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신예찬 - 라틴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5
에라스무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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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신예찬>은 ‘어리석음의 신’, 즉 우신[愚神] 스스로 자기를 예찬하는 글이다. 자화자찬인 셈이다. 연설문 형식으로 쓰인 긴 글을 독자 편의를 위해서 장을 구분하여 소제목들을 달았다고 한다.

읽는 도중에 무수히 많은 각주를 읽어야 했다. 많은 각주를 읽어가면서 본문을 읽다 보니, 가끔 각주를 읽다가 다른 방향으로 생각이 흘러가기도 했다. 수많은 그리스·로마 신들의 이야기를 만나고, 철학 고전, 고전문학의 해석과 그 저자들의 이야기를 만나고, 스콜라학파와 중세 시대 문화, 역사 등을 만날 수 있는 각주를 읽으면서 16세기 유럽 지식인들의 사고 체계가 어떠했는지 그 일부를 읽어 내는 느낌도 들었다.


연설을 시작하면서 우신은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 꼭 필요한 것은 ‘어리석음’이라는 것을 주지시키고자 한다. 해학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언뜻언뜻 어느 문장은 촌철살인과도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여 서늘케도 만든다.

“엄청난 힘을 지닌 괴물 같은 백성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은 이런 종류의 하찮고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에서 나왔습니다.”(84쪽)

현대사회에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말이지 않은가.

중간 부분을 넘어서면서 비판이 더욱 가미된 풍자로 이어지는데, 그 대상이 선생, 시인, 수학자, 저술가, 법률가, 변증가, 철학자, 신학자, 수도사, 군주, 궁정 귀족, 주교, 추기경, 교황, 사제 들이다. 해학과 풍자와 역설로까지 자유자재로 써 내려간 이 글이 일주일 만에 완성된 글이라고 하니 놀랍다.


<우신예찬>(1511년)이 출간되었을 때 대중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점에서 종교개혁의 필요성을 대다수 사람들이 느낄 만큼 당시 카톨릭의 부패는 만연했다. 재미있는 것은 <우신예찬>은 에라스무스의 허락도 없이 친구들이 출간해버린 저작물이라는 사실이다. 에라스무스 본인은 황당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일곱 번째 개정판을 낼 만큼 당시의 시대상황을 풍자하고 역설적으로 표현한 그의 글이 종교개혁 초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에라스무스가 그리스어 성경 사본들과 여러 판본의 라틴어 성경을 비교 대조한 후에 내놓은 <신약 성경의 모든 것>(개정판, 1519)은 성직자가 아닌 일반 사람들에게도 자국어로 된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만든 계기로 작동하였다. 에라스무스의 그리스어 신약 성경 개정판을 원문으로 삼아서 마르틴 루터가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여 출간했기 때문이다. 독일어나 그리스어를 자국어로 사용하고 있던 사람들이 성직자를 통하지 않고도 이제 성경을 읽게 되었던 것인데, 이는 성경적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너무도 미신적이고 부패가 만연했던 로마카톨릭의 진상이 드러나며 루터의 95개 조 반박문(1517년)으로 시작된 종교개혁의 영향이 더욱더 커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에라스무스’하면 연상되는 것이 <우신예찬>과 종교개혁이라 하겠다.

