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건강 매뉴얼 - 내 몸의 힘을 지키는 여성 건강 바이블
제니퍼 건터 지음, 조은아 옮김, 윤정원 기획 / 글항아리사이언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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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살이 넘으면 예전같지 않다는 말은 많이 들었는데, 그렇다. 몸이 하나씩 고장 나는 느낌이다. 작년엔 생전 처음 생긴 병도 있었고, 며칠 전부터 목디스크 통증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살펴보면 괜찮은 데 찾기가 힘들겠지만 특히 질 건강은 같은 여성끼리도 얘기하는 힘들다. 어느 정도의 느낌이나 통증은 참고 넘어가기도 한다. 인생 반환점을 돌았다면 앞으로 시기가 더 중요한 지금, 서평단으로 반가운 책을 만났다. 


소개만 보고 관심있던 책이라 자세한 내용은 몰랐는데 우선 받자마자 5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함에 놀랐고 (독서대가 필수입니다. 무거워요 책. ) 서문부터 거침없는 저자의 발언에 놀랐고, 그림부터 설명까지 상세한 설명에 또 놀랐다. 의학적인 내용이나 용어도 나오지만 친한 언니가 들려주듯 편안한 문체라 읽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 감수로 우리나라와 비교한 정보도 잘 나와있어 유용했다. 


작가 제니퍼 건터는 산부인과, 통증의학과 전문의로 30년 넘게 질, 외음 전문가로 활동했다. 그가 블로그나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을 정리해 이 책을 썼는데, 서문 첫 문장 부터 감동이었다. 


내게는 버젠다가 있다. 질과 외음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여 모든 여성에게 힘을 부여하겠다는.


이 책은 질의 제대로된 정의 부터, 여러 지식, 성교육, 관리 방법, 질환, 감염 심지어 의사와 어떻게 자신의 증상을 얘기할지 조언하는 것까지 담겨있는 말 그대로 백과사전 같은 책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출처 불명 지식의 문제점도 밝히고, 나도 잘못 알거나 제대로 모르는 게 많았구나 깨닫는 게 많았다. 이 몸으로 40년을 살아도, 아이를 낳고 기르는데도 이렇게 모르는 게 많았다니. 지금은 어떤 지 모르지만 내가 아이를 출산할 8년 전만 해도, 출산 전 관장이나, 제모 제거는 필수 였는데 이 책에선 그 점도 비판한다. 그리고 상업 마케팅으로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식품이나 의약품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다. 


모르는 내용이 많았고, 관심있는 분야를 위주로 열심히 읽었지만 이 책을 끝까지 집중하게 만든 건 작가의 태도였다. 그는 자가의 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몸이 원하는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어떻게 도움을 구해야 아는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과거부터 여성은 몸의 관리와 주도권을 제대로 갖지 못했다.  질을 영어로 하면 vagina는 ‘칼집’이란 뜻이라고 나온다. 이렇게 어원부터 여성 질병에 대한 연구가 과거에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지금 많이 발전했지만 아직 정확하지 않은 정보에 기대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는 저자의 다짐에 힘이 났다. 


아이를 낳고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사실에 최근까지도 몸으로 제대로 보기 어려웠다. 갑자기 자신감이 넘치진 않겠지만 저자 말대로 최소한 몸이 어떻게 이뤄졌고 작동하는지, 무엇이 불편한지 살펴야겠다. 그렇게 몸을 보듬는 것부터 시작하는게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리라. 모든 여성과 남성들도 필수로 봤으면 하는 소장 가치있는 책이다. 여성에게 제대로된 정보와 권리가 주어지길, 책으로 첫걸음을 시작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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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휴먼 - 장애 운동가 주디스 휴먼 자서전
주디스 휴먼.크리스틴 조이너 지음, 김채원.문영민 옮김 / 사계절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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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한 문장 


변화는 결코 우리가 생각한 속도에 맞춰 찾아오지 않는다. 수년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고 전략을 세우고 공유하고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만 찾아온다. 



