러니 둘이 안 맞을밖에.

더구나 둘의 협공으로 이긴 첫 승리를 이순신이 자기만의 승리로 왕에게 보고해버림으로써 원균과 이순신 사이에는 그 때부터 깊은 골이 패이게 된다.

그 후 우여곡절끝에 왜란이 끝나고 두 장수가 모두 전사한 후, 선조는 권율과 함께 이순신, 원균을 모두 1등공신으로 삼는다.


일단, 그 전에 나왔던 ‘원균, 그리고 원균’을 읽지 않고 이순신에 대한 내용만 알고 있던 나로서는 이 이야기가 굉장히 새로웠다. 역사 소설의 특성상 논픽션적인 면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액자식 구성으로 제 3자가 원균에 대한 이야기를 문헌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원균’은 소설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처럼 다가왔다. 그에 반해 칼의 노래는 이순신 개인의 입장에서 쓴 1인칭 일기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 그리고 지은이 김훈의 멋진 문체가 인간 이순신의 마음과 심정을 나타내는 데 두드러진다는 점 때문에 읽는 감동은 벅찼지만 객관적인 ‘사실’처럼은 느껴지지 않았다.


‘사실’속의 이순신과 원균은 용맹하고 영민한 장수였지만 ‘신격화 된 영웅’으로는 그려지지 않았다. 화자인 원균의 아들의 친구였던 ‘이극주’도 이순신의 실수 뿐 아니라 원균이 둘의 관계에 있어서 잘못한 점에 대해서도 인정한다. ‘이극주’가 이 이야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이순신을 이유없이 모함하고 방해했다는 원균에 대한 세상사람들의 오해를 풀고 그 두 영웅을 올바르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요즘 드라마 등으로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 일색인 가운데서 이순신에게만 치우쳐 있던 시각이, 이 책을 읽으면서 균형을 잡아간다고 느꼈다. 평소에 생활하면서도 한쪽 이야기만 듣고는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는 것처럼, 독자가 양쪽 의견을 다 듣고 판단할 수 있도록 논픽션이나 소설에서도 이처럼 항상 새로운 연구와 도전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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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미 2008-04-11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고맙습니다.
우리 나라 역사를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공평하게 연구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군요.

 
어디에도 아무도 없다
도나 윌리암스 / 평단(평단문화사) / 199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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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후진 도서관 소설 칸에서 발견했다. 어디에도 아무도 없다...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면서도 자신은 자신이 지켜내야만 하는 이 세상에서 이처럼 분명한 제목은 없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정이 많아진 건지. 아니면 도나처럼 그애게서 나와의 어떤 공통점 같은 것을 느꼈는지 모르겠다. 나도 이제부터 세상을 보는 법을 배워야겠다. 지금껏 그것을 거부해 왔었지만 그것은 어느 누구에게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은..글쎄 살 만한 것이라든지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것이라든지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도나가 살아가는 모양은..아무래도 어쩔 수 없어서였다고 말하는 게 옳겠다. 지금까지 자폐증 환자가 정확히 뭔지 잘 몰랐었지만 적어도 그건 병이라기 보다는 어떤 성향 같은게 아닐까? 자기만의 언어로 상대방에게 의미를 전달하고 싶은 마음, 각종 규칙적인 것들과 연속적 문양들에 매료되는 모습들, 지나친 관심을 위협으로 생각하거나 자신을 방해하는 것들로부터의 해방을 갈망하는 것...다만 내가 벽에 머리를 짖찧는다든가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뛰어든다든가 하지 않는다는 게 내가 자폐증 환자가 아니라는 증거이다. 문제는 정도의 차이인 것 같다. 나도 도나처럼 어린시절에 난폭한 어머니를 가졌다면 그렇게 까지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자연상태라면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자유스럽게 살 수 있는 무한 잠재력을 가졌는데,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도나는 현명하고 지적인 윌리와 애교많고 항상 웃는 캐롤을 자기 껍데기로 삼아 진짜 ‘도나’는 저기 저 뒷방에 갇히게 된다......

뭐가 그렇게도 불안스러울까..뭐가 그렇게도 절망적이고, 어떤 비난이 그를 위협하는가?

비난과 오해와 내리누르는 눈빛보다는 차라리 무관심이 낫다. 세상이 내게 무관심하면 그제서야 나는 내가 진정 하고 싶은 것들을 누구 눈치 볼 것 없이 하며 살아갈 수 있을텐데..확실히 나 자신에게 몰두하면서 새 기쁨을 누릴 수 있을텐데..

비난이 무섭고 오해가 싫어서 움츠러든다. 그러다가 도나는 점점 자신을 잃어간다. 나는 정상인일까?하고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정상이 아니라고 판명난 것들을 숨기고 캐롤과 윌리에게 의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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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인
라이너 침닉 글, 그림, 유혜자 옮김 / 큰나무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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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중에는 내내 가슴 답답함을 느껴야했다. 49미터 위의 크레인에 올라가 수십세월을 내려오지 않는다는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좋은 시절은 그렇다치고 전쟁이 나서 친구와 이웃이 죽고 둑이 무너져 발 밑이 바다로 변하고 다시 땅으로 변하기까지 크레인 위에서 내려오지 않는다니!!

그러나 이 소설은 읽은 뒤에 자꾸 되새기게 하는 면이 있었다. 크레인 위에서 보는 세상은 방관적이다. 사람들 사이에 부대끼지 않으면서도 모든 걸 볼 수 있다. 물론 땅 위에서 보는 것과 각도는 다르지만 말이다. 여기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기 힘들어하면서도 사람들 곁에서 아주 떠나 버릴 수는 없는 인간의 단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크레인 역시 그냥 무생물로만 간주할 순 없었다. 주위 환경이 아무리 변해도 죽어라고 땅에 뿌리를 단단히 박고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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