덧붙여, 표지 그림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사회를 떠받치는 사람들>(게오르게 그로스, 1926년)이란 작품으로 표지 그림 설명글이 있어서 읽고 보니, 그림 표현도, 의미도 이 글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그림이 아닐 수 없다. 출판사에서 클래식 표지로 명화를 많이 선정하는 듯한데, 이 표지는 기억에 두고두고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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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머피 마음의 법칙
조셉 머피 지음, 이유림 옮김 / 미래지식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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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을 마감하면서 혹은 한 해를 마감하면서 각 서점이나 도서 관련 기관에서 이 달(또는 한 해)의 가장 많이 읽은(또는 팔린) 도서를 집계한다. 이 집계의 효과는 다양하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효과 중 하나는, 집계된 책 중에서 읽지 못한 책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여 그 책을 읽게 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 대부분 10위 안에 들어 있는 도서들을 살펴보면서 어떤 영역의 도서 또는 작가가 사랑받았는지를 알게 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몇 해 동안-십여 년일 수도- 대한민국 국민의 사랑을 많이 받는 영역이 있다. 바로 자기 계발서 영역이다.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도서 분류체계는 한국십진분류법이다. 그렇다면 자기 계발서는 한국십진분류 항목 어디에 넣어야 할까? 자기 계발서는 대분류에는 없다. 그 자기 계발서가 주요 내용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어떤 장르인지를 살펴야 하고 그 책이 정치나 사회 관련하여 다루고 있는 책이면 300번대, 철학을 다루고 있으면 100번대로, 이런 방식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느 항목에 넣어야 할까? 먼저, 이 책은 자기 계발서임에는 틀림없다. 인터넷 서점에서 이 책 분류를 자기 계발서 하위 영역인 처세술 또는 삶의 자세에 이 책이 분류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자기 계발서는 자기 계발 혹은 개발을 위해 독자들이 찾아 읽는다. 잘못 고르게 되면 낭패가 되기도 한다. 나와 전혀 맞지 않기도 하고 잘못된 것을 심어주기도 한다는 점에서 선택할 때 주의가 필요하기도 하다.


조셉 머피는 30여 년간 디바인 사이언스 교회의 목사였으며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가 목사라는 직분을 가지고 있어서 그러했는지 이 책에는 많은 내용 속에서 다양한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주요 내용을 엮고 있다. 저자가 카톨릭 집안에서 자랐다는 점과 어렸을 적에 종교와 신비스러운 일에 관심이 두고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다는 점,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는 철학과 법학 박사이며 정신 법칙에 세계적인 권위자이기도 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아마도 그는 목사보다는 철학박사로서 정신 법칙의 '세계적인 권위자'가 더욱더 어울리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가 말하는 마음의 법칙은 잠재의식을 통해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것으로, 그러한 사고방식을 갖춰나가면 삶에서 평안을 얻을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그렇게 '마음'을 사용하는 것이 현명한 처세가 된다고 말이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긍정적 사고방식이 여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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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위대한 식물 상자 - 수많은 식물과 인간의 열망을 싣고 세계를 횡단한 워디언 케이스 이야기
루크 키오 지음, 정지호 옮김 / 푸른숲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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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실내 인테리어 스타일 중에서 플랜테리어가 인테리어의 한 콘셉트로 자리매김하였다. 집안을 자연친화적으로 꾸미고자 하는 사람들이 소파 뒤, 침대 협탁 위, 거실 창가 등에 식물 화분으로 포인트를 주면서 초록초록한 분위기뿐만 아니라 공기정화에도 좋은 역할을 한다고 하여 이러한 식물 인테리어가 꾸준하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는데, 그러한 사람들 중에는 나무와 화초를 다분히 인테리어용 혹은 실내 공기 정화용으로 조금 키우는 단계를 넘어서 식물 키우기가 어엿한 취미가 된 사람도 여럿 있다고 한다. 반려 동물이 있듯이 반려 식물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는 이유다.

그들 중 일부는 식물 키우기 취미로 온실까지 만들어 희귀 식물을 모으기까지 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날씨와 일반적인 주거 환경을 감안할 때 키우기 까다로운 식물들은 그 몸값이 매우 높아져서 이제는 식물 재테크로까지 식물을 키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추세다.


이 책을 읽는 과정에서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 중 하나가 바로 그 온실이었다. 제대로 된 온실을 갖추려면 비용이 들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온실을 꾸리는데 일회용 투명 컵과 투명 뚜껑이 그중 하나다. 구멍이 뚫리지 않는 컵에 녹조류 일종인 담수 조류를 넣고서 발아를 시키거나 삽목 하여 뿌리를 내리는 용도로 쓰는데 그와 비슷하게 밀폐된 유리 용기에 작은 식물을 재배하는 테라리움의 효시가 된 식물 상자! 그 상자가 바로 '워디언 케이스'이고 이 책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 식물 상자를 테마로 하여 세계사를 훑어볼 수 있어서 매우 흥미진진했다. 요즘 많은 역사책들이 테마를 잡아서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식물 운반용 상자, 워디언 케이스라는 제재가 매우 호기심을 자극했다.