장애인 이동권’ 이란 단어를 인지하기 시작한 건 아이 어릴 때 유아차에 태워 대중 교통을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아이 어릴 때, 유아차에 태워 목적지에 가면 또 마음이 급했다. 퇴근 시간 전에 집에 와야 했고, 아이가 좀 걸어다닐 나이가 됐지만, 에스칼레이터를 안 타려고 했고,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나에게 필수 수단이었다. 대부분 엘리베이터를 한 두대는 보내야 나와 아이가 탈 수 있었다. 사실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장애인도 기다리는 걸 보고나서 이건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상한 건 한 두개가 아니다. 그럼 운전 면허를 따서 차를 몰라고 쉽게 말한다. 자차가 없으면 불편하고 응급상황에 대처하기 어려운 지역도 있지만 수도권이라면 주차가 더 큰 문제다. 왜 문제를 지우고 사람들에게 책임을 씌우지? 사람 많은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아이 손을 붙잡고 여러 사람의 눈치를 보며 대중교통의 ‘대중’은 누구인가 의문이 들었다.


몇 년 전 부터 관심을 갖고 책도 읽다가 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서 20년 동안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해왔다는 걸 알게 됐다. 현재도 이어지고 있는 이 투쟁은 지금은 정권이 바뀌는 시기를 틈타 차별, 배제, 혐오 발언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시기에 <나는 휴먼>을 만난 건 반가웠지만 그래서 아팠다.


세계 장애 운동 리더인 저자 쥬디스 휴먼은 이 사람이 걸어온 길이 미국 장애인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만큼 여러 사람의 힘을 모아 스스로 자신과 장애인을 위한 길을 개척한 사람이다. 1947년 태어나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휠체어를 타게 된 이후 학교를 입학 못하고 부모가 발 벗고 나서 몇 년을 알아 본 끝에 4학년 나이에 학교에 입학했다. 그 후, 그는 실력이 있음에도 처음엔 장애를 이유로 거부당한 교직 자격증을 취득하고, 장애인 시민권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이 책은 저자의 인생을 따라 그가 이루었던 투쟁의 과정과 결과를 시간 순서대로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특히, 1977년 재활법 504조를 시행하라며, 캘리포니아 연방정부를 점거하고 20일이 넘게 시위를 이어나가, 서명을 이끌어낸 과정이 자세하게 담겨있다. 504조 내용은 이렇다. 


미국 내에서 제7조 제6항의 장애에 대한 정의에 부합하는 장애인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연방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프로그램이나 활동에 따른 혜택에서 배제, 거부되거나 차별받을 수 없다. 


이렇게 당연한 법을 인정받는 건 어려웠다. 점거 시위 내내 씻지도 못하고 먹기도 힘든 상황에서 저자를 비롯한 장애인들과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들은 힘을 모아, 이 변화를 이끌어냈다. 미국장애인법이 제정된 건 그로부터 십년이 지난 1990년이었다. 저자의 말대로 변화는 한순간에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도리어 힘을 얻는다. 책을 읽는 내내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밖에 없었지만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만 휴먼의 말대로 조금이나마 기울어진다고 하니까. 혐오로 갈라치기 하는 정치와 사람들에게 맞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공부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걸 잊지 말자고 또 다짐한다. 


휴먼은 말한다. 장애가 노화 과정의 일부라고. 그렇다. 나도 평생 관리해야 하는 질환이 있고, 누구나 늙고 병들고 죽는다. 이건 누구를 배제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장애인, 소수자, 어린이 등을 다 지워버리면 우리가 잘 살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 같이 사는 세상이므로. 우리가 생활하는 모든 것에 타인의 희생과 노력이 있다. 머지 않아 대중교통의 대중이 말 그대로 모든 사람을 의미하길 바라며. 오늘도 조금이라도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분들을 응원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안고 저도 할 수 있는 걸 하겠다고 작은 목소리나마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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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호 - 제26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작(고학년) 창비아동문고 323
채은하 지음, 오승민 그림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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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작 


작년부터 청소년 소설, 동화를 꾸준히 읽고 있다. 많은 책들이 나오기 때문에 다는 아니더라도 기회닿는 대로 읽고 있다.

