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플로베르의 앵무새 열린책들 세계문학 56
줄리안 반즈 지음, 신재실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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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로베르의 앵무새는 어디에 있을까? 진품임을 강조하며 두 곳에서 전시하고 있는 앵무새중  플로베르 책상 위에 놓여졌던 앵무새는 어느쪽이며 정말 사실일까? 

이 책을 다읽고 나서는 기억과 진실에 대한 확실성이 흐려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반스는 작가의 작가라고 일컬어지는 영국의 대표적인 작가이고 얼마전 ebs 위대한 수업에서 반스의 유머에 즐거웠다. 귀스타브 플로베르에 대해서 좀 더 익숙해진 뒤 이 책을 읽었더라면 더 재미있었을까? 

보봐리부인, 감정교육, 순박한 마음, 성 앙투안의 유혹, 부바르와 페퀴셰까지 모든 작품이 다 번역이 되어있다.


 성실히 읽어도 되고 원래 고전이란 읽지 않아도 읽은 것 처럼 얘기할 수 있다는 장점을 살려서 보봐리 부인이 어떤 사람인지 정도만 알고 이책을 읽어도 반스의 '플로베르의 앵무새'를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화자인 브레이스웨이트의 아내는 간통을 했다. 결혼생활 내내 아이를 둘 낳았는데 그 기간을 빼고는 다른 애인이 있었다.

  보봐리부인을 쓴 플로베르는 젊은 나이에 이미 너무 성숙하다 못해 쇠락해버렸다. 그의 매혹과 사랑은 열 다섯살 때부터 시작하여 간질, 매독, 뇌졸증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어진다. 이미 자신의 생을 소설보다 더 기막히게 써 내려간 플로베르에 대해 평론가들이 떠들어 대는 소리는 마치 앵무새 소리같았을까? 아니면 삶은 오직 행동할 뿐이고 글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얘기를 문학으로 들음으로써만 사람은 의미를 캐내고 눈물을 흘릴 수 있으므로 오히려 문학이 삶에 바치는 박제된 앵무새일까?


브레이스웨이트의 아내는 간통했다. 그녀와의 결혼생활은 행복했다. 불행했다. 그녀는 행복했을까? 충분히 행복했을까? 충분히 행복하려고 자신의 앞에 주어진 것에 돌진했다면 얼마큼 행복해야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의사였던 브레이스웨이트는 마지막으로 아내의 보조호흡기를 뗀다. 그녀가 그립고 외롭다. 엘렌. 그의 아내에 대해 그가 알고 있는 사실은 백년 전의 어느 외국작가에 대해 이해한 것보다도 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당연하다. "책이 의미를 부여하는 삶은 다른 사람의 삶"이고 책은 일어난 일을 설명해주고 의미를 새겨주지만 삶은 그렇지 않다. 삶은 그녀가 한 행동만을 말하기 때문이다.


에세이같은 소설, 소설같은 에세이, 콜라주같은 기법으로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느낌으로 포스트모던한 다양한 질감과 색깔을 즐기며 읽기 그 와중에 반스 특유의 유머와 지성에 반짝 눈을 빛내며 웃어주기.

위대한 수업에서 보여준 반스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는 자신의 작품을 그렇게 힘을 빼고 즐기면서 읽어주길 바랄 것 같다. 그래서 좋아하는 노래를 플레이리스트에 저장해놓고 듣듯이 자주 오래 들어도 좋을 것 같다. 

그물을 정의할 때, 관점에 따라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익살맞은 편집자가 그랬듯이 그물을 끈으로 엮은 구멍들의 집합체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한 사람의 전기를 쓰는 일도 그와 같다. 저인망 그물에 자료들이 가득 차면, 전기 작가는 그물을 끌어올려 포획물을 분류하여 도로 놓아 주기도 하고, 저장했다가 살을 발라내어 팔기도 한다. 그러나 그물 속에 걸리지 않는 자료들을 생각해 보라. 항상 그물에 걸려들지 않아 놓쳐 버린 자료들이 더 많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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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Thousand Splendid Suns (Paperback, International Edition) - #1 New York Times Bestseller, 두아 리파 2월 북클럽 도서 선정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 Riverhead Books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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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 후의 나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 읽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책은 그 책을 읽는 동안의 내 감정과 생각에 영향을 끼쳐서 나를 독후상태로 만든다.

  분쟁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은 어떠하며, 무수히 떨어지던 폭탄이 하필 집에 떨어져 한꺼번에 가족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마저 알게 된 상황에서 라일라가 선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 자신이 지켜야 될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이 책을 보는 동안 <<시녀이야기>>에서 여성을 아이를 낳는 대상으로 한정시켜서 그에게 특정한 형식의 옷과 베일을 쓰도록 한 얘기와 오버랩되는 부분도 많았다.  망사로 몸을 가리고 자신의 눈만 드러내고 바깥을 다녀야 하는 상황, 남자 친척이 없이는 길을 혼자서 걸을 수도 버스를 탈 수도 없는 상황이 채찍,폭력, 모욕, 무시 등 온갖 생각할 수 있는 고통을 다 당하면서도 끝내 자신들을 억압하는 라시드(사회적, 개인적 억압의 대표 상징인물)에 대항하여 그를 제압하는 마리암에게 깊이 동일시되었다.