워디언 케이스는 1829년에 첫 발명되었다. 발명가의 직업이 외과 의사, 아마추어 박물학자라는 점이 흥미롭다. 그 발명가 이름은 너새니얼 백쇼 워드, 워디언 케이스로 불리는 이유다. 워드는 우연히 식물이 물 없이도 밀폐된 유리 상자 속에서 꽤 오래 살아간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는 식물을 자신의 저택에서 4년간 키우게 되고 전 세계 식물 운반에 쓰일 운반용 유리 상자를 만들게 된다.

이 책은 그 상자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를 시작으로, 1925년, 1948년 생물적 방제 수단으로 사용되며 여정을 끝마칠 때까지의 워디언 케이스의 역사를 담고 있다.


워디언 케이스가 발명되기 전에도 식물 운반용 상자는 사용되고 있었다고 한다. 대신 정원사를 동반해야 했고 환기(통풍)에 신경을 써야 하는 등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상자였다가 워디언 케이스가 사용된 이후 상업적 식물 거래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고 한다. 땅에 심은 식물은 어떤 것이든 다 담아 옮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워디언 케이스는 전 세계 환경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백 년간 식물이 자유롭게 이동하게 되자 우리 환경에서 보지 못한 희귀한 식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수요가 급증했고, 이에 따라 침입종, 질병, 병원균 등도 함께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것은 나라마다 검역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변화는 또 다른 분야를 활성화시켰는데 환경 관리, 생물 다양성 보존 등과 같은 연구가 그것이다.

워디언 케이스는 앞에서도 적었듯이 마지막으로 생물적 방제로 사용되어 곤충을 운반한다. 워드는 자신이 만든 식물 상자의 미래가 이렇게 될 줄을 알았을까? 자신이 만든 식물 상자가 사람들의 생활에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올지, 지구 환경에는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될지 예견했을까 싶다. 이 식물 상자가 전 세계에 온갖 식물을 옮기면서 환경과 생태까지도 바꿨다는 점에서 가히 변혁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책에는 많은 자료들을 사진으로 담아 보여주고 있다.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한 흑백 또는 컬러 사진, 컬러나 흑백으로로 표현된 매우 뛰어난 세밀화, 이동 경로 지도 자료 등으로 담아 놓았는데, 이러한 편집 구성도 매우 마음에 들었다.

식물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세계사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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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핑크 후회의 재발견 - 더 나은 나를 만드는, 가장 불쾌한 감정의 힘에 대하여
다니엘 핑크 지음, 김명철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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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핑크가 한국 독자들에게 쓴 서문에는 이런 글이 있다. "사람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사람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후회'를 주제로 탐구한 결과에서 도출한 것이 '삶의 가치'였다는 것이다.

핑크는 후회라는 감정을 세 파트로 나눠서 다뤘다. 첫 번째는 후회에 대한 전반적인 사람들의 생각, 예화, 후회를 통해 더 나아질 수 있는 이유 등을 이야기한다. 누구나 후회한다. 후회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후회의 강도가 다르고 후회를 처리하는 과정이 다를 뿐이다. 후회가 생길 때 이것을 잘 다루지 못할 경우에 우울증으로 빠질 수 있는 무거운 감정이 후회다. 그래서 후회는 잘 처리해야 한다. 핑크는 그것을 후회의 '최적화'라고 표현한다. "모든 결정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고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29쪽)

후회, 과거에 잘못된 선택을 했거나 잘못된 결정을 내렸거나 그토록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현재가 더 나을 것이고 미래도 더 밝을 거라고 생각하는 구역감을 느끼게 하는 감정

1장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은 인생을 망치는 허튼소리 / 28쪽

핑크는 이 책의 목적을 "후회를 필수불가결한 감정으로 정의하고, 후회의 많은 장점을 활용하여 더 나은 결정을 내리고, 직장과 학교에서 더 나은 성과를 내며, 삶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데 있다."(35쪽)라고 쓰고 있다. 예화를 많이 들어서 설명하고 있기에 그의 주장이 잘 수용되었던 것 같다. '세계 후회 설문조사'에 제출된 후회 내용을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여러 나라의 다양한 분야에 있는 사람들의 후회를 살펴볼 수 있었다.