<루호>는 가제본 서평단이 되어 읽었는데, 재미는 물론 캐릭터와 결말까지도 맘에 든 책이었다. 


<루호>는 제목이 주인공 이름으로 인간으로 변신하는 호랑이다. 친구들 까치 희설, 토끼 달수, 삼촌 호랑이 구봉과 한 집에서 지낸다. 그들도 인간으로 변할 수 있다. 

어느 날 동네에 지아, 승재 남매와 아버지가 이사오고, 동네에는 호랑이 흔적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때 쯤 루호도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하고 자꾸 자신에게 말을 거는 소리가 들리는데… 


옛날에 우리나라엔 호랑이가 많았다는 건 책이나 방송을 통해 알고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산을 넘어가려면 혼자서는 호랑이가 무서워 사람들이 모여 넘어가기도 하고, 

일제 강점기 때 호랑이 사냥을 많이 하기도 했다고. 작가는 옛날 호랑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는 호랑이와 동물들을 등장시켜 루호의 출생이 비밀, 최선을 다해 돌보는 삼촌 구봉과 친구들 이야기까지. 흔할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했는데 지아네 가족을 만나고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흥미로웠다. 


출생의 비밀과 자각하는 주인공, 방해하는 악당과 출생에 관련된 인물이 등장하는 구성이 히어로 영화 같았다. 속편도 궁금한 결말과 자신의 길은 스스로 만들고 가족도 마음에 맞는 사람과 사는 게 마음에 와 닿았다. 혈연 가족이 아닌 서로를 지지하는 가족이 요즘 책에서 많이 나와 반갑다. 또한, 남녀에 구애받지 않는 캐릭터 설정도 좋았다. 읽고나면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는 동화이다. 어린이들이 많이 읽고 힘을 얻길 바란다. 다들 지치지 않고 나를 찾아가길! 오늘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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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신화 마로 시리즈 (Maro Series) 6
김보영 지음, 김홍림 그림 / 에디토리얼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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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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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간을 배달하기 위하여
박애진 외 지음 / 사계절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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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SF 소설 앤솔로지가 많이 나온다. 이번엔 사계절 출판사에서 우리나라 옛날 이야기를 소재로 다섯 작가의 단편이 담긴 책이 나왔다. 

심청전, 해와 달, 흥부전, 별주부전, 장화 홍련전 을 재해석한 소설들. 소개만 듣고도 궁금했는데 다섯 편 모두 색깔이 달라 흥미로웠다. 


김이환 작가만의 세계를 좋아해서 <밤의 도시>가 궁금했는데 해와 달을 이렇게 해석하다니 우선 놀랐고, 밤만 있는 도시에 고장난 해라는 이미지와 해 근처에 예전 물건을 찾으러 가는 두 주인공. 그들의 대화와 벌어지는 일들이 끝까지 집중하게 한다. 반전으로 보이는 결말은 여운을 남긴다. 우리가 힘든 일도 어쩌면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는 단순하지 않을까? 되물어 보면서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결말이었다. 


<깊고 푸른>의 심청이는 영화에 나오는 히어로의 모습 같았다. 영리하고 용감하며 좌절한 아버지에게도 힘을 주려고 하는 체구는 작아도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마지막엔 내가 속이 시원할 정도로 통쾌했다. 


자신만의 세계를 만드는 작가들이 많이 알려지길 바란다. 앤솔로지를 읽으면 새로운 작가들도 알게 되고, 취향의 작가를 만날 수도 있다. 소설 좋아하는 분들, 어떻게 재해석했는지 궁금한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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