  

만약 마리암이 삽으로 라시드를 막아서지 않았다면 필경 라시드는 총으로 라일라, 마리암을 죽일 게 너무도 분명했기 때문에 인간을 미워하는 게 너무도 힘들어서 싸움과 반항도 다 포기하고 그냥 자신을 죽이며 땅과 부엌바닥 밖에는 보려 하지 않았던 마리암이 절대로 넘어 설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라시드를 이겨내고 라일라를 지켜내는 모습이 감동스러웠다.


  누구나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벽이 있다. 그 벽을 눕혀서 다리를 만들려고 할 때 가장 힘을 내게하는 원동력은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랑하는 대상, 내 보호가 그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힘의 근원이라는걸 인식하는 순간이 아닐까.

아프가니스탄의 여인들에 대해서 깊은 감정을 가질 수 있게 한 소설이었다.

그녀는 쓸모없는 존재였고,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불쌍하고 유감스러운 일이었다.그녀는ㄴ 잡초였다. 그러나 그녀는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서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 그녀는 친구이자 벗이자 보호자로서 세상을 떠나고 있었다. 마리암은 이렇게 죽는 것이 그리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 나쁜 건 아니었다. 이건 적법하지 않게 시작된 삶에 대한 적법한 결말이었다. - P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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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김원영 지음 / 사계절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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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태어나는 것과 장애인인 줄 알았다면 부모들이 다른 선택을 했을거라는 선택으로 시작한다. 장애인으로 태어났지만 부모들은 장애인으로 태어날 지 몰랐기 때문에 낳았고  만약 알았다면 안 태어나도록 했을터니 장애인은 자신의 손해와 불편에 앞서 내가 태어난 것 자체가 자신의 삶에 있어서 심한 손해인지 아닌지를 먼저 물어야 되는 것이다.

일명 '잘못된 삶 소송'


  장애인이 자신이 가진 장애를 극복하고 인간승리를 거두었다는 언론의 뉴스에는 속물성이 있다. 속물에는 사람의 위치에 위계를 정하고 장애인이 비장애인도 따내기도 힘든 어려운 성취나 사회적 위치를 차지했을 때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를 보며 3화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자신의 아이와 변호사가 된 우영우를 비교하면서 자신의 아이의 장애는 왜 특별한 능력을 타고 나지 못했는지 슬퍼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 책은 실격당한 자들을 변론한다. 어제처럼 아무런 악의없이 상대가 던진 말에도 아파하는 나처럼, 순식간에 자신의 존엄과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도 사회적 상호작용 때문에 굳이 따지지 않기로 한 사람들에도 저자는 변론한다.

 "상처받지 않으려는 욕심은 있을 수 있지만, 상처받지 않은 삶은 불가능하다. " 완전하지 못하고 상처를 감추고 연기를 하며 보여지는 모습에 충실한 사회적 삶을 살아가던 순간, 이 가면이 문득 자신의 본감정과 타인을 사랑하는 데 방해가 되는 순간이 온다면 자신의 삶과 개별적인 서사를 드러내야 한다. 물론 비아냥과 불편한 시선까지 감수해야 하겠지만 이 책은 자신의 삶을 온전히 수용하고 그 삶을 성찰한 자가 가지는 묵직한 온기와, 인간의 존엄을 깊숙이 던져준다.

  존엄이란 권리처럼 발명되어야 할까? 

존엄의 가치는 내가 태어나는 순간 나의 이야기를 한 편 한 편 써내려가는 그 순간들에 깃들여지는 숨결이 아닐까?

‘뇌성마비‘라는 별명. 그리스어 ‘아테토시스athetosis‘에서 온 이 말은 그렇다면 일생동안 나를 따라다닐까? ‘통제된 장애‘를 가리키는 이 명칭은 내겐 아무 효과없는 명칭일 뿐이다. 그 말이 포괄하는 범위도 너무 넓은 데가 거의 이해할 수도 없는 명칭이니까.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너무 신속하게 내려진 진단은 바로 자유를 상실하게 한다....... 숱한 시선 속에 이뤄지는 이런 식의 축소는 무거운 중압감으로 그 사람을 짓누르고, 그의 개별성을 말살하고, 은밀한 상처를 벌려놓아 아물지 못하게 한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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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을 읽다
서현숙 지음 / 사계절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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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서 소년원-범법소년-재발율이 높고 ,...로 계속되는 내 사고의 고정관념이 얼마나 손쉽게 형성되었으며 그런 선입견이 소년을 가두고 가로막고 아무런 할 얘기가 없게 만드는지 알 수 있었다.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뭘까?