두 번째는 후회를 범주화했다. 후회의 표층을 설명하면서 촘스키의 <통사적 구조>를 근거로 제시해서 흥미로웠다. 모든 언어는 보편적 규칙 틀인 '심층 구조'에서 생성되고 개별적으로 언어가 다른 것은 '표증 구조'에서만 다르다는 촘스키의 주장을 '후회'에 적용하여 '후회도 표층구조와 심층구조를 모두 갖고 있다는 것이다. 후회의 심층구조에는 '기반성 후회', '대담성 후회', '도덕성 후회', '관계성 후회'가 있으며 각각의 후회 구조에 관하여 실험과 예화를 제시하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후회의 심층구조를 표현하는 방식과 인간의 욕구로 나누어 도식화한 표도 내용 중에 삽입되어 있다. 한눈에 그 구조를 살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세 번째는 이러한 후회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한다. "적어도~~"라고 말하여 위안을 삼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후회했던 행동을 고치는 것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 행동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는 데 초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참으로 많은 예화들이 등장하는데 여기에서는 핑크 자신의 예화로 설명한다. 물론 매번 '적어도'를 실행하면 좋지 않으니 현명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자기노출·자기연민·자기거리두기를 통해서도 후회를 장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세 가지 중에서 '자기거리두기'는 그 선택과 행동에 대한 후회를 분석하고 전략을 짜는 방식으로 객관적 관찰을 요구하는 방법이다. 꽤 솔깃했다. '후회하지 않을 일곱 가지 다른 기술'에서도 매우 유용한 팁을 얻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후회 최적화 프레임워크이다. 과학적인 후회 예측과 후회의 새로운 심층 구조를 결합하면 마음의 모형을 개선할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따른 네 가지 원칙도 제시하고 있다.

책의 마무리에서 다니엘 핑크는 현재 자기가 후회하고 있는 것을 나열한다. 후회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므로 후회했던 부분을 얘기하는 것이 문제 되지 않는다. 그렇게 후회를 나열한 후에 이 감정에 대한 과학과 경험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에게서 발견한 것을 자기에게서도 발견했다고 쓰고 있다. 마지막 세 문장은 다니엘 핑크가 '후회'라는 감정에 대한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후회는 나를 인간으로 만든다. 후회는 나를 더 낫게 만든다. 후회는 내게 희망을 준다.

<후회의 재발견> '나오며' 마침글, 280쪽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머릿속에 들락거렸던 생각들이 있다. 내 삶에서 후회했던 것들, 지금도 후회스러운 것들, 후회할까봐 시도하지 않고 있는 것들이 그것이다. 선택에 따른 결과를 곱씹어 보기도 했다. 특히 셰릴 존슨과 젠의 이야기는 마음을 끝까지 붙잡았다. 본문을 읽는 내내 그들의 우정이 어찌되었는지 궁금할 정도로 관심이 갔는데 이 책을 마무리하면서 핑크가 다루어 주어서 좋았다. 셰릴과 젠의 관계처럼 그와 비슷한 우정이 내게도 있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관계를 '표류'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참 적절한 단어 선택이다. 표류하고 있는 나의 우정을 그대로 둬야할 지 아니면 용기내어 연락을 시도해볼 지 여전히 선택하지 못했지만, 가장 소중한 가치를 점검하고 삶의 변화를 제시하고 있는 유용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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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간직하고픈 필사 시
백석 외 지음 / 북카라반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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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박인환, 김영랑, 김소월, 정지용, 한용운 그리고 윤동주! 이름 하나, 하나씩 입안에서 굴리며 속삭여보면 그 이름마저 시처럼 감미롭게 느껴지는 시인들이다. 이러한 감상을 느끼게 하는 데에는 한국 현대시사에 그들이 남긴 굵직한 발자국들 때문일 것이다. 7명의 여기 적힌 시인들이 남긴 아름다운 시들은 그들의 특별한 이야기와 함께 8, 9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전폭적인 사랑은 "평생 간직하고픈 필사 시"가 되어 많은 사람의 노트에 쓰였거나, 쓰일 것이고, 낭송되기도 할 것이다.

현재 이들 시인은 대부분 학교 교과서에서 다루고 있는데, 초중고교 학생들에게 '시'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대표 시인들이다. 이들의 작품은 세월이 흐른다고 해도 교과서에 실릴 확률이 높은 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100년이 지나도 다양한 해석과 감상을 내놓을 수 있는 작품을 고전 반열에 올리듯이 우리 현대시사에서의 그러한 시인과 작품을 찾는다면, 이들의 작품이 그 classic 범주에 담길 듯하다.

 


 

 

눈이 내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가 있다.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이다. '눈'으로 대표되는 흰색의 이미지가 매우 강한 시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마지막 시행을 무척 좋아하는데, 당나귀에게 이러한 울음소리를 붙여 준 시인은 백석뿐이리라. 이 시를 알게 된 이후로 당나귀의 울음소리는 '응앙응앙'이 돼버렸다.

나에게 '버지니아 울프'를 처음 알게 해준 시인은 박인환이다. 감수성이 넘쳐서 굴러가는 낙엽만 보고도 웃음이 만발하던 시절의 나는, 박인환의 이 시를 참 많이 필사했다. 가을이 되면 이 시를 노트에 써놓고는 친구와 함께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이미지를 놓고 얘기하곤 했다. 그 앞 시행에 쓰인 '버지니아 울프'는 자연스레 그 숙녀의 이미지가 되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매우 현실적인 선언,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의 돈과 스스로 생각한 것을 정확히 표현할 용기와 자유 습성은 가치 있다'는, 그 선언을 알게 된 것도 서른두 행으로 쓰인 <목마와 숙녀> 때문이었다.

김영랑의 시 중에서 노래로 부르고 싶어지는 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은 지금도 여전히 직유법과 의인법의 대표 예시로 사용되는 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역설적 표현의 예시로 자주 사용되는 시구 "찬란한 슬픔의 봄"을 만날 수 있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도 참 많이 필사되는 시일 것이다.

우리 현대시사에 시작점을 찍은 시인 김소월은 말해 무엇하랴! 그의 시는 노랫가락이 붙어 불리는 시도 많고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애송되는 시도 많다. 이 책에는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는 가슴 시린 반어적 표현으로 인상을 남긴 <먼 후일>도 포함되어 있다.

정지용의 시 중에서 사랑하는 아이를 잃고 그 슬픔을 시로 승화시켜 표현한 <유리창 1>은 다시 읽어도 마음 한 켠이 찢기듯 아릿하다.

박인환의 시만큼이나 학창 시절 자주 필사했던 시가 한용운의 시다. 애틋한 마음을 담은 사랑 시들이 많아서였는데, 당시 국어 선생님이 한용운의 시에 나오는 '님'이 대부분 '조국'을 뜻하기도 한다고 알려주셨겠지만, 그것이 소녀의 애잔한 사랑 감성에 걸림이 되지는 않았다.

아~~, 마지막에 실린 시들은 윤동주의 시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시인이 윤동주다. '부끄러움의 시인'이라고 불릴 만큼 그의 많은 시는 자기성찰적 태도를 보이는데 그러한 시적 분위기가 주는 여운이 늘 사랑받게 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 책에 실린 시인들의 수록된 시 분량을 보면 윤동주 시가 가장 많이 수록되어 있는데, 일본 유학 생활 중에 윤동주가 쓴 그의 마지막 작품 <쉽게 씌어진 시>도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필사'라고 제시된 제목에 맞추어 책에 직접 시를 필사할 수 있도록 여백을 두고 있다. 시가 쓰인 쪽 맞은편 페이지는 그 시를 음미하면서 써 내려갈 수 있도록 잔잔한 그림이 그려져 있거나 줄이 그어져 있거나 칸을 만들어 놓는 등 필사할 공간을 할애하고 있다. 서체의 크기도 다양하고 모양도 다양하다. 처음엔 예쁘게 써볼까 했다가 잠시 미뤄두기로 했는데, 그 이유는 시만큼이나 그 필사할 여백과 그 여백의 한 켠을 채운 시화가 또 다른 멋스러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담아 선물하기에도 참 예쁜, 아름다운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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