아이들이 기대하는 좋은 어른의 모습은 어떤 말과 행동과 눈빛을 가지고 있을까? 책을 만나면 분류를 한다. 읽어야 될 책과 읽고 싶은 책, 그리고 자신의 틀과 편견을 깨부수는 책. 이 책은 세번째 역할을 하며 군데군데 눈시울이 뜨거웠다.

그리고 타인의 불행 위에 내 행복을 쌓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한다.


나쁜 행동과 인간의 영혼에는 어떤 관련이있는 것일까. 소년원 아이들을 만난 일 년 내내 수시로 나를 찌르는 질문이었다. ...
그가 지은 죄는 누군가를 괴롭히고,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었을 것이다. 가해자인 소년을 영원히 가둘 수 있다면 그저 가두면 된다. 가두는 것만으로 죗값을 치르게 하면 된다. 하지만 그는 곧 우리의 이웃으로, 사회의 구성원으로, 무엇보다 영혼을 지닌 하나의 존재로, 우리 곁에 서게 될 것이다. 이것이 죗값을 치르는 그 ‘너머‘를 생각해야 하는 까닭이다.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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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지음, 신현승 옮김 / 시공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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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소개받은 것은 오래되었다. 하지만 육식은 개인의 기호의 문제이고 채식주의자도 풀을 먹는 것은 생명에 대한 폭력이 아닌가?하며 육식에 대한 편의를 포기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날로 더워지는 지구온난화, 지구기온의 재난에 해마다 기아로 사망하는 인구수의 증가, 소를 살찌워 육질이 좋은 고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소에게 사료로 먹이는 곡식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육식에 대한 취향이 부끄러웠다.


"타인에게 가한 비인간적 처우는 내 안의 인간성을 파괴한다."는 칸트의 얘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미국의 서부개척시대, 인디언이 차지하고 있던 서부개척지를 빼앗기위해 인디언의 주식이었던 버팔로를 몰살하고 그들의 땅을 헐값에 사서 굶주린 인디언들에게 소를 팔았던 얘기가 2부 <미국서부 정복기>에 나온다.

  인디언들은 몰살되어 버린 버팔로의 부재가 믿기지 않아서 미국인들에게 받은  돈으로 소 20마리를 사서 제물로 바치고 신에게 다시 버팔로를 이 지구상에 돌려달라고 기도를 드렸다는 부분에서는, 앞으로 지구의 미래에 드리워질 암울한 미래를 먼저 본 것 같았다.


서구문명에서 힘과 다산을 상징하던 소숭배 문화에서 영국인들 특히 지배게층에게 붉은 소고기을 먹고 사냥을 한다는 것의 의미는 세상을 정복하고 강력한 힘과 생명력을 가져오는 것으로 인식했다. 켈트족의 전통문명에서 기원한 소에 대한 숭배(cattle)은 후에 자본(capital)에 대한 소유욕으로 확장되어 소를 먹고 사냥한다는 것은 신이 내려준 선물과 자본을 획득한다는 의미이므로 지배계층이라면 널리 행해야 할 일이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를 소를 위한 목초지로 만들고 아일랜드인들은 목초지 변방에서 감자로 주식을 삼다 대기아를 맞은 사실을 기억한다.


  다른 생명의 기아와 고통에 무신경한 인간성은 더욱 식민지개척에 열을 올리며 산업혁명으로 인해 자신의 농토에서 쫓겨나 도시 노동자로 전락한 이들에게 육식을 공급함으로써 사회불만을 누그러뜨렸다. 영국 목축업자들이 미국 내 농경지대에서 소를 키우는 일은 제국주의의 식민정책과 정확히 궤를 같이 한다. 현재 아르헨티나의 팜파스를 비롯 남미와 아프리카의 목초지에서 소들은 그들의 발굽으로 땅을 단단하게 만들며 웅덩이와 샘을 점점 가물게하여 사막화시키고 있다.


이 책은 나의 음식에 대한 기호가 타 생명체의 고통과 기아, 지구의 황폐화에 큰 책임이 있더라도 그러한 음식에 대한 취향을 존중받아야 되는지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인간이 인간에게 행하는 잔혹함, 생명에 대한 무신경과 동물에 대한 학살로 그 어느 책보다 마음이 아팠다.

이베리아 반도의 뿔 달린 오록스 후손인 스페인산 소는 서부평원에서 중서부 농장 지대로 이송되었으며, 그곳에서 육질에 지방이 들어찰때까지 기름진 옥수수로 살을 찌웠다. 그런 다음 고기는 철도와 증기선을 통해 영국 항구로 이송되어 영국인과 유럽인의 식탁에 올랐다.
오늘날 미국의 경우 농경 지대에서 생산된 국물의 70% 이상이 가축들, 특히 소의 사료로 공급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전체 곡물의 3분의 1이 소 및 다른 가축의 사료로 이용되고 있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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